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희

덤프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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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4 시즌 스쿼드
1 이치모리 · 2 카츠야 · 4 신노스케 · 5 에두아르두 · 6 코타 · 7 에우베르 · 8 키다(C) · 11 안데르송 · 13 류타(VC)
14 우네카 · 15 다쿠미 · 17 이노우에 · 18 코타 · 19 사네토 · 20 마테우스 · 21 이이쿠라 · 23 미야이치
25 요시노 · 26 유타 · 27 · 28 리쿠 · 29 남태희
30 타쿠마 · 31 후마 · 33 츠노다 · 35 세이고 · 36 무라카미 · 41 켄유 · 50 오비 · # 아마노 준
파일: 국기.svg 공석
* 이 틀은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스쿼드에 변동이 생기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시길 바랍니다.
* 타 팀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남태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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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AFC 챔피언스 리그 로고.svg

2018 · 2019



요코하마 F. 마리노스 No. 29
남태희
南泰煕 | Nam Tae-hee

출생
1991년 7월 3일 (32세)
경상남도 진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가족
부모, 아내 이나영
딸 남채아(2017년 10월 29일생)
아들 남유준(2019년 11월 20일생)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1]
신체
175cm, 73kg
학력
금산초등학교 (1998~1999)
진주봉래초등학교 (1999~2004)
현대중학교 (2004~2007)
현대고등학교 (2007)
유소년
울산 현대 U-15 (2004~2007)
울산 현대 U-18 (2007)
레딩 FC (2007~2008)
프로 입단
2009년 발랑시엔 FC
소속 구단
발랑시엔 FC (2009~2011)
레크위야-알 두하일 SC (2012~2019)
알 사드 SC (2019~2021)
알 두하일 SC (2021~202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3~ )
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2]
8
요코하마 F. 마리노스[3]
29
국가대표
54경기 7골 (대한민국 / 2011~2022)
병역
예술체육요원[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클럽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2.2.1. 2009-10 시즌
2.2.2. 2010-11 시즌
2.2.3. 2011-12 시즌
2.3. 알 두하일 SC(舊 레크위야 SC) 1기
2.3.1. 2011-12 시즌
2.3.2. 2012-13 시즌
2.3.3. 2013-14 시즌
2.3.4. 2014-15 시즌
2.3.5. 2015-16 시즌
2.3.6. 2016-17 시즌
2.3.7. 2017-18 시즌
2.3.8. 2018-19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5. 대회 기록
6. 여담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현재,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출생으로 진주봉래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울산 현대의 U-15 유소년 구단인 현대중학교와 U-18 유소년 구단인 현대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주최한 해외 유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레딩 FC 유스에서 1년간 교육을 받은 뒤 당시 같이 교육을 받았던 2명의 멤버중 바로 국내로 귀국했던 지동원을 제외하고, 김원식과 함께 프랑스발랑시엔 FC에 입단하게 되었다.


2. 클럽 경력[편집]



2.1. 프로 데뷔 이전[편집]


현대고등학교 중퇴 후 2007년 대한축구협회의 주도 하에 추진한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 5기에 선발되어 김원식, 지동원과 함께 레딩 FC 유소년 팀에 입단하였고, 2008년 레딩 FC U-20 팀과 입단 제안을 받기도 하였다. 레딩 FC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잠재력을 인정받았으며, 레딩 FC의 핵심 선수인 스티븐 헌트는 "지금껏 지켜본 어린 선수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라고 호평하기도 하였다.


2.2. 발랑시엔 FC[편집]


2009년 1월 프랑스 리그 1의 발랑시엔 FC와 아마추어 선수 계약을 맺었고, 리그 규정상 만 18세가 되는 그 해 7월 발랑시엔 FC 1군과 입단 계약을 맺어 대한민국 축구 선수 사상 최연소로 유럽 리그 1군 무대에 진출한 선수가 되었다.


2.2.1. 2009-10 시즌[편집]


2009-2010 시즌 AS 낭시와의 홈 개막전 경기를 통해 리그 1에 데뷔하여, 대한민국 축구 선수 사상 최연소[5]로 유럽 리그 1군 무대에 데뷔한 선수가 되었다. 2019년 1월 13일 이강인이 17세 332일로 데뷔하며 기록을 경신하여 남태희는 2위가 되었다.


2.2.2. 2010-11 시즌[편집]


발랑시엔의 감독 필립 몽타니에의 신임을 받으며 19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에서 준주전급 선수로 뛰었다. 특히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선발출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팀의 공격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고, 코너킥을 도맡아 차며 여러차례 도움도 기록했다. 리그 18경기 출전, 컵대회 포함 21경기에 출전하며 3개의 도움을 기록해 프로 데뷔 첫 공격 포인트도 올린 시즌이다.


2.2.3. 2011-12 시즌[편집]


하지만 감독 교체 이후 발랑시엔에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3경기에 나섰으나 대부분 교체출전이었고, 결국 보다 많은 경기에 뛰기 위해 팀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프랑스 내 이적을 먼저 알아보며 리그 2RC 랑스와 연결되었으나 이적이 불발되었고 결국 카타르 스타즈 리그 팀인 레크위야 SC로 이적하였다.


2.3. 알 두하일 SC(舊 레크위야 SC) 1기[편집]


20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황혼기의 선수들에게나 어울릴법한 중동행이 결정되자 유럽에서의 도전을 마다한다는 비난 여론도 생기기는 했으나, 이적 협상 과정에서 파리 생제르맹 FC 진출 조건[6] 또한 받은 이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져 비난은 일단락되었다.#그러나 오랜 시즌동안 파리 진출은 감감무소식이었고 다른 팀으로 이적까지 한 이력이 있기에 파리 진출은 물건너갔다 보는게 맞을듯 여담으로 남태희가 레크위야 감독으로 맞은 인물은 자멜 벨마디[7]로, 선수 황혼기시절 발렝시엔에서 남태희와 잠시 한솥밥을 먹은 인연이 있었고, 발렝시엔에서 은퇴하며 레크위야 감독으로 곧바로 부임했다.

본래 레크위야 SC 이름의 소속팀으로 활동했지만, 한창 소속 중이던 와중 레크위야가 구단 합병 작업 후 알 두하일로 개명함으로서 알 두하일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2.3.1. 2011-12 시즌[편집]


이적 후 첫 시즌에 10경기 5골을 기록하며 순조롭게 카타르 스타즈 리그에 적응하였다.


2.3.2. 2012-13 시즌[편집]


2012-2013 시즌에는 19경기 6골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차지하였다.


2.3.3. 2013-14 시즌[편집]


2013-2014 시즌에는 24경기 12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서 레크위야의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2.3.4. 2014-15 시즌[편집]


2014-2015 시즌도 리그 및 컵대회에서 12골을 기록했으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맹활약 중이다.

그런데, 2015년 5월 7일에 원정 경기로 치뤄진 알 나스르와의 경기가 끝난 후 상대 선수인 우루과이 국대 출신 파비앙 에스토야노프에게 뒤에서 마구 구타당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 뜬금포로 파비앙이 비겁하게 남태희 선수 뒤쪽에서 다가와 뒤통수를 공격하는 바람에 대응할 겨를도 없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어도 보란듯이 먼저 마구잡이로 뒤에서 때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방송으로 나왔고, 알 나스르 구단주인 파이살 빈 투르키 왕자는 협회 징계랑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구단에서 에스토야노프의 급여를 절반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협회에서도 벌금 및 겨우 6경기 출전 금지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유사 케이스들과 비교 해봤을 때 상당히 약한 솜방망이 징계다. 참고로 브라질 축구선수 브란당이 2012년 7월에 티아고 모타를 머리로 가격했을때 그 대가로 1개월 동안 감옥에서 옥살이, 6개월 출전정지, 2700만원의 벌금을 치렀다. 왜 에스토야노프가 뜬금없이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남태희선수를 쫓아와 뒤에서 비겁하게 공격했는지 의문이 많았는데, 남태희 선수가 당일 경기에 3골을 넣는 우수한 활약을 보여서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것으로 추측된다.

2.3.5. 2015-16 시즌[편집]


2015년 10월 2일, 레크위야와의 4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이후 리그에서 3경기에서 5골을 넣는 대활약을 하며 팀 주전으로 완전하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해가 바뀐 2016년 6월 다시 1년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2020년까지 레크위야에 남게 되었다.

2.3.6. 2016-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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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열린 알 샤하니야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레크위야에서의 63호 골을 기록, 세바스티안 소리아를 넘고 레크위야 통산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다. 이 정도면 레크위야의 레전드로 남기에도 충분한 듯 하다. 이후로도 골을 계속 기록하며 2017년 4월 2일에 벌어진 알 제이쉬전에서도 1골을 기록하며 리그 13호골, 레크위야 통산 70호골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 득점 기록을 계속해서 갱신 중. 경기를 관람했던 카타르 거주 교포들의 증언에 의하면 레크위야 서포터들이 남! 남!이라고 부르며 환호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25라운드에서는 후반 종료 직전 기적같은 역전골을 넣으며 리그 종료 1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지은 주역이 되었다.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도 맹활약하며 4월 26일 알 자지라 원정에서 2골을 넣으며 3:1 승리주역이 되었다. 레크위야는 이 승리로 조 1위로 16강 진출을 거의 확정. 거기에 시즌이 끝난 후에는 유력한 경쟁자였던 차비 에르난데스를 제치고 2016-2017 시즌 카타르 스타즈 리그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

2.3.7. 2017-18 시즌[편집]


2017~18 시즌도 높은 폼을 유지하며 12골로 리그 득점 7위이자 팀내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다. ACL 본선에서도 환상적인 골을 비롯해 수차례 위협적인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선보여 팀의 맹활약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4월 말에 프랑스 언론과 카타르 현지 언론에서 스타드 렌이 조만간 공식적으로 영입 제안을 할 것이라는 보도와 해당 구단 측에서 선수에게 정식 오퍼를 넣었다는 보도가 일제히 헤드라인을 탄 적이 있었고, 에이전트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보도와 관련 사실들을 모두 인정했다. [8]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남태희는 여태껏 구단과의 협상에서 매우 이상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해왔고 소속팀과의 계약 협상 전에 항상 유럽이적설에 휘말린 바 있다. [9]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이적시장 당시 선수 측에서 직접 유럽진출을 모색한다는 방향의 입장을 취했지만, 시즌 개막 후 곧내 잠잠해지더니 이듬해 여름 계약기간 4년 연장 및 총연봉 130억원이라는 믿기지 않는 조건으로 현 소속팀과 장기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

물론 이번 스타드 렌의 오퍼는 이태껏 수차례 보도되었던 이적설들과는 달리 공식적이라는 요소와 전 감독과의 인연이라는 직접적인 요인이 작용했으므로 절대 무시할 바는 못되며, 잔여 계약 기간이 2년 남은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분명 지금이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선수 본인에겐 이적하기 최적의 순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선수의 관심이 매번 연봉과 계약 조건에 포커싱 되어있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유럽에 재진출할 확률은 현실적으로 극히 낮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도 현재 남태희가 알두하일에서 받는 35억 수준의 연봉을 스타드 렌의 재정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다. 그래도 팬들은 고명진처럼 한번 도전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많았다.

2.3.8. 2018-19 시즌[편집]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돼 유럽에 갈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2018년 11월 A매치 기간 호주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A매치 경기에서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며 아시안컵은 물론, 유럽 진출의 꿈도 무산되고 말았다.

남태희는 계약 만료에다가 장기 부상을 당한데다 팀도 세대교체를 진행하며 그렇게 알두하일과 작별을 하게 됐다.

2.4. 알 사드 SC[편집]


부상의 여파로 결국 유럽팀이 아니라 2019년 2월 8일 알 사드 SC와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대표팀 동료이자 1년 전 알사드에 합류한 정우영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2살 차이인 둘이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학창시절 울산을 대표하는 현대중-고 라인의 남태희와 학성중-고 라인의 정우영은 각 학교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군림했다. 그리고 둘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알 사드와 계약은 차비 에르난데스가 적극 추진한걸로 화제가 되었다. 2019-20 시즌 알 사드 감독 취임이 예정되어있는 차비는 자기가 생각한 시즌 전술구상에 남태희가 맞다고 생각해서 구단에 남태희 영입을 줄곧 요구했다.

2019년 8월 6일 새로 부임한 차비 에르난데스의 감독 데뷔전인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알 두하일 SC전에서 선발 출전하며 부상 후 8개월 만에 첫 공식전에 나섰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여 전반전 선제골을 어시스트 했다.

2019년 9월 16일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알 힐랄전에서 전반 19분 역전골을 기록하여 팀 승리에 기여했으나 1,2차전 종합 스코어에서 밀려 팀은 아쉽게 대회에서 탈락했다.

2019년 10월 5일 리그 6라운드 알 라이안 SC전에서 19-20 시즌 리그 첫골을 기록했다.

19-20시즌에는 부상등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을 못했다. 리그 15경기 3골 2도움(전체 기록은 9골 5도움)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다.

20-21시즌을 앞두고 비야레알의 에이스였던 산티 카솔라가 팀에 합류했다. 카솔라가 중미로 남태희가 공미로 듀오를 이뤄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8경기 출전하여 리그 7골 4도움을 기록 중이다.

이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향후 거취가 주목되는데 국내로 복귀할지 중동에 잔류할지 아니면 중국,일본 등 다른 루트로 진출할지 또는 유럽으로 갈지가 주목된다.


2.5. 알 두하일 SC 2기[편집]


그러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가 1년 남짓 남은 점, 카타르 리그 최고 선수로 대접받으며 워낙 고액 연봉을 수령하는 점 등 카타르를 쉽게 떠날 조건은 아니었고, 결국 자신의 카타르 데뷔 팀인 알 두하일 SC로 전격 리턴한다.[10][11][12]

다가오는 시즌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동료였던 센터백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와 같은 소속팀으로 뛰게 되었다.

등번호는 발렝시엔과 알 사드 그리고 알 두하일 초창기 시절에 달던 19번을 선택했다.

현재 프리시즌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어느정도 팀 내 입지를 확고히 잡았다. 그러나 벤투호 소집 중 얻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초반 한 달 이상 결장했다.

이후 복귀했고, 8라운드 카타르 SC전에서 동점골로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

11라운드 알 아힐 SC전에선 1득점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이어진 12라운드 알코르전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며 2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17R 알라이얀전, 18R 알자말 SC전, 에미르컵 16강 알코르전까지 2월에만 3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했다. 특히, 에미르컵 16강에선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4월 22일 ACL 5차전과 6차전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7월 카타르 스포츠 매체 스타드 도하에 따라 남태희가 2022/2023 시즌을 마지막으로 알 두하일와 결별하고 가족과 한국으로 이미 귀국하면서 K리그, UAE 여러 구단에서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사실 돈이야 지금까지 충분히 벌었고 자식들의 교육과 본인의 이제 적지 않은 나이도 겹쳤기에 처음으로 K리그에서 뛸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에선 여전히 그의 연봉을 감당하기가 부담되었는지 7월 28일에 J1리그요코하마 마리노스로 이적한다는 단독 보도가 나왔다.

2023년 7월 31일, 알 두하일 측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남태희와의 계약 만료를 공지했다. 공지글에는 두 번에 걸쳐서 10년을 넘게 뛴 그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을 같이 첨부했다.


2.6. 요코하마 마리노스[편집]


2023년 8월 1일, 구단 측 홈페이지를 통해 남태희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처음으로 J리그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남태희/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볼을 다루는 기술, 특히 드리블 수준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에서 견줄 선수가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발바닥으로 볼을 긁는 컨트롤이 일품이며 주력 역시 굉장히 좋은 편. 경우에 따라 플레이 메이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를 보는 시야와 패스 실력이 준수하다. 그래서 미친 날엔 그야말로 카타르 메시, 남자르라는 소리가 나온다. 종종 2 : 1 패스 플레이를 통해 수비진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플레이도 보여준다. 속도 조절에도 능해 천천히 움직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만으로 수비를 벗겨먹을 때도 있다. 킥력 또한 준수하여 프리킥을 전담하기도 하고, 주발은 오른발이나 왼발도 나쁘지는 않으며, 오프더볼 센스도 준수해 빌드업을 보조하는 역할도 괜찮게 소화하는 편이다. 국내에선 희소가치 높은 크랙 유형에 근접하는 자원.

문제점은 크게 ‘판단력’, ‘피지컬’ 정도로 정리된다. 특히 높은 수준의 수비진을 상대할 때 약점이 도드라진다. 월드컵 2차 예선 아시아 수준의 수비에선 압박을 할지 지역방어를 할지 협동 수비를 할지 판단하고 준비하고 부분전술을 실행하는데에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그 시간 동안 남태희는 공을 패스를 할지, 드리블로 미완성된 수비진을 헤집어 놓을지, 빠르게 치고 나갈지 판단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그 판단으로 크랙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예선 수준의 팀들은 더 빠르게 수비전술을 실행하기 때문에 공격수에게 노출하는 시간 여유가 더 적은데, 남태희는 판단의 속도가 다소 늦다보니 원터치로 풀어가야할 때 드리블을 한다거나, 드리블을 해야할 때 백패스를 한다거나 하는 판단미스을 자주 일으킨다. 카타르 리그 경기템포가 느리기도 하고, 또 본인이 더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환경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보니 현재의 상태에 고착된 듯 하다. 그리고 탈압박 능력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데 특히 강팀이나 압박을 잘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무조건 공기화에 백패스 머신이 된다.

플레이에서 이 판단력의 부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퍼스트 터치인데, 남태희는 공을 받으면 거의 무조건 공을 멈춰놓고 플레이를 이어나간다. 선수들은 보통 적절한 퍼스트 터치를 이용해 공을 빈 공간에 놓고 전개를 한다. 압박과 같은 수비전술이 점점 세밀해지고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싸움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진 현대축구에서 이는 모든 상황에서 너무나도 큰 이점을 가져온다. 그래서 때때로 퍼스트 터치가 길어보이거나 투박해 보여도 경기의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플레이를 가져올 수 있기에 선수들이 이런 퍼스트 터치를 가져간다. 남태희는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퍼스트 터치를 가져가면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거의 항상 드리블로 수비수와 대치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물론 남태희의 공 다루는 실력은 참으로 높은 수준에 있고, 이렇게 수비수(들)를 뚫고 전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의 기본 옵션으로 공격 전개의 템포가 죽고, 어떤때는 좋았던 전개가 통째로 날아간다. 아이러니하게 팀의 플레이를 희생시키고 본인의 개인기량을 부각시키는 플레이를 무의식적으로 이어가게 되는것. 이러한 단점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요코하마 참사이다.

이로 인해 발기술과 드리블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온더볼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편이다.

몸싸움도 그리 강하지 않다. 물론 개인차 및 한계는 있겠지만, 피지컬은 노력과 훈련 여하에 따라 나아질 수는 있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박주영도 모나코로 이적해서는 그 거친 프랑스 리그앙에서 피지컬을 키워가며 철저하게 현대 축구의 원톱 롤을 수행했다. 다만 그 대가로 유소년 레벨과 K리그에서의 기술적인 다재다능함이나 날렵함을 다소 상실했다는 평도 있기에, 장점을 보여주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선수 입장에서 쉬운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러모로 이재성과 비교해보면 재밌는데, 비슷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두 선수는 모두 몸싸움에 약점을 가지지만 남태희는 빠른 주력과 발기술을 무기로 삼았고 이재성은 남태희에 비해 발기술이나 주력이 좋진 않지만 대신 빠른 판단과 지능적인 플레이, 왕성한 활동량을 무기로 삼았다. 참고로 빠른 발과 정교한 발기술, 지능적인 플레이 모두 갖춘, 즉 이 두 선수을 합쳐놓은 플레이를 22살에(!) 했던 선수가 있다.[13]

이 때문에 대표팀에서는 김신욱 과 함께 약팀의 밀집 수비를 깨부수는 소위 양민학살이 가장 특화된 역할이다. 유럽파 주전 공격수인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모두가 상대방의 뒷공간을 이용해 침투하는 스타일이라 내려앉은 두줄 수비를 뚫는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남태희는 아시아 최종예선 팀 수준만 되도 위 상기된 단점에 버로우 타기 때문에 김신욱이 좀 더 우선시 되고있다. 때문에 선수로서의 황혼기까지도 참여한 A 대표팀 메이저 대회는 2015 AFC 아시안컵이 유일한 상황.

하지만 벤투호에 들어오면서부터 입지가 바뀌었다. 벤투는 상대팀의 밀집수비를 높이와 힘보다는 빠르고 잦은 좌우 전환으로 부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김신욱의 활용도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태희는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적 성항의 중앙미드필더로는 이재성에게, 세컨톱으로서는 정우영 등에게 밀리는 모양새지만 남태희는 꾸준히 벤투호의 인재풀에 들어오곤 하여 벤투호의 황태자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장밋빛 분위기도 끝까지 이어오진 못하고 2021년 9월을 마지막으로 이동경과 정우영 등에 입지를 내주며 다시금 월드컵 코앞에서 낙마하고 만다.

이처럼 장단점이 명확했던 탓에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우대하던 홍명보호조차 남태희만은 끝내 외면했을 정도였으며, 그래도 희소가치 자원으로서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벤투호 가릴것 없이 신임 감독 부임 초반엔 눈에들어 쏠쏠히도 활용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플랜에서 멀어지고 메이저 대회 엔트리에 낙마하고 마는 일명 '개업화환 선수'로 굳어져버린 상황이다. 2차예선, 약체와의 친선전에서는 자주 기용하고 나름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지만 그다음 강팀과의 친선전, 최종예선에서 활약이 미미해지고 월드컵 본선에도 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5. 대회 기록[편집]



5.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올림픽 축구 동메달: 2012


5.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5


5.3. 통산 성적[편집]



5.3.1. 국가대표[편집]


  • 2021년 6월 9일 기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FF2E3C 20%, #FF2E3C 80%, #b71d27)"
소속 대표팀 }}} ||
연령
[1] 파라과이 전에서는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삼각 편대로 뛴 바 있다. 즉,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것. 본 포지션이 아니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으나 전반에는 그야말로 갓태희였다. 후반에는 지쳐서인지 조금 플레이가 쳐져 있었다.[2] 조광래호에서 데뷔 후 19번을 자주 사용하다가 여러 번호를 거쳐 박주영이 대표팀과 멀어진 슈틸리케호에선 10번을 자주 달았다. 그러나 신태용호에선 대표팀에서 입지가 애매해져 이재성에게 10번 자리를 내줬고, 이후 이재성이 소집되지 않을 때만 10번을 달고 나머지는 주로 8번을 단다. 그래도 대표팀에서 애매한 입지에 비해 가끔 소집되면 기존에 8번을 썼거나 쓰게 될 선수를 밀어내고 8번을 다는 거 보면 최소한의 입지는 보장받는 듯하다.[3] 발랑시엔 FC - 19번
레크위야-알 두하일 SC - 19번, 10번, 25번
알 사드 SC - 19번, 9번
[4]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5] 18세 36일.[6] 레크위야와 파리 생제르맹 모두 카타르 왕실 가문이 구단주로 위치해있기에 가능성 있는 트레이드였다. 2021년 시점에서야 리오넬 메시 등 슈퍼 스타들이 즐비한 팀이 되어버리긴 했어도 당시로선 떠오르는 구단 정도였기에 충분히 비빌 수 있는 뎁스.[7]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8] 남태희를 3년 남짓 지도해본 경험이 있는 현 스타드 렌의 감독 사브르 라모우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적지 않은 기간동안 구단 관계자들이 남태희를 직접 관찰해왔다는 후문이다.[9] 이러한 언론발이 에이전트의 언플인지, 선수를 관찰중인 구단들의 정식 관심인지는 당사자들밖에 모르는 사실이니 루머 확산에 주의하자.[10] 한편으로 몇몇 국내팬들은 이번 이적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축구에 대한 이해도와 개인 기술을 가지고도 카타르에서 머물고 있는것에 야망이 없다며 실망하는 반응도 있었다.[11] 하지만 어느 리그에서 뛰는 지는 전적으로 선수 개인의 선택이다. 당장 연봉 40억 이상을 줄수있는 유럽 클럽은 극소수이고, 연봉을 절반 이하로 깎는다고 해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 실제 EPL을 제외한 대부분의 리그들은 상위 몇몇 클럽을 제외하면 재정상태가 썩 여유롭지 못하다. 이미 카타르 리그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가진 선수 입장에서 굳이 모험수를 던질 필요도 없고 연봉도 절반이하로 깎인다고 생각하면 누가 쉽게 도전할 수 있을까?[12] 간단히 말해서 주전보장을 해주면서 지금연봉의 최소 절반이상을 준다는 유럽팀이 없었다고 보면 된다. 선수가 경기를 뛰어서 경기감각을 유지하는것이 중요한데 카타르리그에서 최고의 스타수준 대우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입장에서 굳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팀에서 주전보장되지 않는다는 상황에 연봉까지 대폭 깎이는 상황이라면 유럽리그로 이적하는것은 젊을때 반짝 벌어야하는 운동선수 입장에서 쉽게 선택할수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남태희는 10여년간 고액연봉을 받아왔으니 반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는 직장 선택의 자유가 있기에 돈을 선택하던, 박지수나 구자철처럼 도전을 선택하던은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굳이 변호를 하자면, 유럽 가서 경기를 못 뛸수도 있기에 수준을 낮춰가는 선수들은 남태희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설기현이 있는데, 설기현은 남태희와 실력이 비교조차 되지 않는데도 자리 보장을 원했고, 이런 경우는 종목 가리지 않고 많다.[13] 이렇게 쓰면 이 두 선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청용이 엄청난 것 같겠지만 또 장단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킥력 같은 부분이 있다.
경기 }}} ||
득점
대한민국
U - 17
4
0
U - 20
0
0
U - 23
9
2
A 대표
52
7
통산
65
9


5.4. 주요 개인 수상[편집]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 도움상: 200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 최우수선수상: 2006
  • 카타르축구협회 선정 카타르리그 MVP: 2016-17


6. 여담[편집]


  • 2016년 6월 결혼[14]과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잠시 귀국하여, 4일 결혼식을 올린 후 13일에 53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훈련을 마치고 다시 레크위야로 합류했다. 생활관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안에서는 장기와 알까기, 족구의 1인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이미지보다 친한 동네 형이라는 느낌도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훈련이 끝난 후 자기 생활관 동기들에게 밥[15]도 사주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훈련소 내에서도 동기들과 붙임성 좋게 지냈던 듯.[16] 그리고 1년 뒤 득녀를 하면서# 현재는 슬하에 1남1녀가 있다.

  • 만약 K리그에 입성한다면 가고 싶은 팀은 본인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울산 현대라고 밝혔다.[17] #

  • 나름 국대 경력이 있음에도 월드컵 대표로 한번도 뽑히지 못해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을것으로 보였는데, 조원희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포르투갈과의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3차전 경기에 직접 직관을 가서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팬의 입장에서 순수히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영권한테 이전 양갈비를 사준 덕분에 골을 넣었다는 설명은 덤


7. 둘러보기[편집]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sv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3 시즌 선수 명단

[ 펼치기 · 접기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3 시즌[주의]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1
파일:일본 국기.svg
GK
이치모리 준
Jun Ichimori
1991.07.02
182cm, 77kg

2
파일:일본 국기.svg
DF
나가토 카츠야
Katsuya Nagato
1995.08.25
173cm, 73kg

4
파일:일본 국기.svg
DF
하타나카 신노스케
Shinnosuke Hatanaka
1995.08.25
184cm, 80kg

5
파일:브라질 국기.svg
DF
에두아르두
Eduardo
1993.04.27
186cm, 80kg

6
파일:일본 국기.svg
MF
와타나베 코타
Kota Watanabe
1998.10.18
165cm / 61kg

7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에우베르
Élber
1992.05.27
170cm, 70kg

8
파일:일본 국기.svg
MF
키다 타쿠야
Takuya Kida
1994.08.23
170cm / 64kg
주장
11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안데르송 로페스
Anderson Lopes
1993.09.15
185cm / 82kg

13
파일:일본 국기.svg
DF
코이케 류타
Ryuta Koike
1995.08.29
170cm, 67kg

14
파일:일본 국기.svg
FW
우에나카 아사히
Asahi Uenaka
2001.11.01
179cm, 75kg

15
파일:일본 국기.svg
DF
가미지마 다쿠미
Kamijima Takumi
1997.02.05
185cm, 80kg

17
파일:일본 국기.svg
MF
이노우에 겐타
Kenta Inoue
1998.07.23
171cm, 69kg

18
파일:일본 국기.svg
MF
미즈누마 코타
Kota Mizunuma
1990.02.22
176cm, 72kg

19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네토 유키
Yuki Saneto
1989.01.19
179cm, 72kg

20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얀 마테우스
Yan Matheus
1998.09.04
170cm / 71kg

21
파일:일본 국기.svg
GK
이이쿠라 히로키
Hiroki Iikura
1986.06.01
181cm, 71kg

23
파일:일본 국기.svg
FW
미야이치 료
Ryo Miyaichi
1992.12.14
183cm, 70kg

25
파일:일본 국기.svg
MF
카이나 요시오
Kaina Yoshio
1998.06.28
168cm, 63kg

26
파일:일본 국기.svg
DF
고이케 유타
Yuta Koike
1996.11.06
170cm, 64kg

27
파일:일본 국기.svg
DF
마츠바라 켄
Ken Matsubara
1993.02.16
180cm / 77kg

28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마네 리쿠
Riku Yamane
2003.08.17
173cm, 65kg

2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남태희
Nam Tae-Hee
1991.07.03.
175cm, 73kg

30
파일:일본 국기.svg
FW
니시무라 타쿠마
Takuma Nishimura
1996.10.22
178cm, 76kg

31
파일:일본 국기.svg
GK
시라사카 후마
Fuma Shirasaka
2002.09.18
180cm, 74kg

33
파일:일본 국기.svg
DF
츠노다 료타로
Ryotaro Tsunoda
1999.06.27
183cm, 77kg

35
파일:일본 국기.svg
MF
사카키바라 케이고
Keigo Sakakibara
2000.10.09
170cm, 60kg

36
파일:일본 국기.svg
FW
무라카미 유우키
Yuuki Murakami
2000.12.19
178cm, 72kg

41
파일:일본 국기.svg
FW
스기모토 켄유
Kenyu Sugimoto
1992.11.18
187cm, 79kg

50
파일:일본 국기.svg
GK
오비 파우엘 오빈나
Powell Obinna Obi
1997.12.18
193cm, 85kg

구단 정보
감독:공석 / 홈 구장:닛산 스타디움
출처:요코하마 F. 마리노스 홈페이지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스쿼드에 대한 간략한 틀은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또한 이 틀을 수정할 때는 여기도 같이 수정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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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때 결혼식으로 인해 6월 국가대표 평가전을 6월 1일 경기만 소화하고 귀국했다.[15] 해운대구 좌동 NC백화점 애슐리[16] 이때 같은 런던올림픽 멤버였던 기성용, 윤석영, 박종우와 같은시기에 입소했다.[17] 참고로 남태희는 울산 유스인 현대중, 현대고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