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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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기관(機關)·직위(職位) 및 이를 수행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은 제20대 윤석열로, 임기는 2022년 5월 10일부터 2027년 5월 9일까지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 제66조에서 정의하는 헌법기관으로, 국가원수[원] 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며(제1항),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며(제2항),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3항). 또 삼권(三權) 가운데 행정부의 수장을 맡는 정부수반으로서 모든 행정권은 대통령에 속해 있다.(제4항)
헌법 제73조가 정하는 바에 따라 조약의 체결·비준권, 외교사절의 신임·접수·파견권, 선전포고권과 강화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제74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을 가진다.[원] 이는 대통령의 핵심적인 권한[2] 으로서, 대통령은 모든 군인[3] 의 최고 직속상관이 된다. 이 밖에 대통령은 행정상 대통령령을 발령할 수 있으며, 유사시 긴급명령과 계엄령을 선포할 권한을 가진다.
한편, 대통령은 헌법 제67조 제1항에 따라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임기는 헌법 제70조에 따라 5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중임(重任; 현직자의 차기 재임)할 수 없다. 따라서 연임(連任) 또한 할 수 없으며 단임(單任; 한 사람이 한 번만 역임)만이 가능하다. 또한 제128조 2항에 따라 개헌을 통해 임기를 늘리거나 중임 가능여부를 변경하더라도 이것이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되므로, 개헌을 통해 스스로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역사[편집]
한국사에서 근대적인 대통령에 해당하는 직위는 임시정부 시절에 이미 존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의원내각제(의회제)를 채택하였는데, 초대 국무총리로 추대된 이승만이 이미 해외 서신에 '대통령'으로 번역될 수 있는 'President'란 칭호를 사용하여 안창호의 이의제기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 당시의 사건을 '대통령 참칭 사건'이라고 규정하려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 당시의 상황은 3·1 독립선언 직후로서 수많은 임시정부가 난립하였고, 굵직한 임시정부였던 한성정부에서도 국가원수인 '집정관총재(執政官總裁)'직에 이미 이승만을 추대한 상태로서 이승만은 이 '집정관총재'의 번역어로 'President'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사용하였을 뿐, 국문으로 '대통령'이란 어휘를 쓴 것은 아니었다.
이후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성정부, 대한국민의회 등 3대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의 통합임정을 구성하면서 임시대통령(臨時大統領)을 국가원수 겸 행정수반으로 하는 대통령제로 임시헌법을 개정하였고, 이와 동시에 비로소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임시대통령에 정식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던 중 이승만이 위임통치 청원 사건으로 인해 탄핵되자 재보궐선거를 실시, 한국통사의 저자로 유명한 박은식이 선출되어 제2대 임시 대통령이 되었다. 박은식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무령제'로 개헌하고 사임하였고, 얼마 안 되어 노환으로 서거하였다. '국무령제'→'주석제'를 거쳐가며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직이 사라지나 싶었지만 광복을 맞이하면서 되살아났다.
8.15 광복 이후 제헌국회에서는 제헌헌법을 제정할 때,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내각제를 도입할 것인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본디 유진오 박사 등이 주도한 헌법 초안은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국무총리를 행정수반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로 기초되어 있었는데, 1948년 6월 15일 이승만이 헌법 기초위원회에서 의원내각제로 된 헌법 초안을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급히 대통령제 헌법으로 변경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헌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있는 전통적인 대통령제적 정치체제를 규정하면서도, 내각제적 요소인 국무총리까지 함께 존재하는 헌법이 된 것이다. 제헌국회는 7월 12일 이런 내용으로 제헌헌법을 제정, 7월 17일에 공포하였으며 7월 20일 이승만 후보(제헌국회 의장)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러한 특이한 국가조직은 제2공화국에서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잠시 중단되었다가, 제3공화국 헌법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부통령은 없고 국무총리가 행정부 2인자로서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대한민국 특유의 형태로 되살아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할 부통령을 함께 선출하는 것이 보통으로서 부통령은 대통령과 동일한 방법으로 선출되므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이 인정되며, 대통령제에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행정수반까지 겸하므로 총리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특이하게 부통령은 없고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1순위자가 되는데, 대한민국이 이런 특이한 체제를 유지한 데에는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총리라는 직함을 가지는 타국 내각수반과 달리 행정부 수반이 아니며, 대통령권한대행자로서의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여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있으나, 간혹 국회의 동의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국무총리서리'라는 직함으로 사실상의 총리직이 수행되는 경우가 있어 그때마다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처럼 대통령 자리를 4번씩 연임해도 대수가 넘어가지 않고 '제3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지만, 대한민국은 이와 달리 집권을 할 때마다 대수를 붙이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연임할 경우 대수가 넘어가서 '제5-9대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제 체제의 제6공화국 시대가 열리면서 이러한 경우는 사라졌다.
6월 항쟁 이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쿠데타의 힘을 통해 대통령이 되어 정통성이 결여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수립되고도 한국 대통령은 여타 정치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견제가 미진하여 대통령이 본인의 결단에 따라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가 있다. 그렇기에 야당을 무시한 독선적인 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말미암아 퇴임 이후 말년을 좋게 보낸 사례가 없다. 설사 대통령 본인에게 피해가 오지 않아도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이나 가족이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만화가인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서는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제대로 얻고 명예롭게 은퇴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출판 당시 이원복은 한국에 대통령 이름을 딴 거리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 현재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윤보선로가 존재하며 경상북도 구미시에는 박정희체육관, 광주광역시 서구에는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은 내각제의 특성상 국가원수로서의 입지가 좁았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불호가 매우 심하게 갈리는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원복이 전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 즉 "만인의 존경을 받은 대통령이 없다"는 명제는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국민의 존경은 아니지만 많은 존경을 받는 권력자나 대통령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산업화의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정치권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박정희와 김대중의 상징적 이미지는 무시하기 어렵기에 두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설령 과오에 대한 비판을 하더라도 치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정을 하고 있다.[4][5]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나라 어린이들의 올바르고 씩씩한 장래희망으로 손꼽혔던 대통령은 점차 긍정적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강하다[6] . 그러나 이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들이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보다 더 청렴해서가 아니라, 국가원수 모독법으로 처벌하던 시절에 비해 대통령의 실책이나 부당한 점들도 공개적으로 공론화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한국 정치가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국민들이 시급히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국정 과제 및 그 해결 방향이 크게 달라져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현상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며 민주국가의 당연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통령 권좌는 다른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인물의 마지막 종착역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정치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대통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얻어 정계에 진출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윤보선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가였고[7] ,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 최규하 전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 김대중[8] ,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이며,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변호사로서 명성을 얻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계에 발을 들이기 이전부터 대통령의 딸(영애)로 유명했으며 정계 입문 이전에 육영재단이라는 복지재단의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윤석열 현 대통령도 검사로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대한민국에서 순수하게 전업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은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후 사회 생활 자체를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보좌관으로 시작하여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김영삼 전 대통령 뿐이다.
2.1.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명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대통령 권한[편집]
3.1. 헌법기관 구성에 관한 권한[편집]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정식 임명하며,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한다. 따라서 법대로 말하자면 각 부 장관의 임명은 국무총리의 제청만 얻으면 되며 국회의 동의는 필요 없다. 법률에 의해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리긴 하나 대통령이 청문회의 의견에 법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
-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직접 임명하는 자리만 절차상 따져도 3~4,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0]
3.2. 입법, 행정, 사법에 관한 권한[편집]
- 국군 통수권 - 물론 대통령의 신분이 군인인 것은 아니다. 현대의 민주국가에서 국가원수는 반드시 '일반인(문민)'이어야 하며, 모든 군사조직과 소속 군인들은 문민 국가원수의 명령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제복군인 최선임이 '총사령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인 것은 이 때문. 전 군에 대한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은 어디까지나 문민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귀속되며, 제복군인들은 대통령의 참모인 것이다.
- 공무원 임면권[31] - 직책에 따라서는 지명권이나 제청권 없이 임명권만을 행사하는 경우(ex: 각 부 장관이나 대법관)도 있고, 임명은 대통령 권한으로 하되 해임(면직)할 권한은 없는 경우도 있다.
- 사면, 감형, 복권의 권한 - '사법권 침해 아닌가?', '사법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권한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가 아닌 '국가원수'로서 가지는 권한이며, 사법부가 이러한 권한을 자체 행사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 법률안 제출권 -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의원내각제의 요소(국무총리의 존재)를 일부 채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행정부 역시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단, 행정부의 각 부처가 개별로 법률안을 제출할 순 없고, 국무회의 등을 취합해 대통령 명의로 제출해야 한다. 물론 이것을 통과시킬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국회에 달렸다. 대한민국의 경우 국회 자체에서 발의되는 법률안보다 대통령이 제출하는 법률안이 더 많아, 국회의원들이 본업을 게을리한다고 욕먹기도 한다.
- 법률안 거부권 -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공포를 앞둔 법률안을 대통령만이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해당 법률안에 대하여 지체없이 다시 의결하거나 폐기하여야 한다. 재의결을 위해서는 과반수 출석 및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의결된 법률안은 다시 행정부로 넘어가는데, 이때에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국회의장 직권으로 공포되며, 대통령이 공포한 것과 동일한 법 효력을 가진다. 법률안 거부권은 전부 거부만 가능한데, 일부 거부를 허용하면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주는 형식이 되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단, 전부 거부하되 거부 사유로 "이러이러한 조항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할 순 있다.
- 행정입법권 -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행령이 대통령령이다. 법률과 달리 국회의 통과를 필요치 않으며 국무회의에서 처리한다.
- 행정부 구성권 -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부의 각 부서와 기관을 조직할 수 있다. 즉, 새로운 부서나 기관을 만들 수 있고 또는 폐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각 부서와 기관을 책임질 장인 장관이나 기관장을 임명 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실 내부의 인사나 조직들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 개헌 발의권 - 대한민국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다. 이후에는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은 뒤 국민투표를 거쳐야 헌법 개정이 가능하다.
3.3. 국가 긴급권(긴급조치권)[편집]
흔히 말하는 계엄령과 같이 국가에 중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의 판단으로 일시적으로 법률의 지위를 가진 명령을 내리거나 사법부의 활동을 일부 제한할 수 있는 권한.
- 긴급명령권: 신속한 대처를 요하는 국가적인 위기사태에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임시로 법률의 지위를 가진 특별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쉽게 말해 위기 사태가 터졌는데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법률이 미비할 때, 대통령이 임시로 법률을 만드는[32]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후에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명령은 폐기된다.
- 계엄령: 국가 비상사태 시, 행정권과 사법권을 군대의 지휘하로 이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내릴 수 있는 명령. 국회의원 과반수의 요구 시 이를 취소하여야 한다. 1987년 국민투표로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성립된 이후로는 발동된 적이 없다.
3.4.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는 수행하기 어려울 때에는 제1순위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신 대행하며, 국무총리 역시 공석일 때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대로 권한을 대행한다. 이때의 제1순위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고 제2순위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다.
- 궐위(闕位)[33] :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34] , 사임[35] ,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의해 파면된 경우[36]
- 사고(事故):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거나,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경우[37] 등 직위에 있으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38]
4. 예우와 특권[편집]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로서의 지위가 있으므로 군은 '대통령에 대한 경례\'로써 예를 표시한다. 이때 사용하는 의전곡으로 봉황이라는 음악이 있다. 군 의장대는 이 음악이 연주되는 1분동안 예포 21발과 경례로써 예를 표하게 된다.
대통령의 상징으로 봉황 2마리가 둘러싼 무궁화 문양이 깃발과 휘장의 형태로 사용된다.[39] 봉황은 전근대 시대부터 왕을 은유하는 상서로운 생물이니 만큼 그 격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휘장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1967년에 있던 대통령 공고 7호가 최초이지만, 실제로는 그 전부터 대통령 관련 상징으로 쓰였다. 1955년 제2대 이승만 대통령의 의전차량 번호판, 1960년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의 의전차량 번호판에도 봉황 휘장을 썼는데, 현재와 같이 푸른 바탕에 두 마리 봉황이 무궁화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으나 봉황의 날개와 꼬리 방향이 현재와는 약간 다를 뿐이었다. 1963년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장식에도 봉황이 사용되었다.
과거에는 술자리에서 대통령을 욕했다가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고, 국가원수모독죄(國家元首冒涜罪)라는 죄도 있었다.[40] 지금은 그런 경우가 사라져서, 도를 넘은 비방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만 고발할 수 있다. 모욕죄는 친고죄, 명예훼손죄는 친고죄, 혹은 반의사불벌죄라서 대통령을 심심할 때마다 껌 씹듯 씹어도 그 대통령이 고소하지 않는 이상은 별 상관없지만,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로 제3자가 고발할 수 있어서 단체나 정당의 고발로 명예훼손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권리이며 인격에 대한 심한 폄훼와 인신공격과 같은 비방, 욕설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은 모든 대한민국 군인을 포함한 행정부 산하 공무원들의 직속상관이기 때문에, 행정부 산하 기관 공무원이 대통령을 어떠한 경우에도 모욕하는 경우(비방, 욕설, 험담)에는 군형법 등에 있는 상관모독죄로 처벌 받을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 전제군주제의 역사가 길었던 데다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군부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전제군주처럼 여기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하지만 제6공화국 헌법이 시작되고 나서는 대통령을 장관이나 총리와 같은 나라를 운영하는 고위직 공무원의 한 종류로 바라보는 인식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인 2008년 2월 21일과 2월 23일에 방영했던 MBC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은 겉보기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치인 것 같지만 막상 올라보면 결국 권력의 톱니바퀴들 중 하나'라고 했다. 권력의 톱니바퀴라는 표현은 좀 어두컴컴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정치 기구 하나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상호 간의 견제와 조율을 이루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당연한 역할과 위치를 표현한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가 확립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는 대한민국의 최고 훈장 등급인 무궁화대훈장을 수여 받을 수 있다. 다만 이것에 대해 논란이 많다. 훈장은 뚜렷한 공적이 있는 사람 혹은 단체에 수여하는 게 원칙인데,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만 되면 자동으로 수여되며, 대통령이 셀프수여하기 때문이고[41] , 우방국 국가원수 부부에게도 선물처럼 증정된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반 및[42] 국군통수권자로서 모든 공무원 및 군인들의 최상위 상급자이다.
4.1. 호칭[편집]
정식 외교 의전상으로는 '각하'(閣下, His/Her/Your Excellency)경칭을 사용한다. '각하' 경칭은 정부수립 초기에는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 군 장성과 각료들에게도 쓰였으나, 해군 제독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나중에 국방부장관으로 영전한다.)이 “각하는 대통령 한 분으로 족하다”며 각하 경칭을 사양한 일화가 유명하며, 김성수 전 부통령도 '각하' 경칭을 사양하는 등의 사례가 겹치면서, 국내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경칭으로 굳어졌다. (다만, 외교 무대에서는 현재까지도 각국 외교장관 등 각료나 특명전권대사 등 외교사절 또한 '각하'(H.E.)로 경칭하는 것이 예절이다.)
민주화 이후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는 '각하' 표현이 권위적이라고 보아 대통령을 그냥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도록 지시하여 언론에서는 '대통령 각하' 표현이 사라졌다. 다만, 청와대 내부와 측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각하'라고 불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청와대 내부에서도 쓰지 말 것을 지시하여 정식으로 사라지게 되었다.[43] 그렇게 한동안 '각하'라는 말이 사라지는 듯 싶었으나, 이명박 정권기에 (비공식적이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이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탈권위주의적인 시대 풍조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며, 이를 비꼬는 가카라는 표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국내에서는 이처럼 '각하' 표현이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의전을 중시하는 외교 현장에서는 당연히 각하라는 경칭을 사용하며, 오히려 누락하면 결례가 된다. 대중 일반에 알례진 예로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영어 트윗에서 'H.E.(His Excellency) Mr. Moon Jae-in' 이라고 호칭한 경우가 있다. # 다만, 한국어 트윗에서는 그냥 문재인 후보라고 호칭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또한 각국 정부 수반에게 축전이나 조전을 보내면서 'H.E.'라는 접두어를 반드시 붙이고 있으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는 외국 정상으로부터 받거나 외국 정상에게 발송한 서신의 국어 번역본을 공개할 때에는 '각하'의 어감 때문인지 '대통령 각하'가 아닌 '대통령 귀하'라고 번역해 공개하고 있다.[44] 그 밖에도 2017년 12월 1일 이국종 교수가 청와대 초청자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호칭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군이나 정부 내부적으로 보고서 등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VIP로 지칭한다. 과거에는 코드원, 각하 등으로 표현되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VIP로 쓰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내부에서 실명이 아닌 은어를 사용하는 것은 박정희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꺼리던 제3공화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경직스러운 분위기에서 대안으로 PP(President Park)라는 은어가 자연스럽게 내부 문건 등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 변형되면서 VIP 표기를 한다는 것.[45]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보도자료에서까지 VIP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밖에 上 또는 어른, 어르신,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던 시절엔 BH(Blue House)로도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4.2. 불소추 특권[편집]
완전히 면책(免責)되는 것이 아니라 재직 중에 한하여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뿐이며, 재직 중에는 대통령 기소가 법률상 불가능하므로 재직 기간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46]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하여 기소할 수 없다면 수사도 당연히 못 한다는 견해와, 기소가 불가능하더라도 수사는 필요할 수 있으므로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을 뿐인 헌법 84조를 수사도 못 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 임기 중에 제기되었던 모든 피의 사실이 한꺼번에 수사망에 오르게 된다. 물론 대통령 본인이나 주변 인물들이 잘 처신하면 문제가 없지만.
2023년 기준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역대 대통령 중 본인과 직계가족, 친인척이 모두 법정구속되거나 기소되지 않은 대통령은 문재인이 유일하다. 다만 아직 퇴임 후 1년밖에 안지났기에 기소 되지 않을 거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전두환이나 이명박처럼 퇴임 후 몇년동안은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다가 정치 성향이 다른 새정부가 출범한 뒤 구속되었듯이 퇴임한다고 바로 잡혀가는건 아니기 때문. 실제로도 현재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각종 범죄 의혹들을 수사중이다.
5.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통령실 2층 국무회의실 입구 벽면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준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19대 대통령 문재인까지 12명의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는 청와대 무궁화실 복도에 사진이 걸려있다.
6.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배우자인 프란체스카 도너부터 20대 대통령 윤석열의 배우자 김건희까지 12명이다.
7. 역대 취임식장[편집]
- 중앙청[47] (제1~3대/제5~7대)
- 태평로 국회의사당 (제4대)
- 장충체육관 (제8대~10대)
- 서울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제11대~12대)
- 여의도 국회의사당[48] (제13대~)
8. 생활[편집]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과 퇴임 후 예우는?[49]
8.1. 거처[편집]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은 6.25 전쟁 시기에 부산광역시 임시수도기념관[50] 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전원 재임 기간 동안 청와대에서 기거했다.[51] 청와대 내부에서 관저와 집무실을 오가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MBC에서 MBC 스페셜로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에 방영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면, 대통령의 일상과 청와대에서 자세히 나온다. 유튜브 링크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했다. 집무실과 관저를 분리,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 국방부 신청사, 대통령 관저는 한남동 공관촌의 외교부장관 공관을 사용하기로 확정되었다. 용산구에 위치한 현재의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실로 불리고 있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를 행정수도로 사용하는 대비를 위해 국회 세종의사당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대한민국 대통령 세종관저도 2027년까지 신축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8.2. 급여[편집]
대통령도 공무원이기에 다른 공무원처럼 연봉을 받는다. 모든 공무원의 수장이므로 모든 공무원 중 가장 많은 급여를 받으며, 2017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2억 1,979만 9,000원을 수령했다(세전). 그 외에도 직급보조비 월 3,200,000원이 추가로 지급되며, 다른 공무원들처럼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정액급식비 등을 별도로 수령한다.출처
대통령은 공무원 중 최상위에 있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월급이 곧 대한민국 전체 공무원 월급의 기준이 된다. 대통령이 자신의 월급을 올렸다면서 취지를 왜곡하는 기사들이 가끔씩 올라올 때가 있는데 이는 공무원의 월급이 물가 및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오르면서 같이 올라간 것이다.[52]
한 마디로 고위공무원단과 급여를 똑같이 받되 당연히 제일 많이 받는다고 보면 아주 쉽다.
8.3. 식사[편집]
청와대 내부에 역대 대통령의 식단이 정렬 전시되어 있다. #[53]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식단
각 대통령마다 식사 습관도 제각각이었다.
- 이승만은 오랜 미국 생활로 인하여 식사가 타락죽을 제외하고 모두 서양식이었다. 주요 식단이 샌드위치, 햄버거, 와인, 카스텔라다. 따로 즐겨먹던 음식은 현미떡국이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도 즐겼는데, 6.25 전쟁 때엔 나라 형편상 대통령이라도 그걸 매일 먹을 수가 없어, 덴마크 병원선에 위문 핑계로 자주 들러 대접받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
- 윤보선은 명문가 집안답게 귀족적인 성격이라 비교적 화려하고 양도 푸짐하게 먹었다.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전골, 너비아니 같은 고급 요리들을 주로 즐겨 먹었다. 다만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부유한 유력 양반 가문 출신치고는 이례적으로 백미밥이 아닌 잡곡밥만 먹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청빈해야 한다는 양반가다운 집안 가르침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근데 위에서 언급한 반찬들 생각하면 청빈한 삶과는 거리가 먼 식단이다. 걸인의 밥, 왕후의 찬이 금주와 잡곡밥이라는 건강한 식단을 그의 장수의 비결로 꼽는 사람이 많다. - 박정희는 윤보선과는 반대로 빈농 집안 출신이어서인지 소식가에 식단도 간단했으며 애주가였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멸치볶음, 순두부, 막걸리, 빈대떡, 소량의 열무김치 정도에 불과했다. 좋아했던 것도 비름나물 비빔밥이었다. 대체로 군인 출신들은 활동량이 많아서 식욕이 왕성한데, 박정희는 신기하게도 식욕이 별로 없었다. 차녀 박근혜도 식욕이 별로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유전적으로 식욕이 적은 체질인 듯하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 민감했던 성향이 식단으로도 드러났는데 반찬 3가지 이상이 나오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대신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소문난 애주가답게 술을 좋아했는데 양주부터 막걸리, 폭탄주 등 대부분의 술을 가리지 않고 즐겼으며 특히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막사"는 영화나 드라마 등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박정희가 즐겨마시는 대표적인 칵테일로 자주 묘사됐다.
- 최규하도 박정희처럼 간단하게 먹었다. 식탐이 별로 없었다고 하며, 갈비탕, 나물, 생선구이, 전골, 과일주 정도가 주요 식단이었다. 사실 최규하의 성격과 그의 집안이 소싯적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다. 그 외에 평소 즐기던 음식도 국수, 콩자반, 냉면 정도였다고 한다.
- 전두환은 육식주의자에 칼칼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겼다. 조개구이, 불고기, 돼지고기 편육, 생선회, 떡갈비, 청주 등 고기 위주의 식단이었다. 쌀밥도 잘 먹는 편이었다.
- 노태우는 전두환과 식단은 비슷하지만, 전두환보다는 스케일이 작았다. 두부조림, 소갈비구이, 생선튀김, 복분자주, 맥주 정도가 주요 식단이었다. 그 외에 경상도 내륙 일부 지역의 토속 음식인 갱시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 김영삼은 전두환 못지 않게 잘 먹었다. 그 유명한 칼국수를 비롯하여 랍스타, 야채 샐러드, 전복죽, 양갈비구이, 포도주, 설렁탕 등이 포진되어 있다. 섬마을 출신이라서인지 해물을 좋아해서 대구나 도미를 이용한 생선미역국도 즐겼다고 한다.
- 김대중은 김영삼과 전두환을 절충한 형식이었는데, 역시 전라남도 해안가 출신답게 홍어삼합을 매우 좋아했으며, 그 밖에도 우거지 갈비탕, 된장찌개, 해물전골, 매운탕, 산낙지, 조기찌개, 양장피, 해삼요리 등을 즐겨 먹었으며 대식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야식으로 라면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 노무현은 같은 경상도 농촌 서민 출신인 박정희와 대체로 비슷했다. 막걸리, 삼계탕, 모둠전, 강냉이, 군고구마 정도. 좋아하던 음식도 소고기국밥과 삼계탕 정도였고, 또 1주일에 두세번 정도 콩나물과 계란을 넣고 후추를 뿌린 옛날식 라면을 자주 즐겨 먹었다. 라면은 주로 무파마를 선호했다. 다만 박정희와 달리 식사량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 이명박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절충형이다. 김영삼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명박은 냉면을 좋아했다. 샌드위치, 나물, 냉면, 배추김치, 고기 등이 주요 식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군것질거리도 좋아했고,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노년층은 잘 즐기지 않는 음식들도 잘 먹는 등 뭐든지 잘 먹었던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가리는 게 있었다면 잡곡밥 정도인데, 어렸을 적 가난했던 시절에 쌀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어서 그랬다고 한다.[54]
-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와 식성이 비슷했고 식사량 자체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당시 관저에 거주하며 식사 및 세탁, 방청소, 심부름를 담당했던 요리연구가 김막업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는 평상시 식사를 된장찌개, 나물, 멸치조림, 계란후라이 같은 반찬 몇개로 해결했으며 혼자 식사하기를 좋아해서 거실에 식사를 준비해놓고 물러나면 방에서 나와 혼자 식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 문재인은 평상시에는 청와대 참모진 및 직원들과 구내식당 밥을 먹으나, 외교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외교 관례에 따라 적당히 화려한 음식을 먹었다. 공식 만찬들에서 메뉴가 해산물을 메인으로 둔 경우가 많았었다는 점을 볼 때 생선회와 해산물 종류를 선호했다고 여겨진다. 해외 순방 때에는 외교 관례 혹은 일정에 따라 조달할 수 있는 음식들을 주는 대로 먹었다.
- 윤석열은 상당한 대식가이자 미식가다. 검사 시절에도 검찰청 내부에서 손수 밥을 해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전국 곳곳의 유명 식당을 꿰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요리를 즐겨 하고 실력 또한 출중하다.[55] 당선인 시절부터 메뉴를 가리지 않고 맛집들을 편하게 다녔으며, 취임 후 대통령실 인근의 국수집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56]
안전상 이유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이 음식을 손수 혼자 요리할 수 없다. 식중독 및 음독자살 문제는 물론, 설령 자살이 아니더라도 음식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독약이나 식중독균 등 독성 물질이 투여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뭔가 먹고 싶으면 운영관에게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며, 이들이 경호처 담당자의 검수 하에 조리해 내 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는데, 본인이 라면 하나도 직접 편하게 끓여먹을 수 없어서 운영관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조리법대로 라면을 끓이게 하고 반개씩 나눠서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2018년 퇴직한 천상현 셰프[57] 의 발언에 의하면 주말에는 청와대 직원들 방해하면 안 된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끓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재료 준비를 직접 하는 건 안 되더라도 재료의 안전이 제대로 확인되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조리하는 정도까지는 대통령 내외도 가능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 역시 대식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한 동시에 본인이 손수 직접 요리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이러한 조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그리고 요리사 개인에게는, 청와대 요리사를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려서 영업할 경우 청와대 요리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붙어서 그가 만드는 요리는 그 값이 월등하게 상승한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식사를 준비했던 신충진 운영관이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 연 치킨집은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고려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인근 대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서 사장이 바뀌기 전까지 그야말로 날개가 돋았다고 한다.[58] 다만 현재 그의 근황은 알려진 바가 없다.
8.4. 교통수단[편집]
9. 출신[편집]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편향) 현상이 심각하여 서울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도는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대통령 중 수도권 출신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인 윤석열 밖에 없다. 이러한 원인으로 현재는 대한민국의 인구 분포를 봤을 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지만, 이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촌향도 현상에 의한 것으로, 이전 세대들 중에서 서울특별시나 경기권 본토 출신은 인구수가 적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까지 가장 늦은 시기에 태어난 대통령은 제20대 윤석열(1960년 생)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출신이다.
수도권 출신 대통령도 2022년이 되어서야 처음 탄생하였으며[59] , 서울특별시 출신만 나왔고 아직 경기도나 인천광역시 출신 대통령은 없다. 대한민국 인구 분포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촌향도 시기에 정착한 상경민들이 결혼하고 낳은 자식들은 보통 1970년생~1980년대생 이후인데, 실제로 서울특별시 출신 인구가 급증한 시기가 이 세대이다. 심지어 경기도 지역은 서울특별시가 인구 과포화가 되어 외곽으로 사람들이 밀려나는 시기인 21세기가 되어야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하며, 그 이전엔 오히려 경상남도 등 타 도에 비해서도 시가 적고 군이 많았다. 따라서 세월이 지나 이 세대가 대통령에 오를 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에도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등 지역 대도시 출신이 아직 한 명도 없고 거제시, 신안군 등 주변 소도시 출신만 있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이촌향도 이전의 인구 분포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황해도 출신의 이승만과 전라남도 출신의 김대중, 일본 오사카 출신의 이명박,[60] 서울특별시 출신의 윤석열, 그리고 실권이 없었던 충청도 출신의 윤보선과 강원도 출신의 최규하를 제외하면 13명 중 7명이 경상도 출신이다.[61] 국가원수를 특정 지역에서 많이 배출하는 현상은 미국의 버지니아 주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유독 그 쏠림의 폭이 더욱 큰 편으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인구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상도 쏠림이 유독 심한 것이 특이점이다. 이는 보수정당은 자연히 영남 출신이 많았지만, 민주당에서도 호남이 아닌 영남 후보를 내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영남후보론 공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영남후보론 문서 참조.
아직 대통령을 전혀, 혹은 거의 배출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지역 출신 대통령 대망론이 화두에 오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대망론으로는 충청 대망론이 있다. 그 외에 강원 대망론의 이광재, 제주특별자치도의 원희룡, 울산광역시의 김기현 등이 종종 언급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부 수립 74년 만에 최초의 서울특별시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재밌는 점은 대통령 관련 인물들은 서울특별시 출신이 이미 많다는 점. '대통령'이 아닌, '행정부 수반'으로 따진다면 제2공화국 내각제 하에서의 장면 전 총리[62] 가 서울특별시 태생이다. 또한 6공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과 황교안 2명 모두 공교롭게도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영부인도 이희호와 김정숙, 김건희 3명이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엘리트 출신이 독점하기 보다는 공무직과 별 관련 없다가 '대권주자'로 급부상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행정부 수반이나 총리는 엘리트 출신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영부인의 경우, 이촌향도 시기 이전까지는 서울특별시 출신의 여성들이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았고 이승만과 노무현을 제외한 역대 모든 대통령들이 모두 결혼 적령기에는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했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문재인 전 대통령인데 문재인은 정치 입문 전에는 계속 부산광역시에 거주했지만 예외적으로 결혼 적령기인 대학교 재학 시절과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학업을 위해 서울특별시에 거주했었다. 이 때 서울 출신인 김정숙을 만나 결혼했다.
북한 지역 출신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20세기만 해도 실향민 출신 정치인들이 많았고, 이 중에 유력 대권 주자로 성장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63] 2020년대 들어서 이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인해 사망했거나 정계를 은퇴하였고 현재 현역 실향민 정치인은 김진표 국회의장 정도가 유일하다[64] .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실향민 대신 탈북민의 정치 참여가 늘고 있고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도 배출하였지만 현실적으로 대선에서 지역 기반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북한 출신 대통령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65]
10. 경력[편집]
역대 대통령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이승만: 독립운동가, 외교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대통령, 국회의원(초선), 국회의장
- 윤보선: 독립운동가, 지식인, 서울특별시장(관선), 상공부장관, 국회의원(4선)
- 박정희: 초등교사, 만주국 육군 장교, 대한민국 육군 장교, 대한민국 육군 군무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대통령 권한대행
- 최규하: 경성사범대학 교수, 외교관, 외무부차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 전두환: 축구선수(골키퍼)[66] , 대한민국 육군 장교, 중앙정보부장 서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 노태우: 대한민국 육군 장교, 정무제2장관, 체육부 장관, 내무부장관, 국회의원(초선), 여당(민주정의당) 당대표
- 김영삼: 장택상 국회부의장 비서관, 장택상 국무총리 인사비서관[67] , 국회의원(9선), 제1야당(신민당) 총재, 여당(민주자유당) 당대표
- 김대중: 동양해운[68] 사장, 목포일보 사장, 국회의원(6선), 제1야당(새정치국민회의) 총재
- 노무현: 대전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재선), 해양수산부장관
- 이명박: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직무대행[69] , 현대건설 평사원, 현대건설 사장, 현대건설 회장, 국회의원(재선), 서울특별시장(민선)
- 박근혜: 영남대학교 이사장, 국회의원(5선), 제1야당(한나라당) 당대표, 여당(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70]
- 문재인: 변호사,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초선), 제1야당(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윤석열: 검사, 변호사,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 검사, BBK 특검 파견검사,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검찰총장
11. 선출[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임기만료 60일 전 이후 최초의 수요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2항의 선거에 관해서는 궐위로 인한 선거 문서 참조.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과 그 배우자, 직계존속)은 당선 시점부터 대통령과 동일한 예우를 받는다.
또한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취임 준비와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검증 및 후보자 지명 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궐위에 의한 선거로 당선된 자[71] 는 당선된 즉시 대통령에 취임하기 때문에 인수위 자체를 꾸릴 수 없고 바로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부여받아 직무수행을 한다.
11.1. 당선인[편집]
11.1.1. 당선인의 결정·통지[편집]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고, 이를 국회의장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다만,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에 달해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1항)[72]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개표를 모두 마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개표를 마치지 못한 지역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우선 당선인을 결정할 수 있다(같은 조 제4항).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일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지에 의하여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 회의에서 다수 표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같은 조 제2항)[73]
11.1.2. 당선인의 공고[편집]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하여 당선인이 결정된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고하고, 지체없이 당선인에게 당선증을 교부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3항)
11.1.3. 당선인의 지위 및 예우[편집]
대통령당선인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선인으로 결정된다. 이때부터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당선인 신분을 갖는다.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대통령당선인은 교통ㆍ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및 당선인과 배우자에 대한 진료의 예우를 받을 수 있다.
11.1.4. 대통령직인수위원회[편집]
대통령당선인이 결정되면 국정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약칭 인수위)를 둔다. 인수위는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 및 위원 24명 이내로 구성되며, 대통령 임기 개시 30일 후까지 존속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당선인은 임기 개시 전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를 임명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며,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국회에 요청할 수 있다.
제19대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한 궐위로 인한 선거로 당선되었으므로 당선과 동시에 취임해 임기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수위 부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설치하였다.
11.1.4.1. 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편집]
- 제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국정기획자문위원회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2. 임기[편집]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 <5년 단임제>
현행 헌법 제128조는 ②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므로, 대통령 임기가 바뀌는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기존 대통령은 기존 헌법에 따른 5년 단임제가 적용된다. 이런 규정은 사사오입 개헌이나 3선 개헌과 같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하지 않도록 막으려는 이유에서 나타난 것.
다만 해당 헌법에 맹점이 하나 있는데 개헌 전 전직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규정이기에 피선거권이 있는 전 대통령들은 다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임기 중 사퇴하거나 탄핵되어 직위를 잃거나 사망할 때 60일 이내에 궐위로 인한 선거가 실시된다. 이때 당선되는 대통령은 다른 선출직의 재·보궐선거와 달리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아예 임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즉 어떤 대통령이 임기 중 3년만 채우고 사임해서 새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면 신임 대통령은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2년 동안 대통령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5년의 임기가 새로 주어진다.
5년의 임기 중에서 윤년이 없으면 1,825일[74] , 윤년이 1번 있으면 1,826일[75] , 윤년이 2번 있으면 1,827일[76] 이다.
현재 헌법대로 대통령직을 5년간 직무수행한 대통령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까지 총 6명이며, 대통령 직무수행 기간이 5년이 아닌 대통령들은 다음과 같다.
- 박정희: 5,793일 (15년 10개월 10일)[77]
- 이승만: 4,295일 (11년 9개월 3일)[78]
- 전두환: 2,738일 (7년 5개월 29일)[79]
- 노무현: 1,763일 (4년 9개월 28일)[80]
- 박근혜: 1,475일 (4년 0개월 14일)[81]
- 윤보선: 587일 (1년 7개월 10일)[82]
- 최규하: 255일 (0년 8개월 11일)[83]
13. 직속기관[편집]
14. 해외 순방[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해외 순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퇴임 후[편집]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전직 대통령 내지 그 유족이 받는 예우가 규정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 사저 주변에 2채 혹은 3채의 경호동을 건설한다. 이는 오로지 대통령실 예산으로 만든다.
- 1조 8명씩 3개조 24명이 약 7년 동안 전직 대통령을 경호한다.
- 전직 대통령이 유고 시에는 그 배우자가 1년 동안 경호를 받을 수 있다.
- 그 이후는 경찰에 경호 업무가 이관된다. 물론 이 경호는 대통령 의사에 따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 연금은 대통령은 현 대통령의 월급의 90%를 받고 배우자는 75%를 받는다.(종신 연금)
- 비서 3명(1명은 배우자 몫)을 둘 수 있고 이 비서의 월급은 국가에서 제공한다.
- 그 외 필요 시에는 대통령실에서 헬기나 버스 등을 제공한다.
-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경호만을 제외한 모든 특전은 제외된다.[84]
15.1. 퇴임 후의 정치 활동[편집]
한국에서는 대통령 퇴임 후에는 보통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는 관례가 자리잡혀 있다. 대통령직 수행은 대부분 정치인들의 최종 목적인 만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85] 사실 대통령 재선만 불가능할 뿐 그 외의 선거들에 출마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따로 없다. 당장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퇴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시 임기기간 동안에는 전직대통령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규정이 있다. 즉 대통령 이후에 국회의원을 다시 하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86][87]
실제로 대통령 퇴임 이후 다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례로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윤보선이 있다. 다만 윤보선은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을 역임한 상징적 국가원수였고, 실질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의 국회의원 당선 사례는 없다.[88]
15.2.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편집]
2023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총 3명이다.
- 이명박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재임, 1941년 12월 19일 출생, 82세)
- 박근혜 (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 재임, 1952년 2월 2일 출생, 72세)
-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재임, 1953년 1월 24일 출생, 71세)
15.3. 자택[편집]
예전에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거나 신축하여 살고, 집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불리기도 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유명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를 상도동계, 동교동계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부 대통령의 경우 자택과 별개로 본인이 태어나서 정계 진출 전까지 생활한 고향 생가도 남아 있다. 생가의 경우 보존 처리해서 대통령 기념 시설로 사용하기도 한다. 생가의 정보는 아래의 기념관 항목에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비자발적인 경우인 이승만 등을 제외하면 퇴임 후에도 계속 서울특별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노무현이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귀향하였고, 문재인도 퇴임 후 본인의 제2의 고향이 된 양산시에서 거주할 것을 사실상 확정한 뒤 튀임 후 양산시로 내려갔고, 박근혜도 사면 이후 본인의 고향인 대구광역시로 내려갔다.
다만 경호 문제로 인해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들은 거주의 자유를 일부 제한당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제한을 받아 퇴임 이후 덕계 사저로 돌아가지 못하고 통도사 근처로 가게 되었다.
광복 이후 매입하여 정부수립 직전까지 살았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양자 이인수의 아들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사적 제497호로 지정되어 있다.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윤보선 가옥'이라고도 알려진 곳으로, 근대 한옥의 건축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건물이다. 대통령 재직 시에도 청와대에서 기거하지 않고 이 곳에서 집무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1870년대 민영익의 아들 민규식이 지은 집으로, 고종이 사들여 박영효에게 준 집이다. 현재 소유권은 주식회사 영안이 가지고 있으며 사적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약 5~7분 정도 걸으면 된다.
인접 철도역은 없으며, 방문하고자 할 경우 110번, 163번, 7017번, 7612번, 7720번, 7734번, 7738번, 7739번, 서대문03번을 이용하여 연희삼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장소이고 현재 유골을 보관중인 곳이다.
전두환과 이웃사촌으로 5분 거리에 집이 있다고 한다. 버스로 갈 경우에는 7612번, 7734번, 7738번, 7739번을 이용하여 연희A지구아파트에서 내리면 된다. 서울 서대문구청에 의하여 압류되었다가 현재는 풀렸다.
김영삼 민주센터가 상도동 사저 인근에 있으며, 이 센터는 김 전 대통령의 사후(死後)에 문을 열었다.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에서 약 3~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손자 김성민이 법적 소유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이 사저와 바로 붙어 있다. 대통령 당선 전에 잠시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에 거주한 적이 있으나 퇴임 후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인천국제공항철도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약 3분 정도 걸으면 된다.
최초로 퇴임 후 서울이 아닌 지방(김해 봉하마을)에 내려가 산 대통령이 되었다. 2018년 5월부터는 완전한 기념관이 되어 상시 개방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권양숙 여사는 진영읍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전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현대하이츠빌라에 거주했다.
윤석열/자택 문서 참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라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관저를 옮기기 전까지 약 6개월 동안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출퇴근하였다. 공동주택 특성상 경호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임기 후에는 다른 곳으로 자택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15.4. 장례와 안장[편집]
대통령은 국가장법(國家葬法)에 따라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 등의 의견을 고려하여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장(國家葬)으로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국장과 국민장이 구분되었으나 현재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어 운영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국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장으로 장례가 치루어졌으며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으로 통합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가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었으므로 앞으로는 국가장으로만 치러질 것이다.
더불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자 1순위가 된다. 또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더라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묘지로 지정될 수 있다. 아직까지 국가원수들이 화장된 전례가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 11·12대 전두환 전 대통령 외에는 없었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지는 등 산골된 전력이 없어서 이후 국가 원수들의 유언에 따라 이렇게 될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묘지가 없기 때문에 보존묘지 같은 건 없을 가능성이 크고, 다만 그 지역 또는 그 해역에 암묵적으로 명소화될 수는 있다.
원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의 공간부족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야 했지만 국민들이 더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으로 공간을 내어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의 사유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89] 따라서 현재까지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은 최규하 전 대통령 1명뿐이다.
현재에는 예외적인 묘소를 만들만한 물리적 공간이 사실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예외적인 서울 현충원 안장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직 대통령이 사망 후에 현충원에 안장된다면, 화장되어 충혼당에 안치되지 않는 이상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될 것이다.
다음은 고인이 된 대통령의 장례 절차 및 안장지다. 세상을 떠난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국가원수가 서거하여 화장될 경우 면제 대상이 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화장터의 결정에 의해 공통면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원래대로 라면 서거 직전 주소지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이라서 김해 추모의 공원에서 화장해야 비용이 절감되지만 공통면제 대상이 되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다. 물론 화장터에서 공통면제 대상이 될 자격이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과 같아서 탄핵 혹은 사법처리된 사람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됐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장으로 치려져 국고에서 주민등록상 거주지 화장시설에서의 장례비용을 지원을 받아 화장비용은 면제되었다.[95]
대통령의 장례식에서는 영정에 검은 띠를 두르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준비할 당시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띠를 두르지 않은 것을 시작으로 그 이후의 대통령들도 영정 사진에 검은 띠를 두르지 않았다.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룬 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가족장으로 치룬 전두환의 영정이나 대통령의 배우자인 이희호 여사도 영정에 검은 띠가 둘러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 때부터는 상주가 완장을 두르지 않는다. 이 역시도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 1914년 쇼켄 황후의 장례를 치룰 때 조선인들에게 고시된 복장 규정들이 1934년 총독부가 정한 의례준칙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진 것인데, 보통은 국가에서 장례를 치뤄주는 대통령의 장례에서부터 일제 잔재 청산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이후 관과 영정을 드는 군인들도 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노태우의 국가장은 코로나19 펜데믹 시기에 치뤄져서 군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15.5. 기념관[편집]
15.6. 기념재단[편집]
- 이승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1975년 설립)
- 윤보선: 해위윤보선대통령기념사업회 (2010년 설립)
- 박정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1999년 설립)
- 최규하: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 (2013년 설립)
- 전두환: 일해재단 (1983년 설립) [98]
- 노태우: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2023년 설립)
- 김영삼: 김영삼민주센터 (2010년 설립)
- 김대중: 김대중평화센터 (2003년 설립) / 김대중기념사업회 (2010년 설립)
- 노무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2009년 5월 설립)
- 이명박: 청계재단 (2009년 설립) /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2014년 설립)
16. 관련 기록[편집]
- 최초로 시신이 국립묘지 이외 장소에 안장된 대통령은 윤보선이다.
- 최장기 재임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12월 17일 취임해서 1979년 10월 26일 피살당할 때까지 장장 16년 간 집권했다.[99] 최단기 임기자는 최규하로, 1979년 12월 6일 취임 후 1980년 8월 16일 사퇴하여 8개월간 집권했다.
- 공식 취임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취임 당시 46세(1917년)였다. 최고령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74세(1924년 생)였다.[100]
- 사망일 기준으로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윤보선(1990년 92세 사망)이며,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박정희(1979년 61세 사망)이다.[101]
- 퇴직 과정의 경우 다음과 같다.
- 만기퇴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 임기 중 사임: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 임기 중 파면: 박근혜
- 임기 중 사망: 박정희
- 정계 입문 전의 출신 직업으로는 사업가&기업인(김대중, 이명박)[102] , 법조인(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언론인/교육자(이승만), 외교관(최규하, 이승만), 군 장교(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다. 윤보선[103] , 김영삼[104] , 박근혜[105] 는 사회 진출을 정치로 시작해서 정치로 끝낸 전문 직업 정치인들이다.
- 미혼인 대통령도 박근혜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모두 기혼자이다. 영부인 목록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문서를 참고할 것.
- 기혼임에도 자식이 없는 대통령은 윤석열이 유일하다.
- 미혼인 박근혜와 기혼임에도 무자녀인 윤석열을 제외한 다른 대통령들의 자녀 여부는 이승만만 유일하게 딸이 전혀 없이 아들만 있으며, 다른 대통령들은 딸과 아들을 1명 이상씩 두었다.
- 대통령 중 자살로 일생을 마친 대통령은 노무현이 유일하다. 더불어 대통령 중 질병이나 노환 외의 사유로 서거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 단 둘 뿐이다. 거기다 60대에 사망한 대통령 역시 박정희와 노무현 두 명뿐이다. 다만 박정희는 임기 중에 사망했으나, 노무현은 임기 후에 사망한 점이 다른 점이다.
- 병역 사항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 대통령은 박정희[106] , 전두환[107] , 노태우[108] 가 있으며, 노무현[109] 과 문재인[110] 은 대한민국 병역 의무에 따른 일반 사병 출신이다. 김영삼도 병사로 복무 경험이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육군 정훈병)으로 간 것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원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이승만, 윤보선, 김대중, 최규하는 징병제가 아닌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박근혜는 여성이라 병역 의무가 없었고, 이명박은 기관지 확장증으로 병역면제 되었으며, 윤석열은 부동시로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경험한 대통령은 노무현(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과 박근혜(박근혜 대통령 탄핵)가 있다. 노무현은 탄핵이 기각되었으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어서 공식 파면되었다.
-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지 43년 후인 1997년 12월 18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면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짧게 걸린 대통령은 전두환으로, 같은 1980년 5월 18일에 정계에 진출해서 고작 3개월 후인 1980년 8월 27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6공화국 이후 문민 대통령들 중에는 정계 진출 1년도 안 되어[111] 당선된 윤석열이 가장 짧다.
- 대통령 선거에 출마 경험이 가장 많은 대통령은 5번의 박정희(5-9대 대통령 선거)이고 그 다음은 4번의 이승만(1-4대), 김대중(7대, 13-15대)이다. 단, 박정희의 경우 8대와 9대는 10월 유신으로 인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였고 이승만의 제4대 대통령 선거는 부통령 부정선거 적발로 인해 무효 처리되었으므로, '정상적인' 선거 출마로 한정하면 김대중이 최다이다. 가장 낙선 경험이 많던 대통령은 김대중(7대, 13-14대). 출마 경험이 가장 적은 상태로 직접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1번의 윤석열(20대)이다.[112]
- 최규하는 재임 기간 내내 계속해서 소속 정당이 없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다.[113] 단, 최규하는 국무총리였다가 10.26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되었다가 민주세력에게 정권 이양을 하기 위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므로 예외 사항에 가깝다. 그리고 소속 정당은 없었어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정치 성향은 보수였고,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관료였다. 그 외의 모든 대통령들은 소속 정당이 있었다. 다만,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임기 말 즈음에 탈당했다. 대부분 본인과 관련된 여러 논란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 소속 정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의 반 타의 반 탈당해왔다. 제6공화국 들어서 그런 경향이 심해졌다가, 이명박이 끝까지 소속 정당을 나가지 않으면서 이는 깨졌다.[114]
- 재임 기간 동안 소속 정당이 바뀐 대통령은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3당 합당)의 노태우,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신당 창당 후 합당, 즉 재창당 수준의 개편)의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의 노무현이 있다. 이 중 아예 별개의 정당으로 소속 여당을 바꾼[115] 인물은 사실상 노무현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단순히 임기 중 여당의 명칭이 바뀐 형태이다.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신장 순위는 아래와 같다.
전반적으로 대통령들의 신장이 동시대의 일반인들 평균 신장보다는 큰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이라는 박정희조차도 당대의 일반인 평균 정도는 되었으며, 다른 대통령들은 모두 평균 키 이상이다. 이는 미국 같은 외국에서도 해당되는 사항인데, 사람들이 대체로 은연 중에 체격이 큰 사람들을 리더로서 선호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외 일본 총리나 중국 최고지도자들도 대부분 자국민 펑균키보다 크다.
최규하는 키가 182cm로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대통령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180cm를 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한국 대통령들은 최규하를 제외하고 전원 180cm 이하이다.[117][118] 최규하는 퇴임 후에는 키가 줄었지만, 역대 대통령 회동 영상을 보면 고령임에도 불구, 다른 대통령들을 압살하는 장신의 키를 자랑한다.
박정희의 경우 신장이 164cm로 역대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의 키였다. 반면에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키 170cm로, 당시에 웬만한 여자 배구선수와 견줄만한 큰 키를 가진 장신이었다. 허나 박정희 본인은 이 신체적 특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연설이나 모임 때 육영수 여사와 동석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두툼한 방석을 박정희의 의자에 놓자, 방석을 곧바로 치워버렸다고 한다.
노태우의 경우 178cm로 1930년대생 치고는 꽤나 큰 키지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키가 189cm인 엄청난 장신으로 아들보다도 더 크다.
박정희의 경우 신장이 164cm로 역대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의 키였다. 반면에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키 170cm로, 당시에 웬만한 여자 배구선수와 견줄만한 큰 키를 가진 장신이었다. 허나 박정희 본인은 이 신체적 특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연설이나 모임 때 육영수 여사와 동석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두툼한 방석을 박정희의 의자에 놓자, 방석을 곧바로 치워버렸다고 한다.
노태우의 경우 178cm로 1930년대생 치고는 꽤나 큰 키지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키가 189cm인 엄청난 장신으로 아들보다도 더 크다.
- 김대중, 노무현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의 학력이 전부 대졸이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소학교 졸업(초졸)이 보편적이던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걸 감안한다면 학력이 하나같이 가히 초엘리트 수준이다. 또한 김대중과 노무현은 고졸 출신이지만 김대중은 목포상업고등학교 수석 입학,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사법시험 합격 등으로 준엘리트 대우를 받았다.[119] 고졸 이상을 기본 학력으로 보는 현 청년 세대가 기득권이 될 즈음에는 고졸보다 저학력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 노무현을 시작으로 대통령 취임 직전 우연히 큰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는 징크스가 이어지고 있다.
- 2003년 노무현 취임 직전의 대구 지하철 참사
- 2008년 이명박 취임 직전의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숭례문 방화 사건
- 2013년 박근혜 취임 직전의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
- 2017년 문재인 취임 직전의 강릉-삼척-상주 산불
- 2022년 윤석열 취임 2개월 전의 울진 산불과 강릉 산불
- 공교롭게도 참여정부 때부터 대통령 임기 기간 동안 범세계적 유행성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징크스도 있다.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에는 SARS[120] 이명박 정부 재임 중이던 2009년에는 신종플루,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에는 메르스, 문재인 정부 집권 후기에 들어선 2020년에는 코로나19가 발생해 현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 대한민국 대통령을 2명 이상 배출한 기관은 아래와 같다.
- 수도권 출신 대통령은 2023년 기준 서울특별시 출신인 윤석열이 유일하다.[122] 그 외에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광역시들,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 역시 대통령을 아직까지 전혀 배출하지 못했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의 대권주자급 인물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있다.
-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오사카시에서 태어난 이명박이며, 가장 남쪽에서 태어난 대통령 역시 이명박이다.[123] 가장 북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군 출신의 이승만, 남한, 즉 대한민국 실효지역으로만 따지면 서울특별시 출신의 윤석열이다. 가장 서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출신의 김대중이다.
- 대통령을 3명 이상 배출시킨 정당은 아래와 같다.
- 징크스로, 역대 대통령들은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고[127] , 직전 대통령의 유고로 인해 치러진 선거에서는 안경을 쓴 사람이 당선되었다.[128] 또한 1, 2위 기준 안경을 쓴 후보 vs 안경을 안 쓴 후보의 대결에서는 항상 안경을 안 쓴 후보가 승리하는데, 문재인의 경우 2위 후보도 안경을 쓴 홍준표였기 때문. 또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이재명에게 승리하면서 이 징크스가 유지되었다. 정치학계에서는 심리학적 분석과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향이 평소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이는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이유로 본다. 반면 직전 대통령의 유고 등 정치 혼란기에는 국민들이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지혜롭고 차분해 보이는 지도자를 원하며, 이는 안경을 쓴 사람에게서 두드러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129]
- 또다른 징크스로는, 역대 대통령 중 2명씩은 성이 같은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로는 이승만 - 이명박, 윤보선 - 윤석열, 박정희 - 박근혜, 노태우 - 노무현, 김영삼 - 김대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징크스에 따르면 앞으로 최씨, 전씨, 문씨 혹은 아예 다른 성씨를 가진 이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만약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최초로 같은 성을 가진 대통령이 3명이 되는 사례, 또한 가족관계 외의 본관이 중복되는 사례(이명박과 이재명 둘 다 경주 이씨이다.)가 발생할 뻔했으나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전체의 10%가 안 되는 성씨들이 전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언젠가는 이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운전면허가 없는 대통령은 2023년 현임 대통령인 윤석열이 유일하다. 본인의 부동시가 운전면허 결격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석열 같은 경우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차를 태워주거나, 도시철도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한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여성인 박근혜를 포함하여 모두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17. 인기 순위[편집]
- 이승만의 경우 뉴라이트 진영에서 찬양받는 대통령이긴 하나, 보도연맹 사건, 정치깡패, 사사오입 개헌, 독재 등 굵직한 사건사고들로 인해 대중적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고, 재임 시절 또한 매우 오래전 일인지라[130] 하위권에 속한다.
- 윤보선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제2공화국 시절의 상징적 대통령이라 조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131] 설령 나온다 해도 최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또한 민주당계 최초의 대통령이긴 하나 이당시 민주당은 지금 민주당과 성향이 많이 다른데다 인생 말년에 신군부 집권 이후 그들과 친하게 지낸 것과 노태우 지지 선언까지 하는 등 변절자라는[132] 부정적 인식도 박혀 있어서 이 또한 윤보선의 평판을 더 깎아먹고 있다.
- 박정희는 민주당계 진영에서도 인정하는 경제 성장을 일군 업적 덕분에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항상 최상위권에 속한다. 다만 딸의 탄핵 사건 이후로는 평가가 예전에 비해서는 좀 내려갔다. 그래도 보수 진영 대통령 중에서는 압도적 1위이며,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노무현과 1위 아니면 2위를 다투는 편이다.
- 최규하는 윤보선처럼 부족한 존재감과 짧은 재임 기간으로 인해 조사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설령 나온다 해도 최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 전두환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비민주적, 반인륜적, 대통령 재임 시절 반대파 탄압, 퇴임 이후의 행적마저 안 좋기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도 외면하는 대표적인 만년 하위권 멤버라 볼 수 있다.
- 노태우의 경우에는 대부분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보다는[133] 그저 전두환의 절친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134] 더군다나 전임자와 후임자에 비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보니 친구보다도 순위가 낮게 나온다.[135]
- 김영삼은 그놈의 1997년 외환 위기 때문에 하위권을 면치 못한다. 그래도 대통령 시절의 공이 발굴되어 뒤늦게나마 재평가를 받긴 했으나, IMF로 인한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박혀 있다 보니 아직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136]
- 김대중은 주로 중위권에 머물고 있다. 유일한 호남 대통령이다 보니 호남권[137] 에서의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민주당계 진영 메인이 동교동계에서 친노/친문, 친명[138] 으로 갈아엎어진지 오래이기에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노무현과 문재인에 밀린다.
- 노무현은 최초로 팬클럽이 생긴 정치인답게 인기가 매우 많은 편이다. 민주당 진영의 열혈한 지지와 10대부터 40대까지의 연령층에서 골고루 분포돼 있는 지지도로 인해 매번 최상위권에 속한다.[139] 이는 본인이 정치인으로써 일군 업적보다는 인간 노무현을 사람들이 좋게 봤기 때문. 대표적 예시로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56% 가량이 기타로 답하는 결과가 나왔다.[140] 민주당 진영 대통령들 중에서는 압도적 1위이며,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박정희와 1위 아니면 2위를 다투는 편이다.
- 이명박의 경우 현직이였을 때는 중위권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소위 이명박근혜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의 여론 악화로 인해 점점 하위권으로 내려갔었다.[141] 현재는 2030 보수층을 중심으로 재평가가 이루어져 다시 중위권으로 올라갔다. 보수 진영 대통령들 중에서는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는 김대중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게 나오는 편이다.
- 박근혜의 경우 박정희의 딸이란 점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으로 임기 후반까지 40%의 지지율을 달성할 정도로 지지율이 탄탄했으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대중적 이미지가 엄청나게 실추된 관계로, 현재는 비인기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특유의 강성 팬덤이 완전히 죽은 건 아니라서 나름 중위권에 속한다.
- 문재인의 경우 외모와 탄핵 정국에서 당선된 대통령인 점이 영향을 끼쳐, 임기 초중반 동안에는 높은 지지율과 인기를 구가했다.[142] 하지만 각종 정책들의 실패[143] 로 인하여 정권재창출에는 실패하여 6공화국 최초로 5년만에 정권을 넘겨준 대통령이라는 굴욕을 얻었지만, 특유의 강성 팬덤의 영향으로 앞으로도의 호감도 조사에서도 못해도 중상위권에는 위치할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의 경우 아무래도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의 대선으로 당선된데다 임기 시작부터 각종 실언 및 수많은 실정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이다.[144] 물론 본인이 남은 임기동안 국정운영을 잘 한다면 하면 퇴임 후 긍정적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그냥 하위권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18. 분류[편집]
18.1. 출생 년도[편집]
태어난 달은 12월이[145][146] 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로 1월[147] 이 3명이 있고 2월[148] , 3월[149] , 7월[150] , 8월[151] , 9월[152] , 11월[153] 이 각 1명이다. 계절별로는 겨울[154] 이 8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고, 그 다음은 여름[155] 과 가을[156] 이 각 2명, 그 뒤로는 봄[157] 이 1명이다.
18.2. 출생 지역[편집]
18.3. 직업[편집]
18.4. 종교[159][편집]
18.5. 성씨[편집]
18.6. 자녀[편집]
- 이승만: 3남[182]
- 윤보선: 2남 2녀[183]
- 박정희: 2남 3녀[184]
- 최규하: 2남 1녀
- 전두환: 3남 1녀
- 노태우: 1남 1녀
- 김영삼: 3남 3녀[185]
- 김대중: 3남 1녀[186]
- 노무현: 1남 1녀
- 이명박: 1남 3녀
- 박근혜: 미혼
- 문재인: 1남 1녀
- 윤석열: 무자녀
18.7. 형제[편집]
부친 기준이다.
- 이승만: 3남 2녀 중 3남[188]
- 윤보선: 6남 3녀 중 장남[189]
- 박정희: 6남 2녀 중 6남[190]
- 최규하: 3남 중 장남[191]
- 전두환: 6남 5녀 중 4남[192]
- 노태우: 2남 중 장남[193]
- 김영삼: 1남 5녀 중 장남[194]
- 김대중: 4남 2녀 중 차남[195]
- 노무현: 3남 1녀 중 3남[196]
- 이명박: 4남 3녀중 3남[197]
- 박근혜: 1남 3녀 중 차녀[198]
- 문재인: 2남 3녀 중 장남[199]
- 윤석열: 1남 1녀 중 장남[200]
18.8. 국회의원 선수[편집]
18.9. 대수와 성향[편집]
18.10. 당적[편집]
18.11. 당선 전 정치 경력[편집]
19. 관련 문서[편집]
- 대통령제
- 이동수단
-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
- 대한민국 대통령 특별 열차 - 경복호
- 대한민국 대통령 헬기 - S-92
- 대한민국 대통령 의전차
- 대한민국 대통령/시계
- 대한민국 부통령
- 대한민국 국무총리
- 대통령 주치의
- 충청 대망론
- 대한민국/역사
- 대한민국/정치
- 헌법기관
- 대통령실
-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 대통령령
- 대통령과학장학금
20.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20.1. 영화[편집]
- 감기: 차인표가 연기.
- 판도라: 강석호 대통령 [203]
- 강철비: 이의성 대통령, 김경영 대통령 [204]
- 한반도: 안성기가 연기.
- 굿모닝 프레지던트: 김정호 대통령 [205] , 차지욱 [206] ,고두심
- 남산의 부장들: 이성민이 연기.
- 그때 그 사람들
- 더 테러 라이브
- 피아노치는 대통령 - 민욱 대통령 [207]
- 백두산(영화) - 대통령
- 나의 독재자
20.2. 드라마[편집]
- 공화국 시리즈 -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 야인시대 - 이승만 대통령
- 스위트홈(드라마)/ 스위트홈 - 두 작품 모두에 등장한다. 드라마 버전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던 도중 변이가 진행되어 날뛰다 707특임대의 지휘관 한유진에게 사살당한다.
- 60일, 지정생존자 - 양진만 대통령/박무진 대통령 권한대행/오영석 대통령 권한대행 : 원작이 원작이라 특이하게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직책이 등장한다.
- 시티헌터(드라마) - 최응찬 대통령
- 쓰리 데이즈(드라마) - 이동휘 대통령
- 아테나 : 전쟁의 여신/아이리스 -조명호 대통령/하승진 대통령
- 야왕 - 석태일 대통령
- 열혈사제[208]
- 대물 - 서혜림 대통령, 백성민 대통령
- 머니게임(tvN)
- 악마판사 - 허중세 대통령
- 배가본드 - 정국표 대통령
- 신의 선물-14일 - 김남준 대통령
- 타임즈(드라마) - 백규민 대통령/서기태 대통령
- 택배기사(드라마) - 대통령(진경 분)
- 언터처블(드라마) - 구용찬 대통령
- 불꽃 속으로 - 독고영재 분
- 프레지던트(드라마) - 장일준 대통령
-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 - 김창식 대통령
20.3. 웹툰/만화/소설[편집]
- 취사병 전설이 되다 - 장성우, 역대 최연소(51세)이자 최초의 무소속[209] 대통령으로 설정되었다. 현실에서 웹툰이 묘사하는 복무 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다.
- 슈퍼스트링/ 테러맨 - 최현옥: 테러맨 시점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특이하게도 여성 대통령이며 재난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다.
-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 - 박 대통령: 서울에 변이된 괴물들이 창궐하기 시작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 좀비딸 - 좀비 사태 속에서 대국민 발언을 하는 모습으로 등장. 좀비딸의 작중 시간대가 2010년대 후반이고 묘사되는 대통령의 머리색도 은발이므로 정황상 19대 문재인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연재 당시에도 등장 회차의 댓글창에 훠훠 등 문재인 관련 드립이 적지 않았다.
- 심연의 하늘 - 직접적인 등장은 없으나 서울에 재난이 일어나기 직전 군 주요 지휘관들을 청와대로 소집시킨다.
- 스틸레인(웹툰) - 박세종 대통령
- 스틸레인2 : 강철비 - 이의성 대통령/김경영 대통령 [210]
- 스틸레인3 : 정상회담 - 한경재 대통령 [211]
-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 - 박정희 대통령
- 대물(만화), 대물(드라마) - 여성 대통령이 등장한다
- 파이어 데이 - 한일전쟁 개전 이후 광주광역시 학살 보고를 접한 뒤 포로로 잡힌 자위대원들에 대한 학대를 묵인한다.
- 데프콘(소설) - 홍지영 대통령 : 4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당선되어 남북 평화통일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나 그의 임기 동안 중국, 일본, 미국과 차례대로 전쟁을 치르며 대한민국은 폐허가 된다.
- 70(웹툰) - 김태원 대통령 : 20대 대통령으로 검사 출신이다.[212] 2차 한국전쟁 개전 직후 국회의사당에서 납치된 뒤 행방이 묘연하다.
- 작전명 충무 - 특사기 격추 사건으로 격앙한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개전을 승인한다.
- 시마 과장 - 간명박 대통령 :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모티브다.
- 스위트홈 - 원작 웹툰의 대통령은 재난이 벌어지자 국민들에게 긴급 대국민 행동 요령을 설명하던 중 괴물화가 진행되어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후 등장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괴물화가 진행된 걸로 보여진다.
- BEGIN(만화) - 통화 상대로만 등장한다
- 태권더 박 - 박근혜 대통령
- 아이언 사이즈
- 용사가 돌아왔다
- 독도전쟁 - 김구만 대통령
21. 둘러보기[편집]
[1] 재임 당시 기준이다.[원] A B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라는 말을 오해하여, "대통령의 '계급'이 존재하고 그것이 대장 위의 원수 계급이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잘못됐다. 둘은 '元首'와 '元帥'로 한자가 다르다. 대통령은 문관, 즉 군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공무원이어야 하므로 군대 계급을 가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군복을 입으면 계급장 자리에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마크를 부착한다.[2] 군 통수권이 대통령의 핵심적, 상징적 권한이 된 것은 공화정치의 모태가 된 서양에서 첫 로마 황제(임페라토르)로 추대된 옥타비아누스가 로마군 전체에 대한 통솔권(임페리움, imperium)인 '임페리움 마이우스(Imperium Maius)'를 수여받은 것에 기원한다. 이후로 정치사에서는 무력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일국의 통치자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고대 동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3] 병, 부사관, 장교(장성 포함).[4]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 또한 박정희와 김대중 두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례 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끌어 국가를 부흥시킨 20세기 아시아의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장 명망있는 아시아의 민주 투사 중 하나로 각각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인물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 이 두 대통령의 국제적 인지도를 넘어서는 인물은 없다.[5]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기 전후에는 아무래도 시국 상황상,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에 대한 옹호적 평가는 민주계열 정당을 중심으로 터부시되었던 편이다.[6]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심해졌다.[7] 물론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한 것도 정치 활동이라고 볼 수가 있지만 일반적인 정치인과는 그 성격에 차이가 있다.[8] 정계 입문 이전에 해운회사와 목포일보를 운영하며 지역 사회에서 명성을 쌓은 사업가였다.[9] 관보 및 초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취임식 일자 기준.[10]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948.7.24. ~ 1951.12.17.).
자유당 (1951.12.17. ~ 1960.4.27.).[11] 무소속 (1960.8.13. ~ 1962.3.24.).[12] 선출 당시 당적은 민주당이었으나, 제2공화국 헌법상 대통령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었기에 취임 직전에 탈당했다.[13] 민주공화당 (1963.12.17. ~ 1979.10.26.).[14] 취임식은 1979년 12월 21일.[15] 무소속 (1979.12.6. ~ 1980.8.16.).[16]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17] 무소속 (1980.8.27. ~ 1981.1.15.).
민주정의당 (1981.1.15. ~ 1988.2.24.).[18] 취임식은 1981년 3월 3일.[19] 민주정의당 (1988.2.25. ~ 1990.1.22.).
민주자유당 (1990.1.22. ~ 1992.10.5.).
무소속 (1992.10.5. ~ 1993.2.25.).[20] 민주자유당 (1993.2.25. ~ 1995.12.6.).
신한국당 (1995.12.6. ~ 1997.11.7.).
무소속 (1997.11.7. ~ 1998.2.24.).[21] 새정치국민회의 (1998.2.25. ~ 2000.1.20.).
새천년민주당 (2000.1.20. ~ 2002.5.6.).
무소속 (2002.5.6. ~ 2003.2.24.).[22] 새천년민주당 (2003.2.25. ~ 2003.9.29.).
무소속 (2003.9.29. ~ 2004.3.12.).[23] 무소속 (2004.5.14. ~ 2004.5.20.).
열린우리당 (2004.5.20. ~ 2007.2.28.).
무소속 (2007.2.28. ~ 2008.2.24.).[24] 한나라당 (2008.2.25. ~ 2012.2.13.).
새누리당 (2012.2.13. ~ 2013.2.24.).[25] 새누리당 (2013.2.25. ~ 2017.2.13.).
자유한국당 (2017.2.13. ~ 2017.3.10.).[26] 더불어민주당 (2017.5.10. ~ 2022.5.9.).[27] 국민의힘 (2022.5.10. ~ 현재.).[A] A B C D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28] 대통령이 9인 전원을 직접 임명한다. 하지만 9명 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한 자를,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임명하여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건 3명이다. 다만 보통 국회 선출 3명은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이루어지고,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에게 있다보니 직접적인 선출은 3명이지만, 간접적인 영향 범위까지 포함하면 선출 9명 중 7~8명이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29]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헌법 제114조 2항) 실질적으로 국회, 대법원장에게 지명권이 있으나 형식적으로 전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식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와 달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경우 대통령이 3명에 대해서만 임명할 수 있다.[30] 애당초 국가직 5급 이상 공무원의 임명권은 형식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명의로 임명장이 수여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31] 임명권 + 면직권. 임명권으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히는 임면권이다.[32]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법률은 오직 국회만이 제정할 수 있다. 급한 상황에서 빠른 대처를 위해 시간이 한참 걸리는 국회의 입법 절차를 무시할 수 있게 예외를 두는 셈. 그마저도 "대통령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발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여 어떻게든 대통령이 법률을 직접 제정할 수 있는 류의 해석은 막아놓고 있다. 만약에 이러한 조치가 없고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으로 발한 명령이 국회의 사후승인 없이 그 자체로 법률이 될 수 있다면 히틀러의 1933년 수권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 단서조항이 붙게 되는 것이다.[33] 참고로 이 때는 청와대에 주인이 없으므로 청와대 국기 게양대에 게양되어 있는 봉황기(대통령기)가 하강되어 후임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게양되지 않는다.[34] 유일 사례로 박정희가 해당된다.[35] 이 사례에는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가 들어간다.[36] 유일 사례로 박근혜가 있다.[37] 헌법 제65조 제3항,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38] 아직 재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대통령은 없으며, 탄핵 소추된 대통령으로는 노무현과 박근혜가 있다. 이는 불확실한 게,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이 알려지면 주변국의 경제 공격에 시달릴 것이므로 빠져도 밝히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은 고령에 법정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수준의 격무량에 시달리고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욕을 먹는 그런 위치에 있었는데 의식불명 상태에 한 번이라도 빠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39] 국무총리의 경우 대통령의 무궁화 문장이 정부 상징인 오각형 꼴에 쌓여있는 문장을 사용한다.[40] 한때 국가 원수 모독죄와 관련된 농담이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국가 원수는 바보 천치"라고 비판했다가 2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국가 원수 모독죄가 3년에 국가 기밀 누설죄가 20년이었다는 식. 김일성,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전두환 등 버전에 따라 다양하다. 박정희 정권 때는 긴급조치를 비판하면 긴급조치에 의해 체포 당한다는 법이 존재하기도 했다.[41] 이런 논란으로 인해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훈장 수여를 거절하였으나 퇴임직전 영부인과 수여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인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수여받았다.[42] 입법부와 사법부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은 행정부에 속해 있다. 단지 모든 지방을 중앙에서 직접 통치할 수 없으니 사방으로 분리하는 것이고 역할(경찰, 소방, 교도관 등)에 따라 나뉘는 것이다.[43] 이희호의 저서인 <동행>에 언급된 바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대중을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44]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귀하'는 직책이 아닌 성명 뒤에 붙이는 경칭이므로 '대통령 귀하'가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45] 미국은 미국 대통령을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지칭한다.[46]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대표적인 공소시효 정지사유다. 정지사유가 사라지면 그때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47] 舊 조선총독부 청사[48] 대통령 직선제로써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로 13대 대통령부터 계속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전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궐위로 인한 선거로 당선되어서 그 다음날 바로 취임해야 했기 때문에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하게 열리는 것이 아닌 국회의사당 내부 중앙 1층에 로텐더 홀에서 약식으로 취임식을 거행했었다.[49] 이 기사는 김영삼이 아직 살아 있었으며 이명박의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되기 전인 2013년에 쓰인 기사다.[50] 당시 경상남도지사 관사.[51] 이승만 재임기에는 이름이 경무대였으나 현 청와대와 같은 곳을 말하며, 윤보선 전 대통령이 명칭을 청와대로 변경했다.[52]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 같은 경우 미국 대통령이 5~6억, 시진핑 중국 주석이 2~3천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본인도 얼마인지 모르고 받는 즉시 은행에 입금한다고 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국회의원으로써의 급여까지 포함해 기본급 연 2억 8천만원 정도이다.[53] 한데, 자세히 보면 이 식단들은 주안상이다.[54] 실제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노인들 중에 같은 이유로 잡곡밥이나 보리밥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55] 그가 방송에 출연해 만든 계란말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56] 대통령이라는 의식 없이 손님인 듯 편하게 국수와 김밥을 시켜서 식사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57] 중국 요리 부문. 1998년부터 근무를 시작해 20년 동안 5명의 대통령 밑에서 근무했던 셰프. 가장 최근인 2022년 1월 6일,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 근황이 알려졌다. 영상.[58] 보통 청와대 출신 요리사들은 고급 식당을 열기 마련이지만 신 전 운영관은 경희대학교+치킨집이라는 점을 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을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요리사 출신 음식점들 중에서는 접근 난이도가 가장 낮았다.[59] 하지만 그 윤석열 또한 부친이 충청남도 출신이다. 완전한 서울 토박이는 아닌 셈.[60] 태어난 곳은 일본이긴 했지만, 만 3세가 되는 광복 직후 국내로 귀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및 포항시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성장하여 사실상 경상도 출신으로 분류되는 해석도 존재한다. 본인 스스로도 경상도 출신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어# 대선 당시 경상도를 지역 기반으로 삼을 정도였으며, 언론에서도 경상도 출신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61] 다만, 박근혜의 경우 말 그대로 태어난 장소만 대구광역시였을 뿐, 아버지의 직업상 서울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장했고, 실제로 말투도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서울말을 구사한다.[62] 장면과 더불어 단 둘뿐인 내각제 총리 중 나머지 1명이자 장면의 전임자인 허정 전 총리는 부산광역시 태생이었다.[63] 황해도 출신의 이회창, 미수복 강원도 출신의 정주영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회창의 경우 태어난 곳만 황해도일뿐 어린 시절은 외가인 전라도에서 보냈으며 선대들 역시 충청도 사람들이라 실질적으로 충청도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한다.[64] 황해도(출생당시엔 경기도로 편입되어 있었다.) 연백군 출신[65] 설령 통일이 된다고 한들 출신 지역 때문에 수십년간은 북한 지역 출신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66]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축구선수였다.[67]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2대 총선 당시 후보로 출마한 장택상의 선거운동원으로서 처음 정계에 입문하고, 대학 졸업 직후 장택상 당시 국회부의장의 비서관이 되었으며 장택상이 국무총리로 영전한 후에도 인사비서관을 맡았다.[68] 목포에 있었던 상선회사다.[69] 6.3 항쟁의 주동자였다.[70]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1974년 ~ 1979년까지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리했고, 이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71] 현재까지는 문재인이 유일하다.[72] 1인 후보 득표수가 3분의 1에 미달할 경우, 대선이 대통령 임기만료 약 2달 전에 치러지기 때문에, 임기만료 40일 전까지 후임자를 뽑기 위해 다시 대선을 치르든가, 임기 만료 후 대통령 궐위로 인한 선거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73] 이는 2인 이상의 후보가 같은 수의 유효표를 획득하는 경우를 뜻한다.[74] 하지만 5년의 임기 중에서 윤년이 없으려면 임기 기간 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100의 배수인 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없다. 2100년 이후에 이러한 경우가 나온다. 만약 탄핵이나 개헌, 궐위 등의 변수가 없을 시 2097년에 취임하게 되는 35대 대통령이 최초로 1,825일을 임기로 보내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75] 김영삼(1996), 김대중(2000), 노무현(2004), 문재인(2020)이 이에 해당된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인 윤석열의 임기 기한도 역시 1,826일이다. 2024년이 윤년이기 때문이다.[76] 노태우(1988, 1992)와 이명박(2008, 2012)이 이에 해당된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이 5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채운다면 2027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 중 윤년이 2번(2028, 2032) 끼게 된다.[77] 4년 중임제로 8년, 임기 중 유신으로 1년 5개월, 6년 중임제로 6년, 임기 중 사망으로 10개월.[78] 4년 중임제로 8년, 세 번째 임기 3년 9개월 만에 사임.[79] 6년 중임제지만 보궐선거의 보궐선거로서... 전전임자 박정희 및 전임자 최규하의 잔여임기 약 4년 재임 예정이었으나 해당 임기 도중 개헌으로 5개월 29일, 7년 단임제로 7년.[80] 5년 단임제 도중 탄핵소추. 이후 탄핵이 기각되기 까지 63일간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보냈다.[81] 5년 단임제 중 탄핵소추, 이후 탄핵 가결로 실각.[82] 5년 중임제...였는데 내각제였기에 실권이 총리에게 있었는데다 5.16 정변으로 그나마도 7개월 만에 끝나고 군정 기간 중 사임.[83] 6년 중임제지만 보궐선거로서 전임자 박정희의 잔여 임기인 약 5년 2개월 재임 예정이었으나 임기 중 전두환의 쿠데타로 인해 사임.[84] 예우에서 박탈되더라도 경호와 경비는 계속하는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위해서 경호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 적성 단체나 적성국에 납치되어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원한을 품은 일반인이나 단체로부터 암살의 우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호하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전에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법적인 의미가 6조 4항 1호에 있다고 보면 된다.[85] 대통령까지 커리어를 쌓고 퇴임할 때 정도면 나이도 보통 고령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그렇다. 특히 문재인은 잊혀진 사람으로 살겠다고 여러 번 언급한 한 만큼 은퇴를 천명한 상태다. 그래서 문재인은 2022년 은퇴 분류가 있다.[86] 만일 대통령 퇴임 후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 또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을 맡는다면 의전이나 경호 등의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 다른 직책을 맡는다면 좌천이나 강등이 되어버리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87]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도 제복군인 최고 선임인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지내고 다음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동으로 전역하게 된다.[88]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 재출마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그러지 못했다.[89] 그것 때문인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다. 그리고 공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안장 요구를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90] 묘비에는 이승만 박사라고 적혀있다.[91] 7월 21일 하와이에서 영결식을 마친후 한국으로 유해를 이송한 뒤 7월 27일에 가족장을 치뤘다.[92]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와 같은 시기에 국가보존묘지로 지정.[93] 이후로 사망한 전직 대통령들 중 생전에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희망하였거나, 유가족 중 대전현충원에 모시려 한 경우가 없어 현재까지 대전현충원의 대통령 묘소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우가 유일하다.[94] 형식은 국장이었으나, 국민장에 준하여 실시.[95] 대통령 예우를 온전히 받으면 전국 화장터 어디서나 공통면제 대상이 되지만 예우가 박탈된 상태에서 국가장으로 치루는 경우에는 최종 거주지에서의 화장비용만 지원받을 수 있을 뿐이다.[96] 애초에 생가자체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97] 2023년 4월 29일 오픈했다.[98] 現 세종연구소 [99] 나머지 2년은 국가재건최고회의장 및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다.[100] 다만 퇴임했을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하야했을 당시 85세(1875년 생)로 퇴임 당시 최고령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24일 퇴임했을 당시에 79세였다.[101] 다만 평균 수명 대비로는 노무현이 가장 단명했다. 박정희는 그 당시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102] 김대중은 목포시에서 해운회사와 '목포일보'라는 신문사를 경영하였고, 이명박은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103]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한 전력이 있으며, 이후 임정을 떠나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 칩거했다. 당시가 일제강점기라 일본의 협력 요구를 거절한 사례이고, 해방 후에 바로 정계에 투신했다.[104]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했다.[105]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1974년 ~ 1979년까지는 청와대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의 빈자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106] 1944년 만주군 장교 임관, 1945년 만주군 해체로 중위 전역.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63년 대장 전역.[107]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0년 대장 전역.[108]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1년 대장 전역.[109] 육군 상등병 만기전역. 만기전역 인데도 상병인 이유는 그 당시에 병장 계급은 분대장이나 월남 파병간 병사들만 달 수 있었다.[110] 육군 병장 만기전역.[111]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다만 당시 본인은 정치 참여 선언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입당. 선언 기준으로는 8개월, 입당 기준으로는 7개월밖에 안됐었다.[112] 심지어 윤석열은 이게 대선뿐만 아니라 전체 선출직에 처음으로 나가서 처음으로 당선된 경력이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선출직 출마 경력조차 아예 없었다.[113] 따지자면 윤보선 역시 2공 시절 헌법상 무소속이긴 했으나, 정계 활동을 민주당계 정당에서 계속 해 왔다. 최규하는 정계 활동 내내 당적이 없었다.[114] 다만 이명박 역시 퇴임하고 4년 후인 2017년 1월에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115] 이것 때문에 노무현은 탄핵 소추를 당하게 된다.[116] 여성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키가 아니다. 지금도 20대 여자 평균 키가 160cm인 것을 감안하면...[117]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에 재임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제외하고는 모두 180cm를 넘기 때문에(그나마 이들도 170cm는 넘어서 단신은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을 할 때면 항상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보다 더 컸다. 최규하 재임 시절에 미국 대통령은 최규하와 키가 비슷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는데, 최규하는 윤보선과 더불어 한미정상회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118] 다만 미국 대통령 평균키가 유독 크긴하다. 영프독 총리, 대통령의 평균키는 미국보다 작다.[119] 대선 후보까지 확장해 보면 초졸이 은근 많다. 정주영, 백기완 등. 이재명은 초졸 후 소년공으로 근무하다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졸했다.[120] 다만 질병 자체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당시이던 2002년 가을쯤에 처음 발견되었고, 전세계적으로 확산하여 국내에 유입된 때가 2003년이다. 게다가 다른 전염병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초기 방역에 일찌감치 성공하여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121] 국군기무사령부 및 현재의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122] 다만 박근혜 같은 경우는 출생지 자체는 대구광역시이지만, 성장기 대부분은 아버지의 직업이 직업이었는지라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를 오가며 자랐다. 본인은 충청도 억양이 섞인 서울말을 구사하는데, 이는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23] 대한민국 영토로만 따지면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출신의 노무현이지만, 그래봤자 경도를 따지면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출신의 김영삼과 얼마 차이가 안 난다.[124] 대통령직을 마친 후 신민당 창당에 함께 했다.[총재] A B C D E [125] 그 이유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동년배들인 전두환, 노태우부터 김대중까지는 나이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출생 년도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김대중(1924년), 김영삼(1927년), 전두환(1931년), 노태우(1932년) 순이다.[126] 노무현의 배우자 권양숙은 제외.[127]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다만 전두환과 이명박도 임기 중반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128] 윤보선(장면), 최규하, 문재인.[129] 이오름 (2021)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안경 착용 여부와 심리 분석 및 여론조사로 살펴본 리더십상 평가.[130] 2023년 기준 이승만 정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리 젊어도 60대 후반이다.[131] 때문에 윤보선 대신 당시 정부수반인 국무총리로서 실권을 쥐었던 허정이나 장면을 대신 넣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 역시 재임기간이 너무 짧고 인지도가 낮아 그리 표를 많이 받지는 못한다.[132] 일명 윤천지강이라고 유신시대에 저항하다 신군부가 집권하자 변절한 4명(윤보선, 천관우, 지학순, 강원용)을 뜻하는 말이 있다.[133] 사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의외로 긍정적인 편이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북방정책 같은 굵직한 업적들이 많이 있기 때문.[134] 거기다 그와는 달리 엄연한 직선제 선출에 보통사람 슬로건도 달았지만, 어쨌건 군부 출신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135] 사실상 노태우보다 인지도가 낮은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 원수였던 윤보선과 10.26 사태로 인해 잠시 집권한 최규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떠올리는 대통령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편이다.[136] 특히 청년층에서는 문민 대통령 중 평가가 가장 박하다. 김영삼의 주요 실책들이 청년층을 현재진행형으로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인한 부실대학의 난립 유발(대졸 메리트 급락 및 학력 인플레 초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탄생, IMF 사태로 인한 취업 생태계 격변 등. 이 때문에 IMF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현 40대~70대보다도 더 안좋은 평가를 받기도한다.[137] 정확히는 전남권으로, 전북권은 친노 성향이 강하다.[138] 다만 친명(비문/반문 한정)은 정권재창출 실패의 책임을 문재인에게 물으며, 민주당 대통령 중 유일하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김대중을 고평가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139] 다만 MH세대란 단어로 대표되는 10대 ~ 20대 초반층은 노무현의 업적이나 행적으로 인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닌 MC무현 같은 합성물을 통해 노무현을 재밌는 엔터테이너(...)로 잘못 접하고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기에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보수우파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은 좋아하면서 문재인은 극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사람으로서, 합성물로서의 노무현을 좋아할 뿐 정치인으로써의 노무현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140] 이는 같은 민주당계인 문재인의 지지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모름·응답 거절이 1위로 나오면서 되풀이 되었다.[141] 과거 2014년도에 실시한 비호감 대통령 조사에서 전두환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전적이 있다. 굳이 그때가 아니더라도 보수 진영 여론이 부정적이던 2016년 후반 ~ 2019년 중반에는 박근혜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게 나왔다.[142]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 초중반은 민주당계 정당이 유래없는 최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물론 이는 제1야당이 자당 대통령이 함부로 민간인에게 국정 운영권을 넘겨줬다가 탄핵당한 것에 대하여 국민 앞에 제대로 반성·사과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던 태도도 한몫했다.[143] 특히 친문 성향 커뮤니티에서 조차 욕하는 부동산 실책이 치명타였다. 그밖에 젠더 갈등 방임, 자영업자 손실보상 및 가계부채 등한시 등도 있었다.[144] 임기 초반부터 이렇게나 낮은 지지율이 나오는 경우는 3김의 분열로 인해 당선된 노태우 정도밖에 없다.[145]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윤석열. 이중 윤석열, 이명박, 김영삼은 생일이 하루씩 차이난다.(윤석열 18일, 이명박 19일, 김영삼 20일.)[146] 일단 20대 대선 경선 이전만 봐도 12월생 대통령이 1명 더 늘어나게 되는 걸 알 수 있는데, 경선 1위였던 이재명과 윤석열, 경선 2위였던 이낙연과 홍준표 4명 모두 12월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다만 홍준표는 호적상이라 실제로는 11월이다. 이재명도 호적상이긴 하나 실제로도 12월생이다.) 이 중 이낙연은 김영삼과 생일이 같다.[147] 전두환, 김대중, 문재인.[148] 박근혜.[149] 이승만.[150] 최규하.[151] 윤보선.[152] 노무현.[153] 박정희.[154] 12월, 1월, 2월.[155] 6월, 7월, 8월.[156] 9월, 10월, 11월.[157] 3월, 4월, 5월.[158] 다만 1945년 8.15 광복 직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향은 경상북도 포항시이다.[159] 재임 당시 기준이다.[160] 단, 이 쪽만 종파에서 차이가 있다. 뒤의 사람들이 전부 장로회인 것과 달리 이 쪽만 유일하게 감리회이다. 참고로 윤보선, 이명박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소속이고 김영삼 대통령만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이다.[161] 세례명: 토마스 모어[162] 세례명: 티모테오[163] 고등학생 때는 가톨릭 신자였다가 이후 불교로 개종했다. 따라서 전두환의 장례 절차 중 입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164] 대통령 때는 불교 신자였다가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따라서 노태우의 장례 절차 중 입관식은 천주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세례명은 사도 요한[165] 공식 악력에는 불교로 되어 있고, 불자인 배우자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친불교적 성향도 보였으나 육영수 여사 사후에는 친불교적 행보는 물론 어떠한 종교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행보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종교가 없다고 했다. 참고로 기독교와도 의외로 인연이 깊다. 어린 시절에는 꽤나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육영수와의 결혼식은 계산성당에서 했다. 아울러 차녀 박근혜를 가톨릭 계열 미션스쿨인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서강대학교로 진학시켰다.[166] #[167] 다만 무종교인일 뿐 무신론자는 아닌 듯 하다. 한 번은 본인보다 3개월 앞서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화에서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해 믿긴 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 대통령 취임 이전에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6년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가의 대부로 알려진 송기인 베드로 신부로부터 '유스토'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불심이 매우 깊었던 배우자 권양숙 여사의 영향으로 친불교적 행보도 보인 바 있다.[168] 이 쪽은 공식적으로는 무종교라지만 박근혜/비판/사이비 종교 논란이라는 문서까지 만들어졌듯이 좀 애매하다. 그나마 가톨릭 세례명(율리아나)과 불교 법명('대자행', '선덕화')을 모두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특정 종교를 깊게 믿는 차원에서 받은 것은 아니다. 참고로 친박 인사들의 종교는 대부분 개신교이다.[169] 이런 저런 종교와 인연이 깊다. 아버지 윤기중 교수는 불교 신자였고 그가 졸업한 대광초등학교는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이며 안암동 영암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에는 명동성당에 나오더니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도 받았다. 검사가 된 후에는 무종교를 유지하고 있다.[170] 김녕 김씨[171] 김해 김씨[172] 전주 이씨[173] 경주 이씨[174] 두 명 모두 고령 박씨[175] 강릉 최씨[176] 해평 윤씨[177] 파평 윤씨[178] 완산 전씨[179] 남평 문씨[180] 교하 노씨[181] 광주 노씨[182] 요절한 이봉수만 친자고, 이강석과 이인수는 양자다. 이 둘을 양자로 들이기 전에 이은수도 양자로 있었지만 훗날 파양하였다.[183] 아들들은 후처이자 영부인인 공덕귀 소생이고, 딸들은 전처 여흥 민씨 소생이다.[184] 이 중 박재옥만 유일하게 전처 김호남 소생이고, 나머지 셋은 전원 육영수 소생이다. 내연녀였던 이현란 소생의 아들은 아기 때 요절했다.[185] 아들들 중 김상만은 혼외 자식이다.[186] 차용애 소생인 딸 김소희는 아기 때 요절했고, 아들들 중 김홍일과 김홍업은 김소희처럼 전처 차용애 소생이고, 김홍걸은 후처이자 영부인인 이희호 소생이다.[187] 친자녀만 따지면 이승만이 유일하게 한 자녀 부모이다.[188] 형 둘은 이승만이 태어나기 전에 요절했으며 누나 두 명이 있다.[189] 둘째 남동생 윤완선(1901~1970), 셋째 남동생 윤원선(1901~1971), 넷째 남동생 윤한선(1912~1972), 다섯째 남동생 윤택선(1914~1998), 여섯째 남동생 윤형선(1917~?), 첫째 여동생 윤예경(1905~2001), 둘째 여동생 윤의경(1912~?), 셋째 여동생 윤계경(1918~2011)[190] 큰 형 박??(?~?), 둘째 형 박동희(1895~1972), 셋째 형 박무희(1898~1960), 넷째 형 박상희(1905~1946), 다섯째 형 박한희(1910~1928), 큰 누나 박귀희(1902~1974), 둘째누나 박재희(1914~1996)[191] 둘째 동생 최명하(1922~1998), 셋째 동생 최중하(1926~2008)[192] 큰 형 전열환(1915~1925), 둘째 형 전규곤(1916~1916), 셋째 형 전기환(1929~2019), 다섯째 남동생 전석환(1937~1957이전), 여섯째 남동생 전경환(1942~2021), 큰 누나 전홍렬(1918~?), 둘째 누나 전명렬(1922~?), 셋째 누나 전선학(1928~2012이후), 넷째 여동생 전학렬(1934~?), 다섯째 여동생 전점학(1935~)[193] 둘째 동생 노재우(1937~)[194] 큰 여동생 김호금(1932~), 둘째 여동생 김호아(1934~), 셋째 여동생 김호임(1936~), 넷째 여동생 김두선(1938~), 다섯째 여동생 김두아(1940~)[195] 이복 형 김대봉(1920~1971), 둘째 남동생 김대의(1927~1997), 셋째 남동생 김대현(1932~), 누나 김안례(1921~?), 여동생 김진찬(1935~1976)[196] 큰 형 노영현(1932~1972), 둘째 형 노건평(1942~), 누나 노영옥(1938~)[197] 큰 누나 이귀선(1930~2010), 큰 형 이상은(1933~), 둘째 형 이상득(1935~), 막내 여동생 이윤진(1946~)[198] 이복 언니 박재옥(1937~2020), 셋째 여동생 박근령(1954~), 남동생 박지만(1958~)[199] 남동생 문재익(1958~), 큰 누나 문재월(1949~), 둘째 여동생 문재성(1955~), 셋째 여동생 문재실(1957~)[200] 여동생 윤신원(1964~)[201]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3선이었고 대통령직 하야 후 국회의원에 재출마하여 4선에 당선되었다. 그래서 윤보선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현역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한 유일한 대통령이다.[202] 비군인 출신&직선제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 대선 경쟁상대였던 이재명도 국회의원 경력이 없었으나 낙선 후 2022년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의원 경력을 쌓게 되었다.[203] 김명민이 연기.[204] 각각 김의성과 이경영이 연기했다. 작중 시점에서는 김경영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안보 회의가 있을 때마다 당선인 신분으로 동석하곤 했다. 이후 영화 말미에 취임식을 한다.[205] 이순재 분[206] 장동건 분[207] 안성기[208] 단역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닮았다[209] 무소속인 이유는 정치색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210]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다. 영화에서는 이경영이 연기했다.[211] 영화판에서는 정우성이 연기했다.[212] 연재시점은 2014년으로 실제 20대 대통령 당선인도 검사 출신이다.
자유당 (1951.12.17. ~ 1960.4.27.).[11] 무소속 (1960.8.13. ~ 1962.3.24.).[12] 선출 당시 당적은 민주당이었으나, 제2공화국 헌법상 대통령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었기에 취임 직전에 탈당했다.[13] 민주공화당 (1963.12.17. ~ 1979.10.26.).[14] 취임식은 1979년 12월 21일.[15] 무소속 (1979.12.6. ~ 1980.8.16.).[16] 취임식은 1980년 9월 1일.[17] 무소속 (1980.8.27. ~ 1981.1.15.).
민주정의당 (1981.1.15. ~ 1988.2.24.).[18] 취임식은 1981년 3월 3일.[19] 민주정의당 (1988.2.25. ~ 1990.1.22.).
민주자유당 (1990.1.22. ~ 1992.10.5.).
무소속 (1992.10.5. ~ 1993.2.25.).[20] 민주자유당 (1993.2.25. ~ 1995.12.6.).
신한국당 (1995.12.6. ~ 1997.11.7.).
무소속 (1997.11.7. ~ 1998.2.24.).[21] 새정치국민회의 (1998.2.25. ~ 2000.1.20.).
새천년민주당 (2000.1.20. ~ 2002.5.6.).
무소속 (2002.5.6. ~ 2003.2.24.).[22] 새천년민주당 (2003.2.25. ~ 2003.9.29.).
무소속 (2003.9.29. ~ 2004.3.12.).[23] 무소속 (2004.5.14. ~ 2004.5.20.).
열린우리당 (2004.5.20. ~ 2007.2.28.).
무소속 (2007.2.28. ~ 2008.2.24.).[24] 한나라당 (2008.2.25. ~ 2012.2.13.).
새누리당 (2012.2.13. ~ 2013.2.24.).[25] 새누리당 (2013.2.25. ~ 2017.2.13.).
자유한국당 (2017.2.13. ~ 2017.3.10.).[26] 더불어민주당 (2017.5.10. ~ 2022.5.9.).[27] 국민의힘 (2022.5.10. ~ 현재.).[A] A B C D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28] 대통령이 9인 전원을 직접 임명한다. 하지만 9명 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한 자를, 다른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임명하여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건 3명이다. 다만 보통 국회 선출 3명은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으로 이루어지고, 대법원장에 대한 임명권도 대통령에게 있다보니 직접적인 선출은 3명이지만, 간접적인 영향 범위까지 포함하면 선출 9명 중 7~8명이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29]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헌법 제114조 2항) 실질적으로 국회, 대법원장에게 지명권이 있으나 형식적으로 전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형식인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경우와 달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경우 대통령이 3명에 대해서만 임명할 수 있다.[30] 애당초 국가직 5급 이상 공무원의 임명권은 형식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명의로 임명장이 수여된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31] 임명권 + 면직권. 임명권으로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히는 임면권이다.[32]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법률은 오직 국회만이 제정할 수 있다. 급한 상황에서 빠른 대처를 위해 시간이 한참 걸리는 국회의 입법 절차를 무시할 수 있게 예외를 두는 셈. 그마저도 "대통령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발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여 어떻게든 대통령이 법률을 직접 제정할 수 있는 류의 해석은 막아놓고 있다. 만약에 이러한 조치가 없고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으로 발한 명령이 국회의 사후승인 없이 그 자체로 법률이 될 수 있다면 히틀러의 1933년 수권법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 단서조항이 붙게 되는 것이다.[33] 참고로 이 때는 청와대에 주인이 없으므로 청와대 국기 게양대에 게양되어 있는 봉황기(대통령기)가 하강되어 후임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게양되지 않는다.[34] 유일 사례로 박정희가 해당된다.[35] 이 사례에는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가 들어간다.[36] 유일 사례로 박근혜가 있다.[37] 헌법 제65조 제3항,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38] 아직 재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대통령은 없으며, 탄핵 소추된 대통령으로는 노무현과 박근혜가 있다. 이는 불확실한 게,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이 알려지면 주변국의 경제 공격에 시달릴 것이므로 빠져도 밝히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은 고령에 법정근로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수준의 격무량에 시달리고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욕을 먹는 그런 위치에 있었는데 의식불명 상태에 한 번이라도 빠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39] 국무총리의 경우 대통령의 무궁화 문장이 정부 상징인 오각형 꼴에 쌓여있는 문장을 사용한다.[40] 한때 국가 원수 모독죄와 관련된 농담이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국가 원수는 바보 천치"라고 비판했다가 2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국가 원수 모독죄가 3년에 국가 기밀 누설죄가 20년이었다는 식. 김일성, 블라디미르 레닌, 마오쩌둥, 전두환 등 버전에 따라 다양하다. 박정희 정권 때는 긴급조치를 비판하면 긴급조치에 의해 체포 당한다는 법이 존재하기도 했다.[41] 이런 논란으로 인해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훈장 수여를 거절하였으나 퇴임직전 영부인과 수여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당선인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수여받았다.[42] 입법부와 사법부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은 행정부에 속해 있다. 단지 모든 지방을 중앙에서 직접 통치할 수 없으니 사방으로 분리하는 것이고 역할(경찰, 소방, 교도관 등)에 따라 나뉘는 것이다.[43] 이희호의 저서인 <동행>에 언급된 바로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대중을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44]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귀하'는 직책이 아닌 성명 뒤에 붙이는 경칭이므로 '대통령 귀하'가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45] 미국은 미국 대통령을 POTUS(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지칭한다.[46]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은 대표적인 공소시효 정지사유다. 정지사유가 사라지면 그때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47] 舊 조선총독부 청사[48] 대통령 직선제로써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로 13대 대통령부터 계속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 같은 경우는 전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 궐위로 인한 선거로 당선되어서 그 다음날 바로 취임해야 했기 때문에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하게 열리는 것이 아닌 국회의사당 내부 중앙 1층에 로텐더 홀에서 약식으로 취임식을 거행했었다.[49] 이 기사는 김영삼이 아직 살아 있었으며 이명박의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되기 전인 2013년에 쓰인 기사다.[50] 당시 경상남도지사 관사.[51] 이승만 재임기에는 이름이 경무대였으나 현 청와대와 같은 곳을 말하며, 윤보선 전 대통령이 명칭을 청와대로 변경했다.[52] 다른 나라 국가원수들 같은 경우 미국 대통령이 5~6억, 시진핑 중국 주석이 2~3천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본인도 얼마인지 모르고 받는 즉시 은행에 입금한다고 한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국회의원으로써의 급여까지 포함해 기본급 연 2억 8천만원 정도이다.[53] 한데, 자세히 보면 이 식단들은 주안상이다.[54] 실제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노인들 중에 같은 이유로 잡곡밥이나 보리밥을 선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55] 그가 방송에 출연해 만든 계란말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56] 대통령이라는 의식 없이 손님인 듯 편하게 국수와 김밥을 시켜서 식사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57] 중국 요리 부문. 1998년부터 근무를 시작해 20년 동안 5명의 대통령 밑에서 근무했던 셰프. 가장 최근인 2022년 1월 6일,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 근황이 알려졌다. 영상.[58] 보통 청와대 출신 요리사들은 고급 식당을 열기 마련이지만 신 전 운영관은 경희대학교+치킨집이라는 점을 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을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요리사 출신 음식점들 중에서는 접근 난이도가 가장 낮았다.[59] 하지만 그 윤석열 또한 부친이 충청남도 출신이다. 완전한 서울 토박이는 아닌 셈.[60] 태어난 곳은 일본이긴 했지만, 만 3세가 되는 광복 직후 국내로 귀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및 포항시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성장하여 사실상 경상도 출신으로 분류되는 해석도 존재한다. 본인 스스로도 경상도 출신으로 정체성을 갖고 있어# 대선 당시 경상도를 지역 기반으로 삼을 정도였으며, 언론에서도 경상도 출신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61] 다만, 박근혜의 경우 말 그대로 태어난 장소만 대구광역시였을 뿐, 아버지의 직업상 서울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장했고, 실제로 말투도 경상도 사투리가 아니라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서울말을 구사한다.[62] 장면과 더불어 단 둘뿐인 내각제 총리 중 나머지 1명이자 장면의 전임자인 허정 전 총리는 부산광역시 태생이었다.[63] 황해도 출신의 이회창, 미수복 강원도 출신의 정주영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회창의 경우 태어난 곳만 황해도일뿐 어린 시절은 외가인 전라도에서 보냈으며 선대들 역시 충청도 사람들이라 실질적으로 충청도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한다.[64] 황해도(출생당시엔 경기도로 편입되어 있었다.) 연백군 출신[65] 설령 통일이 된다고 한들 출신 지역 때문에 수십년간은 북한 지역 출신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66]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축구선수였다.[67]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2대 총선 당시 후보로 출마한 장택상의 선거운동원으로서 처음 정계에 입문하고, 대학 졸업 직후 장택상 당시 국회부의장의 비서관이 되었으며 장택상이 국무총리로 영전한 후에도 인사비서관을 맡았다.[68] 목포에 있었던 상선회사다.[69] 6.3 항쟁의 주동자였다.[70]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1974년 ~ 1979년까지는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대리했고, 이후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 생활을 시작했다.[71] 현재까지는 문재인이 유일하다.[72] 1인 후보 득표수가 3분의 1에 미달할 경우, 대선이 대통령 임기만료 약 2달 전에 치러지기 때문에, 임기만료 40일 전까지 후임자를 뽑기 위해 다시 대선을 치르든가, 임기 만료 후 대통령 궐위로 인한 선거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73] 이는 2인 이상의 후보가 같은 수의 유효표를 획득하는 경우를 뜻한다.[74] 하지만 5년의 임기 중에서 윤년이 없으려면 임기 기간 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100의 배수인 해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없다. 2100년 이후에 이러한 경우가 나온다. 만약 탄핵이나 개헌, 궐위 등의 변수가 없을 시 2097년에 취임하게 되는 35대 대통령이 최초로 1,825일을 임기로 보내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75] 김영삼(1996), 김대중(2000), 노무현(2004), 문재인(2020)이 이에 해당된다.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인 윤석열의 임기 기한도 역시 1,826일이다. 2024년이 윤년이기 때문이다.[76] 노태우(1988, 1992)와 이명박(2008, 2012)이 이에 해당된다.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이 5년 임기를 정상적으로 채운다면 2027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당선인이 임기 중 윤년이 2번(2028, 2032) 끼게 된다.[77] 4년 중임제로 8년, 임기 중 유신으로 1년 5개월, 6년 중임제로 6년, 임기 중 사망으로 10개월.[78] 4년 중임제로 8년, 세 번째 임기 3년 9개월 만에 사임.[79] 6년 중임제지만 보궐선거의 보궐선거로서... 전전임자 박정희 및 전임자 최규하의 잔여임기 약 4년 재임 예정이었으나 해당 임기 도중 개헌으로 5개월 29일, 7년 단임제로 7년.[80] 5년 단임제 도중 탄핵소추. 이후 탄핵이 기각되기 까지 63일간을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상태로 보냈다.[81] 5년 단임제 중 탄핵소추, 이후 탄핵 가결로 실각.[82] 5년 중임제...였는데 내각제였기에 실권이 총리에게 있었는데다 5.16 정변으로 그나마도 7개월 만에 끝나고 군정 기간 중 사임.[83] 6년 중임제지만 보궐선거로서 전임자 박정희의 잔여 임기인 약 5년 2개월 재임 예정이었으나 임기 중 전두환의 쿠데타로 인해 사임.[84] 예우에서 박탈되더라도 경호와 경비는 계속하는 이유는 전직 대통령을 위해서 경호하는 것이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 적성 단체나 적성국에 납치되어 국익에 손해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한 원한을 품은 일반인이나 단체로부터 암살의 우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호하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전에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법적인 의미가 6조 4항 1호에 있다고 보면 된다.[85] 대통령까지 커리어를 쌓고 퇴임할 때 정도면 나이도 보통 고령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그렇다. 특히 문재인은 잊혀진 사람으로 살겠다고 여러 번 언급한 한 만큼 은퇴를 천명한 상태다. 그래서 문재인은 2022년 은퇴 분류가 있다.[86] 만일 대통령 퇴임 후 국회의원이나 국무위원 또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을 맡는다면 의전이나 경호 등의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대통령을 퇴임한 이후 다른 직책을 맡는다면 좌천이나 강등이 되어버리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87]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도 제복군인 최고 선임인 합참의장이나 육참총장을 지내고 다음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동으로 전역하게 된다.[88]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의 경우 국회의원 선거 재출마를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그러지 못했다.[89] 그것 때문인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 비해 크기가 매우 작다. 그리고 공간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안장 요구를 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90] 묘비에는 이승만 박사라고 적혀있다.[91] 7월 21일 하와이에서 영결식을 마친후 한국으로 유해를 이송한 뒤 7월 27일에 가족장을 치뤘다.[92]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와 같은 시기에 국가보존묘지로 지정.[93] 이후로 사망한 전직 대통령들 중 생전에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희망하였거나, 유가족 중 대전현충원에 모시려 한 경우가 없어 현재까지 대전현충원의 대통령 묘소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우가 유일하다.[94] 형식은 국장이었으나, 국민장에 준하여 실시.[95] 대통령 예우를 온전히 받으면 전국 화장터 어디서나 공통면제 대상이 되지만 예우가 박탈된 상태에서 국가장으로 치루는 경우에는 최종 거주지에서의 화장비용만 지원받을 수 있을 뿐이다.[96] 애초에 생가자체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97] 2023년 4월 29일 오픈했다.[98] 現 세종연구소 [99] 나머지 2년은 국가재건최고회의장 및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다.[100] 다만 퇴임했을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하야했을 당시 85세(1875년 생)로 퇴임 당시 최고령이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24일 퇴임했을 당시에 79세였다.[101] 다만 평균 수명 대비로는 노무현이 가장 단명했다. 박정희는 그 당시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살았다.[102] 김대중은 목포시에서 해운회사와 '목포일보'라는 신문사를 경영하였고, 이명박은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103]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한 전력이 있으며, 이후 임정을 떠나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에 칩거했다. 당시가 일제강점기라 일본의 협력 요구를 거절한 사례이고, 해방 후에 바로 정계에 투신했다.[104]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장택상의 비서로 활동했다.[105] 서강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1974년 ~ 1979년까지는 청와대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의 빈자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106] 1944년 만주군 장교 임관, 1945년 만주군 해체로 중위 전역.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63년 대장 전역.[107]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0년 대장 전역.[108] 1955년 대한민국 육군 장교 임관, 1981년 대장 전역.[109] 육군 상등병 만기전역. 만기전역 인데도 상병인 이유는 그 당시에 병장 계급은 분대장이나 월남 파병간 병사들만 달 수 있었다.[110] 육군 병장 만기전역.[111] 2021년 6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다만 당시 본인은 정치 참여 선언일 뿐이라고 변명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 입당. 선언 기준으로는 8개월, 입당 기준으로는 7개월밖에 안됐었다.[112] 심지어 윤석열은 이게 대선뿐만 아니라 전체 선출직에 처음으로 나가서 처음으로 당선된 경력이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선출직 출마 경력조차 아예 없었다.[113] 따지자면 윤보선 역시 2공 시절 헌법상 무소속이긴 했으나, 정계 활동을 민주당계 정당에서 계속 해 왔다. 최규하는 정계 활동 내내 당적이 없었다.[114] 다만 이명박 역시 퇴임하고 4년 후인 2017년 1월에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115] 이것 때문에 노무현은 탄핵 소추를 당하게 된다.[116] 여성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키가 아니다. 지금도 20대 여자 평균 키가 160cm인 것을 감안하면...[117]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이후에 재임한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제외하고는 모두 180cm를 넘기 때문에(그나마 이들도 170cm는 넘어서 단신은 아니다.), 한미정상회담을 할 때면 항상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보다 더 컸다. 최규하 재임 시절에 미국 대통령은 최규하와 키가 비슷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는데, 최규하는 윤보선과 더불어 한미정상회담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118] 다만 미국 대통령 평균키가 유독 크긴하다. 영프독 총리, 대통령의 평균키는 미국보다 작다.[119] 대선 후보까지 확장해 보면 초졸이 은근 많다. 정주영, 백기완 등. 이재명은 초졸 후 소년공으로 근무하다가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대졸했다.[120] 다만 질병 자체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당시이던 2002년 가을쯤에 처음 발견되었고, 전세계적으로 확산하여 국내에 유입된 때가 2003년이다. 게다가 다른 전염병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초기 방역에 일찌감치 성공하여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121] 국군기무사령부 및 현재의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122] 다만 박근혜 같은 경우는 출생지 자체는 대구광역시이지만, 성장기 대부분은 아버지의 직업이 직업이었는지라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를 오가며 자랐다. 본인은 충청도 억양이 섞인 서울말을 구사하는데, 이는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123] 대한민국 영토로만 따지면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출신의 노무현이지만, 그래봤자 경도를 따지면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출신의 김영삼과 얼마 차이가 안 난다.[124] 대통령직을 마친 후 신민당 창당에 함께 했다.[총재] A B C D E [125] 그 이유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동년배들인 전두환, 노태우부터 김대중까지는 나이가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다. 출생 년도는 노무현을 제외하면 김대중(1924년), 김영삼(1927년), 전두환(1931년), 노태우(1932년) 순이다.[126] 노무현의 배우자 권양숙은 제외.[127]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다만 전두환과 이명박도 임기 중반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128] 윤보선(장면), 최규하, 문재인.[129] 이오름 (2021)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안경 착용 여부와 심리 분석 및 여론조사로 살펴본 리더십상 평가.[130] 2023년 기준 이승만 정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리 젊어도 60대 후반이다.[131] 때문에 윤보선 대신 당시 정부수반인 국무총리로서 실권을 쥐었던 허정이나 장면을 대신 넣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들 역시 재임기간이 너무 짧고 인지도가 낮아 그리 표를 많이 받지는 못한다.[132] 일명 윤천지강이라고 유신시대에 저항하다 신군부가 집권하자 변절한 4명(윤보선, 천관우, 지학순, 강원용)을 뜻하는 말이 있다.[133] 사실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의외로 긍정적인 편이다. 범죄와의 전쟁이나 북방정책 같은 굵직한 업적들이 많이 있기 때문.[134] 거기다 그와는 달리 엄연한 직선제 선출에 보통사람 슬로건도 달았지만, 어쨌건 군부 출신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135] 사실상 노태우보다 인지도가 낮은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 원수였던 윤보선과 10.26 사태로 인해 잠시 집권한 최규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떠올리는 대통령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편이다.[136] 특히 청년층에서는 문민 대통령 중 평가가 가장 박하다. 김영삼의 주요 실책들이 청년층을 현재진행형으로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인한 부실대학의 난립 유발(대졸 메리트 급락 및 학력 인플레 초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이라는 개념 탄생, IMF 사태로 인한 취업 생태계 격변 등. 이 때문에 IMF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은 현 40대~70대보다도 더 안좋은 평가를 받기도한다.[137] 정확히는 전남권으로, 전북권은 친노 성향이 강하다.[138] 다만 친명(비문/반문 한정)은 정권재창출 실패의 책임을 문재인에게 물으며, 민주당 대통령 중 유일하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김대중을 고평가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139] 다만 MH세대란 단어로 대표되는 10대 ~ 20대 초반층은 노무현의 업적이나 행적으로 인해 호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닌 MC무현 같은 합성물을 통해 노무현을 재밌는 엔터테이너(...)로 잘못 접하고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기에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정치 성향은 보수우파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은 좋아하면서 문재인은 극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사람으로서, 합성물로서의 노무현을 좋아할 뿐 정치인으로써의 노무현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140] 이는 같은 민주당계인 문재인의 지지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모름·응답 거절이 1위로 나오면서 되풀이 되었다.[141] 과거 2014년도에 실시한 비호감 대통령 조사에서 전두환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전적이 있다. 굳이 그때가 아니더라도 보수 진영 여론이 부정적이던 2016년 후반 ~ 2019년 중반에는 박근혜와 비슷하거나 약간 낮게 나왔다.[142]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 초중반은 민주당계 정당이 유래없는 최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물론 이는 제1야당이 자당 대통령이 함부로 민간인에게 국정 운영권을 넘겨줬다가 탄핵당한 것에 대하여 국민 앞에 제대로 반성·사과하지 않고 뻔뻔하게 굴던 태도도 한몫했다.[143] 특히 친문 성향 커뮤니티에서 조차 욕하는 부동산 실책이 치명타였다. 그밖에 젠더 갈등 방임, 자영업자 손실보상 및 가계부채 등한시 등도 있었다.[144] 임기 초반부터 이렇게나 낮은 지지율이 나오는 경우는 3김의 분열로 인해 당선된 노태우 정도밖에 없다.[145]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윤석열. 이중 윤석열, 이명박, 김영삼은 생일이 하루씩 차이난다.(윤석열 18일, 이명박 19일, 김영삼 20일.)[146] 일단 20대 대선 경선 이전만 봐도 12월생 대통령이 1명 더 늘어나게 되는 걸 알 수 있는데, 경선 1위였던 이재명과 윤석열, 경선 2위였던 이낙연과 홍준표 4명 모두 12월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다만 홍준표는 호적상이라 실제로는 11월이다. 이재명도 호적상이긴 하나 실제로도 12월생이다.) 이 중 이낙연은 김영삼과 생일이 같다.[147] 전두환, 김대중, 문재인.[148] 박근혜.[149] 이승만.[150] 최규하.[151] 윤보선.[152] 노무현.[153] 박정희.[154] 12월, 1월, 2월.[155] 6월, 7월, 8월.[156] 9월, 10월, 11월.[157] 3월, 4월, 5월.[158] 다만 1945년 8.15 광복 직후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향은 경상북도 포항시이다.[159] 재임 당시 기준이다.[160] 단, 이 쪽만 종파에서 차이가 있다. 뒤의 사람들이 전부 장로회인 것과 달리 이 쪽만 유일하게 감리회이다. 참고로 윤보선, 이명박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소속이고 김영삼 대통령만이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이다.[161] 세례명: 토마스 모어[162] 세례명: 티모테오[163] 고등학생 때는 가톨릭 신자였다가 이후 불교로 개종했다. 따라서 전두환의 장례 절차 중 입관식은 불교식으로 진행되었다.[164] 대통령 때는 불교 신자였다가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따라서 노태우의 장례 절차 중 입관식은 천주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세례명은 사도 요한[165] 공식 악력에는 불교로 되어 있고, 불자인 배우자 육영수 여사의 영향으로 친불교적 성향도 보였으나 육영수 여사 사후에는 친불교적 행보는 물론 어떠한 종교들과도 가깝게 지내는 행보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종교가 없다고 했다. 참고로 기독교와도 의외로 인연이 깊다. 어린 시절에는 꽤나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육영수와의 결혼식은 계산성당에서 했다. 아울러 차녀 박근혜를 가톨릭 계열 미션스쿨인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서강대학교로 진학시켰다.[166] #[167] 다만 무종교인일 뿐 무신론자는 아닌 듯 하다. 한 번은 본인보다 3개월 앞서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과의 대화에서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해 믿긴 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 대통령 취임 이전에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1986년 부산지역 민주화 운동가의 대부로 알려진 송기인 베드로 신부로부터 '유스토'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불심이 매우 깊었던 배우자 권양숙 여사의 영향으로 친불교적 행보도 보인 바 있다.[168] 이 쪽은 공식적으로는 무종교라지만 박근혜/비판/사이비 종교 논란이라는 문서까지 만들어졌듯이 좀 애매하다. 그나마 가톨릭 세례명(율리아나)과 불교 법명('대자행', '선덕화')을 모두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조차도 특정 종교를 깊게 믿는 차원에서 받은 것은 아니다. 참고로 친박 인사들의 종교는 대부분 개신교이다.[169] 이런 저런 종교와 인연이 깊다. 아버지 윤기중 교수는 불교 신자였고 그가 졸업한 대광초등학교는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이며 안암동 영암교회에 출석했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에는 명동성당에 나오더니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도 받았다. 검사가 된 후에는 무종교를 유지하고 있다.[170] 김녕 김씨[171] 김해 김씨[172] 전주 이씨[173] 경주 이씨[174] 두 명 모두 고령 박씨[175] 강릉 최씨[176] 해평 윤씨[177] 파평 윤씨[178] 완산 전씨[179] 남평 문씨[180] 교하 노씨[181] 광주 노씨[182] 요절한 이봉수만 친자고, 이강석과 이인수는 양자다. 이 둘을 양자로 들이기 전에 이은수도 양자로 있었지만 훗날 파양하였다.[183] 아들들은 후처이자 영부인인 공덕귀 소생이고, 딸들은 전처 여흥 민씨 소생이다.[184] 이 중 박재옥만 유일하게 전처 김호남 소생이고, 나머지 셋은 전원 육영수 소생이다. 내연녀였던 이현란 소생의 아들은 아기 때 요절했다.[185] 아들들 중 김상만은 혼외 자식이다.[186] 차용애 소생인 딸 김소희는 아기 때 요절했고, 아들들 중 김홍일과 김홍업은 김소희처럼 전처 차용애 소생이고, 김홍걸은 후처이자 영부인인 이희호 소생이다.[187] 친자녀만 따지면 이승만이 유일하게 한 자녀 부모이다.[188] 형 둘은 이승만이 태어나기 전에 요절했으며 누나 두 명이 있다.[189] 둘째 남동생 윤완선(1901~1970), 셋째 남동생 윤원선(1901~1971), 넷째 남동생 윤한선(1912~1972), 다섯째 남동생 윤택선(1914~1998), 여섯째 남동생 윤형선(1917~?), 첫째 여동생 윤예경(1905~2001), 둘째 여동생 윤의경(1912~?), 셋째 여동생 윤계경(1918~2011)[190] 큰 형 박??(?~?), 둘째 형 박동희(1895~1972), 셋째 형 박무희(1898~1960), 넷째 형 박상희(1905~1946), 다섯째 형 박한희(1910~1928), 큰 누나 박귀희(1902~1974), 둘째누나 박재희(1914~1996)[191] 둘째 동생 최명하(1922~1998), 셋째 동생 최중하(1926~2008)[192] 큰 형 전열환(1915~1925), 둘째 형 전규곤(1916~1916), 셋째 형 전기환(1929~2019), 다섯째 남동생 전석환(1937~1957이전), 여섯째 남동생 전경환(1942~2021), 큰 누나 전홍렬(1918~?), 둘째 누나 전명렬(1922~?), 셋째 누나 전선학(1928~2012이후), 넷째 여동생 전학렬(1934~?), 다섯째 여동생 전점학(1935~)[193] 둘째 동생 노재우(1937~)[194] 큰 여동생 김호금(1932~), 둘째 여동생 김호아(1934~), 셋째 여동생 김호임(1936~), 넷째 여동생 김두선(1938~), 다섯째 여동생 김두아(1940~)[195] 이복 형 김대봉(1920~1971), 둘째 남동생 김대의(1927~1997), 셋째 남동생 김대현(1932~), 누나 김안례(1921~?), 여동생 김진찬(1935~1976)[196] 큰 형 노영현(1932~1972), 둘째 형 노건평(1942~), 누나 노영옥(1938~)[197] 큰 누나 이귀선(1930~2010), 큰 형 이상은(1933~), 둘째 형 이상득(1935~), 막내 여동생 이윤진(1946~)[198] 이복 언니 박재옥(1937~2020), 셋째 여동생 박근령(1954~), 남동생 박지만(1958~)[199] 남동생 문재익(1958~), 큰 누나 문재월(1949~), 둘째 여동생 문재성(1955~), 셋째 여동생 문재실(1957~)[200] 여동생 윤신원(1964~)[201]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3선이었고 대통령직 하야 후 국회의원에 재출마하여 4선에 당선되었다. 그래서 윤보선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현역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한 유일한 대통령이다.[202] 비군인 출신&직선제 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 대선 경쟁상대였던 이재명도 국회의원 경력이 없었으나 낙선 후 2022년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의원 경력을 쌓게 되었다.[203] 김명민이 연기.[204] 각각 김의성과 이경영이 연기했다. 작중 시점에서는 김경영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안보 회의가 있을 때마다 당선인 신분으로 동석하곤 했다. 이후 영화 말미에 취임식을 한다.[205] 이순재 분[206] 장동건 분[207] 안성기[208] 단역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닮았다[209] 무소속인 이유는 정치색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210]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다. 영화에서는 이경영이 연기했다.[211] 영화판에서는 정우성이 연기했다.[212] 연재시점은 2014년으로 실제 20대 대통령 당선인도 검사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