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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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
Madama Butterfly

파일:나비부인 초판 포스터.jpg

장르
오페라
원작
존 루서 롱 《Madama Butterfly》
피에르 로티 《Madame Chrysanthème》
작곡
자코모 푸치니
작사
루이지 일리카, 주세페 자코사
초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1904년 2월 17일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극장

1. 개요
2. 등장인물
3. 명반과 DVD
4. 그 외 이야기
4.1. 일본에서
4.2. 유사한 작품들
5. 관련 작품



1. 개요[편집]


자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로, 일본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근대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잘 표현한 명작으로 손꼽힌다.[1]

1904년 초연시에는 2막으로 초연되었다. 하지만 초연의 대실패 직후 푸치니는 이 작품을 대대적으로 개작하면서 3막으로 고쳤다. 초연 이후 푸치니는 3막으로 개작하여 1905년 브레시아에서 공연했고 이후에도 워싱턴 D.C., 뉴욕, 파리 공연에서 개작을 가하여 총 4회의 개작을 했고, 1907년 최종적으로 개작을 마쳤다. 보통은 1907년 최종판이 공연된다. 현재 대부분의 공연이 1907년 최종고로 연주되지만, 때때로 이목을 끌기 위해 드물게 1904년판이 연주된다. 이때는 초판본(1904 original version)이라고 명시를 한다. 결정판이 3막이므로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식 문서, 음반 등에서는 나비부인이 3막 오페라로 기재되어 있다.[2]

제목에 대해서 풀이하면 이렇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 '초초상'의 '초초'는 나비(蝶々, ちょうちょう)의 일본어 음독이고, 'Madama(마다마)'는 'Madame(마담)'의 이탈리아어 발음이다. 원래 이탈리아어의 나비라는 단어는 'Farfalle(파르팔레)'인데, 푸치니는 이 단어를 쓰지 않고 영어 'Butterfly'를 그대로 이탈리아어 'Madama'와 합쳐서 제목을 지었다. 즉 ’Madama Butterfly’는 영역된 제목이 아니고 그 자체가 푸치니가 붙인 원제인 것이다. 아마도 미군이 주된 등장인물이라 그러한 듯. 따라서 이탈리아에서도 이대로 부른다.

아리아 '어느 갠 날(Un bel dì vedremo)'이 특히 유명하며, 허밍코러스도 유명하다.

자국을 배경으로한 작품이라 그런지 일본에서는 라 보엠, 토스카와 더불어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2. 등장인물[편집]


  • 초초상(나비부인): Cio Cio-san. 여자 주인공. 15세의 게이샤로, 집안과 의절하고 핑커튼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지만 버림받아 자살한다.
  • B.F. 핑커튼: B. F. Pinkerton. 남자 주인공. 미합중국 해군 중위로 일본 근무시 초초상과 결혼하였으나, 미국으로 돌아가 케이트와 중혼을 저지른다. (게이샤인 초초상과 단기 계약결혼을 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수룩한 초초는 그걸 몰랐다고 보는 시각.)
  • 샤플레스: Sharpless. 미국 영사. 초초상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 핑커튼이 미국으로 떠난 이후 나비부인의 집세를 대신 내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 고로: Goro. 중매인. 나비부인과 핑커튼의 결혼을 중매하였으며, 핑커튼이 떠난 후 야마도리 공과의 재혼을 주선하나 거절당한다.
  • 본조: Lo zio Bonzo. 나비부인의 친척. 가문을 버리고 핑커튼과 결혼하는 장면에서 난입하나, 나비부인의 강한 의지로 인해 의절 선언 후 떠난다.
  • 스즈키: Suzuki. 나비부인의 충실한 하녀. 핑커튼이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야마도리 공: Il Principe Yamadori. 여러 번 결혼을 했던 중~노년 남성으로, 나비부인을 후처로 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나 실패한다.
  • 케이트: Kate Pinkerton. 핑커튼이 미국에 돌아가 결혼한 아내로, 핑커튼과 나비부인의 아들을 입양하려 한다. [3]
  • 아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샤플레스가 아이의 이름을 물을 때 초초상이 "지금은 '눈물'이지만 그이가 돌아오면 '기쁨'이 될 것이다"라고만 하는 것이 전부. 큰 비중은 없다.


3. 명반과 DVD[편집]


파일:/img/img_link7/818/817479_1.jpg
데카에서 1974년에 녹음된 전곡반

영상물로는 중국소프라노 잉 후앙이 주연을 맡은 1995년 영화판이 시각적 측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원작에 충실한 연출이 호평을 받고 있다. 또 오케스트라도 좋으며 성악진의 비주얼도 좋다.

음반 중에서 제일 먼저 추천되고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것은 데카에서 나온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렐라 프레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반(1974년)이다. 이 음반이 녹음된 몇 개월 후 파바로티가 도밍고로 교체된 것 이외에는 동일한 배역진으로 장 피에르 폰넬이 연출한 영상물이 촬영되기도 했다.[4]


4. 그 외 이야기[편집]



4.1. 일본에서[편집]


나비부인은 일본 소프라노들이 제일 사랑하는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성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나 일본 상류층에서도 이 오페라에 대해 굉장히 호평하고 있다. 자국을 배경으로 삼은 유명 오페라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불명이다. 다만 일본 소프라노들이 초초상 배역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풍조가 예전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동양인 소프라노 중 최초로 초초상을 맡았던 미우라 타마키(三浦環, 1884-1946)도 초초상역을 매우 좋아해서 무려 2,000회 이상 이 배역으로 출연한 기록을 갖고 있다.[5] 나가사키의 공원인 구라바엔(グラバー園. 영어로 글로버 가든)에는 미우라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이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을 본뜬 동상이 설치되어 있고, 정원에 딸린 일본식 가옥에는 '나비부인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주인공인 초초상은 1막에선 15세의 게이샤인데, 30대 미국인 아저씨 핑커튼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마저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핑커튼을 옹호하는 해석도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게이샤와의 단기 계약 결혼이 드물지 않았고, 핑커튼도 초초상과 사기결혼을 한 게 아니라 그런 계약결혼을 했을 뿐이라는 것. 나이가 어려 정신적으로 그다지 성숙하지 못했던 초초상이 계약결혼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르고 결혼해 버리고는 혼자서만 사랑하다가, 사실을 알고 죽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상당히 막장전개로 보일수밖에 없는것은 당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지라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극히 부족한 작품"이라며 비판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 꽤 많지만, 막상 일본에선 자국을 홍보하는데 공헌한 작품인지라 이에 대해서 그리 신경쓰지않고 있으며 일본내에서도 나비부인의 내용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반향은 그리 없는 편이다. 아사다 마오도 나비부인의 <어느 갠 날>을 곡으로 선택해서 피겨 스케이팅을 했던 적도 있으며, 심지어 1990년대 이후로는 가사를 일본어직접 번역하고, 가부키 스타일로 만든것도 있으며, 일본 정부에서도 이 오페라에 대해 지원해주고 있다.


4.2. 유사한 작품들[편집]


당대 유럽에서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이 꽤나 많았다. 나비부인의 작곡가인 자코모 푸치니가 중국을 배경으로 만든 《투란도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등이 그 예.

주된 배경은 중동, 일본, 중국이었으나 한국도 없지는 않았다. 1897년에는 작곡가 요제프 바이어가 청일전쟁기의 조선을 무대로 한 발레극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를 선보이기도 했다. 조선 왕자와 양반가 딸 다서(원문은 Daisha 다이사)의 사랑을 주제로 한다. 해당 극은 2003년 재발견되어 초연 125년 후인 2022년에야 한국에서 공연되었다.


5. 관련 작품[편집]


  • 오페라의 일부 요소로 쓰인 Madame Chrysanthème(국화부인)은 해군 장교를 지낸 피에르 로티[6]가 1885년 일본 체류 당시 35세 나이에 18살 일본 여성과 일종의 계약 결혼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887년 발표한 자전소설이다. 결혼 계약에 들어가기 전 로티는 곧 자국으로 돌아갈 몸이며 그 뒤에 여성은 바로 일본인 남성과 재혼하게 될 것임을 양측이 인지하고 있었다.

오페라의 전체 바탕이 된 Madame Butterfly(나비부인)은 이 Madame Chrysanthème에 영향을 받은 소설가 존 루서 롱[7]이 1898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나가사키시가 배경이다. 여기에선 아기의 아명이 트러블(Trouble)이고, B.F. 핑커튼이 결혼한 여성 이름은 애들레이드(Adelaide)로 나온다. 초초상은 미국 공사관을 찾았다가 B.F. 핑커튼이 이미 애들레이드와 재혼했으며 자신은 이대로 버리고 아이만 데려갈 생각임을 알게 된다. 절망한 초초상은 아버지의 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재시도를 하려는 찰나 하녀 스즈키가 기지를 발휘해 아기를 꼬집는다.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초초상은 마음을 되돌린다. 이후 애들레이드가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초초상이 사는 히가시 언덕을 찾았을 땐 집이 이미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는 서술로 이야기가 맺음된다.
롱과의 협업 하에 극작가 데이비드 벌래스코[8]가 쓴 희곡 Madame Butterfly: A Tragedy of Japan(나비부인: 일본의 어느 비극적 사건)은 1900년 초연되었다.

  • 실비아 시드니가 초초상 역을, 케리 그랜트가 B.F. 핑커튼 중위 역을 맡은 1932년작 영화가 있다.

  • 내용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 중 하나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있다. 이 과정에서 나비부인의 배경이었던 1900년대 일본을 1960년대 베트남으로 바꿨다.

  • 중국계 미국인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은 스페이푸의 실화를 바탕으로 나비부인을 합쳐 M. Butterfly라는 희곡을 썼으며, 데이비드 크로넌버그가 영화 <M.버터플라이>(1993)로 만들기도 했다. 줄거리는 프랑스 외교관인 남자 주인공이 중국에 와서 나비부인을 연기한 소프라노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이혼하고 직장에서도 해고 당해 우체부가 되어 중국 측 스파이로 활동하게 되는데, 알고 봤더니 그 여성 소프라노는 남자 주인공을 중국 측 스파이로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남자였다는 내용이다. 여성 소프라노를 가장했던 남성은 중국으로 추방되고, 주인공은 교도소에 갇힌 뒤 죄수들 앞에서 나비부인으로 분장하고 자살한다. 영화에서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으로,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를 연기한 존 론이 여장남자 소프라노로 나온다.

  • 1995년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 메모리즈 에피소드1 MAGNETIC ROSE 그녀의 추억에서 아리아부터 피날레까지 사용되었다. 극의 내용과 나비부인의 아리아가 어우러지는 결말부가 특히 인상적이다.

  • DDR의 대표곡 중 하나인 BUTTERFLY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또한, 락밴드 위저의 2집 앨범인 Pinkerton은 나비부인에 등장하는 악역 핑커튼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어 완성된 앨범으로 이 앨범 수록곡인 El scorcho란 곡에 여주인공인 쵸쵸상이 언급되기도 한다.

  •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하인숙이 이 오페라의 아리아 중 하나인 <어느 갠 날>을 부르는 장면이 묘사된다.

  •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국립극장에서 2020년 여름시즌 올릴 작품으로 <나비부인>을 선곡하면서 포스터와 무대 디자인으로 욱일기를 사용하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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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이리스〉도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지만, 판타지 분위기가 섞였고 오페라의 인지도도 <나비부인>에 비하면 별로 높지 않다. 지못미 마스카니.[2] 다만 나비부인의 대표적인 명연인 카라얀의 음반이 2막 파트2 구성을 취하고 있어서 이런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는데, 카라얀 음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음반과 연주들은 3막 구성을 취하고 있다.[3] 핑커튼이 이 문제로 나비부인을 만나기 직전에 무섭다고 튄다. 덕분에 케이트 홀로 나비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했다. [4] 카라얀이 직접 연출했다는 기존 서술은 잘못된 내용이다.[5] 다만 미우라가 맡은 역은 이것 외에 활동 초기의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마스카니의 <이리스>, 앙드레 메사제의 <국화부인> 같이 일본 배경 오페라의 여주인공 정도였다.[6] Pierre Loti. 1850 - 1923.[7] John Luther Long. 1861 - 1927.[8] David Bela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