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리 품피도

덤프버전 :


네리 품피도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아르헨티나의 축구감독


이름
네리 품피도
Nery Pumpido
본명
네리 알베르토 품피도
Nery Alberto Pumpido
출생
1957년 7월 30일 (66세) /
아르헨티나 산타페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display: none; display: 아르헨티나"
행정구
]]

신체
182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우니온 데 산타 페 (1976~1981)
CA 벨레스 사르스필드 (1981~1983)
CA 리버 플레이트 (1983~1988)
레알 베티스 (1988~1990)
우니온 데 산타 페 (1991~1992)
CA 라누스 (1993)
감독
우니온 데 산타 페 (1999~2001)
클루브 올림피아 (2001~2003)
티그레스 UANL (2003~2004)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 (2005~2007)
CD 베라크루스 (2007)
알 샤바브 FC (2008)
클루브 올림피아 (2010~2011)
CD 고도이크루스 (2012)
우니온 데 산타페 (2012~2013)
국가대표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2성)엠블럼.svg 36경기 (아르헨티나 / 1983~1990)

1. 소개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기타



1. 소개[편집]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였다.


2. 선수 경력[편집]


1976년 다 산티 페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1년 베레즈 사라스 필드에 입단해 좋은 활약을 보여 국가대표에 뽑혔다. 하지만 이듬해 훈련중 손가락이 그물에 끼여 절단되는 사고로 그는 수술을 받았고, 한동안 그라운드에 나설수 없었다. 2년 후인 1983년. 재활에 성공한 품피도는 다시 맹활약을 펼쳐,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인 알미론을 제치고 주전으로 등극한 그는 대한민국전과 이탈리아전, 불가리아전을 포함해 조별리그에서 2실점만 하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16강, 8강, 4강, 결승에서까지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며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라리가레알 베티스에 입단해 초반에는 나름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었으나 후반기에 명성에 걸맞지 않는 잦은 실수로 주전 자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출전한 그는 1차전인 카메룬전에서 전반전까지 신들린 선방을 보여줬지만 문제는 후반 26분에 일어났다. 카메룬의 오맘비크의 헤딩슛을 다리로 흘려보내 아르헨티나가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데 주범이 된 것이다.[1] 2차전인 소련과의 시합에서는 공격수와 볼경합을 벌이다 같은팀 선수의 다리에 무릎을 가격당해 결국 병원에 실려가게 되어서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2] 그 후 1992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결국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182cm라는 골키퍼로서는 작은 체격이 아쉬웠지만 정확한 롱킥능력과 1:1에서의 침착한 선방능력을 갖춘 그는 팀이 위기상황에 몰릴 때마다 신들린 선방을 보여주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페널티 킥승부차기에 조금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4. 기타[편집]


파일:골닷컴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pn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골키퍼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최고의 골키퍼 5위에 이름을 올렸다.

[1]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품피도가 충분히 잡을 수 있었으나 저번 대회 우승의 주역이라고 믿기 힘든 실수를 범했다. 마치 최인영독일전에서 클린스만의 평범한 헤딩을 골로 내준 것과 비슷한 장면이었다.[2] 특히 고이코체아는 맹활약을 펼쳐 디에고 마라도나, 클라우디오 카니자와 함께 4년 전보다 전력이 약화된 아르헨티나를 준우승으로 이끄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9 09:06:48에 나무위키 네리 품피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