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쿠스의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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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사상



1. 개요[편집]


다마스쿠스의 요한야햐 이븐 사르준 이븐 만수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중동의 기독교 교부, 법학자, 변증가, 사제, 승려, 신학자, 찬송가 작가, 겸 철학자였다.

2. 생애[편집]


7세기 중기 우마이야 칼리파국에서 요한은 그의 아버지, 사르준 이븐 만수르무아위야 1세의 재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요한의 가문은 아랍계 기독교인 계보였을 가능성이 오늘날 제기되고 있다. 요한은 어린 시절 야지드 1세 칼리프와 친구였다. 23세가 된 요한은 아버지에 의해 그리스인 전쟁 포로였던 코스마스를 선생으로 삼게 되었다. 요한은 그로부터 기하학, 논리학, 대수학, 신학, 음악, 천문학, 형이상학 등을 공부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요한은 다마스쿠스의 최고 참의원이 되었으나, 압드 알말릭의 반기독교적 경향에 의해 다마스쿠스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코스마스와 함께 마르 사바 수도원에 들어가, 기독교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요한이 사제가 된 후, 726년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성상 논쟁이 시작되었다. 요한은 성상 파괴의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이었지만, (오늘날 견해에 따르면) 레오 3세는 성상 숭배를 반대하지 않았고 콘스탄티누스 5세는 일부 성상만을 파괴했다. 그는 754년 마르 사바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3. 사상[편집]


요한은 주로 편집과 변증을 했지만,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요한이 쓴 《지식의 샘》은 당시 동방 정통 신학의 체계화된 정점으로, 그의 대표작이며 그의 독자적인 생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성상 논쟁 때, 그림이나 성육신과 달리 성상은 경외와 숭배를 위해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우상숭배적이라는 그의 독자적인 생각은 동방 교회 안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최초의 이슬람 비평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는 이슬람은 이스마엘의 이단이며, 쿠란이 구약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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