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드노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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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Dreadnought-class Battleship
파일:external/www.maritimequest.com/04_hms_dreadnought_1906.jpg
합급의 유래가 된 전함 드레드노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24px-USS_Texas_BB-35.jpg
미합중국 해군USS Texas(BB-35)

1. 개요
2. 혁신점
3. 드레드노트의 배수량별 목록
4. 조약형 및 탈조약형 전함
4.1. 목록
5. 기타
6. 미래형 드레드노트(드레드노트 2050)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세기 초반에 주류가 되었던 전함의 '함급'.

1906년에 영국이 HMS 드레드노트를 진수하면서 속도와 화력 등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개념과 성능을 보여주었고, 각국에서 유사한 성능의 전함을 앞다투어 건조함으로써 드레드노트 등장 이전의 전함들은 도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드레드노트급은 이후 전함의 표준 모델이 되었으며, 거함거포주의를 본격적으로 태동시켰다. 여러모로 세계 해군력의 역사에서 큰 분수령을 이루는 전함. 쉽게 표현하면, '전함'이란 존재 자체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흔히 아는 그 전함의 이미지[1]는 드레드노트급에서 확정되었다.


2. 혁신점[편집]


16세기 이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서 군함도 범선에서 철갑선으로 변화하면서 과도기에 수많은 실험적인 형태의 함선이 등장했다. 이후 함포의 사정거리 증가와 함선의 속도증가에 비해 사격 및 조준문제가 대두되었으므로 결국 주포를 쌍열포탑 2기 정도로 제한하고, 다수의 부포를 두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완성되었다.[2] 일단 드레드노트 이전급 전함은 영국을 포함한 각국 해군의 전통과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에 그 이후 한동안은 뚜렷한 설계 컨셉이 없이 기존의 범선 설계 방식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제작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경향을 깬 것이 드레드노트다.

드레드노트는 우선 기준 배수량이 1만 7000톤이 넘는다. 그러면서 속도도 21노트로 당시 기준으로는 빠른데다, 정해진 배수량을 '최대한 전투에 효율적인 방향으로' 설계하려는 시도의 정점에 달한 최초의 함선이다.

  • 드레드노트의 가장 큰 혁신점은 협차사격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레드노트급 이전의 주력 전함들은 대구경~소구경의 함포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주력은 역시 대구경 함포였으나 장전속도가 느렸고, 전함간의 교전도 이후의 해전과 비교하면 비교적 짧은 편이었기에 대구경 함포의 재장전이라는 그 공백을 중구경, 소구경 함포의 속사로 메우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당연히도 각 구경마다 사거리도 다르고 분산계도 다 다르다. 그렇기에 목표를 향한 각 포대의 수정사격은 있었을지언정 전 함포에 의한 일제사격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드레드노트급의 등장으로 이러한 것이 깨졌다. 드레드노트급은 이러한 기존구성을 타파하여 중구경 부포들을 모조리 철거하고 동일구경의 대구경 함포만을 다수 탑재하고 소구경의 부포는 완전히 보조용으로 사용하는 All-big-gun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이로서 주력함포인 대구경 함포의 탄착 수정이 유일한 사격목표가 되었고 그제서야 본격적인 협차사격이 가능해졌다.

  • 각 포의 각자 조준-각자 발사 대신, 전투함교의 명령에 따라 동일한 사격 제원으로 명령에 따라 주포를 발사한다.
동일한 구경과 성능의 주포이므로, 이론상 발사된 포탄은 거의 비슷한 착탄점을 가진다. 물론 이론상일 뿐 실제로는 여러 문제[3]로 인해 착탄점이 다르다. 하지만 이는 영국도 설계하기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고. 어차피 함포의 개별 탄착군을 식별해서 수정하기가 불가능이라 일제사격으로 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간에 전함의 사격은 각 포가 개별 조준해 쏘는 방식이 아닌, 중앙 지휘소가 계산한 확률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격 방식을 Straddle, 협차라 한다.

  • 전함은 홀로 작전에 나서지 않으므로 접근해올 수 있는 소형 고속함정은 호위함대에 속해 있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이 처리한다. 전함은 오직 같은 전함만 상대한다. 그래서 소형함을 상대하기 위한 중간포를 탑재해 제한된 배수량을 낭비하고 피격시 유폭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구역을 최소화하였으며, 지휘통제 입장에서도 적 전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 상대하는 적 전함은 나와 동등하다고 간주하고, 적의 공격을 버티고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중장갑(대응방어개념)과 방수 구획을 설치한다.

  •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왕복식 증기기관 대신 증기터빈을 사용한다. 여기에 화력이 좋은 중유보일러를 사용하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당시 기술적 문제 및 석탄은 영국 본토에 얼마든지 있지만 석유는 (언제 공급이 끊어질지 모를)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석탄 보일러가 탑재되었다.

당시로서는 주포를 2-4문 장착하는 함선이 많던 시점에 쌍열 12 인치 주포 포탑을 5개 장착하여 새로 도입된 일제사격시 다른 나라 함선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물론 신기술의 집대성인 프로토타입 성격을 가지므로 후대의 전함들처럼 모든 포탑을 중심선상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3개만 함체 중심선에 배치하고 2개는 양 뱃전에 배치했기 때문에 모든 포탑을 단일 목표에 지향할 수는 없었다. 동일 목표에 대한 조준은 포탑 4개 8문이 한계라는 약점을 지닌다.[4]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야말로 모든 점에서 이름대로 두려운 게 없는(Dread[두려워하다] + Nought[없다, 아니다]) 함선이었고, 다른 나라들에는 '공포의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 모든 국가들의 함선 표준 규격으로 취급되어 항공기의 성능이 함선을 압도할 때까지 그 뒤를 이은 수많은 함선들이 탄생했다.

All-big-gun은 단지 큰 대포를 많이 달아서 화력이 강하다는 정도가 아니다. 대구경 화포는 적에게 더 장거리에서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지만 단거리에서는 적합하지 않았고, 당시에는 각각의 포탑에서 자기 대포에서 쏜 포탄이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눈으로 보면서 조준해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장거리에서의 명중률은 극히 낮았다. 실제로 영국 해군에서도 장거리 포격 시험 이후 장거리 포격은 전혀 쓸모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물론 이 결론을 평가하려면 넬슨 이래로 육박전을 전통으로 하는 영국 해군의 성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장거리 포격에 여러 난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장거리 포격에서는 내 포탄이 어디쯤 떨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만도 특별한 관측기구가 필요하고, 설령 그런 관측기구를 갖춘다고 해도 어떤 착탄흔적이 어느 포탑에서 발사한 포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또한 각 포탑마다 이러한 기구를 갖추거나 포탑의 인원들이 그러한 기구를 다루고 포탄의 궤도를 계산할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각 전함들은 장거리용 주포 이외에도 단거리에서 대응할 수 있는 소구경 부포 등 여러 종류를 갖추었고, 대구경 화포는 2-4문에 불과하여 근거리에서 치명타를 먹이는 역할을 담당하는 등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사실 장거리 포격이 해전의 미래가 될 것이란 사실은 각국의 해군 관계자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뢰나 포의 사거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중~근거리 포격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서 섣불리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5] 그러던 와중에 영국 해군의 제 1 해군경 존 피셔는 당시 벌어진 러일전쟁쓰시마 해전 등의 결과를 보며 앞으로의 해전이 장거리 전투가 될 것이라 확신했으며, 승리의 요인은 전함의 빠른 속도와 대구경 포의 화력과 사거리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피셔가 12 인치(305 mm) 대포가 주 무기로 갖추고 21노트(시속 39 km) 속도를 낼 수 있는 전함을 요구하여 1906년 HMS 드레드노트가 건조되었는데, 이 배가 드레드노트급의 시발점이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은 함교의 지휘에 따라서 전 포탑이 일제 사격을 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사실 이 자체는 삽질이었다. 어차피 개별 포탑에서 각각 조준하고 사격하는 이상 포탑마다 가능한 최대의 속도로 발사하는 편이 효율적이므로 함교의 발사 신호를 기다릴 이유가 없고, 동시에 사격하면 어느 착탄흔적이 어느 포탑의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셔 제독은 이 사례로부터 사격 지휘 전체를 함교에서 맡는 방식을 착안했다. 개별 포탑이 각자 조준해서 사격하고 착탄흔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교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장교들이 조준/발사 명령을 포탑들에 하달하는 것이다. 함선 전체 단위로 관측기구를 갖추고 함교의 전문적인 장교들이 관측과 계산을 실시해서 조준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장거리에서 적함을 명중시킬 수도 있었다.

또한 장거리에서 조준해서 명중시킬 수 있다면 다양한 전투거리를 위한 여러 구경의 대포들을 갖출 필요도 없어지고, 모든 포탑의 화포를 동일한 종류로 통일하는 편이 함교에서 지시한 조준이 포탑에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하기에도 더 적합했다. 게다가 모든 포탑들이 동질적이라면 포탑 간의 탄착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므로 훨씬 장거리에서 쉽게 탄착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6] 이에 따라 모든 포탑의 화포를 동일한 대구경 화포로 통일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포탑에 동일한 대구경 화포를 장착하고 대응방어와 증기 터빈을 도입하여 드레드노트가 건조되었다. 그리하여 기존의 다른 전함들보다 1.사정거리, 2.명중률, 3.화력, 4.방어력, 5.기동성까지 뛰어난 신개념 전함이 탄생한 셈이었다. 따라서 드레드노트급이 만들어진 후 그 때까지 건조/운용되던 모든 전함들의 군사적 가치와 위상은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당대에는 밑바닥으로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계의 해군력 자체가 드레드노트급의 등장으로 0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여기는 반응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본래 전쟁사에서는 드레드노트와 같은 획기적인 신형 장비가 등장해도, 당장은 바로 이전까지의 기존 장비로도 물량의 우위나 운용 방식의 개선 등의 방법을 통해 질적 격차의 만회가 가능한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당시 드레드노트급의 경우엔 그러한 만회의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만큼 드레드노트가 획기적인 장비였다는 의미이다.
이를 두고 국내의 모 경제신문 편집 위원은 돈을 처바른 그녀의 등장으로 최신 유행이 하루 아침에 구식으로 전락했다는 재치있는 말로 표현했다.기사

이후로는 1910년 HMS 오라이언의 진수 당시 오라이언의 정보를 입수한 영국 기자가 드레드노트를 뛰어넘는(주로 주포 구경이) 배라는 의미로 사용한 '슈퍼 드레드노트급'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드레드노트급들은 1차대전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거치는 과정에서 폐기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전함들은 모두 슈퍼 드레드노트급이었다.

다만 안 그래도 비쌌던 전함의 건조비가 더욱 치솟아서 대량으로 건조한다면 국가재정이 파탄날까 걱정할 정도였다. 처음에 영국에서 드레드노트를 만들 때는 "드레드노트급이 있으면 이제 전함 숫자가 좀 적어도 다른 나라를 압도할 수 있을 테니 돈 좀 아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존의 구식전함을 모두 없는 셈치고 처음부터 군비경쟁을 할 수 있게 되어 다른 나라들도 속속 드레드노트를 따라한 새로운 전함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오히려 전함 건조비용만 엄청나게 높아지는 결과가 되었다. 사실 영국에서 드레드노트가 처음 건조될 때도 같은 우려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군사적 가치를 잃은 '드레드노트 이전의 전함'을 제일 많이 보유한 나라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으니...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가 먼저 혁신적인 전함을 만들어내 영국의 해상전력을 무력화하는 것보다는 앞서 나가는 것이 나았다.

영국은 이러한 사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누구보다 앞서 신세대 전함을 전력화하였다. 일본은 쓰시마 해전의 당사자면서도 교훈을 활용하지 못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만 집중했고 드레드노트가 데뷔한 뒤에도 예산이 부족해 구식 전함을 계속 건조했다. 결국 동맹관계였던 영국의 도움을 받아 공고급 순양전함 완성품과 설계도, 건조 장비, 제조기술 전수까지 받으면서 야마토까지 이어지는 전함 계보를 이어갔다.[7][8] 한편 일본은 쓰시마 해전을 통해 엉뚱하게 함대결전사상을 착안해냈고 이것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 드레드노트 이전의 전함들로 군비경쟁을 하려 해도 영국이 이미 상당한 척수를 보유하여 경쟁이 어려웠지만, 드레드노트급 신형전함들이라면 영국도 몇 척 없으니 경쟁할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독일 제국이 '해군법'을 제정하여 급격한 해군 군비확장에 나서면서 영국과 건함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드레드노트가 등장한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5년간 영국이 건조한 드레드노트급 이상의 전함과 순양전함은 수십척에 달했다. 독일 제국과 미국, 일본 제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열강들도 해군력 확충에 나서면서 각국은 전함 건조비용 때문에 국가 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받았다. 이런 무모한 건함경쟁이 결국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판단 하에 각 열강들은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3. 드레드노트의 배수량별 목록[편집]


  • 만재 배수량 기준


3.1. 프리 드레드노트급(전노급)[편집]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상비배수량(t)
기준배수량(t)
취역
속력(노트, knot)
러시아
아드미랄 우샤코프급 전함
4,971
1895년
16
청나라
정원급 전함
7,355
7,220
1885년 10월 29일
14.5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급 전함
8,340톤
-
1902년 12월 31일
19.5
러시아
로스티슬라브급 전함
8,880
1900년 3월
15.6
독일
브란덴부르크급 전함[9]
10,013
1893년 10월 31일
16.5
러시아
나바린급 전함[10]
10,370
1896년 6월
15
미국
인디아나급 전함
10,455
1895년 11월 20일
16.8
오스트리아-헝가리
에르츠헤르초크 카를급 전함
10,640톤
-
1906년 6월 17일
20.5
러시아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전함
11,255
10,960
1897년
16
독일
카이저 프리드리히3세급 전함[11]
11,785
11,097
1898년 10월 7일
17.5
러시아
포템킨 전함
12,500
1905년
16
독일
비텔스바흐급 전함
12,798
1902년 10월 1일
18
러시아
전함 레트비잔
12,912
12 708
1902년
18
러시아
에프스타피급 전함
12,942
12,738
1911년 4월 1일
16
미국
키어사지급 전함
13,060
11,540
1900년 2월 20일
16
러시아
체자레비치 전함
13,105
12,898
1903년
18
러시아
트리 스비아티테리아 전함[12]
13,532
1896년 중반
16.5
이탈리아
레지나 엘레나급 전함[13]
14,029
1907년 9월 11일
22
독일
도이칠란트급 전함
14,218
13,200
1906년 8월 3일
18.5
독일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
14,394
13,208
1904년 10월 15일
19
러시아
페레스베트급 전함
14,408
12,674
1901년
18
러시아
보로디노급 전함
14,415
14,091
1904년
18
영국
로열 소버린급 전함[14]
15,830
14,380
1892년
17.5
오스트리아-헝가리
라데츠키급 전함
16,099
14,741
1910년 6월 15일
20.5
미국
버지니아급 전함[15]
16,352
15,188
1906년 2월 19일
19
일본
카토리급 전함
16,700
16,400
1906년 5월 20일
18.5
영국
킹 에드워드 7세급 전함
17,500
16,350
1905년 2월 7일
18.5
미국
코네티컷급 전함
17,666
16,000
1906년 6월 2일
18
러시아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전함
18,590
17,320
1911년
18.5
프랑스
당통급 전함[16]
19,451
18,458
1911년
19


3.2. 드레드노트급(노급)[편집]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상비배수량
기준배수량
취역
속력
스페인
에스파냐급 전함[17]
16,450톤
15,700톤
1913년 10월 13일
19.5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
17,900톤
16,000톤
1910년 3월 1일
18.9
독일
나사우급 전함
21,000톤
18,570톤
1909년 10월 1일
20.2
영국
HMS 드레드노트
21,060톤
18,410톤
1906년 12월 2일
21
오스트리아-헝가리
테게토프급 전함
21,595톤
20,013톤
1912년 10월 6일
20.3
이탈리아
단테 알리기에리급 전함
21,600톤
19,500톤
1913년 1월 15일
22
일본
카와치급 전함
21,787톤
21,157톤
1914년 9월 10일
21
영국
벨레로폰급 전함
22,102톤
18,800톤
1909년 2월 20일
21
영국
넵튠급 전함
22,680톤
19,680톤
1911년 1월 11일
21
미국
플로리다급 전함
23,033톤
21,825톤
1911년 8월 31일
20.7
영국/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
21,200톤
-
1910년 4월 18일
21
영국
세인트 빈센트급 전함[18]
23,200톤
19,560톤
1910년
21
독일
헬골란트급 전함
24,700톤
22,808톤
1911년 8월 1일
20.5
러시아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
25,039톤
-
1915년 6월 10일
21
프랑스
쿠르베급 전함
25,175톤
23,103톤
1913년 11월 19일
21
영국
에린급 전함
25,250톤
22,780톤
1914년 8월 1일
21
이탈리아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25,489톤
23,458톤
1915년 4월 1일
21.5[19]
러시아
강구트급 전함
25,850톤
23,288톤
1915년 1월 11일
24.1
독일
카이저급 전함
27,000톤
24,724톤
1912년 8월 1일
21
영국
킹 조지 5세급 전함(1911)
27,120톤
25,830톤
1912년 11월 16일
21
미국
와이오밍급 전함
27,680톤
26,000톤
1912년 9월 25일
20.5
독일
쾨니히급 전함
28,600톤
25,796톤
1914년 8월 10일
21.5
미국/아르헨티나
리바다비아급 전함
30,100톤
27,500톤
1914년 8월 27일
22.5
영국
HMS 애진코트
30,860톤
27,850톤
1914년 8월 7일
22


3.3. 슈퍼 드레드노트급(초노급)[편집]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상비배수량
기준배수량
취역
속력
영국
오라이언급 전함
25,870톤
22,274톤
1912년 1월 2일
21
프랑스
브르타뉴급 전함
26,000톤
23,558톤
1916년 2월 10일
20
미국
뉴욕급 전함
28,367톤[20]
27,000톤[21]
1914년 5월 15일
21
미국
네바다급 전함
28,400톤[22]
27,500톤[23]
1916년 3월 11일
20.5
영국
아이언 듀크급 전함
30,030톤
25,000톤
1912년 1월 12일
21.25
일본
후소급 전함
30,600톤[24]
29,326톤[25]
1915년 11월 8일
22.5[26]
영국
리벤지급 전함
31,500톤[27]
29,150톤
1916년 3월
23
일본
이세급 전함
32,062톤[28]
29,900톤[29]
1917년 12월 15일
23[30]
독일
바이에른급 전함
32,200톤
28,530톤
1916년 3월 18일
21
미국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32,429톤[31]
29,626톤[32]
1916년 6월 12일
21
영국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3,000톤[33]
29,150톤[34]
1914년 12월 22일
25
미국
테네시급 전함
33,190톤[35]
32,300톤
1920년 6월 3일
21[36]
미국
뉴멕시코급 전함
33,530톤
32,514톤
1918년 5월 20일
21
일본
나가토급 전함
33,759톤[37]
32,720톤[38]
1920년 11월 25일
26[39]
미국
콜로라도급 전함
34,130톤
33,100톤
1921년 7월 21일[40]
21


4. 조약형 및 탈조약형 전함[편집]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1930년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체결로 어느 정도 진정 기미를 보이던 건함 경쟁이 다시금 불붙기 시작하여 조약 아래에서 건조된 전함과 조약에서 벗어난 전함이 건조되었다.


4.1. 목록[편집]


제조/운용국
함급
만재/상비배수량[41]
기준배수량
취역
속력
영국
넬슨급 전함
38,390톤
33,800톤
1927년 8월 15일
23[42]
영국
킹 조지 5세급 전함(1940)
42,237톤[43]
38,031톤[44]
1940년 10월 1일
28[45]
미국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45,233톤
39,285톤
1942년 3월 20일
27.5
미국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45,519톤[46]
37,188톤
1941년 4월 9일
27[47]
이탈리아
리토리오급 전함
46,215톤
41,650톤
1940년 5월 6일
30[48]
프랑스
리슐리외급 전함
48,950톤
37,450톤
1940년 4월 1일
30[49]
영국
HMS 뱅가드
52,250톤
45,200톤
1946년 8월 9일
30[50]
독일
비스마르크급 전함
52,600톤
42,900톤
1940년 8월 24일
29[51]
미국
아이오와급 전함
58,464톤
49,202톤
1943년 2월 22일
30[52]
일본
야마토급 전함
72,800톤
64,000톤
1941년 12월 16일
27[53]


5. 기타[편집]


일본에서는 드레드노트급을 노(弩)급, 슈퍼 드레드노트급을 초노(超弩)급이라고 부른다. 弩를 일본어로는 '도'라고 읽기 때문이다. 해당 한자는 일본에서 발음이 같은 한자를 차용한 것이다. '도'의 어원은 '드레드노트'의 일본식 발음인 '도레도노-또'의 첫 글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로 '弩'를 쓰지 않고 가타카나로 'ド'급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54] 한국의 오래된 번역서적에서도 '도급전함', '초도급전함' 등의 표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55]

원어로는 레드노트다 보니, 한국에서는 초노급 등을 초급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56] 사실 제대로 번역하려면 노급은 드레드노트급, 초노급은 슈퍼드레드노트급이라고 번역하는게 맞다. 그러나 만화책 번역의 경우에는 말풍선의 제약도 있으므로 힘들다. 한글 위키백과에는 '프리드레드노트=전(前)노급 전함, 드레드노트=노급 전함, 슈퍼드레드노트=초노급 전함'이라는 분류법으로 항목이 작성되어 있다. 이 구분법의 출처는 두산 엔싸이버백과사전이다.

여기서 유래되어 일본에서 '도(ド)~' 라는 접두어는 위 문단에서 설명했듯 '쇠뇌 노(弩)' 자로, '기존의 것보다 확연히 거대한, 우수한, 초월적인~' 같은 비교급 느낌으로 쓰인다.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정신기인 '근성'의 상위 정신기인 '도근성(ド根性)' 같은 것이 그 예시. 하지만 접두어 '도'는 칸사이 지역에서 1906년 이전에도 쓰였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드레드노트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없다. #

드레드노트급의 등장으로 전드레드노트급들이 무의미해졌다고 하지만 이는 다른 드레드노트급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지 보다 체급이 작은 순양함 이하의 적함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즉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도 전함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에 대한 압박에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약소국들은 굳이 전함까지 내보내지 않아도 순양함 선에서 충분히 압박을 가할 수 있었고, 전함을 출동시킬 만큼 큰 사건이라면 다른 해군강국들도 전함을 내보내어 결국 전함끼리의 대립이 되므로 사실상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초기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이전 군함보다 크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이 남아 있어 꽤 멋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를 다룬 영상 작품에 배경으로 종종 등장한다.

대체역사 작품에서도 흔히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이 선점하여 만들어서 최종보스나 다름없는 영국의 해군력을 무력화시키는 용도. 다만 약간 개량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중심선에서 어긋나 있는 포탑.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 충무공 이순신급이라는 이름으로 건조하여 일본을 압박했다.
  • '제국의 보나파르트'에서는 프랑스가 실제 역사보다 25년이나 빠르게 개발했다. 게다가 배수량은 3만 톤에 황제가 3연장 3문을 명령했고 아닌 척 하지만 황제보다 더 미쳐 있는 해군 제독들은 4연장포를 만들어 가져왔을 정도. 당연히 온갖 기술 습득을 감행해야 했고 진수 후 6년 동안 테스트를 하고서야 실전배치가 가능했으며 그러고서도 내파성을 잡지 못해 원양항해가 위험한 결함전함이었지만 싸우는 장소가 도버 해협이었기에 문제없었다.
총 5척이 건조되어 개전 첫날 영국 본토함대의 전함 수십척을 쓸어버렸고, 브리튼 섬에 프랑스 대육군이 상륙해 짓밟아 버린다. 함명 잔다르크급이었기에 이후 성녀급으로 불리며 군비 경쟁의 단초가 된다.
  • '카이저를 구했다'에서는 독일 제국에서 먼저 만들어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위력을 과시했다. 다만 위협사격을 한게 초탄에 직격해버리는 병크를 저지른다.
  • 재벌3세의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이 선점했다. 주인공의 악우인 루즈벨트 대통령이 주인공의 성을 따서 디트로이트급으로 명명하려다가 실패. 실제 역사에서의 드레드노트는 신개념을 제시한 것 치고는 군비경쟁에 의해 빠르게 구식화되어 1차대전에서조차 2선급이었는데, 여기서는 등장하자마자 단독으로 스페인 제국 함대를 쓸어버리고 뒤이어 일본에도 쳐들어가 스페인과 일본, 두 제국을 몰락시킨 전함이 되었다.

전함은 현대전에서 사라졌지만 드레드노트라는 이름은 1963년에 취역한 영국 해군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에 계승되었다.

이 드레드노트급에서 이름이 유래된 드레드노투스라는 용각류가 있다.

6. 미래형 드레드노트(드레드노트 2050)[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2BD0A1C000000578-3216304-image-a-8_1440975336080.jpg
영국 국방부의 싱크 탱크 프로젝트인 스타트 포인트(Startpoint)에서 발표한 155m 규모의 미래 함선의 컨셉이다.

아크릴-그래핀 복합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 핵융합을 동력으로 삼은 워터제트[57] 추진 선박으로 연료는 해수에서 추출한 중수소다.

레일건 함포, 극초음속 미사일, 300 노트 이상의 초고속 어뢰로 무장되어 있으며, 각종 UUVUAV가 탑재되어 있으며, 이를 이용해 탐지거리가 비약적으로 상승이 가능하다.

파일:external/4.bp.blogspot.com/dreadnought_2050_the_warship_of_the_future_6.jpg
드레드노트 2050의 함교 상상도.

뛰어난 자동화가 되어 있어, 승조원은 최대 0~50명이다. [58]

파일:external/i.telegraph.co.uk/Dreadnought2050-2_3423367b.jpg

영국에서는 빨라야 2050년에 건조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만일 이대로만 나와준다면, 과거의 드레드노트처럼 함선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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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전병기, 거함거포주의 등.[2] 흔히 말하는 전드, 전노급.[3] 정지 상태에서 쏠리는 없으므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함체의 진동과 쌍열포탑의 간섭 문제(쌍열포탑에서 동시에 발사를 하게 되면 진동으로 인해 서로의 포탄에 영향을 줘서 살포계가 엉망이 된다. 해결 방법은 발사시간을 미세하게 차이를 주고 포간의 거리를 띄우면 된다), 주포의 마모도, 포탄과 장약의 무게 차이 등등[4] 영국 해군에서 이런 배치가 완전히 개선된 것은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오리온급 전함부터다. 순양전함의 경우 인빈시블급에서 앙 에슐론 배치를 통하여 부분적으로 해결했다.[5] 또 다른 이유로는 전함 1척에 드는 막대한 비용이었다. 뭔가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려 해도 그 혁신이 실패했을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이 증발하게 된다. 그래서 어지간한 나라는 대세를 따라가는 편이었고 식민지를 전세계에 가지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해군에 압도적인 투자를 하는 영국 정도나 할 수 있을 발상이었다.[6] 그런데 서로 다른 두 전함이 동일한 목표를 공격하는 경우, 어느 탄착점이 어느 전함의 포격에 의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조준을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 이 때문에 각각의 전함이 서로 다른 목표를 조준하는 것이 기본이었고, 유틀란트 해전 등에서 신호가 꼬인 영국 순양전함 부대에서 두 순양전함이 서로 같은 목표를 조준하면서 실제로 서로의 사격을 방해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포탄이 해수면에 착탄할 경우 물기둥에 색을 입히게 만들어서(염료를 사용했다.) 구분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당연히 전함마다 다른 색의 염료를 사용해서 물기둥의 색을 다르게 표시하는 것.[7] 다만 1904년에 설계되었고 1910년에 진수된 일본의 세미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사쓰마급 전함은 12인치 쌍열포탑 4개를 일렬로 배치하는 드레드노트보다도 더 혁신적인 구조를 가진 전함이 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 형태로 변경했다. 이후 미국이 같은 주포배치를 가진 전함인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을 만들었다.[8] 일본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만들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도고 헤이하치로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9] http://en.wikipedia.org/wiki/Brandenburg-class_battleship[10] http://en.wikipedia.org/wiki/Russian_battleship_Navarin[11] https://en.m.wikipedia.org/wiki/Kaiser_Friedrich_III-class_battleship[12] http://en.wikipedia.org/wiki/Russian_battleship_Tri_Sviatitelia[13] https://en.wikipedia.org/wiki/Regina_Elena-class_battleship[14]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Sovereign-class_battleship[15] http://en.wikipedia.org/wiki/Virginia-class_battleship[16] https://en.wikipedia.org/wiki/Danton-class_battleship[17] https://en.m.wikipedia.org/wiki/España-class_battleship[18] http://en.wikipedia.org/wiki/St._Vincent-class_battleship[19] 대개장후 27노트, 자매함 줄리오 체자레가 28.24노트에 도달한 적이 있다.[20] 대개장 후 34,000톤[21] 대개장 후 29,810톤[22] 대개장 후 33,901톤[23] 대개장 후 30,500톤[24] 대개장 후 39,154톤[25] 대개장 후 34,700톤[26] 대개장후 24.5노트[27] 대개장 후 33,500톤[28] 대개장 후 38,682톤[29] 대개장 후 35,350톤[30] 대개장후 25.4노트[31] 대개장 후 38,659톤[32] 대개장 후 35,400톤[33] 대개장 후 36,565톤[34] 대개장 후 32,468톤[35] 대개장 후 40,400톤[36] 개장 이후 배수량이 크게 늘어나고 함체의 노후화로 인해 20.5노트로 떨어졌다.[37] 대개장 후 43,580톤[38] 대개장 후 39,130톤[39] 과부하시 27노트에 도달한 적이 있다.[40] 메릴랜드 취역일.[41] 미터 단위의 톤으로 기재함.[42] 자매함 로드니가 최대 23.8노트에 도달한 적이 있다.[43] 1944년 개장 후 44,460톤[44] 1944년 개장 후 39,100톤[45] 과부하 시 29.25노트[46] 1945년 개장 후 47,520톤[47] 과부하 시 28노트[48] 과부하 시 31.4노트[49] 과부하 시 32.63노트[50] 과부하 시 31.57노트[51] 과부하 시 30.8노트[52] 설계속력 33노트, 과부하 시 35.4노트[53] 과부하 시 28.5노트[54] 참고로 (弩)는 쇠뇌 계열의 활중 고대~중세에 성벽이나 군함 같은 곳에 설치해서 대포처럼 사용하던 거대한 것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므로 한자로 약간이나마 뜻이 이어진다.[55] NHK의 예능 ‘치코짱에게 혼난다’에 이 표현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56] 한국어로는 弩가 '드' 발음이 나는 것이 아니므로 적절치는 않다.[57] 예상 순항 속도는 50노트(92km/h)로 구상되어 있다.[58] 단 0명은 무선조종이며, 이 경우 조종 거리가 수천 km로 제한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