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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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Rey del Fútbol de América, 통칭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는 남아메리카 국적 선수들의 한 해 활약을 종합하여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1971년부터 수여하기 시작했다. 1971년부터 1985년까지는 베네수엘라 메체인 '엘 문도'가 주관했고, 우루과이 메체인 '엘 파이스'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수여하고 있는 역사 깊은 상이다. 엘 파이스가 수여 주체가 된 후에는 남미 리그에서 뛰는 선수에게만 상을 준다.
2. 역대 수상자 일람[편집]
2.1. 엘 문도 주관[편집]
엘 문도가 주관하던 때에는 남아메리카 국적만 가지고 있으면 해외에서 뛰는 선수이더라도 이 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1983~1985년에는 남미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대상으로만 투표를 진행했다.
2.1.1. 엘 문도의 비공식 선정[편집]
'엘 문도'가 공식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한 것은 1985년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시상하지 않았을 뿐, 그 후에도 엘 문도는 1992년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올해의 선수를 선정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987년과 1988년은 남아메리카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대상으로만 투표를 진행했다.
2.2. 엘 파이스 주관[편집]
3. 고려사항[편집]
'엘 문도'가 주관하던 시절, 그러니까 1980년대 중반까지는 남미 리그와 유럽 리그의 수준이 비슷했다. 몇몇 시즌에는 오히려 남미 리그가 우세하기도 했다. 인터콘티넨탈컵의 결과 등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상은 최고의 유럽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와 상의 값어치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엘 파이스'가 이 상을 주관하기 시작하며 남미 리그 소속의 선수를 대상으로만 투표를 진행하게 되었고,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디에고 마라도나 등 유럽 리그에 진출한 톱클래스 선수들이 이 상의 후보에도 들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로서 1차적으로 상의 위상이 떨어졌고, 2차적인 타격은 다른 곳에서 왔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결정한 보스만 판결이 1995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자본을 유연하게 돌리는[4] 데 성공한 유럽 측의 축구판이 남미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이긴 하지만, 상기한 이유 때문에 보스만 룰 이후에 선정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상을 받기 더 쉬운 상황이었다.
[1] 이 상이 현역 시절의 마지막 개인 수상인데, 왜냐하면 1972년 봄에 눈 부상을 당해 커리어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고작 27살에 은퇴했다. 어쨌든 초대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다.[2] 소크라치스의 동생으로 유명한 선수이다.[3] 달레산드로의 모든것https://sk1571.tistory.com/642[4] 펠레가 정치계에서 일하던 시절 이런 분야와 관련된 브라질 축구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타파하고자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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