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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경제 정보

파일:Taipei Night Skyline from Xiangshan.jpg


파일:iRqsJsP.jpg


파일:JxrGaSk.jpg

인구
23,375,623 명#
2021년, 세계 56위
경제 규모(명목 [[GDP|{{{#fff GDP}}}]])
7,591억 달러 #
2021년 4월, 세계 21위
경제 규모([[PPP|{{{#fff PPP}}}]] [[GDP|{{{#fff GDP}}}]])
1조 4,036억 달러
2021년 4월, 세계 21위
GDP 성장률
6.28%
2021년
1인당 명목 GDP
36,051 달러
2022년, 세계 28위
1인당 PPP GDP
59,397 달러
2021년 4월, 세계 15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35.7%
2016년, 세계 136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Aa3
2006년, 4등위
피치 국가 신용등급
A+
2016년, 4등위
S&P 국가 신용등급
AA-
2010년, 4등위
1. 개요
2. 상세
3. 국민경제
4. 문제점
5. 경제사
5.1. 식민지 시기
5.2. 국부천대[1] 이후
5.5.1. 한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섰나? : GDP/임금 간 괴리
8. 주요 산업
9. 관련 항목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이 문서에서는 대만의 경제 현황 및 역사 등에 대해 서술한다.


2. 상세[편집]


대만은 1950년대 이래로 2000년에 이르기까지 연 평균 8%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며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에 포함될 정도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성장률의 둔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2010년대 이후로는 경제성장률이 3% 아래로 고착화되었고, 거기에 더해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경제성장률에 비해 임금상승률이 매우 낮았다.[2] 이 때문에 한국은 물론, 중국에게도 임금수준을 따라잡혀서 2020년대 와서는 베이징, 상하이, 선전같은 중국의 1선급 대도시와 급여가 비슷해졌고,[3] 또한 중국 내 대기업들이 대만의 기업들보다 훨씬 더 많은 봉급을 주며 대만의 인력을 유혹하기까지 하면서 중국에 비해 크게 우월한 생활수준도 빛이 바래게 되었다.[4] 다만 교육수준이 높고 탄탄한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저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히 IT산업이나 전자산업 부문에 있어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대만 경제 구조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완제품을 자기 영업망으로 내놓아서 전면 경쟁하는 전방 산업이 매우 적고 후방 산업(하청산업)이 중심이 되는 하청 강국인 점이다. 대만의 상위 기업들은 대부분이 하청으로 큰 기업이고, 현재도 세계에서 파운드리 산업이 가장 거대한 국가 중 하나이다. 비슷하게 제조업이 대부분 하청으로 굴러가는 동남아시아가 외국 기업이 설계한 제품을 제조만 하는 OEM이 강세인 것과 달리 여기는 자체적으로 제품을 만들어서 상표만 원청업체 것으로 붙여 파는 ODM이 강세다. 그래서 하청이라고는 하지만 이 하청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대만보다 과학기술이 좋은 나라는 세계에 그리 많지 않다. # 반도체 올림픽에서도 상당한 강자인 편.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경제규모와 기술수준이 급성장하여 대륙의 실수로 일컬어지는 대만제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품질의 제품을 더욱 싼 가격으로 팔고 있어 하청 시장에서의 상당한 위협을 받고 있다.

흔히 대만에는 중소기업들이 많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80년대에는 중소기업들이 수출량의 상당부분을 점유했었다. 그러나 대만의 중소기업들이 점차 대기업이 되면서 현재는 하청 대기업 중심으로 흘러간다 보는 것이 정확하다. 매출 기준(중화신용평가)으로 가장 큰 대기업은 애플 제품의 하청으로 널리 알려져 유명한 하청 세계 최강 폭스콘이다. 2014년 기준 4.2조 대만 달러 (한화 150조 원 수준) 로 한국이라면 삼성전자 다음으로 매출이 큰 기업이 되었을 것이다. 그 뒤를 대만중유공사(CPC), 페가트론, 콴타, 대만플라스틱석유화학이 잇고 있으며, 1천억 대만달러 (한화 3.5조원 수준) 를 넘는 기업이 2014년에 48개 있다. 이 48개 대기업 중 폭스콘부터 WT Micro까지 15개가 자기 얼굴 없는 하청기업이다. 하청업 이외의 주요 대기업으로는 대만플라스틱 그룹[5], 푸본그룹(금융), 원동그룹(유통업), 신콩그룹[6], 퉁이 그룹[7] 등이 있다.

시가총액 기준(대만증권교역소)으로는 세계 제1의 반도체 파운드리TSMC가 1위로, 현재는 NVIDIA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순위에서 NVIDIA와 1~2위를 다투고 있다. 기타 대형주로는 2021년 5월 기준으로 20위인 콴타가 15조원, 50위인 타이완 고속철도가 7조원 수준인데, 이는 한국 KOSPI에서는 대략 30위, 50위에 드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기업집단이 한국 수준으로 문어발 확장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집단을 묶어서 열거하면 한국보다 오히려 대기업 수가 많아진다. 또한 전자 분야 하청기업은 대체로 매출이익률이 극히 낮기 때문에[8] 시가총액 랭킹에서는 떨어진다.

1990년대 이전에는 국영 기업이 대만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몹시 높았다. 각종 산업 부문에 국영 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민영 대기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로 반쯤 과장해 얘기하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공산주의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9] 지금도 이런 면이 꽤 있다. 예를 들어 대만의 맥주와 담배는 Taiwan Tabacco & Liquor Corporation라는 국영 기업이 독점 생산했다. 술과 담배를 국가에서 통제하는 나라는 많지만 선진국 반열에 든 국가에서는 매우 드물었다. 한국식으로 비유하자면 KT&G에서 술, 담배 등을 독점 생산하는 것으로, 현재는 주세법 등이 개정되면서 크래프트 맥주의 생산이 자유롭게 가능해졌는데, 러블리즈지수, 미주배틀트립 기획으로 대만 남부 컨딩에 방문했을 때 들른 맥주 박물관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국영 기업으로 타이완전력, 타이완당업, 타이완중유, 타이완은행 등이 현재도 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며, 민영화된 구 국영기업으로 TSMC, 중국강철, 중화텔레콤, 궈광객운, 자오펑은행 등이 있다.


3. 국민경제[편집]


세계 2차대전 직후 대만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영국령 홍콩에 이어 3번째로 1인당 GDP가 높았던 국가였다. 다만 실제론 이건 통계적인 수치 뿐이었고, 1940년대 대만은 매년 급속한 물가상승에 시달렸고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참패하고 국민당 패잔병들과 중국 본토의 주민이 대거 대만에 정착하면서, 인구가 급증하여 주택부족에 시달리던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산업시설은 대체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었고 국공내전에서 패전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국부천대를 하는 김에 중국 본토에서 긁어모은 금은보화들을 엄청나게 가져오고, 부유층들도 공산당을 피해서 같이 이주했기에 경제 성장의 기반이 될 만한 자본금이나 물적 인프라는 한국에 비해서 잘 남아있었다.

당시 국민당 정부에서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경험을 상기하면서 대만에서 토지개혁을 대대적으로 단행했고, 물가통제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실행했는데, 일반적으로 고금리정책은 대출을 어렵게 만들어서 기업들의 투자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대만에서는 물가가 안정되고 저축률도 크게 불어나면서 국부천대의 충격을 조기에 진화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된다. 또한 중국의 공산화와 6.25 전쟁으로 겁을 먹은 미국이 대만에게 막대한 경제원조를 단행함에 따라, 막대한 원조자금을 타낼 수 있었고, 1953년부터 경제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면서 대만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농업 부문의 육성도 성공해 일찍부터 풍족한 식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1955년 유엔 아시아극동위원회[10]가 발간한 '아시아 극동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은 1948~1954년 연평균 12%의 경제성장률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필리핀에 이어 2위였다. 다만 달러 기준 소득수준의 상승이 생각보다 더뎠는데 이는 두 차례씩이나 화폐 가치를 절하했기 때문이었다. 화폐 개혁을 단행하면서 처음에 환율을 5위안당 1달러로 지정했지만 2차례 절하를 거치면서 35위안당 1달러로 화폐가치가 떨어졌던 것. 이 때문에 실질성장률은 8%대에 달하는 수준이었음에도 생각보다 포텐이 터지지는 않았다.[11]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 미국이 원조금액을 감축하기 시작하자, 대만은 수출에 유리하게끔 환율제도를 개편하면서까지 수출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고, 수출 장려정책은 큰 성과를 거두면서 1960년대에도 대만은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중국이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으로 2차례 씩이나 경제성과를 말아먹으면서 중국과 소득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중국이 상임이사국이 되고, 대만이 UN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밀려난 것은 물론이고 UN에서 사실상 강제로 축출당하면서 대만의 국제적인 위상이 크게 저하되고,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물가가 크게 상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대만은 이를 중간재 부품산업의 육성으로 돌파했고, 오일쇼크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중화학공업 육성에도 성과를 올리면서 1976년에 1인당 국민소득이 1천 달러를 넘어서고 1980년에 2천 달러에 도달했으며 1982년 칠레를 1인당 GDP에서 추월하는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였으며[12], 전후 역사상 상대적 정점이던 1989년도에는 그리스를 최초로 돌파하였고, 1992년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게 된다.

IMF의 기준으로 볼 때 대만이 선진국으로 분류된 것은 1983년이다.[13] 개발도상국(Emerging Country)이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Advanced Country)으로 넘어간 최초의 사례이다.[14] 그 뒤 1993년 ~ 2002년까지 그리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였다[15]. 이 경제성장의 결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범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이자 따라잡아야 할 국가로 언급되는 나라로서 이미 1970년대에 컬러TV가 일상적으로 보급되었고 자가용 보급도 한국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이루어졌다. 참고로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의 대만 경제력이 어느 정도였나면 중국 대륙 전체의 40%에 해당되었을 수준이었다.[16]

1980년대 오일쇼크가 잠잠해진 이후로는 매년 안정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17] 외환보유고가 너무 많다보니 1990년대 초반에는 오히려 국가적인 단위에서 외화유출을 시도해보기까지 했으며 이렇게 쌓아올린 외환보유고로 1997년의 아시아 외환위기도 거뜬히 피했다. 그러나 IT버블 붕괴의 여파로 2001년에 처음 역성장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성장세는 회복되었지만 계속되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말미암아 결국 2003년 미국 달러 기준 1인당 GDP가 한국에게 추월당했다. 2003년 한국과 대만의 1인당 명목 GDP는 각각 $14,210, $14,080. 출처 IMF.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대만은 연 5.7%대의 성장률을 유지했지만 도중에 반도체 기업들이 상당수 무너지면서 홍역을 앓았던 적이 있고 또한 대만 기업들의 대규모 중국 진출까지 겹치며 임금상승률은 침체되었고,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최저임금이 무려 10년 씩이나 동결되었는데 이로 인해 대만의 내수경제는 침체된 상태이다. 또한 임금 억제 정책이 2010년대 중반까지도 지속되다보니 중국에게 인재를 빼앗기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등 엄청난 후유증을 앓았다.


4. 문제점[편집]


파일:Median Wage as % of GDP per capita_대만.png}}}
대만, 한국, 일본2010년대 1인당 GDP 대비 중위소득 #

2021년 기준 1인당 GDP/임금 비교

1인당 GDP[18]
1인당 GDP(PPP)[19]
평균 임금[20]
평균 임금(PPP)[21]
평균 임금/1인당 GDP
대만
US$ 33,775
US$ 62,526
US$ 23,947
US$ 43,948
71.0%
한국
US$ 34,801
US$ 48,577
US$ 38,699
US$ 53,566
111.2%
일본
US$ 39,339
US$ 44,738
US$ 34,819
US$ 38,912
88.5%
PPP로 환산한 대만의 1인당 GDP는 한국과 일본보다 높다. 이 값만 보면 대만의 생활 수준이 한국, 일본보다 높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정작 평균 임금은 GDP를 따라가지 못한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은 1인당 GDP보다도 많은 임금을 받고 있고[22] 일본도 1인당 GDP의 88%에 달하는 임금을 받는 반면, 대만은 1인당 GDP 대비 평균 임금이 71%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 것은 대만에선 하청 대기업들이 경제를 꽉 쥐고 있는데, 이들 기업은 원청업체(전방산업)의 부가가치에 딸려가게 되고, 자체적인 부가가치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 대표적 이유이다. 애플폭스콘의 관계를 예로 들면, 애플은 영업이익률이 25%[23]에 달하는데 애플 제품을 실제 생산하는 폭스콘의 영업이익률은 꼴랑 3%에 불과하다. 또한 폭스콘의 매출은 전적으로 애플의 제품 생산 계획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대만 최대의 기업인 TSMC도 수십조~수백조 원을 들여서 반도체 제조 설비를 만들어놨다 할지라도, 각 고객사의 의뢰가 없다면 설비 만들어놓고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24] 즉, 대만 기업들은 자체적인 경영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수동적인 존재이다. 결국 이들 기업은 무조건적인 비용절감 및 인력감축을 제1순위 목표로 두기에 임금이 올라갈래야 올라갈 수가 없으며, 그나마 TSMC에서 임금인상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그것도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 상태에다가 최신공정 대부분을 독점하는 중이라 가능한 것이다. 대만의 임금체계가 획기적으로 바뀌려면 적어도 한국처럼 완제품(삼성전자휴대폰, 현대자동차자동차, LG전자백색 가전/TV 등)을 생산해서 세계에서 경쟁하는 전방산업 위주의 경제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데, 대만에서 완제품 제조업 기업 중 세계적인 B2C 전방산업 강호라 할만한 기업이 적다보니 쉽지 않은게 문제다.[25] 이외 한국이나 일본처럼 대만 기업들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경쟁력 유지(= 인건비 감축)를 위해 계속해서 빠져나나고 있는데 최첨단산업은 그나마 붙들고 있지만 나머지는 임금수준이 계속 정체될 수밖에 없다. 더불어 대만은 노조가 별로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인데, 중국과의 이념 대립 때문에 노동계급 정당이 발전하지 못했고 임금 인상을 요구해 줄 수 있는 정치 세력도 미약하다. 관련 기사

다만 많은 외환보유고[26]와 금 보유량[27]으로 안정적인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은 대만 경제의 강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대만 경제의 특이한 점으로는 GDP와 PPP의 큰 괴리가 대표적이다. GDP와 PPP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 특히 1인당 명목 GDP 2만 달러 이상 국가 중에는 대만이 유일하다.[28] 이는 대만의 위태로운 국제정치적 지위로 대만 달러가 실제 구매력에 비해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만의 경우 명목 환율로 평가되는 것에 비해 국내 물가를 감안한 생활 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저평가된 환율은 정작 자국민이 해외 물품을 살 때나, 해외여행을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29]

이렇게 낮은 환율은 자국 기업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또한 경상수지에 득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인이 느끼기에 대만 제품은 굉장히 싸며, 홍콩제나 일본제 정도의 높은 신뢰도를 갖고 있다. 전술한 ODM으로 판매된 제품들은 꼼꼼히 뜯어보지 않으면 원청업체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보통 원청업체는 고급형보다는 보급형을 ODM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나 원청업체나 기대를 약간 낮춘다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 된다. 특히 PC 부품 관련해서는 대만이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으며, 실제로 전세계에 엄청난 PC 부품을 수출한다. 이는 수출 위주의 대만 경제의 유리한 점이기도 하지만 후술된 문제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30]

하지만 반대로 대만 사람들은 외국 제품을 사려면 상당한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현상은 자연히 국내산 선호 현상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수입액은 줄어들고, 수출액은 늘어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자연히 보게 된다. 최근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대만은 더욱 큰 경상수지 흑자를 보게 있다. 대만의 경상수지 흑자는 GDP의 10~15% 수준으로, 국제적으로 흑자가 과다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3~5%)이나 일본(2~4%)에 비해서도 현격히 높다. 한국이 대표적인 무역 중점 국가다 보니, 경상수지 흑자는 항상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는 교역재와 비교역재 부문 간의 소득 격차 발생으로 인한 성장 잠재성 침해, 과도한 외화보유고[31]로 인한 경제 전체의 비효율적 투자, 외국과의 분쟁 가능성 등의 문제가 있고, 이 중 상당수가 대만에서 오랜기간 문제로서 작용하고 있다.

높은 부동산 가격도 큰 문제로 한국도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와 원성이 높지만 대만의 경우는 이를 능가할 지경으로 타이베이의 아파트의 경우 평당 매매가가 서울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다만 한국은 이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수도권의 집값이 거품을 넘어 일반인이 구매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간 반면, 대만은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고 어느 정도 버티고 있다. 그 외에 주택과 주차장을 동시에 제공하는 대한민국과 달리[32] 대만은 주차장을 별도로 매매해야 하며, 주차를 원하는 경우는 따로 비싼 돈 주고 주차장 부지를 사야 하는데, 주차장 매매가가 원화로 환산해서 한화로 억 단위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매우 비싸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 물론 대만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85% 이상의 자택보유율을 보이지만 주택 문제가 심각해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대만의 주택은 대부분 장노년 세대가 가지고 있어서 청년들의 주택난은 한국의 청년 주택난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만은 결혼하고 나서도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부부 양친 중 한 쪽의 집에서 거주하는 데릴사위/처가살이가 일반적이다. 한국은 일단 결혼을 기점으로 월세전세든 구해서 자식이 부모의 집에서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대만은 워낙 집값이 비싸고 전세 제도 자체가 없다 보니 신혼부부가 독립을 못 할 지경이다.[33]

5. 경제사[편집]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기 전에는 그냥 변방 섬에 불과했기 때문에 별 관심을 못 받았다. 네덜란드 및 스페인점령시기에 동아시아 무역중개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5.1. 식민지 시기[편집]


타이완 섬은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을 점한 일본은 이 곳을 무역 거점으로 삼아 일본 - 동남아 - 인도 -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 창구로 활용하였다. 식민지 시기 초기에는 이러한 무역업 이외의 특별한 산업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1920년대 초중반 일본의 중화학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일본의 경공업이 타이완 섬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타이완 섬은 일본의 식료 공업품이나 생활 필수품 등과 같은 경공업 제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로 농업과 그중에서 특산품인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산업이 특화되어 이를 위한 원료가공산업과 중소규모의 공장들이 많이 설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공업 기반이 다져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공업을 담당하던 기업들 상당수가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체계가 형성되었다.[34]

한편 30년대 말부터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됨에 따라 타이완 섬의 산업이 재편되게 된다. 당시 조선은 만주와 중국 지역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과 중화학 공업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역할을 맡았고, 타이완은 중국 남부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 일부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과 중화학 공업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이중 지역을 필두로 중화학 공업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여기서 생산된 제품은 광저우, 홍콩 지역을 통해 대륙으로 공급된다. 물론 이전 시기부터 담당해오던 경공업 제품의 공급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타이완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5.2. 국부천대[35] 이후[편집]


일제 패망 이후 꿈도 희망도 없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나면서 타이완 섬은 중화민국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타이완 섬은 식민지배 시기 일방적 착취가 아닌 실질적인 발전을 동반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이후에도 일제가 떠나면서 남겨둔 산업 시설이 상당수 잔존하였다. 또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 섬으로 쫓겨오는 과정에서 중국의 수많은 기업가들이 타이완 섬으로 함께 오게 되었다.[36][37] 이러한 물적, 인적 자원의 결합에 따라 대만은 고속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청의 유산이 타이완 섬에 집중되었으며 일제가 남겨둔 산업 시설까지 있었으니 국가의 기반을 닦는데 있어 대만은 당시 전후 한반도 및 중국 본토의 국가들과는 입장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뭐 군벌간의 내전, 중일전쟁, 국공내전으로 전국이 황폐화되었고 공산 정권 수립 이후에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사실상 국가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지는 등 정세 안정화까지 반 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한반도의 경우도 비슷했다. 북한의 경우에는 일제가 남겨둔 대규모의 중화학 산업 단지가 남아있었고, 1949년까지 일본인 기술인력이 억류되어 기술 전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기반이 어느 정도 닦여 있기는 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전부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38] 남한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농업, 경공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짜여져있었고 중공업 시설들은 대부분 북한에 몰려있던탓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몽골이야 소련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는 하지만 땅은 넓은데 인구가 영토에 비해 너무나도 적기때문에 산업발전의 기반이 될만한 인프라 시설이 거하게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었고 천연자원 위주로 갈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의 유리함으로 대만의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70년대 초반까지는 중국=중화민국이라는 공식이 통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이 당시 벌어들인 외화로 미국과 서유럽의 무기를 마구 지르기까지 했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첨단 공업 분야의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기업의 하청을 받는 형식이었으나 점차 일본 자본에서 독립한 기업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두된 기업들이 바로 TSMC, ASUS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산업체들이다.

식민지기까지는 사탕수수[39]와 농업을 중심으로하는 가공 산업이나 경공업,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모델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1970~80년대 정부주도하에 중공업 육성이 이루어져 대자본과 대기업군이 형성되었다. 앞서 상술했듯이 그 때문에 대기업의 독과점 비중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40]


5.3. 2000년대[편집]


성장 가도를 달려오던 대만의 경제는 2000년대 이후 침체되고 있다. 1997년 동남아-동아시아 외환위기의 유탄은 여유롭게 넘어섰지만[41], 그 이후로 성장률이 점차 내려앉기 시작했다. 사실 성장률 자체는 2007년까지는 상당했지만 이미 90년대 말부터 임금수준이 동결되기 시작한데다가 특히 2001년에 IT버블 붕괴로 역성장하면서 임금이 동결되는 추세가 성장률과 관계 없이 굳혀지고 임금이 동결되는것과 관계 없이 집값은 고공행진하면서 체감적인 삶의 질이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때 한국에게 임금수준도 따라잡히게 된다. 또한 성장률 자체는 한국에게 뒤지지 않았음에도 한국에게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이 2명아래로 떨어지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오면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세계 시장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독립 문제가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고 중국경제 의존 구조가 변하지 않으면서 내부 역량을 까먹는 요인이 되었다.

대만의 국가 경쟁력은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머지 않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2008년 이후에는 중심이던 중소기업들이 줄줄히 도산되어, 대기업 위주로 산업 구조가 재편 중이다.


5.4. 2010년대[편집]


대만은 최근은 물론이고 고도성장기에도 물가가 안정세를 보였던 몇 안 되는 나라로[42]달러 환산 소득은 한국보다 낮지만 PPP 기준 구매력은 한국에 비해 높다.[43] [44]또한, 기업은 도산했을지라도 제조업은 무너지지 않아,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이 추락하는 사이 대만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내부 인건비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여서, 여전히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힘든데 이러한 기업들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고, 그 대기업은 중국에 공장을 지어 저렴한 중국의 인력을 사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즉, 제조업의 부가가치 창출 구조가 완전히 바뀐 것.

또한 임베디드 기기의 급격한 보급으로 대만 소재 회사에서 생산하는 관련 제품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과거 부속품이나 부품 산업에만 치중했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완성형 제품에 대한 공격적인 진출도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노트북과 넷북의 전 세계 생산량의 80% 이상이 대만에서 생산되고 인터넷 통신장비는 95% 이상이 대만산이다. 한국에서도 대만산 컴퓨터 부품에 대한 수요가 많아 트위치, 아프리카TV 등을 살펴보면 MSI, ASUS 등 대만 컴퓨터 부품업체들이 방송인들을 협찬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대만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해외기업 M&A 큰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만 국내시장의 침체와, 양안관계 악화 조짐으로 인해 대만 기업들부터 스스로 성장 동력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 대한민국에서는 대만의 유안타그룹이 동양증권과 한신저축은행을 인수하여 유안타증권으로 재편했고,[45] 2016년에는 폭스콘의 훙하이 그룹이 샤프전자를 인수하며, 역으로 미쓰이물산과 싱가포르 트랜스팩 그룹이 대만의 홈쇼핑 회사를, 한국의 네이버가 대만의 핀테크기업을 인수하여 라인 페이를 만드는 등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편, 대만의 재정당국의 정책 능력 역시 대만의 경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축이다. 대만의 재정당국은 필요할 때 외화와 보유한 금을 사고팔며, 외부의 영향으로 부터 재정적 방어를 하는 능력이 아주 탁월한데,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금 매도와 매입을 지속하며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 이는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 어설프게 개입했다 욕만 진탕 먹고 유감표명을 하는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전의 1997년 ~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한국의 외환위기가 된) 때에도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대한민국러시아까지 쓰러지는 와중에 대만만 자기네 금 보유고를 줄이고, 외환보유액에서 미국 달러독일 마르크의 비중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유유히 위기를 넘겼다. 이런 단기적 금융 리스크 관리에서는 대만이 영국과 동급의 Top-Level 리스크 관리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영국은 조지 소로스한테 한번 털렸지만 대만은 이런 적도 없다.2018년 8월 8일 공식적으로 TPP 가입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기사

2019년 6월 6일, 중화민국중앙은행양진룽 총재가 1999년 이후 20년만에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외환시장에 개입을 했다고 밝혔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의 격화로 인해, 대만에서 유출되는 외국자본이 많아 신 대만 달러의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불태화 정책을 시행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기사


5.5. 2020년대[편집]


2020년 발표로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이 2016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이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중국 대신 대만을 투자처로 택하는 대만 기업들이 대폭 늘고 있다.#

2020년 9월 22일 차이잉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대만 기업들의 유턴을 독려하면서, 중국에 진출했던 대만 기업들이 중국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대만으로 복귀하고 있다. 기사

무디스가 처음으로 공개 발표한 국가별 ESG 신용영향점수 보고서에서 대만은 중립적(Neutral-to-Low) 등급을 받았다. 경쟁 관계로 여겨지는 한국은 긍정적(Positive) 등급을 받았으며, 이웃한 중국은 다소 부정적(Moderately Negative), 대만과 외교 관계가 좋은 일본 역시 다소 부정적 등급을 받았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ESG 신용영향점수와 국가별 신용등급은 상관계수 0.87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방역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다른 나라가 비실비실하는 가운데 GDP 성장률 3.1%를 기록, 경제성장률 기준으로 30년만에 중국을 이겼다. 다만 그와 별개로 차이잉원 총통의 지지율은 7월 45%에서 12월 35%로 10%p 폭락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는데 그 이유는 경제성장률 자체는 견조했으나 체감 경제는 불황이었기 때문이다.[46]#1#2

그리고 역설적으로 대만 경제의 대중국 의존도는 지난 10년 대비 가장 높은 42.3%를 기록했다. 대만과 중국 본토 관계(양안관계)가 좋지 않은데다 차이잉원 총통이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을 포용해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차이잉원의 바람과는 반대로 대만의 중국 본토에 대한 경제 의존도는 더더욱 높아졌다. 이에 대해 우이 중국사회과학원대만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본토와 대만 간 산업 공급체인이 견고해 완전한 구조 변화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47]

이후 2021년 4월에 미국 재무부가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어 대만 달러가 장중하락했다. 만약 대만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고율관세가 부과되는 슈퍼 301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만과 대립관계인 중국은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한다고 재닛 옐런 재무부장관이 밝혔다. 몇몇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만과의 관계 강화를 추진하는 와중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원칙을 중시하기에 그대로 지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차이잉원 뒷목잡는 소리 들린다 4월 16일,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대만은 베트남 및 스위스와 함께 환율조작국의 지위에 준하는 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되었다. 이 또한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태국, 싱가포르 등은 관찰대상국으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2021년 4월 30일, 2021년 1/4분기 경제성장률이 3.09%라는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10년 만의 최고치. # 이는 2020년 1/4분기에 다소 성장률이 낮아진 데 따른 기저효과가 있었을 뿐더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자산업의 호황이 겹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2020년의 경제 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양호했던 것의 반대급부로 기저효과에 의한 성장률은 비교적 낮으며,[48] 향후 예측은 위 출처(tradingeconomics.com)에서도 그리 좋지는 않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뒤늦은 코로나19 유행을 맞이하면서 경제적 타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21년 3월 기준 대만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무려 44.3%를 기록했다.[49] 차이잉원 총통이 어떻게든 대중국 수출의존도를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외려 더 높아지는 양상이다. 대만과 중국은 같은 언어를 쓰고, 문화 차이가 적다 보니 대만의 하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차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언어 장벽이 있지만 대만과 중국은 언어장벽이 없고 문화 장벽이 낮다 보니 시진핑의 등장으로 중국에서의 경영 환경이 나빠지더라도 중국으로 가는 것이 이득이다. 실제로 국제경영을 할 때 진출지로는 언어장벽이 없고 문화 장벽이 낮은 곳으로 기업이 몰리기 마련이다.

2021년 12월 대만의 경제연구소는 2022년에 한국의 1인당 GNI를 추월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 ADB는 2021년 대만의 경제성장률을 6.2%로 전망했다. # 그리고 2022년 4월 IMF가 발표한 1인당 명목 GDP 순위에서 대만은 한국을 1057달러 차이로 역전했다.

차이잉원 행정부는 12월 펼쳐진 국민투표에서도 본인들이 원한대로 모두 4개 안건 부결의 결과를 얻었다. 미국과의 FTA 추진도 탄력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

2022년 1월 27일 중화민국 주계총처는 2021년의 경제성장률이 6.28%라고 공식 발표했다. 2010년 이래 11년만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시장 예상 중앙치는 6.09%였는데 실제로는 이를 0.19% 포인트 웃돌았고 4월 말 터진 승무원 발 코로나 19 감염 사태도 정부의 강한 방역으로 다시 확진자 0명을 기록하며 전염병 차단에 성공하면서 4분기 민간 소비가 1.66% 증가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발효된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에서, 대만은 TSMC가 제재에 동참하는 등 규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미국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 규제 대상에 포함되어 향후 경제에 어느 정도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만약 대만이 미국 상무부가 고시한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특정 국가에 수출하려면 미국 상무부의 심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거기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대만이 IPEF 참여를 강력히 희망했지만 미국이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일단 대만은 국제법상으로 주권국이가 아닌 데다가, 대만 내 친중파에 의해 IPEF 참여국의 최첨단 기술이나 인력 등이 중국으로 유출될 가능성, 그리고 파운드리 시장에서 반쯤 TSMC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자국 기업들이 이끄는 것을 원하는 미국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5.5.1. 한국의 1인당 GDP를 넘어섰나? : GDP/임금 간 괴리[편집]


그리고 2022년 4월, 대만의 1인당 추정 GDP가 36,000달러대를 기록. 2002년 이후 약 20년만에 한국의 1인당 GDP를 1,000달러 이상 격차로 재추월했다는 예측이 나왔다. 허나 이것이 2022년 12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당장 2021년에도 대만과 한국의 1인당 GDP가 동급이 될 거라는 예측이 4월달에 나왔으나, 2021년 확정치는 1인당 GDP는 대만이 한국보다 낮게 나왔다. 일단 대만에서 결국 오미크론 변이발 대유행이 일어난 만큼, 아직은 2022년 GDP 추월 여부는 불투명하다. 먼저 추정 GDP가 추월당한 이유를 알아보자면,

1. 오미크론 변이로 타격을 입었던 한국과 달리 대만은 코로나 피해가 거의 없었고, 한국의 주요 산업 중에 IT,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산업들이 물류대란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1. 대만은 IT, 반도체 산업 위주로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반도체 수요 특히 고성능 AP와 파운드리 시장 성장의 혜택을 TSMC와 미디어텍 등 대만 기업들이 제대로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50]

그러나 대만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계속 이어질지 자체가 알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2020~2022년같이 변수가 엄청나게 많은 년도의 4월달에 하는 예상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기조가 이어졌다.

1. 그 예로, 2021년 4월의 21년 예상치로 한국은 3.6% 성장, 일본은 3.3% 성장이였지만 2021년 말~2022년 초에 발표된 실제 성장률은 한국이 4%, 일본이 1.6%가 나왔다.

1. 또한 2021년 확정치 1인당 GDP로는 한국이 대만보다 아직 천달러 이상 높다. 이는 2020년때의 격차랑 거의 동일하며, 2021년 4월에 이미 한국이랑 대만이랑 동률로 예측이 나왔었는데 그게 빗나간 것이다.

1. 그리고 달러환산 GDP는 성장률보다도 환율영향이 더 크며, 최근 몇년간 대만 1인당 GDP가 폭등했던건 환율 영향이라는 외적 요인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신 대만 달러 가치가 2021년~2022년초 까지 1US$ = 27NT$라는 역대 최고 가치였다가, 2022년 4월 즈음에 30달러 근접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즉, 저 추정 GDP는 환율의 영향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

1. 또한, 일본의 노구치 유키오 교수 추산에 의하면 2022년 기준으로 1달러=124엔 환율 적용 시, 한국은 2022년 소득을 34,189달러, 대만은 33,621달러 추산해 대만이 500달러 정도 더 밀린다는 추측도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 그리고 한, 일, 대만의 환율이 사이좋게 박살이 나면서 이 부분은 발표 당시와 달리 2022년 5월부터 점점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다만 대만 GDP가 한국을 추월했다는 걸 적극 언급하는 건 주로 한국인들과 대만 대 혐한파들 사이에서 나오는 반응이고,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차이잉원 총통이 한국의 GDP를 드디어 앞설 것이라고 말해도 외려 "몇 년 동안 IMF의 어처구니 없는 예측 데이터다", "대만 내 저임금 문제부터 해결하라" 등의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고질적인 대만의 저임금 문제 때문으로, GDP가 아무리 높아진다고 한들, 평균 임금이 도대체 잘 오르지를 않기 때문이다. 중화권의 시사 소식을 제공하는 '더 뉴스 렌즈'는 "대만의 1인당 GDP가 한국과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건 기쁜 일이 없다"며 그 이유로 "여전히 우리의 기본 급여가 두 나라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The News lens 기사

1. 2022년 기준 한국, 일본, 대만의 월 기본급은 신 대만 달러로 환산하면 한국은 NT$46,728, 일본은 NT$41,128이지만 대만은 NT$25,520로 한국의 54%, 일본의 61%에 불과했고, 6년 뒤에는 이보다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1. 중위급여를 비교해도 2020년 기준 일본은 NT$88,210, 한국은 NT$70,153이지만 대만은 NT$41,500으로 일본의 47%, 한국의 60%에 불과하며 이는 8년 뒤에는 엄청난 차이로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1. 한편, 2010년 이후 10년간 1인당 GDP에서 중위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보면 한국은 79.4%(2010)에서 97.2%(2020)로 크게 상승했으며, 일본은 100% 안팎에서 머무르고 있지만, 대만은 70.1%(2010)에서 59.7%(2020)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다시말해 대만에서는 GDP 중에서 노동으로 환원되는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더 뉴스 렌즈'는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여전히 임금 정체에 직면해있는데 1인당 GDP 증가가 의미가 있나?"라고 비판했다.[51]

대만 언론 <중국시보>는 지난해 12월17일 “무슨 소용이냐. 전부 반도체 업계가 버는 돈이다. 다른 업계는 죽겠다”, “한국 대졸자의 초봉 평균이 9만 대만달러(3860만원)라고 한다. 우리는 한국의 3분의 1도 안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52]#

결국 5월 13일, 대만 중앙은행 총재가 "올해 경제성장률 4%는 쉽지 않다"는 예측을 내놓음에 따라 최악의 경우 저 IMF의 예측 역시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5월 20일 기준 환율이 한국은 한때 1달러에 1284원까지 올라갔다가 1269원으로 하락 추세이며, 일본도 1달러당 130엔에 육박했다가 128엔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대만은 1달러에 29.63대만달러로 상승추세다. 환율이 오른다는 것은 달러 환산 소득의 감소를 뜻한다.


6. 증권거래소[편집]




7. 중앙은행화폐단위[편집]




8. 주요 산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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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Made in Taiwan


8.1. IT 산업[편집]


대만은 IT 산업이 발달하고 각종 컴퓨터 부품 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메인보드 시장은 대만 소재 회사들이 꽉 잡고 있는데, ASUS, GIGABYTE, MSI 등 3대 메이저[53]는 물론, ASRock, BIOSTAR, ECS, Foxconn, Jetway 등등이 모두 대만 소재 회사다. 그 외에도 ACER, BenQ, 라이트온, 그리고 폰 제조사로 유명한 HTC, 칩셋 전문 제조사 Realtek을 비롯한 수많은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있다.[54] 또한 NAS로 유명한 Synology와 QNAP도 대만 회사이다. 대만에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세계 외장 그래픽 카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NVIDIA도 대만 사람인 젠슨 황(Jen-Hsun Huang)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운 회사이며, AMD의 구원자 리사 수도 대만 출신.[55] 거기에다 지금은 AMD에 합병된 라데온 시리즈로 유명한 ATI도 대만인이 만든 회사이기도 하고 스크롤 휠이 탑재된 마우스를 최초로 상용화한 KYE systems도 대만 회사이다.

하지만 메인보드는 인식과는 달리 노동집약적 측면이 강하고 반도체에 비하면 마진률도 처참하기 그지없는 분야다 보니 생각보다 부가가치를 많이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저 메인보드 3대 기업들의 규모도 생각보다 작은 편. 정작 대만에서 메인보드 분야보다도 더 강력한 경쟁력과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것은 반도체 파운드리나 IT 완제품 ODM 및 OEM으로, 이쪽 분야를 대만이 꽉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 대만 시가총액의 1~2위는 각각 TSMCFoxconn으로 위의 메인보드 주력 기업들을 합한 것조차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훨씬 금액규모가 크다.

세계 최대의 독립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를 보자면 시가총액은 2020년 7월 초 한화 기준 400조원을 돌파했고 당시기준 인텔은 물론 삼성전자조차 추월한 것이다. 이 파운드리의 업체의 주요고객은 AMD(ATI), NVIDIA, VIA, 브로드컴, Apple 같은 '팹리스' 기업들. 고객의 대부분이 세계적인 회사들이다. 이 TSMC의 사정에 따라 신형 CPU나 신형 그래픽카드의 출시 자체에 차질이 생기거나, 가격이 널뛰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2010년에도 TSMC가 엔비디아의 주문을 우선하여 AMD-ATI가 준비하던 28나노 공정의 신형 그래픽카드 계획이 틀어져 버린 사례가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공공의 적 취급. 파운드리 시장에서 만큼은 매출 1위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긴 하지만 역시 다들 대기업이 아니라서 대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기거나 대기업끼리 손잡거나 하면 줄줄이 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대만 중소기업들을 다 눌러버린다면 세계 전자 시장에 차질이 오므로 몇몇 컴덕후들은 쓸데없이 거대해지는 대기업들을 까기도 한다. 2011년 초에 일어난 IBM삼성전자의 협력도 이런 식으로 까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앞 문단도 옛 말이지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슈퍼 을이나 다름없는게 현재 TSMC의 입장으로 원청들이 '제발 최신 공정으로 저희것부터 빨리 양산해주세요(...)' 해야 할 상황이다. 괜히 2021년 기준 현재 반도체 관련업계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한게 아니다. 수 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시가총액에 비빌정도는 아니었고, 인텔과는 시가총액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지만 상당기간동안 그보다 낮았다. 그리고 현재도 매출이나 이익으로는 반도체 업계 1위는 전혀 아니지만, 거물급 팹리스들이 죄다 주문하니 파운드리 자체가 리스크가 낮은 반면 수익성은 높을수밖에 없어진 현재 산업 구조상 발전가능성도 높다고 시장이 판단하여 시가총액은 폭등했다.

위탁생산(EMS)의 경우 Apple의 iPhone 위탁생산 및 세계 최대 전자제품 OEM 기업으로 유명한 Foxconn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페가트론, 위스트론[56], 컴팔, 콴타 컴퓨터 등이 있으며 전 세계 노트북 컴퓨터의 80% 이상을 이들이 제조한다. 다만 이 분야는 TSMC처럼 슈퍼 을 행세도 불가능한, 그냥 노동집약 100%라고 말할 수 있는 분야라 TSMC와 비교하면 마진률이 바닥을 기는 편이다. Foxconn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5% 정도인데, 저 정도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높은 영업이익률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으며, 다른 기업들의 경우 1%~2% 정도가 고작이다. 이들 기업 모두 대만 본토 생산은 진작에 접은 지 오래이며, 대륙에 진출해서 세운 공장에서 제조하고 있다. 인건비 절감으로 대표되는 경영효율화 말고는 승부할 게 마땅치 않은 분야이다 보니 공장 노동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블랙기업이 대다수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중국의 임금과 노동환경 수준이 점차 올라가면서 이들도 베트남, 인도 등 인건비가 더 저렴한 지역으로 공장을 다시 옮기는 추세다.

IMF 사태로 실직자가 된 대한민국 기술자들을 대거 스카웃해서 관련 기술이 폭발적으로 진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하이닉스반도체 매각관련 문서에서 언급)

세계 AP 점유율 2위인 미디어텍도 대만의 반도체 개발, 설계 회사이다. 그리고 퀄컴도 대만없으면 일 못한다 사실상 세계 1위

세계에서 메인보드를 비롯한 각종 주요 부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어서인지 IT 부문의 국가경쟁력은 1위인 미국에 이어 2위이며, 1999년 IT부문 국가경쟁력 집계 시작이후 2위에서 높아진 적도, 낮아진 적도 없다.

반도체 회사 중 하나인 VIA의 경우 1990년대 말에 인텔의 실수를 틈타 맹공격을 퍼부었던 회사다.[57] 하지만 인텔이 제동을 걸면서 현재는 버로우.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요 생산국가 중 하나로 홍하이 그룹의 계열사인 이노룩스나 에이서의 자회사로 시작한 AUO 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각국 LCD 산업의 치킨 레이스로 2011년 대부분의 회사가 적자로 허덕이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샤프-홍하이[58], 소니-AUO 처럼 일본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 중에서는 컴퓨터용 DVD/블루레이 재생 프로그램인 PowerDVD로 잘 알려진 사이버링크(Cyberlink)가 유명하다. 사이버링크는 2010년대 들어서 네로 버닝 롬코렐의 이지CD 크리에이터같은 기존의 레코딩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Power2Go를 내놓아 확대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CD/DVD/블루레이 라이터를 사면 대부분 별 말 없으면 파워투고를 번들 레코딩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이 급부상함에 따라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면서 대만의 기술자들을 고임금으로 대거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대만의 임금은 오랜 기간동안 정체를 겪다보니 중국에서 대만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해주는 것도 가능하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시작한 기술자들이 그렇듯 "중국에서 반도체 시작해서 잘 되면 거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몫 한다. '대만과 중국의 반도체 대부’로 불리는 장루징(張汝京)[59]이 이끄는 칭다오 신언그룹(芯恩集團)도 대만 반도체 인력을 대거 흡수해, 1/3 이상의 인력이 대만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최근 중국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량멍쑹 삼성전자 전 부사장도 대만 출신 과학기술자이다.

가전분야는 국산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로 일본, 한국, 중국제 가전제품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대만 가전제품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SONY이며, 그 다음은 삼성전자이다. 가전의 대표주자인 TV 시장의 경우 소니가 20% 초반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삼성·LG전자, 파나소닉이 10%대 초반의 점유율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밖에 다퉁, 벤큐, 치메이 등 대만 내수 브랜드와 중국 브랜드가 나머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


8.2. 금융업[편집]


제조업과 더불어서 대만 경제를 이끄는 최종보스들이다. 대한민국/경제의 주요 비판점이 금융산업의 낮은 경쟁력인데, 대만은 금융업의 경쟁력이 굉장히 높다. 그러나 최근 메가뱅크의 부재가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중.

지방의 작은 손해보험사로 출발해 초대형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한 푸본금융그룹, 대한민국의 동양증권을 인수하여 유안타증권을 만든 유안타금융그룹, 증권사로 출발해 중화권 전체 최대 투자은행이었던 타이신금융그룹 등이 유명하다. 국내 은행으로는 타이완은행이 입지가 탄탄하다. 대만제1금융권 시중은행은 미국의 시중은행과 비슷해 지방 별로 대형은행과 중소형 은행들이 난립한 구조를 띄고 있다. 지방은행이 상당히 많다.

이 중 푸본금융그룹은 골프테니스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듣게 될 이름인데, 골프, 테니스 분야에서 메이저 세계 선수권 대회의 주 후원사이다. 푸본그룹은 2019년 현재 푸본현대생명으로 한국에도 진출했다.


8.3. 오토바이, 자동차[편집]


일본과 아주 유사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오토바이가 국민 교통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대만도 오토바이 분야에서는 무시 못 할 노하우를 가진 국가다. 최근 국내에도 폭풍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SYM, KYMCO 바이크들이 바로 대만 출신이다. 다만 대만에선 스쿠터가 전체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레플리카나 네이키드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대만도 운전면허가 한국처럼 1종 보통에 해당하는 면허를 따면 125cc 미만 스쿠터에 대해 따로 면허를 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오랫동안 독자 브랜드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해외 브랜드(주로 포드, 닛산 등) 차량의 OEM 생산과 부품 산업이 주를 이룬다. 2019년 현재 대만 최대 자동차 제조 기업은 1947년 설립된 화태기차(和泰汽車, Hotai motor) 그룹으로 도요타 자동차의 OEM생산을 하고 있다. 도요타 뿐만 아니라 일본 브랜드의 자동차가 OEM방식으로 제조/판매되고 있다. 택시의 대부분은 토요타 코롤라일 정도(참고로 일본 택시는 모두 '크라운' 이다). 2009년 닛산 자동차 OEM 생산 기업인 위룽(Yulon)그룹이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 브랜드인 럭스젠(Luxgen)을 런칭했다.[60]


8.4. 자전거[편집]


일본시마노를 바탕으로 구동계 시장을 장악했다면, 대만은 프레임시장의 절대강자이다.

오토바이처럼 자전거 업계도 대만계 회사가 휘어잡고있다. 가장 큰 생산기업으로는 자이언트, 그 뒤로 메리다가 있으며 유럽, 미국 자전거 회사도 극소수의 상위 모델만 자국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생산은 위 기업들에게 맡긴다. 이 두 기업에서 전 세계 자전거 프레임의 60% 가량을 생산하며, 그 중 90% 가량을 자이언트에서 생산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 다했다.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 인접국들과 경쟁하며 쌓아올린 알루미늄 금형 및 탄소섬유 제작기술 덕에 품질 역시 매우 뛰어난 축에 속한다. 한국의 고가 브랜드인 첼로메리다에서 만들고 있다. [61] 특히 이 두 기업 모두 단순히 OEM만 하는게 아니라 자사 브랜드로도 자전거를 판매하고 있는데, 워낙 규모가 크다보니 국내에서의 부품 수급이 용이하고 가격 역시 매우 저렴한 축에 속한다.


8.5. MICE산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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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텍스 타이베이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에서 하는 컴퓨텍스 타이베이중화민국을 대표하는 대규모 산업 전시회이다. 컴퓨텍스 타이베이는 아시아 최대의 IT 분야 전시회로 성장했다. 중화민국 국가 영상에도 나온다.

행사는 좋은 걸 키웠지만 정작 전시장은 매우 부족하다. 난강전람관2019년 드디어 확장해서 75,600㎡이 되었으나 한국KINTEX(108,556㎡)보다 작다.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서울특별시COEX와 비슷한 규모이다.


8.5.1. 전시장[편집]



8.6. 대만의 기업[편집]




9. 관련 항목[편집]




10. 둘러보기[편집]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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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國府遷臺 '나라의 도읍을 대만으로 천도 했다'는 의미로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한다.[2] 특히 리덩후이 말기부터 천수이볜 시기까지 2001년도를 제외하면 연 평균 5% 가량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나 해당기간 동안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고 동결되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과 대만의 임금수준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20년 기준으로는 한국이 월등하게 앞서게 되었고, 일본과의 임금격차도 비슷하게 유지되었다.[3] 물론 평균적으로 보면 중국의 농어촌 지역의 벌이수준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허다해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대만의 1/3 수준이라지만 그렇다해도 대만인과 동동, 혹은 잘사는 인구가 억 단위를 넘으면서 대륙인들이 대만인들에 가졌던 열등감이 사라진것도 사실이기는 하다.[4] 비단 대만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제조업이나 IT 분야의 고급 인력은 실리콘밸리에 손색이 없는 고임금을 주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일본이나 한국의 인력도 대거 스카우트되고 있다. 다만 언어나 문화 관계상 대만만큼 직격탄을 맞는 나라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5] 매출 50위 이내에 석유화학 계통 4개 계열사가 있으며, VIA, 난야 등 반도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과거에는 대우 매그너스 등을 도입해 조립생산하기도 했다.[6] 주력사업은 생명보험, 은행 등 금융산업으로, 한국 방문객에게는 대만 내 미쓰코시 백화점이 익숙할 것이다.[7] 편의점 세븐일레븐 등 소매업과 식품사업이 주력. 프로야구단 퉁이 라이온스도 가지고 있다.[8] 폭스콘은 3~5%로 제법 높지만 페가트론, 위스트론 등은 1%를 간신히 넘긴다.[9] '성공한 공산주의' 딱지는 원래 싱가포르에 붙던 것인데, 싱가포르는 국유 투자회사인 테마섹의 영향력이 강해서 그렇지 그 소속 기업이 국영기업의 행태를 보이거나 심지어 전매 등 특권을 갖지는 않았다. 이런 면에서는 과거의 대만이 더욱 '공산주의'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국가주도 경제개발을 소련이 시작하고, 일본이 만주국에 이식하고, 한국과 대만 등이 이를 따라했으니...[10] 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 (ECAFE) [11] 1951년 기준으로 151달러였던 것이 1960년에는 154달러였다.[12] 칠레의 경우에는 1982년 외채위기의 여파로 1985년까지 1인당 GDP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불황기를 보였고 피노체트 정권이 끝났을 때인 1989년 기준으로 대만은 물론이고 한국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인당 GDP 수준을 보였다.[13]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조건이다. 사실 대한민국도 제대로 선진국으로 인식된 시기는 2010년대 이후이지만, 대만과 동일하게 IMF 기준으로는 1987년에 이미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1987년의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듯 실제 대만이 1983년에 완전한 선진국으로 인식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참고로 1983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2,882달러였으며 이는 동시기 한국의 1.3배 정도였다.[14] 일본이나 홍콩은 1970년대부터 선진국이었다. 싱가포르도 1980년대에 선진국으로 넘어갔으며, 한국의 경우 명목상의 선진국으로 분류된 것은 1980년대이며. 가장 최근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나라는 2016년 선진국으로 분류된 유럽의 리투아니아.[15] 참고로 이후 그리스의 1인당 GDP가 유로화로 뻥튀기되며 뒤쳐졌다가 그리스 경제위기가 터지고 난 후인 2014년 다시 대만이 그리스의 1인당 GDP를 추월했다.[16] 중국 기준에서 일개 대도시인 홍콩의 경제력이 중국 전체 경제력의 1/4에 달했을 시절도 있었다.(1993년) 외환위기 직전 전성기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중국의 90%에 달했다.[17] 한국은 1985년 이전에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으며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저 호황으로 경상수지 흑자액이 일시적으로 100억 달러대까지 도달한 적이 있었지만 3저 호황의 여파가 간 이후부터는 다시금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해서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경상수지가 매년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렇게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대만에 비해 경제운용에 있어서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IMF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18] 2022년 4월 IMF - GDP[19] 2022년 4월 IMF - GDP[20] Ceicdata[21] 2021년 10월 IMF - PPP 환율[22] 다만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지 않은 일본, 대만과 달리 대기업이 중소기업 대비 67% 이상 높은 임금을 받는다는 점은 생각해 봐야 한다. 반면 일본은 대기업-중소기업 차이가 약 46%이다.#[23] 삼성전자 역시 20~25%의 영업이익률을 보인다.[24] 물론 이건 TSMC가 고객. 특히 애플과의 거래를 위해 의도적으로 개발 같은 거 안하고 파운드리에만 전념하겠다고 한 측면도 있다. 즉 점유율이 유의미하게 떨어지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소리다.[25] 다시 말해 한국은 대기업들이 완제품 위주라 하청업체들을 통해 낙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인데(그 효과가 좋든지 나쁘든지) 대만은 대기업들조차도 외국계 기업의 하청이라(...) 낙수효과를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26] 6위. #[27] 12위. #[28] 1인당 GDP가 낮을수록 명목 GDP와 PPP와의 차이는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PPP 적용 1인당 GDP가 명목 기준의 2, 3배를 넘는 경우도 많은 반면, 스위스 등 최상위 선진국들은 오히려 PPP보다 명목 GDP가 더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 중 대만처럼 PPP와 GDP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국가는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대만은 예외 케이스에 해당된다.[29] 또 반대로 외국인들이 관광하기에 굉장히 좋다는 뜻도 된다. 대만의 물가는 대만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고만고만한 수준이겠지만, 외국인들이 자기네 통화로 환산했을 경우에는 무척이나 저렴해진다. 예를 들어, 대형 마트에서 코카콜라 1.8L 1개가 40 대만 달러(약 1,500원)로 거래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제품이 2,980원이며, 1,500원이면 500ml 짜리 정도 살 수 있다. 이는 중동의 레바논과 비슷한 수준의 물가이다. 사실 너무 저평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본토의 눈치만 없다면 무역업에서 꽤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 다만 실제로는 소매상들이라면 몰라도 규모가 있는 기업(특히 중국 본토에 공장이 없는 기업)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 자제하는 게 좋다.[30] 싸고 품질이 좋다는 것은 기업의 관점에서는 수익이 낮다는 뜻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인 원청업체의 부재는 원청업체 종속성 및 저임금 등의 원인이 된다.[31]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외환보유고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지속적으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고 있고, 2021년 현재 4460억 달러이다.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8~9천억 달러까지 늘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32] 그러니까 집을 사면 주차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주차장은 기본으로 딸려오기 때문이다. 개인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라도 구입 시 아파트 주차장 내 주차할 수 있는 권리가 자동으로 부여된다.[33] 다만 한국은 여성들이 이렇게 되면 그냥 비혼해버리겠다고 하지만, 대만은 남자 쪽의 장기적인 전망을 보고 결혼을 하는 차이는 있다.[34] 반대로 조선에서는 미쓰비시같은 중공업과 당시 동양 최대의 공업단지인 흥남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를 대표되는 중화학 공업을 집중적으로 키웠다.[35] 國府遷臺 '나라의 도읍을 대만으로 천도 했다'는 의미로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한다.[36] 복잡한 사정은 제쳐둔다 해도 중국은 양무운동으로 대한제국보다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빨랐다.[37]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금과 달러가 타이완으로 유입되었으며, 이러한 힘으로 대만은 90년대 초반까지 외환 보유고 세계 3~5위권(!)을 항상 유지했었다.[38] 물론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동유럽 국가와 소련의 원조로 어찌어찌 재건해내며 재빠르게 성장했다.[39] 일제 패망 이후 일본 자산을 몰수한 국민당 정부가 설립한 공기업인 대만당업공사가 현재까지 대기업으로 있다.[40] 한국의 재벌해체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오판 중 하나가 대만의 중소기업 국가론이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며 대만은 대기업 중심 경제인것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상위호환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의 중소기업 상당수가 하청인 경우가 상당한데 이것을 대만의 기업들에도 대입을 시키기 때문에 중소기업일거라는 인식이 생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폭스콘, TSMC 같은 매출 수십조원에 고용인원 수십~수백만이 넘어가는 초대규모의 하청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게다가 대만 기업들은 OEM 위주의 생산방식이어서 자체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대기업들과 달리 원가절감과 저임금 구조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다.[41] 태국 바트처럼 대만 달러에 대해서도 공세가 일부 있었지만, 대만은 금보유고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던데다(대만의 공식 금보유고는 2016년 현재 423톤으로 발표되고 있지만, 1990년대에는 350톤 정도로 발표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 정부가 국부천대 당시에 '문화재' 명목으로 반입한 상당한 양의 금은 공식 보유고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즉, 만일 진짜 급박한 위기가 찾아오면 비공식 금 보유고를 활용할 수도 있단 것.) 화교 자본들이 미리미리 해외자산을 인수해놨던 것들이 많아서 금보유고를 일부 처분하고, 화교 자본들의 해외자산 일부 처분만으로 대만 달러의 통화 가치를 여유롭게 지켜내고, 외환보유액 구성도 다변화하는데에 성공했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제일 당당하게 외환위기를 넘어선 것.[42] 80년부터 95년까지 16년간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7.7%이지만 대만은 4.3% 를 기록했다.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한국 8.0%,대만 7.5%였다.[43] 2017년 기준으로, 대만 직장인 평균 연봉은 약 60만 대만달러(약 21,500$),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은 약 3,600만원(약 32,000$), 타이베이 시 버스요금 15대만달러(약 500원, 추가요금 없음), 서울시 버스요금 1,200원(거리에 따라 요금 증가), 코카콜라 1.8L는 대만에서 40대만달러(약 1,500원), 한국에서 2,980원. 그 외 식료품 및 생필품 가격은 한국의 40~50% 수준이다.[44] 다만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매우 낮다. 코트라 타이베이에서 제공하는 2017.06.01자 대만경제뉴스에 따르면 대졸신입사원의 평균연봉은 1,200~1,3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한국은 3,228만원.[45] 한신저축은행은 이름만 유지하고 경영진 전부 교체[46] 상술했듯이 대만의 경제는 하청기업 위주로 굴러간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거의 죄다 하청기업 몫으로 돌아가고, 일반 국민에게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47] 2020년 상반기 한국이 중국의 COVID-19 방역을 빌미로 한 출입국 통제로 중국 진출 기업의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은 데 비해 대만은 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본토인의 입국을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논리와 상충되기 때문으로, 엄연히 자국 영토와 국민으로 보고 있는(중국은 거류중인 대만인에 대해 본토 호적 취득을 권장하고 있다) 대만인을 틀어막을 근거는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있으므로, 이는 중국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 또한 대륙 이외에는 COVID-19 이전에 준하는 비즈니스가 가능한 상대가 없었으므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48] 2020년 초에 경기 타격을 심하게 받았던 미국과 중국은 2021년 1/4분기에 각각 6.4%, 18.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49] 참고로 한국은 대중국 수출의존도가 24%이다. 대만보다 훨씬 낮지만, 한국은 한한령 등의 혹한을 겪은 후 신남방정책 등을 통해 어떻게든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다. 그래서 대만도 신남향정책이라 하여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거나 추진 중이지만... 성과가 영 시원찮다(...).[50]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보장해주는 생산품은 파운드리(하청)다. 파운드리 하나만 판 TSMC가 삼성전자와 전체 매출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기술적 우위를 이용한 파운드리 독과점에 있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자면 파운드리는 하청으로, 철저히 하청 대기업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셈이다.[51] 다만 대만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하청이기 때문에 언제 일감이 끊어질지 장담할 수 없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바로 하청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투자에 아주 적극적일 수밖에 없으며,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몫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물론 대만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펩리스 시장에 미디어텍이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52] 다만 여기에는 과장된 정보가 있는데, 한국 대졸자의 평균 초임은 3031만원(한국 고용정보원)이다.[53] 이 세 회사의 매출액을 합치면 인텔 매출액의 절반을 약간 상회한다. 다만 영업이익은 비교가 안된다. 인텔은 괴물[54] 전술한대로 대만이 세계 대부분의 메인보드 시장을 꽉 잡고 있으며 그 회사들이 Realtek 오디오 드라이버를 채용하기 때문에, 전세계 대부분의 컴퓨터에는 Realtek의 오디오 칩셋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55] 심지어 둘은 태어난 곳도 타이난시로 같다. [56] ACER 자회사 출신이다. 현재는 지분관계를 청산했다.[57] 바로 램버스 D램과 i820 칩셋 때문이다. 최대 800MHz까지 고속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램이었지만, 문제는 램버스 D램 값이 너무 비쌌다는 것. 1999년 800MHz짜리 기준으로 이 램 하나가 대한민국 돈으로 100만원이 넘어갔다.(여담으로 주로 팔린 사양은 700MHz 사양이었다) 램버스D램은 안정성이 꼭 필요한 서버급이면 몰라도, 가정용에 장착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당시 인텔은 PC133 SD램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고, 이 때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에서 694X로 인텔에게 제대로 강펀치를 날렸다.[58] 폭스콘의 한자 명칭. 최근에는 아예 일본 가전회사 샤프를 통째로 인수했다. [59] 대만에서 태어났고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일군 사람이지만 2005년도에 중국 본토 투자 문제로 대만 국적을 포기했고 중국에서 중신궈지(中芯國際, SMIC)와 신언그룹을 만들었다.[60] 위룽그룹의 모회사인 위룽기차(裕隆汽車)는 이미 1986년에 필링 101(FEELING/飛羚 101)이라는 고유모델을 발표하여 1995년까지 생산한 적이 있다. 다만, 품질 문제 등으로 인해 실패한 흑역사가 있다.[61] IMF시절 한국 자전거공장은 모두 폐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