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페르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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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비
네페르타리
Nefert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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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네페르타리 메리트무트
Nefertari Meritmut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55년
재위 기간
이집트 왕비
? ~ 기원전 1255년
배우자
람세스 2세
자녀
아문헤르케페세프[1] 외 다수
무덤
왕비의 계곡 QV66

1. 개요
2. 무덤
3. 기타




1. 개요[편집]


람세스 2세의 아내이자 고대 이집트의 왕비. 타고난 지혜와 아름다움 덕분에 람세스 2세가 그 많던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던 아내로 유명하며, 네페르티티와 함께 이집트 왕비들 중 탑급의 인지도를 자랑한다.[2]

'네페르타리'는 '아름다운 동반자'라는 뜻이며 메리트무트는 '무트 여신의 연인'을 의미한다.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이 '네페르타리', 혹은 '네페르타리 메리트무트'지만 다른 칭호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위대한 자', '우아한 여주인', '위대한 왕의 아내', '그에게 사랑받는 자', '두 땅의 여주인', '모든 땅의 여주인', '힘센 황소의 아내', '신의 아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귀부인' 등 네페르타리의 칭호는 매우 많았다. 그 외에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 '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자', '여인들 중의 으뜸' 등 온갖 듣기 좋은 칭호는 다가지고 있었다. 람세스 2세는 '그녀를 위해 태양이 빛을 낸다'고 찬사했을 정도였다고.

네페르타리의 가문에 대해서는 일단 알려진 것이 없다. 그녀의 무덤에서 옛 파라오 아이의 왕명이 발견된 걸로 보아 아이의 후손이 아닐까 추론하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일단 아이가 살았던 시대와 네페르타리의 시대가 워낙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네페르타리가 아이의 후손이라면 아마 증손녀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정만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확실한 건 아니며 결론적으로 네페르타리의 출신 가문이나 부모는 아직도 미궁에 싸여있다.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 사이에서 최소한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낳았다. 대표적으로 그녀가 낳은 장자 아문헤르케페세프는 왕세자이자 이집트 군대의 총사령관이었다. 또다른 아들 파레헤르웨네메프는 이집트 군대에서 고위 장군직을 맡았고, 또다른 아들 메리아툼은 헬리오폴리스에서 아문 대신관직에 올랐다. 그 외에 4남 메리레와 두 딸인 메리타멘, 그리고 헤누타위는 아부심벨 신전에 새겨진 부조에서 그 존재를 확인 가능하다. 이외에도 바크무트, 네페르타리, 네베타위 등 여러 왕자와 공주들이 네페르타리의 자식들이라고 추정은 하지만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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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아부심벨 신전의 소신전.
네페르타리와 하토르 여신.
세네트를 즐기는 네페르타리 왕비.
네페르타리 왕비는 람세스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미 그와 결혼한 상태였다. 람세스 2세는 파라오로 즉위한 후에도 그녀를 각별히 아꼈는데, 수십여명의 후궁들을 따로 거느렸지만 네페르타리에게만큼은 정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네페르타리가 워낙 지혜로운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내조도 탁월했기 때문이었다.[3] 네페르타리는 룩소르 신전이나 카르나크 신전의 부조들을 봐도 항상 람세스 2세의 곁에 작게나마 묘사되어 있으며 아비도스, 데이르 엘 바하리 등 수많은 건축물들에 그녀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수천년에 달하는 고대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서 이 정도의 사랑을 받았던 이집트 왕비는 전무후무한 수준이다. 람세스 2세가 실로 엄청난 애처가였던 셈이다.

람세스 2세가 네페르타리 왕비를 누구보다 아꼈다는 증거가 아부심벨 신전이다. 람세스 2세의 대표적인 치적사업들 중 하나인데 이 아부심벨 신전에는 아예 네페르타리 왕비를 위한 신전을 따로 지어줬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냐면 왕비를 위해 독자적인 신전을 지어주는 건 아케나톤의 아내 네페르티티[4] 이후 고대 이집트 역사상 딱 2번만 있었던 일이었다. 이 아부심벨에 있는 소신전은 네페르타리와 하토르 여신에게 봉헌되었는데, 사원 내부에는 파피루스 덤불 사이 암소에게 제물을 바치는 네페르타리의 모습, 무트 여신과 하토르 여신을 경배하는 네페르타리 왕비의 모습 등 그녀의 모습이 온갖 군데에 새겨져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아는 그 아부심벨의 모습은 '대신전'이라고 따로 부르는데, 그 대신전 정면에도 람세스 2세의 좌상 옆에 작게 네페르타리의 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렇게 네페르타리 왕비는 몇 십여 년 동안 람세스 2세의 유별난 사랑을 받으며 이집트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살았다. 하지만 아부심벨 신전이 만들어질 시점에는 이미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아부심벨 신전의 축조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대신 딸 메리타멘이 참석할 정도였다고. 결국 네페르타리 왕비는 얼마 지나지 않은 기원전 1255년 세상을 떠났고, 그녀의 시신은 왕비의 계곡 QV66[5] 무덤에 묻혔다.


2. 무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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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의 무덤 투시도.

네페르타리가 묻힌 QV66 무덤은 왕비의 계곡에서도 가장 거대한 무덤 중 하나다. 면적은 무려 520 제곱평방미터에 달하고 내부의 벽화도 극도로 화려하다. 벽화에는 온통 네페르타리 본인의 모습만 그려져 있고 의외로 부군 람세스 2세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게 독특한 점이다. 벽화의 주 내용은 사후세계에서 부활한 네페르타리가 여신으로 신격화되어 내세로 향하는 모습들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무덤 자체는 이미 고대에 도굴꾼들에게 털렸고, 무덤도 벽화를 제외하면 부장품도 미라도 모조리 사라지고야 말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가면 제일 먼저 전실(Antechamber)가 나온다. 전실에는 사자의 서 17장의 내용들이 벽화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천장부에 짙은 푸른색 바탕에 5개 모서리를 가진 금색 별들을 촘촘히 그려놓아 대단히 아름답다. 전실 동편의 벽에는 옆의 조그만 별실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문 양 옆에 아누비스오시리스를 그려놨다. 별실 안에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네페르타리의 모습, 그리고 사후세계에서 네페르타리의 영혼을 환대하는 신들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있다.

전실에서 또다시 계단을 내려가면 관이 안치되어 있던 매장실이 나온다. 네페르타리 무덤의 매장실은 4개의 기둥이 떠받치는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인데, 정말 한 군데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벽화를 그려놓아서 실제로 보면 눈이 어지러울 정도라고. 면적은 약 90 제곱평방미터이다. 원래 이 매장실 한복판에 붉은 화강암으로 제작한 네페르타리의 관이 있었다. 하지만 도굴꾼들이 관을 부수고 그 안에 들어있던 미라와 부장품들을 죄다 털어가버린 탓에 현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장실에 그려진 벽화들의 내용은 대략 사자의 서에서 144장에서 146장 정도에 해당한다. 네페르타리의 영혼이 오시리스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네페르타리가 사후세계의 관문들을 통과하기 위해 읊어야할 마법주문 따위가 주 내용이다.

가장 중요한 미라의 경우 이미 진작에 사라졌다. 그나마 고고학자들이 매장실 한 켠에 여성 미라의 무릎과 대퇴골 부분이 나뒹굴고 있는 걸 발견해 이탈리아 투린의 박물관으로 옮겼는데, 워낙 오래되고 피부 조직이 썩어버린 탓에 유전자 검식이 불가능해 네페르타리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네페르타리의 것일 가능성이 가장 높기에 일부 학자들은 네페르타리의 미라라고 여기기도 한다. 발견된 미라 조각은 총 3조각으로, 가장 긴 것은 30cm에 달하고 가장 작은 조각은 15cm 정도의 크기다.

벽화에 대해 조금만 설명을 덧붙이자면, 네페르타리 무덤의 벽화에는 람세스 2세의 모습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네페르타리의 모습이 가장 많이 그려졌고, 심지어 세네트 게임을 즐기는 네페르타리의 모습도 있다.[6] 네페르타리가 생전에 상당히 지혜로운 여인이었기에 신들이 그녀를 '서기'라고 부른다는 내용도 있다. 네페르타리 무덤벽화가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집트 사후세계를 묘사한 벽화들 중 최고의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9왕조 시대 온갖 주요 신들의 모습과 그 역할, 그리고 이집트의 당대 사후관에 대해서도 정확히 묘사해냈으니 그 고고학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우리가 아는 이집트 신화의 주 내용들 중에서도 이 네페르타리 벽화에서 알아낸 것들이 많다.

워낙 네페르타리 무덤벽화의 가치가 높았기에 이집트 당국은 1950년에 네페르타리 무덤에 관광객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그동안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들이 무덤을 방문하는 바람에 벽화에 소금기가 끼거나 변색이 되고 말았고, 결정적으로 관광객들이 내뿜는 숨 때문에 습기가 차서 염료가 썩는 등 심각하게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1986년에 무덤 벽화를 통째로 복구하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발족했고, 1988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 1992년 4월에 끝마쳤다. 이 이래로 이집트 관광당국에서는 하루에 관광객들의 입장 수를 정해두고 제한된 인원만을 철저히 가려받는 중이다. 2019년 11월부터는 1400 이집트 파운드[7]를 내고 입장티켓을 사거나 프리미엄 룩소르 패스를 끊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3. 기타[편집]


  •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에서 지혜로운 왕비의 표상 그자체로 등장한다.
  • 원피스에 등장하는 왕가인 네펠타리 가문의 모티브이다. 알라바스타의 공주 네펠타리 비비의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하고 강단 있는 성품과 아름다운 얼굴도 네페르타리에서 모델을 따온 모양.
  • 스웨덴 게임인 이집트의 보석(Jewels of Egypt): 짝 맞추기 게임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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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람세스 2세의 왕세자였으나 아버지보다 일찍 죽어서 왕위를 물려받지는 못했다.[2] 클레오파트라 7세의 경우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이집트를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공동 파라오였으므로 제외.[3] 네페르타리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구사할 알았을 뿐더러 정치적인 감각도 있는 여인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건 당시 고대 이집트에서는 상당히 노력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었고 여자로서는 더더욱 드물었다. 그만큼 네페르타리의 능력이 상당했다는 뜻이다.[4] 네페르티티 흉상으로 유명하다.[5] 'Queen's Valley'의 약칭이다. 반대로 왕가의 계곡의 경우 'King's Valley'를 줄여서 KV를 쓴다. 가장 유명한 투탕카멘의 무덤의 경우 KV62 무덤이다.[6] 고고학자들은 네페르타리의 무덤에 원래 세네트 게임판이 실제로 들어있었으나 후일 도굴되어 사라진 걸로 추정한다.[7] 한화 약 10만원. 이집트의 물가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