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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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서(宋書)

[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width=33%> 1·2·3권 「무제기(武帝紀)」 ||<-2><width=33%> 4권 「소제기(少帝紀)」 ||<width=33%> 5권 「문제기(文帝紀)」 ||
||<rowbgcolor=#fff,#191919> 유유(劉裕) ||<-2> 유의부 || 유의륭 ||
||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2>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8권 「명제기(明帝紀)」 ||
||<rowbgcolor=#fff,#191919> 유준(劉駿) ||<-2> 유자업 || 유욱(劉彧) ||
||<-2><width=50%>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2><width=50%> 10권 「순제기(順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유욱(劉昱) ||<-2> 유준(劉準) ||
||<-4><width=1000> ||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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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3f51ba><width=33%> 1·2·3권 「무제기(武帝紀)」 ||<-2><width=33%> 4권 「소제기(少帝紀)」 ||<width=33%> 5권 「문제기(文帝紀)」 ||
||<rowbgcolor=#fff,#191919> 유유(劉裕) ||<-2> 유의부 || 유의륭 ||
|| 6권 「효무제기(孝武帝紀)」 ||<-2> 7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8권 「명제기(明帝紀)」 ||
||<rowbgcolor=#fff,#191919> 유준(劉駿) ||<-2> 유자업 || 유욱(劉彧) ||
||<-2><width=50%>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2><width=50%> 10권 「순제기(順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유욱(劉昱) ||<-2> 유준(劉準) ||
||<-4><width=1000> ||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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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1권 「후비전(后妃傳)」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42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43권 「서선지등전(徐羨之等傳)」
44권 「사회전(謝晦傳)」
유목지 · 왕홍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사회
45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46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47권 「유회숙등전(劉懷肅等傳)」
왕진악 · 단소 · 상정 · 유회신 · 유수
조륜지 · 왕의 · 장소
유회숙 · 맹회옥 ,맹용부, · 유경선 · 단지
48권 「주령석등전(朱齡石等傳)」
49권 「손처등전(孫處等傳)」
50권 「호번등전(胡藩等傳)」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손처 · 괴은 · 유종 · 우구진
호번 · 유강조 · 원호지 · 장흥세
51권 「종실전(宗室傳)」
유도련 · 유도규 · 유준고
52권 「유열등전(庾悅等傳)」
53권 「장무도등전(張茂度等傳)」
54권 「공계공등전(孔季恭等傳)」
유열 · 왕탄 · 사경인(1) · 원담 · 저숙도(2)
장무도(3) ,장영, · 유등지 ,유병지, · 사방명 · 강이
공계공 · 양현보 · 심담경
55권 「장도등전(臧燾等傳)」
56권 「사첨등전(謝瞻等傳)」
57권 「채곽전(蔡廓傳)」
장도 · 서광 · 부륭
사첨 · 공림지
채곽
58권 「왕혜등전(王惠等傳)」
59권 「은순등전(殷淳 等傳)」
60권 「범태등전(范泰等傳)」
왕혜 · 사홍미 · 왕구
은순 · 장창 · 하연 · 강지연
범태 · 왕준지 · 왕소지 · 순백자
61권 「무삼왕전(武三王傳)」
유의진 · 유의공 · 유의계
62권 「양흔등전(羊欣等傳)」
63권 「왕화등전(王華等傳)」
64권 「정선지등전(鄭鮮之等傳)」
양흔 · 장부 · 왕미
왕화 · 왕담수 · 은경인 · 심연지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65권 「길한등전(吉翰等傳)」
66권 「왕경홍등전(王敬弘等傳)」
67권 「사령운전(謝靈運傳)」
길한 · 유도산 · 두기 · 신념
왕경홍(4) · 하상지
사령운
68권 「무이왕전(武二王傳)」
유의강 · 유의선
69권 「유담등전(劉湛等傳)」
70권 「원숙전(袁淑傳)」
71권 「서담지등전(徐湛之等傳)」
유담 · 범엽
원숙
서담지 · 강담 · 왕승작
72권 「문구왕전(文九王傳)」
유삭 · 유굉 · 유창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약
73권 「안연지전(顏延之傳)」
74권 「장질등전(臧質等傳)」
75권 「왕승달등전(王僧達等傳)」
안연지
장질 · 노상 · 심유지
왕승달 · 안준
76권 「주수지등전(朱脩之等傳)」
77권 「유원경등전(柳元景等傳)」
78권 「소사화등전(蕭思話等傳)」
주수지 · 종각 · 왕현모
유원경 · 안사백 · 심경지
소사화 · 유연손
79권 「문오왕전(文五王傳)」
유탄 · 유위 · 유혼 · 유휴무 · 유휴범
80권 「효무십사왕전(孝武十四王傳)」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81권 「유수지등전(劉秀之等傳)」
82권 「주랑등전(周朗等傳)」
83권 「종월등전(宗越等傳)」
유수지 · 고침 · 고기지
주랑 · 심회문
종월 · 오희 · 황회
84권 「등완등전(鄧琬等傳)」
85권 「사장등전(謝莊等傳)」
86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등완 · 원의 · 공기(孔覬)
사장 · 왕경문(5)
은효조 · 유면
87권 「소혜개등전(蕭惠開等傳)」
88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89권 「원찬전(袁粲傳)」
소혜개 · 은염
설안도 · 심문수 · 최도고
원찬
90권 「명사왕전(明四王傳)」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91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劉瑜) · 가은 · 곽세도 · 자원평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민 · 손극 · 하자평
92권 「양리전(良吏傳)」
왕진지 · 두혜도 · 서활 · 육휘 · 완장지 · 강병지 · 왕흠지
93권 「은일전(隱逸傳)」
대옹 · 종병 · 주속지 · 왕홍지 · 완만영 · 공순지 · 유응지 · 공기(龚祈) · 적법사 · 도잠 · 종욱지 · 심도건 · 곽희림 · 뇌차종 · 주백년 · 왕소 · 관강지
94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완전부 · 왕도륭 · 양운장
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임읍국 · 부남국 · 가라타국 · 가라단국 · 반황국 · 반달국 · 사파파달국 · 사자국 · 가비려국 · 고구려 · 백제국 · 왜국 · 형옹주만 · 예주만
98권 「저호전(氐胡傳)」
99권 「이흉전(二凶傳)」
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 본기(本紀) ]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11·12권 「후비전(后妃傳)」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취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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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유유(裕) · 유의부
유의륭 · 유준(駿) · 유자업
유욱(彧) · 유욱(昱) · 유준(準)
4권 「제본기상(齊本紀上)」
5권 「제본기하(齊本紀下)」
소도성 · 소색
소소업 · 소소문 · 소란 · 소보권 · 소보융
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11·12권 「후비전(后妃傳)」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취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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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련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소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 유의강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순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외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융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노실달 · 소마가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檀道濟
단도제


파일:단도제.jpg

작위
오흥현오등후(吳興縣五等侯) → 작당현남(作唐縣男)
→ 영수현공(永修縣公)

단(檀)
이름
도제(道濟)
생몰
? ~ 436년
출신
고평군(高平郡) 금향현(金鄕縣)
국적
진(晉) → 송(宋)
주군
송무제
송소제
송문제

1. 개요
2. 생애
2.1. 초기 생애
2.2. 유유의 거병
2.3. 전공을 세우다
2.4. 유송의 명장
2.5. 소제 폐위와 사회 토벌
2.6. 유송의 북벌
2.7. 최후
3. 사후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유송 초기의 명장으로 공을 많이 세웠으나 자신을 시기한 대신들의 모함으로 죄를 받아 처형되었다.


2. 생애[편집]



2.1. 초기 생애[편집]


고평군(高平郡) 금향현(金鄕縣) 출신으로, 단소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서 형제들이 모두 당숙인 단빙지 밑에서 자랐다. 단도제는 상중에 예의를 중시했고 형제남매들과의 우애로 칭송을 받았다.


2.2. 유유의 거병[편집]


404년, 유유가 환현을 토벌하고자 거병할 때 단도제는 단소, 단지와 함께 유유의 거병에 참가했으며, 건무장군 참군사, 정서장군 참군사를 역임했다. 또한 노산(魯山)에서 일어난 반란을 토벌해 평정하고 환진(桓振)을 사로잡아 보국장군(輔國參軍), 남양군(南陽郡) 태수로 제수되었으며, 오흥현오등후에 봉해졌다.


2.3. 전공을 세우다[편집]


410년, 노순의 봉기를 시작으로 도적들이 각지에서 봉기한다. 이때 곽기생(郭寄生)이 작당현(作唐縣)에서 무리를 모아 봉기하려고 하자, 단도제는 양무장군(揚武將軍), 천문군(天門郡) 태수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곽기생을 토벌했다. 그 뒤로 단도제는 유도규(劉道規)를 따라 환겸(桓謙), 순림(荀林) 등을 토벌하고 가는 곳마다 적을 격파했다. 서도복이 침공할 때도 단도제는 유도규의 휘하에서 활약하여 다대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단도제는 안원호군(安遠護軍), 무릉군(武陵郡) 내사로 승진했다가, 다시 태위부 참군이 되었고 중서시랑(中書侍郞)으로 임명되었으며, 영삭장군(寧朔將軍), 태위부 참군사로 전임되었다.

단도제는 여러 차례 세운 공에 따라 작당현남(作唐縣男)에 봉해지고 식읍 400호를 받았다. 단도제는 태위부 주부, 자의참군을 역임하다가 예장공세자 유의부가 정로장군이 되어 경구(京口)에 진수할 때 유의부의 사마, 임회군(臨淮郡) 태수가 되었다. 유의부가 서중랑장으로 전임되자 단도제는 다시 사마가 되었고 양국(梁國) 내사를 겸하였다가 다시 정서장군 사마가 되었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더해졌다. 415년에는 유유가 사마휴지를 토벌할 때 참가했다.

416년, 유유가 후진을 정벌할 때 단도제는 선봉이 되어 회수, 비수에서 출병했고 자신이 향하는 곳마다 동진군에 항복했다. 또한 허창으로 진군하여 후진의 영삭장군, 영천군(潁川郡) 태수인 요탄(姚坦)과 양업(楊業)을 사로잡았고, 성고(成臯)에서는 후진의 연주 자사 위화(韋華)가 항복했다. 낙양에서는 후진의 평남장군(平南將軍) 진류공(陳留公) 요광(姚洸)이 항복했다. 단도제는 4천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때 단도제의 수하 장수들은 포로들을 모두 죽이고 그 시신으로 경관을 쌓자고 건의했지만, 단도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 지금 죄인을 벌주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야한다.

단도제는 포로들을 모두 돌려보냈고 단도제의 처사에 감격한 후진의 많은 사람들이 단도제에게 귀순했다. 이후 동관으로 진군하여 요소(姚紹)를 물리쳤다. 후진이 멸망한 뒤 단도제는 정로장군, 낭야군(琅邪郡) 내사가 되었다. 유의부가 강릉에 진수할 때 단도제는 서중랑장 사마, 지절(持節),남만교위(南蠻校尉)가 되었고 다시 정로장군이 더해졌다. 뒤에 송국 시중으로 옮기고 세자중서자를 겸하였으며, 연주(兗州) 대중정(大中正)이 되었다.


2.4. 유송의 명장[편집]


420년, 유유가 동진의 마지막 황제인 공제 사마덕문으로부터 선양을 받고 제위에 오르니 이가 초대 황제인 무제이다. 단도제는 이때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전임되고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으며, 석두(石頭)에 진수했다. 또한 영수현공(永修縣公)으로 전봉되고 식읍 2000호를 받았으며, 단양윤으로 옮기고 호군장군은 그대로 받았다. 무제의 병이 위독해질 때 단도제는 반검(班劍) 20명을 받았고 무제가 승하할 때 유의부를 잘 보좌하라는 고명을 받았다. 422년, 유유가 사망하고 유의부가 즉위하니 이가 제2대 황제인 소제다. 단도제는 소제가 즉위한 뒤에 감남서연강북회남제군군사(監南徐兗江北淮南諸郡軍事), 진북장군(鎭北將軍), 남연주 자사로 전출되었다.

423년, 북위군이 동양성(東陽城)에서 청주(靑州) 자사 축기(竺夔)를 포위하여 축기가 조정에 급보를 전하자, 단도제는 사지절(使持節), 감정토제군사(監征討諸軍事)가 더해졌고 왕의와 함께 동양으로 출병하였으나 단도제가 도착하기 직전에 군영과 공성용 무기를 불태우고 달아났다. 단도제는 성 안의 식량이 다 떨어지자 곡물창고를 열어 오랫동안 쌓아둔 곡식을 내어 쌀을 만들고 북위군을 추격하려고 했으나 이미 북위군이 멀리 철수했기에 더는 추격하지 못하고 철군하여 광릉에 진수했다.


2.5. 소제 폐위와 사회 토벌[편집]


서선지가 장차 여릉왕 유의진을 폐서인할 계획을 먼저 단도제에게 알릴 때 단도제는 서선지에 동의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불가하다고 말했으나 서선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선지가 유의부를 폐위할 때 핑계를 대고 단도제를 조정으로 불러들였고 단도제가 건강에 도착할 때 서선지는 유의부를 폐위할 계획을 알렸다. 유의부의 폐위를 얼마 앞두고 단도제는 영군부로 입성하여 머물렀는데, 사회는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단도제는 잠에 빠졌기에 사회는 단도제에게 탄복하였다. 유의륭이 도착하기 직전 단도제는 조당을 수비했고, 유의륭이 즉위한 뒤 정북장군(征北將軍)으로 진호되고 산기상시가 더해졌다. 또한 무릉군공(武陵郡公)에 봉해지고 식읍 4000호를 받았으나 단도제는 작위를 사양했으며, 독청주서주회양하비낭야동완5군제군사(督靑州徐州淮陽下邳琅邪東莞五郡諸軍事)가 더해졌다.

426년, 조정에서 사회를 토벌할 때 단도제는 도언지의 후속부대로 종군했고 도언지가 은기(隱圻)로 물러날 때 단도제가 도착했다. 당시 단도제는 왕홍과 친하게 지냈는데, 사회를 토벌할 때 단도제를 파견하기로 하자 왕화는 불가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도제는 다른 사람을 따르기만 했지 그 당시에는 주모자도 아니었소. 임용하고 위로한다면 아무 염려할 일도 없을 것이오.

문제는 도언지와 단도제를 파견할 때 단도제에게 계책을 물었는데, 단도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신이 옛날 사회와 함께 북벌에 종군하며 관중에 입성할 10가지 계책 중 사회는 9가지 계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재능과 지모는 명석하여 마땅히 사회와 대적하기는 어려우나, 고군으로 승리를 거둔 적이 없고 군사적 재능은 아마 사회의 뛰어난 점이 아닐 것입니다. 소신은 사회의 지모를 다 알고 있고, 사회는 소신의 용맹함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왕명을 받들어 토벌에 나선다면 틀림없이 싸우지 않고 사로잡을 것입니다.

사회는 단도제가 서선지와 함께 처형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단도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요하여 사회의 군대는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그대로 붕괴되었다. 사회가 토벌된 뒤, 단도제는 도독강주형주강하예주서양신채진희4군제군사(都督江州荊州江夏豫州西陽新蔡晉熙四郡諸軍事),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강주 자사로 옮기고 지절과 산기상시는 예전과 같이 받았다.


2.6. 유송의 북벌[편집]


430년, 문제가 도언지를 북위 정벌에 파견할 때 도언지는 하남(河南)을 평정했으나 뒤에 다시 상실했고 금용(金墉)과 호뢰(虎牢)도 북위군에 함락당하며 활대(滑臺)까지 후퇴하게 되었다. 단도제는 도독정토제군사(都督征討諸軍事)가 되어 출병했으며,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에서 북위의 안평공(安平公) 숙손건(叔孫建)과 조우하자 영삭장군(寧朔將軍) 왕의, 효기장군(驍騎將軍) 단굉(段宏)을 이끌고 숙손건을 물리쳤다. 또한 고량정(高梁亭)에서 북위의 영남장군(寧南將軍), 제주(濟州) 자사 수창공(壽昌公) 실협고결(悉頰庫結)과 전투를 벌이면서 단굉과 심건지(沈虔之) 등을 파견하여 기병을 통해 실협고결을 물리쳤다. 단도제는 제수(濟水)에서 20여 일 동안 전투를 벌이고 수십 차례의 교전을 벌였으나 결국 활대가 함락되자 역성(歷城)에서 철군했다. 단도제는 사공으로 진위되었고 지절, 산기상시, 도독, 자사는 그대로 받으며 심양(尋陽)에 진수했다.


2.7. 최후[편집]


단도제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워 명성과 위엄이 두터웠고 단도제의 수하 장수들은 백전연마의 장수들이었으며 아들들 또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조정에서는 단도제의 명성을 두려워하여 아예 "사마의가 아닌지 어찌 알겠냐?"[1]는 의문이 나올 정도였다. 문제가 여러 차례 병으로 누우며 위독해지자, 팽성왕(彭城王) 유의강은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폐하께서 승하하신다면 단도제를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의강의 말을 덥석 믿어버린 문제는 435년 북위가 변경을 침범한 상황에서 단도제를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436년 조정에서 다시 단도제를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단도제는 이미 배에 탄 상황이었다. 이때 문제가 병에 걸리면서 다시 단도제를 불러들였고 단도제는 결국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단도제는 자신이 체포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어찌하여 당신들이 쌓은 만리장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려는 것입니까!

당시 단도제에 연루되어 처형된 이들만 해도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 단식(檀植), 사도(司徒) 종사중랑(從事中郞) 단찬(檀粲), 태자사인(太子舍人) 단습(檀隰), 정북부(征北府) 주부 단승백(檀承伯), 비서랑(祕書郞) 단준(檀遵), 사공부(司空府) 참군 설동(薛彤), 단이(檀夷), 단옹(檀邕), 단연(檀演), 사공부 참군 고진지(高進之)였다. 설동과 고진지는 모두 단도제의 심복으로 용력이 있었으며, 당시 사람들은 장비관우비견하였다.


3. 사후[편집]


단도제가 처형된 뒤 문제는 대사면을 단행했다. 한편 단도제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은 북위에도 전해졌다. 단도제가 살아있을 때 북위 사람들은 단도제의 그림을 그려 귀신을 쫓기도 했는데, 단도제가 처형된 이후 북위에서는 "단도제가 죽었으니 남쪽은 두렵지 않다!"라는 말이 나왔다. 한편 유송에서는 다시 북벌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문제는 자신의 측근인 은경인을 불러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문제: 누가 단도제의 뒤를 이을 수 있겠소?

은경인: 단도제는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기에 위엄과 명성이 높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문제: 그렇지 않소. 한나라이광이 살아있을 때 흉노는 감히 남쪽을 침범하지 못했는데, 뒤를 이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남사』, 「단도제전(檀道濟傳)」

450년, 문제가 북위에 대한 북벌을 시작할 때 심경지는 단도제와 도언지에 대해 언급하며 북벌에 대해 반대했으나, 문제는 "단도제는 악인을 길러 스스로 생계를 도모했다"고 언급하며 심경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2] 하지만 의욕있게 추진한 북벌이 실패하자 문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단도제를 처형한 것을 후회하였다.

단도제가 살아있었다면, 어찌 여기까지 왔겠는가!

남사』, 「단도제전(檀道濟傳)」

후대 당나라에서는 782년 안진경의 건의에 따라 고금의 명장 64명을 추봉하고 사당을 세웠는데, 이 64명의 명단에 단도제가 포함되었다. 송대에는 당나라의 관례에 따라 72명을 추봉하며 이때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십칠사백장전(十七史百將傳)』에서는 단도제의 이름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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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사 단도제전(檀道濟傳)[2] 송서 심경지전(沈慶之傳), 남사 심경지전(沈慶之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