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 카운티 FC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2023-24 시즌에 대한 내용은 더비 카운티 FC/2023-24 시즌 문서
더비 카운티 FC/2023-24 시즌번 문단을
더비 카운티 FC/2023-24 시즌#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
{{{#231f20,#FFF

[ 펼치기 · 접기 ]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12%> 정보 ||<width=12%><colbgcolor=#231f20> 구단 ||<-2>더비 카운티 FC더비 카운티 FC U23
더비 카운티 FC U18더비 카운티 FC 위민 ||
|| 선수단 ||<-2>스쿼드스쿼드(간략)U23 스쿼드U23 스쿼드(간략)
임대 명단임대 명단(간략) | 여성팀 스쿼드 | 여성팀 스쿼드(간략) ||
|| 코치 · 스태프 ||<-2>코칭 스태프 ||
||<|8> 역사 || 역사 ||<-2>역사기록역대 시즌유니폼 ||
||<|1> 최근 시즌 ||<-2>2018-192019-202020-212021-22 ||
||<|1> 최근 시즌
(U23)
||<-2>2021-22 ||
||<|4> 기록 ||<width=17%>1부
파일:프리미어 리그 트로피 new.png파일:프리미어 리그 트로피 new.png ||1971-721974-75 ||
||<width=15%>2부
파일:풋볼 리그 챔피언십 트로피.png 파일:풋볼 리그 챔피언십 트로피.png 파일:풋볼 리그 챔피언십 트로피.png 파일:풋볼 리그 챔피언십 트로피.png ||1911-121914-151968-69
1986-87 ||
||<width=15%>3부
파일:풋볼 리그 원 트로피 new.png ||1956-57 ||
||<width=15%>FA컵
파일:FA컵 트로피.png ||1945-46 ||
|| 관련 인물 ||<-2>125주년 기념 올스타앰버서더
올해의 선수초대~25대올해의 선수26대~현재
역대 감독초대~24대역대 감독25대~현재 ||
||<|1> 관련 상식 || 더비 매치 ||<-2>파일:NFFC.png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파일:레스터 시티 FC 로고.svg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
||<|2> 구단 시설 || 경기장 ||<-2>카운티 그라운드1884~1895
베이스볼 그라운드1895~1997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1997~현재
러프버러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유스 ||
|| 훈련 센터 ||<-2>무어 팜 ||
||<|3> 이 외 || 연고지 ||<-2>더비 ||
|| 연고 구단 ||<-2>버턴 앨비언 FC더비셔 CCC ||
|| 스폰서 ||<-2>32Red메인 스폰서엄브로킷 스폰서전체 스폰서 보기 ||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파일:더비 카운티 로고(화이트).svg
'''

더비 카운티 FC
'''
Derby County FC
<colcolor#231f20> 정식 명칭
Derby County Football Club[1][2]
별칭
숫양들 (The Rams)[3]
약칭
DCFC[4] | DER[5]
창단
1884년 5월 13일 (139주년)[6]
소속 리그
[[EFL 리그 원|{{{#83878a EFL 리그 원 (EFL League One)]]
연고지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셔더비 (Derby)
홈구장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 (Pride Park Stadium)[7]
(33,597명 수용)
라이벌
노팅엄 포레스트 FC -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레스터 시티 FC -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버턴 앨비언 FC - A38 더비
구단주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클로즈 개발 (영국) 유한책임회사 (Clowes Developments (UK) Limited)[8]
회장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데이비드 클로즈 (David Clowes)
감독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폴 원 (Paul Warne)
주장
[[아일랜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코너 하우리헌 (Conor Hourihane)
부주장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맥스 버드 (Max Bird)
클럽 앰버서더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로이 맥팔랜드 (Roy McFarland)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로저 데이비스 (Roger Davies)
[[자메이카|
파일:자메이카 국기.svg
자메이카
]][[틀:국기|
]][[틀:국기|
]]
마이클 존슨 (Michael Johnson)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마크 에드워디 (Marc Edworthy)
공식 웹사이트
파일:더비 카운티 FC 로고(2).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공식 색상
Founders' Green

Victory Blue
>

Centenary Gold


Premier Burgundy


Community Pink


Timeless Blue

우승 기록
프리미어 리그 (1부)
(2회)
1971-72, 1974-75
EFL 챔피언십 (2부)
(4회)
1911-12, 1914-15, 1968-69, 1986-87
EFL 리그 1 (3부)
(1회)
1956-57
FA 컵
(1회)
1945-46
FA 커뮤니티 실드
(1회)
1975-76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체코|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틀:국기|
]][[틀:국기|
]]
마테이 비드라 (Matěj Vydra)
(2016년, From 왓포드 FC, 8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톰 인스 (Tom Ince)
(2017년, To 허더즈필드 타운 AFC, 1,130만 £)
최근 영입
[[나미비아|
파일:나미비아 국기.svg
나미비아
]][[틀:국기|
]][[틀:국기|
]]
라이언 냠베 (Ryan Nyambe)
(2023년, From 위건 애슬레틱 FC, FA)
최근 방출
[[아일랜드|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아일랜드
]][[틀:국기|
]][[틀:국기|
]]
제이슨 나이트 (Jason Knight)
(2023년, To 브리스톨 시티 FC, 200만 £)
최다 출장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케빈 헥터 (Kevin Hector) - 589경기[9] (1966-1978 / 1980-1982)
최다 득점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스티브 블루머 (Steve Bloomer) - 332골 (1891-1906 / 1910-1914)
1부 리그 득점왕
(7회)
[[잉글랜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스티브 블루머 - 5회 (1895-96, 1896-97, 1898-99, 1900-01, 1903-04)
잭 보워스 - 2회 (1932-33, 1933-34)
2부 리그 득점왕
(2회)
알프 벤틀리 - 1회 (1908-09)
마테이 비드라 - 1회 (2017-18)
3부 리그 득점왕
(1회)
레이 스트로 - 1회 (1956-57)[10]



1. 개요
2. 역사
3. 최근 시즌
3.1.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악의 2007-08 시즌
3.2. 2013-14 시즌
3.3. 2014-15 시즌
3.4. 2015-16 시즌
3.5. 2016-17 시즌
3.6. 2017-18 시즌
3.10.1. 인수 사가
3.13. 리그 소속 기간
4. 1군 선수단
5. U21 선수단
6. 스폰서
7. 응원가
7.1. Steve Bloomer's Watching
7.2. Since I Was Young
7.3. If You Don't Fucking Bounce
7.4. We Are Derby
8. 공식 색상
9. 라이벌
10. 여담
11. 유명 팬
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잉글랜드 더비에 연고지를 둔 축구 클럽으로 1884년 더비셔 CCC의 분파로 창단하여 135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풋볼 리그의 원년부터 참여한 열두 구단 중 하나로, 클럽의 상징색으로는 흰색검은색을 사용하였다. 단 6시즌을 제외하고 모든 시즌을 1부 리그와 2부 리그에서만 보냈다. 최대 전성기는 2번의 리그 우승을 했던 1970년대였다.

2. 역사[편집]


1884년 더비셔 CCC의 분파로 창단되었다. 그해 크리켓 팀은 챔피언십에서 처참한 성적을 내며 수익이 줄어들었는데 이미 더비 지역에는 더비 미들랜드 FC[11]라는 1883년에 창단한 또다른 축구팀이 있었고 1884년에 열린 더비셔컵 결승에서 관중 7,000명을 모으며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은행원이었던 윌리엄 몰리(William Morley)와 그의 지지자들은 수익을 추가로 창출하고 겨울에는 크리켓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겨울에도 관중들을 모으기 위해 축구팀을 창설하기로 결심을 했다. 1883년에 창설된 더비셔 축구 협회에 크리켓 팀과 관련성을 강조하여 '더비셔 카운티 FC'라는 이름으로 창단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기각되었고 대신 '더비 카운티'라는 이름으로 창단하게 되었다. 팀 명칭에 카운티가 붙은 이유는 홈구장이 크리켓 경기장이었던 '카운티 그라운드(다른 이름으로 레이스코스 그라운드)'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유니폼 디자인은 더비셔 CCC의 유니폼 디자인을 계승한 호박색, 초콜릿색, 청색이었다. 구단 로고 또한 더비셔 CCC의 로고를 사용했다.

이후 더비 카운티는 크리켓 경기장에서 축구를 했고 창단 첫 경기는 1884년 9월 13일 그레이트 리버(Great Lever)와의 친선 경기였는데 6 대 0 완패로 끝났다. 최초의 공식 경기는 1884년 11월 8일 FA 컵에서 월솔 타운을 홈에서 상대한 경기인데 이 역시 7:0으로 대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 다음 대회에선 버밍엄 세인트 조지스와 아스톤 빌라를 꺾으며 FA컵 3라운드에 진출했는데 풋볼 리그의 창설자에 관여했던 윌리엄 맥그리거가 아스톤 빌라의 디렉터였고 이 승리로 인해 그의 눈에 들어 1888년에 창설된 역사적인 풋볼 리그 12개 팀의 일원으로 초대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리그 경기였던 볼튼 원더러스 원정에서 3:0으로 지다가 6:3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풋볼 리그는 12팀 중 10위로 마쳤다. 1891년에는 더비 지역의 다른 축구팀인 미들랜드 리그 소속의 더비 미들랜드 FC를 합병하며 더비 지역의 유일한 축구팀이 되었다. 1892년 풋볼 리그와 라이벌 리그였던 풋볼 얼라이언스와 합병하여 풋볼 리그는 2부 리그 체계로 변경되었는데 이때 풋볼 얼라이언스의 상위 세 팀이었던 이웃 도시 노팅엄을 연고지로 한 노팅엄 포레스트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1894년부터 지금의 블랙 앤 화이트 유니폼이 채택되었고 1895년에는 카운티 그라운드를 떠나 베이스볼 그라운드로 홈구장을 옮겼다.[12] 이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선수는 스티브 블루머였다. 그는 원래 더비 미들랜드 FC 소속이었으나 더비 카운티와 합병하면서 더비 카운티 소속이 되었고 1891년부터 1906년까지 15년 동안 525경기 331골(리그 474경기 293골)을 기록했다. 디비전 1 득점왕을 5차례나(1896, 1897, 1899, 1901, 1904) 수상하며 잉글랜드 최고의 공격수로 맹위를 떨쳤다. 그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더비의 디비전 1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았다. 1895-96 시즌에는 아스톤 빌라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고 그 다음 시즌에 3위를 차지한 게 전부였다. FA컵에서는 1898년, 1899년, 1903년 세 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모두 결승에서 노팅엄 포레스트, 셰필드 유나이티드, 베리 FC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쳐 우승에 실패했다. 그리고 1900년대 초 재정 문제로 블루머를 미들즈브러 FC에 팔아야 했고 결국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1906-07 시즌 20개 팀 중 19위에 그쳐 역사상 처음으로 디비전 2로 강등되고 말았다.

5년을 디비전 2에서 보내다가 블루머가 리턴한 1911-12 시즌 디비전 2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디비전 1에 복귀했다. 그러나 1912-13 시즌을 7위로 마친 뒤 곧바로 1913-14 시즌에 블루머의 노쇠화와 함께 디비전 1을 꼴찌로 마감하며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1914-15 시즌 디비전 2에서 우승하며 1년 만에 재승격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풋볼 리그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두 시즌 만인 1920-21 시즌 또 강등되었다. 평범한 2부 리그 팀이 되어가던 더비는 1925년 조지 조베이 감독이 부임하며 전환점을 맞는다. 그의 부임 후 한 시즌 만인 1925-26 시즌 디비전 2에서 준우승으로 승격을 이루어냈으며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준우승 두 차례(1929-30, 1935-36)를 포함하여 안정적으로 디비전 1에 안착하게 되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중상위권을 유지하던 더비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리그가 중단되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지역 리그에서 여전히 강팀으로 활약했고 1946년 FA컵에서 찰턴 애슬레틱을 4:1로 꺾고 우승하며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리그가 1946년 재개된 뒤 1947-48 시즌과 1948-49 시즌 4위와 3위를 차지한 뒤 급격한 내리막길을 겪었고 결국 1952-53 시즌 22개 팀 중 꼴찌로 27년 만에 디비전 2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54-55 시즌에는 디비전 2에서 또 22위에 그쳐 역사상 처음으로 3부 리그인 디비전 3으로 내려가는 굴욕을 겪었다. 그 후 1956-57 시즌에 디비전 2로 올라오긴 했지만 이후 10년 간 디비전 2에만 머물러야 했다.

1967년에 샘 롱슨(1989년 작고)과 브라이언 클러프가 회장과 감독으로 각각 취임하였다. 클러프는 평범한 선수였던 피터 테일러를 수석 코치이자 스카우터로 삼았고 로이 맥팔랜드, 존 오헤어, 존 맥거번, 앨런 힌튼, 레스 그린, 케빈 헥터 등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전력을 강화시켜 1968/69 시즌에 디비전 2에서 우승하여 16년 만에 디비전 1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디비전 1으로 돌아온 첫 시즌인 1969-70 시즌 4위를 기록했고 2년 뒤인 1971-72 시즌 디비전 1에서 창단 처음으로 1부 리그에서 우승했다.[13]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1972-73 시즌 유러피언 컵에 준결승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준결승에서 유벤투스에 1:3으로 지며 결승행은 아쉽게 좌절되었다.[14][15] 그러나 클러프 감독의 유명한 성질머리가 문제가 되어 보드진과 불화가 생겼고 1973-74 시즌 초반 부진하자 클러프 감독과 테일러 코치가 차례로 떠났다.

클러프의 사퇴 이후 그의 뒤를 이은 데이브 맥케이가 팀을 이끌며 1974-75 시즌에 4년 만에 디비전 1에서 우승을 되찾았다. 그러나 1975-76 시즌 4위를 기록한 것까진 좋았으나 1976-77 시즌 갑자기 강등 위기에 몰리자 맥케이 감독 역시 클러프 감독과 마찬가지로 우승 후 2년이 채 안되어 감독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리저브 팀 감독이던 콜린 머피와 맨유를 이끌었던 토미 도허티가 감독직을 맡고도 하위권에서 맴돌았고 콜린 볼튼, 콜린 토드, 아치 게밀, 케빈 헥터, 찰리 조지, 레이튼 제임스 등 영광의 멤버들도 하나둘씩 팀을 떠나기 시작했다. 도허티가 떠난 뒤 첫 시즌인 1979-80 시즌 결국 11년 만에 디비전 2로 강등당했다. 디비전 2에서도 승격과 거리가 먼 행보와 관중 감소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렸고 1983년 초 과거 수석 코치였던 피터 테일러가 부임했으나 오히려 1983-84 시즌에는 다시 한번 3부 리그로 추락하고 말았다.

1부 리그에서 우승한지 10년도 안되어 3부 리그까지 떨어지고 파산 위기까지 몰린 상황에서 구원자가 나타났다. 옥스포드 유나이티드의 회장을 지낸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16]이 구단을 인수해서 파산 위기를 넘겼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바 있는 아더 콕스가 감독직에 취임하여 리빌딩을 시작해 1985/86 시즌과 1986/87 시즌에 백투백 승격에 성공하며 7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했다. 연속된 호성적에 관중도 늘어나 재정 상태가 나아졌고 맥스웰 회장은 피터 쉴튼, 마크 라이트, 딘 손더스, 트레버 헤버드, 테드 맥긴 등을 폭풍 영입하여 잠깐 화제를 모았고 승격 후 두 번째 시즌인 1988-89 시즌에 5위를 했으나 구단주의 애정이 식으면서 투자가 줄어들자 다시 리그에서는 부진을 거듭하여 결국 1990-91 시즌 막판에 맥스웰 회장이 손을 떼고 난 뒤 결국 강등되었다. 강등 이후 지역 언론 사업가였던 리오넬 피커링이 클럽의 대주주가 되며 맥스웰 회장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신임 회장이 되었다.

피커링 신임 회장은 여러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1993년 10월 아서 콕스 감독이 사임하자 클럽 레전드였던 로이 맥팔랜드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1993-94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에 올랐으나 라이벌인 레스터 시티 FC에 패했고 다음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자 맥팔랜드 감독은 경질당했다. 그리고 그의 후임으로는 4차례의 승격을 이끌어내며 승격 전도사인 짐 스미스를 선임했다.

1995-96 시즌 초반 스타트는 좋지 않았지만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센터백 이고르 슈티마츠를 깜짝 영입한 것이 효과를 봤다. 스미스 감독은 더비 카운티를 2부 리그 준우승로 이끌며 5년 만의 1부 리그 복귀에 성공했다. 프리미어 리그로 명칭이 바뀐 이후로 처음으로 PL에 참가하게 되었다.

1996-97 시즌 프리미어 리그 12위로 마감하며 안정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안착했고 시즌 막판에는 해당 시즌 우승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시즌 막판에 영입된 파울로 완초페의 데뷔전 원더골로 3:2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즌을 끝으로 102년 동안 사용했던 베이스볼 스타디움의 시간을 마감하고 현재의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새 홈구장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1997-98 시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짝이었던 ACF 피오렌티나의 프란체스코 바이아노를 영입했고 그는 클럽 최고 타이기록인 6경기 연속 리그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셰필드 웬즈데이에 5:2 대승을 거두며 61년 만에 승리하기도 했다. 시즌 중반까지 프라이드 파크에서 맨유에 2 대 2 무승부, 아스날에 3 대 0 대승 등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며 유럽 대항전 진출권에 머물렀으나 홈 첫 패 이후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지며 7위 아스톤 빌라에 승점 2점 차이인 9위로 마감했다. 시즌이 끝나고 열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5명이 더비 카운티 소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였다.[17]

1998-99 시즌 수비수 크리스티안 데일리가 블랙번 로버스로 당대 더비의 최다 이적료 방출 기록이었던 535만 파운드에 이적했고 수석 코치로 들였던 스티브 맥클라렌에 시즌 도중 퍼거슨의 부름을 받고[18] 맨유로 떠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 2위에 오르기도 했고 강등 걱정 없이 전 시즌보다 더 좋은 8위로 마감했다. 70년대 이후 처음으로 1부 리그에서 연속 TOP 10. 리버풀 FC를 상대로 홈, 어웨이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더비의 좋았던 시절이었고 곧바로 재정 문제라는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재정 문제로 인해 주축 선수들을 대거 이적시켜야 했다. 1999-00 시즌 전과 도중에 이고르 슈티마츠와 파울로 완초페를 웨스트햄에, 리 카즐리를 블랙번에 팔아야 했고 리 카슬리는 시즌 도중 팀을 떠났다. 7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루 알렉산드라의 셋 존슨과 CA 콜론의 에스테반 푸에르테스를 영입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도 푸에르테스는 영국 이민청에서 그의 이탈리아 여권이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비자가 취소, 8경기 1골에 그치며 이적해야 했다. 결국 전력 악화와 함께 17경기에서 단 3승에 그치며 강등 위기에 몰리자 800만 유로에 크레이그 벌리와 브란코 스트루파르, 리 모리스를 대거 영입했다. 시즌 종료 직전에는 아약스로부터 과거 맨시티 소속의 게오르기 킨클라제마저 임대로 데려오며(후에 300만 유로로 완전 이적) 강등 위기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썼고 결국 그 효과를 보며 간신히 강등권에 승점 5점 차인 15위로 강등 위기를 넘겼다. 헹크에서 온 벨기에 국가대표의 스투르파르는 프리미어 리그 새천년 첫 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0-01 시즌, 지난 시즌 후반기의 선전과 함께 90년대 후반대의 성적으로 되돌아가리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첫 승을 신고하는 데 14경기나 걸리며 또다시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시즌 막판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챔피언 맨유를 상대로 깜짝 1:0 승리를 거두며 17위로 잔류할 수 있었다.

2001-02 시즌에 라치오로부터 과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인 파브리치오 라바넬리를 SS 라치오로부터 영입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개막전에서 블랙번을 상대로 2:1로 8년 만에 승리했으나 7경기에서 승점 5점으로 부진하자 더비를 오랫동안 이끌던 짐 스미스는 단장직도 거부하고 6년 만에 감독 자리에서 자진 사퇴했다. 스미스의 후임으로 수석 코치이자 과거 더비의 레전드였던 콜린 토드가 후임이 되었지만 성적은 오히려 더 추락하며 15경기 4승에 그쳤고 FA컵에서 4부 리그 팀인 브리스톨 로버스에 홈에서 3:1로 패배하자 불과 98일 만에 경질당했다. 토드는 더비 역사상 최단 시간 감독의 불명예를 얻고 말았다. 토드의 후임은 과거 더비 카운티 소속 선수이자 아스톤 빌라를 상위권으로 이끌며 잉글랜드 감독 물망에도 올랐던 존 그레고리였는데 그는 덕 앨리스라는 빌라의 악덕 구단주와의 불화에 지쳐 빌라를 떠나 더비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레고리 감독 부임 후 초반에는 나름 승점을 쌓으며 강등권 탈출의 희망을 품는가 했지만 곧바로 7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결국 6년 만에 19위로 2부 리그인 디비전 1으로 강등되었다.

강등 이후 더비 카운티는 재정난에 시달리며 주축 선수들을 이적 시장에서 대거 이적시켜야 했고 선수 영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며 2부 리그에서도 하위권에 처지게 되었다. 결국 존 그레고리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입스위치 타운의 돌풍으로 이끌었던 조지 벌리가 신임 감독이 되었다. 2002-03 시즌은 디비전 1에서도 18위로 간신히 강등을 면했고 2003-04 시즌에도 여전히 재정난에 시달리며 최종전에서 간신히 강등권에 승점 1점 앞선 20위로 잔류했다. 라바넬리와 킨클라제, 크레이그 벌리와 같은 빅 네임들이 시즌 도중 팀을 떠났고 자유 계약으로 데려온 선수들과 8명의 임대생들로 충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강등 위기의 더비를 구출한 선수는 훗날 에버튼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에버튼에서 임대 온 리온 오스만이었다. 그리고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 골키퍼에 선발되었던 만 19세에 불과했던 리 그랜트 골키퍼가 좋은 활약을 했다.

2004-05 시즌에는 여전히 영입 자금이 없는 가운데 자유 계약으로 데려온 라시아크와 이디아케스, 토미 스미스, 그리고 유스의 리 그랜트, 파블로 밀스, 톰 허들스톤, 마커스 투드게이의 맹활약으로 4위로 마감하며 강등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 1,2차전 합계 0:2로 패하며 3년 만의 승격 도전은 좌절되었다. 시즌 후 조지 벌리 감독은 톰 허들스톤이 그의 상의 없이 토트넘으로 이적한 것에 대한 불만 등 보드진과의 불화로 사임하고 볼튼 원더러스의 코치였던 필 브라운[19]이 감독을 맡게 되었다. 이 무렵 구단 부채는 3000만 파운드가 넘었고 홈구장인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 소유권도 파나마의 ABC Corporation이라는 회사에 매각하여 연간 100만 파운드의 임대료로 경기장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2005-06 시즌 필 브라운은 초보 감독의 한계를 드러나며 강등위기에 몰리자 성적 부진으로 2006년 1월에 경질당했고 유스팀 코치였던 테리 웨슬리가 1군 팀을 맡아 더비는 20위로 강등을 모면했다. 그리고 4월에는 지역 사업가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의 피터 개스비가 클럽을 사들이며 부채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의 소유권을 다시 되찾았다.

2006-07 시즌 전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플레이오프 진출시켰던 빌리 데이비스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더비는 이적 시장에서 수년 만에 100만 파운드를 넘기며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 스티브 하워드루턴 타운에서 1m에 데려온 것이 5년 만에 발생한 최다 이적료일 정도. 그 외엔 프리미어 리그 경력이 있던 웨스트햄의 골키퍼 스티븐 바이워터와 풀럼의 수비수 딘 리콕을 1m가 넘지않은 이적료로 저렴하게 영입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승격 도전을 가속화하기 위해 타이론 미어스와 게리 틸, 제이 맥케블리, 데이빗 존스, 크레이그 페이건, 스티븐 피어슨, 존 매켄을 합계 500만 파운드 이하로 추가 영입했다. 떠난 선수는 이디아케(사우스햄튼)[20]와 토미 스미스(왓포드). 더비 카운티는 당초 승격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3위라는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5승 중 20승이 1점 차 승리일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중후반까지 1위를 질주했으나 막판의 아쉬운 결과로 선덜랜드버밍엄에 밀려 3위가 되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가레스 베일사우스햄튼에 1,2차전 합계 4:4를 기록한 이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고 결승에서 웨스트브롬을 1-0으로 꺾고 5년 만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했다. 스티브 하워드는 19골(리그 16골)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더비 올해의 선수가 되었고 2006년 1월에 합류했던 대런 무어는 챔피언십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5년 만에 돌아온 프리미어 리그는 가혹했다. 2007-08 시즌 한 시즌 동안 겨우 1승만 거두고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소 승점 등 각종 주옥 같은 기록들을 쓰고 강등당했다.

2008년부터는 쭉 챔피언십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17년을 챔피언십에서 머물던 입스위치가 강등당해 라이벌 포레스트와 함께 챔피언십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고 있다. 2013년까진 평범한 중위권에 머물다 2013-14 시즌부터 승격 플레이오프 단골팀으로 프리미어 리그 복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나 번번히 승부처에서 승격이 무산되고 있다.


3. 최근 시즌[편집]



3.1. 프리미어 리그 역대 최악의 2007-08 시즌[편집]


5년 만에 돌아온 프리미어 리그에서 1승 8무 29패로 승점 11점 20득점 89실점을 기록하며 최하위로 강등당하였다. 게다가 역대 최소 승점, 최다 패전, 최소 득점, 최다 득실 차를 기록하며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21] 팀의 유일한 승리를 적선한 팀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였다.[22] 6라운드 뉴캐슬전 첫 승리 이후 32경기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프리미어 리그 최다 경기 무승 기록도 작성했다. 승격 이후 안일하게 전력을 보강한 것이 대참사의 원인이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클로드 데이비스, 로버트 언쇼, 케니 밀러, 앤디 토드, 루이스 프라이스, 타이론 미어스, 베니 페일하버를 영입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뭔가 부실한 영입.

빌리 데이비스 감독이 이끌던 시즌 초반 개막전 포츠머스에 2 대 2로 비기고 2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 0 대 1로 석패할 때까진 괜찮았으나 이후 3라운드 토트넘에 0 대 4 패, 5라운드 리버풀에 0 대 6으로 대패하며 5라운드 만에 1무 4패에 3득점 15실점으로 꼴찌로 떨어졌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9월 초순이었던 이때 벌써부터 더비의 강등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6라운드에서 밀러의 데뷔전 데뷔 골로 뉴캐슬에게 1 대 0 승리를 거두지만[23] 이게 마지막 승리였고, 직후 7라운드 아스날과 13라운드 웨스트햄에 0 대 5 패배를 당하며 맛집으로 전락해버렸다. 11라운드 에버튼에게 0 대 2로 패해 풀럼과 비긴 게 무색하게 다시 꼴찌가 되었고 이후 38라운드까지 27경기 연속으로 압도적 최하위를 지킨다. 결국 승격을 이끈 빌리 데이비스 감독은 14경기 만에 1승 3무 10패 승점 6점 5득점 33실점의 처참한 성적과 함께 경질되었고 위건의 승격과 돌풍을 이끈 폴 쥬얼이 새 감독이 되었다.

부임 후 첫 경기였던 15라운드 같은 강등권인 18위 선덜랜드 원정에서 0-0으로 끝날 것 같은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실점해 통한의 1-0 패배를 당했다. 16라운드 맨유 원정에서 4-1 패배를 당했는데 여기서 만회득점한 골이 더비의 시즌 첫 원정득점이었다. 17R 미들즈브러와의 홈경기에서 1-0으로 패한 뒤 18R 뉴캐슬과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로 감독 교체 후 첫 승점을 따냈다. 곧바로 박싱데이 일정인 19R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종료 직전에 제라드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헌납해 아쉽게 2-1 패배를 당했고, 20R 블랙번과의 홈경기에서도 선제골을 득점하고도 PK 실축 후 곧바로 두 골을 내주며 2-1로 역전패를 당했다. 새해 첫 경기였던 21R 볼튼 원정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허용해 1-0 패배, 22R 쥬얼의 전 소속팀이자 강등권 경쟁팀 위건과의 홈경기에서도 경기 막판 실점하여 1-0 패배를 당했다. 이와 같이 쥬얼의 부임 초기에는 부임 전보다 경기력은 비교적 나아졌지만 동점 상황에서 막판에 실점하는 버릇 때문에 승점을 자꾸 까먹었고 그럴 수록 조기 강등 가능성은 높아져만 갔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에마누엘 비야와 스테조브스키, 스텁스, 로이 캐롤, 로비 새비지, 대니 밀스, 호삼 갈리를 폭풍 영입해보지만 이들 대부분은 전성기가 지나거나 기량이 쇠퇴한 선수들이었다. 물론 겨울이적시장이 마감한 뒤 24R 맨시티와의 홈경기와 25R 버밍엄과의 원정경기에서 연속 1-1 무승부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6R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3-0 대패, 27R 위건 원정에서 2-0 패배를 당하면서 2월이 끝나는 상황까지도 단 1승에 승점 9점에 그쳐 승점 10점도 못 넘긴 팀이 되고 말았다.

3월 첫 경기인 28R 선덜랜드와의 홈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드디어 승점 10점을 채웠다. 그러나 주중경기였던 29R 첼시 원정에서 프랭크 램파드에게 4골을 헌납하며 6-1 대패를 당했고, 30R 맨유와의 홈 경기에서 벤 포스터 골키퍼[24]를 위협하는 찬스를 만드는 등 선전하며 아깝게 0 대 1로 지고 말았다.[25] 31R 보로 원정에서도 1-0 패배를 당하며 승점을 한 번만 더 잃어도 강등이 확정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아직 3월인 32라운드 풀럼과의 경기에서 2 대 2로 비기며[26] 6경기 남은 상황에서 잔류권인 17위와 승점 19점 차로 벌어져 강등이 확정되었다.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초로 3월에 강등을 확정지은 팀이 되었다. 강등 확정 이후 남은 6경기는 모두 졌고 4점 차 이상 대패도 3번이나 당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기록이란 모조리 뒤집어썼다. 쥬얼 감독은 부임 후 24경기에서 단 1승도 없이 5무19패를 기록하게 됐다.

최종전 상대는 홈에서 풀럼과 강등권 경쟁하던 레딩을 상대했는데 레딩은 더비에 4 대 0으로 이겼지만 포츠머스 원정을 떠난 풀럼이 후반 막판 대니 머피의 결승골로 1 대 0 승리를 거두며 레딩과 더비는 다음 시즌 2부 리그 동기가 되었다.

이때 무수한 기록들을 작성하고 빠르게 강등당한 뒤 현재까지도 승격하지 못하고 있으며, 뉴캐슬전 승리가 이들의 1부 리그 마지막 승리이다.


3.2. 2013-14 시즌[편집]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스티브 맥클라렌을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25승 10무 11패 승점 85점을 기록하며 3위를 차지하여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승격 플레이오프 4강에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을 맞아 2승으로 가볍게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 만난 팀은 4위를 차지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였다. 90분 동안 줄곧 QPR을 밀어붙이며 승격을 하는가 싶었는데 추가 시간이었던 91분, 크레이그 포사이스리차드 키오의 실수를 틈타 바비 자모라가 골을 넣으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에 실패하였다.


3.3. 2014-15 시즌[편집]


14-15 시즌은 초반에 매우 잘하고 있다. 7승 5무 1패로 1위를 기록 중이다. 다만 왓포드가 단 1점 차로 추격 중이고 8위와 승점 차가 5점뿐이라 언제라도 바뀔지 모른다. 30라운드 시점에서는 선두를 미들즈브러 FC에게 내주고 3위로 내려왔지만 1점 차로 보로를 바짝 추격 중이다. 그러나 치열한 선두권 다툼 속에 승점을 많이 까먹어 45라운드 기준 6위로 밀려나 플레이오프 진출권만이라도 사수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46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레딩과의 홈 경기에서 0-3으로 참패하면서 8위로 추락하면서 다음 시즌도 챔피언십에 남게 되었다. 더비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레딩전을 비기기만 했더라도 5~8위까지 다 같은 승점 78점이 되지만 골 득실에서 가장 앞서기에 더비가 5위를 확정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3.4. 2015-16 시즌[편집]


아쉬웠던 14-15 시즌을 마친 더비는 맥클라렌 감독을 경질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석 코치로 있던 폴 클레멘트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지난 시즌 임대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대런 벤트를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고 레딩이랑 계약이 끝난 아일랜드 국가대표 수비수인 알렉스 피어스, 오스트리아 국대안드레아스 바이만아스톤 빌라에서, 잉글랜드 국대였던 스콧 카슨위건 애슬레틱에서 영입하였다. 그리고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에서 북아일랜드 대표크리스 베어드를 영입하였으며, 지난 시즌 헐 시티에서 임대와서 매우 좋은 활약을 보여준 톰 인스를 완전 영입하였다. 그러면서 번리 FC의 주장이던 수비수 제이슨 샤켈을 영입하면서 지난 시즌 불안하다고 지적받던 수비를 강화하였다.

32라운드 기준 승점 51점으로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6위를 유지하고 있다.

43라운드 기준 리그 5위, 승점 76점으로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상태다. 최종 순위도 5위로 마무리.

4위 헐시티와 플레이오프 4강 경기를 치렀는데 홈에서 0-3으로 대패하여 원정 경기에서 4골 차로 이겨야 하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는 전반에만 두 골을 넣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려 했으나 아쉽게 후반에서 추가 득점에 실패, 합계 스코어 3:2로 플레이오프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3.5. 2016-17 시즌[편집]


나이젤 피어슨 감독을 새로 선임하였고, WBA에서 스트라이커 마테이 비드라를 거금 £12.5m에 영입했다. 그리고 핵심 미드필더 제프 헨드릭을 번리에 내줬다. 또한 맨유의 유망주 제임스 윌슨을 임대로 들였다. 겨울 이적 시장에는 팀의 유스 출신 에이스 미드필더 윌 휴즈를 왓포드에 내주는 아픔도 겪었다.

시즌 초반 강등권 언저리를 맴돌았는데, 피어슨 감독이 구단주와 심한 언쟁을 하다가 9월 27일 구단 자체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10월 초 피어슨 감독이 해임되었는데, 후임으로 뉴캐슬에서 영 좋지 않은 모습이었던 스티브 맥클라렌을 어쩐 일인지 재영입하였다. 맥클라렌은 선임 후 첫 7경기에서 5승 1무 1패를 거두며 20위였던 팀을 21라운드 기준 5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약발은 그뿐이었고 들쑥날쑥한 경기력을 보이며 팀은 10위로 추락, 다음 시즌 승강전 진출이 거의 무산되자 매클라렌을 경질하고 전 버밍엄 시티 감독이었던 게리 로웻 감독을 데려오며 사실상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최종 순위는 9위.


3.6. 2017-18 시즌[편집]


게리 로웻 감독이 팀을 안정시켰고 전 시즌 부진했던 마테이 비드라도 살아나며 26라운드 기준 승점 49점으로 2위에 랭크되며 자동 승격을 노린다. 1위 울브스가 61점을 따내고 있어 당장 우승 경쟁은 쉽지 않아 보이며, 3위 카디프 시티와 4위 브리스톨 시티가 승점 47점으로 추격 중이었는데, 31라운드 부터 2무 3패의 성적을 찍고 5위로 내려앉았다. 7위와의 승점 차가 4점밖에 나지 않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최종전을 앞두고 7위 프레스턴에게 2점 차이로 6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최종 라운드에서 반즐리를 4-1로 이기며 자력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였다. 반즐리는 이 경기로 리그 1 강등 확정. 플레이오프 4강에서 최근 기세가 엄청난 3위 풀럼을 상대하게 된다.

5월 11일 홈에서 펼쳐진 4강 1차전에서 베테랑 카메론 제롬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지만 5월 15일 원정에서 펼쳐진 4강 2차전에서 세세뇽과 오도이에게 골을 내어주면서 총 스코어 1-2로 역전패 당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3.7. 2018-19 시즌[편집]


플레이오프 패퇴 직후 게리 로웻 감독이 강등당한 스토크 시티로 이적하며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공석인 감독 자리에는 대선수 출신 프랭크 램파드가 앉아 커리어 첫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EFL컵 3라운드에서 맨유를 승부차기 끝에 꺾었고, 이로써 MK 돈스, 브리스톨 시티와 같은 경지에 올랐다. EFL컵 4라운드의 상대는 공교롭게도 감독 프랭크 램파드의 친정 팀인 첼시 FC로 결정되었다.

리그는 6위로 마무리지어 승격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었다. 준결승에서 리즈를 도합 5:4로 꺾고 아스톤 빌라와 결승을 치른다. 그리고 2 대 1로 패하여 프리미어 리그는 물건너갔다.

입스위치 타운이 리그 1으로 강등되면서 노팅엄 포레스트와 함께 챔피언십에서 2008년 이후로 강등이나 승격 없이 가장 오래 머무는 구단이 되었다.


3.8. 2019-20 시즌[편집]


문서 참조.


3.9. 2020-21 시즌[편집]


문서 참조.

감독 교체를 겪는 내홍 끝에 강등 위기에 시달리다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3.10. 2021-22 시즌[편집]


지난 시즌 잔류에 성공하며 지역 라이벌 팀과 함께 14년 연속 EFL 챔피언십에 잔류한 팀이 되었다.

1984년 이후 다시 팀이 붕괴 위기에 내몰렸다. 구단은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승점 21점이 삭감되었다.[27]

이렇게 답이 없던 상황이지만 웨인 루니 감독 휘하에서 탈꼴찌, 더 나아가 잔류를 위한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26라운드 현재 승점 14점으로 25경기를 치른 21위 레딩과 8점 차이까지 좁혔다.

그러나 결국 43라운드 QPR 원정 경기에서 1 대 0으로 패하면서 리그 원으로 강등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 라이벌은 23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했다.


3.10.1. 인수 사가[편집]


2020년 하반기 맨시티 구단주로 유명한 만수르의 사촌이며 2019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던 칼레드 빈 자헤드 알나얀이 더비 카운티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떴다. 하지만 결국 빈 자헤드 측에서 계속 절차를 지연시키며 인수가 무산되었다.

2021년 상반기 노 리미츠 스포츠 유한책임회사(No Limits Sports Ltd)[28]와 인수 협상이 합의되었다는 뉴스가 떴다. EFL의 승인이 내려지면, 인수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하지만 노 리미츠 스포츠 유한책임회사의 회장이자 스페인 에이전트인 에릭 알론소도 사기꾼이었고, 인수가 또 무산되었다.

10월 들어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전 구단주인 마이크 애슐리가 인수를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뉴캐슬을 빈 살만 왕세자에게 팔아버린 뒤 여전히 축구단 운영을 해보고 싶다는 것인데 뉴캐슬 운영 당시 온갖 말이 안 좋았기에 더비 카운티 서포터들 반응은 부정적. 하지만 더비 카운티 법정관리인들은 마이크 애슐리와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고 루머를 일축했다.

2022년 1월 현재, 마이크 애슐리와 앤디 애플비[29]가 인수 경쟁 중에 있다.

2022년 4월, 지난해 12월에도 인수 관심을 표명했던 미국의 물류 사업가 크리스 키르히너가 우선 협상 대상자(preferred bidder)로 선정되었다.

2022년 5월, 웨인 루니가 인수가 근접했음을 발표했다. 그러나 또 자금 증명 문제로 부결되었다.

2022년 6월 말, 더비의 지역 사업가 데이비드 클로즈(David Clowes)의 클로즈 개발(Clowes Development)가 우선 협상 대상자(preferred bidder)로 선정되었다.

2022년 7월 1일, 클로즈 개발이 구단 인수를 완료하였다.


3.11. 2022-23 시즌[편집]


36년 만에 맞는 3부 리그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3.12. 2023-24 시즌[편집]



3.13. 리그 소속 기간[편집]


  • 1부/프리미어 리그: 1888-1907, 1912-1914, 1919-1921, 1926-1953, 1969-1980, 1987-1991, 1996-2002, 2007-2008 (65시즌)
  • 2부/EFL 챔피언십: 1907-1912, 1914-1915, 1921-1926, 1953-1955, 1957-1969, 1980-1984, 1986-1987, 1991-1996, 2002-2007, 2008-2022 (30시즌)
  • 3부/EFL 리그 1: 1955-1957, 1984-1986, 2022- (6시즌)
  • 4부/EFL 리그 2: 없음


4. 1군 선수단[편집]







5. U21 선수단[편집]






6. 스폰서[편집]





7. 응원가[편집]



7.1. Steve Bloomer's Watching[편집]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
Steve Bloomer's Watching
[ 펼치기 · 접기 ]
'''{{{#808080 Our history's full of legends and football played on high
우리 역사는 전설과 높은 수준의 축구로 가득하리
Raich Carter, Peter Doherty, you should've seen 'em fly
레이츠 카터, 피터 도허티, 그들이 날고 기던 시절을 그대들은 보았어야 한다
Now we all just love football, but will we lift the crown
우리는 이제 그저 축구를 사랑할 뿐이지만, 우리가 왕관을 들어올릴 수 있을까
The noise goes up, the Rams comes out, onto the hallowed ground
함성이 거세지고, 양들한 경기장으로 걸어나오네
Steve Bloomer's watchin', helping the fight
스티브 블루머가 보고 계셔, 전투를 도우시며
Guiding our heroes in the black and the white
우리 영웅들을 흑과 백으로 인도하시네
All teams who come here, there's nowhere to hide
이곳에 오는 어떤 팀도 숨지 못하리
Everyone is frightened of that Derby pride
모두들 더비의 자부심에 두려워하네
The Rams just play football that make our hearts so proud
양들은 그저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축구를 하네
McFarland and Hector, were names to thrill the crowd
맥팔랜드헥터는 관중들을 흥분시키는 이름이라
And if you love or hate us just wait until we score
우리를 사랑하든 싫어하든, 그저 우리가 득점할 때까지 기다려
The ball goes in, the stands light up and howl the might roar
골이 들어가고, 관중석이 비추어지고,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퍼지네
Steve Bloomer's watchin', helping the fight
스티브 블루머가 보고 계셔, 전투를 도우시며
Guiding our heroes in the black and the white
우리 영웅들을 흑과 백으로 인도하시네
All teams who come here, there's nowhere to hide
이곳에 오는 어떤 팀도 숨지 못하리
Everyone is frightened of that Derby pride
모두들 더비의 자부심에 두려워하네
Steve Bloomer's watchin', helping the fight
스티브 블루머가 보고 계셔, 전투를 도우시며
Guiding our heroes in the black and the white
우리 영웅들을 흑과 백으로 인도하시네
All teams who come here, there's nowhere to hide.
이곳에 오는 어떤 팀도 숨지 못하리
Everyone is frightened of that Derby pride
모두들 더비의 자부심에 두려워하네
The Rams are a coming
양들이 나오네
We're out there to win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나왔네
Playing like fury, they won't let them in
맹렬하게 싸우라, 이는 그들을 막으리라
Home sides be wary of our heart and our soul
홈 팀은 우리의 마음과 혼을 경계해야 하리라
We're searching for glory and victory is our goal
우리는 영광을 구하며, 승리는 우리의 목표이므로
Steve Bloomer's watchin', helping the fight
스티브 블루머가 보고 계셔, 전투를 도우시며
Guiding our heroes in the black and the white
우리 영웅들을 흑과 백으로 인도하시네
All teams who come here, there's nowhere to hide
이곳에 오는 어떤 팀도 숨지 못하리
Everyone is frightened of that Derby pride
모두들 더비의 자부심에 두려워하네
DERBY!
더비!
}}}'''



7.2. Since I Was Young[편집]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
Since I Was Young
[ 펼치기 · 접기 ]
'''{{{#808080 Since I was young
나 어릴 때부터
I followed the
그들을 응원했네
D.C.F.C.
더비 카운티 FC
The team for me...
나의 그 팀을...
}}}'''



7.3. If You Don't Fucking Bounce[편집]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
If You Don't Fucking Bounce
[ 펼치기 · 접기 ]
'''{{{#808080 If you don't fucking Bounce
몸을 흔들지 않는다면
Then you're a red!
너는 빨갱이야!
(Repeated)
(반복)
}}}'''



7.4. We Are Derby[편집]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
We Are Derby
[ 펼치기 · 접기 ]
'''{{{#808080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Rail-track city; birthplac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철도의 도시, 산업 혁명의 발상지
Where inventors span cogs to engineer solutions
발명가들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톱니바퀴를 돌리는 곳
We're a city that delivers
우리는 배달하는 도시라
From Royal Mail PO boxes
로열메일의 우체통에서
To Royal Crown Derby china
로열 크라운 더비 차이나[1]까지
Craft and specialism's our definer
기교와 전문성이 우리를 정의하리라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Bearers of Joseph Strutt's philanthropy
조지프 스트러트[2]의 인류애와
Erasmus Darwin's philosophy
이래즈머스 다윈[3]의 철학을 나르는 이들
Where Florence Nightingale hatched plans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잉글랜드에 의료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To revolutionise the healthcare of England
계획을 세웠던 곳이라
We're engineers with dirty fingernails
우리는 손톱이 더러운 기술자들
Graft and sweat pump through our veins
중노동에 흐른 진땀은 우리의 혈관을 타고 이어지리
We're Rolls-Royce engines, Belper nails
우리는 롤스로이스의 엔진 기술자들, 벨퍼의 인공 손톱 제작자들[4]
Toyota motors, Bombardier trains
토요타 모터스 공장 기술자들, 봉바르디에 철도 공장 기술자들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A picture painted by Wright
조지프 라이트[5]가 그린 그림
A building designed by Pickford
조지프 픽포드[6]가 디자인한 건물
We're artistic souls and working minds
우리는 인지를 토대로 쌓아올린 유산에 있는
With a heritage built on cognizance
예술적 영혼과 노동자들의 마음이라
The underdog city of Middle England
미들 잉글랜드언더독 도시
Entrepreneurship exemplified
기업가정신의 전형적인 예시로 들어지며
Where independent businesses thrive
자영업이 번창하는 도시
The real-ale capital; a beer festival every night!
매일 맥주 축제가 열리는 에일의 진정한 수도라![7]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Where the ram is our symbol
양이 우리의 상징이며
The city its beating heart
그 도시 자체로 두근거리는 심장이라
We've lived through hard times, persevered
우리는 힘든 시간에도 살아왔고, 인내심을 가지며 견뎌왔다.
Our people possess the spark
우리네 사람들은 불꽃을 품고 있다.
We are Derby County:
우리는 더비 카운티다.
Formed in 1884
내가 태어나기 100년 전인
100 years before I was born
1884년에 창단하여
Under Clough and Taylor came the glory days
클러프와 테일러[8] 치하에 영광을 누렸고
The heritage they forged; their legacy still remains
그들이 구축한 유산들, 그 유산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Where on Shaftesbury Cres, the kids now play
아이들이 놀고 있는 셰프트버리 크레스 거리에,
Where houses stand and turf once lay
한 때 경기장과 잔디가 놓였던 곳에,
On the ashes of our Baseball Ground
우리 베이스볼 그라운드의 잿더미 위에,
They laugh and have a kick around
아이들은 웃으며 돌아다니네
As Stevie Bloomer watches down
스티브 블루머가 내려다보니
The city's pride emanates the ground
도시의 자존심이 땅에 배어 있으리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On that Monday morning
그 월요일 아침에
After that Wanchope weekend
완초페의 주말의 다음 날에[9]
Driving all those Man United fan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을
Completely 'round the bend
화나게 해보자[10]
We're resilience in the flesh
우리는 뼛속부터 오뚝이
We've never settled
우리는 언제나 차선책을 생각하며
For second best
주저앉지 않았다
Just walk these streets
그저 이 거리를 걸으면
You’ll feel the pride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리라
It’s in our DNA
우리 DNA 속에 있는 그 자부심을
We Are Derby
우리는 더비다.
Where the future's bright:
빛나는 미래가 있는 곳
Bright black & White
빛나는 흑과 백이 있는 곳
Whoever the opponent
그 누가 상대하든
We’ll take the fight
우리는 그저 맞서 싸우리라
We'll sing the songs; we'll sing them loud
우리는 이 노래를 노래하라, 우리는 소리높여 그들을 외치리라
Whatever gets thrown at us!
어떤 상황 속에서도!
The ambition's here, the time is now
야망이 여기 있으니, 때가 이르렀다
Our loyal supporters will see us proud
우리 헌신적인 지지자들은 우리의 자부심을 보리라
With our new blood we can make the push
새로운 피로 우리는 밀어붙이며
And forge new history to elevate this club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이 구단을 드높이라
Back to the top where we belong
우리가 있어야 할 정상으로 돌아가라
The ambition here is bubbling strong
여기 야망은 맹렬하게 불타오른다
We Are Derby: Derby County
우리는 더비다. 더비 카운티이다.
}}}'''

구단 전속 시인인 제이미 트라시볼루가 지은 시이다. 더비 매치나 중요한 경기가 홈에서 열릴 경우 경기 직전 경기장에서 제이미 트라시볼루가 이 시를 낭독하는 행사를 가지며, 경우에 따라 시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8. 공식 색상[편집]



파일:INSERT - Colour blocks identity.jpg

파산했던 더비 카운티가 구단의 팬이자 지역 사업가 데이비드 클로즈에게 인수되어 회생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인 2023년 7월 1일, 구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공식 색상이 발표되었다.#

공식 색상은 구단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구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색상으로 선정되었고, 구단 공식 자료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름
선정 이유
헥스 코드
#RRGGBB

Founders' Green
구단 최초의 유니폼을 기념
#a3c0ac

Victory Blue
1970년대 전성기의 업적을 기념
#18365c

Centenary Gold
창단 100주년인 1984/85 시즌 유니폼을 기념
#f4bc35

Premier Burgundy
프리미어 리그 첫 시즌 원정 유니폼을 기념
#6b102f

Community Pink
유방암 심각성 인식을 이끈 2020-21 시즌 써드 유니폼을 기념
#e50a7e

Timeless Blue
1885년에 처음 유니폼에 등장하여 구단 역사와 함께한 파란색을 기념
#5ba1d4


9. 라이벌[편집]


더비의 라이벌 팀은 노팅엄 포레스트 FC, 레스터 시티 FC이다.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더비 매치이스트 미들랜즈 더비(East Midlands Derby)로 부르고 있으며, 이 경기에서 승리한 팀에게는 브라이언 클러프 트로피(Brian Clough Trophy)[30]가 주어진다.


10. 여담[편집]



  • 유러피언 컵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해본 적이 있다. 하이라이트 1975/76 시즌 우승팀 자격으로 출전한 유러피언 컵 16강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홈에서 4:1 대승을 거두었다. 아쉽게도 2차전에서 1:5로 역관광당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

  • 이 팀이 전에 쓰던 홈구장의 이름은 베이스볼 그라운드였다. 더비에 있던 '더비 베이스볼 클럽'이 야구장으로 썼는데, 이 팀은 영국 챔피언을 세 차례나 거머쥔 강팀이었지만 영국 야구가 망하면서 1898년 해산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야구장을 빌려 쓰던 더비 카운티 축구단이 야구장을 이어 받아 1895년부터 1997년까지 백 년을 넘게 홈 구장으로 썼다.


  • 2019년 10월 9일, 한국인 팬 이씨[31]가 현지 BBC 라디오에 출연했다. 2016년에 더비 카운티의 팬이 된 이후, 트위터에 꾸준히 리뷰 영상을 올리게 된 것을 계기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11. 유명 팬[편집]


  • 나일 호란
  • 데니스 스키너
  • 그레이엄 콕슨
  • 잭 오코넬
    • 조지 클루니[A]
    • 안젤리나 졸리[A]
    • 카라 델러빈[A]
  • 티모시 달튼


12. 둘러보기[편집]





[1] /ˈdɑːbi ˈkaʊnti/[2] Derby의 영국 표준 발음은 /ˈdɑːbi/'다비'이지만 관용적 표기를 따른다. 이스트미들랜즈 지역 발음으로는 '다베’에 가까운 발음이다.[3] 여성 팀은 암양들 (The Ewe Rams)이라 불린다.[4] 공식 약칭이다. 팬들이 Rams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애칭이기도 하다. 응원가에도 자주 등장한다.[5] 스코어 보드나 스탯 사이트 등에서 3글자로 줄일 때만 사용하며, 팬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6] #[7] 2013년~2016년간 아이프로 스타디움(iPro Stadium)으로 불렸다.[8] 주식회사(Limited Company)가 아니라 유한책임회사(Private limited Company)이다.[9] 리그 486경기[10] 북부 리그 득점왕[11] 이후 더비 카운티에 합병되었다.[12] 구장 이름이 베이스볼 그라운드인 이유는 실제로 더비 야구팀이 실제로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13] 아스널 FC의 팬인 닉 혼비가 쓴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를 보면 이 시기의 더비 카운티는 완전무결한 축구를 하는 최강의 팀으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 당시의 아스날은 꿈도 희망도 없는 시궁창스러운 축구를 하며 작가에게 심적 고통을 안기고 있었다고 서술된다.[14] 준결승 1차전을 앞두고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맞대결이 있었는데, 리즈 돈 레비 감독과 소문난 앙숙이었던 클러프 감독이 "유러피언 컵 준결승에 올인하라"라는 구단주의 지시를 일축하고 리즈전에 주전들을 몽땅 출전시켰는데, 그 후유증으로 준결승 1차전에서 주전들이 푹 퍼지는 바람에 1-3으로 패한 것이 치명타였다. 역사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클러프가 조금만 더 냉정했다면 유러피언 컵 우승을 더비에서 먼저 경험했을 것이다.[15] 심판 문제도 컸다. 경기가 종료된 후 클러프는 노발대발하며 심판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 심판 문제가 없었더라면 더비가 결승전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많다.[16] 1984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17] 데릴 파웰, 디온 버튼(이상 자메이카), 야콥 라우르센(덴마크), 이고르 스티마치(크로아티아), 크리스티안 데일리(스코틀랜드).[18] 맨유의 기존 수석 코치였던 브라이언 키드가 로이 호지슨이 경질된 블랙번 로버스의 감독이 되었다.[19] 훗날 2007-08 시즌 헐 시티의 구단 첫 프리미어 리그 승격과 2008-09 시즌 전반기 돌풍을 이끈 감독이다.[20] 아이러니 하게도, 06-07 시즌 더비 카운티와의 승격 플레이오프 준결승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며 더비 카운티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21] 기묘하게도, 이 기록의 승패를 뒤집어 보면 당시 기준으로, 첼시 FC가 세웠던 기록(2004-05 시즌, 29승 8무 1패, 승점 95)와 똑같아진다.[22] 뉴캐슬이 2008-09 시즌 강등으로 2009-10 시즌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시즌에도 중하위권의 더비를 상대로 0-3 패배를 포함하여 1무 1패를 기록, 더비 징크스를 이어나갔다.[23] 뉴캐슬은 18라운드 홈에선 열린 더비와의 두 번째 맞대결조차 2 대 2로 비기며 쥬얼의 첫 승점을 안겨주었다. 뉴캐슬이 더비에 안겨준 승점이 전체의 36%다.[24] 당시 맨유는 직전 경기인 FA컵 8강전 에드윈 반 데 사르의 부상과 백업 토마시 쿠슈차크의 퇴장으로 인해 써드 골키퍼인 포스터가 출장했다.[25] 맨유는 더비 원정에서의 승리 이후 선두로 올라갔고, 시즌 끝까지 단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으면서 우승했다.[26] 풀럼 역시 뉴캐슬과 마찬가지로 더비에 이기지 못한 두 팀이 되었다. 그나마 풀럼은 2무.[27] EFL 룰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승점 12점이 삭감되며, 더비가 P&S 룰을(EFL판 UEFA FFP 룰) 어겼기에 승점 9점이 추가로 삭감된다.[28] 주식회사(Limited Company)가 아니라 유한책임회사(Private limited Company)이다.[29] 멜 모리스가 구단을 인수하기 전 더비 카운티를 소유하고 있던 사업가[30] 참고로 브라이언 클러프는 더비 카운티와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포레스트의 UEFA 챔피언스 리그 2연패를 이끈 그 감독이다. 브라이언 클러프의 아들 나이젤 클러프 감독도 2013년까지 더비 카운티를 지도한 바 있다.[31] 모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유저이다. 페이스북 더비 카운티 한국 팬 페이지 관리자이기도 하다.[A] A B C 잭 오코넬의 권유로 팬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