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천상지희 The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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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 / Dana
파일:external/socdn.smtown.com/p1akkmt8eduk818rgfse1b8i125v1.jpg
천상지희 The Grace
본명
홍성미(洪性美)
예명
다나 더 그레이스, 희열(喜悦) 다나, 천상의 행복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출생
1986년 7월 17일 / 서울특별시
나이
37세
신체
171cm[1], 54kg[2] O형
포지션
메인보컬
가족
부모, 2녀 중 첫째
학력
남양주양정초등학교
청담중학교
하남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특기
일본어, 중국어[3], 모창
활동
배우 데뷔(2000년 평화의 시대)
가수 데뷔(2001년 1집 앨범 DANA)
2000년 ~ 현재
종교
개신교
소속그룹
천상지희 The Grace
소속사
샤이닝엔터테인먼트(01~02)
SM엔터테인먼트(03[4]~현재)
링크
팬카페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1. 소개
2. 가수 활동
2.1. 캐스팅, 데뷔 과정, 소속사 비화
2.1.1. 다나의 솔로데뷔를 이수만이 모르고 있었다?
2.2. 1집 First Album: DANA
2.3. 2집 Dana 2nd Album : 남겨둔 이야기, 천상지희 합류
2.4. SM STATION <울려 퍼져라 (Touch You)>
3. 연기 활동
4. 뮤지컬 배우 활동
5. 예능 활동
5.1. 복면가왕
5.2. 힙합의 민족2
6. 논란
7. 여담



1. 소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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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가수 겸 뮤지컬 배우. 2000년 영화 '평화의 시대'에서 '다나 공주'로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고 2001년에 1집 앨범 'First Album : DANA'를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2005년 천상지희 The Grace 멤버로 합류했으며 현재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중이다.


2. 가수 활동[편집]



2.1. 캐스팅, 데뷔 과정, 소속사 비화[편집]


1998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다나는 TV에 출연하는 H.O.T.S.E.S.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웠고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에서 주최하는 댄스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해당 대회의 나이 제한이 중학생 이상이었던터라 무대에 오를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이때 관계자는 하는 수없이 울고있는 다나와 친구들을 가장 맨앞에 위치한 관객석에서 볼수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공연을 보고있던 와중 해당 대회 심사위원으로 있던 캐스팅 매니저 김수현에게 눈에 띄게 된다. 김수현은 무대를 바라 보는 다나의 모습이 아주 멋져보여서 그 자리에서 가수 제의를 하기 위해 다가가지만 당시 다나는 부모에게 '요즘엔 유괴범이 많으니 조심하라'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었기 때문에 그를 한참이나 도망다니다가 결국 설득 당해 부모와 얘기 끝에 가수 제의를 승낙했다.

캐스팅 매니저 김수현은 그동안 본인이 발탁한 지망생들을 유명 소속사에 연결해주는것과는 달리 본인이 직접 '샤이닝 프로덕션'이라는 소속사를 차려 다나를 첫 연습생으로 영입해 트레이닝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수현은 다나가 보아와 비견될 정도로 큰 인재라고 여겼고, 어느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임하는 그에게 반해 다나를 트레이닝 시키기 시작한다.[5]

여담으로 이 시절 연습을 하던 어느 날 한 유괴범에게 납치당할뻔 했다고 하는데 당시 연습을 끝마치고 숙소로 가던 다나에게 다짜고짜 "너 얼마냐"는 식으로 한 남자가 불쾌하게 추근덕거렸고 수상함을 눈치챈 다나는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남자가 차를 세우고 나와 다나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당시만해도 그 동네의 치안이 좋지 않아 아무 도움도 못받고 남자한테 쫓기게 된다. 이때 평소 위험한일이 생길때 침착함을 가져라라는 부모님의 말을 기억해낸 다나는 기지를 발휘해 해당 유괴미수범의 차 번호판을 간신히 외우고 겨우 도망치다가 고개를 잠깐 돌아보는 순간 그 사람한테 목덜미를 잡힌다.

그 이후 그 남자는 다나에게 물리적인 폭력까지 가하지만 다나는 겨우 뿌리쳐내어 도망쳤고 무작정 한 가정집으로 숨어 들어가서 문이 열리자마자 그 집으로 황급히 들어가서 사정을 말한 뒤 간신히 몸을 숨긴다. 이때 현관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내밀어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 유괴범이 슥 지나갔다고...ㅎㄷㄷ 이후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매니저에게 이 일을 알렸고 경찰서로 찾아가 사건을 진술하지만 그때는 CCTV 설치는 커녕 차 번호판 조회 조차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듯 했다. 그러나 그때 다나가 외워둔 차 번호판을 토대로 동네 일대를 찾아다닌 결과 결국 그 남자를 잡아냈고 매니저는 그 사람의 차를 빼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 범인을 현장에 끌여왔고 매니저가 한방에 응징하면서 그를 정리했다. 차에 숨어서 지켜보던 다나는 싸움이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그 유괴미수범은 매니저한테 한방맞고 바로 쓰러졌다고 한다(...)

매니저는 그 남자를 혼내주고 차에 있는 다나한테 나오라고 한 뒤 다나에게도 제대로 사과하라고 했지만 "미안하게 됐네"라는 식으로 대강 사과를 하자 이때는 참지 못하고 매니저가 더 크게 혼쭐냈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아주 아찔한 사건.[6]

파일:uB9ijCR.jpg
데뷔 전 다나와 샤이닝엔터의 수장 김수현(캐스팅디렉터)의 모습

다시 소속사 얘기로 돌아와서. 사실 다나 하면 아직까지도 소소하게 나오는 얘기가 바로 데뷔 당시 소속사 비화인데, 사실 다나는 완전히 '샤이닝 프로덕션'만의 힘으로 트레이닝 시킨것이 아니라 당시 김수현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SM 엔터테인먼트도 다나의 트레이닝에 관여한 특이 케이스다. 다나의 데뷔는 'Starlight Casting System'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해당 시스템은 2000년대 초반 SM의 대표적인 관행이었다. 당시 이 시스템에 대한 기사를 요약했을때 가수, 연기자, 모델 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국내 유일의 캐스팅 &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SM은 음반 기획과 유통, 마케팅을 맡는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 H.O.T, 해체 이후 자금난을 겪던 SM이 고안해낸 방법으로, 쉽게 말해 가수 연습 트레이닝은 SM에서 시킨 뒤 데뷔 후보를 정해둔 뒤, 이들의 음반은 다른 회사에서 프로듀싱 & 제작하고 그 음반을 SM에서 발매하면서 실패 부담을 줄이고 성공한다면 이익을 서로 나눠 갖는 시스템이었다.

가끔 SM에서 보아가 있는데 왜 같은 나이의 소녀 가수를 또 데뷔시켰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앞서 말했다시피 다나의 1집은 SM에서 "앨범 프로듀싱을"한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쉽게 말해 임대 시스템. 장나라의 경우처럼.) 만약 다나의 솔로 커리어가 잘 풀렸다면 샤이닝 엔터에서 쭉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었을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같은 SM에서 굳이 보아와 캐릭터가 비슷한 나이또래의 가수를 더 내놓을리는 없다. 팀킬도 아니고 설령 나중에 회사를 옮기더라도 다시 SM에 돌아와서 지지부진하게 활동했을 가능성은 적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커리어가 잘 풀렸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쉽게 말해서 장나라같은 노선을 탈 뻔한 케이스라고 보면 빠르다.


연습생 시절, 매니저 김수현의 TV 취재 영상 중 등장한 연습생 시절 다나 (당시 나이 15세)[7]

2000년대 초반 SM에서 이런 식으로 몇몇 가수가 출범했지만 장나라빼고 다 망했다(...)[8] 연습생 수확과 달리 가수 사업이 영 진척을 못내던 시절. 시기상으로는 SM의 제1의 리즈시절 끝무렵 데뷔시킨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보아가 데뷔하고 얼마뒤 H.O.T.가 해체하던 시점부터다.

뭐 어쨌든간에, 다나는 데뷔전부터 SM에서 연습하고 SM의 인물임은 확실하다. 이후 발매된 다나의 1집 앨범의 일련 번호는 SMPDCD인데 이 경우, 가수는 SM이지만 앨범 프로듀싱을 다른 회사에서 한 경우이다. 장나라의 1집 역시 같은 일련 번호를 가지고 있다. 이때 SM과 관련 없는 다른 기획사 가수들도 SM 배급사로 앨범을 낸적이 많은데 이 경우에는 일련 번호가 SMDSCD였다. 애초에 데뷔 전부터 SM 선배 가수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고, 1집 앨범에 강타가 곡을 주거나, 데뷔 전에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장나라와는 다르게 SM에서 해준게 정말 많았다.

그리고 1집을 제작 및 프로듀싱한 샤이닝 엔터가 자회사가 "맞다" 혹은 "아니다" 하는 논쟁이 아직도 있는데 다나 데뷔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SM의 자회사 샤이닝 엔터라고 떡하니 나온다. # 샤이닝과 SM에 관계는 오래전 떡밥이라 확실치 않지만 두 회사 간에 다나의 지분 싸움은 확실히 있었던것으로 보이며 밀크나 신비 등을 데뷔 시킨 자회사들은 얼마 안가 곧 망한 뒤 엔터 사업을 접었고 해당 가수들도 그닥 뜨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에 별다른 얘기 없었지만 다나 정도만 해도 꽤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고 샤이닝 엔터의 김수현 사장 역시 다나에 대한 욕심과 더불어 그 바닥에서의 입지와 야망도 꽤 큰 인물이었기에 이후 다나가 SM으로 이적하자 자신의 카페 등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은 저 너머에(...).[9]

다나는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연기부터 시작해서 보컬, 댄스등을 집중적으로 3년간의 교육을 받았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다나를 연기자로 키우길 원했었는지[10] 연기 트레이닝도 집중적으로 받은것으로 보인다. 보아의 경우에는 데뷔 전 트레이닝에서 연기는 없었다. 어쨌든 다나의 데뷔는 샤이닝 엔터에서 하고 음반 발매만 SM에서 했기에 공식적으로는 2003년부터 SM 가수였고 그 전까지는 SM이긴 한데 조금 복잡한 SM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가수 데뷔를 목전으로 앞둔 2000년, H.O.T. 주연의 3D 입체영화 '평화의 시대'에서 강타의 상대역인 '다나공주' 역할을 맡으며 연예계에 등장했고, '스포츠 투데이' 신문사 CF에도 출연, 또 강타의 '북극성'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여 데뷔 전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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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H.O.T 주연 영화 '평화의 시대' 작업 도중 다나와 강타의 모습

다나는 영화 출연 이후 가수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원래는 듀엣으로 데뷔할 뻔 했다. 당시 SM의 이사가 오디션을 보러온 한 연습생을 보고 다나와 함께 듀엣으로 데뷔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다나의 파트너가 될 뻔한 연습생이 바로 그 유명한 카라박규리였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박규리는 SM에서 오디션을 본 뒤 그 이사에게 눈빛이 강타와 닮았다며 다나와 함께 듀엣을 하면 괜찮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솔로 가수로 데뷔하고 싶었던 박규리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이후 한동안 연습생활을 하다가 한참 뒤에 걸그룹 카라로 데뷔하게 된다. #

이후 샤이닝 프로덕션 측은 다나를 솔로 가수로 데뷔시키기로 결정한 뒤 2000년 하반기부터 앨범 작업에 돌입했고, 이듬해 봄쯤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었을 즈음에, 당시 SM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서 다나의 사진을 띄우며 데뷔 소식을 알렸다. 이때 SM내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했던 다나의 본래 활동 예명은 써니(Sunny)였다.[11] 왜냐하면 당시 SMTOWN 사이트에 뜬 다나의 사진 파일을 보면 'sunny.jpg'의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추측. 그리고 데뷔 전 2001년 3월 대구 엔탑 비방 무대에 신인 가수 8팀 중 하나로 다나가 무대에 올랐었고 당시 글을 보면 자신의 이름을 써니라고 소개했던걸로 보이며 H.O.T. 5집 Thanks to에도 Sunny라고 언급된다.

2001년 5월쯤까지는 이 예명을 쓸 예정이었던걸로 보이지만 영화 '평화의 시대' 에서 '다나 공주'역으로 이미 언론을 타기도 했고 그 이름이 썩 잘 어울려서 결국엔 '다나'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것으로 확정한다.[12] 또 다나가 데뷔하기 1년 전쯤 활동했던 김수희의 딸 예명이 써니여서 이 이름을 안썼을 가능성도 있다.

얼굴이 S.E.S유진과 약간 흡사하게 생겨서 제2의 유진이라는 홍보 멘트도 있었다. 데뷔 초기 시절을 보면 꽤 닮았다.

보아가 기획부터 일본 시장을 겨냥해 나왔듯, 다나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기획되었다는 풍문이 있다. 그 당시 SM이 모든 가수를 중국에서 성공시키고 일본 등지에 진출해 아시아 가수로 만들려고 했다. 보아처럼 트레이닝 과정에서 중국어 교습을 따로 받았을 정도. 이 경험을 토대로 훗날 한국외대 중국어과에 진학했다. 참고로 다나 역시 데뷔 전 일본어를 배웠다고 한다.

2.1.1. 다나의 솔로데뷔를 이수만이 모르고 있었다?[편집]


인터넷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2001년부터 2002년 정도까지의 가수들 데뷔를 모두 김경욱 대표 이사가 본인 마음대로 해버렸고 미국에 가있던 이수만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식의 내용들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은 부분이 많다. 2013년 출간된 '이수만 평전'이라는 책에 기인하고 작성자의 추측으로 서술된 SM 세대별 여가수 정리라는 글이 있는데, 이수만 평전의 경우 제목을 볼때는 실제 이수만이 서술한 듯 보여지지만 SM과 전혀 관계없는 작가들이 정보 수집을 통해 작성한 책이고 정확한 증거없이 추측성으로 서술된 내용들이 상당하다. 해당 게시글에 적힌 내용 중 대표적으로 왜곡된것이 김경욱이 이수만이 부재한 틈을타 걸그룹을 준비하던 다나를 독단적으로 솔로로 데뷔시키기 위해 자회사를 차리고 캐스팅 매니저 김수현을 샤이닝 엔터의 사장으로 부임시켰다는 얘기이며, 이것은 당시 김수현의 수많은 인터뷰를 보면 바로 알수 있듯이 사실이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수현은 다나를 직접 키울 생각으로 본인이 회사를 차렸고 굉장히 의욕적으로 시작한 케이스. 이수만이 후일담으로 다나의 데뷔를 듣고 경악했다고 써있는데 그것 역시 출처 불명.[13]

그동안 신인을 발굴하면 기획사에 연결시켜 주었으나 98년 롯데월드 댄스대회 객석에서 발견한 초등학교 6학년생 다나는 처음으로 그가 발굴부터 교육, 음반제작, 매니지먼트까지 담당했던 가수이다.

당시 보아에 비견될 정도의 유망주로 꼽힌 다나는 그가 3년간 모든 꿈을걸고 만든 작품이었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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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前 샤이닝 프로더션 대표 겸 캐스팅 실장 김수현의 인터뷰 中 #


일단 다나의 1집 땡스투를 살펴보면 "멀리서 응원해주고 계시는 이수만 선생님"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며 다나가 데뷔 당시 잡지 인터뷰 등에서도 1집 앨범의 타이틀 곡을 이수만과 유영진이 편곡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 [15] 더욱이나 다나가 데뷔 전에 출연한 SM의 간판 스타 H.O.T.의 영화 출연이나 각종 프로모션 활동도 SM의 대표급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멀쩡히 한국에 있던 이수만이 바보마냥 지켜봤을리는 없다.

다나의 활동 기간이 이수만이 위태롭게 미국에 있을 시절과 겹치긴 하지만, 다나의 데뷔 당시에 완전히 회사일을 하나도 모를 정도로 멀리 떨어져있던건 아니라고 추측되는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2002년 4월에 발매된 보아의 2집 타이틀 곡 역시 발매 직전 이수만의 의견으로 교체됐다는 일화가 있는데, 원래 보아의 2집 타이틀 곡은 'My Sweetie'라는 곡으로 내정됐던 상황이지만 A&R 팀에 있던 신입 직원이 외국 곡이었던 No.1을 데모 CD 무더기에서 발견하고 이수만과 차를 운전할 기회가 생겨 그때 이 노래를 들려준 다음 이수만이 마음에 들어하여 발매 직전 갑자기 타이틀 곡이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 이 일화를 봐도 이수만이 충분히 국내에 있을만한 상황은 됐고, 심지어 이 사건의 시점은 다나가 데뷔한 지 반년은 더 지난 2002년 초였다.

2002년 여름께 김경욱과 이수만이 검찰에 체포되었을때 기사를 보면 이때부터 이수만이 무기한 해외 체류중이라는 기사가 있었고, 그해 연말부터 이듬해 초에는 인터폴에 수배가 될 정도로 해외에 오랜 기간 도피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는 다나의 데뷔가 이루어지고 한 참 뒤에 일이다. 이렇게 당시 보도 자료를 살펴보면 이수만이 미국에 도피할 시점은 최소 2002년 봄부터 2003년까지인것.

또 보아가 데뷔하던 시점인 2000년 하반기에 다나는 1집 앨범 녹음을 하고 있었다는 인터뷰가 존재하는것을 보면 더더욱 오히려 더 이수만이 데뷔를 몰랐다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내용. 그땐 누구나 알다시피 이수만이 한국에서 SM을 지휘하고 있던 시절이다.

2000년대 초반, SM이 Starlight Casting System의 일환으로 사내 연습생 중 데뷔 후보를 추려 다른 기획사에 임대한 뒤 앨범 제작을 맡기고, 성공 부담을 덜고 음반 판매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마케팅을 막 시작하려 할 때 등장한 가수가 다나였고 그에 따라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나 1년여 뒤, 이수만이 국내에서 자리를 비우게 되고 공교롭게 다나의 데뷔 이후 나온 가수들이 모두 지지부진한 성과를 얻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SM의 암흑기가 초래한 것이다. 다시 말해, 다나와 밀크, 신비, 블랙비트 등의 데뷔는 이수만도 알고 있었다. 참고로 이수만 도피 이후 직전과 그 후 데뷔한 블랙비트랑 이삭 N 지연은 그냥 100% SM이었다.[16] Starlight Casting System 자체가 딱 데뷔조 가수만 뽑고 다른 회사에 임대하는 시스템이다보니 앨범 프로듀싱은 SM이서 하는게 아니었는데 이걸 가지고 김경욱이 자회사를 따로 만들어 이수만 몰래 데뷔시켰다는 억지 주장이 펼쳐지고 있었던 어이없는 상황. 심지어 그 주장을 뒷받침 할 자료들도 거의 없다. 이수만이 별다른 문제 없이 SM에 정상적으로 있던 시기에 데뷔한 가수가 대다수다 보니, 이수만이 이들의 데뷔 구성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워낙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팀들이라 거의 언급이 없어서 그렇지(...).

이후 의도치 않게 이수만이 자리를 비우면서 이후 이 가수들 케어를 김경욱이 잠시 맡은 건 맞을지 언정 이 가수들의 데뷔는 모두 이수만이 관여하고 오케이를 했다는 말.

그리고 결정적으로 2002년 1월, 이수만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발언한 부분을 보자. 이 인터뷰를 보면 더더욱 다나, 밀크, 장나라, 신비 등의 가수들이 김경욱의 손아귀에 휘둘려 성공하지 못하거나, SM에서 놓치거나(장나라의 경우가 이렇게 묘사되곤 했다.) 한게 아니란걸 알 수 있다. 신비나 밀크, 다나 뿐만 아니라 장나라 역시도 SM과 제휴 관계인 회사에서 데뷔했지만 장나라는 SM에서 놓쳤다는 식으로 왜곡되고 나머지 가수는 김경욱이 자회사를 하나씩 차려서 자금 날리고 가수들도 말아먹었다고 하는데 이 자체부터 상당히 앞뒤가 안맞고, 애초에 뒷받침할 증거도 없었으며, 모순적인 내용들이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헛소리인지 궁금할 따름.

"이제 매니지먼트나 프로듀싱보다 캐스팅과 훈련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회사 역량의 70%를 여기에 집중한다. 전문 캐스팅 팀이 끊임없이 후보를 발굴한다. 현재 훈련 중인 가수가 70팀이며 세팀 정도가 올해 데뷔한다. 부담을 덜기 위해 상당수 가수들은 제휴 관계인 기획사에 맡겨 데뷔시키기도 한다. 장나라 등이 그런 경우다.(이 날 인터뷰의 후기글을 보면 다나의 이름도 언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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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월 30일 대중문화지도 SM엔터 대표 이수만 회장의 인터뷰 中 #


2.2. 1집 First Album: DANA[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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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프로모션 티저.

그렇게 1년여간의 앨범 준비기간을 마친 다나는 2001년 6월, 잡지 Figaro 및 에꼴등의 여러 표지 모델을 장식하며 공식적으로 데뷔를 알렸고 데뷔 전부터 해태 제과 '화이트엔젤'의 CF 모델로 발탁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한다. 이후 8월경에 세계적인 무대인 독일' 팝콤(Popkomn) 2001'에 공식 초청을 받아 쇼케이스를 펼쳤으며 곧 이어 9월 1집 앨범 '세상 끝까지'로 데뷔한다.[17] 데뷔 전 다나의 데뷔를 알리는 티저 광고가 등장할 정도로 회사 내에서 기대치가 높았던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회사에 보아 역시 데뷔전 데뷔 광고가 나왔었기 때문에 다나의 데뷔 광고가 등장하자 여러 반응이 올라왔다. 대부분이 SM에서 같은 나이의 여자가수가 또 나오는걸 보고 나온 여러가지 반응들. 그러나 곧 이어 다나가 샤이닝 엔터 소속의 가수이며, SM에서 음반만 발매해준다는 반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타이틀 곡 '세상 끝까지'는 독일 작곡가 Stefan Aberg이 제공한 'Tell Me No More Lies(가제)'라는 유로팝 댄스곡을 국내 정서에 맞게 편곡한 곡으로 외국곡을 사다가 내놓은 즉, 외국물 좀 먹은 세련된 노래였다. 원곡이 외국에서 꽤 유행했던 곡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다나가 오리지널 원작자다. 외국 작곡가가 준 곡을 편곡해서 다나가 처음 내놓은것이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리메이크의 경우가 아니다. 어쨌든 1집에는 당시 솔로로 갓 이적한 H.O.T.의 강타가 곡을 선사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신경 많이 쓴 앨범.[18]

원래는 S.E.S.가 4집에서 일본 가수의 곡을 리메이크 해서 타이틀 곡으로 내놨던것처럼, 다나의 경우는 일본의 여성 그룹 MAX 곡을 리메이크 한 곡을 타이틀로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앨범 작업 중반부에 'Diamond'라는 곡을 받게 되고 이 곡의 퀄리티가 워낙 높아 MAX의 번안곡과 이 곡을 두고 고심하다가, 결국 'Diamond'이 타이틀 곡으로 결정되었지만 작업 후반부에 '세상끝까지'를 받고 또 계획이 변경되어 'Diamond'는 후속곡으로, MAX의 곡은 아예 수록되지도 못했다. MAX의 곡을 리메이크하기로 한 계획은 녹음까지 마친것으로 보이나 어른의 사정으로 불발된 것. 당시 'Diamond' 작곡한 작곡가의 글이 남아있다. 자세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같은 회사의 S.E.S의 경우에도 '감싸 안으며'의 라이센스를 획득하기 위해 2년여를 기다린 것을 보면 다나도 저작권 문제로 인해 연기되거나 회사 사정으로 무산된것으로 추측할수 있다.[19]

신생 기획사의 첫 아티스트였지만 그래도 SM과의 연줄은 무시 못해서, 그 시절 SM 음악 냄새가 많이 풍기는 작품이다. 안무는 젝스키스의 멤버였던 장수원과 김재덕이 운영하는 'SPEC'에서 지도 받았다고 알려진다.



그렇게 공식 뮤직비디오가 등장했지만 티저에서 써먹은 멀쩡한 씬은 다 날리고 초저예산 뮤직비디오가 등장하여 김이 빠지기 시작한다. 데뷔를 SM과 샤이닝 엔터 두곳에서 관여했음에도 퀄리티가 구린것을 보면 신생회사였던 1집 앨범을 만든 샤이닝 엔터의 자금 상황때문이거나 뮤비 감독이 먹튀를 했다거나 둘중 하나(...).[20]

여담이지만 이 뮤직비디오의 전체적인 컨셉이 보아의 데뷔곡 'ID; Peace B' 뮤직비디오 인트로 부분과 상당히 닮아 있는데 보아의 해당 뮤직비디오 인트로 씬을 보면 녹음실 장면과 오프 샷 장면을 뮤직비디오에 집어넣었고, 보아의 경우 인트로 부분만 그렇게 하고 실제 뮤직비디오는 당시 유명 감독에게 맡겨 멋드러지게 찍은 반면 다나의 뮤직비디오는 보아의 뮤직비디오 앞부분에만 잠깐 쓰인 컨셉을 아예 3분 30초 내내 제대로 된 씬 하나 없이 써먹다 보니 결과물이 매우 저퀄리티가 되버렸다. 나이도 같고 회사도 같은 계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2의 보아의 소리가 나올수밖에 없는 마당에 뮤직비디오도 비슷하게 찍어놓고 때깔은 더 현저히 차이가 났으니 한마디로 시작부터 마케팅을 잘못한 케이스.

상식적으로 보아랑 같은 나이대의 같은 회사 계열 여가수면 갖은 수를 써서라도 차별화를 뒀을텐데, 데뷔 전에 내놓은 언플이나 티저에서만 그럴듯하게 해놓고 막상 뚜껑 열어보니 다운그레이드면 다운그레이드지, 낫다거나 다를게 없다 보니 수려한 외모와 좋은 곡 퀄리티, 걸출한 회사를 뒤에 뒀음에도 정상 급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앨범 자켓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제2의 보아임을 대놓고 시인하고 있었으니(...). 이게 다나가 초반 뜰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결정적 이유.

그래도 다나의 귀여운 모습과 괜찮은 노래 퀄리티로 어느 정도 소소하게 인기를 끈 편이지만 그래도 다나 정도면 더 뜰만한 포텐이 꽤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묻힌 편이라 아직까지도 1집 시절 영상을 보면 왜 못 떴냐고 아쉬워 하는 댓글이 대다수일 정도다.

어쨌든 그 해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타이틀 곡 '세상 끝까지'로 활동 하는데, 당시 다나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자주 보이지 못했다. 데뷔는 9월인데 그때 딱 한번 MBC 음악캠프에 출연하고 몇달을 케이블에서만 전전했고 다나처럼 음반 발매만 SM에서 하던 기타 가수들도 비슷한 실정이었던것을 보면 해당 가수의 회사들이 SM만큼의 홍보력이 없어서 공중파 음악방송 출연이 지지부진 했던게 아닐까 추측된다. 비슷한 케이스로 데뷔한 밀크나 신비 역시 공중파 출연은 뜸한 편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는 꽤 나왔는데 음악 방송 프로모션은 거의 케이블 8 : 공중파 2의 비율로 케이블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나마 각종 잡지나 여러 미디어 매체에는 자주 나온 편이어서 다른 중소 기획사 생초짜 신인들보다는 얼굴을 많이 알린 편이다.



데뷔곡은 음악 방송 10위~20위권에 머물렀으며 방송 차트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 당시 비슷한 또래 여학생들의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로 불려지기도 했고 케이블 TV에 하루종일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와서 나름 다나의 대표곡이라고 불릴만큼 알려진 편이다. 중박 정도의 히트. 만약 슈가맨에 나온다면 30대에서는 대부분 불이 켜질 정도의 인지도라고 보면 된다.

후속곡은 강타가 작곡한 'Pretty'로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원래 타이틀 곡으로 점쳐뒀던 'Diamond'로 변경하여 활동했다. 이 노래의 퀄리티가 워낙 좋았기에 '세상 끝까지'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꽤 된다. 오히려 후속곡이지만 '세상 끝까지'보다도 유명한 편이어서, 타이틀 곡 선정 미스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 참고로 다나의 1집 음반은 수록곡들도 꽤 좋은 평가를 받은바 있지만 판매량은 음협 기준 44,783장에 그쳐서 신인치고는 나쁘다고 볼순 없어도 데뷔전부터 행해진 푸쉬와 기대에는 영 못미치는 성과였다.

그래도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기에 연예정보신문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고 적당히 이름을 알렸다. 다만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로 데뷔한 장나라는 비슷한 시기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다나는 상대적으로 보아와 장나라에게 묻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Diamond (Feat. 유노윤호[21])

1집 활동을 끝낸 다나는 중국 진출과 함께 긴 공백기에 들어가는데 이때 정식으로 SM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한다. 이때부터 완전히 소속사/배급사가 SM이 된셈. 자주 언급했지만 1집때는 소속사 샤이닝/배급사 SM이었다.(사실상 SM의 지분이 큰 가수기도 했지만.) 사실 1집 활동 중반기에 SM 쪽에서 다나가 곧 SM과 전속계약을 맺을거라는 기사가 난적이 있었는데 이걸로 봐서, SM과의 계약건은 1집 때부터 얘기가 오고갔던걸로 예상된다.

참고로 1집 후속곡과 중국 활동 당시 Diamond에 피쳐링한 연습생 시절 유노윤호가 다나 못지 않게 인기가 많아서 데뷔 전이었음에도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중국의 모 잡지에는 다나 얼굴에 이름이 장나라라고 표기 되는 등 여러모로 다나는 안습의 행보를 보였다(...).

소속사 이적등의 문제로 2집 준비가 늦어지고 있을때 다나는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던 '논스톱 시즌 3'에 합류했고 발랄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어필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덕분에 아직도 다나하면 논스톱 시절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 이때 획득한 이미지로 몇몇 개의 TV-CF를 촬영하며 이제 슬슬 뜨나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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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출연 당시 다나의 모습. 귀여운 용모와 말투로 "이거 왜이러셩~"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10대 스타로 나름 사랑받던 시절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10대 가수 죠앤이나 하늘의 경우를 보면, 하늘은 본인만의 독보적인 무대 퍼포먼스로 '웃기네'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죠앤은 가창력을 무기로 보아만큼의 안무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가창력을 더 어필하여 고정 팬들을 많이 이끌고 있었다. 이들보다 소속사 여건도 좋았고 트레이닝도 길게 받은 다나였지만 당시 이들의 이미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죠앤은 노래 잘하고, 하늘은 무대가 참 개성있고, 다나는 (...). 굳이 뽑자면 귀엽잖아?''같은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대형 기획사를 등에 업고도 이 정도였으니 당시 샤이닝 엔터의 프로듀싱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말해 가수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없었던 것. 프로듀싱으로 그걸 이끌어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냥 모든 면에서 대충, 적당히 제작해놓고 주먹구구 식으로 케이블 홍보만 돌리고 있었으니(...). 이하생략

본체 소속사는 아니지만 뒤에서 밀어주는 회사가 업계 1위였기에 딱 그정도까지만 성과를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나 본인이 밝힌 바로는 당시 자신은 딱히 인기에 대한 욕망이 적은 편이라 그냥 제시해주는 스케쥴 대로 적당히 움직였다고 말했고 남들처럼 더 열심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이유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거기다 데뷔 앨범 발표 시기가 하필이면 무려 9.11 테러와 겹쳤고, 티저에서 보여 줬던 신비스러운 매력에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고작 고양이 티셔츠를 입고 노래하는 여타 다른 소녀가수들과 다를게 없던 그녀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나에 대한 초기 관심은 대부분 아쉬움으로 이어졌고, 좋은 노래 퀄리티와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중박 정도는 거뒀지만 대박까지는 못 갔다. 특히 같은 회사에 같은 나이였던 보아가 너무 잘나가던 시절이라 비교 되기는 일수였다.

당시 SM에서 캐스팅 매니저로 일했던 김수현이 SM 내에서의 보아의 작업 과정과 그의 전망을 아주 감명깊게 본 뒤, 자신이 캐스팅한 다나를 데리고 제2의 보아로(나아가서 보아와 대비되는 '다나'만의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솔로로 데뷔시켰을거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은 것. 물론 정황상 그런것이며 SM에서도 다나를 보아만큼 키우고 싶어하는 눈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나의 솔로 데뷔를 이수만이 반대한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후 왈가닥 이미지만 형성됐던 논스톱 출연은 당연히 이수만 대표에 눈에 탐탁치 않았는지 논스톱 출연으로 인지도도 많이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수만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다나의 논스톱 출연 하차를 지시했고 결국 다나는 결국 논스톱에서 제대로 된 이별씬도 없이 7월 초 출연을 마감했다. 논스톱 하차 당시 기사를 보면 아예 대놓고 이수만이 2집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특별 주문을 했다는 내용이 그대로 실릴 정도였다.

그렇게 SM에 다시 복귀한 이수만은 다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프로듀싱하기로 하고 그녀의 가능성을 테스트 하기 위해 제대로 된 2집을 준비하게 된다.

2.3. 2집 Dana 2nd Album : 남겨둔 이야기, 천상지희 합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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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앨범 자켓 사진[22]

중도 하차의 아픔을 겪긴 했지만 논스톱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인 다나는 2003년이 되서야 2집 음반을 발매한다. 타이틀 곡은 발라드 넘버 '남겨둔 이야기'였는데 뮤직비디오에는 당시 SM에서 연기자 파트였던 배우 김지훈이 출연했다.[23]

2집때는 SM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모든 공중파 음악 방송에 출연해 공중파에 드문 드문 출연했던 1집때와 달리 안정적으로 컴백했다.


2년만에 발매한 2집 타이틀 곡 '남겨둔 이야기'

당시 다나는 거의 모든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면서 의외의 가창력이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곡 자체가 다나하면 떠오르는 발랄한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던터라 예상치 못하게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수만이 직접 하나하나 관여하고 직전에 출연한 논스톱으로 인지도도 어느정도 쌓았지만 거의 무반응(...) 그래서 결국 후속곡 'What is Love'때부터 다시 케이블행

후속곡에 이르러서야 발랄한 댄스곡 'What is Love'를 선보이며 재기를 노렸지만 후속곡 활동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애초에 2집 앨범 자체가 대다수에게 들을만 했다고 평가받은 1집만큼 못하다는 반응을 얻은 작품이다. 결국 절치부심한 2집이 흥행에 실패했고 이수만이 프로듀싱한 음반 중 유일하게 빛을 못본 음반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거기다 얼마 뒤 SM에서 데뷔한 동방신기가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르면서 다나의 향후 활동은 더욱 불투명해졌고 회사 내 입지도 줄어들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싶었지만 SM은 동방신기의 성공으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여성 프로젝트를 결성했고 다나를 이 프로젝트에 합류시키면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이후 설명은 천상지희로.

2집 앨범의 참패 요인에는 타이틀곡 선정 미스가 크지 않았나 싶은데, 당시 논스톱으로 발랄한 이미지를 얻은 다나를 갑자기 조숙한 발라드 곡으로 활동시킨게 대중들로 하여금 다나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당시 다나의 편에 따르면 사춘기때여서 살도 오르고 피부도 좋지 않을때라 여러모로 아쉬운 상태였다. 성숙한 모습을 어필하기엔 준비가 좀 덜 되서 타이밍이 영 좋지 못했으며 타이틀 곡 자체도 대중적으로 임팩트가 있었다거나, 비평적으로도 크게 인상깊은 곡이 아니었다. 말그대로 무난 그 자체의 노래.

이 곡의 컨셉을 보면 앞서 말한 다나의 원래 데뷔 초기 컨셉 기획썰에도 어느정도 설득력이 가해지기도 하는데 신비스럽고 조숙한 이미지로 밀고 싶었던걸로 보이나 그 모습 그대로 2집을 내놓고 보니, 1집 자체도 큰 성공을 한건 아니었고 다나를 겨우 청소년 연기자로만 알고있는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발라드로 나온 다나를 본 뒤 "쟤 왜 갑자기 발라드 부르고 있냐"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다나를 몰랐던 사람들이 애매한 발라더로 돌아온 다나를 받아줄리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1집보다도 더 시시한 반응을 얻고 말았다.

차라리 논스톱 시절의 다나의 발랄한 이미지를 어필할수 있는 'What is Love'나 수록곡 '너를 꿈꾸며'로 타이틀곡으로 정했다면 훨씬 좋은 성과를 이뤄낼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의견이 있었다. 아니면 1집때처럼 적당히 대중적인 마이너 댄스곡이나 유로팝 댄스 스타일을 이어가는게 더 나았을수도. 다만 What is Love도 그닥 반응이 없었기에 그냥 가수 본인의 스타성이 부족했던 이유가 더 클수도 있다. 모든걸 전적으로 소속사 탓을 하기에는 SM은 할만큼 했기 때문에(...)

실력도 나쁘지 않았고 음색도 독특했으며 비쥬얼, 소속사도 대형이었지만 좀처럼 잘 풀리지 않은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춤 실력이 좀 부족했다는건데 끼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연예계는 운빨도 중요한데 객관적으로 놓고 봐도 다나는 운도 지지리 없었다. 이후에도 특별한 구설수나 스캔들, 루머는 없었지만 은근하게 넷상에서 좋지못한 얘기가 돌았으며 수년 뒤에 SNS 방송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다나 개인의 부주의도 한 몫했다.


What is Love불운의 명곡[24]

2집은 34,408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1집에 비해 크게 하락하진 않았지만 그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이후 솔로 음반을 발매하긴 어렵게 됐다. 대중들도 그랬고 SM 역시 다나는 솔로 감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는지 솔로 활동은 종료됐고 새로운 걸그룹 천상지희의 멤버로 합류한다. 본래 이수만이 다나에게 입혀주려던 여성그룹 플랜을 다시 쥐어준 셈이다.

이 후 천상지희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다 2009년 스테파니가 허리 부상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면서 팀도 자연스럽게 활동이 중단됐고 2011년 선데이와 함께 듀엣 체제로 컴백했다.

2.4. SM STATION <울려 퍼져라 (Touch You)>[편집]


해당 문서 참고.


3. 연기 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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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연 '설지' 역을 맡은 영화 '설지' (The Sunshine)가 2015년 11월 26일에 개봉하였다.[25]



4. 뮤지컬 배우 활동[편집]


뮤지컬계에선 그리 평판이 좋지 못한 편이다.
  • 삼총사 (콘스탄스 역)
  • 캐치 미 이프 유 캔 (브렌다 역)
  • 락 오브 에이지 (쉐리 역)
  • 보니앤클라이드 (보니 역)
  • 로빈훗 (조이 역)
  • 위대한 캣츠비 RE:BOOT (선 역)


5. 예능 활동[편집]



5.1. 복면가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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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41회 21차경연 1라운드 4차전
파리잡는 파리넬리 vs 심쿵주의 눈꽃여왕'사랑보다 깊은 상처'
네이버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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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파리잡는 파리넬리임재범(feat. 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불렀는데,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질풍노도 유니콘의 무대 이후 역대급의 듀엣 무대를 선보여서 사상 초유로 판정단의 투표 거부 사태(?)까지 발생했으며 5표 차의 접전을 벌였다.[26]

오랜만에 공중파에 출연한 그녀의 부쩍 성장한 가창력을 볼 수 있었으며 판정단의 김형석"소녀가 디바가 되어 돌아와서 너무나도 반갑다."고 극찬을 했고, 김현철은 제작진에게 왜 이 두 사람을 붙였냐고 역정을 내는가 하면, 김구라는 PD의 징계를 요구했다.

라디오에서 밝히기를 연습 당시에는 파리넬리가 상당히 목 상태가 안 좋았는지 고음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본 경연에서 너무나 잘 불러서 '몰래 다른 사람을 캐스팅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27]

그 뒤 생방송에서 울렁울렁 체중계 마비로 참가했으며 이 때는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최악의 무대를 보여줘 혹평을 받았다. 사실 야외 무대였고 음향이 나빴던 터라 남자는 배 여자는 사과 뿐만 아니라 우승한 심장어택 큐피드도 멋진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다. 참고로 그녀를 이긴 뒤 우승한 파리잡는 파리넬리빵야빵야 총잡이로 재참여해 준결승까지 갔다.


5.2. 힙합의 민족2[편집]


힙합의 민족2에 참가했으며 블라인드 랩에서 BOBBY의 가드올리고 bounce를 부르고 치타,LE,예지가 프로듀서로 있는 핫칙스 팀에 합류했다. 이후 문희경과의 대결에서 밀리면서 떨어졌는데 대결 과정에서 몇가지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성논란이 불거졌다.

관련 영상

프로듀서와 참가자들의 첫 대면당시 프로듀서들이 앉아있는 상태에서 참가자들이 들어오게 됐을 때 자신보다 후배인 프로듀서들은 앉아있는데 자신은 서있는게 기분이 나쁘다면서 그냥 바닥에 앉아 버리면서 다른 참가자들을 당황케했고 그러면서 정작 대선배인 문희경이 말을 하는데 말을 끊어버리거나 노래에 문희경이 돋보일 거 같다며 곡의 구성을 마음대로 바꿔버리고 리허설까지 불참해버리는 등의 행동이 있었다.

또한 무대가 끝난 다음 베이식의 심사평을 듣고 베이식에게 삿대질하면서 "경솔하네, 베이식이라고 했나?"라며 대놓고 기분 나빠했고 "식아, 누나가 연습은 진짜 열심히 했어 실력은 니맘에 안들지 모르지만"(베이식과는 동갑이다.) 라고 하는 등 시청자들이 봤을 때 예의없어 보이는 게 논란이 되었다.

사실 이건 오히려 제작진이나 프로듀서의 문제인게 다른 가문들은 프로듀서나 참가자들이 같이 앉아있는 것에 반해서 핫칙스만 마치 심사받는 것 처럼 서 있으니 그녀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프로듀서에게 심사받는 자리도 아니고 같이 상의하고 회의하는 자리에서 멀뚱멀뚱 세워놓은 것 자체가 문제. 그리고 그녀가 기분 나쁘다고 언급한 적은 없고 제작진이 자막을 그렇게 사용했을 뿐.


6. 논란[편집]


  • 2018년 11월, 개인 SNS 라이브에서 천상지희 멤버 및 팬들을 저격한 듯한 공격적인 언행으로 논란이 되자 사과문을 올렸다.[28] 다만 이 영상에서 보여준 기행은 정상의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였기 때문에 비난하기 보다는 치료를 받으라고 진심으로 권유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장 이 사건의 1년 전후로 소속사 후배들이 2명[29]이나 자살한것도 있고.


7. 여담[편집]


2017년 6월 1일 황금 주머니 이후로 한동안 잠시 안 보이다가 2018년 11월 14일 라이프타임의 프로 다나의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다시 날개 다나(이하 다날다)>의 맛보기 영상을 공개했다.

그런데...



1년만에 푸근한 다나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다나는 "제가 공개 열애하던 사람인 영화배우 감독 이호재와 작년에 헤어졌다. 이별 여행이라는 걸 처음 가봤다. 거기서 어떻게든 정신적으로 버텨보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았다. 아끼는 동생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느낌과 동시에 불면증이 심해졌고 살이 찌게 됐다"고 설명했다.

1주일후 2018년 11월 21일 유투브를 통해 미리 공개되며 2018년 12월 4일 매주 화요일 밤 10시 45분에 방송된다. '다날다' 다나의 눈물 "결별+지인 사망 이중고…의욕 잃어"

결국, 80kg에서 54kg으로 26kg 감량에 성공했다!


[1] SM 여자 아이돌 중 172cm 소녀시대 수영에 이은 2번째로 장신이다.[2] 우울증 때문에 80kg까지 쪘으나, 이후 26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전성기 때는 50kg 초반을 유지했다고 한다.[3] 정작 학과는 중국어를 전공했지만 본인은 일본어가 익숙하다고 한다. 허나 중국어도 꽤 하는 편.[4] 1집 앨범 활동 당시 소속사는 확실히 샤이닝 엔터였지만, 사실상 이때부터 SM과 동시 소속 혹은 SM 가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세한것은 아래 내용 참고.[5] 실제로 다나는 평소 무대 공포증이라던가, 무대에서 긴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다.[6] 2011년 강심장에 출연해 다나가 말했다.[7] 영상 중에 다나와 함께 프로필 촬영을 하는 소년은 김수현이 발굴한 UN의 김정훈이다.[8] 그러나 이 시절 SM이 모든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 시절의 주된 목적 중에 하나가 S.E.S.의 뒤를 이을 여자 아이들을 캐스팅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시기에 소녀시대의 윤아, 서현, 수영, 유리, 효연, 제시카(다만 제시카는 14년에 소녀시대 퇴출.)와 f(x)의 크리스탈과 설리(15년에 탈퇴.)가 캐스팅됐다. SM 2세대의 근간을 만든 셈. 원래 다나는 S.E.S. 이후에 출범할 여성 그룹의 핵심 연습생이라는 썰이 있는데, 그 근거를 뒷받침할만한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그랬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이수만이 의도치 않게 한국을 비우면서 SM의 주요 스타였던 H.O.T.와 S.E.S(그보다 2년 가량 뒤에) 해체했고 회사가 기울자 대처방안으로 내놓은 소속사 연습생 임대 시스템의 피해자로 보일수도 있지만 장나라는 아주 멀쩡히 대성공한것을 보면 이 당시 1~2집으로 끝난 SM 가수들의 스타성이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다나는 이후 천상지희라는 번듯한 그룹으로 다시 출범했지만 결국 뜨진 못했다.[9] 김수현은 다나를 대놓고 배신자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애초에 다나는 SM에서도 지분이 있던 가수라, 완전히 배신자로 보기에도 뭣하다. 아마 1집 활동 직후 다나에게 선택에 가로가 열렸지만 이때 SM을 택하면서 배신감을 느꼈는지 인터뷰 및 김수현 개인 카페에 다나에 대한 비화를 여럿 밝히기도 했는데 한 쪽의 얘기만 들은 것이기에 믿는것은 자유다. 자세하게 썰을 푼것도 아니기에...[10] 2012년 강심장에 출연한 김지훈이 당시 다나는 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고 얘기했다.[11] 훗날 이 예명은 직속 후배 걸그룹어떤 멤버가 쓰게 된다.[12] 당시 SBS 한밤의 TV연예서 정다나라는 이름을 가진 리포터가 활동중이었는데, 그 이름을 보고 너무 예뻐서 '다나'로 직접 예명을 결정했다고도 밝혔었다.[13] 만약 정말 이수만이 다나의 솔로 데뷔를 듣고 경악했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다나 2집부터 내주지 않았을 거다.[14] 이 뒷구절을 보면 다나와의 10년 계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언급이 있는데, 요즘 같았으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끌려갈 계약 위반 사항이다(;;).[15] "세상 끝까지"의 편곡자는 유영진의 동생 유한진의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유영진이 직접 편곡한 곡의 저작권을 형제의 이름으로 올린다는 애기가 있다. 혹은, 유한진이 당시 신인 음악인이었기에 유영진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다나가 그 모습을 본 뒤 인터뷰에서 유영진이 편곡했다고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수만의 경우에는 2016년 S.E.S. 20주년 리얼리티를 보면, 이수만이 사내 가수들의 음악 프로듀싱에 이름을 올리진 않아도 "베이스가 여기서 더 크게 들려야 된다는 등" 세세한 것까지 직접 체크하고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는데 이게 크레딧에 올라가진 않지만, 이수만의 프로듀싱이라는 것.[16] 블랙비트는 이수만이 도피 직전에 SM에서 데뷔했고 이삭 N 지연은 그보다 좀 뒤인 02년 9월경에 데뷔했다.[17] 원래는 7월 발매 예정이었다.[18] 강타가 여자 가수한테 준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 곡이다.[19] 원래 S.E.S.는 일본 유명 가수였던 MISIA의 'つつみこむように... '를 98년도 2집때 리메이크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한일 문화 개방 상태도 아니었고, 이런 저런 사정때문에 연기되다가 2000년 말에 '감싸 안으며'라는 곡으로 공개했다.[20] 앨범 곡들에만 신경 쓰고 부수적인것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던 모양. 후속곡 Diamond의 뮤직비디오는 당시 유명 감독이던 홍종호가 메가폰을 잡아 훨씬 퀄리티가 나아지긴 했다. 그 시절 아이돌들 뮤직비디오 하단에 뜨던 'HONG' 로고, 그 감독 맞다.[21] 유노윤호 파트의 녹음은 2001년 '영원한 너'로 데뷔한 가수 허세원이 녹음했고 유노윤호는 립싱크만 했다.[22] 자켓 사진은 완전히 천진난만 어린 공주처럼 찍어놨는데 막상 뮤직비디오와 무대 컨셉은 완전 실연 당한 소녀같다.[23] 당시 김지훈은 회사 내에 학벌도 외모도 되는 4명의 연습생들이 모여 대만의 F4같은 그룹으로 데뷔할 뻔 했지만 다들 가창력에 소질이 없어서 연기 파트로 빠졌다고 한다.[24] 뮤직비디오에는 데뷔 전 연습생 시절의 슈퍼주니어 시원이 출연한다.[25] '평화의 시대' 이후 무려 15년만의 영화 출연이다.[26] 어느 정도였냐면 투표할 시간이 다 끝나가는데도 무려 50명이 결정하지 못했다.[27] 참고로 이 날 경연 도전자 중에서는 그녀가 홍일점이었다.[28] 참고로 천상지희 팬들에 의하면 그녀의 이런 언행이 이미 수년전부터 있었으며 특히 천상지희 기존 멤버들에게 텃세를 부렸다는 이야기도 있다.기사댓글 목록참고 [29] 샤이니 종현, 前 f(x) 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