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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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浪公主

?~32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구려 호동왕자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낙랑공주.

호동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자국의 국보이자 경보기인 자명고를 찢고 자명각을 부숴버린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어린이들용 만화에서는 사랑을 위해 취한 행동으로써 각색되어 슬픈 로맨스 만화로 출판되는 경향이 많다.

2. 생애[편집]


아래의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라고 기록되어있는데, 낙랑왕은 호동이 고구려 신왕의 아들임을 알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킨다. 이는 고구려의 팽창을 두려워한 낙랑왕이 고구려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것을 부수어 버리게 한 것이었다. 이에 최씨의 딸은 예리한 칼을 들고 남모르게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의 입을 베어 버린 뒤에 호동에게 알려 주었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지 않아 대비를 하지 않았고, 우리 병사들이 소리 없이 성 밑까지 이르게 된 뒤에야 북과 나팔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그는 마침내 자기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원주]

夏四月 王子好童 遊於沃沮 樂浪王崔理出行 因見之 問曰 觀君顔色 非常人 豈非北國神王之子乎 遂同歸 以女妻之 後 好童還國潛遣人 告崔氏女曰 若能入而國武庫 割破鼓角 則我以禮迎不然則否 先是 樂浪有鼓角 若有敵兵 則自鳴故令破之 於是 崔女將利刀 潛入庫中 割鼓面角口 以報好童 好童勸王襲樂浪 崔理以鼓角不鳴不備 我兵掩至城下 然後知鼓角皆破 遂殺女子出降[或云 欲滅樂浪 遂請婚 娶其女 爲子妻 後使歸本國壞其兵物]


결국 자신의 아버지인 최리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이미 자명고가 박살난 낙랑은 고구려의 군대를 막지 못해 결국 32년(고구려 대무신왕 15년)에 멸망당했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순정녀이지만, 현대에서 동화 등으로 익히 알려진 호동왕자 - 낙랑공주 사이의 로맨스는 사실 후대의 창작에 가깝다고 한다. 저 위의 설화의 원전을 번역한 것과 호동왕자 문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원전의 호동왕자에게 낙랑공주는 낙랑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용할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남편이란 사람이 아내에게 협박을 하고 앉아 있다.

이렇게 '공주가 이웃나라 사람에게 반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나라를 판다'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메데이아 등에서도 등장하는 상당히 인기있는 클리셰며, 이런 경우 십중팔구 그 공주의 사랑은 안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배신하는 딸 참고.

여성의 의리, 절개를 상징하며 일부종사[一夫從事], 출가외인[出嫁外人]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3. 대중매체[편집]



3.1. 바람의 나라[편집]


여기서는 '사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주변 배경이 상당히 복잡한 소녀.

낙랑왕 최리가 말년에 젊은 선우를 후궁으로 들여 본 늦둥이 고명딸이다. 문제는 선우가 최리의 둘째 아들인 의 연인이었던 것. 최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혼담을 건네자 선우는 운이 최리에게 사실을 밝히고 혼인을 물러 줄 것을 바랐으나, 운은 신분과 체면상 그러지 못하고 선우에게 조용히 시집을 갈 것을 요구한다. 결국 운과 선우는 서로의 감정을 다 묻어두어야만 했고, 선우는 예정대로 최리의 후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선우는 운에게 깊은 애증을 품었고, 혼인한 후로는 운과 말 한마디 안 섞는데다가 운 앞에서 보란듯이 최리에게 교태를 부린다. 깊이 상심하고 충격받은 운은 점점 미쳐간다. 설상가상으로 선우는 자신을 쏙 빼닮은 딸 사비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사비를 보는 운의 감정은 복잡하며 해석에 따라서 상당히 위험한 관계로 보일 수도 있다. 사비 역시도 운에 대해서 종종 위험한 의미로 보일 수도 있는 말을 한다. 물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실제로 운은 사비를 볼 때마다 선우가 보인다는 식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운과의 미묘한 사이를 제외하면 아버지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이복오빠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라 상당히 철이 없는 아가씨였다. 아들들만 두고 있었던 최리로서는 늦게 얻은 딸이 어머니까지 잃었으니 애틋할 수밖에 없었을테고, 선우의 연인이었던 운으로서도 사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믿고 있던 아버지와 이복오빠들이 자신의 혼사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엿듣자 충격을 받아서 문을 잠그고 울며 떼를 쓰기도 했지만, 후에 고구려와 낙랑의 외교 문제로 호동과의 혼사가 논의되고, 그 과정에서 호동과 진짜로 사랑에 빠지면서 상당히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3.2. 자명고[편집]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의 '라희'라는 본명으로 등장하며 널리 알려진 낙랑공주라는 이름은 낙랑국의 태녀로 책봉되던 당시 양어머니 모하소가 직접 지어준 봉호이다. 여기선 자명이라는 첫째 부인 소생인 또다른 최리의 딸이 낙랑국을 지키기 위해 자명고를 만들었는데, 둘째 부인 소생인 라희는 자신의 이복여동생에게 열등감을 느끼다가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찢는 것으로 나온다. 배우는 박민영.

여기서 낙랑공주 라희는 최리의 둘째 부인인 왕자실 소생인데 첫째 부인인 모하소가 따뜻하게 라희를 품어냈기에, 자신의 친모가 아닌 걸 알고 있는데도 모하소를 진정한 어머니로 여기며 오히려 왕자실을 멀리 했다. 또한 부모를 비롯해서 모든 이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칭송해주었으니 스스로 최리의 딸로써나 낙랑국의 태녀로써나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복동생 자명이 낙랑으로 돌아오자 진정한 어머니로 여기던 모하소도[1], 연모의 상대였던 호동왕자도, 자신을 굳건히 받쳐주던 아버지 최리도 전부 자명이에게로만 향한다고 크게 오해하게 되어 결국 그 신념에 금이가게 된다.

이윽고 고구려를 위해 라희를 사랑하는 척하던 호동왕자에게 속아, 자명고를 찢고 동생 자명의 가슴에도 독을 찔러 넣는다. 이로 인해 낙랑은 고구려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져 멸망하고 아버지 최리도 자신이 보는 앞에서 대무신왕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하는 굴욕을 당한다. 이에 대무신왕 앞에 나아가 아버님의 며느리로 간청하겠다며 호동왕자가 자신에게 자명고만 찢으면 낙랑국을 고구려의 형제 나라로 대해주겠다 약조했다고 애원한다. 하지만 대무신왕은 냉정하게 자신은 라희같은 며느리를 둔 적이 없다며 나라를 팔아먹고 아비마저 팔아먹은 저 간악한 년을 끌어내라고 외친다. 결국 아버지 최리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호동왕자에 의해 처형당하자 절규한다.

이후 라희 본인마저 대무신왕의 처결에 따라[2] 태녀의 신분으로 남자에게 눈이 멀어,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로서 자신이 다스릴 예정이었던 낙랑의 유민들에게 처형당한다. 이미 라희가 호동왕자의 꾐에 빠져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분노해있던 낙랑 유민들은 가차없이 라희에게 돌을 던지고, 양어머니 모하소마저 그런 라희를 지키려다 결국 모녀가 나란히 돌팔매질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처참하게 죽는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끝내 버림받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대무신왕과 낙랑 유민들의 말마따나 일국의 태녀라는 사람이 적국 왕자에게 눈이 멀어, 자명고만 찢으면 낙랑이 고구려의 속국이 되어 형제 나라로 대우받을 거라는 얼도당토 않는 거짓말만 믿고 조국의 멸망에 제대로 일조했으니 자업자득의 최후였다.

3.3. 푸른 유리[편집]


'솔'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건 푸른 유리 항목 참조.
[원주] 낙랑을 없애기 위하여 청혼하고, 그의 딸을 데려다가 며느리를 삼은 후에 그녀를 본국에 돌려보내 그 병기를 부수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1] 다만 자명이 모하소의 잃어버린 친딸임을 감안하면 의붓딸인 라희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아래의 최후를 보면 알겠지만 모하소는 끝내 친딸 자명이 아닌 라희를 선택하고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2] 점령지인 낙랑국 백성들의 불만을 고구려 왕실이 아닌 라희가 대신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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