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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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민족에 대해 다루는 문서입니다. 바이킹 등 고중세 북유럽인들에 대한 내용은 노르드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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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계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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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서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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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로망스
남부 프랑스인 ( 옥시타니인 ) | 카탈루냐인
갈로로망스
북부 프랑스인 | 노르만인 | 왈롱인 | 프랑스계 스위스인
레토로망스
로망슈인 | 라딘인 | 프리울리인
갈로이탈리아
북부 이탈리아인 | 이탈리아계 스위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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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망스
루마니아인 | 몰도바인 | 아로마니아인 | 메글레노루마니아인 | 이스트로루마니아인
남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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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유럽의 로망스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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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과테말라 국기.svg 과테말라 | 파일:니카라과 국기.svg 니카라과 |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베네수엘라 | 파일:볼리비아 국기.svg 볼리비아 |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 파일:상투메 프린시페 국기.svg 상투메 프린시페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아르헨티나 | 파일:아이티 국기.svg 아이티 |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에콰도르 |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엘살바도르 | 파일:온두라스 국기.svg 온두라스 |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 파일:카보베르데 국기.svg 카보베르데 | 파일:코스타리카 국기.svg 코스타리카 |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콜롬비아 | 파일:쿠바 국기.svg 쿠바 | 파일:파나마 국기.svg 파나마 | 파일:페루 국기.svg 페루
자치 지역 및 다수 거주지
파일:2000px-Flag_of_Wallonia(v07-2020).png 왈롱 | 파일:스위스 국기.svg 로만디( 파일:보 주 문장.png 보 | 파일:제네바 주 문장.png 제네바 | 파일:뇌샤텔 주 문장.png 뇌샤텔 | 파일:쥐라 주 문장.png 쥐라 ) | 파일:티치노 주 문장.png 티치노 | 파일:1280px-Flag_of_Quebec.svg.png 퀘벡 | 파일:푸에르토리코 기.svg 푸에르토리코 | 파일:아루바 기.svg 아루바 | 파일:퀴라소 기.svg 퀴라소

언어
라틴어 | 로망스어군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 | 로마 신화
사상
범라틴주의





1. 개요
2. 어원
3. 오해
4. 역사
4.1. 유명한 노르만 가문 및 인물
5. 대중매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언어별 명칭
노르만어
Normaunds
고대 프랑스어
Normanz
고대 노르드어
Norðmaðr
라틴어
Normanni
프랑스어
Normands
영어
Normans

노르만족이란, 바이킹 중에서 서프랑크 왕국과 협상하여 침공을 중단하고 프랑스 북부 센 강 하구에 정착한 일파의 후손을 말한다. 정착을 하고서도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팽창하였고, 남북으로는 잉글랜드부터 시칠리아까지, 동서로는 이베리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중세 유럽 전역의 역사에 다대한 영향을 끼쳤던 강력한 전투종족인데, 바이킹의 항해능력에 프랑크식 기마술을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기동전 집단이었다. 당대에 이미 현지에 강력하게 동화되어 언어는 로망스어로, 종교는 기독교로 완전히 물갈이되어버렸고, 어차피 당대의 서유럽 지배층인 살리 프랑크인들도 피지배층인 켈트인과 라틴인들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이민족이었으므로 이후의 노르만인은 사실상 프랑크 귀족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2. 어원[편집]


옛 유럽인들에게 바이킹은 즉 북방사람이었는데, 프랑크 왕국의 지배층인 프랑크족이 처음에는 자기네 모어인 서부 게르만 방언(고대 네덜란드어)으로 바이킹을 noord(북방)과 man(사람)을 합쳐 noorman이라고 부르다가 곧 모어를 갈리아 속라틴어(고대 프랑스어)로 바꾸면서 Normand이라는 말 자체를 바이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게 되었고, 바이킹 중 일부가 왕국 북서부 변방에 영지를 받고 프랑크 왕의 봉신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영지를 바이킹이 사는 땅이라 하여 Normandie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Normand은 그 Normandie 출신이라는 뜻으로 굳어졌다.


3. 오해[편집]


한국에서는 정보의 부족과 유럽 문화에 대한 낮은 이해도 탓에 스칸디나비아 반도아이슬란드의 북게르만인까지 노르만족으로 퉁쳐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큰 오류로, 해외에서는 바이킹의 후손인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에서조차 자신들을 노르드게르만이라 칭하지 노르만이라 칭하지는 않는 등, 북게르만과 노르만을 아주 철저하게 구별한다.

이들은 계보학적 기원이야 최초 정착자들은 북게르만족에 속했기에 정체성 면에서는 북유럽 노르드의 후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인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하면서 프랑크 귀족 세력에 편입되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었고, 그로 인해 이미 갈리아를 정복하고 프랑스 문화를 구축하였던 같은 게르만계의 프랑크족이나 토착민족인 켈트족 혈통의 갈리아인 혹은 프랑크족보다 먼저 갈리아 지역을 정복한 라틴족과 혼혈을 이뤘다.[1] 따라서 유전적으로는 순수 노르드인이 아닌 프랑크족·켈트족·라틴족 혼혈로서 북게르만계라기보다는 거의 라틴계에 가까웠다. 이 점은 그들의 외모에 대한 기록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대표적으로 영국 문학에서 흔히 묘사되는 노르만족의 외형은 보통 흑발벽안이었다. 영국을 침공한 정복자 윌리엄 본인부터가 짙은 흑발머리였으며, 그를 따라 영국을 침공한 군대와 가신들도 노르만인은 물론 현지 프랑스인이나 주변의 플란데런인, 브르타뉴인 등이 다수를 차지하는 등 종족을 초월하여 교류하고 통혼도 일어났다. 현대에도 노르만족의 후손인 영국 상류층 대부분은 근래에 도래한 독일계 혈통영국 왕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금발이 아닌 흑발에 피부도 평균적인 잉글랜드인보다 까무잡잡하다. #참고도: 세대를 거치며 동화되는 과정

현재는 대부분 각 지역에 동화되어 노르만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정복자로서 지배계급을 형성하였으므로 특히 유서깊은 귀족 중에는 노르만 계통이 많다.[2] 그 외 유명인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볼드모트역을 맡았던 영국의 배우 레이프 파인스가 노르만의 후예다. 특히 노르망디 주민의 경우 노르만족 혈통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으며, 채널 제도와 노르망디에서는 지금도 노르만어를 사용하고는 한다. 더불어 노르망디는 노르만족의 고향으로서 문화나 음식 면에선 노르만족들의 영향이 남아 있다.


4. 역사[편집]


파일:2072BBB3-834E-4C04-8BDE-3084ECF3B9B5.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Normannen.png
노르만의 진출 영역 정리 지도(상)과 1130년 노르만의 영역(하)[3]

노르드인은 8세기부터 인구 증가 추세와 인구부양력 한계의 압박으로 본토 밖 새 정주지를 찾아 남하하였으며, 소위 바이킹으로 불리면서 유럽 북부 해안을 공격하였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들 중 롤로 일파가 센 강 하구인 루앙에 기틀을 잡았다. 서프랑크 왕국샤를 3세는 그들을 제압하는 대신 회유하여 봉토를 주고 루앙 백작으로 삼았으며, 롤로와 그 후손들은 곧 센강 너머 반도지역까지 장악하면서 노르망디 공국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외부인 노략자에서 현지인 지배자로 탈바꿈하면서 지역 사회와 융화되었다. 프랑스-라틴 문화에 동화되면서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언어적으로도 차츰 모어인 북게르만어를 쓰지 않고 노르만어라고 불리는 변형 프랑스어를 새로운 모어로 삼았다. 이들은 프랑스의 군사문화도 적극 수용하였을뿐 아니라, 그대로 현지에 눌러앉아 통혼도 하였다.

그러나 프랑크식 군사문화를 받아들여서 해양민족 출신답지 않게 완벽하게 기마민족으로 탈바꿈한 이들은 소수정예의 돌격으로 바이킹을 격퇴할 수있는 중세 중장기병술의 선두주자였고 따라서 독보적으로 강력한 단위전투력을 갖췄기에 단지 노르망디의 지배층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중해 세계로 원정을 가서 당대의 굵직한 세력들을 상대로 오만가지 싸움을 벌였다. 말이 좋아 진출이고 정복이지 같은 기독교도도 거리낌없이 배신하고 공격하는 등 행패가 지나치게 심해서 사실상 지중해 세계에서는 이들을 무장폭력단체로 간주하고 싫어했다. 심지어 기독교 동서분열로 인해 사이가 갈라진 교황청과 동로마제국도 이민족의 준동때문에 국경이 불안한 틈을 타 영토와 왕위를 노리고 마구잡이로 침략을 해대는 노르만족을 한마음 한 뜻으로 증오했을 정도다. 특히 노르만족이 최종적으로 점거하는데 성공한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는 노르만족의 상륙으로 인해 남이탈리아 고대 항구도시들의 부유한 해양상업 전통이 단절되면서 쇠퇴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탈리아 남부의 빈곤 문제와 마피아 문제의 단초가 되었다.

1066년에는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잉글랜드를 점령하면서 잉글랜드 왕국노르만 왕조가 개창되었다. 이는 웨식스 왕조의 단절을 틈타 앵글로색슨 영주들이 선출한 해럴드 2세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무력으로 획득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앵글로색슨족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였으나, 이를 진압하고 지배를 공고히 하였으며, 백년전쟁이 끝날 즈음에는 완전히 융합되면서 영국인(english)으로써 정체성을 형성하였다.[4]

노르만족은 이베리아의 레콩키스타에도 상당히 기여했다.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이전부터 굉장히 활발했는데, 1018년 로저 토스니(Roger I of Tosny)[5]가 무슬림의 침략으로부터 바르셀로나를 지키는 데 참여해 그 댓가로 바르셀로나 백작의 딸과 결혼한 것을 시작으로, 로베르트 크리스핀이나 월터 기파드 같은 노르만 모험가들은 1064년에 교황이 이베리아 반도의 바르바스트로라는 도시에 선포한 십자군에 참여하였고, 로베르트 부르데와 같은 이는 투델라 지역을 정복할 때 공을 세운 것에 대한 보상으로 타라고나 공작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렇게 이베리아 반도의 성전에 참가하는 것이 노르만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늘자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잉글랜드에 정착했던 노르만인들 일부가 다시 이베리아로 떠나 원정을 벌이기도 했다. 1142년 포르투갈의 아폰소 1세가 리스본을 점령하려 했을 때 많은 잉글랜드 출신 노르만이 참가하기도 했으며, 1147년 다시 전투를 벌여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아폰수 1세는 전투에 참가한 노르만인들을 리스본에 정착시켰다. 그 다음 해에는 바르셀로나 백작 라몽 베렝게르 4세가 토르도사 공략을 위해 노르만인 용병들을 초청하기도 했으며, 역시 이 전투 이후에도 그들은 영지를 받았다.

한편 프랑스 본토의 노르만인은, 오랜 기간 노르망디 공작 겸 잉글랜드 왕이었던 노르망디 가문 및 그 후계 가문을 따르면서, 프랑스 북부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았다. 이후 노르망디 지역이 프랑스에 완전히 흡수된 이후로는 프랑스인에 점차 동화되어 사실상 사라졌다. 시칠리아를 정복했던 노르만족은 역시 정주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다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실적이 신통치 않아서 객지에서 전사하거나 동로마제국의 라티니콘 부대 또는 바랑인 친위대에 입대하였다. 나머지 잔존 노르만인들은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의 유혈충돌과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리다 홀연히 사라졌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노르만들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듯 십자군 원정에 빠졌다. 그들은 안티오키아 근처를 점령하고 동로마 제국이나 사라센과 싸웠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묘사된 것처럼 성지에 가려면 보통 이탈리아 남부를 경유했는데, 전투민족이었던 이들 노르만인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의 아랍인들을 몰아내는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으며, 최종적으로는 이탈리아에 동화되었다. 또한, 이베리아 반도의 레콩키스타에도 상당수 가세하였다.

4.1. 유명한 노르만 가문 및 인물[편집]




5. 대중매체[편집]


중세를 다루는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는 노르드인(Norse)와 스칸디나비아 민족들은 북게르만계로 분류되지만, 노르드인에서 분화되는 노르만인(Norman)은 아예 라틴계 혹은 프랑크계로 분류된다. 여기서 노르만인은 중보병 후스카를 상비군과 광전사 돌격 전술을 쓰는 북게르만계 민족들과 달리 다른 서유럽계 민족처럼 중기병 기사 상비군과 카우치드 랜스 전술을 쓰면서도 바이킹(북게르만계=노르드인 및 노르드인에서 분화되어 나오는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인)처럼 약탈과 상륙전이 가능한 굉장히 특이한 특성을 가졌는데, 이는 노르만족의 "북구계 프랑크인"이라는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덤으로 노르만인이 아직 탄생하지 않은 중세 초기 시나리오로 시작할 경우 북게르만계 영주가 프랑스, 브르타뉴, 옥시타니아 문화의 영지를 지배할 때 이벤트가 발생하여 노르만인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탄생한 노르만인 영주가 앵글로-색슨 문화의 영지를 지배할 경우 역시 이벤트로 잉글리쉬 문화로 변화하는 추가적인 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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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라는 정체성은 필리프 2세 이후에야 비로소 등장한 것이며, 그 이전에는 어디까지나 갈리아, 서프랑키아 정도의 표현이 옳다.[2] 비단 이들의 정복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데, 역사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활동한 데다가 정복지의 가문들도 하나하나 굵직하지 않은 세력이 없어 유럽 각국과 혼인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노르망디 공작가는, 그 자체도 꽤 오래된 가문인 데다가 잉글랜드 왕위까지 보유했거니와 모계로는 프랑크 왕국카롤링 왕가하고도 맞닿은, 명문 중 명문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오늘날 웬만한 옛 군주 가문이나 고위 제후 가문에는 노르만 혈통이 흐른다.[3] 롤로가 정복한 그들의 본거지 노르망디와 롤로의 5대손 윌리엄 1세가 정복한 잉글랜드, 노르망디의 귀족 로베르 기스카르가 정복한 남부 이탈리아, 그의 아들 타란토의 보에몽이 정복한 안티오키아, 시칠리아 왕국을 통치하던 로베르 기스카르의 후계자들이 잠시 진출한 북아프리카 등이 보인다.[4] 이는 백년전쟁 이전에 노르만족들의 고향인 노르망디가 프랑스한테 점령당하면서, 영국에 정착한 노르만족들이 그들의 고향과 연결이 끊어졌던 점도 기여하였다.[5] 그가 속한 토스니 가문은 굉장히 유력한 노르만 가문 중 하나였는데, 그의 아버지 라울 1세는 남이탈리아의 아풀리아를 약탈해 명성을 얻었으며, 그가 이베리아에서 활약하는 동안 그의 아들인 라울 2세가 윌리엄 1세의 노르만 정복에 참여해 영지를 얻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로는 쇠퇴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