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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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로고.svg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Deportivo La Coruña
정식 명칭
Real Club Deportivo de La Coruña, S.A.D.
별칭
Blanquiazul (청백군단)
Turcos (튀르키예인)
창단
1906년 3월 2일 (118주년)[1]
소속 리그
프리메라 페데라시온 (Primera Federación)
연고지
갈리시아 주 라 코루냐 (La Coruña)
홈구장
에스타디오 아방카-리아소르 (Estadio ABANCA-Riazor)
(34,600명 수용)
라이벌
파일:RC 셀타 데 비고 로고.svg RC 셀타 데 비고 - 데르비 갈레고 (Derbi gallego)[2]
회장
파일:스페인 국기.svg 티노 페르난데스 (Tino Fernández)
감독
파일:스페인 국기.svg 이마놀 이디아케스 (Imanol Idiakez)
주장
파일:스페인 국기.svg 알렉스 베르간티뇨스 (Álex Bergantiños)
공식 웹사이트
파일: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팬 커뮤니티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우승 기록
라리가 (1부)
(1회)
1999-2000
라리가 2 (2부)
(5회)
1961-62, 1963-64, 1965-66, 1968-69, 2011-12
코파 델 레이
(2회)
1994-95, 2001-02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3회)
1995, 2000, 2002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파일:스페인 국기.svg 세르히오 곤살레스 (Sergio González)
(2001년, From RCD 에스파뇰, 1,79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파일:브라질 국기.svg 플라비우 콘세이상 (Flávio Conceição)
(2000년, To 레알 마드리드 CF, 2,500만 €)
최다 출장
파일:스페인 국기.svg 프란 곤살레스 (Fran González) - 550경기 (1988-2005)
최다 득점
파일:브라질 국기.svg 베베투 (Bebeto) - 118골 (1992-1996)

1. 개요
2. 특징
3. 스쿼드
4. 역사
4.1. 창단
4.3. 암흑기
4.4. 역사를 바꾼 렌도이로
4.5. 1990년대: 수페르 데포르
4.6.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하보 제네레이션
4.7. 2000년대 중후반: 베이비 데포르
4.8. 2010년대: 강등과 잔류 사이
4.9. 2020년대: 몰락
4.9.1. 2019-20 시즌: 3부리그로 강등
4.9.2. 2020-21 시즌: 상위권 유력후보, 다시 개혁을 하다.
4.9.3. 2021-22 시즌: 잊혀지냐? 재약진이냐? 이제 기로에 놓였다.
4.9.3.1. 리가
4.9.3.2. 국왕컵
4.9.4. 2022-23 시즌: 계속되는 희망고문
5. 리그 소속 기간
6. 거쳐간 선수
6.1. 창단 ~ 1990년대
6.2. 2000년대
7. 근황
8. 라이벌
8.1. 갈리시아 더비란?
8.2. 독특한 갈리시아
8.3. 정체성의 충돌
8.4. 막상막하가 지속되는 추세
8.5. 함께 노래하고, 싸우는 유일한 더비
9. 기적 메이커



1. 개요[편집]


스페인 프리메라 디비시온 RFEF의 프로 축구 클럽. 흔히 데포르티보 혹은 데포르로 불린다. 스페인 서북부 지역 갈리시아의 항구 도시 라 코루냐[3]를 연고로 한다.


2. 특징[편집]


지금은 스페인 3부 리그에서 머물고 있는 약체에 불과하지만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경험해 본 9개 클럽 중 하나이다.

한때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천적이자 캄프 누에서 바르샤를 4:2로 격파할 만큼 화끈한 공격력을 보유한 팀이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아스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그리고 AC 밀란 등등 당대 최고의 강팀들을 상대로도 홈과 원정 가릴 것없이 승리를 거두며 유럽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냈다. 결코 명문은 아니었지만 신흥 강호 내지 당대 빅 클럽으로 불리기엔 손색이 없었다.

팬들이 매우 열정적이다. 연간 회원권(소시오) 숫자는 스페인 프로 구단 통틀어 10위~15위 정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하위권치곤 좋은 편. 무엇보다 스페인은 원정 응원 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나라인데 그럼에도 어디로 원정을 떠나든 데포르티보의 팬들을 항상 찾아볼 수 있다. 1부와 2부를 넘나드는 최근에도 그렇다. 자타공인 스포르팅 히혼과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구단이다.

한국의 팬 커뮤니티는 2011년 개설된 네이버 카페 'Depor Corea'가 있으나, 위상 및 성적의 열세, 멤버들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탈퇴 등으로 요즘은 활동이 뜸한 편이다.


3. 스쿼드[편집]




[ 펼치기 · 접기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22-23 시즌 스쿼드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비고
1
파일:스페인 국기.svg
GK
이안 맥케이
Ian Mackay
1986.07.14 (37세)
181cm, 79kg
주장
3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레투
Retu
2002.01.01 (22)
186cm, 70kg

4
파일:프랑스 국기.svg
DF
파블로 마르티네스
Pablo Martínez
1989.02.21 (35세)
182cm, kg

5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다니 바르시아
Dani Barcia
2003.01.19 (20세)
186cm, kg

6
파일:스페인 국기.svg
MF
살바 세비야
Salva Sevilla
1984.03.18 (25세)
178cm, kg

7
파일:스페인 국기.svg
FW
루카스 페레스
Lucas Pérez
1988년 9월 10일 (35)
180cm, 82kg

8
파일:스페인 국기.svg
MF
디에고 비야레스
Diego Villares
1996.06.17 (27세)
179cm, 65kg

9
파일:스페인 국기.svg
FW
이반 바르베로
Ivan Barbero
1998.08.17 (25세)
187cm, 78kg

10
파일:스페인 국기.svg
MF
예레마이 에르난데스
Yeremay Hernández
2002.12.10 (21세)
169cm, kg

11
파일:스페인 국기.svg
FW
다보
Davo
1993.02.19 (31세)
178cm, kg
[1]
13
파일:스페인 국기.svg
GK
헤르만 페레노
Germán Parreño
2000.06.28 (23세)
191cm, -kg

14
파일:스페인 국기.svg
FW
베르토 키야르가
Berto Cayarga
1996.09.17 (27세)
170cm, kg

15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파블로 바스케스
Pablo Vázquez
1994.10.07 (29세)
187cm, kg

16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파블로 무뇨스
Pablo Muñoz
2003.09.04 (20세)
-cm, kg

17
파일:스페인 국기.svg
MF
우고 라마
Hugo Rama
1996.11.22 (27세)
177cm, kg

18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미켈 발렌시아가
Mikel Balenziaga
1988년 2월 29일 (36세)
177cm, 76kg

19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하이메 산체스
Jaime Sánchez
1995.03.11 (29세)
185cm, 77kg

20
파일:스페인 국기.svg
MF
호세 후라도
José Jurado
1992.06.12 (31세)
183cm, kg

21
파일:스페인 국기.svg
FW
파블로 발카세
Pablo Valcarce
1993.02.03 (31세)
172cm, -kg

22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패리스 압돈
Paris Adot
1990.02.26 (34세)
172cm, -kg

23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시모 나바로
Ximo Navarro
1990.01.23 (34세)
176cm, 75kg

24
파일:스페인 국기.svg
GK
알베르토 산체스
Alberto Sánchez
2001.03.26 (23세)
182cm, -kg

구단 정보
회장 : 티노 페르난데스 / 감독 : 루벤 데 라 바레라 / 홈 구장 : 에스타디오 아방카-리아소르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2022년 4월 28일 기준





4. 역사[편집]



4.1. 창단[편집]


1906년 창단되어 스페인 왕실로부터 최초로 레알 칭호를 부여받았다. 셀타 비고와 함께 갈리시아를 대표했지만 스페인 내에선 오랜 시간 무명 구단으로 취급받았다.

1941년부터 1957년까지 프리메라 리가의 일원이었으나 중하위권을 맴도는 팀에 불과했다. 이 시절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중 하나인 루이스 수아레스가 데포르티보 유스를 거쳐 1군에서 잠시 활약했다.


4.2. 리아소르의 기적[편집]


2004년 챔피언스리그 8강 경기에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AC 밀란이 서로 맞붙게 됬다. 당연히 아무도 데포리티보가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밀란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역시 밀란이 4:1로 홈에서 압승했다. 2차전이 데포르티보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아방카-리아소르에서 열렸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전반 5분 판디아니의 골로 1: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반 35분 발레론의 골, 전반 44분 알베르트 루케의 골로 3:0으로 앞서 합산 점수는 4:4이다. 이 정도만 해도 원정 다득점으로 4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후반 76분에 프란의 골로 4:0, 합산 점수 5:4로 데포르티보가 4강에 진출했다.

4.3. 암흑기[편집]


1980년대 아 코루냐는 인구 20만 남짓의 중소도시였다. 쉽게 말해 뚜렷한 산업 기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먹고 살기 바쁜 어촌이었다.

데포르티보는 아 코루냐를 대표하는 구단이었으나 오랜 시간 트로피 하나 없이 하부 리그만 전전했으니 당연히 시민들은 데포르티보에 큰 관심이 없었다. 1982년 월드컵 유치로 홈 구장 리아소르를 대대적으로 보수했으나 데포르티보의 성적이 나빠 적자만 거듭하니 결국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결국 지방 정부에서도 내다버린 존재가 되어버렸고 당장 해체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 코루냐 시민들이 데포르티보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스페인이 축구에 미친 나라다. 그럼에도 1980년대에 아 코루냐에선 롤러 하키 구단인 HC Liceo의 인기가 더 많았을 정도였다. 참고로 HC Liceo는 당시 스페인 리그와 컵, 유럽 및 세계 선수권까지 롤러 하키계에서 들 수 있는 트로피는 모두 들었던 강호였다.


4.4. 역사를 바꾼 렌도이로[편집]


축구에 미친 스페인에서 롤러 하키 구단보다 인기가 떨어졌던 무명 구단 데포르티보. 그러나 1988년 아우구스토 세사르 렌도이로가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말도 안되는 기적이 시작된다.

새 회장 렌도이로는 여느 다른 구단주들처럼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렌도이로는 아 코루냐 출신으로 약학을 전공한 후 약학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시 의원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슈가 대디가 아니었다. 그러나 렌도이로는 구단 경영인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구단 경영에 있어 100년에 1번 나올까말까하는 천재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앞서 언급했던 롤러 하키 구단 HC Lieco의 공동 설립자이자 구단주를 지냈었고 스페인 리그와 컵, 유럽 대회 및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시켰다. 때마침 시 의회에서는 세금만 축내던 데포르티보의 구단주를 몰색하던 중이었고 렌도이로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낙점받았다. 렌도이로는 데포르티보가 당장 해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기에 몇 번을 고사하다 주위의 계속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

렌도이로는 1988년 부임한 이후 데포르티보는 3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로 끌어올렸다. 18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로 복귀한 것이었다. 렌도이로 구단주는 "바르샤, 마드리드, 우리가 왔다!(¡Barça, Madrid, ya estamos aquí!)"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데포르티보를 프리메라 리가 우승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주위에선 당연히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치부했고 강등 걱정이나 하라며 비웃기 바빴다.

그러나 렌도이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1992년 여름 그는 데포르티보의 역사를 바꾼 두 건의 영입을 성사시키니 바로 베베투마우로 실바였다. 당시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는 이미 브라질 대표팀에 발탁되었을 정도로 남미에선 유명세를 떨치는 선수들이었다. 반면 데포르티보는 내세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무명 구단에 불과했다. 렌도이로는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를 직접 만나기 위해 몸소 브라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갈리시아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브라질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해 두 선수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한다.


4.5. 1990년대: 수페르 데포르[편집]


렌도이로의 지극정성 끝에 영입한 베베투와 마우로 실바, 기존 핵심 선수였던 미로슬라프 듀키치, 프란 곤살레스, 파코 리아뇨 그리고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 감독[4]의 수비 축구를 앞세워 데포르티보 승격한 지 2년 만에 바르셀로나와 최종 라운드까지 우승 경쟁을 펼치는 강팀으로 변모하게 된다.

1992-93 시즌: 프리메라 리가 3위 등극. 클럽 역사상 첫 유럽 무대 진출. 베베투는 29골로 프리메라 리가 득점왕 등극. 클럽 역사상 첫 득점왕 배출.

1993-94 시즌: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발렌시아와의 38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종료 직전 미로슬라프 쥬키치가 페널티킥을 실축. 우승 목전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타이틀을 헌납.

1994-95 시즌: 코파 델 레이 우승. 클럽 역사상 첫 타이틀 획득. 그와 동시에 두 시즌 연속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 스페인의 신흥 강호로 급부상.

1995-96 시즌: 데포르티보, UEFA 컵 위너스 컵(현재 UEFA 컵 통합) 4강 진출. 그러나 유럽 무대 병행과 일부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리그는 9위로 마감. 베베투는 데포르티보를 떠나 브라질로 컴백. 전성기를 열렀던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 감독은 자진 사임 및 은퇴.

1996-97 시즌: 프리메라 리가 3위. 베베투의 후계자로 700만 유로에 영입된 히바우두가 시즌 21골을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킴.

1997년 여름: 이적 시장 마감일에 바르셀로나히바우두의 바이아웃 2550만 유로를 지불하며 그 유명한 '히바우두 사건'을 일으킴. 히바우두 중심으로 97/98 시즌을 구상하던 데포르티보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치명타. 데포르티보-바르셀로나 간의 관계 또한 급속도로 악화.[5]

1997-98 시즌: 히바우두 잃은 데포르티보는 프리메라 리가 12위로 추락. UEFA 컵에서도 1라운드 탈락.


4.6.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하보 제네레이션[편집]


1998년부터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이 취임해 팀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고, 리그에선 6위를 찍어 UEFA 컵 진출을 이뤄 새 역사를 썼다. 1999-2000 시즌엔 자우밍야, 로이 마카이, 빅토르 산체스, 마누엘 파블로 등을 축으로 '하보 제너레이션'을 만들어 당대 우승후보팀이던 바르사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6],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도 우승해 '미니 더블'을 달성했다.

2000년 여름 프리시즌 때 렌도이로 회장은 '유로 데포르티보' 정책을 선언해 호안 카프데빌라,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디에고 트리스탄 등의 영입에 4,000만 유로를 투자하면서도 마카이와 트리스탄의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2000-01 ~ 2001-02 시즌에 2년 연속 챔스 8강 진출을 이뤄냈고, 2001-02 시즌엔 코파 델 레이 및 수페르코파 두 개를 우승하며 리그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이때까지 라 코루냐는 레알이나 바르사에 비해 특출날 슈퍼스타가 없음에도 탁월한 조직력으로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를 쫄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챔스에선 2000-01 ~ 2002-03 시즌까진 연속으로 맨유와 리즈 같은 잉글랜드 팀들에게 3시즌 연속으로 패해 아쉬움을 줬다.

그러나 2003년 여름 프리시즌 때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해 긴축 정책에 돌입했고, 이에 따라 로이 마카이바이에른 뮌헨으로 팔아 트리스탄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고, 2003-04 시즌에서 주위의 예상을 깨며 '리아소르의 기적'을 일으키며 창단 이래 처음으로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했다. 정규시즌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


4.7. 2000년대 중후반: 베이비 데포르[편집]


2004-05 시즌: 프리메라 리가 8위.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탈락.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 성적 부진으로 자진 사퇴.

2005-06 시즌: 프리메라 리가 8위. '유망주들의 아버지'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을 중심으로 리빌딩 시작. 전술적·정신적 지주 발레론의 부상으로 후반기 하락세.

2006년 여름: 렌도이로, '베이비-데포르티보' 정책 선언. 자유계약 선수, 명문 클럽 유스팀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 단행.

2006-07 시즌: 후반기 옅은 스쿼드를 실감하며 13위로 시즌 마감. 선수 및 구단 운영진과 관계가 틀어진 호아킨 카파로스는 자진 사퇴.

2007년 여름: 미겔 앙헬 로티나 취임. 멕시코 신성의 안드레스 과르다도 영입에 700만 유로에 영입.

2007-08 시즌 전반기: 20라운드까지 19위에 머물며 유력한 강등 후보로 선정.

2007-08 시즌 후반기: 21라운드 바야돌리드 전 이후 5-2-2-1 포메이션으로 파격적인 변화를 단행. 세비야 FC(홈) 승리, 발렌시아 CF(원정) 무승부, FC 바르셀로나(홈) 승리, 레알 마드리드 CF(홈) 승리를 비롯해 수직 상승세를 달리며 8위로 시즌 마감. 인터토토 컵 통해 UEFA 컵 진출.

2008년 여름: 2007-08 시즌을 통해 크게 성장한 필리페 루이스안드레스 과르다도를 중심으로 진정한 '베이비-데포르'로 거듭남.

2008-09 시즌: 프리메라 리가 7위. UEFA 컵 32강 진출.

2009-10 시즌: 프리메라 리가 10위. 전반기 4위~6위를 맴돌며 밝았던 시즌 전망. 2010년 1월, 팀의 핵심 과르다도필리페가 동반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며 후반기 급격히 추락.

2010년 여름: 팀의 핵심 필리페 루이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 몰락의 서막

2010-11 시즌: 프리메라 리가 19위. 20년 만의 강등. 미겔 앙헬 로티나 감독 자진 사퇴.


4.8. 2010년대: 강등과 잔류 사이[편집]


2011년 여름: 호세 루이스 올트라 취임. 세군다 리가로 강등에도 불구하고 더 뜨거워진 팬들의 성원. 쏘시오(연간 회원)의 수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 세군다 리가 통틀어 10위. 한편 안드레스 과르다도, 디에고 콜로토, 라우레 그리고 다니 아란수비아까지 핵심 선수들의 잔류 선언.

2011-12 시즌: 세군다 리가 1위 & 승격. 세군다 리가 최다 승점 & 연승 기록 경신.

2012-13 시즌: 프리메라 리가 18위. 구단 역사 상 처음으로 한 시즌에 감독이 2번 교체. (호세 루이스 올트라도밍구스 파시엔시아페르난도 바스케스). '할 수 있다(Sí se puede!)'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페르난도 바스케스 부임 후 브루누 가마의 맹활약에 힘입어 연승 행진을 달리기도 했으나 최종전 레알 소시에다드에게 0:1로 패하면서 강등 확정. 발레론의 마지막 시즌.

2013년 여름: 강등에 따른 극심한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 3부 리그 다이렉트 강등 위기. 말이 3부 리그지 데포르티보라는 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사건.

2013년 겨울: 투표 결과로 티노 페르난데스가 새로운 구단주로 취임.

2013-14 시즌: 세군다 리가 리가 2위 & 승격

2014년 여름: 티노 페르난데스 구단주, 의견 차이로 인해 승격을 이끈 페르난도 바스케스의 갑작스런 해임. 과거 사라고사를 이끈 빅토르 페르난데스 선임.

2014-15 시즌 전반기: 승격팀 치곤 나쁘지 않은 행보. 하지만 계속된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강등권으로 추락. 빅토르 페르난데스 경질.

2014-15 시즌 후반기: 15년 4월, 데포르티보의 황금기를 이끈 빅토르 산체스 부임. 최종전 캄프 누에서 0:2에서 2:2 극장을 만들어 내며 기적 같은 잔류.

2015-16 시즌: 리그 15위. 전반기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된 빅토르 산체스. 라 리가 구단 중 최소 슈팅 허용 및 바르셀로나와 함께 최소 패를 기록하며 꾸준히 중상위권에 랭크. 그러나 후반기 들어 전술적 한계, 빅토르 산체스와 일부 선수 불화로 하락세.

2016년 여름: 선수단 불화를 이유로 빅토르 산체스 경질. 지난 날 에이바르의 기적을 이끈 가이스카 가리타노 선임. 불화를 일으킨 선수들을 방출하는 대신 빅토르 산체스를 경질하면서 큰 논란을 일으킴.

2016-17 시즌: 리그 16위. 성적 부진으로 2월 27일 가이스카 가리타노 경질. 2월 28일 페페 멜 선임.

2017-18 시즌: 리그 18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 2번의 감독 교체 단행했으나 35라운드 바르셀로나 전 2:4 패배로 강등 확정.

2018-19 시즌: 리그 8경기 무승으로 4월 6일 나초 곤살레스 경질. 호세 루이스 마르티 선임. 리그 6위로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 말라가 CF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 결승행. 마요르카와의 1차전 홈에서 2:0 승리했으나, 2차전 원정에서 3:0 뼈아픈 역전패로 라 리가 승격 실패.


4.9. 2020년대: 몰락[편집]



4.9.1. 2019-20 시즌: 3부리그로 강등[편집]


그냥 하나의 시즌 중 일부라고 치고 두려 했으나, 역대급 막장 최악의 시즌을 보이고 있기에 세부 라운드까지 기록한다.

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3:2 레알 오비에도
첫경기 레알 오비에도와의 홈경기에서 3대2로 이기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지난시즌 승격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으나, 이번시즌은 다시 승격을 노린다. 물론 지난 시즌 4대0으로 이긴 곳을 이번 시즌은 먼저 2골을 넣고도 후반에 2실점을 내주며 2대2로 비길것 같은 경기 가까스로 이긴 것은 사실이나 경기력 면에서는 레알 오비에도보다 스쿼드 우위를 확실히 자랑하며 안켈라 감독은 자신의 축구 색체를 확실히 팬들에게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2라운드
우에스카 3: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지난시즌 라리가 강등팀 우에스카와의 원정경기에서 3대1로 패배. 치열할것이라고 나름 기대를 했으나, 생각보다 너무 쳐발리기만하고 일방적으로 반코트를 당한 경기이다. 게다가, 이전에는 우에스카 상대로 4전 전승으로 우에스카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 패배로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우에스카에게 패하게 된다. 이번 경기에서는 우에스카의 미첼 감독이 안켈라 감독이 지난 경기에 보여줬던 장점을 모두 공략해냈고 이는 데포르티보의 완패의 원인이 되었다.

3라운드
바예카노 3: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강등팀 원정 2경기에서 2경기 다 3대1로 패배하며 불안감을 노출하기 시작한다. 물론 1부리그 강등팀 원정 2연전이라 데포르티보가 져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승격을 노리는 팀 입장에서는 원정에서도 어느 정도 승부는 봐야하는 것은 필수이다. 아쉬운 것 하나가 더 있다면 데포르티보는 바예카노와의 홈경기에서는 항상 비겼으나, 바예카노 원정에서는 매우 강한 원정 전문 일진이였는데 이 경기를 통해 그 관계가 청산되었다는 것이다.

4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1 알바세테
이번경기에서 데포르티보의 낙승이 예상되었으나, 계속된 골취와 상대 키퍼 선방으로 골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데포르티보는 선언된 pk까지 취소된 반면, 알바세테는 VAR끝에 pk를 얻어내고 이걸 성공시키며 0대1 패배. 이 경기는 데포르티보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홈에서 알바세테에게 당한 패배인지라 선수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진 상태라고 한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안켈라는 데포르티보에서 불명예 경질을 당한 가능성도 있다.

5라운드
스포르팅 히혼 1: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자신들이 매우 강해왔던 히혼에는 승리를 노렸으나, 경기시작 5분만에 선제골 허용. 폐색이 짙던 후반 95분 아체에테가 극적 pk를 성공시키면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 경기 끝나고 당시 선수들은 히혼 따위도 못이기냐는 등 많이 불만스러웠으나, 당시에는 이 경기가 알고보면 대이변이었음을 알고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3:3 누만시아
히혼 원정서 비기며 강등권이 위협하던 상황에서 승리가 필요한 상황. 하지만 13분 에스카시에게 선제골을 먹고 0대1로 끌려가며 전반을 마친다. 하지만 후반 시작과 동시에 기적같이 3골을 넣으며 3대1까지 앞서갔다. 88분까지 승리가 확실시 되었으나, 88분 오세데의 헤딩골로 3대2 추격골 허용. 그래도 지키면 되는 데포르티보 였으나, 후반 93분 버저비터 공격에서 에스카시에게 동점골 허용, 3대3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다. 특히 마지막 골장면에서 에스카시의 골은 하프라인부터 에스카시에게 볼이 연결되는데는 5초동안 3번의 땅볼패스로 충분했다. 이 경기 이후로 빡친 데포르티보 팬들의 반발로 안켈라 감독 경질, 삼페드로 감독 부임.

7라운드
카디스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카디스 원정에서 비긴건 진짜 잘했다. 이건 삼페드로의 업적이다. 당시 홈 전승에 5승 1패 압도적 성적을 보이던 카디스에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둔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시즌 승격에 실패했을 뿐 전체적으로 데포르티보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줬던 나초 곤살레스 감독도 카디스 원정에서는 3대0으로 패했다. 결국 데포르티보는 이번 경기에서도 일단 강등권은 면한다.

8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1 미란데스
미란데스는 당시 강등권이라서 이건 이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것도 비긴다. 오히려 49분 후반 시작부터 수비가 무너지며 계속 아슬아슬하게 걷어내더니 결국 실점하며 끌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54분 바예호의 동점골로 1대1로 비기며 무승부를 거두고 강등권에 위치해 있다.데포르티보는 지난 2015-16시즌 국왕컵 16강전서 미란데스 원정서 1대1 무승부, 홈에서 0대3 대패를 당한 적이 있다. 이번 시즌도 이러한 흐름으로 미란데스에게 잡히는지 주목이 된다.

9라운드
지로나 3: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지로나 원정서 3대1로 패하며 리그 6경기만에 패배, 개막전 이후 리그 8경기 무승. 이 경기 패배로 데포르티보는 구단 역사에서 지로나 원정 전패 행진을 기록하게 되었다. 첫 경기를 획기적인 변화를 주며 1위팀 원정 무승부를 이끈 삼페드로 감독이지만 벌써 전술이 간파당한 것은 아닐까 하고 팬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 만난 팀들 중에서 미란데스와 누만시아와의 홈경기를 제외하면 상대가 매우 강했기에 게다가 강팀 원정도 있었으니 남은 경기에서 반등 여부에 따라 시즌의 성패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10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0 알메리아
알메리아와의 홈경기에서 맹공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키퍼의 활약으로 0대0 무승부 또다시 승리 사냥 실패. 지난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알메리아 골키퍼의 선방쇼로 인해 알메리아 다운 경기력을 보여두디 못하고 있다. 이 경기 역시 데포르티보 입장에서는 1부리그 승격 후보를 상대로 했음에도 매우 좋은 경기 내용을 보였기에 이런 식으로 빠른 반등이 필요하다.

11라운드
라스팔마스 3: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라스팔마스 원정세 3대0으로 그냥 져발린다. 개막전이후 10경기 무승 수렁에 빠져있다. 1부리그 시절에 라스팔마스에게 매우 강해왔으나 이 경기에서 원정에서 힘못쓰고 3대0으로 대패하며 강등권인 20위까지 추락한다.

12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2 말라가
믿기지 않겠지만 상대팀 말라가도 강등권 싸움중이다. 이건 단두대 매치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말라가의 파상공세였고 그대로 0대2 패배. 참고로 데포르티보의 골키퍼 다니 히메네스가 이 경기서 실수를 해서 실점의 원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최다 평점일 정도로 데포르티보는 홈경기에서 말라가에게 반코트를 당한다.

13라운드
라싱 산탄데르 1: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라싱 원정서 1대1로 비기며 12경기째 무승행진. 라싱 산탄데르와 데포르티보 모두 똑같은 것들이 많아서 경기 내용 모두 비슷했다. 굳이 이 경기로 이득을 본 팀을 꼽자면 데포르티보인데 데포르티보는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면서 최근 이어지는 홈 부진을 원정에서 계속 만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경기 무승부로 꼴등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14라운드
푸엔라브라다 1: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돌풍의 승격팀 푸엔라브라다 원정서 1대1로 비기며 13경기 무승행진을 기록한다. 푸엔라브라다와 데포르티보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붙는 관계인데 전반 26분만에 휴고 프라일에게 실점했으나, 후반 57분 코네가 동점골을 터뜨리며 1대1 무승부, 2연속 원정 경기에서 모두 소득 있는 무승부를 챙긴다. 이제 전반기 남은 상대들이 모두 약팀이라 데포르티보가 스쿼드로 그냥 압살하는 팀이다. 그러니, 이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 충분히 강등권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15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3 엘체
지난시즌 홈에서 엘체에 4대0 승리를 거둔 데포르티보는 이번시즌 1대3으로 지며 완전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데포르티보는 전반 13분만에 엘체의 베르두에게 프리킥을 먹었으나 26분 동점골을 넣었다. 그러나 57분 페널티킥 허용으로 1대2로 끌려갔고 87분 페페 미야의 골로 1대3 패배를 당한다. 이 경기를 통해 삼페드로 감독의 심각성이 여지없이 드러났고 진지하게 고려가 되어야 한다. 데포르티보 골키퍼 다니 히메네스는 선방 1회에 그치며 최악의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홈에서 엘체에게 패한 것은 1981/82 시즌 이후 40년만이라고 한다.

16라운드
에스트레마두라 2: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에스트레마두라 원정서 전반에만 2골먹고 2대0 패배를 기록한다. 지난 시즌 서로 원정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양팀이지만 이번 시즌에는 데포르티보가 먼저 원정에서 패배를 기록한다. 이 경기 패배로 데포르티보는 잔류권과 승점 5점차, 에스트레마두라는 강등권 탈출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얻게 된다.

17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0 알코르콘
알코르콘과의 홈경기에서 빈공속에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며 현재 리그 16경기 무승에 빠져 있다. 알코르콘 역시 데포르티보가 스쿼드만으로도 압살해야 하는 팀인데 이 팀도 홈에서 못이기는 수모를 겪으면서 삼페드로 감독은 곧 경질이 유력해 보인다.

18라운드
루고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루고 원정서 공격적으로 나오며 골을 노렸으나, 0대0 무승부 기록하며 17겨이 무승을 기록한다. 데포르티보는 현재 삼페드로 삼독이 부임한 이후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하는 중인데 삼페드로의 전술은 이미 깨질대로 깨졌다는 뜻이다. 수비는 신경도 안쓰고 공격만 하는데 그 공격 패턴도 워낙 단조로운 탓에 여기서 곧 잘리느 것은 당연하고 잘린 후에도 전술을 바꾸지 않는 한 감독직 복귀는 불가능해 보인다.

19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3 레알 사라고사
홈에서 사라고사에게 쳐발리고 1대3 패배를 기록하고 18경기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레알 사라고사가 이번시즌 역대급 대각성으로 승격 확률이 매우 높기는 하지만 스쿼드 차이도 애초에 매우 큰데다가 데포르티보의 홈이다. 그런데 데포르티보의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았고 레알 사라고사가 계속해서 점유율을 기반으로 공격을 하는 등 전혀 홈빨과 스쿼드빨은 없었다. 데포르티보는 이 경기 패배로 이번 시즌 강등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20라운드
폰페라디나 2: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폰페라디나 원정서 유리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며 2대0으로 패배하고 무려 19경기 무승으로 리그 꼴등으로 3부리그 강등 위기이다. 폰페라디나도 스쿼드빨로 이겨야 하는 팀이기는 하나, 폰페라디나가 이번 시즌 홈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무승부만 기록하자는 것이 주된 목표였으나, 폰페라디나에게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쳐발린다. 또한 데포르티보의 현재 충격의 상황이 무서운 것은 데포르티보는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스쿼드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적이 나오는 것이며 데포르티보의 부진한 성적에 스폰이 모두 다 잘려나갔다. 그래서 구단의 재정난도 심각한 것은 물론 팬들도 등을 돌렸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남은 경기들 중에서 지난 시즌 이겼던 경기는 단 3경기 스포르팅 히혼 홈경기, 누만시아, 레알 사라고사와의 원정경기이다. 그러나, 지난 시즌보다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 이 경기들을 모두 이길지도 의문인데다가 레알 사라고사는 이번 시즌에는 16위한 지난 시즌과 달리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마크 중이다. 게다가 홈에서도 1대3으로 이번시즌 패했기에 사라고사 원정도 승리 가능성이 거의 제로다. 즉, 데포르티보의 강등은 거의 전제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2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테네리페
홈에서 테네리페를 상대로 13분만에 pk를 얻어냈으나, 이를 실축해버린다. 하지만 21분 산토스의 골로 1대0으로 앞서간다. 그러나 이렇게 끝날거같던 후반 90분테네리페에 pk를 허용하며 동점골 허용. 하지만 마지막에 2대1 극장 헤딩골로 2대1 승리. 하지만 위기의 데포르티보는 삼페드로 감독을 자르고 데포르티보의 전설로 불리는 페르난도 바스케스가 사령탑으로 복귀한다. 데포르티보는 이 경기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관중은 5900명에 그치며 최소 관중을 기록했고 데포르티보 팬들은 승리 후 팬들에게 죄송하다며 큰 절까지 올렸음에도 팬들은 이를 무시까고 나가버렸다.

22라운드
누만시아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원정승을 거두며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꼴찌인건 여전하다. 누만시아가 전반 38분 당한 퇴장이 크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이겼던 누만시아 원정을 이번 시즌에도 이기며 반등의 조짐은 물론이고 앞으로 남은 경기들이 약팀의 연속이라 강등권 탈출에 실낱같은 희망도 버리면 안된다.

23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라싱 산탄데르
라싱 산탄데르에게 2대1 역전승을 거두며 리그 3연승으로 꼴찌 탈출. 이로써 페르난도 바스케스 효과가 빛을 보는 것으로 보인다. 데포르티보는 이 경기에서 라싱 산탄데르에게 선제골을 먹혔어도 팬들은 응원을 했으며 이에 힘입어 삼페드로였다면 졌을 경기를 페르난도 바스케스는 이긴다. 이 경기에서는 역대 최소 관중을 기록한 지난 홈경기 바로 다음 경기인데 이 경기는 티켓이 조기 매진이 된다.

24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카디스
홈에서 1위 카디스마저 털어버린다. 사빈 메리노의 결승골로 강등권을 탈출해 버린다. 카디스가 최근 조금 원정에서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최근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지난 시즌에 데포르티보가 1승도 못 거둔 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완전히 대단한 승리를 한 것이다.

25라운드
알바세테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알바세테 원정서 또다시 사빈 메리노의 골로 이긴다. 게다가 상대는 얻어낸 pk까지도 골대를 맞추며 날려버린다. 알바세테 원정에서 이기며 이제는 데포르티보는 더 이상 강등 후보가 아니다.

2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라스팔마스
라스팔마스에 2대1로 승리하며 완전히 강등권과 격차를 벌린 동시에 리그 연승까지 해낸다. 데포르티보는 이 경기에서 솜마가 어이없는 자책골을 넣으며 패배의 원흉으로 등극하는 줄 알았으나, 보베다가 보배같은 골을 터뜨리며 팀을 구한다.

27라운드
알코르콘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93분 코네의 극적 헤딩골로 0대1 승리, 리그 7연승을 기록한다. 이제 데포르티보는 리그 11위에 오르고 승격권과의 승점차는 단 7점으로 강등보다 승격에 더 가까운 팀으로 등극한다. 이 경기 후 팬들의 민심도 다시 회복이 된다. 물론 데포르티보의 스쿼드에 애초에 나왔어야 하는 성적이기는 하다.

28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2 지로나
홈에서 지로나와 비기며 연승에 제동이 걸린다. 사실상 스투아니의 원맨쇼에 당해버리며 비긴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데포르티보가 먼저 2골을 넣으며 상위권 지로나를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력 역시 강팀의 경기력을 보이면서 비긴 것에 대해서 전혀 비난의 여지가 없다. 이대로라면 승격은 어려워도 잔류는 당연히 한다.

29라운드
레알 사라고사 3: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페르난도 매직이 사라고사에는 역부족이었다. 힘 1번 못쓰고 패배한다. 레알 사라고사는 리그 상위권 팀에다가 홈원정 구분없이 다 때려 눕히는지라 데포르티보가 패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는 사실이 되었다. 무패는 끊겼지만 지난 전반기 홈경기때처럼 레알 사라고사에게 자유로운 공간 탈출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30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0 루고
선수들 사기가 하럭했는지 홈에서 강등권 루고와 0대0으로 비긴다. 데포르티보는 전반 22분 엠레 촐라크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취소가 되었는데 이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서 0대0으로 비긴다.

31라운드
알메리아 4: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알메리아 원정서 4대0으로 패하며 또다시 강등권으로 떨어진다. 이 경기에서는 페르난도 바스케스의 용병술이 알메리아의 초짜 감독 구티에게 완전히 털렸는데 구티 감독이 아체에테 집중 마크에 데포르티보는 방법이 없었다.

32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0 스포르팅 히혼
히혼에게는 워낙 얄짤없이 강해왔던 데포르티보지만 이번시즌은 그런거 없다. 데포르티보는 유효슈팅 0개의 수모를 당했고, 오히려 원정온 히혼이 골대 맞추고 골키퍼 괴롭히는등 훨씬 위협적이었다.

33라운드
레알 오비에도 2: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전반 29분 pk를 실축하며 또다시 승리 실패. 다만, 상대도 같은 강등권이라 전적 우위를 점하는데 성공하고 순위싸움에서 유리하게 되었다.

34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3:3 바예카노
홈에서 바예카노를 상대했다. 전반 시작 20분만에 2골을 내주며 무승부도 못하는듯 했다. 하지만 후반 시작과 동시에 2대2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81분 논란의 여지가 있는 pk를 얻었다. 처음에는 실패했으나, 골키퍼의 라인반칙으로 다시시도했고, 이를 성공하며 승리하는듯 했으나, 후반 93분 뼈아픈 pk 허용으로 3대3 무승부.

35라운드
엘체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엘체 원정서 뜬끔 1승 기록, 강등권을 탈출해버린다. 재개 이후 다시 페르난도 바스케스도 단졸운 축구를 구사하며 다시 삼페드로스러움이 나타났으나, 이 경기에서 전술 변형을 바탕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자신과 삼페드로 감독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3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폰페라디나
폰페라디나와의 홈경기에서 58분 선제골을 허용하였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2골을 넣으며 극적 승리, 2연승을 달렸다. 다만, 이 경기는 데포르티보의 선전보다는 폰페라디나 수비의 삽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들의 막장 수비 덕에 질 경기를 이긴 것이다.

37라운드
테네리페 1: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전반기에 붙었을때는 강등권 단두대 매치를 벌였으나, 어느 사이에 승격을 넘보는 테네리페 원정서 1대1로 비기며 고춧가루 뿌리는데도 성공을 한다.

38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우에스카
승격을 노리는 우에스카를 2대1로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강등권과의 격차를 벌렸다. 데포르티보는 이 경기 승리로 우에스카는 홈에서 무조건 이긴다는 기록은 이어가게 되었다.

39라운드
말라가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말라가 원정서 아드리안에게 결승 실점을 허용하며 패배, 재개 후 첫 패배를 기록한다.

40라운드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2:3 에스트레마두라
에스트레마두라와의 홈경기였으나, 지난시즌 그 홈경기에서 진 적이 있는만큼 많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패한다. 전반 4분만에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역전을 당한다. 상대의 강등버프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에스트레마두라는 이 경기 승리에도 불구하고 강등이 확정되었다.

41라운드
미란데스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미란데스가 승격이 좌절되자 로테이션을 대거 가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다. 그 와중에 나머지 하위권 팀들이 모두 승리하며 강등권으로 추락한다.

42라운드 푸엔라브라다와의 홈경기를 앞두고 상대 팀 선수들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경기가 연기된다. 경기전 루고와 알바세테와의 승점차는 1점으로 그 두 팀중 한 팀을 밀어내야 잔류한다. 일단 두 팀 모두와 전적은 동률이나 득실에서 완전히 밀리기 때문에 이기지 못한다면 사실사비겨도 강등이다. 다만, 중요한건 이겨도 둘중 한 팀은 미끄러지길 기도해야한다는 것이다. 루고는 12위 미란데스와 홈경기를 치르고, 알바세테는 1위 카디스와 원정경기를 치른다.결국, 데포르티보 입장에서는 알바세테가 못이기기를 기도하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만약, 둘중 한 팀이 이렇게 미끄러진다면, 데포르티보 입장에서는 홈경기에다가, 연기될동안 푹 쉬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유리하다. 게다가, 상대팀은 코로나 집단감염등 악재를 겪은 만큼 컨디션이 좋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루고는 84분 결승골로 잔류를 확정했고, 알바세테마저도 1위 카디스 원정을 극장 pk골로 0대1로 잡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데포르티보는 3부 강등이 확정된다. 41라운드 미란데스 전 1점차 패배가 팀을 강등권으로 내려놓았고, 42라운드에서 기적을 실현하지 못하면서 결국 3부리그로 강등을 당한것이다. 상여담으로 1부에 잔뼈가 굵은 팀이 3부까지 떨어지는 매우 유명한 사례로 리즈 유나이티드가 있다. 하지만, 리즈는 같은날, 다음시즌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확정짓고 리그 우승까지 했다.[7]


4.9.2. 2020-21 시즌: 상위권 유력후보, 다시 개혁을 하다.[편집]


데포르티보는 다음시즌 3부리그를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개혁을 했다. 3부 강등에 충격을 받은 페르난도 비달 구단주는 2년만의 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목표를 제시했고 이에 걸맞는 프로젝트를 알차고 열정적으로 진행했다. 기업 체제로 재빨리 전환했고, 네임벨류를 바탕으로 투자를 성공하며 팀의 재정난을 피하고 오히려 재정적 손실을 피했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다른 팀들은 비싸게 안받을테니 제발 사가기만 해달라는 상황에서 좋은 선수를 싼값에 사간다. 어느새 70대가 다되어가는 할아버지 감독 페르난도 바스케스 감독은 지난시즌을 끝으로 감독계에서 은퇴를 하기로 했으나, 구단의 간곡한 부탁에 1년을 더 같이 하기로 합의했다. 셀소 보르헤스, 보베다, 클라우디오 보뷔, 우체 아그보, 디에고 롤란 등 1부에서 뛰어도 이상하지 않은 선수들은 모두 빅클럽 제안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들은 모두 주급 삭감까지 강행하면서도 돈이 아닌 의리를 선택했다. 3부 강등에도 선수를 보강하며 유력한 상위권 후보는 물론 2부리그는 물론 1부에 몇몇 팀들보다도 재정상황이 좋다.

다음 시즌부터는 바뀌는 라리가 하부리그 규정으로 3위 이내에 들어야 2부리그 승격을 할 수 있다. 3위 이내에 들면 그 중에서도 승격 플레이오프를, 그 밑에는 강등or잔류를 정하는 플레이오프를 한다. 지역 단위로 3부리그 조를 나누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데포르티보랑 같은 조에는 10팀이 있는데 한 지역 당 원래 20팀이 있으므로 같은 지역에서도 A,B 2개의 조로 나뉜다. 데포르티보가 1~3위를 할 경우 B조 1~3위와, 4~7위를 할 경우 B조 4~7위와, 8~10위를 할 경우 B조 8~10위와 또다시 같은 조에 묶여서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이 플레이오프에는 A팀 출신 3팀, B팀 출신 3팀 이렇게 6팀이 출전한다. 그 자신의 상대팀 5팀 중 2팀은 이미 붙어본 전적이 있을테니 안붙어본 다른 조의 3팀을 상대로 홈앤드어웨이로 총 6경기를 한다. 다만, 그 순위 산출 승점은 이전에 했던 정규 시즌것도 누적되어서 같이 하니 집중력을 잃으면 안된다. 1~3위는 승격이냐 잔류냐를 다투지만, 그 밑에 그룹은 잔류냐 강등이냐를 다툰다. 그만큼 빡세졌다는 뜻. 개막전에는 유력한 꼴등 후보이자 진짜 더는 잃을게 없는 최약체 살라망카를 홈에서 만나니 꼭 승리를 해야한다.

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살라망카
과거에 1부에서 붙었던 팀이 어느새 3부에서 만난다. 사실 살라망카는 해체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진 신생팀이다. 그러나, 데포르티보가 예상보다 어렵게 이겼다. 전반전에는 이렇다할 공격을 못보여주고 0대0으로 종료되었다. 후반전에는 3부리그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인 클라우디오 보뷔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1대0으로 앞서나갔다. 하지만 68분 비프로 선수인 알폰소 칸델라스에게 충격의 동점골을 먹고 1대1이 된다. 폐색이 짙던 후반 96분 마지막 공격에서 보베다가 헤딩골을 터뜨리며 2대1 극장골을 터뜨린다. 이 승리로 데포르티보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찝찝한 리그 시작을 한다.

2라운드
콤포스텔라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아주 예전에 1부리그에서 만난 적이 있으나, 그 이후로 콤포스텔라가 쭉 추락해서 4부리그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3부리그로 올라온 상태이다. 당시 콤포스텔라는 꼴찌로 강등이 되었고 데포르티보는 리그 우승을 했는데 의외로 콤포스텔라 홈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데포르티보 홈에서는 콤포스텔라가 2대6으로 이긴적이 있다. 이번 시즌에도 무슨 일인지 0대0으로 비긴다. 다만, 둘의 전력 차가 하두 심해서 홈에서는 이길 것으로 보인다.

3라운드
우니오르시타드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우나오르시타드도 1라운드서 만난 살라망카랑 마찬가지로 살라망카를 연고지로 하는 팀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라망카랑 달리 유력한 우승 후보이다. 그래서 데포르티보가 무승부라도 하면 성공이라는 평가. 그러나, 이겼다. 전반 30초만에 터진 엑토르 에르난데스의 골로 0대1로 승리를 거둔다. 상위권 경쟁팀을, 그것도 자신들이 약세를 보이는 원정에서 이겼다는 점은 데포르티보가 리그를 씹어먹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4라운드
데포르티보 1:0 코룩소
살라망카에 이어 강등 2순위 코룩소를 상대로 최소 5골차 이상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일 정도로 기대가 컸으나, 후반 55분 득점이 유일한 득점이라 너무나 아쉽다. 이 경기 승리르 1위 유지는 했으나, 홈에서 이런 경기력은 안된다.

5라운드
기우헬료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중위권 구단 기후엘료 상대로 원정에서 아쉬운 0대0 무승부를 거둔다.

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라싱 페롤
한때 1부리그에서 만난 팀이지만, 이제는 3부리그에서 만난다. 전반 5분만에 페널티킥이 선언되며 쉽게 앞서나가는 듯 했으나, 이게 전부였다. 어렵게나마 승리를 했으나 더 완벽한 승리가 요구된다.

7라운드
폰테페드라 1: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폰테페드라 원정을 치르는데 그곳에서 이미 입ㄴ 프리시즌 친선 경기를 치렀는데 1대2로 이긴 바가 있다. 폰테페드라는 2부리그에서 만난 폰페라디나와는 다른 팀이니 혼동하지 말자. 65분 롤랑이 선제골을 넣으며 원정승이 유력하였으나, 69분 비프로 선수 루포에게 동점골을 먹고 1대1로 비긴다. 데포르티보는 이번 시즌 개막전 이후 2번째 실점을 기록한다.

8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2 셀타비고 B
그야말로 충격이다. 셀타비고랑 갈리시아 더비를 형성할 정도로 라이벌인데 셀타비고 B팀에게 홈에서 패하며 체면을 제대로 구긴다. 이는 셀타비고가 데포르티보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셀타비고 B팀도 이번시즌 승격 후보이지만 데포르티보가 홈에서 질 이유는 없었다. 데포르티보는 이를 통해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한다.

9라운드
사모라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전반 9분만에 아드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1대0으로 패하고 리그 2위로 떨어진다. 이제 데포르티보는 진지하게 승격 실패를 걱정해야 한다.

결국 페르난도 바스케스 감독도 경질이 되었다.

12월 28일 기준 우니오니스타즈에 승점 2점차로 밀린 2등을 하고 있다.

페르난도 바스케스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된다. 후임은 젊은 감독인 루벤 데 라 바레라. 10대부터 감독을 한 그는 레오네사를 2부로 승격시킨 업적을 가지고 있다.

10라운드
살라망카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살라망카 원정서 바레라 감독의 데뷔전이 치러졌으나, 0대0 무기력한 무승부를 거두고 원정 무승부로 출발을 한다.

1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2 콤포스텔라
홈에서 콤포스텔라에게 패하며 20년전 1부리그 전적이랑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루벤 데 라 바레라 감독은 이제 점점 불안해진다는 평가이다.

12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0:0 우나오르시타드
원정에서 이긴 우니오르시타드와의 홈경기에서 0대0으로 비기는 이변의 희생양이 된다.

13라운드
코룩소 2: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지난시즌 자신들 덕분에 잔류한 말라가를 상대로 홈에서 0대4 패배를 철저히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14라운드
데포르티보 1:0 기후엘료
홈에서 기후엘료를 잡으며 반등을 노린다.

15라운드
라싱 페롤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라싱 페롤 원정서 패하며 루벤 데 라 바레라 감독은 불안함이 노출되는 중이다.

1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폰테페드라
이번에는 폰테페드라를 드디어 이긴다.

17라운드
셀타비고B 0: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홈에서 1대2로 패한 셀타비고 B를 원정에서 이기는 대이변을 쓴다. 이 승리로 다음 사모라전에 때라 다시 3위 이내의 성적을 보여야만 한다.

18라운드
데포르티보 2:0 사모라
사모라를 잡고 2020년의 비극을 복수한다. 그러나, 같은 날 셀타비고B가 승리를 거두면서 최종 4위로 승격에 실패, 결국 강등과 잔류 사이에서 운명이 결정난다. 강등이 되면 데포르티보는 도산한다고 한다. 물론 강등 가능성은 희박한게 애초에 데포르티보가 승점이 가장 높은 상태라 잔류는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조에 콤포스텔라, 라싱 페롤, 누만시아, 마리노루안코, 랑그레오 5팀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미 같은 조에 속해서 붙은 적이 있는 콤포스텔라와 라싱 페롤을 제외한 나머지 3팀이랑 운명을 놓고 다툰다.

19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마리노 루안코
시즌 전부터 하위권이 유력했고 진짜 하위권에 쳐박히다가 후반기 엄청난 상승세로 5위까지 치고 올라가며 세군다 B프로 잔류를 노리는 그들. 마리노 루안코에게 잔류도 엄청난 성과이지만, 데포르티보에게는 필수 사항이므로 이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경기는 너무 어렵게 이겼다. 시종일관 마리노 루안코가 데포르티보를 두들겨 팼고, 오히려 홈팀 데포르티보가 후반 68분 페널티킥 하나로 1대0으로 이긴다. 경기력은 매우 안좋았으나, 승점 3점이란것에 만족 해야한다.

20라운드
랑그레오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랑그레오 원정서 77분 알바로 무니스에게 선제골을 먹고 이게 결승골이 되며 1대0으로 패한다. 아 경기에서는 마리노 루안코전과 달리 데포르티보가 시종일관 두드렸으나, 결국 상대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2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1 누만시아
홈에서 누만시아에 2대1 승리를 거두고 2위를 유지한다. 누만시아 역시 데포르티보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3부리그 잔류는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팀이고 강등되면 구단이 거의 도산 수준으로 나갈 상황이다. 하지만, 누만시아는 데포르티보랑 달리 4부리그 강등 확률이 매우 높다. 결국 데포르티보가 2대1로 이겼다. 누만시아는 데포르티보 상대로 홈에서도 약한데 그나마 강한 리아소르 원정도 패하며 진짜 위기가 온다. 뭐 데포르티보에게는 알바 아니지만.

22라운드
마리노 루안코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마리노 루안코 원정서 지루한 경기를 펼치며 0:0으로 비긴다. 전력상 데포르티보가 씹어먹을 팀인데 홈에서 1:0, 원정 0:0, 게다가 그 1골도 페널티킥이라는게 너무 아쉽다.

23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5:0 랑그레오
오랜만에 데포르티보가 제대로 스쿼드 빨을 받는다. 오랜만도 아니고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리 카스트로, 셀소 보르헤스, 보르하 곤살레스 등 이때까지 부진했던 선수들이 모두 골맛을 보면서 사기도 끌어올리고 승점도 얻은 1석2조의 경기. 이 승리로 데포르티보는 세군다 B프로 잔류를 확정한다.

24라운드
누만시아 1: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누만시아 원정서 1대0으로 패한다. 이때까지 이겨온 곳이나,이번 시즌은 원정에서 패하며 자존심을 구긴다. 그러나, 라싱 페롤이 랑그레오 원정서 0대1로 이기며 누만시아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4부리그 강등이 확정이 된다. 그리고 의미는 없지만 그룹 우승은 라싱 페롤이 차지한다.

결국 다음 시즌 출범하는 프리메라 디비시온 RFEF에 진출했다.


4.9.3. 2021-22 시즌: 잊혀지냐? 재약진이냐? 이제 기로에 놓였다.[편집]


데포르티보는 루벤 데 라 바레라에게 재계약을 제안했으나, 바레라는 다른 오퍼를 넣은 팀인 알바세테를 선택했다. 그만큼 이제 데포르티보의 위상도 많이 떨어졌다는 뜻. 이제 데포르티보도 많은 선수를 팔아야만 했다. 아무리 선수들이 의리가 있어도 이제 그들의 주급을 감당하기도 힘들다. 데포르티보는 이제 평범한 스쿼드를 정리해야하고 지난 시즌보다는 어려운 승격 경쟁을 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팬들의 눈은 여전히 1부리그라는 것. 그 어려운 감독직을 보르하 히메네스 감독에게 부탁한다. 그는 비선수 출신으로 대부분을 3부리그에서 보냈고, 2017-18시즌 미란데스를 2부리그로 승격시키고 2018-19시즌에는 카르타헤나를 2부리그로 승격을 시키는 등 승격으로 재미를 보는 특이한 감독이다. 이제는 데포르티보에서 승격 의무를 받는다.

프리 시즌에는 약팀과 계속해서 평가전을 치르면서 자신감을 다지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삼았는데 7부리그의 비야레스와 비베이로는 아주 그냥 박살을 내버렸으나 4부리그 베르칸티뇨스 원정에서 2대1로 충격패한다. 참고로 베르칸티뇨스는 1부리그 시절에 데포르티보가 원정에서 1대6으로 이겼던 팀이라 충격이 크다.


4.9.3.1. 리가[편집]

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5:0 셀타비고B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그야말로 최고의 시작을 했다. 리아소르에서 열린 셀타비고B팀과의 홈경기에서 무려 5대0 대승을 거두고 기분 좋은 시즌 스타트를 끊는다. 지난 시즌 홈에서 셀타비고B팀에 1대2로 충격패를 당한 것과 대조해보면 완전히 대단한 성과이다. 이로써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는 홈에서도 셀타 비고 B팀 상대로 1승을 추가한다.

2라운드
투델라노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맞대결이 성사된 양팀의 경기에서는 데포르티보가 7분만에 터진 라페냐의 골로 0대1 승리를 거둔다. 원정승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가 깊고 이번 시즌 승격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보르하 히메네스 감독은 이 경기에서 공격적인 4-3-3 전술을 선보이면서 기대를 모으는 중이다. 데포르티보가 2부리그에 오를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

3라운드
칼라호라 0: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데포르티보는 칼라호라와의 원정 경기에서 0대3 대승을 거두면서 원정 2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다. 데포르티보는 전반전만에 2골을 넣으며 0대2로 앞서나갔고 93분 추가골로 0대3 승리를 거두고 이제 리그를 아예 씹어먹을 준비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4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바다호스
데포르티보가 최강이다. 이 리그에서 데포르티보에 이어 2인자를 노리는 팀에서 1인자까지 노리던 바다호스를 1대0으로 잡았다. 사실상 1위 결정의 분수령으로 보였으나 이 경기를 승리하며 승격은 전제해도 좋을 듯 하다.

5라운드
살라망카 2: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데포르티보가 4연승을 한 가운데 승격을 하는데에 경쟁을 할 살라망카와 만난 가운데 전반 15분에 선제골을 뽑아냈으나 그 직후 전반에만 내리 2골을 허락하면서 살라망카 원정에서 패배했다.

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1 SD로그로뇨
데포르티보는 리아소르에서 열린 SD로그로뇨와의 홈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둔다. 이 경기 무승부로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는 홈경기 전승 행진이 깨짐은 물론 자동 승격에 차질이 생긴다. SD로그로뇨는 2부리그 이상 승격 경험은 없지만 이번 시즌 상당한 승격 후보이며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같은 지역 라이벌인 UD로그로뇨가 지난 시즌 강등되기는 했지만 2부리그를 승격하면서 삘받았기 때문에 엄청난 보강을 했다. 경기 초반부터 제포르티보는 공격을 계속해서 진행했고 18분만에 미쿠의 선제골로 1대0으로 손쉽게 앞서나갔다. 21분 코너킥 상황에서 퀼레스의 슈팅은 골대를 맞기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승각이 보였다. 후반전들어서는 로그로뇨도 슬슬 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위험 장면을 노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종료 직전 수비수 미겔 레도에게 극장 헤딩골을 실점하며 땅을 치는 무승부를 거두고 결국 이번 시즈 최대 통한의 경기로 남게될 경기를 한다.

7라운드
레알 우니온 2: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58-59 시즌 이후 63년만에 열린 경기로 주목받은 이 경기의 승자는 레알 우니온이였다. 이 패배로 데포르티보는 구단 역사에서 있었던 레알 우니온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패라는 계속된 기록을 이어나가게 된다. 전반 9분만에 알렉스 베르칸티뇨스[8]가 어이없는 실수로 카를로스 브라보에게 선제골을 내준다. 데포르티보는 이후 전반전에 맹공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고 윌리암과 미쿠의 슈팅이 골대를 맞는 불운이 겹친다. 전반 종료 직전에 미쿠는 또다시 골대를 강타하며 3번의 골대 강타를 한다. 그러나, 후반전에 드디어 레알 우니온의 수비를 넘었다. 오른쪽 측면에 빅토르 가르시아가 쇄도하여 들어갔고 이를 라페냐가 간결하게 패스를 하였고 땅볼 크로스까지 완벽하게 연결되며 노엘 로페스의 동점골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기쁨은 단 5분이였다. 레알 우니온의 카를로스 브라보가 이번에도 다시 역전골을 터뜨리고 2대1로 우니온이 앞서나갔고 경기는 이대로 2대1 레알 우니온의 승리로 끝이났다. 이 패배로 데포르티보는 결과에 따라 4위까지 내려갈 수 있다. 최근 데포르티보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는 의욕 감퇴인데 이안 멕케이 골키퍼부터 시작해서 미쿠까지 모두가 벌서부터 소포모어 증후군에 시달리는 중이며 또한 보르하 히메네스 감독의 보수적인 전술 역시 하락세의 원인이다. 빨리 타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8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산 세바스티안 도스 레예스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홈에서 산 세바스티안 도스 레예스를 상대로 홈에서 어렵게나마 1대0 승리를 거두고 리그 3위에 오른다. 다만, 우니오르시타드가 너무 잘해서 이번 시즌 자동 승격은 어려워보인다.

9라운드
라싱 산탄데르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라싱 산탄데르 원정에서 0대0으로 비기면서 무패를 이어가는 중이다. 사실상 1위 결정전. 무승부이기에 오히려 소득을 본 경기이다.

10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0 사모라
사모라에게 지난 시즌 2대0 승리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1대0으로 이기면서 상당히 홈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고 승격은 사실상 예약한 상태이다.

11라운드
로그로뇨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부리그에 1번 갔다온 로그로뇨를 원정에서 잡으면서 원정승도 기록, 까다로운 원정을 잡으며 리그 상위권을 마크한다.

12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3:0 에스트레마두라
에스트레마두라 선수들이 임금 체불로 경기를 거부하면서 꽁승을 얻었고 홈에서 에스트레마두라에게 2전 전패로 약한 데포르티보로써는 개이득을 본다.

13라운드
라요 마하다혼다 1: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부리그에서 원정 0대0 무승부, 홈 0대2 패배로 약한 모습을 보인 라요 마하다혼다를 상대로 원정에서 승리르 거두면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다. 이제 2부리그 승격은 전제해도 좋을 듯 하다.

14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1 아틀레틱 빌바오B
데포르티보는 아틀레틱 빌바오B팀과의 홈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며 아직 1부리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팀이라느 사실을 깨닫게 된다.

15라운드
라싱 페롤 0:0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라싱 페롤 원정에서 0대0으로 비기며 2연무로 라싱 산탄데릉게 추격을 허용중이다.

16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3:0 레알 바야돌리드B
레알 바야돌리드B팀과의 홈경기에서 3대0으로 이기면서 그 분위기는 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리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7라운드
레오네사 2: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레오네사 원정에서 2대3으로 이기고 다시 2연승을 기록, 리그 여포가 되고 있다.

18라운드
데포르티보 1:0 탈라베라
구단 역사상 처음 맞붙은 양팀의 경기는 1대0 데포르티보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데포르티보가 예상외로 진담승하며 팬들의 우려를 자아내는 중이다.

19라운드
인테르나시오날 데 마드리드 2:3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인테르나시오날 데 마드리드 원정에서 2대3 승리를 거두고 리그 4연승을 기록 중이다.

20라운드
사모라 0:1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지난시즌 1대0으로 진 사모라 원정에서 이번 시즌에는 0대1로 승리하면서 승격 가능성이 90% 이상에 육박하는 중이다.

21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2 레알 우니온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홈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다. 레알 우니온에게 홈에서 지면서 첫 홈패배는 물론 리그 14경기 무패 행진이 여기서 종료된다. 이제 승격조차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라싱 산탄데르에 이어서 1조 2위를 기록하며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하였다.

1회전에서는 리나레스에 4:0 대승을 거뒀으나 결승전에서 알바세테 발롬피에에게 연장전 승부끝에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라리가 2 승격에 실패했다.

4.9.3.2. 국왕컵[편집]

128강
UCAM무르시아 3:4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같은 3부리그팀 원정에서 3대4로 이기며 자신들은 3부리그와 어울리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64강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2 오사수나
오사수나와의 홈경기에서 패배하면서 1부리그와는 거리가 먼 구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번 경기를 통해서 보여주게 되었다.


4.9.4. 2022-23 시즌: 계속되는 희망고문[편집]



5. 리그 소속 기간[편집]


  • 1부/라리가: 1941-1945, 1946-1947, 1948-1957, 1962-1963, 1964-1965, 1966-1967, 1968-1970, 1971-1973, 1991-2011, 2012-2013, 2014-2018 (46시즌)


6. 거쳐간 선수[편집]



6.1. 창단 ~ 1990년대[편집]


창단 이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던 주요 선수들

차초: 커리어 16년 중[9] 14년을 데포르티보와 함께 한 클럽 초창기의 레전드. 1934년 월드컵 스페인 대표팀 멤버 중 유일한 데포르티보 소속 선수였으며 당연히 데포르티보 최초의 FIFA 월드컵 출전 선수이기도 하다.

루이스 수아레즈: FC 바르셀로나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레전드로 유명한 스페인 국적의 미드필더. 데포르티보 유스 출신으로 53/54 시즌 한 시즌 몸담은 후 이적했다. 데포르티보에서 선수 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활약했다.

아만시오 아마로 :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인 아만시오 아마로는 데포르티보에서 데뷔했다. 데포르티보에서 네 시즌을 뛰었고 승격에 크게 일조했다. 이를 지켜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직접 지목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킬 만큼의 재능이었다. 이후 금빛 화살 디 스페타노와 함께 활약했다.

프란 곤살레스: 레알 마드리드의 이적 제의까지 거절하며 축구 인생 모두를 데포르티보에 바친 레전드. 데포르티보 유스 팀 출신으로 1988년 1군 승격되어 2005년까지 17년 동안 활약했다. 데포르티보의 10번이자 주장으로서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스피드가 아닌 테크닉, 패스에 의존하던 재간둥이 스타일의 윙어였고 스페인 대표로 유로 2000 출전 및 A매치 16경기 2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엔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코칭을 배우고 있으며 아들 니코 곤잘레스는 FC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 중 한명이다. 다만 2000년대 중반 위약금 파문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데포르티보를 강등으로 내몰 뻔한 사건 이후로 다수의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상태. 그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좋아하진 않는다는 반응이 주다. 애증의 존재로 전락한 셈.

미로슬라프 쥬키치: 세르비아 국적으로 90년대 라리가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하나였다. 구 유고 연방 및 세르비아에서도 레전드로 평가받는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쥬키치의 페널티킥(El penalti de Djukic)으로 매우 유명하다.[10]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1997년부터 2003년까진 발렌시아에서 활약하며 두 클럽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은퇴 후엔 세르비아 U-21 대표팀, 세르비아 성인 대표팀을 비롯해 스페인의 바야돌리드, 발렌시아, 에르쿨레스, 코르도바의 지휘봉을 잡았다. 감독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파코 리아뇨: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데포르티보의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 스페인 대표팀 경력은 없지만 전성기 시절엔 상당히 뛰어났던 수문장이었다. 92/93 시즌과 93/94 시즌 무려 두 시즌 연속 라리가 최우수 골키퍼(사모라 상)로 선정되었다.

베베투: 호마리우와 투톱으로 뛰면서 1994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아기 안기 세레모니로 한국에서도 유명하지만 데포르티보 레전드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데포르티보 소속으로 131경기 출장 86골을 기록했다. 베베토의 조상은 데포르티보의 연고지인 갈리시아 출신이었다. 활약도 활약이지만 갈리시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데포르티보 팬들의 가슴 속엔 호마리우보다 위대한 스트라이커.

마우로 실바: 레돈도, 과르디올라와 함께 90년대 라리가 수비형 미드필더 삼대장. 왕성한 스태미너와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만 37세까지 데포르티보의 중원을 든든히 받쳐줬다.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평. 여기에 라리가에서 가장 많이 공을 뺏으면서 가장 적게 뺏기는 선수라는 칭찬도 들었을 정도로 볼을 다루는 능력이나 패스 능력도 좋은 편. 마켈렐레가 한창 레알 마드리드에서 대활약을 때도 적지않은 이들이 마우로 실바가 우위에 있다고 여겼을 정도였다.[11][12] 데포르티보 출신으로 자타공인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월드 클래스 선수.

다만 공격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의 특수성으로 1994 월드컵 주역임에도 젊은 시절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이 늘어난 최근 재조명 받는 중. 2018년 구단 공식 투표를 통해 데포르티보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

보로 곤살레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데포르티보의 수비 주축으로 활약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발렌시아에서 보냈지만 전성기는 데포르티보 시절이라 할 수 있다. 데포르티보에서의 활약으로 1994 미국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선수 은퇴 이후 고향팀인 발렌시아오 돌아가 코치 및 감독 대행으로 활동 중이다.

도나토: 브라질 출신의 중앙 수비수 및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후 1993년 여름 데포르티보로 이적했다. 데포르티보로 이적한 후 전성기를 맞이하며 스페인으로 귀화해 12경기 3골을 득점했다. 유로 96 당시 스페인의 10번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말년엔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데포르티보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당시 만 36세임에도 29경기 3골을 터트렸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투철했다. 02/03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고 이후에도 친정팀의 연고지인 아 코루냐에 거주 중이다.

클라우디오 바라간: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던 스트라이커. 베베투와 함께 투톱을 이루며 구단의 첫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하나다. 은퇴 이후 엘체의 수석 코치 및 감독직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2부 리그 구단들의 지휘봉을 꾸준히 잡고 있다.

하비에르 만하린: 1993년부터 1999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한 공격수 및 윙어. 득점력은 떨어졌으나 스피드가 뛰어난 선수로 상대 진영에 혼란을 가져다주는데 능했다. 스페인 U-20 대표팀부터 성인 대표팀까지 차근차근 밟은 엘리트로 유로 96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또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따낸 코비 세대의 일원이다. 은퇴 후 데포르티보 유소년 코치 및 2군 수석 코치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 라싱 페롤의 수석 코치다.

파코 헤메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던 중앙 수비수. 데포르티보 시절엔 유망주 혹은 로테이션 맴버로 활약했다. 1998년 여름 사라고사로 이적한 후 전성기를 구가하며 스페인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다. 은퇴 이후 여러 구단들을 전전하다가 라요 바예카노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이며 주가를 올렸다.

누르딘 나이베: 1996년부터 2004년까지 8년 동안 데포르티보의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터프한 수비의 대가로 당대 라리가 최고의 중앙 수비수 중 하나였다. 모로코의 축구 영웅으로 A매치 115경기 4골을 기록했고 2번의 월드컵에 출전 경력도 있다. 아프리카로 범위를 넓혀도 역대 베스트 11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선수. 아시아에서 홍명보의 위상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플라비우 콘세이상: 1996년부터 2000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던 중앙 미드필더. 마우로 실바와 함께 데포르티보의 중원을 이끌며 99/00 시즌 우승을 견인했다. 이후 거액의 이적료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폭망했다.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 44경기 4골을 비롯해 2번의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다. 마르코스 세나가 플라비우 콘세이상과 자주 비교되었다.

무스타파 하지: 90년대 모로코의 판타지 스타.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맹활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지만 적응 문제 및 경쟁자가 하필 자우밍야였기 때문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진 못했다.

자우밍야: 브라질 출신의 희대의 테크니션. 화려한 발재간으로 큰 명성을 떨쳤는데 호나우지뉴가 떠오를 당시 제2의 자우밍야라고 불렀을 정도. 우리가 호나우지뉴를 통해 봤던 화려한 테크닉들은 이미 자우밍야가 먼저 했었다. 1997년 히바우두의 대체자로 영입되어 2004년까지 리아소르를 누볐다. 가장 큰 업적은 바로 1999-2000 시즌 데포르티보의 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던 것. 화려한 개인기 외에도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클러치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큰 경기에 매우 강했다.

그러나 01/02 시즌 기점으로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게 된다. 자우밍야가 나이가 많기도 했고 발레론이 플레이메이커로서 더 이타적, 안정적이었기 때문. 이루레타 감독은 자우밍야를 로테이션 맴버로서 상황에 따라 왼쪽과 중앙에 골고루 기용하고 싶어했다. 본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훈련 도중 이루레타 감독에게 박치기를 시전하며 사실상 축구 인생이 끝나버렸다. 특히 월드컵 직전에 벌어진 사건이라 여파가 더욱 컸다. 당시 브라질 대표팀 감독이었던 펠리페 스콜라리는 자우밍야의 행동에 매우 유감을 표했고 엔트리 발표 직전 히카르두 카카를 대신 선발했다. 또한 데포르티보에선 02/03 시즌 쫓겨나듯 오스트리아 리그로 임대를 떠나야만 했다.

은퇴 이후 데포르티보 실내 풋살팀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최근엔 브라질에서 거주 중. 하비에르 이루레타 감독과는 화해를 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파울레타: 포르투갈 부동의 원톱 파울레타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2년 동안 활약했다. 우승 멤버지만 존재감은 적었다. 로이 마카이에 밀려 철저한 후보였다. 2000년 여름 디에고 트리스탄이 합류하면서 보르도로 이적.


6.2. 2000년대[편집]


99/00 시즌 우승부터 2000년대 초중반 데포르티보를 거쳤던 선수들

리오넬 스칼로니: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한 멀티 플레이어. 주 포지션은 오른쪽 측면 수비, 윙어였으나 수비형 미드필더도 가능했다. 04/05 시즌을 끝으로 프란 곤살레스와 마우로 실바가 은퇴한 후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05/06 시즌 호아킨 카파로스 감독 및 구단 운영진과 불화를 빚었고 결국 리빌딩의 일환으로 시즌이 끝난 후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세리에 A의 라치오, 아탈란타에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소속으로 2006 월드컵에 참가한 적이 있다. 데포르티보를 떠난 후에도 이탈리아에서 꾸준히 경기를 관전하러 올 정도로 애정이 대단하다. 일찌감치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데포르티보의 감독이 되는 것은 나의 꿈이라고 여러번 밝혔다. 호르해 삼파올리의 수석 코치로 지도자 수업을 받은 후 아르헨티나 감독 대행을 거쳐 현재 감독을 맡고 있다. 2021년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22년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마누엘 파블로: 유스 출신이 아님에도 1998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8년을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한 레전드. 2000년대 초반 20대 초반에 카푸, 사네티와 함께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01/02 시즌 정강이가 두동강 나는 중상을 당하며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투철한 프로 정신을 바탕으로 만 4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현재 팀에서 유소년 코치로 일하는 중.

엔리케 로메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한 레프트백. 20대 중후반에 이르러 기량이 만개한 대기만성형 선수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프리메라 가를 대표하는 풀백이었다. 특히 99/00 시즌 데포르티보의 우승 이후 좌측의 엔리케 로메로, 우측의 마누엘 파블로가 이끄는 측면 수비는 프리메라 리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13] 2002 한일 월드컵에도 참가해 한국전을 비롯해 3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유로 2004도 참가가 유력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부상으로 기회를 날렸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치거나 뱀에게 물리는 등 기이한 부상을 당하며 동료였던 조안 카프데빌라에게 자리를 내줬다.

빅토르 산체스: 레알 마드리드, 라싱 산탄데르를 거쳐 1999년 여름 데포르티보에 입성한 후 루이스 피구, 호아킨 산체스와 함께 꾸준히 라 리가 최고의 우측 자원으로 평가 받았다. 면도날 크로스와 속 시원한 중거리 포는 빅토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06년 데포르티보를 떠나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 그 후 세군다 리가의 엘체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 당시 헤타페의 감독이었던 미첼의 수석 코치로 세비야, 올림피아코스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작년 여름 미첼과 결별한 후 감독직을 구하다가 강등 위기에 직면한 데포르티보로 9년 만에 돌아왔다. 감독 경력이 없었음에도 팬들은 빅토르가 팀을 강등에서 구해낼 것이라 굳게 믿었다. 빅토르는 14/15 시즌 데포르티보를 잔류시킨 후 15/16 시즌 데포르티보를 잔류시키며 팬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러나 구단 운영진과 불화로 일방적으로 경질당했다.

세사르 마르틴: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데포르티보에 몸담았던 중앙 수비수.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의 모든 연령대를 거친 엘리트였고 장차 데포르티보의 핵심이 될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나이베트가 생각보다 오래 기량을 유지했고 설상가상으로 안드라데가 영입되며 로테이션으로 굳혀졌다. 03/04 시즌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포르투 전에서 데쿠에게 뒤늦은 태클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데포르티보 팬들을 눈물 짓게 만들기도 했다. 스페인 대표팀 소속으로 12경기 3골을 기록했고 유로 2004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로이 마카이: 99/00 시즌 우승 당시 최전방을 책임졌던 공격수. 그러나 00/01 시즌과 01/02 시즌엔 디에고 트리스탄에게 밀려 오른쪽 윙으로도 출전하는 등 데포르티보 생활이 항상 순탄치는 않았다. 그러다 트리스탄이 부상으로 신음하던 02/03 시즌 폭발하기 시작했다. 리그에서만 29골을 터트리며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또한 스페인 클럽의 무덤이라 불렸던 올림피아슈타디온 원정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데포르티보의 역사적인 승리를 이끌었다.[14]

슬라비샤 요카노비치: 구 유고 연방 출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99/00 시즌 우승 멤버다. 마우로 실바, 플라비우 콘세이상이 볼란테로 출전한 가운데 로테이션으로서 쏠쏠하게 활약했다. 한 시즌만 뛴 후 첼시로 이적했다.

디에고 트리스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활약했던 스트라이커. 데포르티보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당대 스페인이 내놓은 무결점 스트라이커. 지금도 스페인에선 게으른 천재의 대명사로 언급될 정도로 타고난 재능은 남달랐다. 특히 01/02 시즌 보여준 임팩트는 3대 빅 리그 공격수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꿀릴 것이 없었다. 맹활약에 힘입어 2002 월드컵에는 스페인의 10번으로 참가했다. 월드컵 도중 당한 부상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평소에 훈련을 게을리했고 부상을 당한 후에도 계속해서 늦은 밤까지 파티를 즐기는 등 자기 관리에 실패하며 04/05 시즌 이후로는 완벽히 퇴물로 전락했다. 재능은 재능인 것이 퇴물로 전락한 후에도 리보르노와 웨스트 햄을 통해 빅 리그를 전전했다. 데포르티보와 끝이 나빴지만 최근 리아소르나 훈련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왈테르 판디아니: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데포르티보에서 활약했다.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골문 안에서 존재감이 돋보였던 선수. 다른 능력은 애매했지만 헤더로 득점하는 능력 하나는 최고였다. 항상 머리를 밀고 다닌 것도 있고 헤더가 좋다보니 오래전 사커라인에선 황금 대가리로 불리곤 했다. 00/01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파리 생제르맹 FC 전에서 후반전 교체 투입되어 머리 3골 헤트트릭을 작렬하며 4:3 기적같은 역전승을 만들며 스타덤에 올랐다.[15] 하지만 디에고 트리스탄, 로이 마카이 때문에 솔샤르처럼 수퍼 서브로 활용되었다. 주전으로 나선 때는 03/04 시즌밖에 없었고 이 때 정점을 찍었다. 16강 유벤투스 원정에서 1골, 8강 AC 밀란 전에선 리아소르 기적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주로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 노는 선수라 지원 사격이 좋지 않으면 덩달아 부진했다. 쉽게 말해 혼자서 골을 만들지 못했던 선수라 클럽에서나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나 크게 중용받지 못했다.

프란시스코 몰리나: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데포르티보의 골문을 지켰다. 유로 2000 노르웨이 전 저지른 실수로 인해 스페인 국대와는 인연이 없었으나 라 리가에선 언제나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였다. 은퇴 직후 빠르게 감독직에 도전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호안 카프데빌라: 데포르티보에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7년 동안 활약했다. 엔리케 로메로에게 밀려 오랜 시간 로테이션에 그치다가 05-06 시즌부터 뒤늦게 포텐이 폭발해 06-07 시즌에 이르러선 라 리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넓혀가며 유로 20082010 월드컵 우승 당시 주전 선수였다. 득점력이 수비수치고 상당히 뛰어났다. 데포르티보를 떠난 후에도 꾸준히 리아소르에 방문해 팬들과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알도 두셰르: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팀에서 활약한 수비형 미드필더. 아르헨티나 U-17 대표팀부터 U-20 대표팀, U-23 대표팀까지 엘리트로 만 18세에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소속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주전 자리를 꿰찼을 정도. 만 19세에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으로 이적해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청대를 고루 거쳤던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던 만큼 일찌감치 마우로 실바의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물론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지만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기량이 완성되며 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까진 찍어봤다. 비슷한 시기에 대표팀에도 발탁되어 5경기를 소화했다. 당대 아르헨티나 중원이 에스테반 캄비아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라 그렇지 요즘 같았으면 꽤나 중용되었을 선수. 사실 두셰르가 유명해진 것은 2002 월드컵 직전인 01/02 시즌 데이비드 베컴의 발등을 부러트렸기 때문이다.[16]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백만 데포르티보 팬들의 근원, 상징, 그리고 혼 그 자체였던 레전드. 플레이메이커 시대에 스페인이 내놓은 대답으로, 샤비와 이니에스타 이전 세대의 미드필더 중 가장 창조적이고 패스가 뛰어났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세군다 리가 최우수 공격형 미드필더상을 타며 팀의 승격을 견인했다.

로베르토 아쿠냐: 팀에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활약한 중앙 미드필더. 90년대~2000년대 중반까지 파라과이 대표팀의 핵심, No.10이자 주장까지 맡았다. 사라고사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1100만 유로, 당시로선 적지 않은 이적료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계속된 부상, 컨디션 저하로 한 시즌 10경기를 소화했던 적이 단 1번도 없었다. 팀 입장에선 희대의 먹튀.

조르제 안드라데: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팀 수비의 핵심이었다. 전성기 시절엔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갖춘 정상급 수비수였다. 2007년 자유 계약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년 동안 4번의 공식 경기에만 출전했다. 포르투갈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51경기 출전한 바 있다. 2002 월드컵, 유로 2004에 참가했다. 2006 월드컵은 무릎 부상으로 불참했다. 베테랑 루이스 피구, 코스티냐, 파울레타가 2006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 및 대표팀을 떠나면서 누누 고메스와 함께 포르투갈의 주장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본격적으로 부상으로 신음하던 시기라 그다지 존재감은 없었다.

알베르트 루케: 팀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활약했던 왼쪽 윙어 내지 스트라이커. 03/04 시즌 스트라이커에서 왼쪽 윙어로 포지션 변경 후 포텐셜이 제대로 폭발하며 유럽 축구계를 대표하는 신성으로 떠올랐다. 세리에 A의 신성이 카카였다면 라 리가의 신성은 루케였을 정도. 리아소르의 기적 당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AC 밀란을 침몰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스페인 대표팀으로는 2002 월드컵유로 2004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2006 월드컵 조별 예선 리투아니아 전에 중거리 슛으로 스페인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내는 등 2000년대 중반 스페인 최고의 왼발잡이로 떠올랐으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이적 후 이적한 후 계속된 잔부상에 신음했고 기량이 빠르게 쇠퇴했다. 말라가에서 10-11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04/05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영입되어 07/08 시즌까지 활약했다. 붙박이 주전이었고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마지막이었던 07/08 시즌엔 유망주, 퇴물로 구성된 4백 라인을 이끌고 엄청 고생했다. 눈물 없인 볼 수 없었던 시즌. 전반기 내내 콜로치니의 사자후의 주요 타겟이었던 필리페 루이스가 눈부신 성장세를, 마누엘 파블로는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후반기엔 다행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전반기만 하더라도 19위를 찍던 팀은 후반기에 한 때 7위까지 치고 올라갔는데 콜로치니의 하드 캐리 덕분이었다. 그 결과 후반기 성적은 11승 2무 6패, 후반기로만 따졌을 때 4위였다. 2008년 여름 여러 명문 클럽들의 오퍼를 받았으나 가장 많은 이적료를 제시한 뉴캐슬로 이적했다.

알베르트 로포: 팀에서 2006년부터 2011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활약했다. 에스파뇰 황금 유스 세대의 일원으로 데포르티보로 이적 당시 리그 정상급 센터백이었다. 스페인 대표팀에 콜업도 받았으나 출전은 못했다. 당시 발렌시아 C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여러 명문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할 수 있었으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팀에 뛰어난 선수들이 여럿 포진해있었고 무엇보다 에스파뇰 시절 동료였던 세르히오 곤살레스, 조안 카프데빌라의 설득으로 데포르티보 행을 결심했다. 꾸준히 수비 핵심으로 활약했으나 발밑이 상당히 투박하다는 점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필리페 루이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몸담았다. 과르다도와 함께 무너져가던 팀을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렸던 구세주. 원래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미겔 앙헬 로티나 지도 하에 수비력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08/09 시즌을 기점으로 프리메라 리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음에도 클럽 인지도 때문에 평가가 상당히 박하다.

안드레스 과르다도: 무너져가던 데포르티보를 잠시나마 끌어올렸던 멕시코의 국민 스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활약했다. 국가대표팀 선배이자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고 있던 라파엘 마르케스의 적극 추천으로 입단했다. 당시 세계적인 유망주 중 하나였기에 팬들의 기대는 엄청났다. 입단식엔 무려 3,000명의 팬들이 몰려왔고 멕시코 전역에 생중계되었을 정도.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지만 필리페 루이스와 함께 2000년대 후반 팀의 상징이었다. 과르다도-필리페로 이어지는 왼쪽 라인은 프리메라 리가에서 최고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17] 10/11 시즌 강등에도 불구하고 잔류하는 충성심을 보여줬고, 11/12 시즌 맹활약으로 승격에 크게 일조하며 아름답게 이별했다.

루카스 페레스: 2014-15시즌 PAOK FC에서 임대 간 후 에이스 활약을 하면서 완전 이적을 한다. 이후 2015-16시즌 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한 뒤 아스날 FC로 떠났다. 이후 임대로 왔지만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다. 그리고 2022-23 시즌 연봉을 카디스 CF에서 받던 거에서 1/10으로 줄이고 이적료 100만 유로 중 49만 3000유로도 페레스가 사비로 부담하면서 레전드 중 한 명이 되었다.


7. 근황[편집]


티노 페르난데스가 구단주로 부임한 후 2014년부터 데포르티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 출신 답게 사업 수완이 뛰어나다. 그로인해 재정이 안정을 되찾았다.

팬들과 소통을 중요시한다. 티노 페르난데스는 구단주이기 앞서 데포르티보가 무명일 때부터 좋아했던 열혈 팬이다. 그래서 구단주지만 같은 팬의 입장에서 선수들과 팬들이 가까워 질 수 있는 각종 행사를 라 코루냐 시나 일반 기업들과 협력해 자주 열고 있다. 또한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구단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팬들과 한 층 가까워지다보니 평균 관중수도 지난 시즌들에 비해서 상당히 많아진 편이다. 최근에는 홈 경기가 있을 시 라 코루냐 교외에 거주하는 팬들의 교통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셔틀 버스 시스템을 도입했다. 구단주로서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축구 내적인 면에서 있어선 합격점을 주기 힘들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를 잘 모른다. 스포팅 디렉터에게 권한을 위임하는데 문제는 축구를 모르니 스포팅 디렉터가 유능한지 무능한지 구분도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독 선임과 경질인데 계속해서 검증도 안된 감독이나 선수단 구성과 상반되는 축구 철학을 추구하는 감독을 선임한다. 페르난도 바스케스, 빅토르 산체스의 의문스러운 경질에 자신의 오른팔이자 구단의 스포팅 디렉터는 급기야 작년 10월 돌연 사임했다.


8. 라이벌[편집]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땐 같은 갈리시아 지역을 연고로 하는 구단들과 라이벌이 형성되어 있다. 가장 큰 라이벌은 셀타 비고가 있다. 과거엔 라싱 페롤, SD 콤포스텔라, CD 루고같은 갈리시아 소규모 구단들도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데포르티보와 격차가 워낙 벌어진 관계로 사실상 라이벌 의식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셀타 비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행여나 앞서 언급한 소규모 클럽들의 서포터라도 데포르티보나 셀타 비고 중 한 클럽을 응원하는 경우가 대부분. 쉽게 말해 갈리시아 축구계는 데포르티보와 셀타 비고가 양분하고 있다는 뚯이다.

이 외에 데포르티보의 라이벌로는 발렌시아 CF가 있는데 이는 발렌시아가 데포르티보의 역사에 항상 걸림돌 같은 존재였기 때문. 93/94 시즌 데포르티보는 발렌시아에게 무승부를 거두며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코 앞에서 놓쳤고 10/11 시즌엔 최종 라운드에서 발렌시아에게 패배하며 20년 만의 강등을 확정지었다. 데포르티보와 발렌시아가 프리메라 리가 4강을 형성했을 시절에는 발렌시아 팬들 역시 라이벌 의식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사그러든 상태다.


8.1. 갈리시아 더비란?[편집]


셀타 비고 그리고 갈리시아 더비

데포르티보는 갈리시아 북부를, 셀타는 갈리시아 남부를 대표하는 구단이다. 갈리시아의 맹주인 두 구단이 자존심을 걸고 다투는 더비.

스페인어로는 Derbi gallego(갈리시아 더비)로, 갈리시아어로는 O noso derbi(우리들의 더비)라고 칭한다. 스페인에서 거칠기로 소문난 더비 중 하나다. 스페인 경찰청은 매번 위험도 높은 경기로 지정해 추가 인력을 투입한다.

두 클럽이 하부 리그를 전전했던 1980년대에도 심심하면 화염병이 날아다녔을 정도. 오히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 때가 더 살벌했다.

90년대 후반부턴 선수들끼리의 기싸움이 매우 심해졌다. 데포르티보는 수페르 데포르로, 셀타는 유로 셀타로 불리며 비슷한 시기에 두 구단 모두 황금기를 맞았기 때문. 당연히 두 클럽을 스타 플레이어끼리 자존심 대결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다. 당대 라 리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데포르티보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자우밍야차르[18]로 불리며 셀타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알렉산데르 모스토보이가 바로 주인공. 실제로 둘은 경기장에서 여러번 충돌했다.


8.2. 독특한 갈리시아[편집]


갈리시아는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답지 않은 지방이다. 일단 기후부터 스페인 내륙과 완전히 다르다. 갈리시아는 가을부터 봄까지, 여름을 제외하곤 수시로 비가 내린다. 스페인의 다른 지방과 달리 화창한 날씨를 보기 힘들다. 뜨거운 태양 아래 포도 농장이나 올리브 농장이 넓게 펼쳐진 풍경은 갈리시아에 없다고 보면 된다. 대신 강원도를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산들, 울창한 숲,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가 펼쳐져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페인과 많이 다르다.

언어 또한 스페인어와 차이점이 있다. 카탈루냐어처럼 갈리시아어가 존재하며 교육 과정, 관공서에서도 쓰인다. 심지어 갈리시아어로만 송출하는 방송국도 있다.


8.3. 정체성의 충돌[편집]


앞서 언급했듯 갈리시아는 지역색이 매우 뚜렷하다. 이런 가운데 데포르티보는 갈리시아 북부를 대표하는 동시에 스페인 중앙 정부에 우호적이다. 데포르티보가 레알이라는 칭호를 가장 먼저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셀타는 갈리시아 남부를 대표하며 갈리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짙은 편이다. 그렇기에 셀타 팬들은 셀타가 진정하게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구단이라 자부한다. 동시에 셀타 팬들은 데포르티보를 갈리시아 축구계에서 지워내고 싶어한다. 오직 셀타 자신만이 갈리시아라는 정체성을 대표하길 원하는 것.

셀타의 홈 유니폼은 전통적으로 하늘색인데 하늘색은 갈리시아를 상징하는 색이다. 최근 데포르티보가 원정 유니폼을 갈리시아기의 모양을 본따서 디자인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셀타 팬들은 '터키놈들이 갈리시안 코스프레하네.'라며 대차게 까는 중이다.[19]

셀타 응원가 중에는 '스페인에 데포르티보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밖에 없다.'가 있을 정도. 한편 데포르티보 팬들은 '데포르티보는 6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셀타는 타이틀 하나도 없는 근본 없는 클럽이다.'라며 깐다.


8.4. 막상막하가 지속되는 추세[편집]


무명 클럽인 시절엔 서로 치고 박는 양상이었으나 두 클럽의 간격이 벌어진 것은 90년대 이후부터다. 셀타는 90년대 들어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어디까지나 유럽 대항전 진출이 목표인 다크 호스에 불과했다. 반면 데포르티보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꾸준히 거쳐가며 리그 우승을 다투는 클럽으로 변모했기 때문.[20]

그로인해 셀타는 거의 25년이란 세월을 데포르티보에게 얻어터지며 살게 된다. 이 시기에 근소하게 우세했던 역대 전적도 따라잡히게 된다.

데포르티보는 셀타를 두들겨 패는 동안 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모든 부분에서 셀타를 압도하게 된다. 한편 셀타는 황금기를 맞이했음에도 트로피를 단 1개도 얻지 못했고 03/04 시즌과 06/07 시즌 2번이나 강등을 당했다.

더군다나 03/04 시즌 데포르티보는 셀타의 홈인 발라이도스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셀타의 강등을 부추겼다. 11/12 시즌 셀타는 또 다시 홈에서 2:3로 패했다. 근데 이 경기가 보통 경기가 아니었기에 셀타 팬들에겐 크나큰 치욕으로 남아있다. 일단 94분 극장골로 역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데포르티보의 2부 리그 우승 & 승격 확정을 홈에서 지켜봐야했기 때문.

이런 이유로 데포르티보 팬들이 셀타를 혐오하는 정도가 10이라면 셀타 팬들이 데포르티보를 혐오하는 정도는 10 혹은 훨씬 이상이라 보면 될 듯. 유독 셀타 팬들이 더 격하게 반응한다.

최근 들어선 셀타가 더비를 승리를 장식하고 있다. 연이어 좋은 감독 선임, 알짜배기 선수 영입, 적절히 터지는 유스 등등 셀타 보드진이 지난 10년 동안 공들인 결과가 나오고 있는 중이다.


8.5. 함께 노래하고, 싸우는 유일한 더비[편집]


지역색이 뚜렷한 스페인은 국가 외에도 각 지역별로 지역가가 있다. 경기 시작 전에 갈리시아 지역가를 함께 떼창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정말 하나가 된다. 그러나 지역가가 끝나면 하나고 뭐고 없고 욕설이 난무하는 등 완전 남남이 되는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 갈리시아 지방 정부는 아빠는 데포르 팬, 아들은 셀타 팬 같은 테마로 훈훈한 더비 홍보 영상을 만들어 험악한 분위기 형성을 막고 있다.


9. 기적 메이커[편집]


말도 안되는 결과를 자주 연출한 구단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리아소르의 기적, 센테나리아소라 불리는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 리아소르 징크스가 있다.

센테나리아소(Centenariazo)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 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데포르티보는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순항을 거듭한 와중에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진출. 당연히 언론에서는 두 클럽의 트레블 가능성을 제기했던 상황이었다.

2002년은 코파 델 레이가 시작한 지 100년이 딱 100년이 되던 해였다. 스페인 축구 협회는 코파 델 레이 100주년을 기념해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은 스페인 국왕이 머물고 있는 마드리드에서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결승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레알 마드리드의 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선정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스페인 축구 협회는 코파 델 레이 결승은 제3의 경기장에서 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본인들이 명시했지만 이를 대놓고 어긴 것. 굳이 마드리드에서 열려야했다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 구장인 비센테 칼데론에서 열려야 공정했다.

논란에 쐐기를 박았던 사건은 바로 결승 날짜였다. 보통 코파 델 레이는 시즌이 끝난 후나 4월 정도에 치러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뜬금없이 3월 6일로 앞당겨졌다.

말이 코파 델 레이 100주년이지 사실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계획된 쇼였다. 2002년은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 100주년이기도 했고 3월 6일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일이었다.

다시 말해 2002년 3월 6일은 레알 마드리드가 창단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을 성대한 홈 파티로 장식하는 동시에 자신이 추진한 갈락티코 정책의 성공을 전세계에 알리기 원했던 것. 말도 안되는 상황에 여러 스페인 구단들이 스페인 축구 협회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스페인 축구 협회는 여론을 무시한채 결승을 강행했다.

강팀이 약팀 에이스를 빼내오는 것이야 축구 시장의 원리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명백히 원칙과 규정을 무시한 결승전이었다. 과연 상대가 바르셀로나였다면 강행할 수 있었을까?

2002년 3월 6일 저녁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국왕 부부를 비롯해 전세계 축구 귀빈들이 자리했다. 경기장 외부부터 내부의 사소한 인테리어 하나까지,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을 자축하는 것처럼 꾸며놨었다. 트로피 역시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 그리고 10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에 맞춰져 있었던 상황. 그러나 90분이 지난 후 스페인 국왕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은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페르난도 이에로가 아닌 데포르티보의 주장 프란 곤살레스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 역사에 찬란하게 이름을 남기고자 했지만 클럽 역사에 상처만 남겼을 뿐, 데포르티보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세기의 망신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스페인에선 AC 밀란에게 4:0 대승을 거둔 리아소르의 기적 보다도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을 더 높게 평가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느 다른 코파 델 레이 결승과는 달리 워낙 상징적이었고 역사라곤 1도 없던 구단이 스페인 최고 구단을 꺾는, 특히나 막대한 외부 자본이 투입되지 않고 오로지 구단 운영진의 열정, 선수들의 간절함 그리고 팬들의 성원이 아우러져 이룩한 성공의 정점이었기 때문이다.

리아소르 징크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레알 마드리드는 데포르티보의 홈 구장 리아소르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6무 12패. 흥미로운 점은 데포르티보가 몰락한 이후인 04/05 시즌부터 08/09 시즌까지 매번 이제는 징크스가 깨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되려 연패를 당한 것. 당연히 1992년부터 2009년까지 리그, 컵 통틀어서 상대 전적도 데포르티보가 앞선다. 데포르티보는 1995 수페르 코파, 2002 코파 델 레이 결승, 04/05 시즌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있기 때문. 괜히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라이벌이라면 데포르티보는 영원한 천적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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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두 팀 간의 로컬 더비 라이벌전[3] 갈리시아어로는 아 코루냐[4] 데포르티보 유스 출신으로 데포르티보에서 선수 및 감독 생활을 한 구단의 레전드[5] 히바우두는 렌도이로가 직접 지켜보고 영입한 선수였다. 히바우두가 영입될 당시 바르셀로나는 지오반니를 영입했는데 렌도이로는 히바우두가 지오반니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라며 극찬했다. 재밌게도 지오반니는 바르셀로나에서 일찌감치 방출된 후 변방 리그를 전전했던 반면 히바우두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해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니 렌도이로 입장에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 사건 이후 렌도이로는 절대 핵심 선수를 바르셀로나로 팔지 않았다. 알베르트 루케나 필리페 루이스가 좋은 예[6] 우승 당시 승점이 69점에 불과했는데, 이 시즌 우승팀과 챔스권(4위 레알 사라고사, 순위상으로는 챔피언스 리그 예선에 진출해야 했으나 리그 5위 레알 마드리드가 챔스를 우승해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챔스에 진출하는 바람에 UEFA컵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의 승점차가 6점, 챔스권과 강등권(18위 레알 베티스)의 승점 차가 21점밖에 나지 않았고 19위, 20위 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10승을 달성했을 정도로 리그 전력이 평준화되어 있었다.[7] 이쪽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브렌트포드가 45라운드에 패하면서 리그 우승과 승격까지 확정지었다.[8] 데포르티보에서만 거의 10년을 있어온,즉 데포르티보가 1부리그였을때부터 있어온 데포르티보의 원클럽맨, 거의 리빙 레전드 수준의 선수이다. [9] 스페인 내전으로 3년 제외.[10] 93/94 시즌 데포르티보는 바르셀로나와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데포르티보는 1위, 바르셀로나는 당시 2위였다. 바르셀로나는 무조건 이긴 후 데포르티보가 무승부 내지 패배하길 바래야만 했던 상황. 데포르티보는 발렌시아를 상대로 예상 외로 고전을 거듭했다. 패색이 짙어지는 가운데 경기 종료 직전 0:0 상황에서 베베투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우승이 걸린 최종 라운드, 그것도 경기 종료 직전에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왔던 것. 원래 페널티 전담 키커였던 베베투는 부담감 때문인지 다른 선수에게 양보했고 결국 쥬키치가 키커로 나서게 됐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나 싶었으나 듀키치의 킥은 너무나 정직했고 결국 데포르티보는 우승을 코앞에서 놓쳤다. 지금도 쥬키치는 스페인에서 페널티킥하면 나쁜 의미로 많이 언급되는 선수다.[11] 정확히는 "마켈렐레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단, 마우로 실바를 제외한다면 말이다."라는 식이었다.[12] 물론 마켈렐레역시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역대 최고를 논하는 수준이다. 마우로 실바와의 비교는 마우로 실바의 활약이 대단한만큼 그를 향한 데포르티보 팬들의 애정이 묻어있는 찬사로 봐야한다.[13] 절대 과장이 아닌 것이 레알 마드리드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미첼 살가도는 공격적인 능력은 뛰어났으나 수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반면에 로메로와 마누엘 파블로는 적절한 공격적 재능에 수비력까지 갖춘 자원들이었다. 더해 데포르티보는 99/00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홈에서 5:2 대승을 거둘 정도로 공격적인 팀이었고 어느 팀보다 풀백의 오버래핑을 잘 활용했던 팀이기도 했다.[14] 데포르티보는 스페인 구단들 중 최초로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승리를 거둔 팀으로 기록된 것. 당시 스페인에선 상당한 화제거리였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도 못했던 일을 언더독 데포르티보가 해냈기 때문. 더군다나 당시 레알 마드리드-데포르티보-바르셀로나 사이의 라이벌 의식도 컸던 상황이란 것을 감안해야한다. 아직까지도 바르셀로나는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승리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도 13/14 시즌에 가서야 징크스를 깨트렸다.[15] 전반전 스코어는 0:3이었다.[16] 잉글랜드는 최고의 스타가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것도 화가 나는데 하필 가해자가 아르헨티나 국적이라 분노는 두 배가 되었다.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은 물론 전쟁을 벌였을 정도니까. 잉글랜드 언론은 두셰르를 맹비난하는 기사를 하루가 다르게 내보냈고 두셰르도 여기다 대놓고 사과 안한다며 불을 지폈다. 일단 두셰르가 공을 먼저 건드렸으나 누가 봐도 거친 태클이긴 했다. 이 사건 때문인지 몰라도 베컴은 라 리가 진출 후 유독 아르헨티나 출신들과 다툼이 잦았다. 리오넬 스칼로니, 파블로 아이마르 등등[17] 2009년 2월 AS는 내국인 베스트 11, 외국인 베스트 11을 선정했고 외국인 베스트 11에 두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오른쪽 라인은 메시와 알베스.[18] 러시아어로 황제라는 뜻. 모스토보이는 당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중 하나였고 당시 그의 위상을 아주 잘 나타낸 표현이라 할 수 있다.[19] 셀타 팬들은 데포르티보 팬들을 터키놈 or 터키년이라 깐다. 데포르티보 팬들은 셀타 팬들을 포르투갈놈 or 포르투갈년이라 깐다.[20] 셀타에서 오랜 시간 활약하면서 이름을 날린 선수로는 알렉산데르 모스토보이, 발레리 카르핀, 이아고 아스파스 외엔 찾기 힘들다. 반면 데포르티보는 마우로 실바, 베베투, 미로슬라프 듀키치같은 개국공신들만 나열해도 셀타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이후 자우밍야, 로이 마카이, 빅토르 산체스, 디에고 트리스탄, 조안 카프데빌라, 마누엘 파블로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등등 최근 아스파스가 아무리 잘한다지만 이들에겐 어림도 없는 클래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