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

덤프버전 :

1. 乃至
2. 內地
2.1. 중국어 neidi
2.2. 일본어 ないち
3. 內旨


1. 乃至[편집]


'~이거나' 할때 쓰는 단어. or와도 같은 의미이다. 보통은 범위를 표시할 때 쓰는 말이다.

흔히 물결표 처리하는 수치적 구간 개념도 내지로 표현한다. 가령 1~3은 흔히 '일에서 삼'이라고 말하지만 문어적으로는 '일 내지 삼'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때 두 표현의 뜻은 동일하다. 원고지 쓰는 법 등을 설명한 책에서는 '에서'보다 '내지' 쪽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법조문에서 사용하는 내지의 뜻은 무조건 후자의 수치적 구간의 의미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21조 내지 24조라면 21조부터 24조까지, 즉 21조, 22조, 23조, 24조를 뜻한다.


2. 內地[편집]



2.1. 중국어 neidi[편집]


우리 대청(大淸)은 동쪽 땅에서 제국을 일으켜, 먼저 조선을 평정하고 후에 명나라를 정벌해서 200여 년 동안 덕으로 소국을 아꼈고 조선은 예로써 대국을 섬겨 왔다. 강희, 건륭 시대에는 무슨 일이든지 서로 묻지 않은 것이 없어서 내지(內地)의 군현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문자가 같고, 정교(政敎)가 같고, 정의(情誼)가 친목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형세가 서로 접하여 신경(神京)을 껴안아 호위하는 것이 마치 왼팔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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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략

역사적으로는 한반도베트남중국 바깥에 대비해 중국 본토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정치체제가 다른 홍콩, 마카오(+ 대만)를 제외하고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가 적용되는 영역을 말한다. 동의어로는 중국 대륙, 본토 등이 있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중국에서 대만인과 구분을 위해 내지인(內地人), 대륙인(大陆人)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2.2. 일본어 ないち[편집]


내지(内地, ないち, 영어: Metropole, Homeland)는 일본 제국이 스스로의 식민지를 제외한 본토를 지칭하던 단어다. 위의 중국 중심적 표현을 일본에서 수입해 현지화하면서 널리 사용되었다. 일본 열도 본토에 해당하는 혼슈, 시코쿠, 규슈, 홋카이도, 오키나와와 그 부속도서가 내지에 해당되며,[1]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 대만 등의 지역들은 외지(外地, がいち)로 분류 되었다. 내선일체의 내() 자가 내지를 뜻하는 글자다. 이와 같은 식민제국의 본토(종주국)를 영어로는 Metropole이라 한다. 본래 가톨릭 교구의 주교좌가 있던 도시를 일컫는 말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해외속령을 제외한 프랑스의 본토를 일컫는 Metropolitan France라는 용어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일본 제국 규정과 달리, 홋카이도오키나와는 공식적으로는 내지의 일부였지만 메이지 유신 전후에 완전히 복속한 이민족의 땅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외지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아무래도 혈통과 출신지, 정통성 등 역사적 연고를 중요시하던 당대 일본 사회에서는 혼슈, 시코쿠, 규슈 이외 지역의 출신들은 행정 분류상 내지인임에도 인식상 외지인에 가까웠으며 은근히 차별받았다. 홋카이도의 경우 소수의 아이누를 제외하면 다수의 이주민들은 본토의 하층민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오키나와의 경우 대다수의 인구가 류큐인들이었기에 본토 일본인과 사뭇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개척농민이 많았던 홋카이도의 경우 농사에 쓸 말을 몽땅 군마로 징발당했던 것이 생존문제로 직결되었고, 오키나와의 경우는 더한데 오키나와 전투로 전체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었다. 절대적인 피해자 숫자로 보면 홋카이도나 오키나와보다 인구가 훨씬 많았던 조선이 더 많겠지만, 비율로 보면 오키나와의 피해 정도는 엄청났다.

홋카이도의 사람들은 지금도 혼슈+규슈+시코쿠(주로 혼슈 한정)를 관습적으로 내지라 부른다. 가령 도쿄에 여행 갔을 때 '내지 왔다!'라고 SNS에 올리거나 하는 식이다.[2] 이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는 내지 개념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위 용례에서 보다시피 제국주의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는 희석되었고, 마치 제주도 사람들이 한반도 본토에 갔을 때 '육지 나왔다!' 하는 정도의 어감일 뿐이다. 오키나와도 비슷한 맥락에서 '내지'와 함께 '야마토', '본토'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쪽은 홋카이도와 달리 아직도 내지에 대한 앙금이 많이 남아있다.

홋카이도는 개척 이전에는 아이누 민족들의 소규모 촌락만이 존재할 뿐 이렇다할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다수의 홋카이도 주민들은 19세기 말~20세기에 일본 본토에서 온 이주민들의 후손들 혹은 일본인과 아이누의 혼혈인데다 2차 대전의 주 전장이 아니었던데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미군의 공습마저 빗겨가 전쟁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기에 일본에 대한 귀속 의식에 대해 반발심을 가질 부분이 적고 단지 아이누의 전통문화 보존과 소수 민족으로서의 권리 정도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반면, 오키나와는 본토의 야마토 민족민족 정체성이 다르고 엄연한 독립된 국가를 유지했으며[3] 2차 대전 당시 내지인들과 미군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인적, 물적 희생을 치렀기에 일본 본토에 대한 반감이 잔존한다.


3. 內旨[편집]


조선시대에서는 승정원이나 다른 국가에서는 비서관 같은 곳에서 거치지 않은 국왕 또는 황제의 명령, 혹은 국왕, 황제, 왕세자, 황태자궁궐 안에 부재할 때 왕비 또는 황비가 내리던 명령.

국왕, 황제, 왕세자, 황태자 등이 궁궐에 부재하거나 보고를 올릴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왕비가 권력을 대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왕비 또는 황비가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중요한 담당자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한번 내지가 떨어지면 먼거리에 있는 자라도 내지에 적혀진 내용을 거부하기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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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러시아에 귀속된 쿠릴 열도 또한 당시에는 홋카이도의 부속도서로 보았기에 내지에 속했다. 그리고 본래 외지로 분류해 식민지 취급하던 가라후토(남사할린) 또한 일제 말기인 1943년에는 내지에 포함되었지만 2년밖에 안 가서 소련에 빼앗겼기에 존재감이 희박하다. 사실 아이누 등 원주민보다 본토에서 이주한 일본인의 인구 비중이 훨씬 많았으며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쿠릴 열도나 사할린 섬 자체가 일본 열도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전근대에는 사할린이 더 춥고 한때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홋카이도와 제반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2] 이는 타카하시 신만화 좋은 사람에서도 묘사된다. 삿포로에 사는 주인공 여자친구의 대사를 유심히 읽어보자.[3] 17세기에 사쓰마 번에 복속되었지만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