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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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字報

1. 대학가의 선전, 알림, 광고 벽보
1.1. 한국의 대자보
2. 인터넷 신문


1. 대학가의 선전, 알림, 광고 벽보[편집]


대학가의 벽에 크게 붙여서 정치적인 일이나 학교의 문제 등을 밝히는 벽보. 보통 전지로 공고하며 대학생들이 많이 사용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자보라고 하지만 활동가들은 그냥 '자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자보란 단어의 유래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인 1950년대 중국 전역에서 여러 주체가 대중선전용으로 붙인 벽보다. 조직, 단체 내부에 돌리는 소식지 성명서 같은 걸 소자보라 불렀고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벽에 큰 글자로 붙이는 벽보를 대자보라 했다. 이 대자보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와 함께 80년대 초중반까지 중국 전역에서 성행했다. 현대 중국의 영상 자료를 보다보면 농촌의 담벼락이나 대학내에 붙은 수많은 대자보를 발견하게 된다. 대자보의 중국어 '다즈바오'(Dazibao)는 꽤나 유명해져서 심지어 영어에서도 일반명사화되기까지 했다. 아울러 중국 대자보 속 독특한 한자 글꼴은 같은 시기 일본의 좌익 학생운동권에게 전해져서 일본 학생운동의 자보에도 현대적인 중국 한자 글꼴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대학 내에서는 정치시사적인 내용 외에도 학내 자치 활동의 알림, 동아리 홍보 등을 담은 비정치적인 벽보 또한 대자보, 자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냥 "포스터"와 동일한 의미.

1.1. 한국의 대자보[편집]


한국의 대자보는 중국의 대자보를 계승한 건 아니고 단어만 빌려온 것이다. 학생운동이 성행할 때 대학 내에 정치시사적인 벽보를 붙이는 건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일이기 때문. 80년대 초중반부터 당시 언론 탄압, 통제라는 악조건하에 하나의 언론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으나 이후 우리 사회의 언론 자유가 확보되고 대놓고 특정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 지원하는 언론매체가 생겨나면서 대자보의 정치적 영향력은 많이 사라졌다. 2010년 고려대의 한 학생이 자퇴하면서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쓴 대자보는 9시 뉴스에 언급될 정도로 사회적인 일로 확대되기도 했지만, 여러 대학에 확산되지는 않았다.[1]

2013년 12월 10일에는 고려대의 한 학생이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대자보를 작성해서 큰 반향을 얻었다.(#) 14일 이후 전국 대학가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019년 3월에는 김정은 서신을 표방한 대자보가 여러 대학에 붙기도 했다.#

2019년 1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보수성향 단체의 외부인이 단국대에 붙여 논란이 되었다. 신전대협 문재인 정부 비판 대자보 사건 참고.

대자보에 글씨를 쓰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코팅 전지 + 유성매직 콤보에다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야 한다는 특성상 구비전승되는 어떤 스킬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학생운동의 퇴조로 현재는 실전되어가는 중인 듯.

2023년 3월 22일에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죄인이 한때의 형제에게 고함"이라는 대자보를 통해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가해 사건을 비판했다. 출처

2. 인터넷 신문[편집]


파일:attachment/daejabo_news.jpg


표어는 "진보와 정론의 인터넷 신문"이다. 1999년 창간.

1998년 당시 PC통신에서 활동하던 온라인 논객하이텔의 이창은, 나우누리의 임상빈 등이 주축이 되어 설립되었다. 1999년 1월 23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우석훈, 김영국 등 학자들과 변희재(!)[2], 민경국 등의 인터넷 논객들의 주도로 참여하였다. 우석훈은 실제로 2011년까지 기고를 계속했다.

2000년대 초반이 리즈 시절로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원 성향(+대중적인 반일감정)의 논조를 보이며 강준만 교수가 시작했던 인물과 사상과 함께 활황을 띄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 단일화를 지지하면서도 특별히 어느 한 후보 편을 들지 않아 노무현 지지자였던 공희준과 변희재서프라이즈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변희재의 흑역사가 여러모로 아로새겨져 있다.

이후 세력이 많이 줄었으나 아직도 글을 내고 있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사건으로 말미암은 분당 이후에는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에 중립적인 면모를 보였다.

인기 기사 노출 방법에 문제가 있는지 2000년대 초반 함소원 누드집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된 기사가 아직도 상위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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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속칭 김예슬 선언.[2] 우파로서 정립된 그의 위명을 생각해보면 믿기지 않겠지만, 참여정부 이전까지만해도 변희재는 민주계에 그런대로 호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