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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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도소.
2. 역사[편집]
1908년에 개청한 대구감옥을 기원으로 한다. 당시의 대구감옥은 지금의 화원이 아닌 중구 서내동 서문로교회 자리다. 그리고 1910년 삼덕동 현 경북대 치대와 일신학원 사이 지역으로 이전하였는데 중구 공평로4길 일대가 전부 교도소였다. 내부는 일본식 목조건물에 외부는 빨간색 담장이었다. 1923년 대구감옥에서 '대구형무소'로 이름이 바뀐다.
현재의 화원 대구교도소는 해방 후인 1971년 6월에 이전한 곳이다. 당시 주소로는 경북 달성군 화원면 천내리, 현 주소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다. 대구구치소가 따로 있는데 대구교도소와 서로 혼동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서울남부구치소가 서울남부교도소 바로 옆에 있는 것과 달리, 대구구치소는 대구의 동쪽인 수성구 만촌동에 있어서 대구의 서쪽에 있는 대구교도소와는 위치도 다르다.
화원의 대구교도소는 1971년에 이전한지라 건물의 노후화가 심각하여 2021년 상반기에 달성군 하빈면 감문리 하빈교삼거리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이 곳은 성서2번 대평방면과 육신사행이 분기하는 삼거리다. 하지만 또다시 무기한 연기되었다. # 이후 2023년 이전으로 바뀌었다.
대구교도소는 사형 집행 시설이 갖춰진 4곳 중 하나다. 나머지는 서울구치소, 부산구치소, 대전교도소다. 광주교도소도 과거에는 집행 시설이 있었으나 구 건물을 철거하고 현재 위치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집행 시설이 생략되어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할 수 없다.
2022년 7–8월쯤 하빈면 일대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전한다면 광주교도소처럼 사형집행시설을 만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전이 예정되어 있는 부산구치소와 대전교도소도 마찬가지가 될 듯. 서울구치소는 이전 떡밥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사형수는 약 59명의 사형수가 집행되지 않고 있다.
대구교도소가 떠나간 후적지는 문화예술과 전시, 체험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최재훈 달성군수가 밝혔다.#
청송교도소 출신 교도관들이 매우 많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사건사고[편집]
1989년 4월 21일 대구공업고등학교에서 열렸던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3명의 기결수가 교도관을 공격한 뒤 탈주한 사건이 터졌었다. 당시 탈주범은 권○○[1] , 이○○[2] , 김○○[3] 이었으며 4월 22일 밤에 탈주범 이○○가 먼저 검거되었고, 4월 26일에 탈주범 김○○이 검거되었으며 이후 검거되지 않던 권○○이 부모형제의 자수 권유로 6월 26일 서울특별시경에 자수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정용세 전 대구교도소장이 4월 23일에 불명예 퇴직으로 전 청송교도소의 신흥재 교도소장으로 교체되었으며, 이충배 전 대구교도소 부소장이 4월 24일에 직위해제로 전 서울남부구치소(당시 영등포구치소) 서무과장 여광석 교정감으로 교체되었다.
여기서 대구교도소 양심수 집단 구타사건이 일어났었다.
2018년, HIV 감염 수용자를 운동장에 물로 선을 그어 격리시키고, 특이 환자라고 호명하는 등 인권 침해가 일어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구교도소 내에서 발생한 피해자에 대한 분리·배제 등의 행위는 인격권 및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 차별행위"라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감염병 확산을 막고 치료를 위해 분리 수용은 있었지만, 의도적인 격리는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2021년 6월 하빈면의 신축 부지로 이전이 확정됐다가 하수처리시설 용량의 과부족이 뒤늦게 발견돼 이전이 무기한 연기됐다. 2022년 7–8월쯤 하빈면 일대 신축 건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었다.#
2022년 5월 밀양 산불 당시 밀양구치소 3백여 m 앞의 산까지 불이 번지면서 수감중이던 재소자 384명을 신축된 이곳 대구교도소로 이송한 적이 있다. 앞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된 일부 재소자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단독]철창속 400명 덮치는 화마...밀양구치소 초유의 이송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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