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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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大阿飡

신라관등.

신라 때에 둔 17관등 가운데 다섯째 등급으로 파진찬의 아래고 아찬의 위다. 다른 이름으로 한아찬(韓阿飡), 한찬(韓粲), 대아간(大阿干)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대아찬이 제정됐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대아찬 관등은 418년 죽은 박제상에게 추증될 때 처음 나오며 대아찬으로서 활동한 이는 법흥왕 때인 525년의 사벌주 군주 이등이 처음이다.

2. 상세[편집]


자색 관복을 입었으며 신라에서는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골품제 참조. 6두품 이하는 아랫등급 아찬까지만 승진할 수 있었으며, 이런 점 때문에 6두품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중위제로써 아찬을 중아찬, 3중아찬, 4중아찬 식으로 나누기도 했는데, 어쨌든 6두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대아찬에는 오를 수 없는 제한이 있었기에 나말여초 때는 6두품이 호족과 신왕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원인이 된다.

발해가 건국된 후 신라 측에서 대조영에게 대아찬 관직을 하사했는데, 기록상 신라가 외부 세력에게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대아찬 관등을 준 건 신라 천 년 역사상 금관국 왕족, 고구려 보덕국 왕족, 발해 왕족 세 사례밖에 없었다.[1] 위와 같이 대아찬은 최소 진골만 가능한 등급이므로 타국 왕족은 신라 왕족과 동급이라고 인정해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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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기록 누락이나 다른 이유로 더 있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창녕 척경비에 기록된 8위 사찬에 오른 것이 현재 확인되는 마지막 기록이므로, 6두품의 진급 상한선인 5위 대아찬에 도달하기 전에 기록이 끊기기 때문에 그가 6두품을 받았는지 진골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