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 리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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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 리버스의 수상 이력





파일:1000003401.jpg

글렌 앤턴 "닥" 리버스
Glenn Anton "Doc" Rivers

출생
1961년 10월 13일 (62세)
일리노이주 시카고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학교
마케트 대학교 (정치학 / 학사)
신장
193cm (6' 4")
체중
95kg (210 lbs)
윙스팬
200cm (6' 7")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1983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1순위
애틀랜타 호크스 지명

소속 팀
애틀랜타 호크스 (1983~1991)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991~1992)
뉴욕 닉스 (1992~1994)
샌안토니오 스퍼스 (1994~1996)
지도자
올랜도 매직 (1999~2003)
보스턴 셀틱스 (2004~201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13~2020)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020~2023)
프런트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부사장 (2013~2014)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사장 (2014~2017)
가족
[ 펼치기 · 접기 ]
장남 제레미아 리버스
딸 칼리 리버스
차남 오스틴 리버스
삼남 스펜서 리버스
사돈 델 커리
사위 세스 커리


1. 개요
2. 일생
2.1. 선수 시절
2.2. 지도자 생활
2.2.1. 올랜도 매직
2.2.2. 보스턴 셀틱스
2.2.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2.4.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2.5. 역대 감독 성적
3. 감독 스타일
4. 가족 관계
5.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농구인이자 NBA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전 감독. 별명인 닥(Doc)은 Doctor J에서 따온 것인데, 대학 시절 코치인 릭 마저러스(1948~2012)[1]가 여름캠프에서 Dr. J 티셔츠를 입은 리버스를 닥이라고 부르면서 굳어진 것이다.

2. 일생[편집]



2.1. 선수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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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아버지 그래디와 어머니 베티 사이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인근 도시 메이우드로 이사간 후 그 곳에서 자라나며 프로비소 이스트 고등학교[2]에 입학해 농구부에서 글렌 휘텐버그(1927~1983) 감독에게 농구 수업을 받았고,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과 미스터 배스킷볼 USA 등지에 선정될 정도의 유망주였으며 1980년에 위스콘신 주 밀워키의 마케트 대학교에 진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했고, 1985년에 졸업했다.

대학 시절 농구부에서 행크 레이몬즈(1924~2010) 감독의 지도 아래 1982년 NCAA 전국대회 32강 진출 등 준수한 성적을 내는 데 공헌했다. 1982년에는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참가해 올-토너먼트 팀에 뽑혔을 정도로 맹활약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다. 소련[3]과의 결승전에서 리버스는 결승골이 될 수도 있었던 슈팅을 놓쳤고 팀도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 공로로 대표팀으로부터 올해의 남자농구 선수상을 받았다.

1983 드래프트 때 2라운드 7순위(전체 31순위)로 애틀랜타 호크스에 입단한 후, 데뷔 1년차 선배이자 리더 도미니크 윌킨스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아 1988년에 올스타에 선출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1991년에는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세트로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어 1991-92 시즌에는 대니 매닝, 찰스 스미스, 게리 그랜트 등을 도우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했다. 1992년에는 뉴욕 닉스 및 올랜도 매직과의 3각 트레이드 과정에서 찰스 스미스와 함께 마크 잭슨 및 1995 드래프트 2라운드 픽과 맞바꿔져 닉스에 2년 간 몸담으며 패트릭 유잉-존 스탁스-찰스 오클리 3총사를 보좌하며 1993-94 시즌 파이널 진출을 돕기도 했다. 1994년 12월에는 FA로 풀려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떠났다가 1995-96 시즌이 끝난 후 은퇴했다.

감독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근무하게 되는 클리퍼스에서는 1991~1992 시즌 딱 1시즌 뛰었는데 이 시즌은 클리퍼스가 1990년대 딱 3번 진출한 플레이오프 시즌 중 하나다. 그 때도 등번호는 25번.


2.2. 지도자 생활[편집]



2.2.1. 올랜도 매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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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TNT에서 해설위원을 맡다가 1999년에 올랜도 매직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감독 생활 4년동안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의 준수한 성적을 냈다.

특히 첫 시즌에는 주전 다섯 명 중 세 명이 드래프트 지명조차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었을 정도로 빈약한 선수단을 이끌고 무려 5할 승률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명장으로 손꼽히던 필 잭슨을 제치고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 오프시즌 중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슈퍼스타 그랜트 힐이 영입되면서 더 좋은 성적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힐이 매시즌 고질적인 발목부상에 시달리며 잦은 결장과 경기력 저하에 시달리는 바람에 팀성적은 5할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2003년에는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번 시드인 디트로이트[4]를 탈락 직전까지 몰아세우는 선전을 펼치기도 했다. 팀의 중심이자 당시 리그에서 손꼽히던 스윙맨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등의 활약을 앞세워 올랜도가 먼저 3승(3승 1패)을 거둔 것. 단 1승만 추가하면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올랜도는 결국 빈약한 벤치와 체력저하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3연패 하며 시리즈를 내주고 말았다.[5]

하지만 플레이오프의 선전이 무색하게 올랜도는 바로 그 다음 시즌에 1승 10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시즌을 출발했다. 그리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닥 리버스는 11경기만에 경질당하고 말았다. (올랜도 통산 171승 168패, 승률 .504)


2.2.2. 보스턴 셀틱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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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에서 해임된 리버스는 2004 NBA 파이널에서 잠시 해설을 맡은 뒤 보스턴 셀틱스의 감독으로 부임, 부임 첫 시즌에 디비전 1위를 차지하여 나름 선전했으나, 2005-06 시즌부터 2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감독 초기 시절 ESPN 칼럼니스트 빌 시몬스는 혹평을 남긴 바 있다.(#1, #2)

그럼에도 대니 에인지 부사장은 그를 무한히 신뢰했고, 2007년 오프시즌에 케빈 가넷, 레이 앨런이 영입되면서 폴 피어스의 원맨팀에서 벗어나 빅3가 구성되었고, 거기에 2006년에 입단했던 2년차 가드 라존 론도가 성장하면서 리버스가 이끌던 셀틱스는 마침내 2008년 파이널에서 LA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했다.[6]

이후 애틀랜틱 디비전에서는 꾸준히 1위를 하는 동부의 강팀으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으나, 2009년에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에게 걸리고[7], 그 다음해에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패배해 왕조라고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 성적을 거둔데다 2010년부터는 마이애미 히트르브론 제임스크리스 보시를 불러 신흥 빅3를 만들어 보스턴을 연파한 바람에 NBA 우승과는 해가 갈수록 멀어졌다. 빅3의 구성원들은 늙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빅 3 중 한 명인 레이 앨런이 론도와의 불화로 라이벌 팀인 히트에 합류하면서 해체된다.

2012-13 시즌이 끝나고 리버스 감독과 가넷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왔는데,. 그 루머란 리버스 감독과 가넷이 LA 클리퍼스로 가고, 디안드레 조던과 드래프트 픽이 셀틱스로 간다는 것.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함께 트레이드 될 수는 없다는 사무국의 입장에 따라 리버스는 드래프트 픽을 대가로 클리퍼스로 가게 된다.(보스턴 통산 416승 305패 승률 .577)

2.2.3.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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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유니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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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클리퍼스의 감독 겸 부사장[8]으로 부임했다. 부임 첫 시즌부터 레이커스를 142대 94로 관광태웠고 디안드레 조던을 엄청나게 성장시키며 찬사를 들었고, 이 여세를 몰아 2014년 디비전 1위, 컨퍼런스 3위로 플레이오프로 진출하는데, 짠돌이 구단주 도날드 스털링의 인종차별 발언으로 구단주 자격이 정지되는 어수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앤디 로저 사장이 무기한 휴직 형식으로 물러나면서 리버스는 부사장에서 사장(President of Basketball Operations, 농구부문 사장)으로 진급하기에 이른다. 농구와 관련해서는 클리퍼스 구단에서 가장 높은 총 책임자의 직책이 된 것이다.

사장이 된 리버스는 이후 자신의 아들인 오스틴 리버스를 팀에 영입했다. 아들이라고 어느 정도 밀어줬는데[9] 오스틴이 허접한 실력을 보여주자 아들사랑이라며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오스틴이 꽤 쏠쏠한 활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 시즌이 시작되면서 오스틴이 다시 평균적인 실력으로 돌아와... 현재는 팬들에게 둘다 애증의 대상으로 남았다.

2015년 플레이오프에는 3번 시드로 진출했고 1라운드에서 6번 시드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다 4:3으로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10]

2라운드의 상대는 2번 시드였던 휴스턴 로케츠.[11] 당시 휴스턴은 제임스 하든드와이트 하워드를 중심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정작 감독인 케빈 맥헤일은 전술적인 면에서 악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클리퍼스는 휴스턴을 상대로 3:1의 리드를 잡아냈다. 1승만 추가하면 구단 최초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앞둔 상황. 탈락 위기에 몰린 휴스턴은 이후 소위 골무 3인방[12]을 위시한 벤치멤버급 선수들을 과감하게 중용했다. 헌데 이 벤치멤버들이 예상치 못하게 폭발하면서 클리퍼스는 마지막 세 경기를 연달아서 패하며 시리즈를 역전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닥 리버스는 NBA 역대 최초로 7전 시리즈에서 3:1로 앞서던 상황을 두 번이나 역전당한 감독으로 이름이 남게 되었다.[13] 위에 서술된 2003년 올랜도 시절 디트로이트에게 당했던 패배는 1번 시드를 상대로 8번 시드가 선전한 사례이니 참작의 여지가 있었지만,[14] 이번 패배는 그리 참작할 거리도 마땅치 않은 것이, 비록 클리퍼스가 순위 자체는 휴스턴보다 하위팀이기는 해도, 오히려 클리퍼스가 우세라는 전망이 많았고, 휴스턴의 벤치 멤버 중용은 별다른 수가 없었던 맥헤일의 궁여지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15] 닥 리버스는 고작 벤치멤버들에 불과했던 이들의 활약에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휘둘리다 힘없이 시리즈를 내준 것이다. 크리스 폴 지못미

이후 Grantland의 잭 로우와의 인터뷰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우승은 운좋은 우승이라고 말해 엄청난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클레이 탐슨은 이에 대해 클리퍼스와 골든스테이트의 상대전적, 그리고 바로 위에 언급된 휴스턴을 상대로 당했던 허무한 역전패[16]를 예로 들며 응수했다.

2016년 12월 30일에는 아들 오스틴 리버스가 심판을 밀쳐 퇴장당한데 이어 닥 리버스 자신도 이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며 부자가 한 경기에서 동반 퇴장당하는 NBA 역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2017년 오프시즌 중에 리버스는 감독직에 집중하겠다며 사장직을 로렌스 프랭크 운영부사장에게 넘겼다. 대신 2017~18 시즌이 끝난 뒤 한국시간 5월 24일에 클리퍼스와 감독직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서 신임 클리퍼스 프런트가 위저즈에게서 마신 고탓을 받고 오스틴 리버스를 보내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며 부자(父子) 농구는 끝이 났다.

이후 크리스 폴을 시작으로 블레이크 그리핀디안드레 조던까지 팀을 떠나면서 전력이 급격히 약해진 채 2018~19 시즌을 맞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클리퍼스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예상했을 정도. 하지만 클리퍼스는 예상을 뒤엎고 서부 8위의 성적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1라운드 상대는 파이널 3연패를 노리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클리퍼스는 모두의 예상대로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는 무려 31점차를 딛고 대역전승을 이뤄냈으며[17] 5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등 최강으로 꼽히던 팀을 상대로 놀라운 선전을 펼쳐 다음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어진 NBA 파이널 기간 중 ESPN 파이널 프리뷰 쇼에 나와서 카와이 레너드를 '우리 시대 마이클 조던과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칭찬했는데, NBA 사무국에선 이 발언을 템퍼링 룰 위반으로 간주하고 벌금 5만달러를 부과했다.칭찬도 마음대로 못 하는 더러운 세상...[18][19]

그런데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된 카와이 레너드가 폴 조지[20]와 함께 정말로 클리퍼스에 입단하는 사건이 터졌다! 두 명의 슈퍼스타를 얻은 클리퍼스는 리빌딩 팀에서 단번에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될 정도의 전력 상승을 얻었다. 더군다나 레너드의 팀 선택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명장으로 꼽히던 닥 리버스의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진 2019-20 시즌에는 클리퍼스를 서부 2위로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는 루카 돈치치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4승 2패를 거두며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는 덴버 너게츠를 상대로 먼저 3승을 거두며 3승 1패로 앞서고 있었지만 마지막 세 경기를 모두 내주며 역전당하고 말았다. 5, 6차전에는 3쿼터에 각각 15점, 18점까지 앞서던 경기를 허망하게 뒤집혔으며 심지어 마지막 7차전에서는 경기종료 2분을 남기고 20점차까지 뒤지는 굴욕을 당했다. 이로써 닥 리버스는 7전 4선승제의 시리즈에서 3승 1패의 리드를 세 번이나 날린 감독이 되었다. 심지어는 닥 리버스를 제외하면 3:1에서 역전패를 1번 넘게 당한 감독조차 없다.[21]

앞선 2015년의 역전패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리즈 역시 리버스에게는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시리즈가 뒤집히는 과정에서 클리퍼스는 팀플레이가 거의 없이 개인 기량에만 의존하다시피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리버스의 전술적인 대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 동안 명장으로 알려졌던 리버스의 전술적 역량 자체가 크게 의심받고 있다.게다가 그 리버스를 보좌하던 코치가 르브론 갈아넣기 외에 대책이 없기로 유명했던 터란 루였으니...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디안드레 조던의 화려한 라인업을 이끌고도 컨퍼런스 파이널조차 못 갔던 과거의 실적 역시 선수들이 아닌 리버스의 능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결국 2020년 9월 28일에 클리퍼스에서 해고되었다.[22] 레이커스 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아니 레이커스보다 앞선다는 평들도 많았던 클리퍼스가 3:1의 리드를 날려버리고 2라운드에서 충격의 탈락을 했으니... 게다가 하필이면 경질 전날에 본인이 출연한 넷플릭스의 '스포츠에서 성공한 감독들' 다큐가 공개되어 NBA 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훗날, 본인은 시리즈를 제대로 날린 것이 2020년 한 번 뿐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은 그래도 선전해서 맞는 말이지만, 사실 2015년은 휴스턴은 2위임에도 클리퍼스보다 저평가를 받은 팀이었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감독의 전술에도 문제가 있던 팀이었다. 클리퍼스는 4차전까지는 휴스턴 상대로 경기력 면에서 압살했는데, 홈에서 열린 6차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호러쇼를 시전하며 대역전패를 당한 것은 분명 닥 리버스의 잘못이 맞다.#

하지만 해임되자마자 필라델피아, 뉴올리언스 등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선수단 친화력과 라커룸 장악능력은 예전부터 인정받는 인물이라 전술적인 역량 부족을 노출했음에도 여전히 감독으로서의 인기는 많은 것으로 보인다.

2.2.4.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편집]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감독직에서 해임된 지 3일만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5년 계약에 합의하면서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21년 3월 15일을 기준으로 27승 12패를 기록하며 동부 컨퍼런스 1위에 올라있다. 조엘 엠비드가 첫 MVP 수상이 기대될 정도의 절정의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23] 지난 시즌보다 한층 공격이 원활해지며[24] 우승 후보로 거듭난 것이다.

그간 임기응변이 아쉽다는 측면을 들었다는 리버스였기에, 엠비드 부상 기간 동안 얼마나 버티느냐에 따라 지도력 평가가 다소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예년과 달리 엠비드의 부상 기간에도 5할 이상의 승률을 올리면서 동부 컨퍼런스 1위를 꾸준히 지켜냈으며, 결국 20년만의 필라델피아 정규시즌 1위를 안겨줬다. 본인도 7년만의 정규시즌 1위는 덤. 이제 남은 것은 고질적인 약점으로 평가받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징크스를 깰 수 있느냐다.

2021년 6월 16일,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2라운드 5차전에서 26점차까지 앞서고 있던 경기를 뒤집히면서 또다시 자신의 자질(?)을 증명해 냈다. 시리즈 전적이 2대2로 동률인 상황에 벌어진 홈경기였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야 했지만 4쿼터를 무려 19-40으로 뒤지면서 결국 106:109로 패배했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벤치 운영,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자유투가 2라운드 들어 더욱 나빠진 벤 시몬스에 대한 핵작전 대처 미흡 등이 겹치면서 역사에 남을 역전패를 당한 것.

하지만 탈락 위기로 몰렸던 애틀랜타 원정 6차전에서는 104:99 역전승을 거두면서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그나마 이번엔 4쿼터에 공격 기여도가 형편 없던 벤 시몬스를 아예 로테이션에서 빼고 벤치 자원인 타이리스 맥시에게 기회를 주는 등 지난 경기보다는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대망의 7차전에서 홈경기임에도 96:103으로 애틀랜타에 패배하며 또다시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놀랍지도 않다. 시리즈 내내 상대팀 감독인 네이트 맥밀란에게 수싸움에서 밀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만 4연패를 기록하며 NBA 역대 기록 타이(다른 한 명은 릭 아델만 前 감독)를 작성했다.(플레이오프 7차전 통산 전적 6승 9패)

반면 리버스의 전 소속팀이었던 클리퍼스의 신임 감독 터란 루는 부임 첫 시즌에 에이스의 이탈이라는 악재[25]를 뚫고 클리퍼스를 51년간의 구단 역사상 최초로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끌었다. 특히나 루 감독의 경우 리버스 재임 시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유연한 로테이션과 전술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덕분에 더욱 더 비교당하고 있는 처지다.

경기 종료 직후 있었던 인터뷰에서의 실언이 문제가 되어 이후 벤 시몬스와의 관계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몬스가 우승팀의 주전 포인트가드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Can Ben Simmons be the starting PG on a championship team?)에 잘 모르겠다(I don’t know the answer to that.)고 한 대답이 문제가 되었던 것.[26][27] 21-22 시즌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몬스의 출장거부 사태에는 리버스 역시 일부 책임이 있다는 평가. 이후 프리시즌 중에는 팀 훈련에 합류한 시몬스에게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나가라면서 쫓아내는 사건도 있었다.

2021-22 시즌 초반에는 다시 팀을 동부 1위로 끌어올리면서 NBA 역사상 10번째로 1000승을 달성한 감독이 되었다. 벤 시몬스의 출장 거부, 토바이어스 해리스와 조엘 엠비드의 부상결장 등 여러 악재에도 팀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 최종 전적은 정규시즌 공동 2위이지만, 디비전 리더 결정 과정에서 밀워키는 디비전 리더가 확정되었고, 애틀랜틱 디비전 리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 타이브레이커를 적용했는데, 상대전적은 2승 2패 동률이나, 디비전 전적에서 보스턴에 밀려나서 4번 시드를 확정지어 토론토와 상대하게 되었다. 물론, 전년도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활약(?) 때문인지 정규시즌 전용 감독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1라운드에서는 토론토와 상대한다. 첫 3경기를 모두 쓸어담아서 확률 100%를 선점, 4차전은 내줬지만 그래도 5차전이 홈이라 가볍게 올라가나 싶었으나, 5차전마저 패배했다. 설상가상 득점왕 엠비드가 손가락 부상에도 출전을 강행했지만, 경기력이 저하되면서 위기에 빠졌다.

그래도 6차전에서 승리, 토론토를 상대로 시리즈 4-2 승리를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지만 승부를 길게 끈 영향으로 이어진 마이애미 히트와의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6차전 패배를 당하였다.

2022-23 시즌은 엠비드-하든 콤비와 함께 54승 28패로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하였다. 팀은 동부 3강 소리를 들으면서 올해도 정규리그만큼은 좋은 성과를 만들었다. 1라운드 상대로 브루클린 네츠를 만나 4:0 스윕을 만들어내며 동서부를 통틀어 제일 먼저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2라운드 상대는 현 시점 동부 최고 시드인 보스턴 셀틱스. 엠비드가 부상당하며 2차전까지 결장할 수 있는 악재가 있지만, 공격적인 빅맨이 없는 보스턴을 상대로 아주 열세에 놓여있지는 않다는게 중론인만큼, 닥 리버스의 전술 역량이 중요해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2라운드의 닥동님은.....

결국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7차전 승부 끝에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7차전 패배 시 감독 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기에 경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원정 5차전을 이겨서 3승2패 고지를 선점하고도 중요했던 홈 6차전을 어이없게 역전패당하고, 7차전은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등 탈락하는 과정 역시 좋지 않아 현지 팬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현지시간 5월 16일 감독직에서 경질되며 닥 리버스와 필라델피아의 동행은 새드 엔딩으로 끝나게 되었다. 한편 크리스 폴에게 대만에 오라며 조롱한 드와이트 하워드는 리버스를 향해서도 대만에 오라고 조롱했다.

해임 이후에는 피닉스 선즈 감독직에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프랭크 보겔이 피닉스 선즈 감독직에 선임되었으며, 6월 9일 현재 감독 자리가 공석인 팀은 토론토 랩터스가 유일하지만 랩터스는 현재 리버스를 감독 후보 리스트에 올려두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어, 24시즌 연속으로 이어오던 감독 커리어가 끊기기 직전까지 몰렸다.

2.2.5. 역대 감독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시즌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1999-00
올랜도 매직
82
41
41
0.500
동부 컨퍼런스 9위
진출 실패
2000-01
82
43
39
0.524
동부 컨퍼런스 7위
1R 탈락
2001-02
82
44
38
0.537
동부 컨퍼런스 5위
2002-03
82
42
40
0.512
동부 컨퍼런스 8위
2003-04
11
1
10
0.091
중도 경질
통산
339
171
168
0.50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2004-05
보스턴 셀틱스
82
45
37
.549
동부 컨퍼런스 3위
1R 탈락
2005-06
82
33
49
.402
동부 컨퍼런스 11위
진출 실패
2006-07
82
24
58
.203
동부 컨퍼런스 15위
2007-08
82
66
16
.805
동부 컨퍼런스 1위
파이널 우승
2008-09
82
62
20
.756
동부 컨퍼런스 2위
2R 탈락
2009-10
82
50
32
.610
동부 컨퍼런스 4위
파이널 패배
2010-11
82
56
26
.683
동부 컨퍼런스 3위
2R 탈락
2011-12
66
39
27
.591
동부 컨퍼런스 4위
CF 탈락
2012-13
81
41
40
.506
동부 컨퍼런스 7위
1R 탈락
통산
721
416
305
0.57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2013-14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82
57
25
.695
서부 컨퍼런스 3위
2R 탈락
2014-15
82
56
26
.683
서부 컨퍼런스 3위
2015-16
82
53
29
.646
서부 컨퍼런스 4위
1R 탈락
2016-17
82
51
31
.622
서부 컨퍼런스 4위
2017-18
82
42
40
.512
서부 컨퍼런스 10위
진출 실패
2018-19
82
48
34
.585
서부 컨퍼런스 8위
1R 탈락
2019-20
72
49
23
.681
서부 컨퍼런스 2위
2R 탈락
통산
564
356
208
0.63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2020-21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72
49
23
.681
동부 컨퍼런스 1위
2R 탈락
2021-22
82
51
31
.622
동부 컨퍼런스 4위
2022-23
82
54
28
.659
동부 컨퍼런스 3위
통산
236
154
82
.649

총계
1860
1097
763
.590
1회 우승


3. 감독 스타일[편집]


선수 은퇴 후 3년만에 감독이 된 상당히 빠른 승진의 케이스이며, 선수 시절 마지막 팀이 스퍼스였기 때문에 일단 그렉 포포비치 코칭 트리로 분류된다.

감독으로써 리버스는 공격 전술을 만드는데 능하며 특히 다운 스크린을 활용한 플렉스 오펜스를 통해 물 흐르듯 돌아가며 한 포제션[28]에 쉴새 없이 공격작업을 할 수 있는 유기적인 모션 오펜스를 잘 만든다.

플렉스 오펜스는 센터와 파워 포워드가 하이포스트로 나와서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베이스라인에 생긴 뒷공간을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가 지속적으로 컷 인해 들어간 뒤 먼저 들어간 윙맨 한명이 반대쪽 윙맨의 컷 인을 스크린으로 지원하는 다운 스크린을 서준다. 이때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가진 빅맨은 다운 스크린 성공시 윙맨에 패스해 골밑 찬스를 만들거나 수비 로테이션 붕괴를 노리는 전술로 팀 전원이 활동량과 중장거리 슛 레인지를 가진 팀이라면 코트를 넓게 빙빙 돌면서 지속적으로 찬스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끝없는 풍차돌리기로 찬스를 만드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한 설명

다만, 수비 전술 짜는건 좋지 않다는 평. 공격 전술을 짤때와는 달리 수비 전술은 선수간 잦은 포지션 전환과 로테이션이 독이 될때가 많은데 이 습관때문인지 셀틱스때를 제외하면 항상 수비력은 잘해야 평균수준의 팀이 되었다. 보스턴 시절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었던 톰 티보도( 뉴욕 닉스 감독)같은 수비코치와 케빈 가넷같은 베테랑 앵커의 지원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승부처의 수싸움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밀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팀이 이기고있다 리드를 지키지 못한채 패배하거나 접전상황에서 달리 뾰족한수가 없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때문. 클리퍼스에서 해임 이후, 폴 조지가 2020년 2R 덴버전에서 전술 변화를 주지 않고 같은 전술로만 경기했다가 패배로 이어진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리빌딩을 상당히 싫어한다. 셀틱스와 결별한 이유도 셀틱스가 공개적으로 리빌딩을 하겠다고 천명해서이며, 클리퍼스에 와서 크리스 폴의 휴스턴 행으로 인해 랍시티 시대가 완전히 끝났음에도, 과감히 블레이크 그리핀을 트레이드 시켜 픽을 여러장 가져오는 대신 즉시 전력인 에이브리 브래들리와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데려올정도. 이번 시즌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준 루 윌리엄스를 리빌딩을 위해 픽을 가지고 컨텐딩 팀과 트레이드 할 수 있음에도 재계약한 무브를 보면서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감독의 능력을 보여준 때는 오히려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지도할 때가 많았다. 올랜도 감독 때는 리빌딩에 가까운 팀을 맡아 예상 이상의 순위를 거뒀으며 8번 시드로 올라간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1번 시드 디트로이트를 탈락 위기에 몰아넣었을 정도로 선전했다. 셀틱스 시절에는 빅3(가넷, 피어스 앨런)의 기량저하를 겪으면서도 르브론, 웨이드가 이끌던 최강팀 마이애미를 상대로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는 선전을 보여줬으며 클리퍼스 시절에는 폴, 그리핀, 디조던이 모두 떠난 리빌딩 수준의 선수단을 데리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최강팀으로 꼽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31점차를 뒤집는 역전승을 거두며 6차전까지 끌고가는 저력을 보였다.[29]

반면 전력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을 경우에는 예상치 못하게 고전하는 경우가 있었다. 2015년 플레이오프에서 휴스턴,[30] 2020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덴버를 상대로 3:1의 리드를 잡았다가 3연패를 당하며 시리즈를 내어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2008년에도 우승을 해서 망정이지, 플레이오프에서 여러번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몇수 아래 팀인 애틀란타 호크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1,2라운드에서 7차전을 허용한 게 대표적. 그나마 캐브스는 리그 최고 레벨의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가 있다곤 하나, 당시 호크스엔 슈퍼스타급도 없던[31] 37승 팀이었다. 당시 양상을 보면 1,2라운드에서 레이 알렌이 부진(1라운드 16.1점-야투 42%, 2라운드 9.3점-32%)하고[32] 피어스가 2라운드에서 야투가 40.4%에 그치는 등 빅3 중 가넷만 빼고 평상시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자 위기, 세명이 전부 위력을 발휘했던 동부 파이널과 파이널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것. 게다가 파이널에서도 2차전에 20점차 이상 리드를 벌려놓고 막판에 다 까먹어 역전할 뻔해 벤치에서 놀던 주전들을 불러들이는 등 아쉬운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즉, 리버스는 주어진 여건이 불리할 때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지만, 우승권팀을 맡을때는 오히려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인 적이 많았다. 셀틱스도 워낙 압도적인 재능이 모인 팀이라 우승했지만 위에 언급된 가넷의 분전이나 빅3의 활약이 없었으면 허무하게 탈락했을 수도 있고, 랍시티에서 여러 번 경험한 실패만 봐도 그렇다. 단적으로 말해 추격은 잘하지만, 추격을 뿌리치는 건 잘 못하는 감독.

2020-21 시즌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20년 만에 동부 컨퍼런스 1위로 이끌었지만[33] 그의 고질적 약점인 플레이오프 2라운드 징크스를 털어내지 못했는데, 정작 그그컨의 대명사였던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리버스가 떠나자마자 51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34] 그리고 2021-22시즌에는 다시 한 번 동부 1위를 찍었지만 다시금 2라운드에서 탈락, 고질적인 약점인 2라운드 징크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22-23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는 3-2로 유리한 위치에 선점해놓고는 홈 6차전에서 역전당하더니, 7차전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 3쿼터 10득점으로 멸망하며 패배해 또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4. 가족 관계[편집]


그의 가족 관계를 보면 대다수가 농구인과 얽힌 집안이다. 1970년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초창기 주전이던 짐 브루어의 조카이며, 1986년 크리스틴 캠피언과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뒀지만 2019년에 이혼했다.

특히 장남 제레미아는 1987년생으로 조지타운 대학교와 인디애나 대학교를 전전한 후 2011년에 세르비아 농구팀 KK 메가 바스켓에 입단했지만 발목 부상으로 많이 뛰지 못했다. 2012년에는 보스턴 셀틱스 산하 NBA G 리그 팀 메인 레드클로스에서 뛰었다가 2013년에 그만뒀다.

차남 오스틴은 듀크대를 1년간 다닌 후 2012년 드래프트 전체 10위로 뉴올리언스 호네츠에 지명된 이래 여러 팀을 전전하여 형보다 나은 커리어를 보여줬으며, 특히 2015년부터 3년간 아버지가 지휘하는 클리퍼스에서 뛰었다. 고명딸 칼리(1989년생)는 플로리다 대학교 시절 배구선수로 뛴 경력이 있으며, 한때 폴 조지와 사귀다가 불미스러운 이유로 헤어졌고[35] 2019년 델 커리의 차남 세스 커리와 결혼하여 델 커리와 사돈 관계가 되었다.


5. 여담[편집]


  • 03년도 1라운드, 15년도 2라운드, 20년도 2라운드에 걸쳐 3승 1패 상황에서의 리버스 스윕을 세 번이나 겪은 유일한 감독이 되었다. 보통 3:1이면 거의 이긴 시리즈로 여겨진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불명예인 셈.[36] 때문에 '닥 리버스 스윕'이라는 조롱을 당하는데, 인터뷰에서 '내가 정말로 리버스 스윕 당한 것은 따져봐도 1번 뿐이다.'라고 반박하는 걸 보면 본인도 이를 꽤 의식하고 있는 듯 하다.[37][38]

  • 이렇게 미친 듯이 그그컨이나 하는 감독이라 현재는 '보스턴 빅3 덕분에 그나마 우승해본 감독', '빅3를 데리고도 1번 밖에 우승 못 한 감독'으로 평가가 수직하락해버렸다. 필라델피아에서 경질된 소식이 방송될 때 한 때 그의 밑에서 뛰었던 JJ 레딕이 쉴드를 칠려다가 못 쳤을 정도. 닥 리버스의 평가가 더 처참해진 것은 그나마 선수들을 잘 다독인다 등등의 덕장 이미지가 벤 시몬스, 제임스 하든 등을 연이어 저격하면서 박살났기 때문이다. 시몬스의 경우에는 본인의 말도 안 될 정도의 게으름이 원인이기는 했지만 2라운드 탈락 이후 엠비드와 함께 시리즈 패배의 책임을 한 선수에게 전부 뒤집어씌우는 인터뷰를 하면서 완전히 시몬스의 멘탈을 박살내버렸고 이는 필라델피아의 프로세스 붕괴로 이어졌다. 필라델피아에서 경질된 이후에는 하든까지 저격하는 등 점점 추해지고 있는 중.

  • 2020년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인 <플레이북: 게임의 규칙>에 출연했다.

  • 현재 애틀랜타 호크스의 프랜차이즈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보유 중이다. 23-24 시즌 시작 전에 3위인 트레이 영과의 격차는 약 600개 정도로, 조만간 따라잡힐 전망이다.

[1] 위스콘신 주 시보이건 폴스에서 욕조/세면대 제조사 콜러 사 노동자였던 레이먼드 마저러스(1924~1987) 슬하의 1남 2녀 중 하나로 태어나 마케트 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및 동 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했고, 대학 입학 이후인 1967년부터 1년 간 농구부에서 뛰다가 졸업 시까지 조교로 활동했다. 조교 생활 내내 세인트 세바스티안 초등학교 및 마케트대 부속고교 농구부 등지에서 알바를 뛰다가 1970년 졸업 후 1971년부터 모교 농구부의 코치로 들어와 12년 동안 알 맥과이어와 행크 레이몬즈 감독을 차례로 보좌하며 1977년 NCAA 전국대회 우승에 공헌했고, 1983년부터 레이몬즈의 후임으로 감독직에 올랐다가 1986년 NBA 팀 밀워키 벅스 코치로 이직하여 1시즌 간 돈 넬슨 감독 곁에서 일했다. 1987년 볼 주립대학교 감독으로 대학 무대에 돌아와 1989년부터 15년간 유타 대학교 농구부를 지휘하며 1998년 NCAA 전국대회 결승 진출을 하는 데 기여했으며 1994 FIBA 세계농구선수권대회 때 드림팀 2기 코치로 일하기도 했다. 유타대 재직 시절에 조시 그랜트, 키스 밴혼, 마젠(马健), 안드레 밀러, 알렉스 젠센, 앤드류 보것 등을 배출했으나 2000-01 시즌 도중 가슴 통증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딕 훈세커 코치에게 지휘를 맡겼고, 2001-02 시즌을 앞두고 컴백했으나 청각장애인인 제자 랜스 앨러드에게 폭언을 한 혐의 때문에 기소됐다가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으며, 그 타격인지 앨러드는 2003년 웨버 주립대학교로 편입했다. 임기 동안 7차례 심혈관 우회 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진 그는 2004년 1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2004-05 시즌 이후 ESPN에서 대학농구 중계 해설위원을 맡기 시작하다 2004년 12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감독으로 선임되는 듯했으나, 어머니의 부탁에 따라 닷새 만에 물러나 해설에만 전념했다. 2007년 세인트루이스 대학교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해 2011-12시즌에 농구부를 12년만에 NCAA 전국대회로 진출하게끔 했으나, 2012년 8월에 건강 악화로 짐 크루즈 코치에게 감독직을 맡기고 11월에 은퇴했다. 한 달여 후인 2012년 12월 1일 로스앤젤레스 근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심부전증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사후 2019년 미국 대학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 NFL 팀 그린베이 패커스의 레전드 라인배커 레이 니츠케의 모교다.[3] 당시 소련 대표팀 선수진에는 신인이던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있었다.[4] 동부 1번 시드였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부팀들의 전력이 압도적이었던 탓.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감독을 릭 칼라일에서 래리 브라운으로 바꾸면서 우승을 차지했다.[5]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5전 3선승제에서 7전 4선승제로 바뀐 것. 전년도의 제도가 한 시즌만 더 유지되었더라면 올랜도가 먼저 3승을 거둔 상태에서 시리즈가 끝났을 상황이었다.[6] 당시 기준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빅3 결성에도 첫해 우승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서로 손발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빅3의 보스턴은 결성 첫 시즌에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거둔다.[7] 시즌 후반에 팀의 중심인 가넷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 당했던 탓이 크다.[8] 단장(General Manager)보다 위에 있는 직책. 즉 리버스는 선수 구성이나 구단운영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 받고 옮겨왔던 것이다. 리버스의 부임으로 클리퍼스의 단장은 다른 구단의 단장들과 달리 실권이 없이 리버스의 결정을 단순 처리하는 실무직책이 되어 버렸다.[9] 밀어줬다는 건 분명히 오해다. 리버스는 뉴올리언즈 시절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평균 23분, 19.4분, 22분(15시즌 전반) 뛰었으나, 클리퍼스로 온 이후에는 19.3분으로 오히려 출장시간이 줄었다. 그가 플옵에서 2라운드에 중용된 것은 주전 가드 크리스 폴의 부상으로 가드진에 큰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폴이 부상당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규시즌보다 출장시간이 줄었다. 실제로 그가 포지션 경쟁을 하는 선수들이나 그의 실력을 보면 밀어줬다고 보기 힘들다. 그는 딱 백업가드 정도의 실력이며, 백업가드 정도의 출장시간을 받고, 백업가드 정도의 활약을 했다. (2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전까지). 이런 오해가 생긴 건 오스틴 본인의 날뛰기 활약 탓이 큰데, 이렇게 평범한 백업 가드 중에는 꾸준히 평범한 활약을 하는 선수와 확 잘하다 확 못하는 선수들로 갈린다.(꾸준히 잘하면 후보일 이유가 없으니) 근데 오스틴은 기복이 좀 심한 편인데 감독 아들이라 실력에 비해 주목도가 엄청 높아 잘할때 못할때마다 팬들 사이에서 효스틴 (...) 불효자 드립이 난무하는 것이다. 현재는 기복이 예전보단 많이 줄었다.[10] 샌안토니오는 6번 시드임에도 골든스테이트와 함께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으로 꼽혔고, 승차도 클리퍼스와 단 1승 밖에 차이나지 않았을 정도로 대등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승률이 더 낮았던 포틀랜드가 디비전 리더라는 이유로 4번 시드를 받았고, 샌안토니오가 6번시드까지 밀린 것. 샌안토니오는 이론상 2위도 가능했는데, 최종전 경기에서 디비전 꼴찌임에도 막차를 노렸던 뉴올리언스에 패배하는 바람에 6위로 밀린 것이었다. 포틀랜드는 당시 디비전 1위팀이었고 당시 규정상 디비전 1위팀에게는 아무리 성적이 떨어져도 4번시드가 보장되었다.참고로, 포틀랜드는 5번 멤피스 상대로 별 활약조차 못하고 광탈했다.[11] 정규시즌 성적은 양팀 모두 56승 26패, 68.3%로 동률이었다. 다만 휴스턴이 소속 디비전 1위였던 탓에 상위 시드를 배정 받은 것. 당시에는 규정 상 디비전 1위 팀들에게 어드밴티지를 주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12] 조쉬 스미스, 제이슨 테리, 코리 브루어. 삭발을 하고 헤드밴드를 낀 모습이 골무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13] 다만 이 기록은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후 2020년에 또다시 역전패를 당하는 와중에 뒤늦게 주목받게 된다.[14] 사실 2003년의 경우에도 일반적인 1번 시드 vs 8번 시드의 대결보다는 전력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긴 했다. 당시 서부 1번시드였던 샌안토니오의 승률은 73.2%로, 디트로이트의 승률(61.0%)는 서부로 치자면 5위에 불과한 정도였다. 내로라하는 강팀들이 서부에 몰려있었기 때문이다.(NBA 특유의 고질적인 서고동저) 당시 서부 8번시드 피닉스의 승률은 53.7%, 샌안토니오와의 승차는 15경기였던 반면 올랜도의 승률은 51%, 디트로이트와의 승차는 8경기였다. 리버스의 올랜도가 선전했던 건 분명하지만 나름 '비벼볼' 여지는 있었던 것.[15] 역전의 중심에 있었던 골무 3인방만 살펴봐도 스미스와 테리는 이미 벤치 멤버로 급이 낮아진 선수들이고 브루어는 전형적인 저니맨이었다. 이들과 같이 활약했던 클린트 카펠라(신인)나 테런스 존스(2년차) 같은 선수들은 년차조차 얼마되지 않은 풋내기들이었다. 그리고 감독이었던 맥헤일은 당시에 전술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16] 그리고 탐슨이 소속된 골든스테이트는 클리퍼스를 상대로 대역전을 거둔 휴스턴을 4승 1패로 무난하게 밟고 올라가 파이널에서 우승했다.[17] 역대 NBA 플레이오프 사상 최대 점수차이 역전승 기록을 세웠다.[18] 현역 감독은 선수 영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책이다. 애초에 리버스가 그렇게 발언하기 전에 먼저 조심했어야 했다.[19] 리버스가 탬퍼링 혐의를 받은 것은 그가 카와이 레너드 영입 관련 이해 당사자였고, 해당 발언이 오프시즌 협상 기간에 미칠 영향이 확실히 있기 때문이었다. NBA에서는 오프시즌 협상 기간 전에 이뤄지는 어떤 협상도 금지하고 있으며, 이는 선수들끼리 "너 우리 팀 와라" 혹은 선수나 감독이 "~가 우리 팀 왔으면 좋겠다"는 공개적인 발언도 포함된다. 물론 리버스는 직접적으로 "카와이 레너드를 영입하고 싶다"고 하진 않았지만, 저 발언 자체가 '레너드가 너무 좋은 선수니 영입해주시오,' 혹은 '우리가 널 이만큼 높이 평가하니 와주시오'란 의미라고 자연스럽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선수 영입 시장에 나온 감독이 자유계약 신분이 될 예정인 선수에게 저런 칭찬을 했는데 누가 순진하게 "아 리버스는 개인적으로 레너드의 팬이구나"라고 받아들이겠는가? 마치 점심 시간이 다가왔는데, "아 난 짜장면이 너무 좋아"라고 하면 당연히 주변사람들은 "쟤가 짜장면이 먹고 싶은거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20] 오클라호마시티 소속이었다가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 다닐로 갈리나리 등과 트레이드되어 클리퍼스로 이적. 이 트레이드는 레너드가 클리퍼스에 계약의 선결 조건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NBA에서 3:1을 뒤집힌 경우는 2020년 클리퍼스 탈락 현재 총 13번이며 그 중 무려 3번이 리버스의 팀이다...[22] 덴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이비차 주바츠를 중용하라는 분석팀의 조언을 무시하고 수비가 엉망인 몬트레즈 해럴의 기용을 강행하다 패배한 탓에 구단주 스티브 발머의 신뢰를 잃었다고 한다. 리버스를 감싸는 프런트의 반대에도 발머 본인의 의사로 해임을 강행했다고. 하지만 일방적인 해임보다는 상호 결별에 가까운 듯하다. 발머와의 통화에서 리버스 역시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하니...[23] 다만 3월 13일을 기준으로 착지를 잘못하면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2-3주 정도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부상 당시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까지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진단 결과 염좌 판정과 멍이 들었다는 소견만 나왔다.[24] 대럴 모리 사장 부임도 큰 계기가 됐다. 지난 시즌 필라델피아의 플레이오프 당시 처참한 경기력을 생각해보면...[25] 카와이 레너드가 2라운드 4차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으로 이후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모두 결장했다.[26] 나중에 리버스 본인도 이 발언을 후회한다고 인터뷰했다. 그런다고 시몬스의 마음이 돌아올리는 없었지만...[27] 사실 해당 문장은 답변 전체 중 시작부분에 불과하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에서는 자신은 여전히 시몬스를 신뢰하고 있다고 덧붙이긴 했다. 하지만 첫 문장의 충격이 너무 강했던지라 그대로 묻혀버렸다.[28] possession. 팀별로 한 경기에 얼마나 많은 공격권을 갖는지를 나타내는 지표.[29] 스윕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는 시리즈가 6차전의 혈전 양상으로 이어진 것이 케빈 듀란트의 종아리 부상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종아리 부상은 아킬레스건 파열로 이어지고...[30] 이때 3위였던 클리퍼스는 6위임에도 우승후보로 평가받던 샌안토니오를 4:3으로 극적으로 잡았고, 2위 휴스턴보다 하위 순위였던 클리퍼스의 전력을 더 좋게 평가했다.[31] 에이스 조 존슨은 훌륭한 선수였지만 그를 두고 리그를 주름잡는 선수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32] 캐브스 시리즈에선 한자리수 득점이 세번에 무득점 경기까지 나왔다. 참고로 이 경기(1차전)에서는 피어스까지 4점으로 부진해 가넷이 평상시 하던 수비에 공격에서까지 르브론 제임스와 쇼다운을 펼치며 위닝샷까지 넣어 캐리했다.[33] 리버스 개인 감독 커리어를 통틀어도 특정팀이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것은 2007-08시즌 보스턴 셀틱스이후 13년 만이다.[34] 그 덕에 그동안 바지감독 취급을 받아오던 터란 루는 플레이오프에서의 유연한 전략으로 클리퍼스를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끌며 반짝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뒤로는 리버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수준으로 회귀하긴 했지만...[35] 폴 조지가 스트리퍼와 몰래 관계를 가졌다가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헤어졌다.[36] 3승1패를 날려먹은 사례는 NBA 역사상 13번 있었다.[37] 사실 03년도 1라운드는 리버스 입장에선 욕먹기 억울할만한 시리즈이긴 했다. 당시 리버스가 이끌던 올랜도 매직트레이시 맥그레디 원맨팀이었고, 스윕을 당해도 딱히 이상할 건 없는 8번 시드임에도 동부 1위였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간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였기 때문.[38] 리버스의 말은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게 역전당한 적은 한번 뿐이다"란 의미로 보이는데, 앞 각주에 언급되었듯이 42승 8번 시드로 50승 1번 시드팀인 디트로이트에게 리버스 스윕당한 건 누구도 졌다고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대분전이 맞고, 사실 이걸 갖고 리버스를 비판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두번의 케이스를 보면 2015년의 경우 휴스턴이 2번시드, 클리퍼스가 3번 시드이긴 했지만 두 팀의 승률은 56승으로 동률이었고, 2020년에 덴버가 46승으로 3번, 클리퍼스가 49승으로 2번 시드였다. 즉 한번은 전력이 동급인 팀에게 3대1로 앞서다 역전, 또 한번은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게 3대1로 앞서다 역전당한 것이다. 이런 경우가 한번만 있어도 감독으로서 불명예인 판에 두번이나 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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