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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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명목상 행정구역 보기[다]
[주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OO특별/광역시'라고 표기하는 것과 달리 'OO직할/특별시' 식으로 하지 않고 'OO시' 라고 표기한다.
[가]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상으로는 '직할시'만 명시적으로 존재하며, 평양시,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를 모두 동급의 직할시(혹은 특별시)로 간주한다.
[나] 북한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해방지구는 명목상 행정구역일 뿐 실질적인 광역행정구역이 아니다.
[다] 북한은 이북5도위원회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변화를 인정하므로 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 틀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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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틀:국기|
]][[틀:국기|
]]
북한특별시


남포시
南浦市
{{{-1 Nampho City






시소재지
항구구역 선창동 일대[1]
하위 행정구역
5구역 2
면적
1,295㎢
인구
약 983,660명[2]
인구밀도
약 1,186.56명/㎢
당위원회 책임비서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리재남
인민위원장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송승철
최고인민회의

파일:조선로동당 한글.png

25석[* ]


1석[3]
지역번호
039
ISO 3166
KP-14
1. 개요
2. 역사
2.1. 역대 책임비서/당위원장
3. 경제
4. 교통
5. 기후
6. 북한 기준 행정구역
7. 남북통일 이후 전망
8.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9. 시설
10.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진남포/남포
평안남도 진남포시[4] / 남포시[5]
영어
Jinnampo City / Nampho City[6]
러시아어
Нампхо
중국어
南浦(nánpǔ)
일본어
南浦(ナムポ[7] / なんぽ[8])

북한 서부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행정구역 관내 인구 기준으로 북한 제2의 도시.[9] 가장 최근의 전면적인 북한 지리 자료인 2008년경의 《조선향토대백과》 자료로 인해 현재도 평안남도 소속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2010년 한국의 광역시에 비유할 수 있는 도급의 도시가 되었다. 인구는 2008년 기준 약 98만 명. 최근에는 114만 명이라는 통계도 눈에 띄는 편. 왜냐하면 2008년 당시에는 특급시로 격하된 이후라 강서구역, 대안구역, 천리마구역이 군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였지만 2010년 이후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이들 군이 다시 구역으로 편입된 것은 물론 온천군까지 편입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2018년에 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요경제지대들>이라는 책자에서는 남포시의 인구가 근 100만 명이라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북한 당국은 남포시의 인구를 98만 명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역사[편집]


시기
당시 행정구역
고려시대 ~ 조선시대
삼화현
대한제국
평안남도 삼화부
평안남도 삼화군(1903~1906)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진남포부
1945년
평안남도 진남포시
1952년
평안남도 남포시
1978년
대안시 신설
1979년
남포시(직할시)
2004년
평안남도 남포시(특급시)
2010년
남포시(특별시)

고구려 초중기부터 중요한 도시였는지, 덕흥리 고분이나 강서삼묘 등 고구려 대형 고분이 많다. 고분 벽화 중 많은 수가 남포의 강서구역에 있는 고분들이 출처다. 하지만 정작 고구려가 이곳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고려 때부터 삼화현(三和縣)이라 불렸다. 대한제국 시기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삼화부(三和府)로 승격되었고 1903년 삼화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906년에 다시 삼화부로 승격되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진남포부(鎭南浦府)로 개칭되었다. 1914년 개항장 외곽 지역(삼화면 등)을 용강군에 넘겨주었다.

8.15 광복 이후 북한 치하에서도 1951년까지는 진남포라고 불렸다. 대한민국의 명목상 행정구역인 이북 5도 체제 하에서는 여전히 '진남포시'이다.관련자료

본래 대동강 하구의 작은 어촌이었으나, 진남포의 개항 이후 철도가 깔리고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강점기 시절, 평양의 부속 항구로써 그 무역량은 부산인천에 이은 전국 3위의 거대 항구였다고 한다. 대동강 하구에 면한 지리적 조건은 유리하지만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가 커서 선박의 출입은 불편하다.

현재도 북한 무역의 대부분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도시. 북쪽으로는 평양시와 인접하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수도를 관통하는 강의 하구에 있어 수도의 외항 역할을 한다는 점이나 엄청난 조수간만의 차이 때문에 갑문식 독을 설치했다는 점, 무엇보다 변동이 있긴 하지만 광역행정구역으로 분리되기도 했다는 점 등이 남한의 인천광역시와 비슷하다.

1979년 12월에 남포시가 대안시, 룡강군과 함께 직할시(평양과 동급)가 되었으며 남포시는 남포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83년에는 남포구역이 항구 구역과 와우도구역으로 개편했으며 대안시는 대안구역, 천리마구역, 강서구역으로 개편하였다. 1988년 7월 서해갑문의 남단 지역이 은률군에서 편입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PRK2006_Pyongnam-Nampo.png
특급시 시절.

파일:ByeGmZe.gif
특별시 승격 후 주변 지역을 편입한 모습. (출처:두산백과)

2004년에 평안남도에 귀속되면서 특급시인 남포시로 대안구역, 천리마구역, 강서구역은 군으로 떨어져 나갔고[10], 항구구역과 와우도구역은 폐지되었다. 하지만 2010년 라선과 함께 특별시로 승격된 이후 다시 기존 직할시 당시 영역이었던 강서군, 대안군, 룡강군, 천리마군은 물론 온천군까지 편입하였다. 다만 편입 과정에서 강서군, 대안군, 천리마군은 구역으로 조정되었다.

이런식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잦아서 대체 어디까지가 남포인지, 몇 명이 이 동네에 사는지 자료마다 다르다. 두산백과에서는 98만 명, Wikipedia에서는 45만 5천 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86만 명, 통일부약 73만 명을 제시하고 있다. 통일부 통계는 남포에 편입된 강서구역, 대안구역, 룡강군, 천리마구역, 온천군의 인구가 포함 안 돼 있어 37만 명으로 적혀있지만, 해당 인구를 전부 더하면 98만 명이다. 함흥시보다도 많은 수치다.

2.1. 역대 책임비서/당위원장[편집]



3. 경제[편집]


남북경협 합작기업 중 하나인 평화자동차 공장이 여기에 있고, 승용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 화성-12, 화성-13 등을 조립하는 태성기계공장도 여기에 위치한다.

대우그룹에서 남북 최초 합작공단인 남포공단을 개성공단보다 8년 앞선 1992년에 열었다. 그러나 대우의 자금난과 김우중회장의 정부와의 갈등 등으로 인해 1998년에 문을 닫았고, 1999년 철수해 이후 이 부지는 위에 서술된 평화자동차 공장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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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항으로 분류되었지만 지구 온난화서해갑문 건설의 부작용으로 결빙횟수가 늘고 있다. 1996년부터 2013년 초까지 17번의 겨울에서 남포항이 결빙되지 않은 것은 2번 뿐이고, 특히 2008년 말부터 2013년 초까지는 연속 5년째 결빙되고 있는 중인데다 평균 결빙일수도 50일에 달하고 있어 부동항 지위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위의 위성사진은 2012년 초의 모습이다.

4. 교통[편집]


평양남포간 고속도로가 여기에 연결되며, 철도로는 평남선이 여길 지난다. 참고로 남포선은 서해갑문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5. 기후[편집]


남포시는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냉대기후에 속한다. 최한월인 1월 평균기온은 -4.6°C이며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3.9°C로 연교차는 28.5°C로 비교적 큰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북한에서는 비교적 따뜻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북한에서 겨울이 따뜻하다는 뜻이지 정말로 겨울이 따뜻하다는 뜻은 아니다.

남포의 위도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비슷한데[11] 리스본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11.6°C로 한반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겨울이 따뜻한 서귀포시보다도 훨씬 더 따뜻하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3.5°C로 남포와 비슷하다. 즉, 여름은 두 곳의 기온이 비슷하지만 겨울은 남포가 리스본보다 훨씬 더 춥다는 뜻이다. 남포가 리스본보다 훨씬 더 추운 이유는 리스본이 난류인 멕시코 만류의 혜택으로 온화한 데 비해[12] 남포는 대륙 동안에 위치하여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직격탄으로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안도 지역은 동해안과는 또 다르게 북부에서 내려오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직접 받아 겨울철 비가 적고 한랭한 만주지역과 비슷한 경향성을 보인다. 즉 연강수량은 925mm로 한반도 내 대표적인 소우지이다. 옆동네인 평양시와 마찬가지로 대동강 일대는 비가 적게 오는 편이다. 개마고원이나 함경북도에 비하면 많이 오는 편이지만 남한과 비교하면 영남 내륙 지방보다도 비가 적게 온다.

6. 북한 기준 행정구역[편집]






7. 남북통일 이후 전망[편집]


통일 이후에는 한창 경제 붐이 일어날 평양시와 (남포시를 포함한) 그 위성도시들의 외항으로서 상당한 주가를 달릴 것이다. 물론, 서해안 항구로서의 역할은 인천항, 평택·당진항 등의 수도권 항구와 목포항 등의 서남권 항구들에게 밀리겠지만, 굳이 인천에다가 짐을 싣고 평양으로 옮길 일이 없는 이상 자체적인 경쟁력은 보유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다만, 남포항이 부동항의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성장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평양과의 접근성 때문에 평양에서 사업을 하거나 평양에 살고 싶기는 해도 당장 여건이 되지 않는 주민들에게는 이주희망지역 1순위가 될 수도 있고 평양국제비행장의 지형적 제한성때문에 새로운 국제공항부지 선정지로도 입지가 탄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물류업으로 개성시사리원시와 더불어 유력한 후보지로 각광받을 가능성도 있다[13].

통일 이후에 이름이 남포시에서 진남포시가 될지는 미정이다. 1963년에 당시 문교부의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 지명 통일안'에서 겸이포를 송림, 혜산진을 혜산으로, 만포진을 만포로 하듯이 진남포는 남포로 하기로 했지만,# 이후로도 한동안 신문기사를 보면 '진남포' 명칭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일제 때 신문기사에서조차 남포와 진남포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8.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편집]




파일:진남포시기.png

파일:진남포시.jpg
▲ 이 지도는 1938년과 1945년의 (진)남포시 확장이 반영되지 않은 지도다. 참조 용강군 문서에 실려있는 지도도 마찬가지.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당시의 명칭인 진남포시를 그대로 존치하고 있다.

鎭南浦市 / Jinnampo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41.3㎢[14]
행정구역
7동 21리[15]
시간대
UTC+9:00

1938년 용강군 대대면 마사·유사·대두리를 편입하였고, 광복 직전인 1945년 4월에 대대면 어호·해산·고정·영곡리, 양곡면 문애·천교·초유리, 오신면 한학·도학리, 다미면 지울리를 편입하였다.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행정동
법정동·리
대두동
대두리(大頭里)·문애리(文艾里)·어호리(魚湖里)·영곡리(靈谷里)·유사리(柳沙里)·천교리(泉橋里)
도학동
도학리(島鶴里)·지울리(智蔚里)·초유리(抄鍮里)·한학리(寒鶴里)
비석동
비석리(碑石里)·용정리(龍井里)·후포리(後浦里)
신흥동
마산리(馬山里)·신흥리(新興里)·지산리(芝山里)
억량기동
고정리(高井里)·마사리(麻沙里)·억량기리(億兩機里)·해산리(海山里)
원동
명협동(明峽洞)·욱동(旭洞)·원동(元洞)·월견동(月見洞)
항동
삼화동(三和洞)·한두리(漢頭里)·항동(港洞)

1945년 4월 편입된 영곡리 앞바다의 와우도(臥牛島)[16]와 권염진도(勸鹽津島)[17]는 현재 완전히 육지화되었다.

9. 시설[편집]


  • 남포항
  • 평화자동차공장
  • 서해갑문
  • 남포시 인민위원회 청사: 와우도구역 남산동 일대에 위치한다. 당위원회가 인민위원회를 지도하나 남포시당의 청사가 어디에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0.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편집]


  • 김문택
  • 김승훈 마티아 신부
  • 나애심
  • 박인덕
  • 박처원
  • 박흥식
  • 백선엽 - 출생 당시 '강서군'이라 불리던 곳에서 태어났다.
  • 서승현 - 단, 4살 때 가족과 함께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 손원일
  • 안창호 - 천리마구역 출신이며 출생 당시 강서군 초리면
  • 한명숙
  • 윤공희 대주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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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위원회 청사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고, 당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인민위원회 청사는 근처 와우도구역에 있다. 2020년 1월 25일 시당위원회가 물 문제를 해결했다는 내용의 노동신문 기사에 따르면 정확히는 김부자 동상 주변을 '시소재지'라고 부르고 있다.[2] 2008년 기준. 2010년 특별시 승격 당시 편입된 지역을 포함한 수치로, 2008년 당시 평안남도 남포시의 인구는 366,815명이었다.[3] 덕흥[4] 대한민국 행정구역 기준[5] 북한 행정구역 기준[6]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은 Namp'o,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은 Nampho[7] 남포, 한국어 발음 기준[8] 난포, 일본식 음독 기준[9] 실질적으로는 청진 또는 함흥이 북한 제2의 도시로 간주된다. 남포시는 시가지와는 떨어져 있는 강서, 용강, 천리마, 대안 등의 별개의 지역까지 한꺼번에 한 행정구역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 함흥 역시 인구가 많던 흥남시(흡수 이전 약 36만)를 흡수한 것이라 실질적으로는 제2의 도시를 청진으로 간주한다고 한다.[10] 라선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직할시에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하다 2019년에 겨우 다시 승격한 개성시도 있다.[11] 남포 : 북위 38° 44', 리스본 : 북위 38° 42' 50"[12] 사실 이는 서유럽 대부분이 다 포함되는 이야기다.[13] 통일 직후, 이북 지역 재개발및 재건으로 상주해야 할 남한 인력들로 사리원시와 더불어 각광받을 곳이다. 특히 남포는 평양에 사리원시에 비해 더 가깝다.[14] 광복 당시 기준 면적. 광복 당시 면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진남포시' 항목에는 413㎢로 나와있지만, 훨씬 넓었던 용강군이 744.8㎢였던 걸 보면 413㎢는 절대 아니다. 41.3㎢의 오기로 보인다.[15] 광복 당시 기준의 경우 6동 14리. 동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기 명칭이었던 정(町, 마치)를 기준으로 한다.[16] 북한 행정구역상 와우도구역의 유래. 섬이었던 것 동쪽에 현재는 와우도호텔이 있다.[17] 구글 지도에는 Sayomjindo로 나온다.[18] 1924년생으로, 세는 나이로 100세를 맞이했다. 덕원신학교 출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