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r20210301판)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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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1051337863.jpg
단장
김원봉
고문
김대지
황상규
단원
강세우
곽경
권준
김병추
김병현
김상옥
김상윤
김시현
김익상
김지섭
나석주
박재혁
박차정
박희광
배동선
서상락
신철휴
오성륜
윤세주
이구연
이성우
이육사
이종암
정율성
최수봉
한봉근
한봉인
황옥?

? 확실하지 않음






출생
1892년 2월 4일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지리[1]
사망
1926년 12월 28일 (향년 34세)
경기도 경성부
본관
나주 나씨[2]
학력
신흥무관학교 졸업
한단 학원 졸업
의거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폭탄 투척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나석주 의사의 유언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26년 일본경제 착취 기업인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와 조선식산은행 사옥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에게 10발 가량의 총상을 입자 가슴에 총을 쏴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체포되어 미와의 심문을 받다가 조선총독부 병원 수술대에서 치료를 거부하고 순국했다.


2. 생애


1892년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남지리에서 나병헌(羅秉憲)[3]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125년간 나석주의 가문이 소유한 토지였는데 기름진 땅이라 농작물이 무럭무럭 자랐으며 나석주 역시 어릴 적부터 집안의 농사를 돕고 살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세워지면서 나석주의 집안은 땅을 일제에게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일제의 지독한 수탈에 한 가족이 1년을 먹기도 힘들 정도로 사정이 나빠지자 격분한 나석주는 재령군사무소로 따지러 갔지만 일제는 콧방귀를 끼며 땅을 강제로 빼앗아 일본인에게 양도했다. 이 사건으로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농부를 때려 치운 뒤 명신학교를 수학하고 북간도망명신흥무관학교에서 항일 공작원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 때 군자금을 마련하여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했다. 황해도 평산군에서 주재소 일본 경찰과 면장을 사살하고 북쪽 지방 일대를 돌아다니며 요인 암살과 군자금을 모으고 다녀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에 일제는 나석주를 잡기 위해 군대 병력을 증강시켰는데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나석주는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비 담당으로 일하였다. 이후 국내에 돌아와 의거할 기회만 노리던 나석주는 김구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창숙의 요청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 임무를 부여받고 중국인 '리중거'로 위장하여 입국하게 된다.[4]

파일:1927.1.13 동아 號外 (1).jpg

한동안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국인 거주지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5] 기회를 엿보던 나석주는 거사일인 1926년 12월 28일 권총을 신문지로 감싼채 겨드랑이에 끼고 폭탄을 지닌 채로 명동으로 향했고 을지로 일대를 휘저은 거사를 일으켰다.

먼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사[6] 로비에 들려 중국인 행세를 하며 경비 태세를 탐문했다. 이후 맞은편에 있는 조선식산은행[7]에 들러 연말이라 사람이 바글바글[8]한 틈을 타 정신없이 은행 업무를 보던 은행원들 뒤로 폭탄을 투척했다. 하지만 폭탄은 불발되었고[9] 놀란 직원들과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키자 거리의 사람들이 조선식산은행 앞으로 몰렸다. 하지만 나석주는 태연하게 "아. 쓰미마셍."하고 조선식산은행 밖으로 자리를 떴고 후에 은행 직원이 폭탄임을 깨닫고 종로 경찰서에 신고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조선식산은행으로 몰리자 상대적으로 경비가 한산해진 건너편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가서 신문지로 숨겼던 권총으로 1층 수위실의 일본 기자부터 사살했다. 직후 2층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들을 권총으로 사살했는데 먼저 총소리를 듣고 계단을 올라오는 직원 1명을 사살했고 토지개량부 기술과장실로 가서 오모리 차장과 아야다 과장을 사살했으며 옆 기술과로 들어가 권총을 마구 난사하고 폭탄 1개를 던진 다음 아래층 현관에 있던 일본인 2명에게 권총을 쐈다. 살육전을 벌이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고 탈출할 때가 됐다고 느낀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나와 거리를 내달렸지만 출동한 일본 경찰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나석주는 먼저 만난 경기도 경찰 경부 다하타 유이지를 사살하고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일본인들을 사살하며 도주했다. 그러다 체력이 다했다고 느꼈는지 전봇대에 기대어 가슴에 총을 쏴서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10] 고등계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미와의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순국했다. 사망 후 나석주의 유해는 가족들이 서울로 와서 인수해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의 묘지에 매장했다.


3. 기타


  • 진남포(현재 남포특별시)에서 살고 있던 나석주의 아들 나응섭이 만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다시 진남포로 끌려갔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북한에서 나응섭에 대해 언급이 없던 것으로 보면 광복 이전에 사망한 듯하다.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에 동상이 있는데 '의사'가 아니라 '열사'로 되어 있다. 열사는 맨몸, 의사는 무력으로 항거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석주 선생은 '의사'라고 하여야 맞다. 서울시 당국의 시정이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4. 대중 매체에서



4.1. 김구


1995년작 KBS 대하드라마로 배우 임호가 연기했다.


4.2. 야인시대




3화에 유태권과 함께 등장해 경찰들에게 쫓기던 어린 김두한을 구해주고 인연을 맺는다. 이후 역사대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폭탄과 권총으로 일본인들을 처단하고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치명상을 입고[11] 신원 확인을 위해 임동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총상이 심각해 신원 확인이 되기 전에 서거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으로 야인시대 작가이환경이 김두한에게 항일 포장을 씌우기 위함과 동시에 시대적인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 관련없는 두 사람을 엮은 것이며 유태권도 가상의 인물. 기타 매체물 등에서는 야인시대에서의 폭탄 투척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는데 배우 손종범[12]이 연기했으며 외모로도 닮은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1] #[2] #[3] 1909년 서북학회(西北學會) 재령군지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4] 연이은 의열단의 의거로 항구에 경비가 삼엄하여 6개월간 입국 타이밍을 보았다고 한다.[5] 6년 이상 중국에 체류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임무를 못 해보고 중국어만 늘었다고 자조 섞인 한탄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6] 현재 하나은행 을지로2가 본점 자리.[7] 현재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8] 1926년 12월 25일 다이쇼 덴노사망하여 임시 공휴일이 지정되었던 것도 한몫했다.[9] 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지할 수 없는 신분상 폭탄 반입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받지 못한 폭탄들이 습기를 먹거나 고장나는 일들이 잦았다.[10] 당시 22발이 남았었다고 한다.[11] 몇 발을 맞았는데도 초인적인 맷집으로 끝까지 총격전을 벌인다.[12] 손종범은 서울 1945에서 박창주의 6촌 동생 역으로 박창주와 더불어 악질 친일파 연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