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 을(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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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국회선거구


파일:국회휘장.svg


남구 을 (부산)
용호1동, 용호2동, 대연1동, 대연3동 등
南區 乙
Nam B



파일:국회선거구 남구 을(부산).svg

선거인 수
134,815명 (2020)
상위 행정구역
부산광역시
관할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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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일부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대연1동, 대연3동

신설년도
2004년
이전 선거구
남구
국회의원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박재호



1. 개요[편집]


부산광역시선거구 중 하나. 현재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재호 의원이다.

소선거구제로 환원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갑/을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지역구를 줄였던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엔 잠시 단일 선거구로 합구되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선거인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재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래 이 선거구는 남구를 남북으로 갈랐을 때 해안가 지역이었다. 저개발 부둣가 지역이라 토박이 노년층 인구가 많은 우암동감만동, 용당동과 중장년층 자산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부촌인 용호동이 낀 선거구로, 3개의 대학들의 존재와 신축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서 젊은층 인구도 많은 갑 선거구보다 더 보수적인 선거구였다. 그래서 한때 보수정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김무성이 이 곳에서만 4선을 지내기도 했다.[1] 그러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에서 박재호가 무려 3전 4기의 도전 끝에 당선되며 오히려 남구 갑보다 더 먼저 민주당계 정당 출신 국회의원이 당선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가 대폭 조정되었는데, 항만 근처의 동네들이라 노년층 인구가 많은 우암동, 감만동, 용당동이 갑구로 넘어간 반면, 부경대학교경성대학교가 위치한 대연1동과 대연3동이 을구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이전과는 표심이 조금 많이 달라졌는데, 부촌인 용호1동과 용호2동, 그리고 개발이 덜 되어 노년층 인구가 많은 대연1동은 보수 성향이 강하고, 대연혁신도시가 위치해 있고부경대학교와 경성대학교가 있어서 젊은 인구가 많은 대연3동, 그리고 용호3동과 용호4동은 민주당 지지세가 제법 있다. 선거구 조정으로 인해 노년층 위주의 동네들이 다 넘어가 버려서 현재는 갑 선거구가 오히려 보수 성향이 더 강해졌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의원 박재호가 경기도 광명시 을에서 지역구를 옮긴 이언주 후보를 상대로 접전 끝에 득표율 1.8%p 차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전 총선보다 부진했던 선거인데다가 선거구가 바뀐 상황[3]임에도 박 의원이 신승한 배경으로는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박재호 의원의 지역 밀착형 활동에서 나온 지역일꾼론이 먹힌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이언주 후보는 인지도야 박재호보다는 있긴 하지만[4], 해당 지역구와 연고가 크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속 영도만 줄창 부르짖던 사람이[5] 느닷없이 남구로 내려오니 뜬금포라며 불쾌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았던 것도 한 몫 했다.[7]

다만, 남구 자체의 인구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어서 같은 동네 지역구와 합구해서 (부산)남구 단일 선거구가 될 가능성이 이전(18대 총선)부터 가장 높은 지역구였고, 21대 총선을 지나 2023년 현재는 사실상 확실해졌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총선
당선인
당적
임기
제13대
정상구

[[통일민주당|
파일:통일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제14대
유흥수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제15대
김무성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제16대
김무성[8]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제17대
김무성[9]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제18대

[[무소속|
무소속
]]
[10]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제19대
서용교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제20대
박재호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제21대
2020년 5월 30일 ~

3. 남구 을 (13대 ~ 15대)[편집]



3.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대연3동, 대연5동, 대연6동, 문현1동, 문현2동, 문현3동, 문현5동,
수영동, 망미1동, 망미2동, 광안1동, 광안3동, 광안4동, 민락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이수천(李秀千)
34,188
2위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25.18%
낙선
2
정상구(鄭相九)
80,702
1위

[[통일민주당|
파일:통일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59.45%
당선
3
왕찬권(王贊權)
13,542
4위

[[신민주공화당|
파일:신민주공화당 글자.svg
]]

9.97%
낙선
4
최수명(崔峀明)
7,298
3위

[[한겨레민주당|
파일:한겨레민주당 글자.svg
]]

5.37%
낙선

선거인 수
179,274
투표율
76.32%
투표 수
136,813
무효표 수
1,083


3.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대연3동, 대연5동, 대연6동, 문현1동, 문현2동, 문현3동, 문현5동,
수영동, 망미1동, 망미2동, 광안1동, 광안3동, 광안4동, 민락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유흥수(柳興洙)
86,355
1위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66.45%
당선
2
손태인(孫泰仁)
35,041
2위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26.96%
낙선
3
권쌍현(權雙鉉)
8,551
3위

[[무소속|
무소속
]]

6.58%
낙선

선거인 수
190,765
투표율
68.93%
투표 수
131,486
무효표 수
1,539


3.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ffffff 감만1동, 감만2동, 용당동, 우암1동, 우암2동,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무성(金武星)
38,970
1위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62.57%
당선
2
송정섭(宋正燮)
5,418
3위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8.70%
낙선
3
허종복(許宗復)
12,175
2위

19.55%
낙선
4
김호길(金虎吉)
4,010
4위

6.44%
낙선
5
서이남(徐二男)
1,701
5위

2.73%
낙선

선거인 수
105,623
투표율
60.22%
투표 수
63,602
무효표 수
1,328

4. 남구 (16대)[편집]



4.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부산 남구 일원[남구]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무성(金武星)
75,215
1위

66.93%
당선
2
송정섭(宋正燮)
13,060
3위

11.62%
낙선
3
김용철(金容哲)
24,096
2위

21.44%
낙선

선거인 수
219,942
투표율
51.94%
투표 수
114,230
무효표 수
1,859


5. 남구 을 (17대 ~ )[편집]



5.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용당동,
감만1동, 감만2동, 우암1동, 우암2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김무성(金武星)
38,826
1위

54.88%
당선
3
박재호(朴在昊)
31,918
2위

45.11%
낙선
4
이규헌(李圭憲)
-
사퇴

-

선거인 수
114,417
투표율
63.93%
투표 수
73,149
무효표 수
2,405

17대 총선 부산 남구 을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
김무성
박재호
득표수
(득표율)

38,826
(54.88%)

31,918
(45.11%)

+6,908
(△9.77)

63.93%
용호1동
60.92%
39.08%
21.84
65.58
용호2동
52.37%
47.63%
△4.74
62.98
용호3동
52.61%
47.39%
△5.22
63.76
용호4동
49.78%
50.22%
0.44
62.69
용당동
55.63%
44.37%
△11.26
61.62
감만1동
51.99%
48.01%
△3.98
60.66
감만2동
53.52%
46.48%
△7.04
60.61
우암1동
54.07%
45.93%
△8.14
65.03
우암2동
58.98%
41.02%
△17.96
59.79
후보
김무성
박재호
격차
부재자투표
43.06%
56.94%
13.88

지난 총선 때 남구 단일 선거구로 합구되었다가 인구 상한선 초과로 갑/을 선거구로 재분구되었다. 한나라당에선 본래 남구 을 국회의원이었던 현역 의원 김무성 후보가 다시 이 곳에 출마해 3선에 도전했다. 열린우리당에선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낸 박재호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재밌는 사실은 김무성 후보나 박재호 후보 두 사람 모두 상도동계 출신들이란 것이다. 그 밖에 무소속으로 이규헌 후보도 출마했다. 그런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가 발생해 그 역풍으로 열린우리당 지지세가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또 선거를 며칠 앞둔 4월 2일에 무소속 이규헌 후보가 관내 유권자들에게 수백만원어치의 향응을 제공하고 관내 단체에 기부금을 낸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후보가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사 참조. 결국 이규헌 후보는 선거를 뛰지도 못하고 후보를 사퇴하면서 김무성 vs 박재호 1 : 1 매치로 압축되었다.

개표 결과 박재호 후보가 매우 선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재선이던 김무성 후보가 54.88% : 45.11%로 박재호 후보를 득표율 9.77%, 득표 수 6,908표 차로 꺾고 3선에 성공했다. 그만큼 부산 남구는 여전히 보수세가 건재한 곳이었다[11]. 그러나 박재호 후보도 김무성이라는 거물을 상대로 그것도 45% 이상 득표하면서 크게 선전했기에 12년 후 이 지역구에서 4번째 만에 결국 승리하는 발판이 되었다.[12]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김무성 후보는 용호4동을 뺀 나머지 전 행정동에서 승리했다. 본인의 자택이 있는 용호1동에선 무려 3,996표차[13]로 박재호 후보를 이겼고, 용호 2동에선 323표 차, 용호3동에선 444표 차로 승리했다. 그리고 용당동에선 454표 차, 감만1동에선 363표 차, 감만2동에선 336표 차로 이겼고, 우암1동에서 637표 차, 우암2동에서 702표 차로 승리하며 당선을 확정지었다. 반면에 박재호 후보는 유일하게 용호4동에서만 22표 차로 이기는데 그쳤고, 부재자투표에서도 337표 차로 이겼다.


5.2.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용당동,
감만1동, 감만2동, 우암1동, 우암2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2
정태윤(鄭泰允)
16,489
2위

31.21%
낙선
6
김인숙(金仁淑)
1,369
4위

2.59%
낙선
7
김무성(金武星)
26,255
1위

49.69%
당선
8
박재호(朴在昊)
8,718
3위

16.50%
낙선

선거인 수
113,781
투표율
47.05%
투표 수
53,537
무효표 수
706

18대 총선 부산 남구 을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
정태윤
김무성
득표수
(득표율)

16,489
(31.21%)

26,255
(49.69%)

+10,234
(△18.48)

47.05%
용호1동
33.11%
48.05%[14]
△14.94
40.29
용호2동
38.09%
60.17%
△24.56
43.26
용호3동
36.01%
58.76%
△19.94
46.39
용호4동
38.36%
56.82%
△17.55
42.60
용당동
29.82%
60.65%
△24.84
45.03
감만1동
35.26%
54.69%
△13.46
49.00
감만2동
32.22%
52.21%
△8.01
46.17
우암1동
35.94%
55.04%
△14.43
45.67
우암2동
39.60%
56.48%
△16.19
49.43
후보
정태윤
김무성
격차
부재자투표
53.73%
43.56%
▼24.82
친이 vs 친박 집안 싸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4개월 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후로 한나라당의 실권은 친이계가 틀어쥐었지만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김무성은 친박계에 속했다. 공관위를 틀어쥔 친이계는 친박계를 향한 공천 학살을 자행했는데 이 때문에 친박계 중진인 김기춘, 서청원, 홍사덕 등이 대거 컷오프되었다. 김무성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컷오프 대상이 되었다. 이에 김무성은 옆 동네 수영구유재중 등과 함께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여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한편, 통합민주당 역시 정권을 뺏긴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구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을 대거 컷오프했다. 지난 총선 때 이곳에 출마해 거물 김무성을 상대로 45% 이상 득표하며 선전했던 박재호 역시 컷오프 되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통합민주당은 이곳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암묵적으로 박 후보를 지원했다.

개표 결과 이곳에서 3선을 했던 김무성이 또 저력을 발휘하여 보수 표 분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9.67% 득표율로 가볍게 4선 고지에 오르게 되었다. 한편, 지난 선거 때 45%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했던 박재호 후보는 이번엔 16.5%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하는데 성공했다는 걸 빼면 별 의미를 두기 어렵게 되었다.


5.3.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용당동,
감만1동, 감만2동, 우암1동, 우암2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서용교(徐瑢敎)
33,256
1위

49.38%
당선
2
박재호(朴在昊)
27,919
2위

41.46%
낙선
7
이영근(李英根)
2,873
3위

4.26%
낙선
8
유정기(劉正基)
1,323
5위

1.96%
낙선
9
성성경(成性慶)
1,964
4위

2.91%
낙선

선거인 수
119,420
투표율
56.79%
투표 수
67,813
무효표 수
478

19대 총선 부산 남구 을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
서용교
박재호
득표수
(득표율)

33,256
(49.38%)

27,919
(41.46%)

+5,337
(△7.92)

56.79%
용호1동
49.79%
42.57%
△7.22
57.81
용호2동
49.33%
40.73%
△8.60
57.41
용호3동
48.51%
40.75%
△7.76
55.74
용호4동
46.54%
44.29%
2.25
53.26
용당동
49.62%
42.14%
△7.48
54.92
감만1동
47.61%
43.45%
△4.16
53.89
감만2동
52.73%
38.43%
△14.30
54.03
우암1동
50.74%
40.30%
△10.44
57.15
우암2동
55.28%
33.83%
△21.45
59.73
후보
서용교
박재호
격차
국외부재자투표
34.86%
61.47%
26.61
국내부재자투표
42.91%
41.01%
△1.90
현역 의원이자 이 곳에서만 무려 4선을 지낸 김무성은 한때 친박 좌장으로 통했지만,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에서 원안 고수를 주장한 박근혜와 달리 이명박의 수정안을 지지하면서 박근혜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또 친이의 추대로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선출되면서 박근혜와의 정치적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박근혜가 주도한 공천에서 컷오프를 당하게 된다.

그래도 김무성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본인을 대신해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게 된 후보는 본인의 측근이었던 서용교였다. 민주통합당에선 이 곳에 2번이나 출마했지만 2번 다 낙선했던 박재호 후보가 3번째 도전에 나섰다.

서용교 후보가 김무성에 비하면 중량감이 약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으나, 개표 결과 49.38% : 41.46%로 득표율 7.92%, 득표 수 5,337표 차로 신승하고 여전히 보수정당이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박재호 후보는 8년 전에 이어 2번째로 이 곳에서 40% 이상의 득표율을 올리며 선전했지만, 여전히 탄탄한 보수세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나마 얻은 성과는 그가 여태까지 출마한 선거 중에서 가장 적은 격차로 패배했다는 점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서용교 후보는 모든 동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자 신도시인 용호1동에선 1,444표 차, 용호2동에선 789표 차, 용호3동에선 545표 차로 이겼다. 다만 용호4동에선 80표 차 신승에 그쳤다. 용당동에선 313표 차, 감만1동에선 325표 차, 감만2동에선 522표 차, 우암1동에선 715표 차, 우암2동에선 591표 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득표율 차이가 8%도 채 나지 않았기에 다음 총선의 결과는 어떻게 될 지 예측불허였는데...

한편 해당 선거에서 컷오프당했던 김무성은 이듬해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영도구 지역구에 출마했고, 당선되면서 빠르게 국회 복귀에 성공하였다.


5.4.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용당동, 감만1동, 감만2동, 우암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서용교(徐瑢敎)
30,260
2위

43.45%
낙선
2
박재호(朴在昊)
33,499
1위

48.11%
당선
3
유정기(劉正基)
5,871
3위

8.43%
낙선

선거인 수
116,576
투표율
60.38%
투표 수
70,384
무효표 수
754

20대 총선 부산 남구 을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
서용교
박재호
득표수
(득표율)

30,260
(43.45%)

33,499
(48.11%)

-3,239
(▼4.66)

60.38%
용호1동
40.34%
51.95%
11.61
59.53
용호2동
42.85%
48.83%
▼5.98
58.53
용호3동
43.56%
49.43%
▼6.87
62.12
용호4동
41.59%
51.05%
▼9.46
59.66
용당동
43.69%
46.24%
▼2.55
57.27
감만1동
45.97%
45.92%
△0.05
55.89
감만2동
50.26%
40.06%
△10.20
56.40
우암동
50.88%
40.27%
10.61
57.47
후보
서용교
박재호
격차
거소·선상투표
49.46%
35.60%
△13.86
관외사전투표
35.45%
52.55%
▼17.10
국외부재자투표
26.21%
66.90%
40.69
새누리당에선 현역 서용교 의원이 단수공천을 받아 재선에 도전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 지역구에서만 3번이나 도전했던 박재호가 또 다시 출마해 4번째 도전에 나섰다. 과연 서용교의 재선이냐 아니면 박재호의 3전 4기냐가 주목되었다. 개표 결과 3번이나 낙선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던 박재호 후보가 4수 끝에 당선되었다. 3당 합당 이후 낙동강 벨트이 아닌 동부산 지역에서 민주당계 정당 국회의원이 당선된 건 26년 만에 최초였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현역 의원인 서용교 후보는 노년 인구가 많고 저개발 지역이 많은 우암동에서 936표 차, 감만1동에서 단 4표 차, 감만2동에서 370표 차, 거소 및 선상투표에서 51표 차로 이겼다. 그러나 서용교 후보가 이긴 지역에서의 표 차를 모두 더해도 총 1,361표 차에 불과해 용호1동의 표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박재호 후보는 용호1동에서 무려 2,219표 차로 승리하며 패배한 지역에서의 표 차를 모두 상쇄했고 용호2동에서 539표 차, 용호3동에서 461표 차, 용호4동에서 446표 차, 용당동에서 105표 차로 승리하며 표 차를 벌려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외사전투표에서 771표 차, 국외부재자투표에서 59표 차로 승리하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리하여 최종 결과 48.11% : 43.45%로 득표율 4.66%, 득표 수 3,239표 차로 박재호 후보가 승리해 4번째 도전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렇게 박재호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본인이 이곳에서만 무려 4번이나 출마하면서 밑바닥부터 훑고 다니며 지역 기반을 다진데 반해 서용교 후보는 거물 김무성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다시피 한 인물이었고 또 결정적으로 그가 중앙 정치에 집중하면서 지역구 관리를 다소 소홀히 한 경향도 있었다. 두 번째 요인은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유정기 후보이다. 유정기 후보의 득표율을 보면 박재호 후보가 우세했던 지역보다 서용교 후보가 우세했던 낙후된 부둣가 주택단지 지역[15]에서 득표율이 더 높았다. 이로 볼 때 박재호 후보가 손해를 본 부분도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서용교 후보의 손해가 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서용교 후보가 우암동과 감만동에서 표 차를 벌려서 용호동에서의 표 차를 만회해야 했는데 1,310표 차밖에 벌리지 못했던 게 화근이 된 것이다. 세번째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신도시뉴타운 열풍이었다. 특히 부촌인 용호1동에서 대참패를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5.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남구 을
대연1동, 대연3동,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재호(朴在昊)
41,005
1위

50.50%
당선
2
이언주(李彦周)
39,575
2위

48.74%
낙선
7
조호근(曺浩根)
616
3위

0.75%
낙선

선거인 수
114,836
투표율
71.54%
투표 수
82,159
무효표 수
963

21대 총선 부산 남구 을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투표율
(선거인/표수)
후보
박재호
이언주
득표수
(득표율)

41,005
(50.50%)

39,575
(48.74%)

+ 1,430
(△1.76)

82,159
(71.54%)

대연1동
47.64%
51.32%
▼3.68
62.53
대연3동[16]
52.77%
46.59%
△6.18
67.30
용호1동
45.04%
54.35%
▼9.31
70.56
용호2동
49.42%
49.87%
▼0.45
70.83
용호3동
51.03%
48.37%
△2.66
75.93
용호4동
55.10%
44.13%
△10.97
71.03
후보
박재호
이언주
격차
거소·선상투표
54.21%
41.57%
△12.64
관외사전투표
61.09%
37.60%
△23.49
국외부재자투표
70.25%
28.93%
41.32

남구 을 주요 아파트 개표 결과
정당


격차
(1위/2위)
후보
박재호
이언주
더블유
34.88%
64.58%
▼29.7
GS하이츠자이
35.19%
64.39%
▼29.2
대연 힐스테이트푸르지오
46.53%
52.81%
▼6.28
오륙도 SK뷰
47.45%
51.92%
▼4.47
남구의 인구수가 단일 선거구의 상한선 전후[17]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선거구(관할구역)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대연1동, 대연3동으로 관할 구역이 확정되었다. 20대 총선 당시 박재호 의원이 패배했던 우암동과 감만동[18]이 빠지고, 남구 갑의 이정환 후보가 이겼던 대연동[19]이 편입되면서 20대 총선 당시보다 민주당에 조금 더 유리한 구성이 되었다.

다만, 박재호 의원 본인은 이번 선거구 조정이 절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정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박 의원이 무려 20년 동안 용당동, 감만동, 우암동을 훑고 다니며 표 밭을 다졌고 초선 임기 중에도 낙후 지역인 우암동, 감만동 개선사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암동, 감만동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도와는 별개로 박재호 의원 개인에 대한 지지도는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거구 조정으로 인해 자신이 공 들였던 지역이 모두 갑 선거구로 넘어가게 되자 그 쪽 주민들이 직접 전화로 "니 가면 우짜노?" 이러면서 많이 섭섭해 했다고 한다.# 선거구가 선거 1달 전에 갑자기 바뀐데다 새로 들어온 대연 1, 3동 지역은 20년 동안 박 후보가 출마하면서 단 1번도 인연이 없었던 지역이었기에 새로 편입된 지역의 정치 지형이 민주당 쪽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해서 마냥 유리해졌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20]

지역구를 수성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이곳 현역인 박재호 의원이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아 재선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탈환해야 할 미래통합당서용교 전 의원이 사망하면서 새 후보를 찾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원래 중구·영도구 선거구에 출마할 예정이었던 이언주 의원을 공천했다. 그 밖에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조호근 후보도 출마한다.

출구조사 결과 50.7% : 48.8%로 현역 의원 박재호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 우세로 예측되었다. 실제 개표에서도 경합지답게 시시각각 순위가 뒤바뀌며 엎치락뒤치락 혼전 양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95%대에서 박재호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는데, 90% 정도 개표된 상황에서 MBC에서는 이언주 후보의 당선 확률을 71.7%로 예측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어쨌든 최종 결과 출구조사 결과와 비슷하게 50.5% : 48.74%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후보가 미래통합당 이언주 후보를 득표율 1.76%, 득표 수 1,430표 차로 신승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서 박재호 의원은 3당 합당 이후 최초로 부산 내 민주당 지지세가 비교적 강한 낙동강 벨트가 아닌 동부산 지역에서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이번 총선까지 통틀어 30년 동안 부산에서 재선 이상에 성공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박재호 본인을 포함해 사하구 을조경태, 북구·강서구 갑전재수, 사하구 갑최인호 의원까지 단 4명 뿐이다. 그런데 조경태, 전재수, 최인호는 모두 지역구가 낙동강 벨트 지역인 서부산에 있었다. 동부산에서 재선까지 성공한 인물은 현재까지 박재호 의원이 유일하다.

전체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대승했음에도 유독 영남권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총선 때 획득했던 낙동강 벨트 지역 5석을 모두 수성하면서 다시 한 번 낙동강 방어선의 건재함을 재확인한 것과 이 곳에서 당선된 박재호 의원, 울산광역시 북구의 이상헌 의원까지 낙동강 벨트 이외의 지역에서 당선된 의원이 2명 있어 동부산 진출 교두보 및 울산 진출 교두보는 남겨두는 데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듯 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박재호 의원은 대연3동에서 1,038표 차[21], 용호3동에서 276표차, 용호4동에서 605표 차로 승리했다. 이언주 후보는 대연1동에서 316표 차, 용호1동에서 2,060표 차,[22] 용호2동에서 43표 차로 승리했다. 여기까지는 이 후보가 박 후보를 500표 차로 앞질렀으나 관외사전투표에서 박 후보가 1,835표 차로 이겼고 거소 및 선상투표에서 45표 차, 재외투표에서 50표 차로 이기면서 합계 1,430표 차로 승리할 수 있었다.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사전투표[23] 따로 툭 떼어서 계산할 경우 18,555표 : 13,218표로 박재호 후보가 5,337표 차로 크게 이겼다. 그런데 선거 당일 투표에서는 22,450표 : 26,357표로 이언주 후보가 3,907표 차로 이겼다. 즉, 선거 당일 투표에 보수층 유권자들이 대거 결집하여 이언주 후보를 팍팍 밀어주었기에 그나마 1,430표 차까지 추격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사전투표에서 표 차가 너무 많이 벌어졌기에 따라잡긴 했지만 뒤집을 수는 없었고 그대로 박재호 후보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부촌인 용호동에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컸고, 이를 반영하듯이 용호1동에서 이언주 후보의 표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박재호 후보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우선 이곳에서 무려 5번이나 출마하면서 지역 기반을 잘 다진 것이 컸다는 평. 특히 본인 전화번호 알려주고 지역 주민이 콜하면 의견 개진하고 심지어 욕을 해도 무조건 응대해준다는 박재호식 밀착형 지역구 챙기기가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이언주 후보는 전략공천되어 온지라 지역 기반도 없다보니 그나마 상대측 후보보다 인지도가 더 높다는 후보 개인의 장점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이러한 인지도도 막말+철새 소리 듣던 이언주에겐 부정적인 요소가 더 높았다는게 패배의 요인이었다.

박 후보를 향한 고소, 고발 남발 등[24]으로 유권자들에게 찍힌 것도 한 몫 했다. 한편, 이언주의 원 지역구인 광명시 을 역시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원래 민주당 후보라 당선된 거였고, 그래서 이언주도 여차저차해 미래통합당으로 넘어오며 자기가 버린 광명시 을 재선에는 택도 없으니 부산으로 철새 짓하러 간 거라 당연히 지역 민심이 좋을 리 없었다.

때문에 이언주 개인으로서도 이번 패배는 정치적 재기 가능성에까지 의문을 던지는 엄청난 타격이 되었다. 변절자, 생계형 철새 등 온갖 조롱을 당하면서도 당선 하나만 보고 부산 남구 을로 향했건만, 그야말로 전통적인 보수 텃밭에서 패배했기 때문.[25] 즉, 상당수 보수 유권자들조차 이언주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지역구는 박재호, 비례대표는 미래한국당을 찍은 유권자들이 상당히 많았다.[26] 오죽하면 전원책이 차라리 수도권에서 떨어졌으면 정치적 생명력은 그나마 유지되었을거라고 평할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이언주가 여기 공천된 것은 20대 총선 당시 김문수가 대구 수성구 갑에 출마한 것과 비슷한 결과를 보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언주 본인은 사전투표 조작 음모론에 편승해 민경욱, 김소연, 김척수, 박용찬 등과 함께 법원에 선거 관련 증거보전 신청을 하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있다. 재검표로 당락이 바뀐 경우는 개표 부정이 판치던 군사정권 시절 얘기고[27], 문민정부 출범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당락이 바뀐 적이 없다. 과거 3표 차로 낙선한 문학진, 9표 차로 낙선한 박기억도 몇 번이나 재검표를 해봤지만 당락이 뒤바뀌지 않았는데, 이언주는 문학진이나 박기억보다 훨씬 큰 격차인 1,400표 넘는 차이로 졌다.# 1,400여 표 차란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당연히 결과가 뒤집히는 일 따윈 없었고 망신만 더 당하며 그대로 낙선했다. 이후 2021년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나오려고 준비한다는거 보면 정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



당선 확정 후 소감을 밝히는 박재호


5.6.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이미 남구의 인구가 단일 선거구인 동래구보다도 적어진 만큼, 합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28] 이후의 사항은 남구(부산 선거구) 문서 참조.



[1] 김무성의 부산 자택이 남구 용호동에 있었다. 출생은 남구 갑 지역인 용당동에서 출생했다.[2] 당시엔 우암동과 감만동이 있어서 민주당에게 더 불리했다.[3] 감만동과 우암동 재개발을 추진했었으나, 감만동과 우암동이 남구 갑으로 선거구가 개편되고 대신 대연1/3동이 편입되었다.[4] 물론 그 인지도가 좋은 인지도가 아니였고, 결국 이는 패배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5] 고향이 부산광역시 영도구라서 영도구로 내려올 생각으로 추정되지만, 문제는 거기엔 김형오의 비서로 시작해 영도구의원 경력이 있던 황보승희가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언주는 애당초 수도권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지역구 관리가 아닌 막말로 유명해진데 반해, 황보승희는 부산 내 거물들인 김형오, 김무성, 정의화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데다, 그리 평판들이 나쁘지도 않았기에, 설령 영도에서 경선을 치뤘더라도 황보승희에게 크게 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6] 이는 국회의원을 역임하다가 장관에 임명된 다른 의원들도 하나같이 겪는 고충들이다.[7] 물론 윗 동네처럼 20대 총선광진구 갑에서 내려온 김영춘 같은 사례도 있지만, 최소한 김영춘은 뚜렷하게 악영향을 줄 사건사고도 없었을 뿐더러 해당 지역구에서도 지역구 관리를 잘 해서 재선을 했었고, 부산에 내려올 때 자신의 자녀의 학교를 옮기는 등 해당 지역구를 위해 일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비친 데다, 무려 5년 가까이 지역구 관리를 하는 등으로 인해 평이 좋았다. 그런 사람조차도 해양수산부장관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지역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6] 거기에 당시 현역 시장이였던 오거돈의 지지율이 처지자 21대 총선에서 낙선해버린 마당에 좋은 성과는 없고 막말 논란만 한트럭이었는 데다 연고도 없고 평판도 나쁘고 지역구 관리 경험도 없는 이언주가 오는 걸 반가워할 리가 없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8] 단일 선거구로 합구[9] 선거구 재분리[10] 당선 이후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복당
[남구] 대연1동, 대연2동, 대연3동, 대연4동, 대연5동, 대연6동, 용호1동, 용호2동, 용호3동, 용호4동, 용당동, 감만1동, 감만2동, 우암1동, 우암2동, 문현1동, 문현2동, 문현3동, 문현4동[11] 옆동네 갑 선거구 역시 한나라당 김정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갑과 을 모두 보수정당 후보를 당선시켰다.[12] 다음 총선에서도 박재호 의원은 재선을 도전하였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후신인 미래통합당이 부산 전 지역을 차지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관리를 잘 한 덕분인지 재선에 성공하였다.[13] 그때 당시에는 대형 평형대가 많은 갓 지은 부촌 아파트 지역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14] 아직은 용호만매립지가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15] 감만동, 우암동, 용당동.[16] 부경대학교, 경성대학교가 있는 동네[17] MB정부 때부터 선거구 조정 1순위 지역으로 지목되고는 했었다.[18]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다.[19] 경성대, 부경대를 끼고 있는 대학가다.[20] 22대 총선에서 남구가 합구됨으로써, 박후보에게 유리했던 지역이 다시 넘어와서 지역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고 한다.[21] 대연 힐스테이트 푸르지오대연자이, 대연 롯데캐슬 등 대연3동에 위치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서 박재호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또 부경대학교경성대학교가 있어서 20대 표심도 많았다.[22] 특히 GS하이츠자이(용호1동 제9투표소, 이언주 64.39%)와 W(용호1동 제10투표소, 이언주 64.58%)에서는 이언주 후보가 크게 이겼고, LG메트로시티 아파트도 이언주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았다.[23] 거소 및 선상투표 + 관외사전투표 + 국외부재자투표 + 관내사전투표[24] 제대로 된 확인 사항 없이 자신의 불륜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박재호 후보 측 선거캠프 인물로 단정해 고소한 게 그 예시다. 사실 이 루머는 수 년 전부터 나온 것이다.#[25] 낙동강 벨트로 분류되는 서부산 지역을 제외하곤 부산에서 유일하게 미래통합당 후보가 낙선한 지역이었다. 그 뿐 아니라 애초에 이곳은 박재호 의원이 당선되기 이전엔 보수 정당이 내리 차지했던 곳이며 김무성무려 4선을 지낸 곳이다. 무슨 외부 요인 운운할 변명의 여지도 없는 것.[26] 미래한국당 43.75% 더불어시민당 28.19%. 물론 여권쪽이야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에 투표한 유권자도 상당하긴 했지만.[27]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정부 말인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구 을 선거구에서 당초 민주자유당 김용채 후보가 36표 차이로 당선되었으나 재검표 결과 민주당 임채정 후보의 표 98표가 김용채 후보의 표로 잘못 계산된 것이 밝혀져 당락이 뒤집힌 바 있다. 이로 인해 김용채 의원은 임기 시작50일 만에 의원직과 정무제1장관직을 내려놔야 했다.[28] 실제로 남구 갑 국회의원인 박수영 의원이 남구 을 지역의 이슈에 관여하고, 박재호 의원 역시 남구 갑 지역의 이슈에 참여하는 등 지역 내에서는 합구가 확정적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