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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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략적인 이해
3. 서방식 무기 체계, 그리고 국산화
4. 구조
4.1. 대규모 육군
4.3. 장기적인 인력 감소
4.4. 입대자원의 변화



1. 대략적인 이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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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 의료지원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동의, 다산부대를 파병했었다. 양쪽 지역에서 모두 민사심리작전이 크게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상 두 부대는 전투부대라기 보다는 재건부대였다.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건군 60주년을 맞아 퍼레이드를 벌였다

2011년 UN군으로 레바논에 동명부대가 파병활동 중이며 소말리아 해역으로 한국해군의 구축함들이 정기적으로 파병되어서 다국적해군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의-다산부대 철수 이후 아프간에 오쉬노 부대가 파병되어서 활동 중에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이 신장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 증강을 시작하자 한국군도 이에 발맞춰 대규모 군 현대화 및 전력증강사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이에 대해 군의 전력 증강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만연해 있지만, 사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한국이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니고, 한국 입장에서 솔직히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었다.

서방 진영 국가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육군의 비중이 상당히 높고 해군과 공군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동북아의 미국의 전략에 따라 국군이 육상 전력의 주를 담당하기 때문이다.[1]


2. 화력덕후[편집]


냉전 체제 하에서 제1세계 국가로서 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다른 서방권 국가들의 군대와 다르게 화력, 특히 지상군 포병 화력 및 장거리 타격 능력을 매우 중요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화력덕후 문서 참고. 괜히 국방부의 별명이 "포방부"인 게 아니다.

그러나, 이는 보병만 핵심이라 생각하던 이들 눈에 화력이 돋보인다고 말하는 반론도 있다. 게다가 해당 문서에 나오듯이, 화력 중시는 한국군만이 아닌 군 자체의 보편적인 요소이다. 한국군이 '더' 강조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한국군'만' 강조하는 건 아니라는 뜻.


3. 서방식 무기 체계, 그리고 국산화[편집]


한국군은 창설 직후부터 모든 면에서 동맹국이자 세계 최대의 군사강국인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한국군의 체계는 물론, 군사 장비도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인 NATO 서방제 장비가 많았다. 또한 미국 외에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다국적 장비를 들여왔다.

이후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자국산 무기를 개발하여 독자적인 한국제 장비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국산 무기와 장비 역시 미국산 무기와 장비에 큰 영향을 받았다. M-16 같은 소총에서 F-5 와 같은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면허 생산을 통해 국내에서 조립 생산하면서 미국제 무기 제작 기술을 습득했고, 이는 국산 무기 개발에 밑거름이 되었다. 아울러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도입한 무기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많은 독자적인 국산 장비를 개발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경제 위기를 겪고 있던 러시아가 우리나라가 빌려 준 외채를 갚을 수 없게 되자 현물로 대신 갚겠다는 의사를 타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는 불곰사업이 이루어졌다. 서방 국가인 미국 및 그 동맹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독자적인 군사 체계를 갖추어서 기존의 서방제 장비와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었다. 불곰사업을 통해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하면서 국군의 무기는 다변화되었고, 국산 무기 개발에도 도움이 되었다. 2020년 현재 러시아제 장비는 내구 연한 도래로 퇴역되었거나 퇴역을 앞두고 있다.


4. 구조[편집]



4.1. 대규모 육군[편집]




4.2. 징병제[편집]



대한민국 국군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대다수 청년들은 2년여의 기간(육군/의무경찰/해병대 18개월, 해군/해양의무경찰/의무소방 20개월, 공군/사회복무요원 21개월)을 의무적으로 복무해야만 한다.

징병에 대해서는 대체로 국가대치상황상 필요 악이라는 반응이지만 근로에 대한 각종 수당과 퇴직금은커녕 최저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임금으로 근무하면서 온갖 잡무에 강제로 동원되기까지 하고 있어 강제징용노동착취라며 공분을 사고 있다. [2]

전체적으로는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해군/공군/해병대는 지원제 형태인지라 일종의 모병제 비스무리한 형태로 모집되고 있다.

상하관계를 강조하는 문화로 인한 복종문화가 작용하여 대한민국 국군의 병력 자원은 매우 수준이 높은 편. 딸랑 한 두 달 교육시켜놓고 지대공 미사일이나 대형 레이더 같은 중요한 전술, 전략병기를 운용할 수 있는 건 이 덕분이 크다. 하지만 불합리한 명령에도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인 한국 사회의 악질적인 문제점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군대 특유의 폐쇄성과 합쳐져 이것이 전혀 고쳐지지 않는 심각한 이면의 문제점도 있다. 더 자세한 징병제 또는 모병제에 대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1993년 김영삼 정부 초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시행한 외부 용역 연구 결과, 현 남북 분단 지속시 복무 기간이 최소 1년 3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있었다. 물론 상근예비역의무경찰, 의무소방대 등 전환복무와 사회복무요원보충역 대체복무를 최대한 줄여 현역으로 복무케하고 군을 기계화하는 조건.

이러한 국방개혁 2020로 요약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포함하여 육군의 1군과 3군을 통합하는 지상작전사령부 창설, , , 군을 통합한 통합군 창설, 각 군 사관학교 통합계획이 진행중이다.

미국의 경우 2001년 9.11테러 직후 미국 국방부 연구 결과, 민간인을 징집하여 현대전에 투입하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당시 1973년 1월 1일 이후 폐지하였던 징병제를 부활시켜야 하느냐가 이슈였기 때문이다. 미군징병제 폐지 전 베트남 전쟁 당시 복무기간은 12개월이었다.


4.2.1. 인사적체[편집]


징병제로 인하여 병력이 많아지면서 이를 관리할 초급간부의 숫자도 많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인원은 쭉쭉 줄어드는 데다가 현역 장교들의 기수서열은 판검사 못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중간에 진급하지 못하고 짤리면 다른 직장을 구하기 힘든 나이가 되는 등의 문제로 영관급으로 넘어가게 되면 머릿수가 필요 이상으로 쌓이게 되어 결국 인사적체현상을 겪게 되었다.

특히 이 때문에 부사단장, 연구관 등의 직책이라든가 이것저것 많은 직책을 만들든가 같은 직책에 여러명을 임명시키는 등 자리의 수요는 적은데 공급은 많은 기형적인 현상에 직면해 있다. 물론 이런 인원들을 예비군 동대장요원으로 빼서 해결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인사적체뿐이 아니다. 현재 장교들의 진급은 실력을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상관에게 얼마나 아부를 잘 떨어서, 그리고 줄을 얼마나 잘 잡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병사들을 관리하고 전투력 증강에 힘을 써야할 시간도 없는데 상관 비위나 맞춰주고 있으니 답이 없다. 게다가 이러한 문화의 특성상 장교들의 임관 출신에 따라 진급의 여부를 가르는, 신라의 골품제를 연상시키는 어이 없는 문제가 당연시 되고 있다.

저런식으로 문화가 변질되다보니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치는데, 대한민국 남성장교의 부인은 사실 남편의 계급을 따라간다. 상관 집안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가해야하며, 김장철같은 시즌에는 상관집안 도와주느라 허리가 휜다. 자식들의 경우에도 나이가 많은 상관의 아이가 자기 자식을 괴롭히거나 때려도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실정이다.


4.3. 장기적인 인력 감소[편집]


출산율 추이를 보았을 때 1970년대에 출산율이 4명대로에서 2명대로 떨어지면서 출생아수가 102만대에서 75만(1978년)까지 떨어진적이 있었다가 80년대 초반에 잠깐 80만 중반선을 기록하다 80년대 중반부터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60만선으로 급감했고[3] 90년대 초중반에 출생아수가 70만 초반선으로 올랐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생-2000년생은 다시 60만대로 줄어든 데다가 2002년부터는 출생아수가 40만선으로 떨어진 이래 현재까지도 연 50만 이상을 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2010년대까지는 1990년대 생들이 남아선호로 인해 상대적으로 병역자원의 감소가 덜해서 어찌어찌 병역기준을 완화로 버틸수 있다쳐도 결국 2020년대부터는 병역자원이 크게 감축되기 때문에 병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 때문에 국방부는 부사관을 두텁게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부사관 확충을 위해 부사관 학군단을 설치하고 부사관과를 세우는 등 다양한 획득과정을 만들고 있으며 또한 화력덕후화를 추진하여 보병 전력이 급격히 감소하더라도 적의 규모를 한층 깎아먹음으로써 방어에 별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에서 보병은 방어 과정에 한하여 극히 보조적인 역할만을 맡고 공세와 방어의 주전력은 포병. 공세와 방어 모두 보조전력은 전차가 맡을 것으로 보이나 2016년 5월 현재 국방부는 되려 의경[4], 공익근무요원 등의 대체복무를 크게 축소하고 입대가능 연령대 남성의 90%를 징병할 계획으로 나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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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육군을 중심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4.4. 입대자원의 변화[편집]


2000년대부터 다문화가정등에서 혼혈아가 태어나면서 비율이 점점 높아지자 혼혈아의 입대를 막던 규정이 사라졌다. 2020년대부터 이들의 입대는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2012년 기준으론 200명 수준의 다문화가정 출신 병사가 근무했다.2014년 3월엔 300명이다. 관련기사 2014년에는 혼혈 출신 장교도 배출되었다. 관련기사

2012년에 다문화가정 출신의 부사관공군에서 배출되었다. 왼쪽은 일본인 어머니, 오른쪽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후보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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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아버지와 칠레인 어머니를 둔 첫 혼혈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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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대로 해상군의 주를 담당하는 일본은 해군의 크기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비대하다. 사실상 미국 다음으로 생각하는게 빠를 정도. 그래서 두 국가 모두 공군은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등 가상적국의 공군을 상대로 제공권을 일방적으로 뺏기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확보하고 있다.[2] 하지만 유사시 북한의 대군을 최단기간 내에 격파하고 신속하게 북진해 북한 지역을 점령 및 영토화 하려면 보병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징병제를 통해 병력규모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만약 중국군이 개입한다면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병력이 필요하다. 설사 미국이 개입한다 가정해도 육군은 해군이나 공군처럼 신속하게 이동이 어려워 한국 단독으로중국의 육군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서 대규모 병력운용은 필수사항이다. [3] 덕택에 2000년대 중반에 대대적으로 병역기준이 완화되었다.[4] 어차피 2022년이면 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