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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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겉 뜻
2. 유래
3. 기타


고사성어




안 내
근심 우
바깥 외
근심 환



1. 겉 뜻[편집]


내부의 근심과 외부의 근심



2. 유래[편집]


국어(國語)》〈진어(晉語)〉편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 중엽 막강한 초나라(楚)와 진나라(晉) 두 나라가 대립할 때 진나라 여공은 송나라(宋)와 동맹을 맺어 평화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수년 후 초나라 공왕(共王)이 정나라(鄭)와 (衛)나라를 침략하자 다음해 진나라와 초나라의 군대가 언릉에서 마주쳤다. 당시에 진나라에서는 삼극(三郤)[1]ㆍ난서(樂書)ㆍ사섭(士燮) 등의 경(卿)들이 정치를 주도했다. 진(晉)나라가 배신한 정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초나라가 지원군을 보내 언릉에서 맞서 싸우게 된다. 당시 진(晉)나라에는 사군(四軍) 팔경(八卿)이 있었는데 직급 순으로 중군장 난서, 중군좌 사섭, 상군장 극기, 상군좌 중항언, 하군장 한궐, 하군좌 지앵, 신군장 극주, 신군좌 극지이다. 사섭이 싸우지 않을 것을 주장하자 극지는 싸울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그러자 사섭이 반대하며 ‘제후(諸侯)로 있는 사람이 반란하면 이것을 토벌하고 공격을 당하면 이를 구원하여 나라는 이로써 혼란해지지. 따라서 제후는 어려움의 근본이오’ 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오직 성인만이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능히 견디지만(唯聖人能外內無患) 성인이 아닌 우리들에게는 밖으로부터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근심이 있소(自非聖人 外寧必有內憂(자비성인 외녕필유내우). 초나라와 정나라는 놓아두고 밖으로부터의 근심을 내버려두지 않겠소이까?”라고 말한다. 요약하면 외부의 위협, 즉 초나라의 위협이 약해지면 나라 내부의 근심, 즉 내부 정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섭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체 전투가 일어나 진군이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사섭의 말대로 승리한 진나라 내부의 문제들이 곪기 시작하며 내부 정쟁이 심화되고[2] 진나라 국군은 허수아비가 되어 육경(六卿)이 정권을 장악한다. 기원전 403년, 마침내 조, 위, 한 세 가문이 정식 제후로 인정받으며 진나라에서 독립한다.

‘내우외환’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3. 기타[편집]


여담이지만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大興洞)의 예전 이름은 내환동(內患洞)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내환동(內串洞)[3]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내환의 '곶 환(串)' 자를 잘못 보고 '근심 환(患)'자로 잘못 기입되면서 그대로 쓰이게 되었다. 안 좋은 뜻이었으므로 결국 2002년 크게 일어난다는 뜻의 대흥동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따개비 한문숙어에는 '김내우씨가 외환은행에 취직...잘됐군요'라는 드립이 있다. 이건 따개비의 친구인 길수의 아버지 성함이 김내우라 그런 것. 실직과 함께 화재로 인해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충격으로 아내도 화병으로 몸져눕지만 다행히 외환은행 내 청소 담당 공무원으로 취직에 성공한 것이 이 에피소드의 줄거리

외환의 죄에서 '외환'이라는 단어가 이 고사성어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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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지(郤至), 극주(郤犨), 극기(郤錡) 세 명을 말한다.[2] 언릉 전투 직후 극씨가 진여공에 의해 멸족당하고 진여공은 난서와 중항언에게 살해당한다.[3] 또는 내곶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