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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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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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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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Mein Kam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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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 번역본 표지 ▼
파일:나의 투쟁 한글 번역본.jpg

장르
자서전
형식
언어
독일어
작가
아돌프 히틀러[1]
번역가
황성모 (동서문화사)
서석연 (범우사)
이명성 (홍신문화사)
출판사
프란츠 에어 출판사

동서문화사
범우사
홍신문화사
발매일
1925년 7월 18일 (원서)
2014년 9월 1일 (황성모 번역본)
쪽수
720쪽 (원서)
1,157쪽(황성모 번역본)
528쪽(서석연 번역본),
447쪽(이명성 번역본)
ISBN
○○

1. 개요
2. 출판 과정
3. 책의 목차
4. 내용
4.1. 번역문 일부
4.1.1. 아리아 인종에 대한 찬사
4.1.2.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
5. 평가
6. 출판 상황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Mein Kampf

나의 투쟁은 아돌프 히틀러자서전이다. 자신의 사상 겸 그 때까지의 인생을 담았으며, 히틀러가 구술하고 그의 수하였던 루돌프 헤스가 받아쓴 책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저작권을 소유한 바이에른 주정부에서 출판을 허가하지 않아 일반적인 판본으로는 한동안 출판되지 않다가, 지금은 책 내용에 대한 광대한 반박들을 주석으로 달아 다시 발간되고 있다.


2. 출판 과정[편집]


히틀러는 1923년, 뮌헨 폭동 실패 뒤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꽤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맥주홀 폭동의 실패와 자신의 수감으로 당의 해체와 지지자들의 와해를 막고 낙심한 당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집대성한 서적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이 책의 문장은 히틀러가 직접 쓰지 않았고 수하인 루돌프 헤스를 시켜 자신의 구술을 받아적게 했다.[2] 에른스트 한프슈탱글 등 나치당 내 식자층도 교정에 관여했다. 형이 출판업자였던 한프슈탱글은 형에게 나의 투쟁 출판을 의뢰하러 갔다가 단칼에 거절당했고, 프란츠 에어 출판사(Franz Eher Verlag)[3]에서 출판하게 된다.

초판 제목은 '거짓과 어리석음, 비겁함에 맞선 4년 반 동안의 투쟁(Viereinhalb Jahre des Kampfes gegen Lüge, Dummheit und Feigheit)'이었지만, 프란츠 에어 출판사 대표 막스 아만(Max Amann)[4]이 '이렇게 제목이 길면 아무도 안 읽겠습니다.'라면서 딱 두 단어로 줄여 다시 낸 것이 바로 '나의 투쟁(Mein Kampf)'.

히틀러가 수감되었던 시절에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으나,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판매율이 급상승했다. 그 가운데 실제로 나치즘에 경도되어서 읽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신혼부부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 의무적으로 1권씩 수여되었을 정도니 사회 분위기에 억지로 떠밀려 읽은 사람도 상당수였다고 전해진다. 이 책의 인세만으로도 히틀러는 막대한 수입을 얻었는데 인세 수입의 세금은 한 푼도 안 냈다고 한다.[5]


3. 책의 목차[편집]



파일:나의 투쟁 모습.jpg


홍신문화사의 나의 투쟁 번역본(이명성 옮김)을 기준으로 한다.

  • 저자의 서문
  • 제1부
    • 생가에서
    • 빈 시절의 수업과 고난
    • 빈 시절의 정신적 고찰
    • 뮌헨
    • 세계대전
    • 전시 선전
    • 혁명
    • 정치활동의 시작
    • 독일노동자당
    • 붕괴의 원인
    • 민족과 인종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최초의 발전시대
  • 제2부
    • 세계관과 당
    • 국가
    • 국적 소유자와 국가의 시민
    • 인격과 민족주의 국가의 사상
    • 세계관과 조직
    • 초기의 투쟁 - 연설의 중요성
    • 적색선전과의 투쟁
    • 강자혼자일 때 가장 강하다
    • 돌격대의 의미와 조직에 관한 근본적 생각
    • 연방주의의 가면
    • 선전과 조직
    • 노동조합에 관한 문제
    • 전후 독일의 동맹정책
    • 동방노선과 동방정책
    • 권리로서의 정당방위
  • 맺는말
  • 옮긴이의 말


4. 내용[편집]




[6]

대체로 히틀러 자신의 자서전적이면서도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담았다. 자서전적인 내용은 사실 과장과 구라가 많지만, 이런 것을 교차검증하여 골라낸다면 히틀러의 정계 입문 전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료이다. 히틀러는 이 책에서 대충 이런 주장들을 내세운다.

  • 의회, 사회민주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답이 없는 쓰레기이며 마르크스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의회 모두 유대인에게 봉사하고 있다. 따라서 히틀러 자신[7]은 의회가 권력을 갖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 유대인공산주의는 나쁘다. 유대인은 독일이 겪어온 모든 시련의 원흉이며 평화시에도 독일을 무너뜨리러 암약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대인이 독일을 정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유대-볼셰비즘[8][9]이 없어져야만 독일이 안전할 수 있다.
  • 독일은 재무장을 신속히 하고 대영제국[10]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동유럽의 나라들과 함께 전쟁을 벌이고, 마지막으로는 유대-볼셰비즘의 수괴 소련을 공격해 독일 게르만 민족이 영구히 살아갈 권역을 확보해야 한다.
  • 역사의 진보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계급투쟁이 아닌 인종투쟁이다.
  • 인류의 모든 창의적이고 훌륭한 예술과 기술의 발전은 아리아인이 이루었다. 아리아인이야말로 인류의 표본이라 할 수 있으며, 이렇게 위대한 아리아인은 모든 민족 위에 군림해야 한다. 아리아인이 없어지면 세계는 망한다.
  • 요즘 독일 문화는 쇠퇴해 가고 점점 저속하고 천박한 수준으로 바뀐다. 이런 퇴폐 문화를 없애고 순수한 문화를 유지해야 우리 민족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11]
  • 모든 예술의 으뜸은 건축과 음악이다. 유대인들은 두 분야에 공헌한 바가 전혀 없다.
  • 연극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있는 것을 모방하는 예술이므로 유대인들이나 하는 저급 예술이다.
  • 도시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물이나 건축물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크고 아름다운 공공시설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의 돈을 위해 지어지는 공장이나 유대인 소유의 백화점을 제외하면 국가가 공공시설물에 큰 돈을 쓰지 않으려 한다.[12]
  • 창녀는 인류의 수치다. 그러므로 젊은 남녀를 빨리 결혼시켜서 매춘을 막아야 한다.[13]
  • 수백 년 동안만이라도 장애가 있는 자들을 솎아낸다면 건강한 인류만 남을 것이다.[14]
  • 민주주의는 유대인의 음모[15]다. 아리아인 같이 위대한 민족에게 평등 같은 것은 필요없는데 유대인들이 자꾸 민주주의나 평등 같은 쓸데없는 사상을 퍼뜨려 아리아인을 쇠퇴시키려 한다.
  • 조직의 책임자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상급 지도자에 의해 임명되어 책임있는 지도자가 된다. 그리고 나치당 전체의 지도자만이 전 당원이 모인 집회에서 선출[16]된다.
  • 20세 이상의 국민들은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군대입대해야 한다. 그렇게 민족에의 자긍심을 깨우치고 교육현장이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스스로가 어떤 민족인지를 깨우치게 하려면 우선 군대에 가야 한다.
  • 담배는 인류에게 해롭기 그지 없는 독물이다.[17][18]
  • 민주주의는 다수결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의 소재를 흐리게 하며, 또한 바보 100명에게서 천재 1명이 나올리는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폐지시켜야만 한다.[19]
  • 외교의 목표는 국가의 실질적인 생존이어야지, 절대로 영웅적인 몰락이어서는 안 된다. 이 목표에 이르는 모든 길은 선한 것인데 반해, 그 실패는 범죄적인 직무유기로 봐야 한다.
  • 국가의 권위는 절대 스스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폭정이라도 스스로를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한다. 만약 국가의 권력수단이 민중을 폐허로 이끈다면, 저항은 모든 개개인 시민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다.[20][21]
위 인용문은 독재를 한, 미래의 자기 자신을 디스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직속 건축가알베르트 슈페어로 하여금 히틀러를 암살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는 명문이다. 슈페어가 (이 인용문을 접하기 이전에) "나의 투쟁"을 읽어 보려 했을 때, 정작 저자인 히틀러는 "그거 절대 읽지마. 부끄러워." 라며 그를 말렸었다고 한다.


4.1. 번역문 일부[편집]


아래의 내용은 제1부 '민족과 인종' 문단 가장 첫 부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게르만우월주의, 백인우월주의우생학적인 요소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과학적으로도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기에 읽을 시에는 반드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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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너무 흔히 굴러다니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거나 적어도 인식하지 못하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세상 사람들은 가끔 이렇듯 명백한 이치를 지나쳐 버리고는,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여 일깨워 주면 크게 놀란다.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 중 가장 두드러진 원칙의 하나, 즉 이 지상의 모든 생물의 종자가 내면적으로 격리되어 있다는 원칙을 간과하고 있다.

동물은 어느 것이나 동류끼리만 짝을 이루어 산다. 참새는 참새와, 수컷의 황새는 암컷의 황새와, 들쥐는 들쥐와, 생쥐는 생쥐와, 수늑대는 암늑대와 한 쌍이 된다. 이 현상은 특별한 경우에는 변경될 수도 있는데, 붙들려서 강제당하는 경우나 같은 종의 내부에서의 결합이 불가능한 경우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자연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서 그에 저항하기 시작하는데, 가장 명백한 자연의 항의는 잡종에 대해서 그 뒤의 생식 능력을 거부하거나 혹은 그 뒤의 수태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자연은 질병이나 적의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빼앗아 버리며, 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양쪽이 아주 똑같지는 않은 두 생물이 교배하면 언제나 양자의 중간 정도의 것이 탄생하며, 그 혼합종은 열등한 쪽 어버이보다는 우수하나 우수한 쪽 어버이보다는 열등하다. 따라서 이런 결합으로 인해 그것은 머지않아 보다 우수한 쪽에서의 투쟁에서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합은 생명 그 자체를 보다 고도의 것으로 진화시켜 가려고 하는 자연의 의지에 반한다. 이 의지가 실행되기 위한 전제는 보다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의 결합 속에서가 아닌 전자의 철저한 승리 속에 있다. 보다 강한 것은 지배해야 하며, 더 약한 것과 결합함으로써 우수함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선천적으로 약한 것만이 이런 것을 잔인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이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모든 유기적 생물에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진화가 전혀 불가능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타당한 종족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본능의 결과는 개개의 종족을 외부로부터 날카롭게 구분할 뿐만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의 그 종족의 동일한 본질성을 보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우는 변함없이 여우이며 거위는 거위일 뿐이다. 따라서 거위에 대해 예컨대 어떤 인도적인 경향을 가진 여우 따위는 결코 찾을 수는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쥐에 대해 애정을 가진 고양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여기서도 또한 상호투쟁은 내적 혐오에 의하기보다는 오히려 굶주림과 성애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은 조용히, 아니 만족스럽게 방관하고 있다. 매일의 빵을 위한 투쟁은 모든 약한 자와 병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자를 패배자로 만들지만, 한편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의 투쟁은 가장 강하고 튼튼한 것에게만 생식할 권리나 그 가능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투쟁은 변함없이 종의 건전함과 저항력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며, 따라서 그 종의 진화 원인이다.

만일 이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진화와 향상은 모두 중단되고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아무튼 열등한 것은 수적으로는 가장 우수한 것들을 항상 압도하므로 같은 생명보존과 번식의 가능성이 있다면, 보다 열등한 것은 빨리 증가하여 가장 우수한 것은 불가피하게 밀려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보다 약한 부분을 매우 엄격한 생활조건에 복종시켜서 수적인 제한을 가하는데, 더구나 나머지에도 마구잡이 증가를 허용하지 않고 새롭고 무정한, 힘과 건전함이 바탕이 된 도태에 당면하도록 한다. 자연은 약한 개체와 강한 개체와의 결합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열등한 민족과 우수한 민족의 결합 또한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결합으로 인해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은 이와 같은 것에 대해 무수한 예를 보여준다. 그것은 놀랄 정도로 명석한 아리아 인종이 보다 열등한 민족과 혼혈한 결과 문명의 주도권자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참으로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주민의 대부분이 열등한 유색 인종과는 거의 섞이지 않는 게르만적 요소로 구성된 북아메리카의 경우, 수차례 광범위하게 원주민과 혼혈한 라틴계 이주민으로 구성된 중앙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와 비교해서 훨씬 우수한 인간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하나의 예만으로도 인종 혼혈의 영향을 극히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다. 인종적으로 순수하고 혼혈된 적이 없는 아메리카 대륙의 게르만인은, 그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 다른 피가 섞이지 않는 한 그들은 지배자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4.1.1. 아리아 인종에 대한 찬사[편집]


해당 문단은 아리아 인종에 대한 찬사로 가득차있다. 쓸데없는 내용이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아리아 인종이 곧 모든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원 민족이며 나머지 민족들은 모두 그 열화된 모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대표적으로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의 예를 든다. 일본이 겉으로는 근대화에 성공한 것 같아보여도 근본이 열등한 황인종이기 때문에 아리아 인종처럼 창조적인 선구 민족이 될 수는 없다고 깎아내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읽을 시에는 반드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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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지상에서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과학, 예술, 기술, 발명 등은 다만 소수의 민족, 아마도 원래는 한 인종의 독창적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모든 문화의 존속도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만일 그들이 멸망한다면 그들과 함개 이 지상의 아름다운 것들도 무덤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지가 인간에게 아무리 큰 영향을 미칠지라도 그로 인한 결과는 항상 각각 문제가 되는 인종에 의해서 달라질 것이다. 어떤 생활환경의 생산성 부족은 어느 인종으로 하여금 최고의 능률을 올리도록 몰아칠지 모르지만, 다른 인종의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빈곤이나 결정적인 영양부족의 원인이 될 뿐이다. 민족의 내적 소질은, 외적 영향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든 항상 그 양식을 결정한다. 어떤 민족에게는 기아를 초래하는 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강인한 노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과거의 위대한 문화는 모두 원래 창조적이었던 인종의 피가 불순해짐으로 인해서 사멸한 것이다. 이런 멸망의 궁극적 원인은, 모든 문화는 항상 인간에게 의존하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창조한 인간이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잊어버린 데 있다. 그러나 이 보존은 보다 우수한 것, 보다 강한 것이 승리한다는 필연성 및 권리에 대한 철칙과 연관되어 있다.

살기를 원하는 자는 마땅히 싸워야만 한다.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 그러나 자연의 정복을 확신하며 종국에는 자연을 조소하는 인간이 짊어져야만 할 운명이 몹시 가혹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곤궁, 불행, 질병이 그런 경우에 대한 자연의 대답이다. 인종에 대한 법칙을 오해하고 경멸하는 인간은, 그를 위해 예정된 행복을 현실적으로 잃어버린다.

어떤 인종 혹은 여러 인종들이 인간 문화의 최초의 담당자였는가. 따라서 우리가 인간성이라는 말 안에 포괄하고 있는 것의 실제 창시자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오늘날 이 문제 제기는 보다 간단하며, 대답 역시 쉽고 또 명백하기도 하다. 우리가 오늘날 인류 문화에 대해, 즉 예술 과학 및 기술의 성과로 보는 것은 모두 한결같이 아리아 인종의 창조적 소산이다.

아리아 인종은 지적 능력보다는 오히려 자기 능력의 일부를 사회를 위해 기꺼이 바치는 점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지적인 능력이 아리아 인종의 창조적 능력의 바탕은 아니지만, 이런 지적 재능을 가진 데 그칠 뿐이라면 아리아 인종은 단순한 파괴자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하기 위해서는 다수자에 대해 자기의 의견이나 이익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그 양자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리아 인종이 세계에서 그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원인은, 다른 민족의 이기적 관념에 대립하여 이상주의적 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안되어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그 기초는 우리의 경우처럼 헬레니즘과 게르만의 기술인 그러한 문화를 그들 고유의 것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다만 외면적인 형식만이 아리아적 존재 양식의 특징을 구비할 것이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신들의 문화는 유럽의 기술을 첨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럽의 과학과 기술이 일본의 특성에 의해 장식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제 생활의 기초는 설령 일본 문화가 생활의 색채를 한정하고 있더라도 더 이상 일본적인 문화는 아니며, 그것은 유럽이나 미국의, 즉 아리아 민족의 강력한 과학, 기술적 노작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업적을 기초로 해야만 동양도 일반적인 인류의 진보에 발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나날의 빵을 위한 도구를 낳으며, 단지 표면적인 형식만이 서서히 일본인의 존재 양식과 조화된 데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이후 가령 유럽과 미국이 멸망하고 더 이상 모든 아리아인의 영향이 일본에 미치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그래도 얼마 동안은 오늘의 일본의 과학과 기술은 계속 상승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샘의 물은 말라버리고 일본적 특성은 강화되어 갈 것이지만, 현재의 문화는 경직되어 70년 전 아리아 문화의 큰 물결에 의해 깨어난 잠 속으로 다시 빠져들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일본의 발전이 아리아적 원천에 힘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에도 외국의 영향과 정신이 당시 일본 문화의 각성자였다. 그 문화가 후일 화석화하거나 완전히 경직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그 것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직은 원래 창조적인 인종의 본질을 상실하거나, 문화 영역의 최초의 발전에 동인과 소재를 준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나중에 소멸될 경우에만 한 민족에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그 문화를 본질적인 기초 재료로서 받아들여 동화하고 가공해도 그후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차단될 경우 또다시 경직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런 인종은 아마도 '문화 배양적'이라 불릴 수는 있으나, 결코 '문화 창조적'이라고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리아 종족은 이민족을 정복하고 새로운 영역의 특수한 생활환경, 즉 토질이나 풍토 등에 의해서 자극되고 또 인종적으로 열등한 인간을 보조수단으로 자유로이 이용하는 혜택을 받으면서 그들 속에 잠들어 있던 정신적, 창조적인 능력을 발전시킨다. 그들은 이따금 수천 년, 아니 수백 년도 되기 전에 문화를 창조한다. 그런 문화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토질이나 정복된 인간에 조화하면서도 자기이 존재 양식의 내면적 특징을 처음부터 완전히 소유한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정복이 혈통의 순수성 보존이라는, 처음에는 지켜지고 있던 원리를 범하게 된다면 억압되어 있는 민족과 혼혈하기 시작해서 그와 더불어 자기의 존재의 파멸을 보게 될 것이다.

1천 년 이상 세월이 흐른 다음, 억압된 인종에게 정복자의 혈액이 남긴 피부 색깔 속에, 또는 지배자가 본래의 창조자로서 일찍이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경직된 문화 속에 이전의 지배 민족에 의한 최후의 흔적이 자주 나타난다.

인류의 진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단을 먼저 밟지 않으면 상단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아리아 인종은 현실적인 길만 걸어야 했으며, 현대의 평화주의자가 공상하는 길을 걸어서는 안 되었다.

아리아 인종이 보다 열등한 민족과 만남으로써 그들을 정복하고, 자기의 의지에 복종하도록 한 장소에 최초의 문화가 생긴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럴 경우 그들 민족은 생성하고 있던 문화에 봉사하는 최초의 기술적인 도구였다. 그리하여 아리아 인종이 나아갈 길이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그들은 정복자로서 열등한 인간을 거느리고, 그와 같은 인간의 실제적인 활동을 자기들의 명령 아래 두고 그 의욕에 따라 자기들의 목표를 위해 규제한 것이다.



4.1.2. 유대인들에 대한 혐오[편집]


위의 문단에서 아리아인을 찬양했다면 이 문단은 반대로 유대인들에 대한 지독한 혐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유대 인종은 스스로 문화를 가지지도 못했고, 단결심이나 희생 정신이 없고 이기적인 민족으로 일반화하며 깎아내린다. 논리적 근거나 타당한 이유가 없이, 오직 증오와 혐오에 기반한, 유대인들을 멸시하며 선동하는 내용이다.[22] 마찬가지로 읽을 시에는 반드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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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인종과 가장 대조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유대인이다. 세계의 어느 민족도 이른바 '선택된' 민족 이상으로 자기보존 충동이 강하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서는 이 인종이 현존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한 증거가 된다. 과거 2천 년 동안에 내면적 소실이나 성격 등에서 유대 민족만큼 적은 변화를 보인 민족은 없을 것이다. 어느 민족이 이보다 더 큰 파란을 체험하고, 또 어느 민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동일 민족으로서의 인류의 놀랄 만한 파국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굳건히 일어설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사실은 그들에게 존재하는 생명과 종의 보존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증명한다.

유대인의 지적 능력은 몇천 년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유대인은 오늘날 '현명함'의 전형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지성은 스스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라 다른 민족을 모범으로 한 실물 교수(實物敎授)의 결과이다.

인간의 정신도 단계를 거쳐야만 진보될 수 있다. 모든 사고작용은 근소한 부분만인 인간의 인식에 기인하며, 그 대부분은 과거의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문화 수준은, 대체로 깨닫지는 못하지만, 개개인에게 예비지식을 풍부하게 공급한다. 이와 같이 준비를 갖추었으므로 그는 매우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유대인은 아예 자신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않았기 때문에 그 지적 작업의 기초를 언제나 다른 민족으로부터 얻었다. 그들의 지성은 모든 시대를 통해 그 주변 문화권에 의거해서 발달했다. 결코 그 반대의 과정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대 민족의 자기 보존 충동이 다른 민족에 비해 뛰어나게 강했다고 해도, 또 그들의 정신적인 능력이 종종 다른 인종의 지적 재능에 맞먹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해도 역시 문화민족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전제, 즉 이상주의적 태도는 전혀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대 민족의 희생정신은 개인의 노출된 자기보존 충동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얼핏 강해 보이는 동족 감정은 이 세계의 다른 많은 생물처럼 대단히 원시적인 군거 본능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군거 충동은 언제나 공통의 위험에 의해 그것이 목적에 합당하든가 혹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 한해서만 상호부조에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순간 목표물을 공동으로 습격하는 이리 떼는 주린 배를 채운 뒤에는 다시 제각기 흩어져 버린다. 말도 마찬가지다. 습격자에 대해서는 단결해서 방어하지만, 위험을 극복하고나면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이와 같이 유대인은 공통의 위험이 닥치거나 공통의 먹이가 유혹할 때에는 일치단결하고, 이 두 가지 이유가 없어져 버리면 심한 에고이즘 본성을 나타내며, 단결한 민족에서 손바닥을 뒤집듯이 상호간에 처절한 투쟁을 하는 쥐의 무리로 변한다.

이 세상에 유대인만 존재한다면, 그들은 진흙탕이나 오물에 질식할 지경이 되면서도 증오에 가득 찬 투쟁 속에서 서로 속이고 뿌리째 뽑아 버리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유대인의 투쟁 과정, 혹은 그들이 이웃에게서 강탈하는 경우에 보이는 단결심을 보고 그들에게 어떤 종류의 전형적인 희생이 존재한다고 추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다. 그런 경우에도 유대인을 이끄는 것은 역시 개개의 노골적인 에고이즘이다.



5. 평가[편집]


이 책을 연구한 문헌학자들의 비평에 따르면, 문법적으로 비문이 넘치고, 앞뒤가 안 맞는 내용도 많아서 루돌프 헤스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수없이 뜯어고쳤는데도 저 모양이다. 심지어는 베니토 무솔리니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으며 뻔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했다.[23] 근거없는 특정 현상이나 유대인에 대한 규정은 책을 읽을때 혼란과 침묵을 야기하기도 하면서 내용의 앞뒤 주장이 모순된다는 생각도 자주 들어 히틀러의 주장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또한 단문으로 작성해도 되는 글 하나 하나를 미사여구로 채우고 별것도 아닌 걸 노골적인 정당화 수단에 사용하려고 속은 비어있는 장식물을 길게 늘여놨기 때문에 평소 책읽기에 취미가 없으면 이해하기에 꽤 난해하다.

심지어 히틀러 본인조차 집권 중반기부터는 나의 투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 특히 레벤스라움(게르만 생활권역)의 확대나 영국과의 동맹[24] 등 일개 당수로서 자유롭게 꺼낸 말들이 독일 총리로 취임한 뒤에는 구설수에 올라 그를 당혹스럽게 했던 점이 컸다. 그는 집권한 뒤 "내가 총리를 맡을 줄 알았다면 그런 책은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도 했으며,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쟁 전에 히틀러에게 아직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자, "그거 절대 읽지 말게. 지금 보면, 아니 내가 지금봐도 내용들이 횡설수설하고 무지 부끄러워"라면서 강력하게 만류했을 정도였다.[25] 히틀러는 뒷날 두번째 책을 쓰려고 생각했고 프란츠 에어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도 400만 마르크나 받았으며, 1928년에 실제로 나의 투쟁 2부도 만들어 놨지만 결국 출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먼젓번 책이 당 정책과 배치되는 내용과 체계 없는 문장으로 중간중간 나오는 논리 붕괴 때문에 비웃음을 샀는데, 2번째 책까지 나온다면 정적들이 공격할 보물단지가 될 까봐 주저한 것이 원인이다. 일설에는 세번째 책까지 계획하고 구술까지 끝낸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도 히틀러 개인을 연구하거나, 당시의 나치즘과 국제정치 및 독일의 정치실태를 연구하는 등 연구 자료로는 필수적인 1차 사료이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대학 국제정치학 및 전쟁 관련 강좌에서는 나의 투쟁을 주요 텍스트 가운데 하나로 삼기도 한다. 특히 유대인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부분과 히틀러가 독일 영토 확장의 최대 명분으로 삼았던 게르만 생활권역(Lebensraum)의 확대 주장이 나오는 부분 등 히틀러는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나 차원으로 연구하는 것만은 가치가 높다. 이걸 빼면 히틀러가 직접 개입한 문헌 가운데 그의 정치적 사상을 들여다볼 만한 자료가 거의 없고, 그래서 독일에서도 이 책을 출판하는 것 자체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26] 다만 히틀러의 개인사 역시 '자화자찬'이나 '과장', '왜곡'이 많아서, 이 책에서 히틀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고 다른 연구가들의 비판적인 연구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실제로 유럽 밖에서 출간되는 나의 투쟁도 비판 주석을 달거나 달지 않아도 최소한 이런 책이니 주의하라는 경고 정도는 해둔다.


6. 출판 상황[편집]


저작권을 보유한 바이에른 주정부[27]에서는 이 책의 출판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이전까지는 그저 히틀러의 광기를 비판하고, 학술적인 측면으로만 사용되는 한에서 출판이 가능하다는 여지를 주었고 독일 내에서 학술적 목적으로 출판된 책에는 보통 히틀러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오류에 대한 부가 설명이 붙어 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출판한 나의 투쟁도 거의 비슷하다.

2015년 12월 31일 이후부터는 히틀러가 죽은 지 70년이 넘어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풀렸다. 2014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부는 2016년 이후에도 출판을 통제하기 위해 주석 없이 원문 그대로 출판하면 나치 선전죄로 처벌하겠다고 선포했지만 다른 나라에서까지 자유롭게 번역하거나 배포하는 것은 전적으로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전세계인 누구든지 나의 투쟁을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되었고, 독일에서는 히틀러의 사상을 비판하는 주석을 달면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한 연구기관에서는 나의 투쟁에 대한 비판을 달아 새로운 나의 투쟁을 출판했고[28] 책이 인기리에 팔렸다고 한다. 기사. 네오 나치들도 많이 사 갔지만 나치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기보다는 유럽 난민 사태유로마이단 혁명, 브렉시트 이래로 극우세력이 대두하는 등 등 혼란스러운 범유럽 정치 상황 속에서 히틀러가 뭐하는 인간이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샀던 모양. 사실 이 책만큼 히틀러를 알기 쉬운 책도 없다. 근데 하필 2016년 유럽 난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유럽이 들썩였던 상황이라... 2017년에도 독일에서 논픽션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독일 내 유대인 단체들 반응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 신봉이 다시 늘어난다고 우려하는 반응도 있고 저 책을 보면 히틀러가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대한민국에도 범우사가 상, 하 2권으로 나눈 번역본을 오래 전부터 내놓았다.[29] 이 책자도 마찬가지로 번역자가 이 책을 냄은 히틀러를 신성시하는 게 아니라, 이 책을 거쳐서 그가 얼마나 맛탱이가 갔는지, 그리고 독재자의 심리분석에 기여하는 뜻으로 번역했다고 쓴 바 있다. 이걸 700쪽이 넘는 고급 통합판으로 낸 적도 있었는데, 당시 가격도 7,000원으로 팔았다. 당시는 보통 유명 신간이 3,000원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2014년동서문화사에서 1154쪽 분량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1부와 2부를 통합했고 히틀러에 대한 평가(제바스티안 하프너 저), 나의 투쟁의 대한 논설(앙투안느 비트키느 저),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이야기(역자 황성모 저), 정치적 유언, 연보까지 추가하였다. 범우사의 나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를 신성시하는 게 아닌 정신나간 정치 계획일지라도 과소평가하지 말고 신중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30], 민주주의에 야만적인 사상이 편승할 수 있다는 것, 인종차별이 낳을 결과를 경고한다는 것, 읽고 교훈을 얻는 게 금서로 묶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점에서 번역했다고 기술했다. 가격은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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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으로 만화화시켰는데, 바이에른 주정부가 '나의 투쟁을 설명하기엔 부적합한 매체'라고 클레임을 걸어서 판매 중단했다. 상기했듯 2016년부터는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으므로 다시 출간이 가능하다. 만화로 독파하는 시리즈는 한국에도 신원문화사가 정발했다.

러시아에서는 2010년부터 금서로 지정했다. 이쪽은 네오 나치에 골머리를 썩고 있으니...

프랑스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에게 침공당한 아픈 기억이 있어서 불구대천의 원수 히틀러의 저서를 금서로 지정하였으며 그리스, 네덜란드, 벨기에, 세르비아, 폴란드 등에서도 금서로 지정하였다. 모두 나치와 히틀러에 의해 침공의 희생양이 된 나라들이었다.

저작권이 만료되었음에도 독일어 위키문헌에는 나의투쟁이 없고, 생성 불가능하도록 보호되어 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여기에 나의 투쟁의 영문 번역본이 올라와 있다. 이 영문번역본은 1939년 3월 20일에 출판된 아일랜드의 번역가 제임스 빈센트 머피(James Vincent Murphy, 1880~1946)의 번역본이다.


7. 기타[편집]



Fils: Voilà, tous les cadeaux, voilà. C'est Noël, c'est comme ça. Qu'est-ce que c'est ça? Non mais c'est Minecraft qu'il voulait!

Son: Look at all the gifts, it's christmas. What the hell is that? He asked for Minecraft dad!

아들: 이 선물들 좀 보세요. 크리스마스입니다. (황급히 책을 뺏으며) 이게 뭐야? (아들이) 마인크래프트 달라고 했잖아요 아버지!

Papa: Mais il m'a dit Mein Kampf.

Dad: He told me Mein Kampf.

아버지: (손자가) 마인 캄프(나의 투쟁)라고 했어.

Fils: Mais non, papa. C'est Minecraft. Mais où t'as trouvé ça, c'est pas possible. Non c'est pas pareil, c'est un jeu vidéo, 'Minecraft', pour les gamins. C'est pas possible...

Son: No Dad! he said Minecraft. Where the fuck did you find this? It's not the same, dad. Minecraft is a video game! For Fuck sake...[31]

아들: 아니에요, 아버지! 마인크래프트였어요! 세상에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전혀 다른 거예요, 아버지. 마인크래프트는 애들 비디오 게임인데! 환장하겠네...

2019년 프랑스의 한 가정에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의 투쟁 책을 준비하자, 이를 영상으로 찍고 있던 그의 아들(=아이의 아버지)이 깜짝 놀라 책을 뺏고선 "'마인 캄프'가 아니라 '마인크래프트'라고 했잖아요 아버지!"라고 일갈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프랑스어로 Minecraft가 독일어인 Mein Kampf[32]와 비슷하게 들리는 데다[33], 고의가 아니라 정말 몰라서 벌어진 실수로 보였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튜브 등지에선 웃긴 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이 영상은 코미디언인 얀 스톨츠가 의도적으로 연기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가 프랑스어로 마인 캄프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을 자신의 대자에게 마인크래프트를 선물해 주고 나서 웃기다고 생각해서 이걸 찍었는데, 연기한 영상이라고 나오는 엔딩 크레딧 없이 퍼지는 바람에 사람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저 나의 투쟁 책 역시 쥘 베른의 책에다가 커버만 인쇄해서 붙여 놓은 것이다.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아프리카의 폴 포트'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한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는 나의 투쟁의 보존 상태가 좋은 사본을 보유하며 이를 5번이나 정독하고 암송까지 했던 데다가 그걸 넘어 1967년마드리드에서 열린 적도 기니의 독립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의 총회에서는 "나는 히틀러를 아프리카의 구세주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했지만 그의 목적은 전 세계의 식민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총회에서 대놓고 남기기도 했다[34]. 그리고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나의 투쟁을 즐겨보고 간부들에게도 추천도서로 권장하였다고 하며,[35] 최소 138명의 무고한 소년들을 강간하고 살해하여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루이스 가라비토도 이 책에 감명을 받아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아돌프 히틀러가 제1차 세계 대전때 동부전선에서 가스에 끔살되고, 유품 중 전쟁 당시 쓴 일기를 발견해 집으로 보냈던 편지와 함께 엮어 출판하고[36] 레니 리펜슈탈이 '우리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한다.

라이어 게임에서 요코야 노리히코가 나의 투쟁을 읽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의 부제가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37]이라 당혹하는 사람도 있다.

<에이스 가이>라는 코미디 영화에서는 인간 사냥꾼의 서재에서 주인공이 이 책을 발견하였다.

쇼크 트루퍼스 세컨드 스쿼드에 등장하는 악역 나카토미의 애독서이기도 하다.

아토믹 하트에서 주인공이 독일인에게 이와 관련된 농담을 한다.

래퍼 뉴챔프가 이 책을 모티브로 제작한 "나의 투쟁"이란 곡도 있다.

2016년 10월 9일에 영국 애버딘대의 역사학자인 토머스 웨버가 나의 투쟁 이전 첫 자서전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히틀러의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독어 원문의 프락투어체로 된 문서가 존재하며 루르 지방의 희생이니(프랑스와 벨기에에 의한) 오버슐레지엔 지방의 구원이니 히틀러의 독일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들이 꽤 담겨있는 편이다. 위 기사에서 말했듯 코에르베르라는 인물이 저자로서 올라 있다. #

일본에선 학교 재량에 따라 수업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기 위함이고 만약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식으로 쓴다면 처벌한다고 하였다.#[38]

여성학회 학술지에 용어만 바꾸어 등재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페미니즘 학회 나의 투쟁 등재 사건 문서 참고.#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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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틀러가 구술한 내용을 루돌프 헤스가 받아적었다.[2] 히틀러의 편지나 연설문들에는 비문이 많다. 학교 성적을 봐도 문법 수준은 엉망진창이었고 그 때문에 대필을 선호했다.[3] 나치의 어용 출판사로 알려저 있지만, 나치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히틀러의 개인 소유 출판사로 부정축재에도 동원되었다.[4] 출판사 경영부터 시작, 히틀러의 개인 축재와 자산 관리를 전담하여 큰 신임을 얻었다.[5] 헤르만 괴링 등 워낙 크게 해먹은 인간들이 많아서 안 드러나지만 히틀러도 부정축재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자세한 내용은 <히틀러와 돈(볼프. C. 슈바르츠벨러 저)> 참고.[6] 해당 영상은 나의 투쟁의 핵심만 추려서 정리한 영상으로 나의 투쟁을 읽기 전이나 간단하게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나 책의 전반적이고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 다루진 않다는 점은 유의하여야 한다.[7] 히틀러는 수상이 된 후 힌덴부르크에게 국회를 해산할 것을 요청했다.[8]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카를 마르크스부터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까지 공산주의자 중엔 유대인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서 공산주의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유대인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이다.[9] 이 '유대-볼셰비즘'이라는 단어가 나치가 공산주의를 까려고 만든 표현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독일국방군>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미 당대의 극우 성향 군인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어라고 한다. 나치는 이 단어를 빌린 것 뿐이었다. 당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음모론은 현대에도 서양 국가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특히 영화계, 뉴스, 미디어를 휘어잡는 유대인들(= 좌파 빨갱이들)이 다문화 정책과 혼혈가정을 장려해서 백인이라는 인종과 문화를 말살시키려 한다는 이야기와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면 거품을 물 만큼 싫어하는 미국에서 '이스라엘 = 유대인 = 공산주의자'들이 뒤에서 미국 정치인들을 조종해서 미국을 자꾸 비헌법적인 중동전쟁에 개입시키더라는 이야기는 서양 쪽 포럼 안에서는 단골 떡밥.[10] 실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대영제국과 전쟁을 했다.[11] 히틀러는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아내인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합스부르크 왕가의 게르만 문화를 더럽히고 슬라브화하려고 시도했다고 적었다. 조피의 아버지가 보헤미아 출신 귀족이었기 때문.[12] 그래서 나온 것이 나치 건축과 세계수도 게르마니아처럼 하나같이 크고 웅장한 공공시설 건설 계획들이었고 몇몇 건물은 실제로 완성시켰다.[13] 이래놓고 자신은 죽기 직전까지 결혼하지 않았다(...)[14] 결과적으로 의학과 인공지능, 로봇 기술 등이 이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는 데에 백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15]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7180454005567 [16] 히틀러는 조직을 장악하지도 못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를 경멸했다.[17] 그럴 법도 한 게 히틀러는 당대 정치인들, 아니, 당대 사람들 치고는 희한할 정도로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금연 금주는 물론이고 채식을 하는 등 히틀러는 소위 '금욕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치인이라면 으레 들러붙는 성추문조차 단 하나도 없었다. 대신 히틀러는 낮밤이 반쯤 뒤바뀌어 있는 니트스러운 생활습관에 단 음식에 엄청 집착해서 치아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 사실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고기도 안 먹는 사람들 중에는 스트레스를 단 것을 먹으며 푸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18] 히틀러가 살아있던 시기인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에는 담배의 해악성이 알려지긴 했지만 고작해야 중독성에 연관짓는 선에서 그쳤으며(히틀러의 다른 발언에서 나오듯 이미 폐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의 해악성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담배 회사들의 로비나 당시 시대 풍조 때문에 곧잘 무시되는 편이었다. 나치 독일은 당대 어느 국가보다도 적극적인 금연 정책을 펼쳤지만 히틀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당원들은 흡연자였기 때문에 담배 자체를 금지시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19] 흥미롭게도 본인의 집권과정을 감안하면 본인이 말한 '바보 100명에게서 천재 1명이 나올리는 없다'는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셈이 되었다. 이유야 본인이 바보이기 때문.[20] 자유와 관련해서 미국 우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미국 우파들이 다 네오 나치인 것은 아니다. 총기소유를 국민의 권리로 인정한 미국의 수정헌법 2조도 이러한 시민과 국가의 갈등상황에서 시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히틀러가 한 말이라서 그렇지 어쨌든 말 자체는 분명히 맞는 말이라서 자주 인용되는 것. 실제로 이 말을 한 사람이 세운 독재국가는 "스스로를 불가침화하고 신성화하는 폭정"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였다. 히틀러는 이 글을 읽고 저항권을 행사하여 자신을 암살하려 시도한 슈타우펜베르크 이하 다수의 독일 국민들에게 사형연좌제화답했다.[21] 바로 위에 있는 민주주의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을 본인이 그대로 반박한 거나 다름없다.[22] 읽어본다면 그야말로 이뭐병 소리가 절로 나오는 논리적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우연찮은, 끼워 맞추기다.[23]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달리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으며 잠시나마 교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정계 입문 전에는 신문사 주필로 있었고 독서량도 많았기 때문에 문장력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의 투쟁 출판 3년 뒤에 무솔리니도 《나의 자서전》을 썼는데 무솔리니의 자서전은 자신의 유년시절로 시작하여 일생을 순서대로 자신의 주장의 발달 계기를 엮었기 때문에 나의 투쟁과 달리 일괄되고 비교적 내용의 전개가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다.[24] 나치가 세계를 지배한 21세기를 그린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나의 적 앞에서>에서는 나의 투쟁 초판은 금서이다. 다름아니라 작품 속에서 속국인 영국과의 동맹을 주장한 대목 때문. 다만 새로운 총통이 집권한 뒤 금서 목록에서 해제한다.[25] 이 때문에 슈페어는 전범 재판으로 수감될 때까지 나의 투쟁을 읽어보지 못했고, 그것도 안 읽어 봤냐고 한 소련 심문단에게 열받아서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위증으로 몰려 '진술에 진실성이 없다'고 비난받을 뻔했다. 심문 스킬에 제대로 말려든 사례이다.[26] 혹시나 해서 말하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네오 나치가 아니다. 오히려 학술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다.[27] 히틀러가 자손 없이 죽었기 때문에 연합국은 저작권을 바이에른주에 넘겨버렸다.[28] 중간중간 히틀러의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의 주석만 3500개 이상이 포함되어 있어 무의식적이나 약간이나마라도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29] 당시 반공주의를 우선시하는 정부 정책과 사회 기조로 인해 대한민국 내에서 파시즘 연구는 공산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었고 정부도 파시즘, 전체주의 관련 이념 서적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30] 당시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정치사상으로 발생할 결과를 전혀 모른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눈에 띄는 반발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단지 용기와 의지의 힘을 갖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시 용기를 냈던 사람들이 붙잡혀 어떠한 결과를 당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31] 원어를 들어보면 욕을 한 건 아닌데 영어 번역에는 욕이 들어가있다. C'est pas possible은 직역하자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감탄이나 경악의 의미이다. 영어로 치면 "it's impossible"의 뉘앙스.[32] 나의 투쟁은 프랑스를 비롯해 로마자를 사용하는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독일어 원제인 Mein Kampf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고유명사인 셈. 물론 로마자를 쓰지 않는 국가는 해당하지 않지만, 이런 경우에도 대부분 부제로 원제를 그대로 적어둔다.[33] 실제로 Minecraft는 프랑스어, 독일어 등에서는 "마인 카핲트" 비슷하게 발음한다.[34] 여담으로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응게마는 개인적으로도 마약 중독자에 문자 그대로의 사이코패스였던 데다가 온갖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는 나치즘은 그런 제정신 아닌 사람이나 추종하는 사상이란 것을 제대로 입증하는 셈.[35] 하지만 북한의 수령들이 히틀러를 존경했다는 말은 증명할 수 없는 썰에 불과하며 대개 북한에 나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작업의 일환이다. 강명도가 김정일이 히틀러를 존경했으며 아예 나의 투쟁을 베개처럼 베고 잔다고 했는데, 성혜랑은 황당한 소리라고 반박하면서도 다만 김정일의 서재에 나의 투쟁이 있긴 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김정일이 나치 시대의 특무인 칼텐브룬너를 언급하면서 모두가 그처럼 유능해져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는데 나치 낙인 + 실제로 김정일이 일부 유능한 나치 인물들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 혼합되어서 나온 썰로 보인다. 공식적으로 북한에서 히틀러는 당연히 천하의 개쌍놈으로 얘기하며 매우 비판적으로 본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대백과사전을 보면 단순히 그의 악행을 소개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정적인 소인배로 개인적인 부분까지 공격하고 있다.[36] 불쏘시개인 현실의 나의 투쟁과 다르게 참혹했던 세계대전을 일선 병사의 시각으로 있는 그대로 적어내려간 설정인지 독일 제국에서 주목받는다고 한다.[37] 독일어로 번역하면 "Mein Kampf für die Demokratie"[38] 사실 일본은 과거 나치 독일과 추축국으로서 우방국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는 나치에 대한 반감이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소리지 여기도 쓰였듯 공식적으로는 네오나치 행위를 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