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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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서준철(徐俊哲)
출생
1923년 9월 1일
평안남도 용강군 대대면 덕동리
(현 평안남도 남포시 와우도구역 대대동)
사망
2014년 4월 9일 (향년 90세)
서울특별시
학력
주오대학 (법학 / 중퇴)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1. 개요
2. 생애
3. 참고자료



1. 개요[편집]


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1923년 9월 1일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일본 유학 도중 학병에 끌려갔다. 학병에 끌려간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장례도 치루지 못한 채 입대했다. 쉬저우의 일본군 부대에 복무 중 탈출하였고, 장준하, 김준엽, 김국주, 전이호, 차약도 등과 함께 1944년 한광반 1기를 졸업하였다. 당시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입대한 이야기는 '학병의 전형적 비극'으로 알려졌으며, 한광반 졸업 연극 공연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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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20일, OSS 유격훈련을 수료한 뒤 촬영한 사진.[1]
1945년 OSS 훈련을 마치고 이정선과 전라도반에 배속되어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지만 8.15 광복으로 인해 무산되었고, 8월 18일 이범석의 지휘 하에 장준하, 김준엽과 함께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시도하기도 했다.

해방 후 12월 2일 임시정부 요인 제2진과 함께 귀국하였고, 6.25 전쟁 당시 육군 대위로 영도유격대 기간요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훈련을 받고 유격대원들을 훈련했다. 전후 김우전, 장재민 등과 함께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하였다. 1969년 경 로스엔젤레스 지점장, 1971년 경 동경 지점장을 역임하였고, 1973년, 77년에는 이사로 선임되었다. 그 후 미국에서 생활하다 2014년 4월 9일 별세하였다.


3. 참고자료[편집]


공훈전자사료관
내의 잘라 표지를 만든 '등불' 창간, 미디어오늘, 2012년 9월 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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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측부터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