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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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도덕과 윤리의 차이
3. 도덕에 관한 연구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Ethics, Morals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의 총체. 외적 강제력을 갖는 법률과 달리 각자의 내면적 원리로서 작용하며, 또 종교와 달리 초월자와의 관계가 아닌 인간 상호 관계를 규정한다. 유의어로는 윤리가 있다.

동양에서 도(道)는 '길'이란 의미에서 점차 확대되어, 노자에 이르러서는 근본원칙, 깨달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갑골문에서 도(道)는 '인도할 도(導)로 '우두머리가 무리를 이끄는 모양새'를 말하며, 덕(德)은 '마음이 가리키는 바를 천천히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도덕이라는 단어 자체는 메이지유신 때 일본에서 영단어 'Moral'을 한자어 '道德'으로 번역하면서 만들어졌다. 즉 오늘날의 '도덕'은 노자에서 말하는 도덕경의 도덕 개념과 전혀 다르며, 오히려 그 단어의 뿌리는 서양의 단어 'Moral'에 있다.

서양의 경우, 그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Arete(탁월함)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Ἠθικὰ Νικομάχεια)』에서 인간은 반복되는 실천, 즉 덕(Arete)을 통해 선함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즉, 덕이란 우리를 선하게 만드는 습관인 것이다. 이후 키케로는 그리스어 Ἠθικὰ를, '성격, 관습, 예절'을 뜻하는 라틴어 mos(소유격 moris)로 번역하였다. mos는 moral로 변하면서 지금의 도덕을 말하는 단어가 되었다. 즉, 오늘날 Moral 이란 단어는, 그 뜻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나왔고, 그 단어의 글자 자체는 키케로에서 비롯되었다.

제임스 레이첼스의 저서 《도덕 철학의 기초》에 따르면, 도덕의 최소 개념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영향받을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똑같이 고려하면서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노력, 즉 그렇게 하는 최상의 이유가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용함의 관점에서 도덕을 설명하고 있는 이 개념은 모든 도덕 이론들이 합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이를 깨닫고 있으며 대부분의 이론들이 이를 어떤 형태로든 통합하고 있다고 저자는 서술한다.


2. 도덕과 윤리의 차이[편집]


도덕(道德)은 윤리(倫理)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하는데, 도덕이 '자기완성을 위한 규범'이라면, 윤리는 '인간관계에서 합당하게 행동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도덕이 개인의 내면에 관한 학문이라면, 윤리는 올바른 인간관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콜버그의 도덕발달단계론이라든가.

도덕은 규칙과도 다르다. 규칙은 단순히 정한 기준이지만 도덕은 그것이 옳다는 게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도 행동을 보면 이 차이를 알고 있음이 보이는데,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도덕적 명령과 단순히 규칙을 지키라는 명령을 구분할 줄 안다.[1]

예를 들어,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철저히 도덕적인 규범이다. 이 도덕적 규범에 매우 충실한 사람은 그러므로 일체의 살인 행위를 피하기 위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냥 화가 나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군인이 전시에 적군을 사살하는 것, 혹은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다 빨리 죽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죽여주는 것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때에 따라서 오히려 누군가를 죽이는 쪽이 올바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처럼 도덕은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적 규범이고, 윤리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개인이 잘 알고 실천하려 노력하는가 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두 단어(morality, ethics)의 차이가 약간 더 명확한 서양에서는 “The ethical man knows what is right; the moral man does what is right.”(작자 미상)라는 격언이 존재한다. 해석하자면 윤리적인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도덕적인 사람은 옳은 것을 행한다는 것.

반면 미셸 푸코가 분석한 윤리와 도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와 반대이다. 그에 따르면, 윤리라는 단어는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스스로의 좋음(agathos)을 의미하는 것이며, 도덕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해 정해지는 구조로 공동체의 에토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윤리가 개인적인 덕이라면 도덕은 사회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인간이 어떤 경우에도 타인을 죽이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인간은 사회의 요구에 의해 타인을 죽일 수 있다. 이를테면 아이히만은 윤리적인 인간일 수는 없지만 도덕적인 인간일 수는 있다.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당시 나치독일에 만연한 풍조였으며, '유태인을 죽이지 말라'라는 명령이 더는 도덕 안에 자리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도덕에 관한 연구[편집]


영미권의 교육학계에서 도덕교육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그중 피아제칸트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심리학자 로런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가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보면 콜버그 이전의 도덕교육 이론의 대척점에 콜버그가 있고, 콜버그 이후의 이론의 대척점에도 항상 콜버그가 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

콜버그는 기존 스키너-반두라로 이어지는 도덕사회화적 관점, 즉 사회의 기존하는 도덕규범이나 예절, 그 사회의 이상(理想)에 일치하도록 개인을 도덕적으로 사회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 교육의 방법을 부정하고, 개인이 가진 도덕적 사고력과 판단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각 개인이 자율적인 도덕적 행위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발달론을 주창하며 사람들이 도덕성을 획득하는 3수준 6단계를 제시하였다. 이 단계를 제시하면서 예를 든 것이 유명한 하인츠 딜레마다. 콜버그의 이러한 단계 분류는 여러가지 이유로(주로 도덕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켰다거나, 정의(正義) 만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다거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도덕에 대한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험결과 대부분은 3, 4단계에 머무른다. 일부가 5단계와 6단계에 머무르는데, 6단계의 사람은 실제로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후기 콜버그는 6단계를 없앴다.

이렇게 도덕적 추론 능력을 길러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2]. 따라서 콜버그의 이런 인지발달이론에 반발하는 여러 학자들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으로는 인지 중심에 반발하고 정의(情意)를 내세운 길리건 & 나딩스의 배려 윤리, 도덕적 상황을 인지적 딜레마로 여긴 콜버그에 반발하여 위험이나 곤경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타인이 개입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으로 인식한 호프만의 공감이론 등이 있다.


그래서 요즘 미국,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여 교육과정을 뜯어고치는 한국의 도덕 교육은 인지, 정의, 행동의 세 영역 간의 조화와 균형에 초점을 맞춘 토마스 리코나 (Thomas Lickona)의 통합적 인격 교육론을 기반으로 한다. 리코나가 말하는 인격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훌륭한 인격에 대한 견해에 기반하였기에 어찌보면 돌고 돌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덕(德) 윤리로 돌아온(...)상황이지만 과거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 인격 교육론이 학생의 자율성이 낮은 주입식 접근이었다면, 리코나의 통합적 인격 교육론은 존중과 책임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학생의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등 세부적인 면에서 좀 더 진보한 면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 도덕 교과서가 저 3영역을 동시에 가르쳐도 모자랄 망정 각기 다른 차시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가르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3]

콜버그의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하인츠 딜레마 항목 참고.

최근 도덕 발달을 심리학적 방법을 사용해 연구한 결과, 도덕성과 행복 간의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도덕적 가치를 내 자신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는 도덕 정체성의 강도가 추후 삶의 의미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어떤 인물의 도덕적 성향이 그 인물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평가하는 데 유의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한 연구도 있다. 뿐만 아니라, 긍정심리학적 요인이 도덕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연구도 있다. 이 연구는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즉 도덕적 성장 마인드셋(moral growth mindset)을 가진 사람에게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보다 더 강한 봉사 활동 증가 경향을 발견하였다.

단 위와 같은 결과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는 될 수 있어도, 정말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개인이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만연한 타인의 불행을 잠시라도 외면해야 되는데, 이것은 정말 도덕적인 태도인가? 또 인간은 누구든 태어나면 고통의 위험이 있고 결국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의 행복과 사회 이익을 위해 새로운 인간을 출산하는 것은 정말 도덕적인 행동인가? 도덕적인 사람일수록 더 가혹한 도덕적 잣대가 요구된다는 도덕주의의 역설은 개인이 도덕적일수록 행복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도덕판 식자우환인 셈.

4. 교과 관련 정보[편집]


도덕(교과) 문서로.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16:02:54에 나무위키 도덕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Tisak, M. S. (1986). Children's conceptions of parental authority. Child Development, 166-176.[2]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심리학적으로 도덕성에 대해 연구해본 결과 도덕지식과 도덕행동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만 해도 콜버그식 인지발달교육은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데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연령 증가와 도덕행동 간의 상관관계마저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이제 인지교육에만 치중하는 건 좀 무리수에 가깝다.[3] 초등도덕교과 지도서 총론에 의하면 도덕심리학적 고려와 현실적 고려를 감안한 구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