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얀 스탄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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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얀 스탄코비치의 역임 직책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사보 밀로셰비치
(2003~2006)

데얀 스탄코비치
(2006~2011)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2012~2018)


UC 삼프도리아 역대 감독

마르코 지암파올로
(2022)

데얀 스탄코비치
(2022~2023)


안드레아 피를로
(2023~ )


데얀 스탄코비치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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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세리에 A 도움왕(2000년대)|

2006-07 세리에 A 도움왕
]]



베스트팀
파일:ESM.png






데얀 스탄코비치의 기타 정보







페렌츠바로시 TC
Ferencvárosi Torna Club

본명
데얀 스탄코비치
Дејан Станковић | Dejan Stanković

출생
1978년 9월 11일 (45세)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세르비아SR 베오그라드

국적
[[세르비아|

세르비아
display: none; display: 세르비아"
행정구
]]
|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신체
183cm, 76kg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4~1998)
SS 라치오 (1998~200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4~2013)
코치
우디네세 칼초 (2014~2015 / 수석 코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5~2016)
감독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19~2022)
UC 삼프도리아 (2022~2023)
페렌츠바로시 TC (2023~ )
국가대표
103경기 15골 (세르비아 / 1998~2013)
자녀
아들 스테판 스탄코비치
아들 필립 스탄코비치
아들 알렉산다르 스탄코비치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경력
6. 기록
6.1. 선수
6.1.1. 우승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우승
7. 여담
7.1. WAGs



1. 개요[편집]


파일:deki-2.jpg
세르비아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지만 측면이나 2선에서도 뛰었다.

별명은 이름 약칭인 '데키(Deki)'. 현역 시절 엄청난 중, 장거리 슈팅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2. 클럽 경력[편집]


1994년 츠르베나 즈베즈다에서 리그 최연소 데뷔를 하였고, 리그 3연패를 이끄는 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1998/99 시즌 SS 라치오에 입단하고 데뷔 시즌에서 팀의 위너스컵 우승에 공헌하였으며 다음 시즌인 1999/2000 시즌에는 라치오의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이 당시 라치오의 스쿼드는 매우 짱짱하였는데, 에르난 크레스포, 파벨 네드베드,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등 각 포지션에 최고의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치오가 재정 위기를 맞게 되자 스탄코비치는 인테르로 이적한다.

인테르로 이적한 스탄코비치는 로베르토 만치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인터 밀란의 중원을 책임지며 팀에게 많은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였을 때 역시 팀의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공헌하였다.

2010/11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샬케를 상대로 시작 25초 만에 하프라인에서 골을 넣었다. 노이어가 볼을 걷어내기 위해 패널티 박스로 나와 볼을 헤딩으로 걷어내자 그 공을 하프라인에서 받은 스탄코비치가 그대로 골문을 향해 때린 볼이 골로 연결된 것. 하지만 이런 엄청난 선제골이 무색하게 그 경기에서 샬케한테 2:5로 참패를 해버리고, 2차전에서도 1:2로 패하면서 8강에서 탈락했다.

2013년 스탄코비치는 인테르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세계 최초로 3개의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신 유고슬라비아 연방,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세르비아)

1998년 4월 22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는데, 2골을 기록해 팀의 승리를 이끌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16강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1-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후 UEFA 유로 2000을 거쳐 2006 독일 월드컵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으나 지역예선에서의 수비력과는 달리 조 최하위로 탈락하게 되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사보 밀로셰비치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하면서 세르비아로 국명이 변경된 이후 세르비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한다.

2011년 10월 11일, 슬로베니아와의 UEFA 유로 2012 지역예선에서 0-1로 패해 세르비아의 유로 본선행이 좌절되었고, 경기 직후 스탄코비치는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세르비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2013년 10월 11일,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짧은 시간동안 그라운드를 뛰어 스탄코비치의 세르비아 대표팀 및 선수 은퇴 경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기본적으로 포지션은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빠른 발, 강한 제공권 그리고 엄청난 체력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경기장 왕복 셔틀런을 뛰며 경기를 조율하거나 필요시[1] 수비형 미드필더, 심지어 측면 미드필더까지도 커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어디 놔둬도 1인분은 하는 멀티 미드필더.또한 성실하고 악바리같이 플레이하는 성격으로, 잔발질 없이 적재적소, 특히 1선 공격진에 깔끔하게 전달하는 패스 능력과 창의력 또한 돋보였다.무엇보다 최고의 강점은 골때리는 수준의 중거리 슛과 강력한 마무리 능력으로, 문서 하단에 자세히 서술된 201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샬케전에서 골문을 비우고 나온 마누엘 노이어를 벙찌게 만든 논스톱 발리슛이나 2009년 제노아전에서 나온 비슷한 발리슛 골# 등등 외에도 커리어 내내 이렇게 두번 생각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건드린 것 같은데 들어가는 골들이 굉장히 많았다.

요약하자면 좋은 축구지능과 훌륭한 킥 능력을 보유한 공격형 중앙미드필더인데 마이클 에시엔이나 젠나로 가투소처럼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스타일. 이런 선수를 감독들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으며, 본인 스스로도 라치오 시절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파벨 네드베드, 로베르토 만치니같은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미드필드 한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조세 무리뉴 휘하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또한 화려하지는 않으나 선 굵은 마초적인 플레이 스타일 슛 쏘는것도 여간 상남자가 따로없는 플레이로 인테르 전성기 시절 동안 성실하게 미드필드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었던 공수 모두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5. 지도자 경력[편집]


2014년 우디네세의 수석 코치로서 활동하였으며 2015년 친정팀 인테르로 복귀해 로베르토 만치니를 보좌했다. 2016년 만치니의 계약이 끝나자 자신도 인테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나왔다.


5.1. FK 츠르베나 즈베즈다[편집]


2019-20 시즌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감독으로 부임해 지도자 커리어에 첫 우승컵을 추가했다.

2020-21 시즌에는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이끌고 35승 3무라는 성적을 거두고 무패 우승을 이룩했다. 득점은 114골 기록.[2] 이후 세르비아컵까지 제패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2022년 8월 26일,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감독직에서 사임하였다.

2022년 10월, 8라운드 기준 승점 2점으로 세리에 A 20등을 기록중인 UC 삼프도리아마르코 잠파올로 감독의 후임으로 고려되고 있다고 한다.


5.2. UC 삼프도리아[편집]


이후 2022년 10월 6일, 삼프도리아 구단에서 오피셜을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023년 6월 30일까지이며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모습으로는, 마르코 지암파올로가 망쳐놓은 팀의 경기력을 살려냈으나 공격진의 결정력 부재로 인해 매번 승점을 잃는 경기가 반복되고 있다.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악재이고 현재까지 살아나지 못 하는 경기력 등으로 인하여 계속 꼴찌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계약 연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2R 피오렌티나전에서 5-0으로 패배한 후 사임설이 돌았으나 감독직을 계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계속된 패배로 꼴찌로 추락하였기 때문에 시즌 종료 이후 경질되었다.


5.3. 페렌츠바로시 TC[편집]


2023년 9월 4일. 페렌츠바로시 T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계약 기간은 4년.#


6. 기록[편집]



6.1. 선수[편집]



6.1.1. 우승[편집]






6.1.2. 개인 수상[편집]


  • 세르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 2006, 2010
  • 세리에 A 도움왕: 2006-07
  • ESM 올해의 팀: 2006-07
  • 인터 밀란 명예의 전당: 2019


6.2. 감독[편집]



6.2.1. 우승[편집]




7. 여담[편집]


파일:Stankovic_Halfway_Goal.gif

  • 2010-11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당시 FC 샬케 04 소속이였던 마누엘 노이어를 대꿀멍하게 만든 하프발리슛의 주인공이다. 당시 상황에서 노이어가 디에고 밀리토에게 연결되는 크로스를 페널티 라인 밖으로 나와 헤딩을 하면서 공을 걷어낸 것을 스탄코비치가 그대로 하프라인 밖에서 슛을 때리며 골을 넣어버렸다. 하지만 인테르는 무기력하게 샬케에게 밀리며 2:5로 대패했다.[3]

  • 국가대표 경력 중 특이한 점이 있는데, A매치 데뷔전을 대한민국과의 경기[4]에서, 마지막을 일본과의 경기로 아시아 국가를 통해 처음과 끝을 기록했다.

  • 현재 폐간된 잡지인 풋볼 위클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데얀 스탄코비치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스탄코비치가 공을 차면 공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고 언급했었다.

  • 스테판, 필립, 알렉산다르 3형제를 자식으로 두고 있고, 3형제를 모두 인테르 유소년 팀에 입단시켰으나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스테판은 18세에 축구선수를 은퇴하였다. 필립은 골키퍼로 2020-21 시즌 1군 명단에 들었으며 알렉산다르도 중앙 미드필더로 유소년 팀에 들어가 있다.

  • 2009-10 시즌 트레블 멤버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스탄코비치도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함께 했던 주제 무리뉴와 특별히 끈끈한 사제 관계를 자랑한다. 본래 무리뉴는 인테르 부임 이후 왕성하지 않은 활동량 때문에 스탄코비치를 벤치로 내리고 방출도 고려하였지만, 데키는 자신을 증명하고자 더욱 많은 노력을 하였고 끝내 무리뉴를 탄복시키며 트레블의 주역으로 등극한다. 스탄코비치는 이때를 회상하면서 '무리뉴가 자신을 진정한 선수이자 전사로 길러내주었다'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리뉴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곤 하는데, 이는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시점에도 여전하다. 특히 삼프도리아 감독 재임 당시 무리뉴가 이끄때 AS 로마와 경기를 치렀을 때 로마 팬들이 스탄코비치의 출신 국가인 세르비아를 빗대어 '집시' 등으로 단체 인종차별 구호를 외치며 야유를 퍼붓자 무리뉴가 손을 들어 로마 팬들의 인종차별을 멈추게 하였는데, 스탄코비치는 가슴에 손을 대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은 일화도 있다.

  • 무리뉴가 인테르를 떠나고 스탄코비치도 노쇠화되면서 인테르에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질 때, 이탈리아의 예능 프로그램 중 몰카 컨셉 프로그램이 그를 모독한 바 있었다. 당시 구단주였던 마시모 모라티의 성대모사를 하던 코미디언이 스탄코비치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팀에 필요가 없으니 당장 내일 방출하겠다'라고 몰카를 짠 것. 스탄코비치는 이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충격 받아 몇 시간을 오열했으며,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수많은 인테리스타들이 팀의 레전드를 모욕하였다며 해당 방송국에 항의전화를 퍼붓는 소동이 벌어졌다. 방송국은 유쾌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스탄코비치는 이 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고개를 젓곤 한다.

  • EPL의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드필더이다 아이러브사커의 운영진 중 한 명이 제라드 vs 램파드 논쟁이 벌어질 때 뜬금없이 스탄코비치를 EPL에서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드필더라고 칭송해 많은 유저들의 의문을 자아내게 한 바 있다. 선수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스탄코비치는 한 번도 영국 무대에서 뛴 적이 없다. 이 운영자는 한 술 더 떠 그가 시즌당 10골은 충분히 넣어줄 수 있는 미드필더라고 칭송한 바 있지만, 애석하게도 스탄코비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의 기록은 9골에 그친다. 그 운영자는 수많은 조롱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알싸의 희대의 밈으로 자리잡았다.

  • 그러나 실제로 스탄코비치의 기량이 월드클래스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때 'EPL의 제라드에 대한 세리에의 대답'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수 밸런스와 파괴적인 중거리 슛 등 세계 정상급 미드필더였던 그였기에, 자국 세르비아를 비롯한 수많은 축구 꿈나무들의 영웅으로 남아있다.


7.1. WAGs[편집]


1998년 팀동료였던 슬로베니아의 축구선수 밀렌코 아시모비치가 친누나를 소개해줘서 19세부터 연애해 결혼까지 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07:02:05에 나무위키 데얀 스탄코비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특히 2009-10시즌에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부상으로 스탄코비치가 대신 그 자리를 맡았는데, 그럼에도 수비 할 것 다하고 무려 밀란 더비에서 27미터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기도 한다.[2] 실점은 20골.[3] 이 때 샬케에서 뛴 선수가 바로 과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뛰었던 에두다.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 승리에 공헌했다.[4]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치른 경기로, 해당 경기에서 6:1로 한국을 대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