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슬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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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나이티드 FC
Newcastle United FC
정식 명칭
Newcastle United Football Club[1]
별칭
The Magpies (맥파이스)
Toon (툰)[2]
The Geordies (조르디스)[3]

약칭
NEW, NUFC
창단
1892년 12월 9일 (131주년)[4]
소속 리그
프리미어 리그 (Premier League)
연고지
잉글랜드 타인 위어뉴캐슬어폰타인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5] (St James' Park)
(52,305명 수용)
라이벌
선덜랜드 AFC - 타인위어 더비[6]
미들즈브러 FC - 타인티스 더비[7]
구단주
공공투자기금 (Public Investment Fund) (80%)[8]
루벤 브라더스 (David and Simon Reuben) (10%)[9]
아만다 스테이블리 (Amanda Staveley) (10%)[10]

회장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야시르 알루마얀 (Yasir Al-Rumayyan)[11]
CEO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대런 일스 (Darren Eales)
스포팅 디렉터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댄 애쉬워스 (Dan Ashworth)
감독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에디 하우 (Eddie Howe)
주장
C
[[잉글랜드|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자말 라셀스 (Jamaal Lascelles)
부주장
VC
[[잉글랜드|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키어런 트리피어 (Kieran Trippier)
UEFA 랭킹
80위[12]
역대 한국인 선수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기성용 (2018~2020)
공식 웹사이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Newcastle_United_Logo.svg.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팬 커뮤니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Newcastle_United_Logo.svg.png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4회)
1904-05, 1906-07, 1908-09, 1926-27
EFL 챔피언십 (2부)
(4회)
1964-65, 1992-93, 2009-10, 2016-17
FA컵
(6회)
1909-10, 1923-24, 1931-32, 1950-51, 1951-52, 1954-55
FA 커뮤니티 실드
(1회)
1909
UEFA 인터토토컵
(1회)
2006
인터-시티 페어스컵
(1회)
1969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산드로 토날리 (Sandro Tonali)
(2023년, From AC 밀란, 7,0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앤디 캐롤 (Andy Carroll)
(2011년, To 리버풀 FC, 3,500만 £)
최근 영입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루이스 홀 (Lewis Hall)
(2023년, From 첼시 FC, 임대)
최다 출장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지미 로렌스 (Jimmy Lorence) - 496경기 (1904~1922)
최다 득점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 206골 (1996~2006)
리그 득점왕
(5회)
1910-11 -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앨버트 셰퍼드 (Albert Shepherd) - 25골
1951-52 - [[칠레|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틀:국기|
]][[틀:국기|
]]
조지 로블레도 (George Robledo) - 33골
1974-75 -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맬컴 맥도널드 (Malcolm Macdonald) - 21골
1993-94 -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앤디 콜 (Andy Cole) - 34골
1996-97 -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 25골


1. 개요
2. 1군 스쿼드
3. 역대 감독
5. 역사
5.1. 주요 업적
5.2. 시즌별 리그 순위
6. 상세
6.1. 2009년 이전
6.2. 챔피언십 강등의 수모(2008-09 시즌)
6.3. 프리미어 리그 복귀(2009-10 시즌)
6.4. 2019~2021년 매각 사가
6.5.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이 되다
7. 최근 시즌 요약
8. 뉴캐슬을 거쳐간 인물들
8.1. 뉴캐슬을 거쳐간 유명인들
8.2. 뉴캐슬을 거친 막장 인물들
8.2.1. 선수
8.2.2. 감독
9. 대한민국과 관련된 이야기
10. 여담
11.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는 잉글랜드 북동부의 공업 도시인 타인위어뉴캐슬어폰타인에 위치한 클럽이다. 홈 구장은 세인트 제임스 파크이다.

1892년 뉴캐슬 이스트 엔드가 뉴캐슬 웨스트 엔드를 인수·합병하면서 창단되었으며, 창단 이후부터 계속해서 사용해오고 있는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52,35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에서 일곱번째로 큰 규모이다. ‘맥파이스’(The Magpies, 까치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2005년 영화 《골!》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앨런 시어러가 몸담았고 90년대 잉글랜드의 빅클럽중 하나로 유명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그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 말인즉 성적이 매년 요동치는 클럽이였다는 것. 어떤 시즌은 유로파 진출을 노릴 정도로 호성적인 반면, 어떤 시즌은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전형적 하위권 팀의 기복을 보여줬었다. 화려한 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명장 중 하나인 바비 롭슨이 2000년대 초반까지 클럽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감독 은퇴후 꾸준히 하락세를 겪다가 마침내 강등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새 감독인 에디 하우가 부임하고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코 2022-23 시즌에는 리그 4위를 차지하고 오랜만에 챔피언스 리그에 복귀 하게 되었다. 사실상 빅 6를 제외하면 레스터 시티 FC, 에버튼 FC, 아스톤 빌라 FC와 함께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이라고 볼 수 있다.

구단의 라이벌로는 선덜랜드미들즈브러가 있다.

2021년 사우디아라비아 차기 국왕이 될 빈 살만 왕세자가 실질적인 구단주가 되면서 단숨에 세계 최고 수준의 갑부 구단이 되었다.

2. 1군 스쿼드[편집]





3. 역대 감독[편집]





4. 역대 유니폼[편집]





5. 역사[편집]



5.1. 주요 업적[편집]



5.2. 시즌별 리그 순위[편집]



파일: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시즌별 리그 순위


[ 펼치기 · 접기 ]
시즌

리그
순위
1892-93
-
노던 풋볼 리그
2
1893-9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4
1894-9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0
1895-96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896-9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897-9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
1898-9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3
1899-0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00-0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6
1901-0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3
1902-0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03-0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04-0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05-0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06-0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07-0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08-0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09-1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10-1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11-1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3
1912-1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13-1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14-1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15-16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1916-17
1917-18
1918-19
1919-2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20-2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21-2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22-2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23-2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9
1924-2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6
1925-2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26-2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27-2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9
1928-2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29-3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
1930-3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31-3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32-3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33-3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34-3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6
1935-36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8
1936-3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4
1937-3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9
1938-39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9
1939-40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중단
1940-41
1941-42
1942-43
1943-44
1944-45
1945-46
1946-47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947-48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
1948-4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49-5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50-5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4
1951-5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52-5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6
1953-5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54-5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55-5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56-5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57-5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
1958-5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59-6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60-6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61-62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1
1962-63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7
1963-6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8
1964-65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
1965-6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66-6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
1967-6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0
1968-6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9
1969-70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7
1970-71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2
1971-72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72-73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9
1973-74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74-7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75-7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5
1976-7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5
1977-7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1
1978-79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8
1979-80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9
1980-81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1
1981-82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9
1982-83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5
1983-84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984-85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4
1985-86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1
1986-87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7
1987-88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8
1988-89
1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20
1989-90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3
1990-91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11
1991-92
2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20
1992-93
2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
1993-94
1
FA 프리미어 리그
3
1994-95
1
FA 프리미어 리그
6
1995-96
1
FA 프리미어 리그
2
1996-97
1
FA 프리미어 리그
2
1997-98
1
FA 프리미어 리그
13
1998-99
1
FA 프리미어 리그
13
1999-00
1
FA 프리미어 리그
11
2000-01
1
FA 프리미어 리그
11
2001-02
1
FA 프리미어 리그
4
2002-03
1
FA 프리미어 리그
3
2003-04
1
FA 프리미어 리그
5
2004-05
1
FA 프리미어 리그
14
2005-06
1
FA 프리미어 리그
7
2006-07
1
FA 프리미어 리그
13
2007-08
1
프리미어 리그
12
2008-09
1
프리미어 리그
18
2009-10
2
풋볼 리그 챔피언십
1
2010-11
1
프리미어 리그
12
2011-12
1
프리미어 리그
5
2012-13
1
프리미어 리그
16
2013-14
1
프리미어 리그
10
2014-15
1
프리미어 리그
15
2015-16
1
프리미어 리그
18
2016-17
2
EFL 챔피언십
1
2017-18
1
프리미어 리그
10
2018-19
1
프리미어 리그
13
2019-20
1
프리미어 리그
13
2020-21
1
프리미어 리그
12
2021-22
1
프리미어 리그
11
2022-23
1
프리미어 리그
4



6. 상세[편집]



6.1. 2009년 이전[편집]


1892년에 뉴캐슬 이스트 엔드와 뉴캐슬 웨스트 엔드가 합치며 탄생하였다. '유나이티드'라는 명칭은 이 두 팀이 합쳐졌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으로, 창단 후 현재까지 뉴캐슬어폰타인의 유일한 축구팀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도시의 유일한 팀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뉴캐슬 팬들은 다른 '유나이티드' 명칭을 쓰는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등)이 스스로를 '유나이티드'라고만 칭하면 상당히 아니꼬와한다. 다만 보통 영국의 '유나이티드'는 팀의 출신 배경이 '노동조합(United)'이라는 의미인 경우가 많아서 뉴캐슬과는 의미가 다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등이 있다.

뉴캐슬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랭크 와트 비서가 1895년부터 35년간 비공식적으로 팀을 지휘하여 콜린 비치, 스탠 시모어, 앤디 커닝엄, 휴이 갤러거 등을 중용했고, 1900년대에 3번, 1920년대에 1번이나 리그에서 우승하는 등 나름 전성기를 지녔으나 1934년에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당했다.

1938년에 단장으로 돌아온 스탠 시모어는 이듬해부터 감독도 맡아 1943년 재키 밀번을 영입하여 새 시대의 기초를 다지고, 1948년 1부 리그에 승격시켜 1950년대에 FA컵을 3번이나 우승시켰다. 이후 시모어 시대에 주장으로 활약한 조 하비가 1962년부터 팀 감독이 되어 1965년에 2부 리그 우승으로 또다시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1969년에 인터-시티 페어스컵 결승에서 헝가리우이페슈트를 꺾어 우승컵을 차지하기도 했다. 허나 그 역시 리그에서의 지지부진한 성적으로 팬들의 원성을 사서 1974-75 시즌을 끝으로 물러났다.

후임으로 블랙번 로버스 감독이던 고든 리를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리차드 디너스, 빌 맥개리, 아더 콕스, 잭 찰튼, 짐 스미스,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등이 지휘를 맡았으나, 팀은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며 1부와 2부 리그를 오갔다.

그러나 1992년부터 부동산 개발업자 존 홀 경이 회장으로 부임한 후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여 케빈 키건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이에 따라 팀은 더욱 강해져 1993년 2부 리그에서 승격하여 1993-94 시즌 바로 3위를 차지하였고[13], 1995-96[14], 1996-97 시즌 2연속으로 2위에 오르는 등 단박에 프리미어 리그의 강호로 자리매김하였다. 리그에서 연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뉴캐슬은 1997-9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데뷔했고[15]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FC 바르셀로나에 짜릿한 3-2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후 잠시 주춤하다 1999년부터 5년간 재임한 바비 롭슨 감독의 지휘 하에 다시금 챔피언스 존을 확보하며 강력한 모습을 선보였다. 2001-02 정규 시즌에서 파죽지세로 4위를 찍어 챔스 티켓을 따냈고, 다음 시즌 챔스 3차 예선에서 보스니아의 FK 젤레즈니차르를 도합 5:0으로 제압하고 조별 리그에 진출한 후 첫 세 경기에서 모두 패했음에도 불구하고(유벤투스, 디나모 키이우, 페예노르트와 같은 조에 있었다) 16강에 진출했다. 다만 16강에 진출해도 2차 조별 리그가 있었고, 그 조에는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바이어 레버쿠젠과 한 조였는데 2승1무3패로 조 3위로 탈락했다. 2002-03 정규 시즌도 리그 3위로 마치면서 챔스 티켓을 따냈으나, 다음 시즌 챔스 3차 예선에서 세르비아FK 파르티잔승부차기로 충격적인 광탈을 당한 이후로는 챔피언스 리그와는 인연이 없다.

'엔터테이너'라고 불릴 정도의 공격적인 팀컬러와, 1996-97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당시 세계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며 앨런 시어러를 하이재킹 할 수 있었을 정도의 공격적인 투자가 어우러졌던 과거의 뉴캐슬은, 현재와는 확연히 다른 위상과 매력을 지닌 빅클럽이었다. 한국에 해외축구가 널리 유통되던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강팀이었기 때문에 한국에도 당시부터의 꽤 긴 구력을 지닌 뉴캐슬 팬들이 많다.[16] 이 시기에 팀이 강팀으로 자리를 굳히는 데에는 시어러의 월등한 득점력과 셰이 기븐 골키퍼의 철벽수비가 한몫했다. 이 외에 우구 비아나와 저메인 제나스 등 유망주들의 활약도 빛을 발했다.

그러나 프레디 셰퍼드 당시 구단주의 무리한 투자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던 데다[17], 거기에다 2000년대 초반 팀을 이끌던 바비 롭슨 감독이 04-05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성적 부진 및 선수단 관리 실패 등을 이유로 들어 경질한 후 유명한 막장 감독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이 롭슨 경의 뒤를 맡게 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뉴캐슬은 드라마틱한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위에서 어느정도 언급 되었지만 2004-05 시즌 개막 후 시즌 초 4경기에서 2무 2패에 그치자 롭슨 감독을 경질하고 수네스를 선임했는데, 기존 선수들과의 불화 및 이상한 선수기용, 전술 등으로 화끈하게 말아먹으며 전년도 5위 팀을 14위까지 끌어내렸고, 이런 성적에도 유임이 되자 팬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반등하길 빌었으나.. 05-06 시즌에도 전설의 3B 라인을 대표로 하는 삽질만 계속해서 거듭하며 중위권에서 헤메다가 수네스를 경질한 후 수석 코치였던 글렌 로더 감독대행 체제에서 기븐의 활약과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시어러, 오언의 활약 등에 힘입어 7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고, 시즌 후 팀의 상징이었던 시어러가 은퇴를 선언하며 팀을 떠났다.

2006-07 시즌에는 글렌 로더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 한 후 은퇴한 시어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프리미어 리그 수위급 윙어였던 데이미언 더프, 인테르에서 3시즌 연속 두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던 오바페미 마틴스 등을 영입하며 공격진을 개편, 인터토토컵에서 우승컵을 따내고 개막전에서는 위건을 2:1로 잡아내는 등 시즌 출발은 좋았으나.. 오언이 부상으로 시즌 내내 골골대고 더프도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의 주전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터지는 등 여러 문제점들이 터지며 약 두달 가까이 승리가 없을 정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순위는 급락했고, 결국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시즌 종료 후 글렌 로더 감독은 경질 되고 셰퍼드 회장은 스포츠 다이렉트 창업주 마이크 애슐리에게 구단을 판매하며 구단주가 교체되었다.

2007-08 시즌을 앞두고 구단주가 된 마이크 애슐리는 볼튼을 중상위권으로 이끌었던 샘 앨러다이스를 선임했다. 그리고 오언의 부상 복귀와 함께 선수단 보강을 위해 상당한 지출을 감행했다. 우선 마크 비두카와 앨런 스미스, 조이 바튼을 데려오며 공격진과 미들진의 뎁스를 늘렸고, 특히 수비진은 지난 몇 년 간의 수비불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운영진의 한이 서린 대대적인 영입이 있었는데 호세 엔리케, 제레미 은지탑, 카사파, 다비드 로젠할, 하비브 베예, 압둘라예 파예 등 프리미어리그 및 유럽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상을 보여주던 수비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선수층을 대거 보강했기에 토트넘과 함께 빅 4의 대항마가 되리라는 예상이 있었다.[18][19] 그리고 3B의 일원이던 타이투스 브램블을 위건으로 방출하는 데도 성공했다.[20]

빅 샘의 출발은 상큼했다. 개막전에서 친정 팀 볼튼을 방문하여 마르틴스의 바이시클 킥 포함 2골로 3:1 승리를 거두며 '올해는 다르다'가 될 줄 알았다. 더비에 패하기도 했으나[21] 그래도 초반 9경기에서 5승 2무 2패로 순항했다.[22] 그러다가 11라운드 레딩 원정에서 1-2 패배로 삐걱대더니 12 라운드에서 포츠머스 FC에 안방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전반 8분부터 11분까지 3골을 내주며 4-1로 패배하며 홈 관중들이 전반도 마치기 전에 빠져나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곧이어 리버풀과의 홈 경기도 3-0 완패, 빅 샘은 홈 관중에게 대놓고 삿대질을 당하는 등 홈 팬으로부터 사실상 지지를 잃었다. 단독 꼴찌 더비와의 홈 경기도 이기지 못하며 결국 빅 샘은 2008년 새해가 된 뒤 얼마 안 가 경질당했다. 감독 대행으로 경기를 치른 맨유 원정에서 후반에만 6실점하며 0-6으로 졌다. 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커리어 첫 해트트릭 허용 구단이 되었다.

맨유전 대참사 이후 케빈 키건이 1997년 1월 이후 11년 만에 컴백하자 홈 팬들은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키건의 부임 이후에도 연말부터 이어진 무승 행진이 이어졌다. 아스날에 3-0, 빌라엔 4-1 대패를 당한 뒤 27라운드 맨유에 홈에서 1-5로 패하며 맨유전 도합 11골을 헌납했다. 심지어 타인티스 및 타인위어 더비 1차전에서 무승부를 한 데다 블랙번에 홈에서 0-1로 패배, 리버풀에도 0-3 대패를 당하는 등 무승 기록은 13경기까지 이어지며 한때 강등권에 간당간당하게 앞서게 되었다. 대패를 많이 허용해 골 득실도 불리했다.

다행히 31라운드 풀럼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키건 감독은 부임 후 9경기 만에야 복귀 승에 성공했다. 이어서 토트넘과 레딩에 대승을 거두고 타인위어 더비 2차전도 승리하며 강등 걱정에서 벗어났다. 결국 12위로 리그를 마감하게 되었다.


6.2. 챔피언십 강등의 수모(2008-09 시즌)[편집]


개막전 지난 시즌 11실점의 수모를 안긴 디펜딩 챔피언 맨유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뒀고 2R 볼턴과의 홈경기는 오언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3R 아스날 원정에서 3-0 완패로 8월 일정을 마쳤으나 갑자기 키건 감독의 사임 소식이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키건 감독은 2007-08 시즌 종료 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구단 측과 마찰을 빚었다. 키건은 네임 밸류 높은 프리미어 리그 출신 스타들의 영입(베컴, 앙리 등)을 강조했고, 당시 데니스 와이즈 디렉터는 대륙의 자원들(콜로치니, 구티에레스 등)의 영입을 고수했다.

결국 디렉터쪽이 승리하며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호나스 구티에레스가 영입되었고 키건 감독은 분노하여 계속되는 구단의 잔류 설득에도 끝내 결별을 선언했다. 키건 감독이 부임 8개월, 시즌 3경기 만을 치르고 떠나게 되어 열받은 팬들이 구단 측에 격렬하게 반발하자, 애슐리 구단주는 구단 매각 방침을 세워 여러모로 노력했으나 적극적인 인수자가 등장하지 않았다.(당시 유력 인수자 후보로 베리 모트라는 사람이 등장하지만 인수를 위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잠정적으로 매각을 포기하고 계속 운영을 이어갔다.

키건의 후임으로 임시 감독 조 키니어[23]가 부임했으나 일전 감독 경력에서 채 채우지 못한 퇴장 명령이 남아 몇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하는 개그를 하기도 했다.

키니어 임시 감독 체제에서 팀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선덜랜드와의 라이벌전 원정에서 28년만에 지는 수모도 있었으나 빌라전에서 2:0으로 승리하고 첼시 원정 무승부를 따냈으며 포츠머스 원정 3-0 완승, 토트넘과의 홈경기 2-1 승리로 크리스마스 시점인 18R까지 5승7무6패로 12위에 있으면서 중위권 도약을 꾀했다. 그러나 박싱데이 위건 원정에서 작년부터 계속해서 뉴캐슬을 상대로 원더골을 뽑아냈던 라이언 테일러에게 또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실점하며 졌고, 2008년 마지막 경기인 선두 리버풀과의 홈경기는 기븐이 무수한 슈팅을 막아내 평점 9점을 받고도 5:1 참패를 당하는 굴욕적인 경기를 하면서 중위권으로 올라간다는 목표는 꼬이기 시작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샤를 은조그비아와 세이 기븐이 떠나고 페테르뢰벤크란츠, 케빈 놀란, 위에서도 언급됬지만 계속해서 뉴캐슬을 괴롭혔던 라이언 테일러가 영입되었다. 그러나 임시 감독 키니어가 윔블던 때처럼 심근경색 수술을 받게되면서 당시 수석 코치였던 크리스 휴튼이 임시 감독으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임시 감독의 감독 대행이라니 눈물이 저절로 나올 것 같다. 키니어의 공백 기간 순위가 강등권으로 처지자 구단은 앨런 시어러를 임시 감독으로 데려오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그러나 2월 이후 3달 가까이 승리가 없을 정도로 부진하면서 라이벌인 선더랜드에게도 밀리고 강등이 눈 앞까지 다가왔고, 36R 더비 라이벌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당시 뉴캐슬이 18위, 보로가 19위로 강등을 건 단두대 매치가 벌어졌다. 여기서 뉴캐슬은 3-1로 승리하여 보로를 사실상 강등으로 몰아넣었고 뉴캐슬은 약 3달 만의 승리를 거두며 17위였던 헐 시티를 골 득실로 제치고 17위로 올라서며 잔류의 희망을 챙겼으나 다음 라운드 풀럼전에서는 0-1로 패배한데다 같은 날 헐 시티가 무승부를 거뒀기에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했다.

그래도 리그 최종전만이 남은 상황에서 헐 시티가 뉴캐슬에 승점 1점 차이로 간신히 앞서고 있었고, 득실 차에서는 뉴캐슬이 한 골 차로 앞서고 있던 상황에서 헐 시티가 최종전에서 리그 챔피언인 맨유를 만나 패배할것이 확실했기에[24] 뉴캐슬은 아스톤 빌라와의 마지막 라운드에서 비기기만 해도 골 득실로 잔류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전반 38분에 더프의 자책골이 들어가며 벼랑 끝까지 몰렸고,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려고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0-1 패배를 거두면서 18위로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어 2009-10 시즌을 챔피언십에서 보냈다. 36R에서의 승리로 보로를 사실상 강등으로 몰아넣었음에도 결국 본인들도 라이벌과 사이 좋게 강등당한 것. 오언은 시즌 중반까지는 리그 8골을 득점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었으나 2009년 1월 이후에는 무득점으로 부진하면서 시즌 막바지 팀의 강등에 일조했고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풀렸다.


6.3. 프리미어 리그 복귀(2009-10 시즌)[편집]


뉴캐슬은 2009-10 시즌 구단주(마이크 애슐리)가 팀을 시장에 내놓고 그간 투자했던 비용을 구단주에 대한 부채로 처리해 거의 돈을 쓰지 못했는데,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덕장 휴튼 감독이 선수단을 신뢰하며 팀을 뭉치게 만들었고, 여기에 니키 버트, 숄라 아메오비, 스티브 하퍼 등의 베테랑 보컬리더들이 별 말 없이 잔류하면서 분위기를 수습해 갔다. 또한 전 시즌 중반 합류한 케빈 놀란이 시즌 17골로 챔피언십 2009-10 최우수 선수상을 거머쥐며 맹활약했고, 키만 큰 멀대였던 유망주 앤디 캐롤이 하부 리그에서 경험치를 쌓아 역시 시즌 17골을 기록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호재도 뒤따랐다. 크리스 휴튼 임시 감독은 임시 감독 신분으로 코카콜라 이달의 감독 상을 수차례 받는 등 선전하여 정식 감독으로 계약했다.

시즌 중반 이후 줄곧 1위를 달렸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2010년 4월 6일 챔피언십팀 중 가장 먼저 승격을 확정지었다. 경기 시작 전 3위 노팅엄 포레스트카디프 시티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승점 72점을 기록, 뉴캐슬은 승점 86점으로 남은 경기에 상관없이 자력으로 승격을 확정지었다. 이어 열린 경기에서 뉴캐슬은 페테르 뢰벤크란츠와 케빈 놀란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승격을 자축했다. 결국 챔피언십 역대 최다 승점 2위인 승점 102점으로 코카 콜라 트로피를 손에 쥐며 험난했던 챔피언십 시절을 화려하게 마감하고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다.

여담으로 2009-10 시즌 어웨이 유니폼은 홈 유니폼과 디자인이 똑같았는데 줄무늬 색상만 달랐다. 그런데 그 색깔이 노랑-흰색 줄무늬라서 일명 참외 유니폼으로 통했는데 역사상 최악의 유니폼으로 꼽힌다. 그래도 이 시즌 유니폼이 뉴캐슬과 줄무늬 정체성을 공유해 잘 어울리던 아디다스가 제작한 마지막 유니폼이어서[25]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6.4. 2019~2021년 매각 사가[편집]


전임 구단주인 마이크 애슐리는 스포츠 용품 유통업체 '스포츠다이렉트'의 회장으로 자신의 비즈니스와의 시너지를 기대하며 2007년 클럽을 인수했으나, 구단 운영에 대한 간섭과 팀의 PL 첫 강등 등 부진한 성적 등이 서포터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아 금세 구단 운용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다. 애슐리는 2008년부터 구단을 매각하려고 했으며, 그해에 아랍에미리트로 가서 인수 논의를 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왔었다. 포포투 보도에 의하면 가서 8,000억 이상을 생각하며 팔려고 했으나 아부다비두바이에선 그다지 관심도 안 보여서 그냥 피서나 즐기고 왔다고 비꼬았다. 솔직히 이 돈은 너무 비싸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참고로 첼시 같은 경우나 맨시티도 4,000억대에 팔렸다는 게 정설이다. 과거 첼시나 맨시티가 팔리기 전까지는 뉴캐슬에 비해서 한끗 처지는 클럽이긴 했으나 그래도 금액 차이가 너무 컸다. 2010년 말에도 계속 오일 달러 부호의 인수 떡밥이 돌고 있으나 죄다 빗나가고 있다. 애슐리의 요구때문에 인수는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애슐리가 있으면 팀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데, 팀이 팔리지가 않는다.

하지만 2019년 만수르의 사촌인 셰이크 칼레드가 5270억으로 인수 직전까지 갔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해 국내외 툰 아미들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거기에 2020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차기 국왕이 될 왕세자 빈 살만도 이 팀을 노리고 5000억대로 사고자 협상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맨시티 구단주보다 압도적인 부자로 알려진 빈 살만 왕세자가 공교롭게도 노리던 팀이 바로 맨유조엘 글레이저에게 4조 원 이상이라는 돈을 부르며 사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뉴캐슬을 대신 살 것이라는 보도이기에 꿩 대신 닭으로 뉴캐슬을 산다고 나선 셈이라 뉴캐슬 서포터들은 좀 씁쓸한 느낌도 들겠지만 이는 첼시와 맨시티도 그랬었다. 공교롭게도 알 나얀도 맨시티보다 먼저 사려고 나섰던 팀이 뉴캐슬이었고 이게 무산되자 발렌시아 CF를 사려다가 거부당해 결국 3번째로 나선 것이 바로 맨시티. 우습게도 외국인 구단주를 거부하며 알 나얀 왕자가 포기한 발렌시아는 10년도 안가 2010년대 중순에 재정난에 빠져 결국 중국계 싱가포르 재벌 피터 림에게 팔려서 발렌시아 서포터들은 차라리 외국인에게 팔릴 바에는, 예전 알 나얀에게 팔렸더라면 팀 역사가 달라졌으리라고 아쉬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더 선은 2020년 2월 26일(현지 시간) “빈 살만 왕세자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그리고 다시 맨유를 인수하려고 한다”라고 보도하고 있는데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았으나.뉴캐슬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기에 빈 살만 왕세자가 뉴캐슬을 포기하고 다시 맨유를 값을 더 부른 5조 5천억원이라는 뉴캐슬 인수 비용 추정치의 11배를 부르고 있기에 어찌될지 모른다.

그리고 2020년 3월 30일자 영국 언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뉴캐슬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 컨소시엄 입찰이 수 개월 내 완료 될 것"이라며 "인수 금액은 3억 4,000만 파운드(약 5,160억 원)다.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가 지분 80%를 소유하는데 이 PIF는 총 자산 3,200억달러(약 392조 원)에 이르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이다. 여기와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PCP 캐피탈과 뉴캐슬 레이싱 코스를 갖고 있는 루벤 브라더스가 10%씩 나눠갖는다는 것이다. 입찰을 확인한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은 컨소시엄이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 필요 점검에 나선다.

결국 7월말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서 사는 일은 취소되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와 'BBC’ 등은 7월 30일(한국 시간) 일제히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뉴캐슬 인수 계획을 취소했다"라고 보도했다.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의 승인만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여기저기서 잡음이 들려왔다. 사우디의 인권 침해, 자국 내 무단 프리미어 리그 스트리밍 방관 등 논란이 이어졌고, 결국 인수 철회되었다. 팬들은 2021 시즌은 강등당할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뉴캐슬 측은 2020년 9월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EPL 사무국이 사우디 자본 컨소시엄의 구단 인수를 부적절한 판단으로 거절했다"라고 지적했다. 사우디 극부 공공투자펀드(PIF) 중심 컨소시엄은 3억파운드(약 4,623억원)에 뉴캐슬 인수를 추진했으나 승인에 앞서 소유주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는데 소유주 테스트는 개인이 구단주가 되는 걸 금지하는 요건을 의미한다. 여기에 범죄에 대한 유죄 판결, 스포츠나 프로 기구에 의한 금지, 승부 조작 같은 일부 규정 위반이 들어간다.

EPL 사무국은 이 가운데 PIF를 사우디 왕가의 소유로 볼 소지가 있다고 봤다. 결국 PIF 콘소시엄은 지난 7월 뉴캐슬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인수 기대감이 높았던 뉴캐슬 측은 "PIF는 사우디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리는 내용과 법적 의견을 EPL에 전달했지만 계획을 무산했다"라며 "모든 방안을 검토해 대응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사우디 국부펀드부터가 결국 사우디 왕가로부터 나온 돈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 정확한 사실은 사우디 왕가 소유인 PIF가 PL 중계권사인 카타르의 베인 스포츠와 극심한 마찰을 겪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우디는 카타르와 국가 간 갈등으로 인해서 중동의 독점 중계권사인 베인 스포츠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불법으로 방송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에 1조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계약한 베인스포츠에서 항의했고 해적 방송이 문제가 되자 EPL 사무국은 PIF가 소유자 테스트(Owners and Directors)에서 떨어졌다며 뉴캐슬 인수를 불발시켰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 극부 공공투자펀드(PIF)는 세리에 A 강호인 인테르나치오날레를 2021년 3월 들어서 사겠다고 나서고 있다. 인터 밀란 소유주이던 중국 쑤닝 그룹이 무리하게 돈을 끌어모아 투자했으나, 제대로 파산 직전으로 망해버렸기에 중국 슈퍼리그에서 소유하던 장쑤 쑤닝이 2020년 시즌 우승하고 2021년 개막도 하기전에 팀을 해체해버릴 정도이다. 하지만, 인테르와 인수 논의가 지지부진하더니 10월 들어서 갑자기 다시 뉴캐슬을 산다고 보도되고 있다.

BBC에서 2021년 10월 6일(현지 시간) "사우디 국부펀드가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를 앞두고 있다. 합의를 마친 상태이며, 24시간 내로 인수 작업이 마무리될 것"이라면서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인수를 두고 그동안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무려 18개월 만에 인수 작업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사우디 왕가는 논란이 된 카타르 방송 '비인 스포츠'와 중계권 분쟁을 해결하면서[26] 사우디 국부펀드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 최종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의 승인이 내려져야 하지만, 다수의 영국 현지 언론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고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뉴캐슬 팬들도 사우디 국부펀드의 인수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이에 대해 'BBC'는 "뉴캐슬유나이티드의 서포터즈인 '트러스트'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93%가 인수에 찬성했다. 뉴캐슬유나이티드의 인수 소식은 팬들을 기쁘게 할 만한하다"라며 뉴캐슬 유나이티드 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6.5. 세계 최고 부자 구단이 되다[편집]


결국, 2021년 10월 7일 (현지 시간)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PIF(사우디 국부 펀드)로 3억 500만 파운드(약 4,953억 5,000만 원)에 매각되었다. 링크 이로써 장장 18개월이 걸린 사우디-뉴캐슬 인수 사가는 인수 완료라는 결과로 마무리되게 되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실상 구단주가 된 것에 서포터들과 팬들은 벌써부터 홈 경기장 앞으로 엄청나게 몰려와 축배를 터뜨리며 환호하고 있다. 기사 아랍풍 옷차림 코스튬 플레이까지 하며 구단주를 환영할 정도다. 시즌 예매권 판매가 폭발했고, 구단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폭발해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났다. 뉴캐슬 서포터들은 SNS에서 이젠 100년 가까운 리그 우승 단절 역사가 사라지고 뉴캐슬은 맨유나 리버풀, 첼시, 맨시티 같은 팀들과 우승을 다투는 강호가 될 것이라고 기쁨에 찬 글을 남기며 경축했다.

이로서 뉴캐슬은 추정치로만 40조 원 정도로 프리미어 리그 구단주 재산 1위였던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왕자의 재산 규모보다 시가총액이 10배 이상 많은 모기업을 맞이하였다. 파리 생제르맹을 책임지고 있는 카타르 국부펀드보다도 많아 전 세계 구단주 재산 순위 독보적 1위이다.

결국, 이런 투자에 대하여 뉴캐슬 서포터들이 기뻐할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뉴캐슬은 향후 3시즌간 재정적 페어플레이(FFP)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2억 파운드(약 3,260억 원)를 사용할 수 있다. 지난 3개 시즌 동안 3,800만 파운드(약 615억 원)의 흑자,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FFP 규제 완화가 근거다.

그뿐만 아니라 뉴캐슬은 인프라까지 엄청나게 투자되어 확 뜯어 고칠 예정이다. PCP 캐피털의 스테블리 공동 소유주는 영국 '더 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계획을 알렸다. 그녀는 "우린 큰 야망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영입을 위해선 그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그들을 받아들일 순 없다."라면서 선수를 확 대거 바꿀 것을 밝혔다. 거기에 "뉴캐슬 훈련장은 매우 끔찍하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훈련장 보수는 FFP에 제한을 받지 않는 분야다. 수준급 기량의 선수들이 훈련할 곳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우린 경쟁하기 위해 시장에 나와 있고, 그것에 맞게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다. 그리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도 투자하고 싶다. 경기장은 좀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프리미어 리그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계속해서 손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다른 EPL 19개 구단은 긴급 연석 회의를 소집하고 재정상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19개 구단주 전 재산 다 합쳐도 뉴캐슬 구단주 재산 1/3조차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반대가 통할 가능성이 그다지 없다. 결국 프리미어 리그 사무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지배하지 않을 거라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증을 받았다"라며 논란에 답했으며 따라서 왕가에서 정치적 간섭이나 계약과 다른 일이 없는 한, 펀드에 의한 구단 소유는 문제 없이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기에 "정 싫으면 구단 팔고 나가든가 마음대로 해라. 그것도 자유다."라면서 확실히 결론을 내버렸다.

넷상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인권 문제를 들먹이며 비아냥거리는 해외 글이나 영상도 보이지만... 이런 논리라면 첼시나 사우스햄튼, 울버햄튼도 논란일 수밖에 없다. 첼시 FC 구단주이자 프리미어 리그에 돈다발 구단주 개막전 시초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역시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관련이 크며, 사우스햄튼 FC 구단주 고지승은 위구르 수용소 강제 노동 하청사를 가지고 있다는 논란이 있으며, 울버햄튼 구단주 곽광창도 티벳에서 이런 논란이 있는 등 인권으로 따지자면 여태 다른 구단주에 대해서도 결코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2022년 들어서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로만은 첼시 구단주직을 박탈당했으며 사우스햄튼도 2022년 1월에 세르비아 재벌 기업인 Sport Republic에 되팔렸다.

이런 가운데 10월 10일(한국 시간) 토트넘 웹진 'SB네이션'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은 토트넘 홋스퍼 FC에 문의했다고 한다. 이때, 다니엘 레비 회장과 25억 파운드(약 4조 752억 원)에 10억 파운드(약 1조 6,300억 원)를 추가로 지불하는 총액 35억 파운드(약 5조 7,000억 원)에 달하는 협상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저 돈을 다니엘 레비가 제시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5조 7000억이나 주고 토트넘을 살 가능성은 없다. 사우디 국가펀드가 맨유에게 4조 원이 넘는 돈으로 인수 제의를 한 것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토트넘을 인수하는데 맨유보다 큰 돈을 줄 가능성은 없다. 런던 연고지에서 본인들의 최대 라이벌인 아스날은 물론이오, 웨스트햄에게까지 구단 값어치와 관중 동원력에서 밀리는 토트넘이 말이다. 그나마, 2019년 토트넘은 못해도 챔스는 진출했으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챔스 결승까지 진출할 정도로 지금의 토트넘과는 차원이 다른 팀이었다. 거기에 DESK 공격진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고, 수비진도 심각할 정도까지는 아니였으며, 토트넘과 프랑스의 주장인 위고 요리스까지 있었으니 그럴만 했다고 하지만 사우디 펀드 측은 부정하지도 않으나 아무 말도 없기에 알 수 없다. 저게 사실이라면 돈을 너무 과하게 요구해서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27] 우습게도 2022년에 토드 볼리가 52억 달러, 한화가치 7조원에 가까운 돈으로 첼시 FC를 사버려서 이젠 프리미어리그 구단 유명팀 값은 조 단위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맨유글레이저 일가가 10조원 이상으로 판다고 하는 판국이 되어버렸다.

정작 우스운 것은 뉴캐슬 지역지 '뉴캐슬 크로니클'에 따르면 사우디 펀드가 사려다가 실패한 두 구단인 맨유와 토트넘이 뉴캐슬 인수를 결사 반대했다는 것이다. 결국 지들이 안 팔렸기에 배아퍼 이러냐고 비아냥을 실컷 당할 뿐이다. 한편, 데일리 메일이 10월 24일 보도하길 유일하게 거부한 맨체스터 시티를 뺀 프리미어 리그 다른 18개 구단들은 뉴캐슬과 이적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9위인 뉴캐슬을 아예 강등시키자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실패한다.

이런 가운데, 11월 들어서 난데없이 에디 하우가 새로운 감독이 될 전망이다. 에디 하우 항목에서 나오듯이 중하위 팀을 여태껏 맡아본 게 전부인 상황. 그의 경력에서 그나마 자랑할 게 AFC 본머스를 승격시켰지만 결국 강등시켰던 터라 서포터들 반응은 임시적으로 리그 잔류에 일단 목적을 두고 영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리그 15라운드 번리전, 칼럼 윌슨의 선제골과 선제골을 잘 지킨 수비진에 힘입어 1: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21-22 시즌 첫 승, 2021년 6승째를 달성했다. 이 경기에선 조엘 린톤, 자말 루이스, 자말 라셀스 같은 브루스 체제에서 경기에 못 나오거나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부분 잘해주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마지막 10분, 경기장 분위기는 선수들이 하나같이 인스타로 감사를 표할 만큼 압권이었다.

이후 무승부와 패배를 연이어 겪다가 21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2승째를 거두며 18위로 올라섰다. 17위와 1점 차로 강등권 탈출이란 목표에 희망이 커지고 있다. 이어 연승을 달리며 2월에는 무패행진을 달렸고 5승 3무 무패로 팀은 14위로 껑충 올라가 강등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첼시 원정에서 0-1로 패해 9경기 만에 무패행진이 깨졌지만, 첼시를 상대로 선전하며 겨우 몇 달 전 20위이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에 토트넘에게 1-5로 대패하기도 했지만 울버햄튼을 이기면서 강등권 걱정은 확실히 떨친 분위기이며 이후, 12월까지도 같은 강등권이었던 노리치 시티[28]랑 가진 4월 리그 2차전 경기에선 3-0으로 압도하며 이겼다. 노리치 시티는 결국, 강등이 가장 먼저 확정된 반면에 뉴캐슬은 10위 정도로 순위를 굳건히 지키며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막판에 아스날을 2-0으로 이기며 처음으로 빅 6급 팀도 이겼고 리그 11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뉴캐슬이 11위로 마무리를 한 게 별로라는 반응도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뉴캐슬의 인수는 시즌 도중에 이루어졌는데, 그 당시 뉴캐슬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19~20위를 오가며 강등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었다. 리그 개막 후 4개월이 지난 12월 5일에야 비로소 첫 승을 거두었고, 강등권을 탈출하며 11위로 마무리한 것은 오히려 대단한 일이다. 맨시티만 해도 알 나얀 왕자가 구단주가 된 첫 시즌 08-09 시즌에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그 다음 09-10 시즌은 리그 5위로 올라갔으며 3개 시즌 만인 10-11 시즌에 리그 3위가 된 뒤로 21-22 시즌까지 단 1번도 리그 4강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뉴캐슬도 차후에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당시에는 FFP 룰 도입 초기여서 지금처럼 엄격하게 FFP를 적용하지 않았고 지금은 FFP 룰이 훨씬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인 데다가 리그 수준도 상향 평준화되었기 때문에 1~2시즌 만에 챔스 단골 후보가 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러나 뉴캐슬은 인수 이후 무리하게 돈을 퍼붓기 보다는 천천히 팀의 체급을 올리고 스쿼드를 필요한 포지션부터 차근차근 보강하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2-23 시즌에는 토트넘과 첼시 등을 제압하며 리그 중반부~후반부 중반에 3~4위를 굳건히 지켰으며, 그리고 마침내 37라운드에서 최소 4위 자리를 확보하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뉴캐슬은 위의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비웃듯이 2002-03 시즌 이후 21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본선 무대로 복귀하게 되었다.[29]


7. 최근 시즌 요약[편집]



7.1. 2010-11 시즌[편집]





7.2. 2011-12 시즌[편집]





7.3. 2012-13 시즌[편집]





7.4. 2013-14 시즌[편집]





7.5. 2014-15 시즌[편집]





7.6. 2015-16 시즌[편집]





7.7. 2016-17 시즌[편집]





7.8. 2017-18 시즌[편집]





7.9. 2018-19 시즌[편집]





7.10. 2019-20 시즌[편집]





7.11. 2020-21 시즌[편집]





7.12. 2021-22 시즌[편집]





7.13. 2022-23 시즌[편집]





7.14. 2023-24 시즌[편집]





8. 뉴캐슬을 거쳐간 인물들[편집]



8.1. 뉴캐슬을 거쳐간 유명인들[편집]


뉴캐슬 명예의 전당 등재 선수나 감독은 볼드체 처리한다.


8.2. 뉴캐슬을 거친 막장 인물들[편집]



8.2.1. 선수[편집]


  • 로랑 로베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왼쪽 윙어로 활약했으며, 당시 EPL 최고급 윙어로 유명했다. 엄청난 왼발 중거리슛과 프리킥 능력으로 '미친 왼발'이라 불렸는데 성격도 미쳐 있었다. 덕장인 바비 롭슨이 감독으로 있었을 때는 비교적 말을 잘들으면서 기량을 뽐냈지만, 후임인 그레이엄 수네스감독의 활약에 팀이 부진에 빠지자 감독과 선수단을 싸잡아 비난했고 결국 떠나게 되자 마지막 경기에서 유니폼을 훌훌 벗어던지고 팬 앞을 뛰어다닌 것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 조나단 우드게이트: 부상의 레전드 우드게이트는 2003년 1월에 뉴캐슬로 와서 2005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연속 출장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뉴캐슬은 우드게이트를 900만 파운드에 사 1,340만 파운드에 팔아먹는 사기를 쳤는데 마이클 오언으로 톡톡히 앙갚음을 당했다.

  • 크레이그 벨라미: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앨런 시어러와 투톱을 이루어 활약했다. 그러나 그래엄 수네스 감독과의 불화로 팀에서의 입지를 잃고 셀틱으로 임대를 갔는데 뉴캐슬이 FA컵 4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패배를 당하자 앨런 시어러에게 비웃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시어러는 "돌아오면 강냉이 날아갈 각오하라"라며 격분했고 그로써 벨라미와 뉴캐슬의 관계는 끝났다.

  • 키어런 다이어 & 리 보이어: 2005년 4월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경기[30]에서 공과 관련 없는 상황에 서로 멱살잡고 치고박아 상대 팀 주장 가레스 배리가 이들을 뜯어말리는 촌극을 벌였다. 당연히 즉결 퇴장과 세 경기 정지 처분을 받았고 선빵을 때린 보이어는 더 많은 벌금을 내야 했다. 이 둘은 나중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도 함께 뛰었다. 보이어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 우드게이트와 함께 폭행사건을 저지른 전력이 있을 정도로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음은 유명한 선수였고, 다이어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지만 알아주는 유리몸이었다.


  • 마이클 오언: 2005년 여름 친정 팀 리버풀, 에버튼 등의 제의를 뒤로 하고 뉴캐슬에 입단했다. 곧 2005년이 끝날 때까지 리그에서 7골을 넣는 등 활약했으나 2005년의 마지막 날 토트넘의 골키퍼 폴 로빈슨과 충돌하여 발가락뼈 골절상을 입었다. 월드컵을 뛰기 위한 열망으로 굳이 회복 기간이 긴 수술을 선택, 잔여 시즌 결장이 확정되었고 월드컵에서도 무릎 부상을 당해 이듬해 봄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복귀 후에도 지지부진한 재계약과 무성의한 플레이로 충성심을 의심받았다. 케빈 키건 감독 체제에서는 주장 완장을 달고 나름대로 책임감 있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으나, 팀의 상태가 점점 막장으로 치닫자 결국 재계약을 거부하였다. 뉴캐슬이 강등되자 자유 계약인 그를 영입해갈 팀들을 위해 34쪽의 홍보물을 스스로 제작해 돌렸다. 뉴캐슬에서 뛸 당시 주급은 11만 파운드로 알려졌으나 공식적인 금액이고 이면계약으로 얼마를 더 받았을지 알 수 없다. 먹튀 중의 먹튀. 그가 떠난 후 선수단 분위기는 급속도로 밝아졌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뉴캐슬이 승격한 후 뉴캐슬이 승격해 와서 좋다고 하였다. 과거 오언은 언론관리가 철저하여 전 소속 팀에 관하여 입을 안 여는 걸로 유명했지만, 트윗질을 개시하면서부터는 맨유에서 벤치 워머로 있으면서 "강한 팀에서 가끔씩 뛰는 게 별볼일없는 팀에서 매 경기 뛰는 것보다 낫다"라는 둥의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뉴캐슬 팬들의 분노를 샀다.[31] 이렇게 험악한 이별을 한 탓에, 맨유 소속으로 2009년 방한했을 때 공항에서 국내 뉴캐슬 팬 몇 명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유니폼을 든 팬들이 "Shame on you" 등을 외치며 달려든 것. 웃으며 입국장을 나오던 오언은 이내 표정이 굳어진 채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카더라. SNS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이제는 뉴캐슬이나 맨유 팬 가운데서도 올드비들만 아는 이야기.

  • 조이 바튼: 끝판왕. 월드컵씩이나 나가서 사고를 친 상또라이들 탓에 묻혀버렸지만 이놈도 월드 클래스 미친놈이다.[32] 맨체스터 시티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걸 갱생 전문가 샘 앨러다이스 감독이 자신 있게 영입했다. 그러나 2007년 크리스마스에 고향 리버풀에서 사촌들과 함께 시비 거는 행인을 폭행했고 2008년 5월엔 급기야 교도소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풀려난 후에는 맨시티 시절 동료 우스망 다보의 얼굴을 묵사발로 만든 데 대한 징계가 내려져 여섯 경기를 뛸 수 없었다. 그 후에도 장기 부상에 신음하다 복귀한 강등 싸움을 위한 중요한 경기인 리버풀전에서 사비 알론소에게 무리한 태클을 가해 퇴장당했다. 경기종료 후 락커룸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임시 감독 앨런 시어러에게 "당신의 전술은 형편없는 쓰레기"라는 막말을 날렸다. 강등 후 많은 구단의 입질이 있었지만 뉴캐슬에 남았고, 시어러와는 화해했다. 이는 "그 나쁜 바튼도 남았는데"라는 이유로 오언이 틈만 나면 까이는 데에 한몫한다.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큰 야유를 당하는 선수. 성질 잘 죽이고 뛰나 싶었더니, 2010년 11월 11일 경기중 블랙번 선수 모르텐 감스트 페데르센의 배를 풀 파워로 때린 게 포착되어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술 먹으면 성질이 돋는 대표적 선수. 다만 피나는 재활 끝에 술을 끊은 지금은 성질을 많이 자제했다. 그 예로, 2011년 2월 아스날과의 4:4 경기에서는 자신의 뒷덜미를 잡고 밀어버린 아부 디아비에게 아무런 행위를 가하지 않았다.[33] 그런데 뉴캐슬 팬들을 제외한 해외축구 팬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바튼이 먼저 도발했을 것" 이라고 하기도 했다. 성격은 많이 죽었는지 몰라도 경기 외적으로 사고치는 성향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는지 트위터를 가지고 뉴캐슬 구단의 경영진을 비난하다가 자유 계약으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당했다. 이적하면서 본인은 끝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고 트위터에 적어놓았다. 다만 뉴캐슬 팬들에게는 승격 이후 보여 줬던 준수한 경기력과 헌신적인 플레이로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으며, 실제 바튼의 트위터 계정을 보면 팀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뉴캐슬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모습이다. 적어도 뉴캐슬 시절만큼은 바튼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외, 잉글랜드 쪽 선수들은 불륜이나 업소 추문에 휘말리는경우가 많은데, 바튼은 의외로 이성 사생활은 상당히 깨끗했다고 한다.

  • 샤를 은조그비아: 2009년 1월 위건 어슬레틱으로 이적하기 전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 조 키니어 임시 감독을 "그는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인섬니아라고 부른다"라고 비난했다. 키니어는 이에 "그는 매일 빅클럽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환상의 나라 속에 사는 미키 마우스 같다"라며 응수했다. 빅클럽[34] 으로 이적하면서[35] "뉴캐슬은 날 떠나보낸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과연 뉴캐슬과의 원정 경기에서 두 골을 넣고 앨런 시어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뭐랬어." 이후 위건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뉴캐슬은 빅클럽' 이라며 뉴캐슬로 돌아가고 싶다는 언플질을 일삼으며 팬들의 뒷목을 또다시 잡게 했지만 결국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 앤디 캐롤: 뉴캐슬과 재계약을 한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하지만 8년뒤 다시 친정 팀으로 복귀하였다.

  • 호세 엔리케: 이적해 온 첫 시즌엔 적응 못하고 빌빌 헤매다가 온갖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못하는 선수야 안 쓰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당시 뉴캐슬에는 전문적으로 왼쪽 측면 수비수를 보는 선수가 호세 엔리케를 제외하면 전무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중앙에서 콜로치니와 테일러가 자동문 수비를 선보이고 있던 참이고, 딱히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없던 참이라 꾸준히 출장하게 되었고, 당시 주전 골키퍼 셰이 기븐만 죽어라 고생하는 상황이 계속 되던 와중에 기븐이 맨체스터 시티 이적 하면서 팀이 강등당하고 만다. 챔피언십에서는 적응을 끝마친 덕분에 완벽한 모습을 보이며 2부 리그 측면의 절대자가 되어 있었고, 그 탄탄한 수비와 준수한 오버래핑은 호나스 구티에레스의 능력과 함께 챔피언십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왼쪽 라인이 되었다.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윙백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뉴캐슬과의 계약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에 "챔스권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라며 땡깡을 부리다 재계약을 거부하고, 리버풀로 이적하며 뉴캐슬 팬들의 어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엔리케가 재계약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유럽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난 시즌의 거한 삽질로 챔피언스 리그는커녕 유에파 컵에도 출장하지 못하는 리버풀로의 이적은 뉴캐슬의 팬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엔리케가 리버풀로 이적을 한 11-12 시즌은 뉴캐슬은 5위를, 리버풀은 8위를 기록하며 엔리케와 리버풀은 슬픈 결산을 했다.

  • 무사 시소코: 14-15 시즌까지는 그럭저럭 활약해 왔지만 15-16 시즌 내내 태업을 의심케 할 정도의 무성의한 플레이로 팀의 강등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 그의 부진한 플레이가 여기저기서 지탄을 받을 때도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시소코가 살아야 팀이 산다"라며 주장 완장을 채워 줬지만, 시소코는 팀이 강등을 확정지은 후에야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최종전에서 토트넘을 5-1로 털어버리지 않나, 급기야 유로 2016에서는 결승전에서 MOM급 활약을 펼치며 뉴캐슬 탈출의 열망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강등당하자 책임을 통감하며 팬들에게 사과를 남긴 다른 모든 주전급 선수들과 달리, 이분은 강등되자마자 "챔피언십에 있기에 나는 너무 큰 선수"라며 동네방네 이적하겠다며 떠들고 다녔고, 뉴캐슬은 유로에서 거품도 꼈겠다 계약도 3년이나 남았겠다 돈도 있겠다 가격표 £35m을 붙이며 응수했다. 자신의 이적이 쉽지 않게 되자 시소코는 1주일에 한 번씩 팀을 비난하며 차원이 다른 징징거림을 선사해 툰 아미들은 흡사 마이클 오언이 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이적 시장 마지막 날 토트넘으로 £30m에 이적하면서 소원 성취에 성공했는데, 웃긴 건 시소코는 평소 뉴캐슬에서 뛰면서도 "내 심장은 아스날에 있다"라는 인터뷰를 서슴치 않던 선수였다는 점. 이적 시장 막판에도 에버튼이 먼저 이적료에 합의한 후 뒤이어 토트넘이 이적료를 맞추자 전용기를 대기시키고 기다리던 에버튼 쪽의 전화를 받지 않고 토트넘으로 향하는 등 끝까지 인성을 보여 줬다. 뉴캐슬 팬들에게는 새로운 금지어로 불리게 될 듯하다.


8.2.2. 감독[편집]


  • 그레이엄 수네스: 위 모든 인물과 연관된 막장 중의 막장.[36] 04-05시즌 초반에 부임해 전 시즌 5위로 마쳤던 팀을 14위로 추락시켰다. 특정 선수를 편애하고 장기적인 구상이 없다는 원성이 높았으며 아메오비와 벨라미를 양쪽 윙에 놓는 막장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다. 2005년 여름 총 5,000만 파운드(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잔디를 갈기 위한 200만 파운드 제외[37]) 를 썼음에도 순위가 강등권 바로 위에서 허덕이자 2006년 2월 2일 경질되었다. 케빈 키건, 케니 달글리시를 비롯하여 그나마 좋은 분위기였던 리버풀과 뉴캐슬 간의 인재 이동은 수네스(이쪽은 리버풀도 버려놨다)와 오언, 그리고 캐롤로 인해 꽤나 험악하게 바뀌었다.

  • 앨런 파듀: 외부에서 최고 성적만 놓고 보면 성공한 축에 속하지만 결국 아래의 맥ㅋ 까지 이어지는 나락의 밑바탕을 깔아놓기도 했다. 덕분에 뉴캐슬 팬 중에서도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는 편.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 스티브 맥클라렌: 잘못된 전술과 선수단 장악 실패로 70m 파운드를 쓰고도 뉴캐슬을 또다시 강등시킨 원흉


9. 대한민국과 관련된 이야기[편집]


한국 선수들로는 김태영, 조재진, 조용형,이강인,김민재 등과의 링크가 있었다.

김태영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4강 진출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뉴캐슬이 관심을 보였다. 바비 롭슨 당시 감독이 직접 영입을 희망했다고 한다. 당시 나이가 33살로 노장 축에 속했으나 기량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38], 문제는 나이 때문에 뉴캐슬이 터무니없이 낮은 이적료를 불렀다는 점이다. 이에 김태영의 소속 팀 전남 드래곤즈는 선수를 붙잡았고, 김태영 또한 구단의 레전드로 남아달라라는 전남 이회택 당시 감독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적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김태영은 그 선택이 내심 아쉬웠다고 훗날 회고했다. ##

특히 조재진은 뉴캐슬 입단 목전까지 갔었다. 감독 목 갈아치우기 좋아하던 보드진 아래서 버티기는 성적이 위험했던 당시 감독 샘 앨러다이스가 뻥축 좋아하는 본인 취향에도 맞고 자리도 위험해 큰 돈 쓰기 어려운데 월드컵 활약도 있고 아시아 프리미엄에 값도 싸다고 봐서 조재진 영입을 시도했으나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후에 조재진이 은퇴하고 나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이적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2011년 4월 말에는 앤디 캐롤의 대체자로 지동원을 노린다는 링크가 떴지만, 뜬소문에 불과한 루머 였으며, 정작 지동원은 뉴캐슬 최대의 라이벌 팀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계속 링크만 뜨다가 마침내 2018년 6월 스완지 시티 AFC와 계약 만료 후 FA 신분이던 기성용이 뉴캐슬과 2년 계약을 맺으면서 뉴캐슬 역사상 첫 한국인 선수가 되었다.[39] 기성용은 뉴캐슬 역사상 처음 입단한 아시아계 선수이기도 하다. 예전에 기성용은 같은 타인위어 주 내 라이벌 프로축구 클럽인 선덜랜드 AFC에서 잠시 임대 선수로 뛴 적이 있다.

김영권 역시 광저우에서 주축으로 뛸 당시 에버튼, 노리치, 호펜하임, 프랑크푸르트와 뉴캐슬에게 오퍼를 받았음을 밝혔으나, 감독의 만류로 이적이 무산되었다.

2022-23 시즌 겨울시장에서 이강인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대략 아스톤 빌라,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정도로 추정된다.

10. 여담[편집]


  • 한국에도 의외로 오래된 팬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툰코리아인데, 1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원래 카페 형식이었다가 규모가 커지며 사이트로 독립한 것이다. 중소 규모 EPL 클럽 중 가장 팬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다.

  • 우스갯소리로 공격진의 마크 비두카 때문에 강등됐다고 하는데 마크 비두카의 전 팀인 리즈 유나이티드미들즈브러 FC가 현재 챔피언십 죽돌이가 된 걸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선수로 나이젤 콰시(웨스트 브롬)이 있는데 이쪽 역시 세 팀을 강등시켰다.

  • 이렇게 선수들 성격이 개차반이라서 막장을 달리거나, 마이클 오언처럼 멀쩡한 폼을 가지고 입단했음에도 막장화가 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끝없는 부진에 빠지고 연속 부상을 당하는 등, 유독 뉴캐슬 소속 선수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비꽈서 홈구장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수맥이 흐르는 게 그 이유라고 주장하는 국내 팬들이 있다. 2005년 여름 당시 감독이었던 그레이엄 수네스가 선수 한 명을 사들일 만한 거금인 200만 파운드를 들여가며 구장 잔디를 죄다 갈아버리는 공사를 하다가 수맥을 건드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뉴캐슬은 수네스 시절 이전부터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가 많았다. 무패 우승 이후에 매번 부상에 시달리는 아스널과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을 정도다. 2019년과 2020년에도 5대 리그 최다 부상자 발생 팀으로 등극했다.

  • 훌리건 천국 잉글랜드에서도 팬들이 열정적이기로 손꼽힌다. 근 100년간 리그 우승은 커녕 중하위권에서 자주 논 클럽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연고지인 뉴캐슬은 잉글랜드 중부, 북부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축구 하는 날엔 도시 전체가 축구에 미친다. 여담으로 유명한 뉴캐슬의 팬으로는 영국의 전 수상인 토니 블레어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이 있으며, 스팅,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리더 마크 노플러, AC/DC의 보컬 브라이언 존슨[40], The 1975프런트맨 매티 힐리[41] 등의 뮤지션들도 뉴캐슬의 서포터들이다. AEW프로레슬러 PAC애슐리 콜의 전 부인으로 가장 유명한 WAG의 한 명인 셰릴 콜도 토박이 뉴캐슬 팬이다.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의 아스날 FC에 이은 세컨드 팀이기도 하다.

  • 뉴캐슬이 강등당한 해의 입장료 수입과 타 구단의 입장료 수입을 비교해 보면 얼마나 엄청난지 알 수 있다. 08-09 시즌 뉴캐슬은 유럽 대회도 못 나가고, 리그 컵은 두 경기 만에 탈락, FA컵은 헐 시티와 재경기 끝에 첫 판에서 떨어지는 등 리그 외의 수입이 사실상 없었는데도 높은 수입을 올렸다. 당시 빅 4나 런던 특수에 관중석 많은 토트넘보단 떨어지지만 훨씬 축구는 잘하던 에버튼이나 아스톤 빌라보다 수익이 우월했다. 타 리그와 비교하자면, 09-10 시즌에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한 아틀레티코가 간신히 08-09 시즌 뉴캐슬의 관중 수입을 넘기는 정도다. 오죽하면 강등당하고도 평균 관중 50,000명[42]에 근접하면서 역대 챔피언십 최다 평균 관중 수를 찍었다. 그리고 결국 2016년에 다시 강등되어 챔피언십 16/17 시즌에서도 최다 평균 관중을 기록하고 유유히 우승했다.

  • 하지만, 이럼에도 팀의 재정 형편은 근래 들어 좋았던 적이 없다. 위에 서술하듯이 아랍 왕족 인수 문제도 무산되었으니 차후 더 어려울 듯했었다. 그러나 결국 2021년 사우디 국부 펀드가 인수에 성공하면서 재정 형편은 좋아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뉴캐슬 서포터들은 해외 유명 축구선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를 올릴 정도다. 뉴캐슬 측은 리그 우승 후보가 되자면 몇 해를 기다리고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지만, 일단 4,000억 이상으로 현재 리그 강등권인 팀을 잔류시키는 게 먼저라고 밝히고 있다. 반대로 라이벌 선덜랜드 AFC 서포터들은 초상집 분위기라고 한다.

  • 한국의 스포츠토토 토쟁이들에게는 언제나 예상과 다른 경기 결과를 보여주어 지탄의 대상이다. 2010-11 시즌만 놓고 봐도 아스톤 빌라 격파, 블랙풀에 패배, 첼시에 무승부, 아스날과 리버풀에 승리 등이 있다. 비슷한 예로 헤타페우디네세가 있다.

  • 선수들 탓인 건지 팬들 성향이 대체로 유쾌한 건지 많은 전현직 선수들의 문서가 멋진 해학과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영국판 롯데 자이언츠이다.


  • 2021년 10월 18일 영국의 뉴캐슬 서포터들이 "10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의 구단 인수 이후 팀 훈련 횟수가 줄었다. 우리는 일하는 구단과 선수들을 원한다"라며 시위를 했다.

  • 막대한 자금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에 인수된 후 , 디 애슬래틱에 의하면 프리미어 리그 구단들은 뉴캐슬과 거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22년 1월 겨울 이적 시장 때 번리의 크리스 우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의 댄 번, 아스톤 빌라의 맷 타겟이 뉴캐슬로 이적함에 따라, 결국 이 합의는 상당히 느슨했거나 이 뉴스 자체가 낭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1. 같이 보기[편집]






[1] /ˈnjuːkɑːsl jʊˈnaɪtɪd/[2] 뉴캐슬 사투리로 "도시(Town)"를 의미한다. 조르디 사투리에서는 -own 이 -u:n 에 가깝게 발음되는데, 뉴캐슬 사람이 "우리 동네"라는 의미의 Toon 이라 말하는 것이 그대로 뉴캐슬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3] "뉴캐슬 사람", 혹은 "잉글랜드 북동부 사람"을 의미한다. 어원은 몇가지 설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원래는 잉글랜드 북동부 주민을 아울러 이르는 단어였지만 라이벌 도시인 선덜랜드가 부상하면서 이쪽을 부르는 "매켐(Mackem)"과 나눠져 현재는 뉴캐슬과 그 주변지역 주민만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4] #[5] 한때는 구단주인 마이크 애슐리가 수익을 위해 경기장 이름을 판매하려다 여의치 않자 자신의 모회사인 스포츠 다이렉트 사의 이름을 붙인 스포츠 다이렉트 아레나로 변경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기존 팬들은 반발하였고, 대부분의 팬들은 바뀐 이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인트 제임스 파크라고 불렀다. 현재는 뉴캐슬의 새 스폰서가 될 예정인 업체에서 구장 명명권을 구입하여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되돌려 놓았다.[6] 뉴캐슬과 선덜랜드는 잉글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라이벌이다. 두 도시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 타인위어 더비라 부른다. 뉴캐슬어폰타인과 선더랜드는 도시간 근 천 년을 헤아리는 대립의 역사를 지니고 있어 미들즈브러의 타인티스 더비보다 더 치열하다.[7] 미들즈브러 역시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두 도시에 흐르는 강 이름을 따 타인티스 더비라 부른다.[8]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주도한 국부 펀드이다. 2020년에도 뉴캐슬 인수를 시도했었지만 7월 30일, 사우디 공공투자 컨소시움이 인수를 포기해 마이크 애슐리 구단주 체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2021년 10월 7일에 공식적으로 컨소시움이 인수가 확정되면서 마이크 애슐리는 뉴캐슬을 떠나게 되었다.[9] 이 형제는 인도에 살던 유대인 조상을 둔 영국 국적의 사업가로 순자산이 25조원에 달하는 영국 내에서 손꼽히는 부호 가문이다. 이 중 데이비드의 아들인 제이미 루벤이 뉴캐슬의 공동 구단주 역할을 하고 있다.[10] 1973년생 여성 사업가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유일한 여성 공동 구단주(노리치 시티의 델리아 스미스도 있었으나 21-22 시즌 2부 리그로 팀이 강등당했다). PCP Capital Partners라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중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이 지역에서 사업상 큰 인맥들을 가지고 있다. 2008년에 아부다비와 카타르 왕가의 바클레이스 은행에 대한 73억 파운드 거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름을 날렸고, 이후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얀 왕자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 과정에도 참여해 중재한 사업가로도 유명하다. 앤드루 왕자와 염문설도 있었지만 2011년 이란인 사업가인 메흐르다드 고두시(Mehrdad Ghodoussi)와 결혼했다.[11]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 중 한명으로 사우디 공공투자기금 총재, 아람코 회장 등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사업의 요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기에 영국에 상주하지 않는 비상임 회장직이다.[12] 출처[13]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승격팀이 거둔 최고의 성적이다. 다음 시즌인 94-95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의 기록과 동률인데 두 팀이 똑같이 42경기 승점 77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14] 시즌의 2/3가 진행되었던 무렵 맨유에 승점 12점 차로 앞서가며 우승이 매우 유력했으나, 갑자기 8경기에서 5패를 당하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노련한 언플과 에이스 에릭 칸토나의 복귀를 앞세운 맨유에 승점 차를 다 따라잡히며 결국 4점 차로 준우승했다.[15] 2승 1무 3패로 조 3위로 탈락했다. 디나모 키이우, PSV 아인트호벤, FC 바르셀로나와 한 조 였는데 의외로 바르셀로나는 1승 2무 3패라는 성적으로 4위로 탈락했다.[16] 지금 와서 영화 '골!'을 본 사람들이 뉴캐슬이 무슨 챔스를 노리냐며 비웃기도 하는데 영화의 배경은 앨런 시어러가 현역으로 뛰던 2000년대 초의 뉴캐슬이다. 이때 뉴캐슬은 우승권까진 몰라도 맨유나 리버풀 등의 빅클럽과 충분히 경쟁이 가능한 명문 구단이었다.[17] 무분별한 빅네임 영입과 방만한 운영으로 당시 구단 부채는 1억 파운드에 육박했다. 리즈 꼴이 안 난 게 다행일 정도였다.[18] 하지만 이때 영입 되었던 선수들 중 대부분이 폭망해 버리며 해당 시즌 및 이후의 부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19] 스미스와 비두카의 영입으로 밀너와 함께 리즈의 강등 멤버가 3명이나 재회하게 되었다.[20] 장 알랭 붐송은 2006년에 이미 유벤투스로 떠났고, 바바야로는 시즌 도중 방출돼서 LA 갤럭시로 이적했다.[21] 2007-08 프리미어 리그의 최하위인 더비 카운티의 유일한 1승 상대가 바로 뉴캐슬이다. 당시 1무 1패로 더비에 승점 4점 헌납. 챔피언십에서 잘 나가던 시즌에도 더비에게는 이기지 못했다. 2009-10 시즌에도 결국 1무 1패를 기록했다. 더비의 상징인 양에 빗대어 반 농담으로 건초라고 부르기도 했다.[22] 다만 이때까지 빅4를 상대하지 않은 상태라 승점을 충분히 못 쌓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23] 여담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월드컵 8회 연속 진출 기념 다큐멘터리 태극전사의 탄생에서 86 멕시코 월드컵 예선 당시 상대 팀이었던 네팔의 외국인 감독과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바로 그 네팔의 감독이 젊은 시절의 조 키니어다. 당시 네팔 대표팀은 지금처럼 약체 취급에 한국의 고등학교 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조 키니어 스스로조차도 한국에 3-0으로만 져도 다행이라고 말했으나 한국에 홈에서 의외로 선전하며 자책골과 페널티킥 골로 2-0으로 졌고 동대문에서 4-0으로 졌는데 한편으로는 한국을 홈에서 잡은 말레이시아와 홈에서 0-0으로 비겨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어느 정도 일조했다. 또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크레이지 갱 막바지 때의 윔블던 FC 감독이기도 하다.[24] 실제로 헐시티는 전반 24분 대런 깁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0-1로 패배했다.[25] 2010-11 시즌부터 2020-21 시즌까지는 푸마가 킷 스폰서였고, 2021-22 시즌부터는 영국의 신생 브랜드 '카스토어'가 유니폼을 제작할 예정이다.[26] 아랍권의 리그 중계권을 가진 비인 스포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각종 인터넷 해적방송이 사우디에 프리미어 리그를 중계해 맥을 못 췄는데, 이들이 사우디 왕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되어 리그에서 사우디 측의 구단 인수를 비토하였다. 해적 방송들은 빈 살만의 뉴캐슬 영입 좌절 이후 모두 폐쇄되었다.[27] 다만 토트넘 서포터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의외로 과반수가 반대하였다.[28] 당시 12월에는 1:1로 리그 경기를 비겼다.[29] 2003-04시즌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지만 3차 조별예선 탈락으로 본선 무대는 밟지 못했었다.[30] 경기는 애스턴 빌라에게 0:3으로 완패했다. 후반 경기 끝나기 10분도 안 남겨두고 같은 팀끼리 주먹질을 나누는 드문 볼거리를 제공한 셈이었다. 당시 다 이겨가던 아스톤 빌라 선수들이 나서서 필사적으로 이 둘을 잡고 같이 말렸었다.[31] 맨유 이적 뒤로는 전 소속 팀 팬들 뒷목을 잡게 하는 언플을 많이 해서 욕을 들어먹고 있다. 리버풀 팬들 역시 이젠 오언에 대해 결코 안타깝게만은 보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32] 조이 바튼 본인도 저 또라이들 중 한 명미친행동에 대해 디스한 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며칠후 나머지 한놈이 더 미친짓을 벌이고야 말았다.[33] 물론 태클상황이 먼저 있었는데, 깊숙하긴 했지만 공을 건드린 정당한 태클이었다.[34] 이걸 비꼬아 뉴캐슬 팬들은 위건을 빅클럽이라 부른다.[35] 이때 맞트레이드로 뉴캐슬로 온 선수가 라이언 테일러로 은조그비아가 생각나지 않을 만한 좋은 활약과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36] 마이클 오언이 뉴캐슬로 온 이유 중 하나가 리버풀 레전드 수네스가 있었기 때문이다.[37] 이것 때문에 수네스는 뉴캐슬 시절 '잔디 관리사'로 통했다.[38] 특히 중앙 수비수로서 굉장히 희귀한 양발잡이였다는 점이 결정적 이유였다고 한다.[39] 계약 만료 후 이적이라서 뉴캐슬이 스완지에 지급한 이적료는 없었다.[40] 영화 Goal!에서 미국 술집 뉴캐슬 팬 1 로 까메오 출연 하기도 했다.[41] 오른쪽 팔에 구단 로고를 타투로 세길 정도의 광팬이다.[42]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최대 수용 인원이 52,354명이다. 즉 원정석을 제외하면 거의 항상 꽉 찼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