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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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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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글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영어
Nebra Sky Disc
국가·위치
독일
소장·관리
작센안할트 주립선사박물관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13년
제작시기
기원전 1600년경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Nebra_Scheibe.jpg

1. 개요
2. 무엇이 그토록 대단한가?
2.1.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다
2.2. 재료부터 남다르다
2.3. 당대 최고 문명들의 정수를 한 곳에 담았다
2.3.1. 이집트 태양신
2.3.2. 동지와 하지
2.3.3. 1년을 일정한 주기로 나눔
2.3.4. 태음양력과 윤달
3. 이 유물의 의미
4. 수난사
5. 이후
6.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1999년 독일 작센안할트주 부르겐군(Burgenlandkreis) 네브라(Nebra) 마을 인근 Ziegelrodaer 숲의 미텔베르크(Mittelberg)라 불리는 곳에서 발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반이다. 크기는 지름 30 cm에 무게는 2.2 kg 남짓하다. 기원전 1600년 무렵 천문 현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여 제작한 휴대용 천문반이다.

지름 30 cm 남짓한 청동판에 으로 태양, 하지점과 동지점에서 태양이 질 때의 위치 차이, 그리고 별자리를 표현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럽인들천문학 지식과 관측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유럽에서 중요한 고고학 발견으로 손꼽힌다.


2. 무엇이 그토록 대단한가?[편집]



2.1.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다[편집]


이 물건이 발견된 중부 유럽은 당시에도 발전이 상당히 더디었던 비인문적 지역이었다. 흔히 야만족이라 하는 게르만족이나 켈트족의 시대보다도 훨씬 이전, 이러한 민족적 구분을 넘어 투물러스 문화(Tumulus Culture)라는 초중기 청동기 문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당시의 중부 유럽이었다. 안티키테라 기계파에스토스 원반은 문명이 상당히 발전한 곳에서 나타났음이 다르다. 안티키테라 기계는 기원전 150~100년 즈음 기계공학과 천문학의 중심지인 로도스에서 제작한 듯하고, 파에스토스 원반은 융성한 크레타 문명의 미노스 궁전 지하 사원 저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천문현상을 표현한 수준이 훨씬 떨어지는 천문반조차도 100년 뒤 고대 이집트에서나 나타난다. 이런 천문현상을 문자로 표현하기는 무려 1000년이 더 지나서부터이다. 중부 유럽 기준으로 기원전 1600년은 아예 문자기록이 없는 선사시대이다. 당대 최고의 천문 관측술을 갖춘 고대 이집트에서도 100년이 지나야 태양은 신이 아니라 천구에 있는 별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에서는 천문현상을 전부 다 '현실적'으로 보고 태양, 달, 별자리 모두를 '통합적'으로 표현했다. 좀 과장 섞어서 말하면 다른 동네에선 '태양의 신이 해를 전차에 싣고 아침에 달려나가고 달의 여신이 밤에 달을 띄운다.'고 진지하게 믿을 때, 이 사람들은 시간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달력을, 그것도 글자도 없는 사회에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당대 최고로 발전한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이집트, 북유럽 거석 문화권 문명의 천문 관측술과 종교적 개념을 한꺼번에 표현하면서도 그 수준도 차원이 다른 물건이, 엉뚱하게도 그 당시 가장 발전이 뒤진 듯한 기원전 1600년 중부 유럽에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트로이 전쟁이 이로부터 400년 뒤인 기원전 1200년 무렵이고, 인류가 남미의 안데스 산맥까지 도달한 때는 기원전 1000년 즈음이다.


2.2. 재료부터 남다르다[편집]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의 몸체를 이루는 청동은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서 채취한 구리로 만들었고, 여기에 입힌 영국 잉글랜드 콘월 반도에서 채취했다. 청동기 시대 주석이 국제 무역으로 유통되었지만[1]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는 당시 최고로 부를 축적하던 메소포타미아[2]이집트가 아닌 깡촌에 가까운 중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당시 중부 유럽의 다른 유물을 보면 일반적인 야만인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가죽 갑옷에 나무 방패, 간단한 창 정도이다.


2.3. 당대 최고 문명들의 정수를 한 곳에 담았다[편집]



2.3.1. 이집트 태양신[편집]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가장 밑에 금으로 된 반월형(Sun ship) 표시는 이집트 태양신 신앙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이 매일 뜨고 짐을 태양신 가 매일 아침 태양을 배에 싣고(Sun ship) 나타나 저녁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개념을 반영한 부분의 금 성분이 달라 제작시기보다 다소 후대에 추가한 듯하지만, 이집트의 개념이 남부 유럽도 아니고 중부 유럽에까지 전달됐다는 뜻이다.

2.3.2. 동지와 하지[편집]


북유럽이나 영국의 거석 문화권에서는 동지하지, 그러니까 태양이 가장 낮게 뜰 때와 가장 높게 뜰 때 태양이 지평선 어디에서 뜨고 지는지를 큰 건축물에서 알 수 있도록 표시를 해놓았다. 이를테면 하지나 동지 때 햇빛이 건축물의 특정문이나 창문으로 정확히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사제 계급은 이를 이용해서 부족민들에게 농사 절기를 선포했을 가능성도 크다.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는 이런 측정법을 받아들여 제작시기보다 후대에 디스크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 지평선을 나타내는 원호를 추가했다. 금의 성분이 다름이 이런 사실을 말해준다. 두 원호를 붙인 자리를 만들기 위해 왼쪽의 별 하나를 중앙으로 옮겼고, 오른쪽에 있던 별 두 개는 원호로 덮어 씌워서 지금은 별이 30개만 남았다.[3]

디스크 가장 양쪽에 금으로 표시한 부분(Horizontal Band)에서 중앙으로 선을 그어보면 각도가 82도다. 이는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만든 사람이 단순히 데이터를 베껴온 게 아니라 측정법을 들여와 자기가 있는 동네에서 직접 측정했다는 뜻이고, 수입품이 아닌 중부 유럽의 토속품이라는 증거도 된다. 거석 문화권은 중부 유럽보다 더 북쪽이므로 북유럽의 데이터를 그냥 가져왔다면 각도가 90도에 더 근접하였을 터이고, 만일 남쪽 유럽의 관측 데이터를 가져왔다면 각도가 70도에 가까웠을 것이다.


2.3.3. 1년을 일정한 주기로 나눔[편집]


원반의 가장자리에 구멍 48개가 있는데 1년을 48주기로 나누었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도 1년을 12개월, 1개월을 4주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2.3.4. 태음양력과 윤달[편집]


달이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그리고 다시 초승달로 바뀌는 한 주기가 돌아가는 데 29.5일이 걸리고, 이를 12번 반복하면 354일이 된다. 문제는 태양이 천구상에서 한 바퀴 도는 주기(태양년)는 365.2422일[4]쯤 된다는 것. 달이 차고 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29.5305일[5]이다. 달이 12번 차고 기우는 시간은 354.367일인데 1태양년의 주기는 대략 11일 더 기므로 3년만 지나도 약 한 달 차이가 생긴다.

'기껏 3년에 한 달 차이인데 그냥 참고 살지.'라고 생각하면 큰일난다. 농사를 짓는 곳에서 씨를 일찍 뿌렸다가 한파가 닥쳐서 싹 다 얼어 죽으면 그 사회는 붕괴될 각오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문화권은 농업이 중요한 식량생산수단이 된 이래로 어떻게든 이 차이를 처리해야 했고, 여기서 비로소 윤달의 개념을 떠올렸다. 농사가 발달한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초승달이 뜨고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특정한 위치에 있을 때 윤달을 넣기로 정하였다.[6]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에서 달에서 약간 왼쪽 위로 7개 별이 옹기종기 있는데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표현한 듯하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농사가 한참 발달해서 필요해진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의 사회적 약속과 윤달 개념을 중부 유럽까지 저 옛날 청동기 시절에 알았다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문명권에서 상당한 삽질과 고생을 겪은 후에 천천히 생긴 규칙이 중부 유럽에서는 그냥 바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3. 이 유물의 의미[편집]


약간 무리한 가정을 한다면,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의 의미는 엄청나다. 북유럽과 중부 유럽,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고대 그리스를 아우르는 지식 네트워크가 기원전 1600년 청동기 시대에 이미 있었고, 단순히 지식뿐만이 아니라 원반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도 그 네트워크를 따라 움직일 수가 있었다는 것.

사실 이렇게 보면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중앙 유럽만의 독보적인 특이한 흐름에서 나온건 아니다. 의외로 기원전 1900년 까마득한 고대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광범한 교역로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청동기 시대의 제국들은 서로 호형호제 하며 가급적 충돌을 피하면서 번영을 누렸다. 고대 이집트히타이트, 바빌로니아, 미노아, 미케네 같은 청동기 시대의 제국들은 활발한 국제외교와 국제교역을 통해 하나의 국제질서를 형성했고, 고대 근동 세계를 관통하는 광범한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 과학과 기술, 예술과 사상이 도시들을 오가며 발전했다. 이런 강력한 청동기 문명들은 청동에 필요한 주석을 구매하기 위해 서쪽으로는 영국,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교역로를 확장했다. 그러나 이런 세계화 시스템은 멀리 확장될 수록 취약해졌고, 새로 편입되는 시장들은 낮은 수준의 문명을 지녀 심각한 위협이 되곤 했으며 결국 바다 민족의 도래로 크게 쇠퇴한다.

따라서 당시의 전 세계적인 지적, 물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만든 중부 유럽의 어느 그룹은 단순히 데이터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개념을 모두 흡수하고 이해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천문을 재측정하여 원반을 개량하였고,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에서 나온 상징까지 덥석 자신의 지식체계에 넣어 반영하였으며. 당대 최고 문명권에서 체계적인 천문관측을 시작했거나,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어도 신화의 눈으로 해석하던 시절 혼자서 현실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는 충분히 휴대할 수 있다는 점이 더더욱 상상의 나래를 자극한다. 원판을 만든 집단이 지식을 독점하려는 권위 있는 사제 집단이라기보다는 지식을 전파하는 지식인 집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천문학 정보를 독점한 사제 집단이라고 하면 이런 정보를 휴대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큼직한 신전 겸 천문대를 짓고서 자신들만 이해하고 암기하는 측정법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하고 사회 구성원에게 결과만 하달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예를 들어 태양력과 태음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 자체는 사회 구성원들도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차이를 누가 언제 윤달이라는 형태로 보충하는지는 종교와 권력이 뒤엉킨 심각한 문제였다. 이 정보를 신관이나 권력자가 독점하고 살짝 비틀어버리면 하늘의 뜻을 알고 받들 수 있는 신성한 존재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실제로 탈레스일식을 예측해 전쟁을 멈추게 해주는 권위를 내세운 적도 있다. 스톤헨지 같은 거석 건축물을 천문대로 보고 신의 뜻으로 해석하면서 신관의 권위를 높이는 쇼를 하는 큼직한 스테이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7].

지식 독점 사제 집단과 달리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만든 집단은 이 원판을 가지고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면서 언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지식 전파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몇 년전에 발굴된 톨렌제 싸움터 유적과 연관지어서 이 유물을 재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 이 유적지는 기원전 1300년경에서 기원전 1200년경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의 현장인데, 여기에서 최소 3000명에서 최대 5000명 정도로 추정되는 전사자들이 발굴되었다. 문제는 수비군 측에 속한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소수의 여성과 아이들을 제외하면 유골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며, 주변에서 다리와 도로의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대규모 군대를 양성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화된 도시국가 연맹 수준의 정부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기존에는 기원전 시기의 중부유럽은 아직 간신히 농업과 목축업이 발흥하던 선사 시대였다는 설이 정설로 간주되었는데, 이 발굴로 인해 남유럽 이외에도 유럽에 기원전 시기로 소급되는 오래된 문명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때문에,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이런 도시국가들의 경제 협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는 가설이 제안되었다.

4. 수난사[편집]


1999년 도굴꾼 헨리 베스트팔(Henry Westphal)과 마리오 레너(Mario Renner)가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를 찾아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유물의 가치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함께 나온 다른 유물들과 함께 팔아치웠는데, 이 유물들을 2002년 독일 작센안할트주 정부에서 환수하였다. 도굴꾼들은 금속 탐지기를 가지고서 디스크와 몇 가지 유물들을 발견했는데, 유물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몇 번 넘어가는 동안 주 정부는 존재를 알아차리고 고고학 교수를 구매자로 위장시켜서 회수했다.

처음에는 위조된 물품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정밀한 조사 결과 2005년 기준 약 3600년 전에 제작된 진품으로 인정받았다. 부식 과정에서 생긴 결정의 형태를 현미경으로 감정한 결과 위조가 불가능한 구조임을 발견했다. 또한 도굴꾼들이 형량을 감경받는 대가로 유물을 발견한 위치를 주 정부에 알려주었는데, 그 위치에서 기원전 1600년 형식을 띤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여담으로 처음 발견한 베스트팔과 레너는 이것과 다른 유물들을 팔아버린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1심에서 각각 징역 4개월과 10개월, 2심에서 6개월과 12개월이 선고받았다.

더 많이 알고 싶은 사람은 영문 위키피디아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한번 들어가보자. 해당 항목


5. 이후[편집]


2021년 11월에 ISS(국제우주정거장)에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의 레플리카(replica)를 만들어서 가져가 "Cosmic Kiss"라는 주제로 걸어두었었다. 사진은 여기.

6.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모바일 게임 블루 아카이브에서 각 학생들의 스킬들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오파츠라는 아이템의 형식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모습이 영락없는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의 내부 부품인 플래터의 모습이다.(...) 네브라 디스크 최상위 단계인 "온전한 네브라 디스크"까지 가면 아예 완성된 HDD가 되어있다.

유희왕 제알의 등장인물 중 III가 쓰는 오파츠 몬스터 중에서 네브라 디스크가 있다.

Limbus Company거울 던전에서 등장하는 E.G.O.기프트 "디스크 파편"의 모티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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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적으로 콘월, 그리고 인접한 데번 지역은 주석을 캐내는 광업을 하였다.[2] 이 지역에서 청동기를 만들기 위해 브리튼에서 주석을 수입해왔다.[3] 이런 흔적은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가 현대에 제작한 위조품이 아니라는 한 가지 근거이다. 몇 차례에 걸처 수정한 흔적이 있는데, 처음부터 새로 만든 위조품이라면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지 굳이 만든 후에 여러 번 수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4] 365일 5시간 48분 남짓[5] 29일 12시간 44분 남짓[6] 이런 규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규정이 없으면 신관이나 권력자가 정말 자기 마음대로 윤달을 선포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7] 장소는 아니지만, 중앙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특유의 잔혹한 인신공양도 이렇게 대중들을 호도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영화 아포칼립토는 이 설을 받아들여서, 마야 문명의 사제들이 일식이 단순한 자연현상임을 알면서도, 이를 두고 "드디어 신들께서 만족하셨노라!"라면서 노예사냥꾼들에게 제물로 바쳐질 뻔한 주인공 재규어 발 일행을 비밀리에 처리할 것을 명령하는 장면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