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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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비영리 특수법인이다. 전 세계적 국제기구인 국제적십자사연맹의 일원이다. 1905년 10월 27일 광무황제의 칙령 제47호로 '대한적십자사 규칙'을 제정하여 반포함으로써 탄생했다. 상징은 적십자 마크를 사용한다. 초대 총재는 의양군이다.Saving Lives,
적십자는 생명입니다.
대한적십자사의 슬로건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대한적십자사 조직은 명예회장과 명예부회장 각 1명을 두고 있는데 명예 회장은 현직 대통령이 맡고 명예 부회장은 국무총리가 역임한다. 이전에는 기관장에 ‘총재’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민주화시대에 맞지 않으며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실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단어라는 이유로, 2017년 6월 3일부터 "총재"라는 명칭이 "회장"으로 바뀌었다.[2]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성별, 국적, 종교 또는 정치적 신념과 관계없이 적십자사의 회원이 될 수 있는데 회원은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회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후원자는 회원유공장을 받을 수 있다.
2. 7대 기본원칙[편집]
- 인도: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차별없이 도우려는 열망에서 탄생한 국제적십자운동은 국제적, 국내적 역량을 발휘하여 어디서든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적십자운동의 목적은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데 있다. 이러한 적십자운동은 모든 사람들 간의 이해, 우정, 협력 및 항구적 평화를 증진시킨다.
- 공평: 국제적십자운동은 국적, 인종, 종교적 신념, 계급 또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는다. 오직 개개인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고 가장 위급한 재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 중립: 적십자운동은 지속적으로 모든 사람의 신뢰를 받기 위해 적대행위가 있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또는 이념적 성격을 띤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
- 독립: 적십자운동은 독립적이다. 각국 적십자사는 정부의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보조자로서 국내 법규를 준수하지만 어느 때든지 적십자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항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
- 자발적 봉사: 적십자운동은 자발적 구호운동으로서 어떤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 단일: 한 나라에는 하나의 적십자사만 존재할 수 있다. 적십자사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그 나라 영토 전역에서 인도주의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 보편: 국제적십자운동은 각 나라의 적십자사들이 동등한 지위와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서로 돕는 범세계적인 운동이다.
3. 연혁[편집]
4. 역대 회장[편집]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무보수 봉사직으로 보임된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급여가 0원이지만, 소정의 활동비는 지급된다.
- 대한적십자회 회장
- 이희경 (1919~1922)
- 손정도 (1922~?) 쌍용자동차 손명원 회장 할아버지
- 대한적십자사 총재
- 양주삼[4] (1949~1950)
- 윤보선[5] (1950~1952)
- 구영숙 (1952~1954)
- 손창환 (1954~1960)
- 최두선 (1960~1972)
- 김용우 (1972~1975)
- 이호 (1975~1981)
- 김용식 (1981~1982)
- 유창순 (1982~1985)
- 김상협 (1985~1991)
- 강영훈 (1991~1997)
- 정원식 (1997~2000)
- 장충식 (2000)
- 서영훈 (2000~2003)
- 이윤구 (2003~2004)
- 한완상 (2004~2007)
- 이세웅 (2007~2008)
- 유종하 (2008~2011)
- 유중근 (2011~2014)
- 김성주 (2014~2017)
- 대한적십자사 회장
5. 조직[편집]
6. 업무[편집]
대한적십자사는 다음 각 호의 사업을 수행한다(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7조).
- 제네바 협약의 정신에 따른 전시포로 및 무력충돌희생자 구호사업
- 전시에 군 의료보조기관으로서의 전상자 치료 및 구호사업
- 수재, 화재, 기근, 악성 감염병 등 중대한 재난을 당한 사람에 대한 구호사업
- 의료사업(간호사업 및 혈액사업을 포함한다), 응급구호사업, 자원봉사사업, 이산가족 재회사업, 청소년적십자사업, 관련 교육사업, 그 밖에 국민 보건 및 사회복지에 관한 사업
- 적십자 이념 및 국제인도법의 보급사업
- 적십자사의 사업 수행을 위한 국제협력사업
- 그 밖에 이상의 사업에 부대되는 사업
전시가 아닌 평시에 수행하는 업무는 재난 대비 안전교육 및 재난 구호, 헌혈 관리, 후술할 대북 대화채널로서의 기능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재난 구호사업 : 재난에 맞서 국민의 생명 보호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종합적인 구호활동 전개
⦁구호품 지원 및 이재민 대피소 설치
⦁심리 사회적지지 및 재난심리회복지원
⦁구호요원 양성
⦁재난취약계층 지원
⦁레드알람
⦁혹서기,혹한기 물품 지원
⦁재해구호 전문인력 양성교육
복지 사업 : 위기가정 발굴 지원,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저소득가정 보편적 복지 지원, 결연을 통한 안정적 지원활동 전개
⦁생계,주거,의료,교육,기타 지원
⦁이른 둥이,출산용품,위생용품 지원
⦁가족여행,모국방문,명절물품 지원
⦁정서, 물품 지원
⦁원폭 피해자. 사할린 동포 지원
국제 사업 : 국제적십자운동의 주요 정책 및 의사결정 과정 참여, 국외 재난 구호활동, 개발도상국의 지속가능한 발전 지원, 남북관계 개선 및 평화통일, 이산가족 활동 전개
⦁긴급구호,재건복구,재난 예방,대비 지원
⦁식수,수도 시설 구축 및 개선, 위생시설 개선
⦁보건 교육 및 캠페인, 물과 위생 위원회 운영
⦁남북적십자 회담,남북 이산가족, 인도적 사업,북한이탈주민 지원
교육 및 연구사업 : 안전교육 전문기관으로서 교육프로그램 운영
⦁재난복원력센터 운영: VR 체험교육 운영, 국제 재난 세미나 개최, 상호혁신 워크숍, 로드맵 보급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방법 교육 및 인명구조요원, 수상구조사 교육
⦁인도주의/국제인도법 보급
인도주의 활동가 양성 사업 : 적십자 봉사회를 조직하여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 전개, 청소년 적십자(RCY) 사업 실시
⦁구호,희망풍차,취약계층 지원,지역사회 봉사활동
⦁안전,봉사,교류,이념학습
공공의료 사업 : 지역공공의료 역할 수행, 공공의료 서비스 지원, 희망진료센터 운영으로 의료 안전망 기능 수행
⦁지역거점 공공병원 운영, 국가 공공보건의료 사업
⦁국내외 재난 이재민 의료봉사, 전시 군의료 보조기관
⦁상담, 진료 및 진료비 지원
혈액사업 : 혈액전문기관으로서 혈액을 안정적,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전문적인 시스템 운영
⦁채혈,혈액검사,혈액제제 제조,혈액공급
7. 혈액관리본부[편집]
헌혈, 헌혈의 집 문서 참조.
8. RCY (청소년적십자)[편집]
RCY 문서 참조.
9. 적십자병원 목록[편집]
10. 판문점채널[편집]
'대한적십자사'는 판문점에 채널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적십자회'와 민관 대화외교채널로서 활용 중이다. 주로 인도협력사업 및 이산가족상봉 그리고 반관반민 회담 조율 때 사용된다.
2007년 이후 남북관계가 급 경색된 이후 2017년까지 자주 활용되었다. 특히 2009년 군통신 차단 때는 개성공단 출입을 위해 대한적십자사 채널을 복잡하게 거쳐 이용했다. 현재는 판문점 군통신선 및 청와대와 국무위원회 간 핫라인이 설치돼서 예전보다는 덜 바쁜 편.
11.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적십자사/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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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우 일찍 제정된 법률이다. 1949. 4. 30. 법률 제25호로 제정되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가 국제적십자사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아 우리나라가 재난을 당했을 때 원조를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있으므로 가입신청을 위해 부랴부랴 법률을 제정하게 되었다고.[2] 이 단체의 명칭에 따라 사(社)의 한 종류이므로 사장이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사장이 가지는 통상적 의미로 인해 회장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화권이나 북한의 경우 Red Cross를 관행상 적십자회(會)로 번역한다.[3]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로 개칭.[4] 기독교조선감리회의 초대 총리사(감독). 그러나 한국전쟁 때 납북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5] 대한민국 제 4대 대통령.[6] 참고로만 설명하자면 세종시 출범 이전까진 대전충남지사였다. 혈액원도 마찬가지였는데 출범 이후 대전세종충남지사로 명칭 변경 뒤 이후 내포신도시에 충남지사가 새로 신설되면서 대전세종지사로 명칭변경되었다.[7] 도지사와는 관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