나라 초1 유괴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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奈良小1女児殺害事件

1. 개요
2. 사건 경위
3. 범인의 행적
3.1. 인터넷에 범행예고?
4. 판결
5. 그 후


1. 개요[편집]


2004년 일본 나라시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제 2의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이다.[1]

2004년 11월 17일 오후 6시 45분경 나라시 한 가정의 모친이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모친의 휴대전화에 납치된 아리야마 가에데(有山 楓 당시 나이 7세, 1997년생) 양이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로 딸을 데려갔다는 문자가 아리야마의 사진과 함께 보내졌다. 나라 현경은 즉시 유괴사건의 조사를 개시했으나 다음날 오전 12시 지난 시각 도로변에서 아리야마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12월 30일 신문 배달점 직원이었던 고바야시 가오루(小林 薫, 당시 36세)가 체포되었다. 코바야시는 극도의 소아성애자였으며, 스스로 제2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등 인간쓰레기 행위를 저질렀다.

2. 사건 경위[편집]


피해자는 17일 오후 3시경 하교 후 혼자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다가 40분경 모친과 학교 근처에서 통화하였고 그로부터 20분 뒤인 오후 4시경 범인에게 납치되었다.

피해자가 납치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은 같은 초등학교 여아 2명으로, "아이가 스스로 차에 올라탔다"고 증언했다. 이 모습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며 당초엔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자의 범행으로 보였다. 아동들은 차의 색상을 '검은색인가 곤색', '하얀색'으로 증언하여 차종은 닛산의 '마치(マーチ)'로 추정되었으나 지나가던 다른 목격자가 현장을 오가는 수상한 차를 목격했다고 증언했는데 그 차는 녹색의 '코롤라2(カローラ2)'였다. 이 차량은 현장 근처에 설치된 CCTV에 여러 번 찍혔기 때문에 해당 차량으로 특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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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보낸 문자에서는 피해자의 사진에 의문의 문자가 비쳤는데, 처음엔 'MO'라는 글자라고 인식되었으나 분석 결과 'TOWN'으로 표기돼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연한 빌딩 같은 건물들도 그려져 있었다. 경찰은 홈센터와 인테리어 숍 등에 판매처를 문의했다.

18일 오전 발견된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사인은 익사로 판명. 여러 군데에 상처가 있었고 치아가 여러 개 빠져 있었다. 시신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발과 체모, B형의 혈액이 검출되었다. 다음 달 12월 14일 오전 1시경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피해자 부친에게 "이번엔 여동생을 데려가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시신의 사진과 동생을 데려가겠다는 비열한 문자를 부모 앞으로 보낸 것도 모자라 더욱 경악할 사실은 범인인 고바야시 가오루가 단골 술집에서 피해자의 사진을 직원과 손님들에게 당당히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범인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여 자택에서 피해자의 점퍼와 가방,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또한 범인은 이전에도 아동에게 외설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여러 번 체포되었던 전과가 있었으며 아동 포르노 비디오 80~100점과 로리콘 잡지, 훔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속옷과 의류 약 80점, 단백질 인형이 발견되는 등 극도의 소아성애자였다.


3. 범인의 행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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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고바야시 가오루의 중-고교-성인-체포 시점 사진

고바야시 가오루(小林 薫 こばやし かおる, 1968년 11월 30일 ~ 2013년 2월 21일).

고바야시 가오루는 오사카에서 연료품점을 운영하는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10살이었을 때 동생을 가졌던 모친이 이상분만(異常分娩)으로 인해 사망하고 그로 인해 태어난 동생도 장애를 입었다. 그 때문에 가족들은 동생에게만 신경쓰게 되었다. 평소 폭력을 휘두르던 부친에게서 그를 지켜 준 건 사망한 모친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으로 낸 글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5시간 이상을 울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계신 천국으로 가고 싶다. 다음번에 어머니를 만나면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만나고 싶다'고 썼다. 유치원 시절부터 학창 시절 내내 집단괴롭힘을 당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아동 성애에 눈을 떴으며 고등학교 2학년 동아리 합숙으로 돗토리현에 갔을 때 숙박 중이던 료칸 근처 맨션에서 마주한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여자아이 2명을 성추행하여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고교를 제대로 졸업하게 됐는지는 불명. 1989년 12월 20살 무렵엔 5세 여아 두 명의 옷을 벗기고 외설 행위를 저질러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유예 기간 중 보호 감찰 처분을 받았다.

이에 그치지도 않고 2년 뒤인 1991년 10월 5세 여아에게 외설행위 후 목을 조른 혐의(살인미수)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부친에게 절연당하고 또 다시 징역 3년의 실형 판결을 받아 형무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성은 일절 하지 않고 얌전히 복역하여 가석방을 받을 생각만 했다고 한다. 1995년 11월 9일 가석방되었고 1996년 7월 23일 가석방 기간이 만료되었다.

그 후 초등학생 때부터 했던 신문배달 경험을 살려 2004년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東住吉区) 마이니치 신문 판매점에서 근무했으나 수금한 돈을 들고 튀었다. 이 가게에 일했을 무렵 조간 배달을 하며 주택에 빨래로 널어놓은 여자아이의 체육복이나 속옷 등을 훔쳤다. 7월부터는 나라 카와이쵸(河合町)의 마이니치 신문 니시야마토 뉴타운 판매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나 돈을 들고 튀었던 오사카점의 소장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어 매월 3만 엔을 변제하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내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9월 26일 초등학교 1학년 여아에게 말을 걸고 몸을 만지는 등의 성추행 행각으로 또 다시 기소되었다.

사건 당일 범인은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휴일이었던 지인에게 차량을 빌려 나라시로 이동했다. 증언에 따르면 오사카 부근에서 납치할 여아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어 인근 나라로 이동한 것이라고. 오후 1시 50분경 하교 중이었던 피해자 아리야마를 붙잡아 "집으로 보내줄게"라고 말을 걸고 차에 태웠다. '혼자 있는 여자 아이라면 누구든지 좋았다'라고 증언했다. 3시 20분경 11km 떨어진 자택 욕실에서 외설 행위를 하려고 했으나 손을 물려 욕조의 물에 3분간 머리를 강제로 담그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 후 전신을 2분간 담가 익사시켰다.

휴대전화로 촬영한 이유에 대해서는 "죽인 걸 부모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자백했다. 문자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정보 기록이 남기 때문에 경찰은 통신 기록을 분석하여 문자가 보내진 송신처가 범인의 지인 명의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범인은 사건 당일에도 단골 술집에서 새벽까지 술을 퍼 마셨으며, 사건 후 여성 종업원에게 '인터넷 어딘가에서 보내진 사진이다'라며 피해자의 시체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른 술집에서는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토할 것 같다. 정말 불쌍하다. 얼른 (범인이) 잡히면 좋겠다'고 어두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주위에 '헤어진 아내 사이에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피해자와 같은 나이'라는 등의 거짓말도 했다고 한다.


3.1. 인터넷에 범행예고?[편집]


사건 이전 일본의 익명 게시판인 2ch에 범행 예고로 보이는 스레드가 있었다.[2] 그곳에는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로 아이를 촬영한다', 'GPS에 주의한다'는 범죄 수법을 설명하는 글이 있었으며 '소녀의 치아를 뽑겠다'는 글도 존재했다.

2ch 내에서 최악의 변태들이 모인 'CC사쿠라판'[3]2004년 8월부터 아동에게 외설 행위를 한 경험을 얘기하거나 방법을 얘기하는 스레드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스레드를 세운 동일 인물(익명이므로 실제 동일 인물인지는 불확실)이 '범행 준비가 되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실행하겠다'는 글을 남기고 사건 당일 오후 5시경 '다음 주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결행하겠다'는 글이 게재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글과 이 사건과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나라현 조사 본부도 관심을 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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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2004년 11월 22일 후지 테레비 '슈퍼 뉴스'에 보도되었는데, 스레드의 다른 이용자들이 "범인은 이 안에 있다"라고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건 이후 인터넷에는 그가 살던 곳의 집 주소와 일하던 신문 배달점의 주소, 사진까지 상세하게 기재되었다.


4. 판결[편집]


고바야시 가오루는 살인, 강제 외설 치사, 협박 등 7건의 범죄로 기소되었다. 시내에서 일어난 다른 여아의 외설 혐의와 아동 의류 절도 혐의도 포함되었다.

2005년 4월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관은 반성하는 마음도 갱생할 자신도 없다. 빨리 사형 판결을 받고 제2의 미야자키 츠토무로써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피고인이 직접 작성한 진술을 낭독했다. 당시 미야자키 츠토무는 상고 중에 있었으며 월간 '창(創)' 1월호에서 "정신감정을 받지 않았으면 제2의 미야자키 츠토무를 입에 담지 마라"고 비평했다. 고바야시의 정신감정은 반사회 인격장애 및 페도필리아라고 진단[4]받아 나라 지법에 감정서가 제출되었다.

2006년 9월 나라 지법 공판에서 검찰 측은 "본인의 성욕, 지배욕, 자기현시욕(自己顕示欲)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계획적인 범행으로 비열하고 극악, 잔혹하기 그지없다. 피해 아동 부모의 처벌 요구도 준엄하고 격렬하다. 피고인은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죄의 태도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갱생 의지가 결여하여 교정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여 사형을 구형했다.

코바야시가 유족에게 쓴 2장의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질스런 행위로 소중한 따님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부모님의 의견 진술을 듣고 눈물이 나왔지만 공판 중에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딸이 살아 돌아올 수 없기에 저를 향한 분노는 해결되지 않겠지만 형의 집행으로 죄를 갚을 수밖엔 없습니다.

해당 편지는 변호사를 통해 경찰 담당자를 거쳐 유족에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유족은 거부했다.

같은 해 불우한 가정환경 및 피해자 수 등을 감안해도 죄질이 매우 나쁘고 고도의 계획적, 상습적 범행[5]이라는 이유로 사형이 선고되었고 2008년 자동 항소 후 최고재판소 심리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5년 뒤인 2013년 2월 21일 오사카 구치소에서 44세의 나이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변호사의 최종 변론에 의하면 고교 시절에 성인 애니메이션을 본 것이 성격을 비뚤어지게 한 원인이라고 이야기했으나, 외설 행각을 처음 시작한 것이 만 14세이므로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한 일부 매스컴에선 '피규어 모에 오타쿠'라고 미야자키 츠토무 체포 당시와 비슷한 편견적인 보도를 하기도 했다.


5. 그 후[편집]


일본 국내에서 '메건법(Megan's Law)' 도입 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메건법은 1994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범죄 사건(Murder of Megan Kanka)으로 인해 제정된 성범죄자 정보 공개법의 속칭으로, 사건 피해자였던 아동 메건 칸카(Megan Nicole Kanka)의 이름을 따 제정됐다. 하지만 인권 침해를 이유로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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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밑에도 쓰여 있지만 본인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제2의 미야자키 츠토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2] 정확히는 2ch가 아닌 'megabbs'라는 게시판인데 2ch의 이용자가 만들었다.[3] 카드캡터 사쿠라판으로 해당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을 때까진 해당 애니에 대해 얘기하는 그나마 멀쩡한 게시판이었지만, 방영 종료 후에는 정말 위험한 로리콘들이 모인 판으로 변질됐다. 2ch에서도 기피하는 곳 중에 하나.[4] 미야자키 츠토무는 페도필리아가 아닌 네크로필리아에 가깝다.[5] 일본에서도 유괴 살인이라는 것만으로 무조건 사형은 아니고 보통 무기징역이지만 이 자는 100퍼센트 계획 범죄자인 데다 살해 수법 등에 있어서도 죄질이 극히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