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린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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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일전쟁 및 제1차 세계 대전의 러시아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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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정
페르노프
구축함
프로젝트 35노트형, 노빅급(데르즈키급, 오르페이급, 이쟈슬라프급, 피도니시급), 프로젝트 마트로소프 1917년형
잠수정 / 함
델핀, 솜급, 카사크타급, 미노가, 아쿨라, 카르프급, 카이만급, 크랍, 모르즈급, 바르스급, 나르발급, A급
경순양함
알마스급, 스베틀라나급
장갑순양함
게네랄 아드미랄, 미닌,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드미트리 돈스코이, 아드미랄 나히모프급, 파먀티 아조노바, 로시야, 그로모보이, 바얀급, 류리크
방호순양함
디아나급(아브로라함), 바랴그급, 스베틀라나급, 아스콜드, 노빅급, 바가티르급, 이주므루드급
군수지원함/구난함
콤무나
순양전함
프로젝트 707형, 이즈마일급
전함

전드레드노트급
예카테리나 2세급, 나바린,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2세급,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트리 스비아티테리아, 아드미랄 우샤코프급 전함, 체자레비치, 보로디노급, 로스티슬라브, 페레스베트급, 포템킨, 레트비잔, 에프스타피급,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드레드노트급
프로젝트 스크벗소바 1907년형, 강구트급,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임페라토르 니콜라이 1세급, 프로젝트 코스텐코 1917년형
취소선: 건조 취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attleship_Navarin.jpg

1. 개요
2. 제원
3. 활동



1. 개요[편집]


나바린은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함명은 러시아 제국 함대가 오스만 제국 함대에 승리를 거둔 나바리노 해전에서 기인한 것이다. 처음에 나바린은 장갑함으로 분류되었지만 나중에 전함으로 다시 재분류되었다. 원형은 영국 해군의 트라팔가급 장갑함을 본땄었다 (이 또한 전함으로 재분류).

1889년 7월 1일에 프랑코 러시아 공장[1]에서 기공해 1891년 9월 8일 진수 후 1895년 6월 19일에 완공되어 발트 함대에 취역하였다.

트라팔가급의 방어장갑 형식을 그대로 본따 설계해서 장갑대는 선체 중앙부에 한정하여 부착되었으며, 특히 선체 중앙부의 수선부 장갑 두께는 406mm에 달했다. 때문에 수평방어는 다른 함에 비해 강력했다. 여기에 갑판은 2층구조의 평갑판형 선체를 구현하여 여기에도 114mm에 달하는 단단한 장갑을 부착했다. 결과적으로 선체 양면에는 장갑을 모두 가지진 못했지만 나바린은 취역 당시 사실상 포격으로는 격침이 불가능한 함이었다. 때문에 10여년간 러시아 장갑함의 표준이 되었다.

참고가 된 영국 함선처럼 나바린도 매우 낮은 건현을 지녔다. 이것은 항해성을 저하시켰으며 여기에 더해 취역당시의 주포에 사용된 흑색화약용의 1877년식 35구경장 30.5cm 포는 이미 구식화가 진행되어 버렸기에 결국 러시아 해군은 이후 새로운 장갑함 <시소이 벨리키>를 설계하게 되었다.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근대화 개장을 거쳐 무선기를 탑재하고 안테나 선의 길이 확보를 위해 전방 마스트를 연장시켜 높였다. 그리고 함교에는 기선길이 1.37m의 측거의(測距儀, 거리측정기)와 망원경형 조준장치를 새로 신설했다.


2. 제원[편집]


전장
107미터
전폭
20.4
흘수
8.4
속력
15노트
무장
2연장 305mm 함포 2개
152mm 함포 8개
47mm 함포 14개
37mm 함포12개
381mm 어뢰발사관 6개
출처


3. 활동[편집]


망원경형 조준장치를 새로 신설한 이후 나바린은 연습항해에 참가한 후 지중해태평양에 파견되었다.

1900년 4월에 나바린은 기동함대와 지상부대의 합동 작전활동에 참가했다. 5월 28일에 베셀라고 해군소장의 파견대에 참가하여 육전대를 태우고 청나라 톈진의 해안 다구(大沽)로 이동한 후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연합국 부대에 참가했다. 군함에 육전부대를 태우는 것은 당시 수송선이 부족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때문에 태평양함대 사령관이던 알렉세예프는 보급부실을 우려하기도 했다. 1900년 9월에 나바린은 연합국 함대에 참가하여 산해관의 기습공격에 종사했다. 이 때 30명의 나바린 육전부대원 중 4명이 전사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중국에서의 혼란이 수습된 후 나바린은 태평양함대에 소속되어 1901년 12월 12일까지 극동에 머물렀다. 새로운 장갑함인 <레트비잔>과 <포베다>[2]가 도착하자 이들과 교대하는 형식으로 나바린은 발트함대로 돌아왔다.

1902년에 수리공사가 이루어진 나바린은 러일전쟁이 가속화되자 제2 태평양함대에 편입되어 장갑함 <오슬라뱌>[3], <시소이 벨리키>, 장갑순양함 <아드미랄 나히모프>와 함께 제2 전함 전대에 소속되었다. 이 때 함의 최대 약점이었던 것이 흑색화약을 이용한 구식화된 화포였으나, 개전을 앞두고 새로운 주포를 장비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결국 1904년 6월에 나바린은 상부에 공사 완료를 보고한 후 크론슈타트 항에서 다른 함선들과 합류하기 위해 8월 29일까지 정박했다.

제2 태평양함대의 일본원정에 동행한 나바린함은 1905년 5월 27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다. 일본 해군은 러시아의 신형 주력함에 화력을 집중하여 오래된 함은 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바린은 혼전 속에 기관실이 파괴된 후 속력을 잃고 말았다. 다른 함들과 낙오된 나바린은 21시 05분에 스즈키 간타로 사령관이 이끌던 일본의 제4 구축전대의 구축함에서 발사된 어뢰를 맞고 침몰했는데 구조된 생존자는 3명에 불과했다. 제2 태평양함대 휘하 제1과 제3 전함 전대는 소속 함선 일부가 항복, 나포되기도 한 반면, 제2 전함 전대는 본함을 포함하여 4척 전부 격침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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