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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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지 않는 건축물





파일:낙천정.jpg

낙천정의 모습[1]
1. 개요
2. 위치
3. 역사
4. 용도



1. 개요[편집]


태종의 별궁이자 조선 초기의 3대 이궁 중 하나였던 궁.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이름은 《주역》 - 〈계사(繫辭)〉에 나온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에서 따왔다. '하늘(天)을 즐기고(樂) 명(命)을 알면(知) 근심(憂)이 없다(不)'는 뜻이다. 건립 당시 상왕 태종의 명을 받아 좌의정이었던 박은이 지었다.


2. 위치[편집]


지금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했다. 한강변에 위치한 대산(臺山)이란 산 정상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자양현대3차아파트가 들어섰고, 위치는 잠실대교 서편이다.

낙천정이 위치한 대산은 표고 42.8m로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시리미’라고도 불렸다. 주변에 다른 높은 지형이 없어 아름다운 한강을 조망할 수 있었다.


3. 역사[편집]


1418년(태종 18년)에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태종이 그 해 9월에 이궁으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419년(세종 1년) 2월에 완공했다.[2]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樂天亭記)》에 의하면 태종이 바람을 피해 언덕의 간방(艮方) 모퉁이에 이궁을 짓도록 했고, 언덕 위에 정자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는 판한성부사 권홍이 쓰고 판각하여 정자에 걸었다고 한다.

문종중종 대에 수리했다. 인조 연간까지는 기록에 보이나 그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는 낙천정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자연스레 무너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천정 터는 1991년 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받았으나, 2009년 10월 22일에 지정 해제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정자는 1991년에 신축한 것이며 정확한 고증 없이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닌 모습으로 지은 것인 데다가, 각종 사료에 남아 있는 낙천정의 원위치인 대산(臺山)이란 산의 정상과도 대략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세운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문화재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3]


4. 용도[편집]


상왕 태종을 위해 지었기에 태종과 세종이 이곳에 자주 들러 매사냥을 즐기고 연회를 열었다. 세조단종과 함께 낙천정에서 매사냥과 고기 잡는 모습을 보고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성종 또한 낙천정에서 열병과 활쏘기를 구경했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의 왕들은 명나라 사신이 왔을 경우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1] 현재 위 사진의 낙천정은 위치도 다르고 형태도 달라서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2] 그무렵, 한성부 서쪽에 연희궁, 동쪽에 풍양궁, 남쪽에 낙천정을 건립합으로서 태종이 머물 3개의 이궁을 지었다.[3] 참조: 광진닷컴 - 낙천정 터 지정문화재 해제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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