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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한국의 교육열, 그 시작
2.1. 일제강점기의 공교육 도입과 해방직후의 교육열
2.2. 한국전쟁 후의 사회혼란
2.3. 박정희 시기의 교육정책
3. 문제점
4. 관련 문서 및 링크



1. 개요[편집]


敎育熱

'교육열'이라는 단어 자체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흔하게 쓰이고 있지만, 정작 그 기원이나 정확한 뜻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단어는 한자 문화권 국가에서는 한자로 그대로 옮겨서 번역할 수 있지만, 해외(특히 서양 문화권)에는 애초에 교육열에 대응되는 단어 자체가 없다. 이 단어를 번역하려면 문맥에 맞게 '그는 자녀교육에 열정이 있었다'처럼 번역하는 수밖에… 그런 만큼 교육열이라는 현상 자체가 몇몇 국가에 한정된 특수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의 교육열, 그 시작[편집]


한국의 교육열이 강화되는 계기는 3가지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공교육 도입, 한국전쟁 후의 혼란한 사회, 박정희 정부 시기의 교육 정책이다. 근원적으로는 현재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보듯 오랜 기간 동안 과거 제도를 통해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이 출세하던 전통이 뿌리깊게 박혀 있던 영향도 있다. 아예 교육열이 강하던 초창기에는 공부로 출세한 사람을 양반에 비견하는 시각까지 있었을 정도다.


2.1. 일제강점기의 공교육 도입과 해방직후의 교육열[편집]


우선 한국의 제도적인 교육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제도로, 교육사를 공부한다면 가장 먼저 공부하게 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교육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제도적인 국민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공교육의 시작은, 당연히 국가가 '국민을 보편적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겠다!' 하고 느꼈던 때부터. 그걸 왜 느꼈냐면, 산업혁명이후 제조업의 시대가 되어 다수의 하층민에게 농업이 아닌 공업 상품 생산을 맡아야 했는데, 농경시대 시절 습성이 남아있어 정시출근 정시퇴근도 안하고 글도 못 읽고 단순한 계산도 못 하는 노동자들에게 생산을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인간을 정시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기본 교육을 시키다보면 그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은 활용가치가 높기 때문에, 공교육은 당시 인적자원에서 소외되어 있던 하층민을 산업화시대 노동자로 바꾸는 전환의 목표로 시행했고. 그렇게 1763년 프로이센 왕국프리드리히 2세가 공포한 일반 지방학사통칙을 통해 최초로 근대적인 전국민 대상 공교육을 시작했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메이지 유신시대 일본의 시스템에 맞게 초등-중등-고등 교육형태의 일률적인 체계로 정립한 방식을 모델로 하여 대한민국 공교육제도와 입시 위주 교육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공교육 개념이 아주 없었냐면 그건 아니었지만 국가와 관아에서 운영하는 향교의 경우에는 그나마 공교육적인 특성이 있었지만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다녔으며, 성균관을 비롯한 4부학당은 그야말로 엘리트의 산실이니 공교육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교육을 담당했던 서당의 경우에는 전국 각지에 퍼져있었는데 수령과 유향소가 서당운영을 장려하고 서당운영비를 보조해주는 등 어느정도 공교육적인 측면이 있었고, 조선의 문맹률이 전근대 국가치고는 낮았던것도 각 지역마다 서당이 있었기 때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교육비는 따로 내야했던 것이 당연시 되었고 서당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으며 또한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서당교육에서 소외되는 문제점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서당에 대한 예산지원을 늘려서 의무교육화해야한다는 주장은 당대에도 있었지만 당시 조선의 재정사정상 실현되지는 못했고, 보편적인 공교육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여하튼, 의무교육 제도는 일제 강점기 시기 다른 근대 문물과 함께 일본을 통해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로선 선진적인 문물이었던 공립교육이 일본에 의해 조선에 들어온 것은 맞지만 이때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일본은 조선에 공교육 제도를 '들여와 준'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필요해서 들여 왔다는 점이다. 조선에 들어온 공립교육은 그 당시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에게 시키던 교육과 비슷하지만 몇 가지가 빠지거나 바뀌어 있었다. 고급내용은 교육내용에서 빠져 있었고, 당연히 학생의 인권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노예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황국에 대한 충성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는데, 일본은 조선을 아예 일본에 편입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 경성제국대학의 지부가 설립된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원래의 일본 출신과 조선인을 동등히 대해줄 셈은 없었고, 일종의 계급 사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일본이 공교육을 들여오기 전에 서당이 각 지역별로 있었지만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었고, 다니던 계층도 비교적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에 소학교를 설립하면서 얘기가 달라지게 된다. 당시 국민들도 일본에 의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회가 혼란한 이때, 모두가 못 살고 있는 이때, 조금이라도 배워서 조금이라도 잘 살 수 있게 된다면? 당연히 교육을 받는 쪽을,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제도적으로 계급이 철폐된 당시 사회, 교육을 통해 고급 공무원이 되거나 각종 시험에 합격하여 잘 살게 된 극소수의 사례 등은 이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게 되었고, 덕분에 조선인들은 자녀들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느끼게 되었고, 이 시기를 한국 교육열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교육열이라는 단어 역시 이 시기에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시기는 아직까지 의무교육이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학교는 커녕 소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조차 낮았으며 문맹퇴치운동이 언론계의 주도로 이루워졌지만 규모의 한계상 전국적으로 시행된게 아니고 간헐적으로 시행된 수준이었기 때문에 문맹퇴치에는 커다란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서나 황국식민화 교육의 영향으로 소학교가 어느정도 늘어나게 되었다.

여하튼 광복직후에 높은 문맹률이 크게 문제시 되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출발해야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만큼 국어독본책이나 역사책등이 불티나게 팔려나갈정도로 교육열은 높아져갔고 전국적으로 농한기를 이용한 야학이나 공민학교의 개설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불과 3년만인 1948년에 문맹의 절반에 가까운수가 퇴치되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국민학교의 진학률도 90%에 달할 수준이 되었다.


2.2. 한국전쟁 후의 사회혼란[편집]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를 초토화시켰다. 거의 모든 것이 불타고 무너졌으며, 행정력을 가진 정부라는 것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막 정부를 수립하던 시절에 미군정은 한국의 교육을 큰 틀에서 유지하되[1] '교수요목'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교육과정을 작성하여 그것에 맞추어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지시한다. 물론 교과서야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 찍어내기는 했고 그 덕택에 미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기는 했지만 교과과정을 하루아침에 다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제의 잔재가 꽤 남게 되었다. 이때가 한국 교육의 역사에서 '교수요목기'라고 불리는 시대다. 이때, 국민들은 한번 더 '다 같이 못 사는 시대'를 겪게 된다. 극소수의 잘 사는 사람이 있어봤자 옆집 사람이 못살면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당시 한국인들이 체감하기에 한국은 정말 힘든 시기였고, 너나 할 것 없이 다 가난한 상태였다. 당연히 공부를 하면 공부하는 대로 훌륭해지고 국가에 기여할 수 있었고, 이미 교육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국민들은 아낌없이 교육에 투자하였다.

이 시기의 교육은 해방 이전의 교육과는 사뭇 다른 의미와 양태를 띠기 시작한다. 우선, 과거의 교육이 근대적인 사회로 급변하는 사태 속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근대적인 문물을 습득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학교 설립을 요구하고 운영하는 것이 좀 더 강한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해방 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교육을 통한 지위 상승이 가장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공동체를 위해 교육을 하던 것이 개인을 위해 교육을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교육열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교육을 하려는 열망이 계몽주의와 맞물려 아주 반가워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약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한국인의 교육을 향한 열정의 증거라며 기뻐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병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자녀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라던가, 오로지 개인의 욕심만을 위한 공부,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부작용 때문에 교육열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 이상 긍정적이지만은 않게 되었다.

2.3. 박정희 시기의 교육정책[편집]


당시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진다면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등의 문제점이 불거져 불평등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왕이 집권하고 나면 세력을 가진 귀족들을 약화시키듯, 군인이었던 박정희는 학연으로 이어진 권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또한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이 중학교 진학을 위해 과도한 혹사에 시달려서 큰 사회적 문제점으로 떠올랐던 때였덴데다가 중등교육을 보편화해야될 필요성도 있었기에 강력한 힘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평준화 시켰고, 교육계는 큰 반발 없이 이를 수용했다. 비평준화된 환경에서는 자연스레 학교마다 서열이 생겼고, 높은 서열의 학교는 상대적으로 많은 이득을 봤다. 평준화는 곧 기득권을 내놓으라는 소리니 반발이 생길만도 하지만, 그걸 지시한 사람이 대통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고교평준화와 중학교 무시험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낳았으니, 바로 입시위주 교육이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높은 교육열 때문인데, 그당시에도 교육의 목적은 이미 자기계발이 아니라 지위상승이 된지 오래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 부터 좋은 중고등학교에 보내면 높은 계층을 선점하여 대학진학에서도 미리 앞서있게 되니 대학입시 경쟁은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두 제도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은 강제로 집 근처 학교에 배정받고 모두의 출발선이 동일해짐에 따라 계층에 대한 욕망이 대학입시 하나에 몰린다. 급변한 상황에서 높은 교육열은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데, 그것이 사교육이다. 사교육이 태동하던 때가 바로 이 시기다.

계층에 대한 욕망이 한국 교육열의 핵심이건만, 학생들을 같은 선 위에 올려놓으니 사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중고등학교가 서열화되어 있다면 비록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경쟁에 들어가야 한다고 해도 사교육의 효과는 크지 않지만 학생들이 같은 선상에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든 대학 입시 한 방만 잘 하면 되므로, 사교육을 통해 볼 수 있는 효과가 매우 큰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공교육에 대한 열망이 사교육까지 확장된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사교육비는 자녀 양육비의 큰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저출산의 원인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것도 무시못할 이유인데,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그 커진 파이를 차지하는 사람은 결국 교육을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은 이전보다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 보상이 확실했고, 사람들은 그 보상을 원하던 것이었으니까.

3. 문제점[편집]


중고등학교 시절, 한참 꿈을 키우고 원대한 포부를 지녀야 할 시기에는 과외에 얽매여 있다가, 정작 죽어라 공부해야 할 대학에 가서는 방종해지는 많은 대학생들. 부모의 불타는 교육열이 대학 입학으로 '마감'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워. 이것은 한마디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모르는 빗나간 교육열이야. 부모들이 아이들 잘되라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과외가, 근본적으로 한국의 공교육과 아이들 자신의 세계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거지.

이원복, 그의 저서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 편에서


공교육을 들여오던 일제강점기에도, 교육을 시키는 목적은 상급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하며 더 높은 계층으로 가기 위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 박정희 시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교육 열망은 한국에 공교육 확산, 눈부신 경제발전,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화[2][3]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더 이상 '모두가 협의의 공부만으로는 계층이동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전에는 다 같이 공부하면 다 같이 공부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고, 더 나은 사회가 된 보상이 한국인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저성장 시대에 들어갔고, 열심히 공부해봤자 사회가 안정되어 있으면 계층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런 계층 간 모욕이 심해 사람들이 계층이동을 위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 교육을 받는 진짜 목적인 자기계발은 뒷전이고 오로지 좋은 대학 가기만 위해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이 수요에 맞추다 보니 학교에서도 진짜 공부가 아닌 입시 위주 교육을 추구하고,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학생들은 사교육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자되는 사교육비 또한 한 과목 당 수십만 원씩 들어가는 엄청나게 큰 비용이다 보니 사교육비 감당이 어려운 서민들은 아이를 낳지 않게 되고 결국 저출산의 원인으로 직결됐다.

이런 문제를 다룬 작품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다. 이 작품의 제목은 참 비참하게도 현실에서 발생한 한 여고생의 유서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 진심으로 이제는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과거에 불과하는지에 대해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행복마저도 버려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연합뉴스에서도 어린이날에도 학원에 가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비판했다.

게다가 학교 개념조차도 밥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저런 일들에 입시 위주 교육 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교육이 길러내는 학생들은 결국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런 잘못된 교육열이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의 원흉의 원흉.[4]

잘못된 교육열은 청년실업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굳이 국영수 위주의 공부뿐만 아니라 기술, 상업적인 경험 등 자신의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도 이런 일로 성공하거나 경력개발을 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시되거나 방해되는 일도 다반사며, 이에 노동 공급이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실업률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황금 티켓 증후군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학원은 학생 의지대로 다녀야 하지만, 현실은 학부모들의 강요로 다니는 것이 최악의 행복지수에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5][6] 이는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그릇된 문화가 2023년 현재도 남아 있는 것도 한몫한다.[7]

국제학교에 대한 검증 소홀에도 교육열이 영향을 끼쳤다. 한국 학부모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수 있는 국제학교라면 어디든지 좋다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기에 IM선교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이 일어났을 때까지 자식들을 보낸 국제학교가 미인가·무허가 시설로 운영될 수 있다는 법망의 허술함을 검증하지 않았다. 자기 자식을 유학시킬 수 있으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경향이 있는 과열된 교육열이 도리어 자기 자식을 검증되지 못한 교육시설로 보내 사회성을 기르고 진로와 장래희망을 정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케 한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 쪽으로 가는 경향이 강하여 대미 사대주의와 결합하기도 하는데, 비영어권의 경우는 국내 대학에서 일단 입학하고 1~4학기 정도의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학사 과정은 국내에서 마치고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석/박사 학위코스를 밟을 때 정도 되어야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외이다.

4. 관련 문서 및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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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차피 제도 자체는 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2]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4.19 혁명은 교육수준이 높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교육 수준과 비례한다.[3] 이것도 의문점이 있기는 하다. 소련의 경우 1937년에 이미 문해율이 75%를 넘었다 하는 것과 이후 소련에서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교육수준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 낸다고 추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미국 학제의 영향으로 인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현실과 괴리가 발생하여 발생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애초에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만 디립다 판 이유가 반공과 이승만 독재정권 정당성을 내세우려고 한 거라.[4] 그래서 교육열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다.[5] 과외가 금지된 전두환 정부 시절에도 성적 경쟁이 불법 과외가 성행했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6] 질이 한참 낮은 공교육도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공교육의 질이 높든 낮든 간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상 학생들이 받는 공교육의 질은 다 똑같으며, 학원에 보내도 공부를 해야 효율이 있는 만큼 공교육과 사교육은 별개의 문제이다.[7] 2022년 5월 말 경에 발생한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때 자녀를 데리고 하는 등의 사건이 지금도 보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