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인치 네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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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인치 네일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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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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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Robin Finck, Chris Vrenna, Danny Lohner, Alessandro Cortini, Ilan Rubin[1]
입성 연도
2020년
후보자격 연도
2015년
후보선정 연도
2015년, 2016년, 2020년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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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rent-Reznor-and-Atticus-Ross-Talk-Double-Oscar-Nomination-Surreal-and-Humbling.png}}}
트렌트 레즈너 (좌) & 애티커스 로스 (우)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결성
1988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데뷔
싱글 'Down in It' (1989년 9월 15일)
앨범 'Pretty Hate Machine' (1989년 10월 20일)
멤버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1]
장르
인더스트리얼, 인더스트리얼 메탈, 앰비언트
레이블
The Null Corporation[2]
Columbia Records
Capital Records
전 레이블
TVT Records
Nothing Records[3]
Interscope Records
링크
파일:1200px-Nine_Inch_Nails_logo.svg.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스포티파이 아이콘.svg 파일:VEVO 로고.svg

1. 개요
2. 상세
3. 멤버
4. 역사
5. 이름의 유래
7. 영향력
8. 수상 경력
9. 게임 음악
10. 여담
11.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326193-nine-inch-nails-en-concert-a-lolympia-de-paris-en-juin-2018.jpg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88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트렌트 레즈너에 의해 결성된 인더스트리얼 록밴드이다. 또한 명실상부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상징하는 밴드이자 앰비언트 스타일의 영화음악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있는 전설적인 록 밴드이다.


2. 상세[편집]


1970년대 중반, 전통적인 대중 음악의 패턴을 타파하고자 기계들의 각종 소음들을 전자 사운드에 결합시켜 생소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 등이 창시한 인더스트리얼은 사운드의 거부감때문에 대중화가 되진 못하였다. 그러던 80년대 후반, 스튜디오에서 관리 일을 하며 지내던 트렌트 레즈너는 남는 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업물 Pretty Hate Machine으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신스팝의 대중성을 가미시켜 언더그라운드의 실험 취급받던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려 대중화에 성공시켰다. 이후로도 메탈, 앰비언트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크로스오버와 각종 전자 악기들로 여러 음악 장르의 접목을 시도하며, 공연을 위해 NIN과는 다른 전신인 라이브 밴드를 소집한다.

또한, 이 시절 NIN은 공연 도중 악기를 부수는 등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자주 펼치기도 한다.[4] 대표적인 예로 1994년 우드스탁 때의 퍼포먼스가 있다.


파일:우드스탁 트렌트 레즈너.jpg


진흙을 뒤집어 써도 조각 미모(...)
이때의 공연은 진흙 머드팩 퍼포먼스로도 유명한데, 사실은 공연장에 가는 도중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드스탁의 공연은 투어 비용을 건질 만한 많은 돈을 제의받아 응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우드스탁의 상업적인 면모가 싫기도 했던 NIN은 오물을 뒤집어쓴 모습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아 공연했다고 한다.[5] 이 장면을 촬영한 사진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진흙탕 근처에 화장실이 있었다고 한다(...).링크 다행히 멤버들 중 감염병에 걸린 사람은 없었으며 당시 오물투성이 의상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링크 여기서 볼 수 있다.




초기 언더그라운드의 팬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은 NIN은 1990년대 몇 차례에 걸쳐 음반을 내면서 영향력 있는 뮤지션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라디오에서도 많은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NIN의 음반들 중 2장은 그래미를 수상했으며, 총합 2,0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그중 미국에선 약 1,050만 장이 팔렸다. 2004년, 롤링 스톤이 발표한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 중 94위에 올랐다. 그러나 팬들의 환호와는 반대로, NIN은 레코딩 산업 측의 여러 기업과는 많은 불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자체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해 활동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기본 포맷은 밴드 체제이지만, 2016년까지는 사실상 보컬리스트인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 밴드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대부분이 서포트 or 세션 멤버였다. 작곡, 레코딩, 믹싱 대부분을 본인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큰 특징. 드럼을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을 레즈너가 맡고 있으며, 앨범을 낸 후 공연 활동을 할 때마다 세션 멤버를 모집하여 쓴다. 좀 과장하자면 트렌트 레즈너 = NIИ.[6]

2016년, 프로듀서 애티커스 로스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정식 멤버로 영입되었다. 그래도 공연을 할 때마다 세션 멤버를 모집하는 시스템은 여전하다. 둘이서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없으니

3. 멤버[편집]



파일:trent-reznor-NIN.jpg

마이클 트렌트 레즈너 (Michael Trent Reznor)
파트
보컬, 기타, 베이스, 피아노, 색소폰, 신디사이저, 드럼머신
출생
1965년 5월 17일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캐슬
직업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데뷔
1989년 《Pretty Hate Machine


파일:Atticus-ross-NIN.jpg

애티커스 매튜 쿠퍼 로스 (Atticus Matthew Cowper Ross)
파트
베이스, 신디사이저, 드럼머신
출생
1968년 1월 16일 / 영국 런던, 레드브록 그로브
직업
작곡가, 프로듀서, 레코딩 엔지니어
영입
2016년 ~ 현재


3.1. 트렌트 레즈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트렌트 레즈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애티커스 로스[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애티커스 로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역사[편집]


나인 인치 네일스는 첫번째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으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으며, 인더스트리얼의 대부[7]라는 별명을 얻고 미국 록계의 주목을 받는다. 다만, 초창기 시절이이서 그런지 인더스트리얼이라기보다는 디페시 모드 풍의 신스팝에 가깝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음악지들은 이 음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 주목이라는게 상업적 주목이었다는것. 음반사 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은 레즈너를 노예처럼 부려먹었고, 건스 앤 로지스의 오프닝 액트에 집어넣는[8]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러니 하게도 건즈 앤 로지스의 Chinese Democracy를 들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환장한 레즈너는 소송을 제기하고, 길고 지겨운 싸움끝에 인터스코프 사가 그를 업어간다. 이때 나온 명작이 Broken 앨범인데, 이 앨범의 NIN 이니셜이 소문자로 되어있는 것은 레코드 이적이 끝나기 전인 애매한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 또한 이 음반부터 그는 헤비메탈을 대폭 수용했으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Broken 앨범은 뮤직비디오가 잔인하다고 악명이 높으나, 더 브로큰 무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어쨌든 이적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1994년 정신을 가다듬고 두번째 앨범인 NIN 최고의 걸작 《The Downward Spiral》을 발매한 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의 록의 구세주"라는 호평들을 받으며 인기를 얻는다. 이 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 까지 올라갔는데, 본인은 이 앨범이 그렇게까지 팔리고 흥할줄 몰랐다고 한다. 참고로 1위는 사운드가든의 Superunknown. 매스컴과 언론에서의 띄워주기가 상당하기도 했으나 그만큼의 인기도 대단했던 것도 사실은 사실.

전작 Broken의 분위기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면, 이 음반에서는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을 한데 뭉쳐서 굉장히 꽉 짜인 훌륭한 컨셉트 음반을 만들어냈다.

1995년나인 인치 네일스데이비드 보위와 합동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서로의 앨범 활동과 시기가 겹쳤는데, 후술하겠지만, 보위는 레즈너의 우상이었고, 보위 또한 레즈너를 눈여겨 보았기에 성사된 것이다.

《Broken》에서의 분노, 《The Downward Spiral》에서의 절망은 5년후 발매된 앨범 《The Fragile》에서 끔찍한 우울함과 적막함으로 승화되었다. 앨범 작업 당시 그는 굉장한 중압감과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한다.

또한 그전까지의 작업 방식은 트렌트 레즈너가 작곡을 한 후에, 게스트 뮤지션들이 연주를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 당시 그는 마릴린 맨슨이 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처음으로 밴드 멤버들과의 공동작곡을 고려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The Fragile》앨범 작업 중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번에 20가지 정도를 생각해내는데, 다른 멤버들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좀 견디기 힘들다."라는 한마디로 내가 최고니까 너네는 그냥 거들라는 언급을 하면서 다시금, 예전의 작곡방식으로 돌아갔다.링크

The Fragile》앨범은 더블 CD라는 방대한 길이와, 본인이 회상하기에도 이런걸 만든게 믿기지 않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발매 첫 주만에 228,000장을 팔아치웠다. 음반의 평은 CD1쪽의 평가가 좋은 평이고 CD2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많다. 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앨범의 특성상 이 앨범은 빌보드 1위를 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10위 밖으로 밀려나갔다.

한편, 그의 정신적 불안은 영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1990년대 최고의 명반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The Downward Spiral》 발표 후, 어린 시절 그를 길러 주신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졌고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으로 고통을 받았다. 흔히 이 앨범이 마약에 중독된 레즈너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사실 앨범 작업 당시만 해도 레즈너에게 마약 중독은 픽션 속 이야기였는데, 앨범 발표 후 투어를 다니면서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해 술과 마약에 손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보위와 합동 투어를 했던 1995년에 보위에게 들은 조언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1996년 마릴린 맨슨Antichrist Superstar를 녹음하던 시절 코카인에 빠져 살다가 녹음이 끝난 후 "모두가 떠나고 상황이 좋지 않다(with everyone gone and me realising that things were not OK)"는 것을 깨닫고 링크 플로리다 모처의 재활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이후 로스트 하이웨이 음악 작업을 맡은 뒤, 《The Fragile》 앨범 작업에 매진하지만, 1999년에 앨범 작업을 끝낸 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링크

결국, 2000년 《The Fragile》 앨범 투어 당시, 영국에서 펜타닐[9]코카인으로 착각하고 흡입했다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한다.[10]
다만,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다시 코카인을 빨기 시작했다고(...) [11]

이듬해인 2001년이 되어서야 재활원에 들어갔다고 한다.링크 재활원에 들어간 계기는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자신의 베프가 뉴올리언스에서 마약 거래를 하는 갱단의 무차별 총기 난사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자신이 마약에 지불한 돈이 범죄 조직을 먹여 살려 주변 사람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링크[12]

이후 장기간의 치료와 안정을 거치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워서 《The Fragile》 발매 이후 6년 만에 깔끔한 느낌의 《With Teeth》로 돌아온다.
이 앨범은 레즈너가 컨디션을 되찾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앨범이며 상업적으로도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 데에 성공한다. (이는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 중 《The Fragile》과 함께 유이한 성적이다.) 레즈너에 따르면 《With Teeth》 앨범은 전작들을 만들어온 어둡고 자학적인 감정에 의존하지 않은 채 하나의 앨범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만든 앨범이라고 한다. 평론가들의 평은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었지만, 기존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의 사운드가 비교적 대중적이고 밝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렸다. 그렇지만, 당시 라이브 서포트멤버로 조르디 화이트가 베이스로 들어오는 등 인더스트리얼 씬에서는 여전히 화제의 앨범이었고, 공연 티켓은 여전히 잘 팔려나가며 인더스트리얼의대부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이전까지만큼은 아니었지만, NIN의 전성기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애티커스 로스가 합류하게 된 앨범이기도 하며, NIN의 음악적 방향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13]

《With Teeth》를 발매한지 2년 후인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컨셉 앨범 《Year Zero》를 발매한다. 이는 앨범 발매 기간이 꽤 길었던 NIИ에게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앨범의 평가는 꽤 호평이었고, 메타크리틱 평균 점수 76%를 얻었다.

컨셉 앨범 《Year Zero》의 이야기는 2020년의 미국이 배경이다. 2020년은 미국 정부가 미국을 다시 태어난 해로 정의하고 Year 0이라고 선언한 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미국은 무수히 많은 테러를 당해 왔고, 그에 맞서 미국 정부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행한다. 국가 기업인 Cedocore를 조직하여, 국민들이 사용하는 물에 파레핀이라는 약물을 탄다. 이 약물에 노출된 미국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무관심하고 근심 없게 바뀌게 된다. 이 통제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지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Art Is Resistance라고 알려져있다. 이 조직의 과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저항하기 위해 미래의 웹사이트를 2007년으로 시간여행시켜 전송하여 2007년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과거를 바꿔 어두운 미래의 싹부터 없애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ARPG가 앨범 발매 전에 발매되었고 이 게임의 일부로서 사용된, 아직 발매되지 않은 Year Zero의 노래가 담긴 USB가 NIИ의 콘서트 화장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시기는 당시 소속 레이블이었던 인터스코프의 모회사인 유니버설과 불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유니버설이 《Year Zero》 앨범의 해외 판매가를 인상하자, 레즈너는 해외 팬들을 향해 음반을 불법 다운로드하라고 말했다. 링크
결국 레즈너는 유니버설에서 방출된다. 후술하겠지만, 레즈너가 mp3 다운로드를 권장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도를 위함이 아니라, 음반사 폭리에 맞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2008년 3월 6집 앨범 <Ghosts I-IV>를 발표하는데, 이는 4개의 앨범으로 구성된 하나의 앰비언트 장르의 앨범이다. NIN이 보컬을 배제한 음악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전체적인 앨범에 보컬이 없는 것은 이 앨범이 처음이다. 당시에 실험적인 판매 방식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4개의 앨범 중 첫 앨범은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으며, 그 다음 앨범들을 듣기 위해선 추가 금액을 내야 하는 방식으로 공개되었다. 레즈너의 사인이 포함된 LP판과 굿즈들 또한 한정판으로 판매했고, 이러한 온라인 판매 방식은 당시로써 실험적인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화제성과 상업적인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 당시에 신박한 팬서비스 정도로 여겨졌던 이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향후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는 초석이 된다. 실제로 이 앨범의 몇 곡은 '소셜 네트워크'의 OST에 살짝 수정되어 재활용된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릴 나스 엑스가 34번째 트랙을 샘플링해 'Old Town Road'를 만드는데, 이게 초대박이 나는 바람에 앨범 발매 후 11년만에 상업적인 성공을 얼떨결에 다시 한번 거둔다.

2008년 7집 앨범 <The Slip>을 발표한다. 정통 락 사운드로 이루어진 앨범이며, 실험적이었던 전작 <Ghosts>와는 달리 NIN 앨범 중 비교적 듣기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다양한 공연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2009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음악적 매너리즘을 느끼며 잠정적으로 휴식기를 가지기로 한다. 이 시기 그는 아내와 함께 How To Destroy Angels[14]를 결성해 활동했다.

2007년 9월 11일 올림픽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고 2009 ETP FEST를 통해 두번째로 내한했다. 당시 3 헤드라이너 중 한명으로 나머지 2명은 림프 비즈킷서태지. SBS 방송에도 2곡이 방송되었다. 링크

2010년 10월 1일 (미국개봉일, 국내에서는 11월 개봉)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음악감독을 영국의 뮤지션인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맡았다. 2011년 골든글로브상아카데미상 에서 'Best Original Score' 부문을 수상했다.

2013년 2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재개를 선언했다. 이후 Hesitation Marks를 완성하여 발매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호평이 대다수이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헤드라이너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2012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너무 강력했는지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2015년 12월 19일 트렌트 레즈너가 twitter를 통해 2016년에 컴백을 한다고 확정지었다.

2016년 7월 1일, 트위터를 통해 밝혔던 [ New NIN coming in 2016. Other stuff, too. ]의 Other stuff 중 하나는 Nasa와 Apple Music이 협업한 Visions of Harmony 프로젝트 영상의 사운드 트랙이었다. 음악만 듣고 싶다면 여기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9월 10일,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한 기후 변화 다큐멘터리 Before The Flood의 사운드트랙 작업에 관해 알렸다. 포스트 록밴드 모과이와 작곡가 구스타프 산타올랄라도 참여했다.

2016년 10월 2일, 영화 패트리어트 데이의 감독 피터 버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공식 언급했다. 전 사운드트랙을 이 곳에서 들어 볼 수 있다.

2016년 10월 7일, 9월에 알렸던 Before The Flood 사운드트랙을 공개했다. 하지만 THIS IS NOT NEW NINE INCH NAILS라고 못을 박았다...
감상은 이 곳에서

2018년 6월 1일에 공개된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1차 라인업에 등장했다! 2018년 8월 11일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다.

2018년 7월 9번째 정규 앨범 'Bad Witch'가 발매됐다. 8집 'Hesitation Marks'보다 좋은 평을 얻었으며 피치포크에서는 8점을 줬다. 많은 팬들은 2년 연속으로 낸 EP 'Not the Actual Events', 'Add Violence'와 함께 이 삼부작을 NIN 커리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평하는 중이다.

HBO에서 제작되는 왓치맨 TV 시리즈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다.

2020년 3월 26일, 08년 발표했던 Ghosts I-IV의 후속앨범 Ghosts V-VI 앨범을 무료 공개했다. 트렌트 레즈너는 NIN 공식홈피 메인에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국제적 상황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표하는 글과 함께 새 앨범 공개 소식을 알렸다. 공식다운로드 NIN 공식 유튜브에서도 풀버젼으로 듣기 가능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번역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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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섬뜩한 시대입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선 암울한 소식만이 전해지고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크게 동요됨을 느낍니다.
비록 우린 스스로를 독립적인 인간이라 여기며 살아 왔더라도,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은 서로 간의 '접촉'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음악 - 감상하는 자, 사색하는 자, 창작하는 자를 막론하고 음악은 언제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로운 Ghosts 앨범을 완성했습니다.
[Ghosts V: Together]는 모든 것이 이상없이 흘러갈 때를 위함이고, [Ghosts VI: Locusts]는...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이번 앨범을 기분좋게 작업했고, 이를 함께 공유하게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음악은 항상 우리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 주었고, 부디 당신도 같은 생각이기를 바랍니다.
명심하세요. 우린 모두 같은 상황에 놓여있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걸.
조만간 다시 뵙기를 기대하며.
영리하고 안전하게 서로를 돌봐주세요.
사랑을 담아,
Trent & Atticus


그리고 2020년 3월 31일에 근황 영상이 공개되었다. 왓치맨 시리즈 음악에 관한 인터뷰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인터뷰는 화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동안 이발을 못해서인지 트렌트 레즈너가 모처럼 머리가 길어진 모습으로 등장하자, 팬들은 With Teeth 시절 가르마 머리가 돌아왔다고 반가워했다.


2020년 5월 19일뷁만년 만에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올해 가을에 예정되어 있던 투어 머천다이즈들을 미리 만들어놨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투어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붕 뜨게 된 머천다이즈들을 판매하기로 했는데 수익금은 원래 투어 예정지였던 지역의 푸드뱅크에 기부한다고 한다. 링크 그동안은 음악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며 2021년 투어에서 건강하게 만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2년에는 4년만에 북미에서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9월 24일에 현재 투어 멤버들과 과거 투어 멤버들이 클리블랜드에서 모두 모였다. 링크
이 공연은 본래 202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기념으로 계획한 것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2년 후에야 모두 모인 것이다.

이날 함께 모인 멤버들은 현재 정규 멤버인 Atticus Ross를 비롯해, 현 라이브 밴드 멤버인 Alessandro Cortini, Robin Finck, Ilan Rubin, 전 라이브 멤버인 Charlie Clouser, Danny Lohner, Chris Vrenna였다.
그리고 1993년까지 활동했던 투어 멤버인 Filter의 리더 리처드 패트릭도 깜짝 등장했다. 링크 이날 무대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는 Filter의 곡인 Hey Man, Nice Shot을 커버했다.링크

5. 이름의 유래[편집]


밴드 이름인 Nine Inch Nails는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기보다는, 축약하기 쉬워서 이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 핫뮤직 1998년 3월호에 따르면, 밴드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50개 정도의 이름을 정해두고 각각 종이에 써서 집 여기저기에 붙여두었는데, 2주가 지나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이름이어서 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힐 때 쓰인 9인치의 대못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고, 프레디 크루거의 9인치 손톱을 나타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영어로 축약된 NIN은 현대 히브리어로 야훼의 4자음 문자[15]와 유사하다.

두꺼운 테두리 안의 NIИ으로 표현되는 Nine Inch Nails의 로고는 레즈너와 게리 탈파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첫번째 로고는 NIИ의 첫번째 싱글인 Down In It에서 선보였으며, 이것은 토킹 헤즈의 앨범인 Remain in Light에서의 타이버 칼먼의 타이포그래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6.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나인 인치 네일스/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부분의 음반에는 ''Halo''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배포된 프로모션 음반의 경우 ''Seed'' 라는 명칭과 고유 번호가 부여된다.

Nine Inch Nails의 디스코그래피 요약

<< Halo 1 - Halo 32 >>

Halo 1
Down In It (1989)
Single
Halo 2
Pretty Hate Machine (1989)
Studio Album
Halo 3
Head Like A Hole (1990)
Single
Halo 4
Sin (1990)
Single
Halo 5
Broken[16] (1992)
EP
Halo 6
Fixed (1992)
Remix
Halo 7
March Of The Pigs (1994)
Single
Halo 8
The Downward Spiral (1994)
Studio Album
Halo 9
Closer To God (1994)
Single
Halo 10
Further Down The Spiral (1995)
Remix
Halo 11
The Perfect Drug[17] (1997)
Single
Halo 12
Closure[18] (1997)
Live Album
Halo 13
The Day The World Went Away (1999)
Single
Halo 14
The Fragile (1999)
Studio Album
Halo 15
We're In This Together (1999)
Single
Halo 16
Things Falling Apart (2000)
Remix
Halo 17-1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Live (2002)
Live Album
Halo 17-2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Still[19] (2002)
Bonus CD
Halo 18
The Hand That Feeds (2005)
Single
Halo 19
With Teeth (2005)
Studio Album
Halo 20
Only (2005)
Single
Halo 21
Every Day Is Exactly The Same (2006)
Single
Halo 22
Beside You In Time (2006)
Live Album
Halo 23
Survivalism (2007)
Single
Halo 24
Year Zero (2007)
Studio Album
Halo 25
Y34RZ3R0R3M1X3D (2007)
Remix
Halo 26
Ghosts I-IV[20] (2008)
Studio Album
Halo 27
The Slip (2008)
Studio Album
Halo 2R-V
Pretty Hate Machine (2010 Remaster)
Remastered Album
Halo 28
Hesitation Marks (2013)
Studio Album
Halo 29
Not The Actual Events (2016)
EP
Halo 30
The Fragile: Deviations 1[21] (2017)
Compilation Album
Halo 31
Add Violence (2017)
EP
Halo 32
Bad Witch (2018)
Studio Album[22]
Halo 33
Ghosts V: Together (2020)
Studio Album[23]
Halo 34
Ghosts VI: Locusts (2020)
Studio Album[24]


<< Seed 01- Seed 08 >>
Seed 01
Collected (2005)
Seed 02
The Definitive NIN - The Singles (2006)
Seed 03
The Definitive NIN - Deep Cuts (2006)
Seed 04
The Definitive NIN - Quiet Tracks (2006)
Seed 05
Lights In The Sky (2008)
Seed 06
NIN/JA 2009 - Summer Tour EP (2009)
Seed 07
Live 2013 EP (2013)
Seed 08
Remix 2014 EP (2014)


7. 영향력[편집]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메인스트림으로 올려놨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창조자는 아니었지만 이것이 이 밴드가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상징하는 이유다. 1990년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성공은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주요 장르 중 하나로 만들게 됐고 많은 신인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수많은 나인 인치 네일스 아류 밴드가 나왔을 정도였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씨앗은 70년대에 Throbbing Gristle과 같은 아방가르드 밴드들이 뿌렸다. 그러나 전자적 요소와 펑크의 원색적인 공격성을 혼합한 이 장르는 나인 인치 네일스가 대중들에게 소개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사회의 변두리에 머물렀다. 레즈너가 이 시도를 성공시킨 것은 바로 인더스트리얼 록의 틀 안에서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인 곡조를 만들어내는 레즈너의 능력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힘있고 최면적인 소음을 조심스럽게 배열한 것이다.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레즈너의 독특한 재능을 요약했다. "산업과 기계음향 실험의 역사에 있는 것처럼 지어진 트렌트의 음악은 동일한 크기로 끌어당기고 반발하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나이트클럽의 비트에 맞춰. 그리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감질나는 멜로디로 항상 들어 올렸다." 데이비드 보위는 레즈너의 작품을 브라이언 이노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같은 작품에 빗대 음악계의 혁명이라고 표현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KISS, 피터 가브리엘, 핑크 플로이드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밥 에즈린 프로듀서는 레즈너를 "진정한 선각자"라고 표현하며 "녹음부터 투어, 팬들과의 교류까지 모든 수준에서 포용 규칙을 깨고 재창조했다"고 평가했다.#

또 하나는 나인 인치 네일스는 명실상부 199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당시 타임지는 트렌트 레즈너를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타임지는 기사에서 "레즈너는 프랫보이 스웨거가 아니라 브로딩, 자기비하적인 지성으로 인더스트리얼 록의 근력을 발휘한다"며 "이 뮤지션이 'Y세대 하위문화'에 목소리를 높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즈너가 팬들에게 끼친 영향은 앨범 판매량을 훨씬 뛰어넘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뮤직 비디오는 MTV에서 계속 틀어져 당시 신세대들에게 보여졌다. 그들의 어둡고 심지어 가학적인 주제는 그 당시 또한 인기가 많았던 스파이스 걸스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틴 아이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NIN 로고는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의 배낭에 티셔츠, 포스터 아트, 패치에 등장하면서 90년대에 보편화되었고 오늘날에도 대중 문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로고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202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8. 수상 경력[편집]


나인 인치 네일스의 명의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2번의 수상경력이 있다.[25]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트렌트 레즈너 본인이 영화 음악으로 또 한 번 그래미에서 수상을 했다.

여담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영화 음악을 담당해, 2011년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한 소셜 네트워크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골든글로브상에서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 수상을 하였다. 그리고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에 수록된 음악으로 2012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영화 음악 부문인 Best Score Soundtrack for Visual Media에서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수상한다. 다만 이 당시에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정식 멤버가 아니었으므로 나인 인치 네일스의 명의로 수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로스가 정식 멤버가 된 이후에도 영화 음악 활동 시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라는 명의를 쓰지 않고 본명을 쓰고 있다.

2019년에 팔자에도 없었던 컨트리 뮤직 시상식에서 졸지에 수상을 했다. 링크 그해의 공전의 히트곡인 릴 나스 엑스Old Town Road 도입부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인 '34 Ghosts IV'가 샘플링되어 공동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해당 곡의 장르가 컨트리 뮤직으로 분류되다 보니 Country Music Association Award(컨트리 음악 협회상)의 올해의 음악 이벤트상 부문을 수상했다. 이로써 노래를 부른 릴 나스 엑스와 피처링을 한 빌리 레이 사이러스는 물론 작업물에 참여한 나인 인치 네일스도 동시에 수상을 하게 되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트렌트 레즈너는 자기 사진에 포토샵으로 카우보이 모자를 합성해 올렸다고 한다. 현 멤버인 애티커스 로스도 컨트리 뮤지션스러운 모습으로 합성을 당했다. 링크

2015년, 2016년 2년 연속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나 실패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후보 지명이 안 되었다. 참고로 트렌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비판적인 입장이며 2018년에는 "난 신경 안쓴다."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2020년에는 드디어 헌액되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라 사실 NIN은 비주류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르게 입성한 편이다.[26]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 소감을 라디오 채널 트위터 계정에 올렸는데, 자신의 팬과 선배 뮤지션인 디페시 모드에게 축하를 전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디페시 모드도 여러 해 동안 물을 먹다가 같은 해에 헌액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트렌트 레즈너가 5번째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고 한다. 링크


9. 게임 음악[편집]


본인이 게임 매니아라서 게임 음악계에서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 이드 소프트웨어FPS 게임 퀘이크 1의 음악과 사운드를 맡았다. 1994년 무렵 이드 소프트웨어 게임의 열렬한 팬이었던[27][28] 트렌트 레즈너는 댈러스에서 열린 콘서트에 이드 소프트웨어의 개발진을 초대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가 개발 중이던 퀘이크의 사운드 제작을 맡게 된다.
트렌트 레즈너는 팝 멜로디를 귀에 쏘아붙이는 기존의 게임 음악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퀘이크 사운드트랙은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써 멜로디를 담은 음악이라기보다는 게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소음으로 만들어졌다. 존 카펜터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어울릴 법한 사악하고, 음침하며, 공포스러우면서 우울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트렌트 레즈너가 퀘이크 1에 참여한 영향으로 무기 중에서 다른 것도 아닌 네일건이 등장하며 네일건 탄약상자에는 NIN 로고가 박혀있다. 그리고 얼티밋 둠의 E4M1에는 바닥에 NIN이라 새겨진 함정이 있다.
트렌트 레즈너는 퀘이크 2의 사운드 제작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나, 게임의 제작진이 그가 원치 않는 록 사운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창작견해차로 고사했다. 대신 존 카맥으로부터 둠 3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수 년간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불분명한 이유[29]로 인해 그의 작업물이 폐기되었다. 유출된 E3 2002 알파 버전의 사운드가 바로 레즈너의 작품으로, 완성본에 쓰인 사운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론.

  • 2012년에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의 메인 테마를 맡기도 하였다. 레즈너 자신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테마를 맡은 것에 대해 기쁜 반응을 보였고, 레즈너의 인더스트리얼 록 성향과 근미래전을 다룬 게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 2023년에는 디지털 익스트림즈의 연례 게임 행사 TennoCon#2023년에서 공개된 Warframe의 차기 업데이트 "Warframe 1999"의 삽입곡으로 "Into the Void"가 사용되었다. 해당 메인 퀘스트 명칭과 작중 배경 시점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1999년도에 발매된 곡으로, 단순 삽입곡뿐만 아니라 유사한 선율의 배경음악으로도 편곡되었다. 한편 Void는 다름아닌 해당 게임 로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요 개념이자 용어이기도 하다.

10. 여담[편집]


  • 밴드명을 직역하면 9인치[30]짜리 이라는 뜻이다.

  • 레딧 NIN 팬 서브레딧에서 만든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 가이드.출처
파일:E9d3phpI8m_-IG-_gYEyyWTToFxXOWywxipBtibBJRY.jpg

  • 각 앨범 간의 발매 기간이 꽤 긴 아티스트 중 하나다. 1년 간격으로 낸 것도 있으나 거의 4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매하는 수준. 물론 그 사이사이 라이브 앨범과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여 본인의 실험적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다만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2010년대 들어서는 왕성하게 영화 음악, 드라마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 국내의 짝퉁 티셔츠 중에서는 NIN로고를 살짝 변용한 NINI(...)라는 길바닥 브랜드도 있다. 일본 유명 브랜드 넘버나인의 카피 제품이다.

  • 해외 록 뮤지션 내한 불모지인 한국에 의외로 자주(?) 왔던 록 뮤지션이다.2007년 첫 내한 당시 인터뷰가 있다. 링크 놀랍게도 인터뷰에 나선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로 현재는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당시 레즈너는 한국에도 나인 인치 네일스 CD가 진열되어 있느냐면서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후 2009년 이티피 페스티벌,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2018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출연하여 지금까지 총 4번 내한했다.

  • 영화 더 팬에서 길 리나드의 광기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이 자주 나온다.

  • 뉴에이지풍 크로스오버 음악가 양방언이 NIN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질감까지 느낀다나. 국내에서는 김사랑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 전 레이블과 갈등이 있어 레이블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했다. 그래서 계약은 끝냈지만 레즈너는 이후 자신의 사이트에 앨범을 업로드하고 공짜로 받든 돈내고 받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31] 그리고 그는 16억원($1.6 Million)의 매출을 올렸다.

  • 2009년 ETP FEST 2009 당시 헤드라이너 후보 중 한명이 서로 앙숙으로 유명한 림프 비즈킷이었고, 누가 헤드라이너를 할 지 다툰 결과 락페 주최자인 서태지와 함께 각자 헤드라이너가 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실상은 달랐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섭외한 공연 기획사 엑세스 측이 들려준 뒷이야기가 있다. 링크

  • 여담으로, 둘이 헤드라이너 자리를 두고 다퉜다는 루머가 당시 록 팬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기 때문에,[32] 이런 병맛스러운 가상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링크[33]
또한 당시 ETP 현장에 배부된 안내문에는 NIN과 림프비즈킷이 헤드라이너 자리를 두고 다퉜다고 해서 우리도 자리 싸움을 하면 안 된다는 주최측의 드립이 쓰여 있기도 했는데, 당연히 한글 버전에만 있는 내용이며, 옆에 병기된 영문 버전에는 자리 싸움을 하지 말고 질서를 지키자는 평범한 내용만 기재되어 있었다(...).

  • 한편, 당시,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둘 사이의 관계에 관한 유명한 짤방이 돌기도 했다. 프레드 더스트는 트렌트를 존경하여 공개적으로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트렌트는 그딴새끼 모른다고 깠다는 것이다. 이에 빡친 프레드는 "Hot Dog"의 가사에 "A nine inch nail that gets knock the fuck out"이라는 내용을 집어넣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소 다르다고 한다.
  • 해외의 나인 인치 네일스 팬들이 만든 NIN Wiki에 따르면, "Hot Dog" 가사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곡 "Closer" 가사를 인용할 때 원작자인 트렌트 레즈너에게 허락을 구했고, 트렌트 레즈너는 쿨하게 허락하여 라이너 노트에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저작권 정보를 확인해 보면 작사가에 트렌트 레즈너도 포함되어 있다. 링크

  • 그딴 새끼 모른다 짤방의 경우 출처는 아마도 2000년에 나온 영국 음악지 Kerrang! 인터뷰로 추정된다. 링크
해당 인터뷰의 내용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뮤비 에 관한 것인데, 이 뮤비의 내용이 프레드 더스트를 풍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기자가 그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해 레즈너는 "Fred Durst might be a cool guy, I don't know him. But his 'art' - in the word's loosest sense - sucks."라고 답변하는데, 그가 멋진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작품은 형편없다고 까는 내용이다. 다소 과장되게 알려진 점은 있으나 프레드 더스트의 자뻑을 비판하는 시각임을 알 수 있다.[34]
  • 참고로 뮤비의 내용은 셀프디스적인 성격이 있다고 한다. 링크 뮤비에서 레즈너가 가스를 흡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유명인이 되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 가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고.

  • 인더스트리얼 밴드 Filter의 리더 리처드 패트릭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투어 세션 멤버 출신이다. 현재까지도 멤버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1993년에 결별했는데, 2020년에 팟캐스트에 출연해 결별 당시 비화를 밝혔다. 레즈너가 패트릭에게 피자 가게 운전기사를 하라고 말했던 게 계기였고, 그래서 Filter를 결성해 독립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레즈너에게 서운해했던 듯하나, 지금은 우호적인 관계라고 한다. 2022년 9월 24일 클리블랜드에서 전현직 투어 멤버들이 모두 모였을 때도 합류했다.

  • 음악의 디지털 혁명을 옹호했던 레즈너는 이전에 팬들에게 그의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도록 권유했고, 나중에 그의 2008년 앨범 The Slip을 무료로 발매했다. 그가 디지털 음악 전달의 계속 주장한 결과, 레즈너는 2012년 Beats 뮤직에 합류하게 되었고,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비츠가 애플에 인수된 2014년 애플 뮤직의 경영진 중 일부가 되었고, 2018년까지 애플 뮤직에 남아있었다.
2019년 스테레오검인터뷰를 하면서 애플 뮤직을 그만 둔 이유를 밝혔는데,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에게 경외감을 느끼긴 하지만, 마케팅적인 성격이 강한 애플 뮤직의 업무가 자신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업무에 임하면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또한 대학 재학 시절 컴퓨터 공학도의 길을 갈지, 음악을 할지 고민했던 것을 언급하며, 만약 자신이 컴퓨터 공학을 택했다면 과연 더 행복했을까? 모르겠다. 원래 남의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35]라면서 음악인의 길을 계속 걷겠다고 말했다.


  • 2018년 Bad Witch LP가 공개되었는데 앨범의 길이가 총 30분 초반대로 일반적인 EP 길이와 비슷해서 논란이 많았다.[36] NIN 팬 커뮤니티인 Echoing The Sound에서 한 팬이 이에 대해 이제 영감이 떨어진게 아니냐라는 식의 댓글을 달자 트렌트 레즈너 본인[37]이 '내 X이나 빨아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아서 논란아닌 논란이 일기도 했다. 팬들은 '이래야 우리 트렌트 레즈너 답지'라면서 즐기는(?) 분위기. 레딧 링크

  • 20세기 미국 최악의 살인마인 찰스 맨슨과 아주 약간의 접점이 있다. 찰스 맨슨이 일으킨 살인 사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건이 폴란스키 가 살인 사건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내인 샤론 데이트를 비롯한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저택은 이후 레즈너가 빌려서 스튜디오로 사용했다. 하지만 터가 영 좋지 않긴 했는지 분위기가 매우 흉흉했고, 결국 레즈너는 1993년 12월에 그곳을 떠났으며 이듬해 1994년에 철거되었다.
다만 처음부터 살인 사건 현장임을 알았던 것은 아니고 이상하게 끌려서 그 장소를 선택했다가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역사적 현장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머물렀다 후회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웹진 Vulture 인터뷰에 따르면, 스튜디오로 쓸 장소를 알아보러 다닐 때 아무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링크 부동산 사기
비록 흉악 범죄가 벌어진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유명인이 살았던 곳이라 주변 풍경은 근사했다고 한다. 가성비가 뛰어난 장소인 줄 알고 계약했다 뒤탈이 난 것.
그런데 나중에 옮긴 스튜디오는 하필이면 10년 전에 장례식장으로 쓰였던 건물이고, 이 때도 모르고 그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 영화 캡틴 마블에서 캐럴 댄버스가 지구에 내려와 한 가게의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훔쳐 입는데, 티셔츠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마침 캡틴 마블 개봉을 기념해 마블과의 공식 콜라보레이션 티셔츠를 팔고 있는 중이다.


  • 레즈너는 한때 트위터에 'Strobe Light'라는 제목의 가짜 앨범을 만들어 사람들을 낚은적이 있다. 이 앨범에는 'Pussy Grinder'와 'Aid, Pain And Played'와 같은 곡들이 수록되었다.



  • 2017년 인터뷰에서 초딩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당시 발표된 EP 음반인 를 와이프가 큰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들려주니, 이 아이들은 수록곡 중 'Less Than'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훈훈한 광경이긴 한데, 한편으론 "이 노래에 'fuck'이란 단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식겁했다고.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아이들이 너무 일찍 알게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 1994~2008년 트렌트는 라이브를 할 때 5인조 밴드를 동반했지만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명의 라이브 멤버가 합류하고 있다. 현재는 세명의 멤버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투어링 밴드 뮤지션으로 활동중이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앨런 키스가 유력 후보인 존 매케인을 공격하기 위해 매케인의 최애 밴드가 나인 인치 네일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The Downward Spiral 앨범의 수록곡인 Closer 가사가 음란하다면서, 미국을 타락시키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한 것이다.링크 이는 곧 가짜뉴스로 밝혀졌다.[38]
이런 역사를 알고 보면, 트렌트 레즈너가 미국 민주당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참고로 레즈너는 2008년 투어 당시 부시의 얼굴이 매케인으로 변하는 영상을 쓴 적이 있다. 이는 레즈너가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을 디스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링크 앞서 언급된 가짜뉴스 때문이 아니라, 당시 매케인이 기본 자질 논란이 있는 사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매케인은 고령이라 대통령이 되더라도 임기 중 사망할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젊은 정치인을 러닝 메이트로 뽑은 것이라서 매케인을 뽑는 것은 사실상 페일린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39] 하지만 존 매케인이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존경받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팬들이 단 댓글 중에 레즈너가 무례했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페일린 얼굴과 합성했으면, 대통령 유고 상황 시 페일린의 승계를 노린 게 되니, 여혐 논란에다 노인 비하 논란까지 콤보로 터졌을 것이다

11. 외부 링크[편집]



[1] With Teeth 앨범부터 프로듀서로 참여하다가 2016년 Not the Actual Events을 기점으로 정식 멤버가 되었다.[2] 인터스코프 레코드를 나가고 Nothing Records 해체 뒤에 세운 레이블이다.[3] 1992년에 설립한 레이블이며, 2004년 해체되었다.[4] 다만, 당연하게도 고가의 장비가 아닌 양산형 저가 장비였다고 한다. 야마하 DX7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기종이었으며, 현재는 최저가 2만원대 제품이다(...).링크[5] 우드스탁은 펩시의 스폰을 받았는데, 모든 대중문화가 그렇듯 대중들의 접근을 위한 선택이지만, 기업에 종속된다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당시 NIN 멤버들이 느꼈던 양가감정은 그런 딜레마 때문이었을 것이다.[6] 실제로 투어 멤버나 스튜디오 멤버의 교체설이 나오면서 팬덤이 흉흉할 때면 누군가가 다시금 일깨워주는 말이 "NIИ = Trent Reznor"이다.[7] 레즈너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아니 애초에 본인 음악을 인더스트리얼이란 틀에 가두는걸 싫어한다고. 헌데 후발 인더스트리얼 밴드들이 영향받은 밴드를 언급할때 심심하면 나오는게 이(들)이다.[8] 당시 일부 록팬들에겐 이펙트 떡칠 음악은 이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무대에 온갖 투척물이 날아들고, NIN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명이 어디 구석에서 뛰어다니다가 휩쓸려 사라졌다고.(...)[9] 헤로인과 유사한 마약성 진통제로, 파스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쉽게 여기는 약물이지만 매년 미국에서 6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헤로인보다 수백 배는 더 강력한 마약류이다.[10] 좀 더 자세한 기사를 보면 차이나 화이트 헤로인을 흡입했다고 나오는데, 위키피디아에서 China white로 검색을 해 보면 진통제 펜타닐의 파생 유사품인 알파메탈펜타닐로 리다이렉트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펜타닐을 비롯해, 거기서 파생된 약물들이나, 펜타닐이 섞인 헤로인 등을 통틀어서 China White라고 부른다고 한다. 링크 참고로 펜타닐의 치사량은 코카인 1회 사용량의 불과 500분의 1밖에 안 된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인 셈.[11] 2012년 영국 음악잡지 Q 매거진 인터뷰에서 당시 일을 털어놨다.[12] 친구의 이름은 Rodney Robertson으로, The Fragile 수록곡의 라이브 버전과 어쿠스틱 버전을 수록한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Still 앨범 속지에 추모 문구가 실려 있다.[13] 공교롭게도 애티커스 로스 또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시점에서 레즈너를 만났다고 한다. 로스가 중독되었던 마약은 무려 헤로인(...)링크[14] 영국의 인더스트리얼 듀오 코일(밴드)의 곡에서 따왔다.[15]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4자, 즉 YHWH, YHVH 등[16] 일반적으로는 EP로 분류되지만, 히든 트랙을 합치면 LP 수준의 길이를 만족하므로 정규 2집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17] 원곡은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어 있다.[18] 지금은 유물이 된 비디오테이프로 만들어진 라이브 앨범이다. 뮤직비디오도 수록되어있다.[19] AATCHB 디럭스 버전의 보너스 CD. 개별 CD로도 발매되었다. 뉴에지 풍의 피아노 연주곡과 어쿠스틱 버전 트랙이 수록되었다.[20] 인터스코프를 떠나고 발표한 첫 독립 발매 앨범이다.[21] The Fragile에 수록된 곡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트랙과 미발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22] EP로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러닝 타임이 30분을 살짝 넘기면서 LP가 되었다. 물론 가격은 EP 가격에 팔고 있다. 포맷이 바뀐데 대해 트렌트 레즈너는 "원래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 Bad Witch EP 3부작을 합쳐 한 장의 LP로 취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음반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요즘 EP를 덜 중요하게 여기고, 무시하는 풍조가 짙어졌고,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도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Bad Witch를 EP가 아닌 Studio Album으로 발표하기로 생각을 고쳐먹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Bad Witch는 NIN의 스튜디오 앨범 중 러닝 타임이 가장 짧은 LP가 되었다. 사실 스튜디오 앨범(LP)과 EP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러닝 타임이 애매할 경우 아티스트가 LP라고 부르고 싶으면 LP, EP라고 부르고 싶으면 EP가 된다. 다만 Grammy에서는 30분을 기준으로 이 시간보다 러닝 타임이 짧으면 EP, 길면 LP로 취급하고 있다.[23] 2008년 발표한 앰비언트 성향의 Ghosts I-IV의 후속작. 2020년 3월 26일에 전곡을 무료로 발표했다. 코로나 19 시국을 함께 이겨내기 위한 독려의 취지로 무료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24] Ghosts V와 함께 2020년 3월 26일 전곡을 무료로 발표했다.[25] Wish - 메탈 최우수작 (1992년), Happiness in Slavery - 메탈 최우수작 (1995년), 두 노래 모두 Broken 수록곡이다.[26] 참고로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경우 몇 년째 후보에만 오르고 물먹는 중이었으나, 2021년에 헌액되었다.[27] 트렌트 레즈너는 인생의 가장 즐거웠던 경험 중 하나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저금통에서 동전을 슬쩍해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플레이했던 걸 꼽았다. 이후로도 게임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왔으나 완전히 빠져든 계기는 울펜슈타인 3D였다고. 음악을 하기 위해 매킨토시를 사용하던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 PC는 멸시와 기피의 대상이었으나 울펜슈타인을 보곤 바로 꽂혀 당시 최고 성능의 PC를 구입하였다고 한다.[28] 둠과 퀘이크의 개발비화를 담은 '마스터 오브 둠'에 따르면 트렌트 레즈너는 콘서트를 끝낸 후 술과 마약, 여자를 마다하고 바로 투어 버스로 달려가 둠을 플레이했다고 한다.[29] 레즈너는 With Teeth 완성 전까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중독증 치료를 위해/완벽한 작업을 할 자신감이 없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30] 약 23cm[31] 이는 이 발표가 나기 얼마 전 라디오헤드가 똑같은 방식으로 7집 In Rainbows를 배포하며 EMI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펼친 6집 Hail to the Thief보다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32] 당시 국내 록팬들의 반응을 보면 아재들의 귀여운 다툼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했다.[33]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 도중 프레드 더스트가 난입하고, 이를 말리려 서태지가 등판하고, 이 틈을 타 도 덩달아 난입하고 한술 더 떠 라인업에도 없었던 세계 각국 록밴드들이 갑자기 입국하여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아수라장 콜라보가 펼쳐지고, 그 와중에 주최자인 서태지가 봉변을 당하는데, 갑툭튀한 의 조나단 데이비스가 서태지를 구해주었다는 내용이다(...).[34] 그런데 중요한 점은 저 당시 프레드 더스트가 인터스코프 부사장이었다. 즉 트렌트 레즈너는 자기 소속사 임원을 까는 패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고, 이후 인터뷰에서도 아티스트들이 회사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35]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서양 속담.[36] 빌보드 닷컴에 나와있는 EP의 정의는 대개 30분대 앨범을 말한다고 한다. Broken EP의 길이도 히든 트랙을 포함해서 31분이었다.[37] 정확히는 공식 계정이 아니라 teitan이라는 계정으로 댓글을 달았지만 예전에 음원을 이 아이디로 공개한 적이 있던지라 다들 누군지 알고 있다.[38] 그런데 앨런 키스는 마이클 무어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서트에서 바디 서핑을 해 보라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응했고, RATM 팬들도 잘 받아줬다. 링크[39] 그래서 당시 매케인의 표를 사라 페일린이 깎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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