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 라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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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 라조이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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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Lajoie%20Nap%20Plaque_NBL.png
냅 라조이
헌액 연도
1937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3.58% (2회)


파일:MLB 로고.svg 메이저 리그 타자 트리플 크라운

팁 오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1887년)

냅 라조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1년)


타이 콥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09년)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1년 ~ 19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신설

냅 라조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냅스)


엘머 플릭
(클리블랜드 냅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1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타이 콥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냅 라조이
(클리블랜드 냅스)


타이 콥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신설

냅 라조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삭스 세이볼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898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점왕
조지 데이비스
(뉴욕 자이언츠)

냅 라조이
(필라델피아 필리스)


에드 델라한티
(필라델피아 필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신설

냅 라조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벅 프리먼
(보스턴 아메리칸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04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
벅 프리먼
(보스턴 아메리칸스)

냅 라조이
(클리블랜드 냅스)


해리 데이비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파일:Lajoie Nap/.jpg

나폴레옹 "냅" 라조이
Napoléon "Nap" Lajoie

출생
1874년 9월 5일
사망
1959년 2월 7일(향년 84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로드아일랜드 주 운소켓
신체
185cm / 88kg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896~1900)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1~1902)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냅스 (1902~1914)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15~1916)
지도자
클리블랜드 냅스 감독 (1905~1909)

1. 개요
2. 선수시절
3. 은퇴 후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 선수.

19세기에 내셔널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아메리칸 리그 출범 원년에 옮겨 4할2푼1리[1]라는 기록을 낸 4할 타자의 일원이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2루수였다. 공수주 3박자가 모두 뛰어났던 선수로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 본명이 '나폴레옹 라조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계 미국인[2]이며 선수시절 별명도 "The Frenchman", 즉 프랑스 남자였다.


2. 선수시절[편집]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Lajoie-Nap-317.jpg

1874년 로드아일랜드 주 운소켓에서 프랑스 이민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프랑스계 미국인 라조이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히 지역 야구팀에서 뛰었다. 그러던 어느날, 라조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1896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시즌 39경기에 출전해 .326의 타율을 기록한 라조이는 다음해인 1897년, 라조이는 본격적으로 풀타임 2루수로 뛰면서 타율 .361, 197안타, 9홈런, 20도루, 127타점을 기록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898년에는 타율 .324, 197안타, 6홈런, 25도루, 127타점을 기록하며 개인통산 최초로 타점왕을 차지했고,1899년에는 부상으로인해 시즌 절반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378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1900년에는 .337, 152안타, 7홈런, 22도루, 92타점을 기록했으며 시즌이 끝난 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라조이의 소속팀이던 필리스가 이에 소송을 제기하며 라조이는 필리스와 어슬레틱스의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하지만 라조이는 법정소송을 벌이면서도 아메리칸 리그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으로 이적한 첫 해 타율 .421, 232안타, 14홈런, 27도루, 125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해를 보낸다. 라조이는 도루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타격 7관왕을 차지했다.[3] 다음 해인 1902년에도 라조이는 타율 .378, 133안타, 7홈런, 19도루, 65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이 해 필리스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라조이는 다시 필리스로 돌아갈 뻔했으나 아메리칸리그 총재였던 밴 존슨은 그런 라조이를 신생팀이던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로 이적시켜 버렸다.

이와중에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라조이를 얻게 된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는 아주 난리가 났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창단한지 2년 밖에 안된 신생 팀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스타 선수인 라조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라조이가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후 사람들은 라조이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클리블랜드는 아예 팀명을 브롱코스에서 라조이의 이름인 냅을 따와 클리블랜드 냅스라고 팀명을 바꿔버렸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첫 해 라조이는 클리블랜드에서 타율 .379, 132안타, 7홈런, 19도루, 64타점을 기록했다. 다음 해인 1903년에는 타율 .344, 167안타, 7홈런, 21도루, 93타점을 기록하며 다시 도약했고 1904년에는 타율.376, 208안타, 5홈런, 29도루, 102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4관왕에 올랐고 이후에도 1910년에도 단 1리 차이로 타격2위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활약하다가 1914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이적, 2년을 더 뛰다가 191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그의 현역 시절은 로저스 혼스비, 에디 콜린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2루수 계보 중 한 명이라 봐도 무방하며[4] 근데 이렇게 보는것이 맞다.냅 라조이는 1890년대부터 1910년대에 선수시절을 했고 에디 콜린스는 1900년대중후반부터 1920년대초반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고,로저스 혼스비는 191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선수 생활을 하였으니 실제로는 1890년대~1900년대 중후반까지는 냅 라조이 1900년대중후반부터~1920년대 초반까지는 에디 콜린스 1910년대후반부드 1930년대 초반까지는 로저스 혼스비의 시대라고 보면된다. 참고로 냅 라조이와 에디 콜린스는 데드볼 시대의 선수 였고,로저스 혼스비만 라이브볼시대라고 보면된다.


3. 은퇴 후[편집]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투표에서는 첫 해에 최초의 5인에게 밀려 헌액되지 못했지만, 다음 해인 1937년에 85.58%의 득표율로 사이 영, 트리스 스피커와 함께 헌액되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편집]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냅 라조이
76
266
264
66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Second Base (3rd)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냅 라조이
107.4
60.3
83.8
2루수 HOF 입성자 평균
69.4
44.5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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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의 선수 시절 최고 타율인 .419를 넘어선 기록이다.[2] 정확히 말하면 조상이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다. 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냅 라조이를 낳았다. 나폴레옹을 좋아하던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3] 당시에 14홈런이면 절대 적은 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홈런왕치고도 엄청 많이 친 거다. 라조이가 뛰었던 시대는 데드볼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자. 그때의 야구공은 지금 쓰는 공과는 전혀 달랐다. 이로부터 8년 뒤 도루왕까지 해서 세계 프로야구사 유일무이한 8관왕을 차지한 타이 콥9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다. 또한 이때보다 17년이나 지난 뒤의 투수 베이브 루스11홈런으로 투수로써 홈런왕이 되기도 했다. 1920년전까지 메이저리그는 심지어 7홈런 홈런왕도 있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당시는 통산 100홈런 타자를 지금 시대의 통산 350~400홈런 타자급으로 봤다. 14홈런이면 지금으로 치면 50홈런은 쳤다고 봐야 한다. 라조이와 거의 동시대이자, 101홈런 밖에 못친 에드 델라한티를 19세기 메이저리그의 테드 윌리엄스라고 하는지 생각해 보자.[4] 역대 최강 2루수를 다룰 때, 로저스 혼스비 다음을 1914년 MVP였던 에디 콜린스로 치고, 다음이 냅 라조이다. WAR은 에디 콜린스가 15나 높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고려하면 3위다. 냅 라조이 - 에디 콜린스 - 로저스 혼스비로 이어지는 2루수 레전드 라인의 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