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코쿠야 코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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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大黒屋光太夫 1751~1828

에도 시대 후기에 활동한 일본의 탐험가.

2. 생애[편집]


이세국 와카마츠[1] 출신 상인이었다. 1782년에 상선인 신쇼마루(神昌丸)호를 타고 에도로 장사를 하러 갔다가, 풍랑 때문에 당시 러시아령이던 알류산 열도의 암치트카 섬[2]까지 표류했다. 거기서 구조된 후에는 다른 배에서 표류된 러시아 선원과 함께 배를 구한 뒤, 1789년에 캄차카 반도를 거쳐 러시아 본토에 도착해 이르쿠츠크에 머물렀다.

이후 코다유는 1791년에 러시아군 장교였던 키릴 락스만[3]과 키릴의 아들 아담 락스만의 주선으로 예카테리나 2세를 알현해 일본 귀국을 허락받았다. 락스만은 코다유를 일본에 데려다주는 김에 일본과의 통상 허가를 추진했으나, 외국과의 교류를 막부에서 제한했기 때문에 일본과의 통상 및 수교는 훗날로 미뤄졌다.[4]

한편 표류 당시 신쇼마루호에 탄 인원은 원래 17명이었으나, 1명은 표류 중에 죽었고 11명은 러시아에서 사망, 1명은 귀국 절차를 밟던 중에 병사, 2명은 정교회로 개종해서 러시아에 남았기 때문에[5] 코다유 외 2명만 일본에 귀국할 수 있었다.

다이코쿠야 코다유 일행의 이동 기록
와카마츠➝(에도로 항해 중 표류)➝암치트카➝캄차카➝오호츠크➝이르쿠츠크➝상트페테르부르크➝마츠마에➝에도

귀국한 코다유 일행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를 알현한 뒤 막부의 조사를 거쳐 풀려났다.[6] 이후 코다유는 에도에 정착했으며 1828년에 사망했다.

3. 여담[편집]


  • 조선의 문순득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을 살았고, 둘 다 표류 후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이 기록에 남았다.
  • 코다유가 러시아에서 선물받은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는 현대에 모사본이 전해진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NPC로 등장한다. 행적을 반영해 북극어/일본어/생존을 가르쳐 주며, 일본인 캐릭터 조형에 서양 옷을 입었다. 한국판에선 이름이 다이고쿠야 코다로로 잘못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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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에현 스즈카시[2] 현대에는 미국령이다.[3] 스웨덴계 러시아인이며 본명은 에릭 락스만.[4] 여담으로 코다유 귀국 사건이 일본과 러시아의 공식 접촉이었다. 코다유 일행을 일본에 돌려 보내려면 막부에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5] 당시 일본에선 기독교가 불법이었다.[6] 이 때 막부에 제출한 기록은 막부의 관리이자 학자인 카츠라가와 호슈가 북사문략(北槎聞略)과 표민어람지기(漂民御覽之記)로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