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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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기도 화성시[1] 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자는 방 방(房) 자를 쓰며, 이 한자를 쓰는 성씨는 남양 방씨이다.
2. 기원[편집]
남양 방씨의 비조는 중국 요 임금의 아들 단주인데, 요 임금은 아들 단주를 방읍(房邑)이라는 곳에 봉하였고, 단주는 성씨를 봉지의 지명에서 따와 방(房)씨가 되었다. 방읍은 훗날 청하(淸河)라는 이름이 되었고, 현재 중국 허베이성과 산둥성 사이의 랴오청시, 싱타이시 근방이라고 한다.
이 단주의 후손이 당태종(唐太宗) 대의 재상이었던 방현령(房玄齡)이고, 그 둘째 아들이 남양 방씨의 시조인 방준(房俊)이다. 643년, 고구려 보장왕은 당나라에 문물을 전해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때 방준이 고구려에 오게 되었다.
이후 고구려에 정착하면서 당성(唐城) 지역에 정착했고[2] , 그 일대가 훗날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가 됨에 따라 남양 방씨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서신면, 마도면 일대이다.
시조인 방준으로부터 중시조인 방계홍(房季弘) 이전까지 8대의 문헌이 없어져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족보에서 자신이 몇세손인가 셀 때는 이 사람으로부터 세면 된다. 시조 방계홍로부터 세자면 +8을 하면 된다.
3. 상세[편집]
중시조인 방계홍은 방준의 9세손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다.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되고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의 지위를 얻었다. 방계홍으로부터 선조가 살아온 땅을 관향으로 삼아 집안을 잇게 되었는데, 이 당시에는 남양이라는 지명이 없었으므로[3] 언제부터 남양 방씨라 칭했는지는 알 수 없다.
방계홍의 손자인 방정유는 수원으로 옮겨 수원 방씨의 시조가 되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당시 남양 방씨로 집계된 인구는 27,454명이고, 남원 방씨는 3,539명, 수원을 포함한 기타 본관을 쓰는 인구는 2,527명으로 집계되었으나, 남양 방씨 집성촌에 남원 방씨와 수원 방씨 집성촌을 포함하는 것을 보면 사실상 남양 단본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기에, 남양 방씨는 도합 33,520명으로 순수혈통으로 판단된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본관으로 본래는 중국 황실의 성씨로 남양 방씨는 모두 황족의 혈통이다. 따라서 중국 황실의 후손이며 당태종의 부마도위(황족)인 방준(房俊)이 남양으로 정착하면서 기원이 되었다. 조선조 문과 급제자 9명, 무과 급제자 9명, 사마시 34명 등 과거 급제자 52명을 배출하였다.
4. 후손[편집]
5. 분파[편집]
이 중 정산공파는 남원 방씨라고 하기도 한다.
6. 항렬[편집]
7. 집성촌[편집]
-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한림공파)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 (정산공파)
-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전곡리 (참봉공파)
-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대강면 (창평공파)
-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한림공파)
-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면 용산리 (사계공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흥리
-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 가야리 (사계공파)
-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학생공파)
- 경기도 수원시
8. 참고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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