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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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노병희(魯炳憙)

명중(明仲)

호정(壺亭)
생몰
1849년 9월 22일 ~ 1918년 3월 28일
출생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본관
함평 노씨
사망지
전라북도 고창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노병희는 1849년 9월 2일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에서 노주상(魯周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최익현의 문학에서 수학했고, 의술에 능해서 일찍이 의관(議官)을 역임했으며, 1904년 영친왕을 진료한 후 승훈랑(承訓郞)에 제수되었으며, 후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그는 최익현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고 군자금에 충당시킬 목적으로 현금을 준비해뒀다.

1906년 4월 최익현이 의진의 거점을 태인으로 확정하고 남하하자, 그는 미리 종성리에 당도했다가 최학엽(崔學燁)·고석진·고제만(高濟萬) 등과 더불어 면암 일행을 맞이했다. 그러나 최익현은 순창에서 관군과 대치한 후 "동족끼리 싸울 수는 없다"며 의병을 해산했고, 최익현과 임병찬 등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노병희는 의병이 해산되자 고향에 돌아갔다가, 그해 12월 최익현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의(漢醫)의 자격으로 대마도로 가서 치료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최익현이 끝내 별세하자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반장했다. 이후 고향에 은거했고 1918년 3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노병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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