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타 요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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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타 요시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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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taff-takeshita0191007.jpg

빅토리나 히메지 부사장
다케시타 요시에
竹下 佳江 | Takeshita Yoshie

출생
1978년 3월 18일 (46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모지구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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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가족 관계
남편 에구사 히로타카[1], 아들(2015년생)
포지션
세터
신체
159cm, 52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280cm, 블로킹 270cm
국가대표
일본 여자 대표팀 (2000~2012)
소속 구단
NEC 레드 로켓츠 (1996~2002)
JT 마블러스 (2002~2012)
감독
빅토리나 히메지 (2016~2020)
에이전트
아뮤즈

1. 개요
2. 경력
2.1. 김연경과 뛰면서
3. 선수 경력
3.1. 클럽 성적
3.2. 국가대표 성적
3.3. 개인 수상
4.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배구 선수 출신 감독. 16/17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빅토리나 히메지의 감독직을 맏았고 현재는 빅토리나 히메지의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별명은 世界 最小 最強 セッター[2], 텐상.


2. 경력[편집]


초등학교 3학년때 3살 많은 친언니의 영향으로 배구를 시작했다.

시라누이 여고 재학 시절, 1995년 청소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1996년 NEC 레드 로켓츠에 입단하였다.

1997년 처음으로 시니어 대표팀에 등록되어 주전 세터 오누키 미나코의 백업으로 승선하였다.

1999-20시즌 NEC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듬해 2000 시드니 올림픽 세계최종예선에 주전으로 참가하였다.[3] 하지만 이 대회에서 3승 4패로 탈락했다. 일본 여자배구팀이 처음으로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다케시타에게 돌아오는 비난은 어마어마했다. 세터가 159cm로는 세계에 통하지 않는다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2001년 그랜드챔피언스컵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으나 시드니 올림픽의 출전권을 놓친 후폭풍으로 2002년 NEC를 탈퇴하였고 선수 은퇴를 결심했다.

본인의 고향인 기타큐슈시에 살며 간호일을 배웠으나 당시 JT 마블러스 감독으로부터 다시 배구에 복귀하라는 거듭된 권유 끝에 같은 해 8월 JT에 복귀하여 팀은 1부리그로 승격하였다.

2003년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여 같은 해 열린 월드컵에서 감투상(Fighting Spirit Award)을 수상하였고 2004 아테네 올림픽 본선행에 성공하여 최종 5위라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2005년부터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다.

때마침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일본의 황금세대 스기야마 사치코, 아라키 에리카, 구리하라 메구미, 오야마 카나, 기무라 사오리, 사코다 사오리, 에바타 유키코 등과 함께 세계무대에서 선전하였다.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세터로서는 이례적으로 MVP를 수상하였다.[4]

2009년 주장직을 내려놓았고 후임으론 센터 아라키 에리카가 선정되었다.

2009-10시즌 외국인 선수로 입단한 김연경과 찰떡 콤비를 차랑하며 그 시즌 25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시즌은 비록 준우승으로 끝났으나 다음해 김연경과 함께 일본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여 본인으로서는 3번 연속으로 올림픽 진출에 성공하였고, 한국을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기고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어 시드니의 아픔을 씻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5]

같은 해 8월,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 JT를 탈퇴하고 휴식을 발표했다.

2013년 5월 현역선수로썬 이례적으로 일본 배구 협회의 이사로 취임했다. 같은 해 8월 은퇴했다.

2016년 2부리그의 빅토리나 히메지 감독으로 취임했다. 히메지는 2018-19시즌 1부리그로 승격하였다.

2.1. 김연경과 뛰면서[편집]


김연경이 이렇게 공격수 입맛에 잘 맞게 올려준 세터는 처음이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아래는 일본 기사에 실린 김연경의 인터뷰.[6]

한국에서 100년에 한 명의 일재라고 불리는 에이스 공격수 김연경과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세터 타케시타 요시에.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과 한국을 이끄는 두 명은, 예상외로 같은 장소에 있었다. 니시노미야시에 연고하는 JT마베라스다. 타케시타는 한 번 잃을 뻔한 자신을 JT에서 되찾았고, '09/'10시즌부터 2년간을 JT에서 보낸 김연경은, 터키에 이적해 '11/'12시즌, 유럽 챔피언이 되어 MVP를 획득할만큼 성장했다. 김연경이 JT시대를 되돌아 본다.
「일본에 이적한지 얼마 안된 무렵은, 해외에서 사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했다. 그렇지만, JT의 2년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유럽에서의 활약도 없었고, JT는 지금까지의 배구 인생에서 나를 제일 성장시켜 준 팀이다. 일본의 정확한 정보 분석이나 연습 시스템을, 이시하라 감독을 필두로 하는 스탭 여러분으로부터 배웠고, 일본생활이나 문화에 대해서는 팀메이트에게 배웠다. 아무리 연승을 이어가도, 선수는 언제나 그 이상으로 연습하고, 감독도 안이한 태도를 갖지 않았다. 일본인은 굉장하다.」
김연경이 타케시타로부터 배운, 마지막 1점을 결정하는 중요함.
JT시대는 나의 일생의 보물이라고 말하면서, 한층 더 말을 이어간다.
「특히, 텐(타케시타 요시에)씨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았다. 선수로서의 자세는 물론, 나의 플레이는 텐씨에 의해 살려졌습니다. 나의 공격을 살리기 위해서 매시합 얼마나 상대를 연구하고 준비해 왔는지도 알았고, 마지막 1점을 결정하는 중요함, 무게도 배웠습니다.」
황금기를 이루어낸 김연경
 JT에 이적한지 얼마 안된 무렵, 김연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터의 토스를 칠 수 있다고 하는 기쁨과 동시에, 국제 대회에서 보이는 쿨한 분위기의 타케시타와 잘 지낼 수 있을지 불안해했었다. 그러나 상냥한 말을 걸어주고 걱정해주는 타케시타의 모습을 접하고, 시합중의 태도는 포커페이스라는 것을 알았다.
 사석에서도 자주 식사하러 갔다.
「이런 일을 말하면 텐씨에게 야단 맞을지도 모릅니다만, 사석에서는 “아줌마”로 변신합니다. 카리스마 세터 타케시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코트 안팎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엄청 취했나?라고 생각한 정도입니다. 큰 소리로 웃기때문에, 모습이 안보여도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텐씨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배구에 대한 사고의 깊이라고 말한다.
흑취기 결전 전야, 코트의 지휘관 타케시타에 작전을 진언.
「 나에게는 반드시 두 명의 블록이 붙는다. 그렇지만 화려한 토스 워크로 상대를 흔들어 줄 뿐만 아니라, 「같은 공격에서도 스피드나 높이를 조금 바꾸어 보자」라든지, 「점프 하기 전의 어프로치가 짧아져 버리면, 상대의 블록이 공격을 읽기 때문에 조심해」와 같은 충고도 들었다. 그렇게 세세한 곳까지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1년차때부터 팀의 동료로서 녹아든 김연경은, 25연승이라고 하는 팀 기록을 만들었고, 레귤러 라운드 1위로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결정지었지만, 파이널에서는 토레이(Toray)에0-3의 완패.
 이런 말은 텐씨가 싫어할까,라고 하며 짓궂은 미소를 띄우면서, '10년 5월의 흑취기 결전 전야의 에피소드를 말한다.
작년 5월, 흑취기를 첫제패. 「텐씨에게 전화를 걸어 체육관에 호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토레이(Toray)가 나를 철저하게 마크하기 때문에, 나를 이용하고, 다른 선수에게 볼을 돌렸으면 좋겠다. 나는 득점왕이라든지 MVP에는 정말 관심없고, 팀으로서 어떻게든 토레이(Toray)에 이기고 싶습니다」라고」
 김연경은 코트의 지휘관에게 작전을 진언 하는 것은 월권 행위라고 생각하고 타케시타가 화를 내지 않을까 두근두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타케시타로부터 「 나도 같은 생각이다 」라고 들어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 결과로, 1-3으로 또 토레이(Toray)에 패배했지만, 다음 시즌의 리그 우승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년차에는 MVP를 받았습니다만, 본래는 텐씨가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상금은 JT의 회식에 사용했습니다.팀메이트의 위가 힘이 났으므로, 이어진 5월의 흑취기에서도 우승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 성적[편집]


  • V.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1999-00, 2010-11
  • V.프리미어리그 준우승 (2회): 1997-98, 2001-02, 2006-07, 2009-10
  •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 (4회): 2001, 2003, 2004, 2011
  •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준우승 (2회): 2007, 2010

3.2. 국가대표 성적[편집]



3.3. 개인 수상[편집]


  • 1999-00 V.프리미어리그 베스트 6
  • 2000-01 V.프리미어리그 베스트 6
  • 2001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검은독수리상, 베스트 6
  • 2003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감투상, 베스트 6
  • 2003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세터상
  • 2003-04 V.프리미어리그 베스트 6, 리시브상
  • 2004 FIVB 올림픽예선전 세터상
  • 2006 FIVB 세계선수권대회 MVP, 세터상
  • 2007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감투상, 베스트 6
  • 2008 FIVB 올림픽예선전 세터상
  • 2008 FIVB 월드그랑프리 세터상
  • 2009 FIVB 월드그랑프리 세터상
  • 2009-10 V.프리미어리그 베스트 6
  • 2010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감투상, 베스트 6
  • 2010-11 V.프리미어리그 베스트 6
  • 2010 흑취기 전일본선수권대회 베스트 6
  • 2011 AVC 아시아선수권대회 세터상
  • 2011 FIVB 월드컵 세터상


4. 여담[편집]


  • 단신이라는 약점을 좋은 수비력과 기계 뺨치는 토스 실력으로 극복해냈다. 특유의 수비는 유명하여 리베로 사노 유코와 묶여서 일본 팀에는 리베로가 2명이다라는 소리가 나올정도.



  • 2015년 히로시마에서 야구 선수 에구사 히로타카 사이에서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 남편도 고향이 히로시마다.

  • 2019년부터 한국대표팀의 주전 세터가 된 이다영의 롤모델이라고 한다.


  • 함께 JT 마블러스에서 뛰었던 김연경이 이렇게나 입맛에 맞게 올려주는 세터는 처음이라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 김연경과 두 시즌 뛴 후 상당히 친해져서 김연경이 터키 리그로 떠난 뒤에도 종종 만난다고 한다. 김연경이 부르는 애칭은 일본어로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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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신 타이거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소속됐던 좌완 불펜 야구선수다.[2] 세계 최소 최강 세터[3] 이전 주전이였던 오누키 미나코이타바시 미나코가 부진했기 때문에 기용된것으로 보인다.[4] 하지만 당시 대회가 일본에서 열렸고 일본이 우승한 대회도 아니였기 때문에 다케시타의 MVP 수상에 말들이 많았다. 오히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가모바가 받아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모바는 4년뒤 세계선수권에서 MVP를 수상했다.[5] 공교롭게도 당시 한국팀에는 3년전 JT 마블러스에서 최고의 콤비로 활약한 김연경이 있었다. 또한 다케시타의 엄청난 토스와 경기운영으로 한국이 매번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일전/배구 문서 참조.[6] 출처: [NUMBER] 다케시타 요시에의 10년간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