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로마이어

덤프버전 :

댄 로마이어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댄 로마이어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Eagles_Champion_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9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35번
스캇 데이비슨
(1995~1996)

댄 로마이어
(1997)


리키 헨더슨
(2000)
한화 이글스 등번호 24번
정진식
(1994~1997)

로마이어
(1999~2000)


김장백
(2001~2003)
LG 트윈스 등번호 25번
정영규
(1998.5.1.~2000)

로마이어
(2001)


마르티네스
(2002~2003)




파일:로마이어.jpg

대니얼 "댄" 로마이어
Daniel "Dan" Rohrmeier

출생
1965년 9월 27일 (58세)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학력
마이애미 데이드 칼리지 - 세인트토마스 대학교
신체
183cm / 83kg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외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4번 (CHW)
1987년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15번 (CHW)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 (1997)
한화 이글스 (1999~2000)
LG 트윈스 (2001)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마이너리그 시절
2.4. 이후
3. 은퇴 후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화 이글스, LG 트윈스 소속의 내야수.

KBO 역사상 이승엽에 이어 두 번째로 45홈런을 날린 인물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마이너리그 시절[편집]


파일:PC1169.jpg
털사 드릴러스 시절.

오하이오신시내티 출신으로 세인트토마스 대학을 졸업하고 1987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마이너리그 팀에서 현역 생활에 입문,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을 전전하다가 1997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면서 무려 데뷔 10년 만에야 비로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성적은 타율 0.333, 2타점으로 보잘것없었지만.

마이너리그에선 특이하게 투수로 등판했던 기록이 몇 번 있는데, 성적은 2.1이닝 승-패-세 없이 ERA 3.86을 기록했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로마이어는 타율 0.292에 45홈런 109타점이라는 초특급 성적을 거두며 제이 데이비스와 함께 최고의 용병 듀오로서 한화의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2] 45개의 홈런은 종전 타이론 우즈가 기록했던 42홈런을 뛰어넘은 외국인 선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으로, 2015년 나바로테임즈가 뛰어 넘기 전까지 16년 동안 이 기록을 넘어선 외국인 타자가 없었다.[3][4][5] 그리고 109타점은 김태균이 136타점을 기록하는 2016년까지 17년 동안 한화 이글스 타자가 넘지 못한 기록이였다. 그 해 로마이어는 지명타자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그의 활약에 매료된 한화에서 외국인 선수 최초 2년 계약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었다고 한다.

이듬해인 2000년에도 타율 0.296, 29홈런과 96타점으로 나름대로 제 몫을 해주었지만, 한화 이글스는 로마이어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이런 강타자를 포기한 이유는 동료 선수들에게 타격에 대하여 지적과 설교를 자주 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유명하며 이것 때문에 플레잉 코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어떻게 보면 프로 의식이 강했다고 볼 수 있지만, 국내 코치들은 로마이어의 이런 행동을 월권 행위로 여겨 못마땅스레 여겼고, 이후 그는 계속 코치들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한다. 한화가 로마이어를 포기한 것도 표면적인 이유는 투수진 보강 차원이었지만, 코치진과의 불화도 한몫 했다.[6]

하지만 이런 뒷이야기와는 별개로, 워낙 활약이 좋았다 보니 한화 팬들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실력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용병 이었던 건 확실하고, 무엇보다도 첫 우승을 선물한 주역이었으니까... 그 후 KBO를 떠나는 줄 알았지만...


2.3. LG 트윈스 시절[편집]


파일:로마이어.png

2001년 장타자를 원했던 LG 트윈스에서 그를 영입한다. 하지만 2001시즌에도 코치진과의 불화 문제로[7] 7월에 중도 퇴출당했다. 2001시즌 성적은 6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68, 11홈런 47타점. 방출 시점에서 타점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커리어가 본인보다 안 좋은 서용빈에게 본인이 더 익숙한 포지션인 1루수를 양보하고 좌익수로 뛰던 상태였다.[8] 퇴출 당한 후 LG는 대체선수로 타자가 아닌 투수 더그 린튼을 영입하였다.


2.4. 이후[편집]


LG에서 방출 후 멕시코 팀을 전전하다가 은퇴했다.


3. 은퇴 후[편집]


근황이 알려지지 않다가 현재 플로리다에서 일식집을 운영한다고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SEA
7
9
.333
3
0
0
0
2
4
0
2
.333
.455
MLB 통산
(1시즌)
7
9
.333
3
0
0
0
2
4
0
2
.333
.45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한화
132
487
.292
142
30
3
45
(2위)[9]
109
91
6
80
.643
(3위)
.388
2000
123
473
.296
140
30
0
29
96
73
3
57
.543
.36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LG
60
205
.268
55
8
1
11
47
28
0
27
.478
.343
KBO 통산
(3시즌)
315
1165
.289
337
68
4
85
252
192
9
164
.573
.372


5. 관련 문서[편집]



[1] 마이너리그 시절[2]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 초 손민한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친 후 3루로 질주하여 역전 득점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정규 시즌-한국시리즈에서 두루 활약을 했다.[3] 2002년 SK의 호세 페르난데스가 타이를 이뤘을 뿐 이었다.[4] 당시 경기수는 132경기, 현 144경기로 12경기가 차이났으며 로마이어와 나바로는 경기당 평균 0.34개, 테임즈는 0.33개의 홈런을 쳤다.[5] 로마이어가 2015년에 뛰었다면 단순 계산으로는 나바로와 테임즈보다 1개 더 칠 수 있었다.[6] 당시 한화 1군 수석 코치였던 유승안은 "로마이어를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그만두겠다"라는 말까지 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이광환 감독 취임과 함께 둘 다 팀을 떠났지만.[7] 여기에서도 한화와 재계약을 하지 못한 사유와 같은 사유였다고 한다. 선수들에게 타격에 대해 지적과 설교를 하던 행위가 다시 한 번 발목을 잡은 것.[8] 참고로 이때 이광은이 34경기만에 짤렸던지라 당시 감독대행으로 있었던 사람이 김성근이다.[9] 99시즌 1위는 이승엽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14:27:12에 나무위키 댄 로마이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