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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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갑)
제14-16대
박명환

제17대
노웅래


제18대
강승규
제18대
강승규

제19-21대
노웅래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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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신상진

제20대 후반기
노웅래


제21대 전반기
박광온

파일:민주당(2013년) 로고.svg 사무총장
제2대
박기춘

제3대
노웅래


합당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svg 사무총장
창당

초대
노웅래


제2대
주승용



제9대 민주연구원장

대한민국 제17·19-21대 국회의원
노웅래
盧雄來 | Noh Woong-rae

파일:405257_214856_439.jpg
출생
1957년 8월 3일 (66세)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우성아파트
본관
교하 노씨[1]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더불어민주당 마포구 갑 지역위원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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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노승환, 어머니 고정희
배우자 정호정[1], 슬하 1남 1녀
학력
서울공덕국민학교 (졸업 / 25회)
대성중학교 (졸업)
대성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철학 / 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 / 학사)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언론정보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이병 소집해제
신체
170cm
종교
천주교 (세례명: 라우렌시오)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마포구 갑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7, 19, 20, 21
소속 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경력
매일경제신문 기자
MBC 보도국 기자
MBC 보도국 사회부차장
MBC 전국노동조합 위원장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미국 미주립대학 객원연구위원
공덕초등학교 25회 동창회 회장
열린우리당 국정자문위원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갑 / 열린우리당)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갑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서울시당 위원장
민주당 서울시당 위원장
민주당 김한길 당대표 비서실장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민주당 조직강화특별위원장
혈액암협회 공동이사
제19대 국회 후반기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발전특별위원회 간사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간사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갑 / 더불어민주당)
일촌공동체 마포센터 상임고문
한국, 호주 의원친선협회 부회장
한일의원연맹 상임간사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조직위원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민주연구원 이사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마포구 갑 /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제9대 민주연구원장


1. 개요
2. 생애
3. 정계 활동
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산업재해 청문회 가짜뉴스 논란
4.2. 윤석열 부부 난임 비하 논란
5. 선거 이력
6. 소속 정당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자 출신 정치인.


2. 생애[편집]


1957년 8월 3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공덕동에서 5선 국회의원국회부의장, 재선 마포구청장[2]을 역임한 노승환의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대성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대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은사가 구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이재오 국어교사였다.[3][4]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매일경제신문 기자로 근무하였다. 1985년부터 MBC로 이직하여 2003년까지 보도국 기자, 사회부 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0년에는 혜영 용철 사건을 보도하였다. 한편 2001년부터 2003년까지 MBC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3. 정계 활동[편집]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해당 지역구는 노승환이 소선거구제로 전환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선거구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강승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5]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3년까지 민주통합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을 역임했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14년 3월부터 6월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안철수문재인의 내분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동일 지역구 후보로 단수공천 받아 당선되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출마했다.# 그러나 1차 투표에서 탈락하였다.

2016년 6월 26일 성범죄에 있어 술, 약물 등에 의한 형량 재량 감면을 삭제하는 요지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 대한 의혹에 관련된 발언인, 대기업 간부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노 의원은 2018년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경쟁후보인 홍영표와 2배 가량의 표차를 내며 당선에는 실패했다.

2019년 5월 초로 예상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삼수생이라는 동정표도 있고, 당내 비문계 의원들이 친문 일색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노 의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선거는 김태년-노웅래-이인영 3파전으로 예상되었다.#

2019년 5월 8일 실시된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34표를 획득, 54표를 획득한 이인영 의원과 37표를 획득한 김태년 의원에 밀려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하고 3위로 고배를 마셨다.

21대 총선에서는 김빈 전 청와대 행정관과 경선 끝에 공천을 받으면서 본선에 진출하였고 미래통합당 강승규 후보를 다시 한번 꺾고 4선에 성공하였다. 당선 후 다시 한번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할 지 관심을 모았지만, 자신처럼 비문 성향이 강한 정성호 의원이 출마를 결심하자 뜻을 접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했는데, 여론조사에서 비문계와 이재명계[6]의 지지를 받았는지 2위를 기록하며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8월 29일 개표 결과, 총합 13.17% 득표로 김종민 의원, 염태영 시장의 뒤를 잇는 3위를 기록하며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20년 11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로 인해 시민들의 재산세 부담이 증가하자,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공시가격 현실화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까지 고려해 재산세부담을 낮춰야 한다"면서 "공시가격 현실화는 필요하지만, 재산세는 미실현 이익에 부과하는 것이기에 급격한 세부담(인상)은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고로 노 의원의 지역구인 마포구 갑은 서울 강북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폭등했는데, 이 지역의 대장주 아파트인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는 최근 매매가 17억, 전세가 10억원을 돌파했다.#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김태년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등 당 지도부 전원과 함께 총사퇴하면서 최고위원 자리를 내려놓았다. 이후 도종환 의원을 중심으로 임시 비대위가 구성되자 친문 중심 비대위 구성에 비판하며 "국민들이 '이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을 바보로 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보일 수 있다"고 날을 세웠다.#[7]

2021년 6월 9일 민주연구원장 내정 사실이 알려졌고 6월 23일 최고위원회에서 확정되어 제9대 민주연구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2022년 11월 11일, 민주연구원 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 #

2021년 9월 1일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2023년 8월 23일 수정가결되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4.1. 산업재해 청문회 가짜뉴스 논란[편집]


산재 청문회서…與 '가짜뉴스'로 기업인 공격

2021년 2월 22일, 노웅래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일본 도쿄의 신사를 참배했다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최 회장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신사참배 갔죠? 이래도 되냐"며 몰아세웠다. 하지만 확인 결과 최 회장은 신사가 아닌 도쿄타워 인근 사찰인 조조지(上寺)에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 의원이 공개한 사진은 '신사'로 조작돼 있기까지 했다.

포스코 측은 가짜뉴스 차단을 위한 국회 ‘미디어언론 상생 TF’ 단장을 맡고 있는 노 의원이 청문회에서 가짜 사진을 가져와 주제와 무관한 질의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4.2. 윤석열 부부 난임 비하 논란[편집]


파일:노웅래 난임 비하.jpg

2022년 3월 8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국민의힘 후보인 윤석열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씨가 난임 부부인것을 조롱하는 듯한 글을 본인의 SNS에 공유하여 논란이 되었다.#

TV조선에서 보도한 직후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비난이 속출하자 노 의원은 해당 포스트를 삭제한 후 누군가 자신의 SNS를 해킹 한 것 같다고 해명하였다.

그리고 현장 유세 사진 CCTV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은 글이 올라간 8시 7분에 마포에서 현장 유세중이었다면서 보좌관들도 당시 같이 유세중이어서 누가 올릴 새가 없었다고 밝혔다.

파일:1mmmmmdddd.jpg

이에 노웅래는 3월 8일, 본인의 SNS에 “마포경찰서에 고발했습니다.” 라고 글을 올렸으나,

해킹범 고발한다더니…‘김건희 無자녀 조롱’ 글, 고발 접수도 안됐다.

2주가 지난 22일에도 고소장은 접수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는 기사가 올라와 관련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노웅래 의원 측은 “경찰 측에서는 정치적 사안이다 보니까 스스로 움직이기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며 “이번 달 안에 정식 고소‧고발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4.3. 뇌물수수 혐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노웅래 뇌물수수 혐의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마포 갑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39,992 (43.5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8,523 (45.38%)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39,398 (54.25%)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44,451 (51.92%)
3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53,160 (55.99%)
4선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4 - 2007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2007
탈당[8][9]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창당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10]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11]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12]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현재
당명 변경

7. 둘러보기[편집]
















[1] 노철래하고 같은 항렬(O來)이며 노홍철이 그의 손자뻘이다.[2] 순서가 반대가 아니다. 국회의원 5선에 국회부의장까지 했는데도, 중앙 정계 은퇴 후 지역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몸을 낮춰 구청장을 지낸 이례적 케이스다.[3] 근데 당시 이재오는 김문수, 장기표 등과 함께 노동운동의 거성이었다. 무려 수업하다가 갑자기 쳐들어온 경찰에게 시위주도 혐의로 체포되어 학생들 앞에서 멱살잡힌 채 끌려가, 경찰서나 안기부에서 고문당하며 두들겨 맞은 일화도 있을 정도. 당시 그 반 학생들 중 다수가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울었다고 전한다.[4] 비슷한 사제지간 정치인으로 이철우 경북지사-임이자 의원(고등학교 교사-학생), 오세정 의원-하태경 의원(대학 교수-학생) 등이 있다.[5] 참고로 아버지는 출마할 때마다 전승했다. 그러나 사실 2008년 총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였던데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뉴타운 열풍이 불면서 한나라당의 지지세가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시기였으며, 노웅래의 지역 기반은 그렇게 탄탄한 상황이 아니었다. 반면 아버지인 노승환은 군사정권 시기 지지도가 상당했던 야당에서 정치를 했기에 선거를 전승하면서 지역 기반을 빠르게 매우 잘 다져놨고 이를 바탕으로 마포구청장까지 재선을 한 것이다.[6] 이재명과 노웅래는 한때 정동영계로 분류된적도 있었던만큼, 노웅래는 범이재명계로 분류되기도 한다.[7] 하지만 도종환 비대위는 다음 원내대표가 선출될때까지만 유지되었고 이후 윤호중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금방 끝난지라 한마디로 노웅래 의원의 '오버'였다.[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9] 2007년 2월 6일 탈당.[10] 민주당과 신설 합당.[1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