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룰 이자 안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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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인민을 위하여’

Nurul Izzah binti Anwar, 1980.11.19 ~ (43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름바판타이 출생.
1. 개요
2. 생애
3. 정계 입문
4. 몰락
5. 재기


1. 개요 [편집]


말레이시아의 여성 정치인으로 현재 야당의 하나인 인민정의당의 부총재이다.

2. 생애[편집]


1980년 11월 19일 쿠알라룸푸르 름바판타이 구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의 부킷다만사라 초등학교를 나왔고, 후에는 스리하르타마스 중학교[1]를 다녔다가, 위성도시인 프탈링자야의 아순타 중학교로 전학갔다.

당시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2인자였던 안와르 이브라힘과 그의 부인인 완 아지자의 장녀였으며, 아버지가 당내 권력 2인자에다가 당시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의 뒤를 이을 후계서열 1위였다 보니 실로 받는 혜택은 어마어마했다.[2] 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누룰은 매우 복 받은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준비하던 1998년 집안에 큰 벼락이 찾아왔으니...


3. 정계 입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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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누룰 이자.

1998년 9월 2일 부총리를 지내던 아버지가 동성애 혐의 및 부정부패 혐의를 받으면서[3] 한순간에 숙청되고, 집안 자체가 한순간에 망하게 된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라서 동성애를 하면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는 판에, 아버지는 바로 코렁탕 신세를 피하지 못했고[4], 누룰을 포함한 그의 일가족들도 일명 '만고대죄'로 찍히면서 멸문지화급 피해를 입는다.

한참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누룰은 즉각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석방하기 위한 투쟁을 줄곧 벌여왔다. 이 18세 소녀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외국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고,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의 이러한 독재적 행위로 국제적인 지탄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마하티르의 태도는 바로 징역형 및 10년의 집행유예였고, 후에도 그를 석방시키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이왕에 대학은 나와야 지지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투쟁을 잠시 중단하고 국립에너지대학교(UNITEN)에 입학했으며 2004년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대외관계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말레이시아로 귀국한 뒤, 이미 UMNO 정권의 독재에 지칠대로 지친 인민들은 그녀를 열렬히 환영했고, 바로 2008년 자신의 고향인 름바판타이 선거구에 출마, 당선되었다. 아직 아버지의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아서 이번 선거에 나올 수는 없었으나, 어머니가 그를 대신했고, 민주행동당(DAP)과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이 추가적으로 합세하면서, 개헌저지선을 넘는데 성공했다.

2010년 자신이 속한 인민정의당(PKR)의 부총재로 선출되었고, 2013년에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재선했으며 지난번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했다.


4. 몰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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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사바 주를 거쳐 민다나오로 건너갔고, 거기서 술루 술탄국의 공주 하셀 키람을 만나 위의 사진을 찍었다. 물론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민다나오를 거점으로 하는 술루족들은 툭하면 사바를 노리는 말레이시아 제1의 반국가단체이다. 툭하면 사바에 피습해 일을 내고, 누룰이 재선에 성공했던 2013년에도 어김없이 사바를 침공해서 일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수장인 술루 술탄국의 공주를 무단으로 만나서, 자신의 아버지를 석방시키고 당시 총리인 나집 라작을 몰아내는데 협조해 줄 것을 요한다고 부탁한 것이다.

한국인이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비유하자면 어느 한국의 야당인사가 무단으로 방북해서 김정은이나 그 일가를 만나 "지금 정부를 몰아내는데 협조해 달라"라고 부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 정부를 싫어하든 말든 그것은 자유라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단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결국 욕을 먹은 채 귀국하였고, 그녀가 사바를 거쳐서 갔다는 점을 감안한 사바 주 정부에서는 그녀의 사바 입국을 금지하였다.[5] 그래도 지금은 전 총리 마하티르마저 나집과의 대립 과정에서 숙청된 지라 마하티르 세력까지 합세해서 나집을 몰아내는데 힘을 싣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2016년 사라왁 주 총선에서 여당연합인 국민전선(BN)이 승리했다는 걸 보면 이게 얼마나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는 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5. 재기[편집]


하지만 나집 라작 총리의 실정으로 인해 2018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정계 복귀를 선언한 마하티르가 총리로 재집권하는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정권교체가 일어날수 있었던 배경은 누룰의 아버지 안와르가 원수지간이던 마하티르와 동맹을 맺고 자기 지지층을 밀어준 데 있었기 때문에 조만간 안와르가 정계 일선에 복귀하리라는 전망이 높고, 그럴 경우 누룰도 다시 큰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결국 제15대 말레이시아 총선거에서 아버지는 총리가 되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본인은 부모님의 지역구[* 풀라우피낭의 Permatang Pauh 선거구. 1982년부터 부모님이 번갈아가며 의원으로 활동했던 선거구이다.]에서 낙선하는 망신을 당하고야 만다.[6] 따라서 지금은 원외인사.

그리고 2023년 1월 초 총리 수석경제고문으로 임명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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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리 하르타마스가 소위 '몽키아라'라고 불리는 곳으로, KL 내의 대표적인 한인 타운이다. 서울로 치면 서대문구 쯤 되는 포지션.[2] 비록 말레이시아가 다당제 국가라지만, UMNO는 한국으로 치면 이남새누리당보다는 이북조선로동당에 가까운 지라, UMNO 당원이라는 것이 같은 의미는 매우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누룰은 어쩌면 복 받은 아이(?)였을 지도 모른다.[3] 하지만 이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안와르와 마하티르 간의 관계가 앙숙이었던 지라, 마하티르가 고의로 누명을 뒤집어 씌우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4] 특히 1998년은 말레이시아가 APEC 정상회의 개최국이었음에도 이를 강행해 국제사회의 눈시울을 찌푸리게 했다. 당장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공항에 내리자마자 마하티르 대신 누룰의 어머니 완 아지자를 만났을 정도. 심지어 외국 정상들 앞에서 대놓고 시위진압을 해 욕을 신랄하게 쳐먹었다.[5] 사라왁사바는 별도의 이민법이 있으며, 말라야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또다른 야당인사인 테오니칭(DAP 소속)도 사라왁에서 입국 금지 크리를 먹었다.[6] 게다가 희망동맹이 풀라우피낭에 걸린 13석 중 10석을 휩쓰는 대승을 거두는 와중에도 낙선한 3명의 PH 후보자 중 하나라는 오명까지 누룰 이자는 뒤집어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