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

덤프버전 :


파일:Nikodim_and_Jesus.jpg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이바노프[Г]의 <니고데모와 예수>. 수채화에 붓, 1850년작.[1]
1. 개요
2. 예수와의 대화
2.1. 요한복음 3장 16절
2.1.1. 요한복음 3장 16절 관련
3. 그 후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다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 와서 (중략) 말하였다.

요한의 복음서 3:1~2 (공동번역성서)


1. 개요[편집]


예수 생전의 바리사이파 사람이자 산헤드린 공회 의원. '승리백성', '백성의 정복자' 라는 뜻. 니코데모라고도 한다. 요한 복음서에서 등장한다.

2. 예수와의 대화[편집]


니고데모는 그 당시 상당히 고위직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밤 예수를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다. 니고데모가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참 랍비이십니다." 라고 말하자 예수는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2]"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니고데모가 "그게 말이 됩니까?" 라고 묻자 예수는 다소 길게 대답한다.

2.1. 요한복음 3장 16절[편집]


γὰρ Οὕτως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ὰ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

요한의 복음서 3:16 (원문)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의 복음서 3:16 (공동번역성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개역개정4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복음서 3:1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새번역 성경)

니고데모의 질문에 예수가 한 대답 중의 일부인 이 3장 16절은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를 표현하고 있는 내용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부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다.[3]

*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독생자를 주셨으니) [4]

-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자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드리고 싶었다.

* 그를 믿는 사람은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 구원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그 믿음은 예수를 바탕으로 함을 의미한다. 또한 구원은 믿는 사람이 누구든지 열려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의미한다.

*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멸망하지 않고) -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닥칠 멸망을 피한다. 즉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그 믿음으로써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특히 개신교에서 중요시하는 이신칭의론의 근거 구절이다. 물론 로마서갈라디아서에도 나온다.

가톨릭감리회의 공동 선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원이 믿음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믿음의 증거로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일 뿐. 성경에서 '행동이 없는 믿음' 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나와 있으며, 야고보서에서도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2:24)"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 (2:26)" 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혁신앙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그 증거를 보인다. 행함 그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한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5][6][7]"

양동근노래 예수쟁이라는 곡에서도 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북미 프로레슬링의 전설인 스티브 오스틴의 그 유명한 'Austin 3:16' 의 3장 16절은 해당 구절에서 따온 즉흥 애드립이다. 근데 애드립답게 원래 구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2.1.1. 요한복음 3장 16절 관련[편집]


3D운전교실제작자가 John 3:16을 쓰고 있다.

3. 그 후[편집]


비록 그는 12사도처럼 예수를 신실하게 따르진 않았지만, 다른 의원들이 예수를 욕할 때도 그를 변호하였고, 예수의 죽음 이후 아리마태아의 요셉과 함께 그의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르기도 하였다. 가톨릭 전승에 의하면 그는 이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고, 결국에는 유대인들에 의해 순교했다고 한다. 예수를 따른 몇 안 되는 부자이기도 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0 12:04:03에 나무위키 니고데모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Г] Иванов, Александр Андреевич[1] <Христос и Никодим>. 현재는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국립 갤러리(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에 소장 중이다.[2] 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이지, 육도윤회 같은 환생이 절대 아니다. 예수도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야 함을 강조한다.(요한복음 3:5)[3] 요한1서 4장 8절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4] '보내주시다' 는 동사는 그리스어 '에도켄'의 번역.[5] 이국진 목사, <굿모닝 성경> 주석.[6] 알기 쉽게 말하자면, A는 B다. B라고 해서 무조건 A이지는 않다. (이 경우 바로 B이므로 A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후건 긍정의 오류.)[7] 행위(혹은 선행)가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가톨릭, 개신교 모두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선행의 중요성을 구원의 조건이라는 단순한 관점으로만 바라보니 '가톨릭은 펠라기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와 같은 주장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논쟁으로 개신교 교리와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차이점 2가지를 논하자면,
1. 몸(행함)과 마음(믿음)이 본질적으로 하나(가톨릭)라 보느냐 분리된 것(개신교)으로 보느냐
2. '의롭다고 칭함 받는 것'(칭의)(개신교)인가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의화)(가톨릭)인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가톨릭 교리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러하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로워지지만,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이므로 언제라도 죄를 짓고 하느님과 멀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하느님께 용서받고 개인의 의지로 선행을 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