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군/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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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제국군장성급 장교를 설명하는 문서다. 엄밀히는 1894년 12월에 주요 군사계급이 설정된 이후를 다루기 때문에 조선군의 현대 장성급 장교도 포함된다. 대한민국 국군의 장성급 장교는 대한민국 국군/장성급 장교를 참고할 것.

이 시절만 해도 군사계급을 부여하고 파면하면 군사계급을 빼앗겼다가 다시 복직되기도 했다. 현재의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 그리고 법부대신이나 농상대신 등 다른 보직을 제복군인에게 맡기기도 했다. 대한제국이 전제제국을 꿈꿨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계급은 대원수(大元帥), 원수(元帥), 대장(大將), 부장(副將), 참장(參將)으로 구성되었다. 현재의 준장에 상당하는 계급은 없었다. 본래 한중일 모두 준장에 해당하는 계급이 없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북한[1]에 생겼고 중국 인민해방군에서는 필요에 따라 교관급 장교 최선임인 대교를 타국의 준장의 카운터파트로, 자위대에서는 1등육좌, 1등해좌, 1등공좌를 1종, 2종, 3종으로 나눠 1종 1좌를 준장에 가깝게 대우한다.

이들 중 일부는 조선인 일본군에 조선군인으로 편입되었다.

2. 계급별[편집]



2.1. 대원수[편집]


고종이 유일하게 맡았다.


2.2. 원수[편집]


순종이 유일하게 맡았다.


2.3. 대장[편집]


대한제국군에서 대장 계급으로 진급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원수부 해산 이후 순종의 군복에 붙은 소매 계급장이 10줄짜리 원수 계급장에서 9줄짜리 대장 계급장으로 변경된 사진이 남아있어, 원수부가 해산되면서 대원수, 원수라는 계급도 사라지고 순종의 계급이 대장으로 변경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 있다.

2.4. 부장[편집]



  • 1895년 5월 10일 종1품 신기선(申箕善) 육군부장 임용, 군부대신 임용
  • 1895년 6월 20일 정2품 안경수(安駉壽) 육군부장 임용, 경무사(警務使)에서 군부대신 임용
  • 1895년 10월 10일 종2품 이도재(李道宰) 육군부장 임용, 군부대신 임용
  • 시기불명 조희연(趙羲淵) 육군부장, 군부대신 임용
  • 1896년 11월 12일 민영환(閔泳煥) 육군부장 임용, 군부대신 임용[2]
  • 1897년 3월 23일 심상훈(沈相薰) 육군부장 임용[3]
  • 1897년 10월 1일 이종건(李鍾健)[4] 육군부장 임용
  • 1898년 4월 18일 민영기(閔泳綺)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군부대신 임용
  • 1898년 11월 7일 유기환(兪箕煥) 육군부장 임용
  • 1898년 12월 12일 민병석(閔丙奭) 육군부장 임용
  • 1899년 5월 14일 이재순(李載純) 육군부장 임용
  • 1899년 8월 21일 조동윤(趙東潤)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5]
  • 시기불명 이운용(李允用) 육군부장 임용[6]
  • 1901년 5월 19일 민영휘(閔泳徽) 육군부장 임용
  • 1903년 5월 7일 이근택(李根澤)·이봉의(李鳳儀)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3년 10월 7일 윤웅렬(尹雄烈)[7]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3년 11월 14일 민영철(閔泳喆)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4년 3월 21일 이지용(李址鎔)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4년 5월 2일 권중현(權重顯)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4년 9월 22일 이용태(李容泰) 육군부장 임용
  • 1905년 7월 21일 박제순(朴齊純) 육군부장 임용
  • 1905년 11월 8일 한규설(韓圭卨) 육군부장 임용
  • 1906년 2월 15일 이근호(李根澔) 육군부장[8] 임용
  • 1906년 4월 8일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육군부장 임용
  • 1906년 5월 12일 민형식(閔炯植) 육군부장 임용
  • 1907년 2월 25일 이용익(李容翊)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7년 4월 27일 완순군 육군부장 임용
  • 1907년 5월 22일 윤택영(尹澤榮)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7년 5월 22일 이병무(李秉武) 육군참장에서 육군부장으로 진급
  • 1907년 11월 27일 완흥군(完興君) 이재면(李載冕) 육군부장 임용


2.5. 참장[편집]


건군 직후에는 정령을 안 거치고 부령(현재 중령에 대응)에서 참장으로 바로 진급한 케이스들이 많다. 이후 정령에서 참장으로 정상적인(?) 진급자가 늘어나는 편.

  • 1899년 8월 21일 이학균(李學均)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9]
  • 1900년 4월 8일 김영준(金永準) 육군참장 임용
  • 시기불명 주석면(朱錫冕) 육군참장 임용
  • 1900년 12월 30일 민영철(閔泳喆) 육군참장 임용
  • 1901년 5월 19일 이지용(李址鎔) 육군참장 임용
  • 시기불명 이근택(李根澤)[10] 육군참장 임용
  • 1902년 2월 22일 백성기(白性基)[11] 육군참장 임용
  • 1902년 9월 16일 민상호(閔商鎬) 육군참장 임용
  • 1903년 5월 7일 구영조(具永祖)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3년 10월 7일 이용익(李容益)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3년 11월 14일 엄준원(嚴俊源)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정기택(鄭騏澤) 육군참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3월 21일 권중석(權重奭)·신태휴(申泰休)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5월 2일 엄주익(嚴柱益)[12], 현영운(玄暎運)[13]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7월 16일 김승규(金昇圭)[14]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민영찬(閔泳瓚), 김정근(金禎根)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9월 1일 홍순찬(洪淳瓚)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원우상(元禹常)·김영진(金永振) 육군참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9월 5일 장화식(張華植) 육군부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4년 9월 22일 양성환(梁性煥)[15]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시기불명 권태익(權泰益)[16] 육군참장 임용
  • 1905년 10월 22일 이한영(李漢英)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5년 12월 13일 이희두(李熙斗)·이병무(李秉武)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6년 5월 14일 이남희(李南熙)·오보영(吳普泳)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6년 9월 2일 윤영렬(尹英烈)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7년 4월 19일 이기홍(李起泓)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7년 4월 27일 조성근(趙性根)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7년 5월 28일 한진창(韓鎭昌) 육군정령에서 육군참장으로 진급
  • 1907년 11월 27일 영선군(永宣君) 이준용(李埈鎔) 육군참장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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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인민군의 소장이 brigadier general에 해당한다.[2] 뒤에 부장 계급으로 원수부 회계국 총장, 헌병대사령관 등을 지냈다.[3] 원수부 군무국 총장을 지냈다.[4] 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궁성호위 사령관(宮城扈衛司令官),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을 지냈다.[5] 원수부 검사국 총장, 동궁 무관장(東宮武官長)을 지냈다. 뒤에 조선군인으로 편입하여 일본군 중장도 지냈다.[6] 호남사령관, 참모부 부장을 지냈다.[7] 참모부 부장을 지냈다.[8] 배종 무관장(陪從武官長)을 지냈다.[9] 육군무관학교 학교장을 지냈다.[10] 혼성여단 임시여단장을 지냈다.[11] 육군법원장, 교육부 참모장.[12] 군부협판(軍部協辦)을 지냈다.[13] 참모부 1국장을 지냈다.[14] 군부 군무국장을 지냈다.[15] 헌병 사령관 역임.[16] 군부 참모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