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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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르족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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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어: 达斡尔族(達斡爾族)[1]
  • 다우르어: Dagur(다구르)[2]

1. 개요
2. 역사와 문화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다른 이름은 쏠론으로, 백석의 시 <북방에서>의 한 구절 "오로촌(오로촌족)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릿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의 쏠론은 이들을 뜻하는 명칭이다.

거란족의 후손이라는 학설이 있다. 동호족에서 갈라져 나온 선비, 거란과 마찬가지로 다우르족 역시 몽골계에 해당된다.

거주 지역은 내몽골 자치구헤이룽장성이지만, 청나라 때 신장(신장 위구르 자치구)으로 이주하여 신장에도 산다.

종교는 샤머니즘을 믿지만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요나라 때 거란인들은 밀교를 믿었다). 인구는 2010년 기준 약 12만 7천명이 중국에 살며[3], 러시아극동 연방관구에도 4700여명이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일부는 몽골에도 거주한다고 한다.


2. 역사와 문화[편집]


요나라 멸망 이후에도 요서와 화북 지방에 남은 거란족은 한족, 여진족 등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된 반면,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서요(西遼)를 세웠으며, 거란족의 한 갈래인 대하씨(大賀氏) 집단[4]이 북쪽의 아무르강 유역까지 이동하여 정착하였는데 이들이 다우르족의 직계 선조로 여겨진다.

거란이 몽골에 가까운 것처럼 다우르족 역시 문화적으로 몽골과 상당히 비슷하다. 다우르족들만의 전통 문자가 없어서인지 이들은 만주 문자한자, 키릴 문자(러시아, 현대 몽골) 등으로 표기를 했다고 한다. 다만 극소수가 거란 문자를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말명초에 이들에 대한 기록이 단편적으로 남아있는데, 명나라 왕조는 헤이룽장성 이북에 지방 방어 행정단위인 위(衛)와 소(所)를 설치하여 이들에게 둔전을 시켰는데, 이로 인하여 다우르족은 목축 외에도 농업을 겸하게 되었다. 명나라에서 유목민들에게 국경 변경 지역에서 가급적 농업을 장려한 이유는 보급 비용을 절약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유목민들의 말을 먹일 목초지를 농지로 개간하여 유목민 기병의 보급을 제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헤이룽장성 이북은 과거에는 수렵과 어로가 주 산업이었으나, 다우르족의 정착과 둔전을 계기로 목축과 농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서기 17세기 중엽에 다우르족은 청나라에 복속되었고 점차 아무르강 상류에서 눈강 유역으로 남하하면서 만주 팔기군 조직에 편입되어 병역을 부과받았다. 다우르족은 10여 차례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루스 차르국의 정찰대와 잦은 분쟁을 치루었다.[5] 강희제로부터 건륭제 연간에는 다우르족 부족 상당수가 애휘, 호륜패이, 신강의 일리 강 유역, 타르바가타이 등 청-러시아 간 변경요지로 이동하여 둔전을 하면서 국경을 수비했는데 이로 인하여 다우르족이 오늘날과 같이 광활한 지역에 넓게 분포하는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 이들의 역사와 언어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이전에는 다우르족을 몽골인으로 간주하여 “다우르 몽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음식 문화는 몽골 요리중국 요리[6]와 비슷한데 중국의 다른 지역 요리들의 영향도 받았다. 주로 양고기쇠고기를 소비하지만 한족만주족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소비하기도 한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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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우얼족"이라고 읽는다. 만주어로는 "다후르(dahur)", 러시아어로는 "다우르"라고 부른다.[2] 다우르어로 "고향"을 의미한다고 한다.[3] 주로 내몽골 자치구헤이룽장성에 살고, 5천여명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산다.[4] 요련씨와 더불어 야율씨 이전에 거란족 전체를 이끌었던 주요 부족이다.[5] 장거리 원정의 보급 문제로 식량이 부족한 카자크 탐험대가 다우르족 마을을 약탈하는 일이 잦았다.[6] 동북 요리 및 내몽골 지역의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