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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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영재
獨孤永宰 | Dokgo Yeong-jae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31301000858500072161.jpg

본명
전영재 (全永宰)
출생
1952년 12월 13일 (71세)[1]
강원도 강릉군 (現 강릉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정선 전씨
학력
배명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가족
아버지 독고성, 어머니, 아들 독고준, 딸 전지은
종교
불교
소속사
아이티이엠

1. 개요
2. 상세
3. 여담
4. 출연 작품
4.1. 드라마
4.2. 영화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2. 상세[편집]


생년월일은 1952년 12월 13일 이며, 아버지는 악역 전문 배우였던 독고성[2]. 독고영재는 이예춘의 아들 이덕화와 함께 영화배우 아들 라인의 큰 형으로, 황해의 아들 전영록, 조항의 아들 조형기,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등 수많은 5060시대 인기 영화배우 아들들과 어릴 때부터 모임도 하며 알고 지냈다. 이들 독고영재, 이덕화, 전영록, 조형기, 최민수, 박준규, 허준호 등은 죄다 오토바이 매니아들이기도 했는데, 서로 오토바이를 돌려 타는 사이였다. 그리고 이덕화가 전영록의 오토바이를 빌려탔다가 대형사고로 목숨을 잃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천만다행으로 수술이 성공해서 생존하기도 했다.

본명은 전영재. 1973년 영화 '빗방울'로 데뷔해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었지만, 무명 생활이 오래가면서 1980~90년대 에로영화B급 영화에 많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3]

40살이 넘은 중년 이후 점잖은 중년신사 이미지를 얻었지만 20대, 30대의 무명시절 20년 동안에는 열등감도 심했고, 성격도 거칠어져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을 못하고 있는 기간[4]에는 반건달(후대의 폭주족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도 치고 살았다고 한다)처럼 행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세바퀴에 조형기와 함께 출연했을 때, 조형기가 이를 폭로했는데 영화배우 아들 라인 모임에서 가죽옷에 반다나 두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껌까지 씹으면서 어느 정도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을 괜찮게 하던 동생들 앞에서 껄렁거리며 한명씩 앞에 가서 "얌마, 너 요새 잘나간다며? 너 어디(영화나 드라마 이름) 나오더라. 야 너 좋겠다"[5]라고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탤런트였던 조형기 본인에게도 했다고 하는데,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가히 그냥 불량배였다고. 다들 어릴 때부터 보던 큰형님이라 시비에 대응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폭로에 당황한 독고영재가 내가 젊었을 때 힘들어서 잠깐 좀 그런 걸 갖고 너는 그런 걸 방송에서 얘기하고 그러느냐고 성을 냈는데, 조형기가 당황하지 않고 "젊기는, 형님 그때 마흔이었수! 불혹의 나이!"[6]라고 받아치자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다른 출연진들도 당시 나이를 듣자 빵 터지면서도 "40살이나 먹고 그러고 다니셨다고요?"라고 당황했다.

그 후 최민수의 추천[7]으로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게 된다. 당시 매니저 배병수가 최민수 주연의 조건으로 독고영재와 허준호를 끼워팔기 한 것이며 셋 다 배병수 사단의 일원이었다. 결국 드라마는 대히트했고, 독고영재와 허준호도 인기있는 배우가 되었으니 서로가 윈윈한 셈이다. 참고로 당시 엄마의 바다 출연진은 최민수, 김혜자, 고현정, 고소영, 독고영재, 허준호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었다. 특히 당시 신인인 고소영은 첫데뷔작 KBS 내일은 사랑에서 중반 하차할 만큼 연기력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 작품으로 톱스타로 등극했다.[8][9], 이후 중년스타로 떠오르며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에서 무려 주인공 박정희 역할을 맡는[10] 등 생전 못해본 주연급 배우가 되었고, 이후 계속 영화에서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활동하였다. 젊을 때 조단역을 전전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달라진다. 아직도 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 선구안은 별로라서 인지도가 올라가고서도 싸구려 영화에 꽤 많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주글래 살래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역과 키드캅에서 도둑놈 두목 역. 둘 다 작품성이 처참했고 흥행도 쫄딱 망했다. 오히려 무명시절에 비중 낮은 단역으로 나온 작품 중에는 괜찮은 작품들이 있다. 근데 본인이 별로 안 나온다.


3. 여담[편집]



  •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묘한데 이미 사랑이 뭐길래로 스타덤에 올라있던 최민수엄마의 바다에 캐스팅 되었는데 이 때 최민수가 캐스팅 조건으로 내세운 게 바로 독고영재와 허준호도 같이 캐스팅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바다 제작진은 이에 응해서 3명을 다 캐스팅했는데 대본을 황당하게 짰다. 허준호가 독고영재를 구타하는 씬이 꽤 많이 들어있는 게 그것이다.

  • 군대에서 만난 이계인과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19년 10월 이계인이 혼자 사는 집에서 전신 마비 증상으로 쓰러진 것을 독고영재가 발견하여 목숨을 구한 인연이 있다. 이계인도 예능 자주 나오던 시절에 이덕화, 독고영재와 셋이서 술마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아버지 때부터 독고 씨를 예명으로 쓰고 있고 이게 유명해져서 독고 문중에서 행사에 초청하는 일이 아직도 있단다. 아버지인 독고성은 직접 참석한 적이 많았지만 독고영재는 그것만은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참석하지 않는다고.
  • 젊을 때부터 타던 오토바이를 아직까지 탄다. 집에 오토바이 헬멧만 6~70개가 진열되어 있으며, 아직도 바이크동호회 회원들과 라이딩이나 바이크캠핑을 나선다고 한다.

  • 무명생활이 길었다가 1992년 영화 하얀전쟁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20년 무명의 설움을 겪었다. 아들이 무명생활을 오래 해서 아버지인 독고성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독고영재가 남우조연상 수상 당시 "이덕화, 최민수, 전영록만 나오면 TV채널을 슬그머니 다른 데로 돌리시던 분이 계시다. 저희 아버님이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한 적이 있다. 상술된 꼬장 이야기도 열등감이 심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아들이 스타가 되는 걸 못 보고 사망한 박노식(박준규 부친)이나 허장강(허준호 부친)보다는 낫다.

  • 절친인 이덕화와는 해괴한 방향으로 전성기 기간이 비슷하다. 독고영재는 무명이 길어서 전성기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인데 이덕화는 청춘스타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을뻔했다가 되찾은 사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남궁진과 맞붙어서 개표율 90%까지도 누가 당선될 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초 혼전 양상을 보이다가 낙선 후 잠적한 사건[11]으로 실질적인 전성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독고영재는 숫제 대기만성인데 이덕화는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해서 둘의 전성기가 비슷했다.

  • 주글래 살래를 같이 작업한 김두영 감독과 '9시 뉴스'를 작업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무산되었다.

  • 조폭 조양은과도 친분이 있으며 조양은 주연의 싸구려 조폭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나왔다. 젊은 시절 뒷골목 조직 생활을 잠시 했다는 것을 TV 토크쇼에서 완곡하게 고백했다. 당시 본인이 설명한 당시 생활상을 따지고 보면, 정확히 말해 조폭 쪽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고 행패를 부리는 폭주족 조직이었다. 현대 폭주족의 원조.

  • 정치적으론 보수 성향이며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영웅시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을 맡았다. 박정희 전담 배우로는 이창환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배우다.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에 앞장섰다.[12]

  •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이지만, 1994년 동료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이자 재야 운동가 문익환 목사가 작고했을 때, 가장 먼저 조문을 왔다.

  • 광우병 사태 당시 온갖 선동이 판치는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인 발언을 한 것이 시간이 지나 재조명받기도 했다.

  • 파일:독고영재발언.jpg

  • 2012년 11월엔 트위터에서 독고영재의 이름으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문재인 당시 후보를 거친 욕설로 비방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는데, 자신은 SNS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트위터는 사칭으로 결론났다. 애당초 환갑에 가까운 중견배우가 난데없이 SNS를, 그것도 트위터[13] 계정을 만들고 정치인을 욕한다는 거 자체가 초월적 발상이다. 말 그대로 고소각.

  • 진중한 이미지지만 의외로 예능에서의 입담이 매우 좋다. 그동안 많은 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나와서 많은 활약을 보여줬다. 불후의 명곡 2에 나와서 "3분 동안 관객을 겁 준 거야" "흙 먹는 거야" 등 드립을 쳤다.

  • 나이들고는 탈모때문에 그 이미지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친한 배우들 사이에서 동안으로 유명[14]했다고 하는데, 무명시절 7살 어린 임예진이 그를 촬영장에서 처음보고 자신과 같거나 어린 나이인 줄 알고 "영재씨 안녕?"하면서 말을 걸어서 어이가 없던 나머지 말을 안하다가 임예진이 계속 말을 걸자 "으흠.. 나 이덕화랑 친구다."라고 말을 하니 임예진이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일부러 임예진과 어릴 때부터 연기한 이덕화의 이름을 댄 건데, 임예진은 심지어 이덕화랑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에 "아저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에는 안 믿었다고 하는데, 독고영재가 진지하게 화난 표정으로 노려봤다[15]고 한다. 동안도 있고, 임예진은 중학생 때 영화배우로 데뷔하자마자 유명세를 얻었을만큼 커리어가 긴 반면 독고영재는 무명시절이 길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자기보다 후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선후배가 절대적이라 (무조건 서열대로 하는 개그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후배가 약간 나이가 많으면 어린 선배가 그냥 편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렇다해도 7살 차이한테는 옛날에도 그렇게 안했으니 임예진은 혹시 본인보다 많을 가능성을 막연히 생각해도 한두살 정도라 봤을 것이다. 독고영재는 나이도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데뷔도 20대 초반이라서 연극데뷔가 1971년, 영화 데뷔가 1973년이고, 임예진이 중학생때 데뷔했음에도 1974년 데뷔라 경력면에서도 선배가 맞다. 물론 주인공만 하던 임예진 입장에서야 영화 조연도 자주 못하던 단역배우 선배를 기억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 두번째 부인과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독고영재 본인의 말에 따르면 16세 연하라고 한다. 두번째 결혼은 40대에 한 것이고, 20대에 결혼했던 첫번째 부인과는 젊을 때 이혼했다. 매스컴에 알려진 자녀들도 첫번째 부인의 자녀이다.

  • 30대 시절에 이혼 후 사업이 망해서 빚을 전부 갚고 나니 수중에 30만원이 전부인 때도 있었다고 한다. 집도 날렸던지라 부모님 집에 아이들을 맡기기도 했었는데,[16] 딸이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만 얼굴을 보니까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며칠동안 차에서 재운적도 있었다고 한다.

4. 출연 작품[편집]



4.1. 드라마[편집]




4.2. 영화[편집]



[1] 1953년생으로 알려졌지만, 같은 연예인 2세 박준규가 2006년 당시 상상플러스에서 독고영재가 실제 나이는 이덕화와 같은 1952년 생 동갑이라고 밝힌 바가 있다. 즉, 박준규 본인과 띠동갑. 1952년생 이계인과도 50년간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60년대 이전에는 주민등록이 1년 늦은 케이스가 흔했다.[2] 악역이긴 했어도 의외로 인기가 많았고 굉장히 출연을 많이 하던 대스타였다. 지금으로 치면 마동석이나 정만식보다 인기나 출연 비중이 한단계 위일 정도의 수준. 즉 악역이자 주연. 아들 독고준까지 3대가 똑같이 예명을 독고 씨로 써서 성이 독고인 줄 아는 이들도 있지만 프로필에도 있듯 본명은 전씨다.[3] 하얀전쟁에서는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수상과 더불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4] 사실 그 시기에도 찾아보면 출연 작품 수는 적지 않으나, 알다시피 비중이 높은 조연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으로 조단역은 촬영분량이 적어 여러 작품에 나왔다고 해도 촬영을 한 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하루이틀만 촬영하면 한 영화의 출연이 끝나기도 한다. 비중 높은 조연이라도 자주 했으면 괜찮으나, 드문드문 했을 뿐이고 상당 기간 동안은 비중 낮은 역할만 해서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거 없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5] 조형기의 표현으로는 동생들의 가슴을 손등으로 살짝 치며 말했다고 한다.[6] 독고영재는 실제로 1952년생이기에 이때의 일은 1991년 상반기를 말한 것인데, 문제는 이 시기 직후인 1991년 8월에 조형기 본인은 교통사고 후 시체유기라는 중범죄를 저질러 경찰에 체포되고 구속되어 감옥에 갔었다는 것이다. 사람 죽이는 중범죄보다는 그냥 후배들에게 말로 시비걸고 모임 깽판치는 게 낫지 않나요? 독고영재의 프로필 생일이 가짜라는 명확한 정황 증거이기도 한데, 진짜 1953년생이라면 이 일이 1992년이어야 하지만 이때는 조형기가 계속 감옥에 있어서(징역 5년이 나왔지만 1993년초 복역 1년반만에 가석방으로 출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없고, 독고영재의 배우 인생 자체도 1992년부터 술술 풀렸다. 1992년은 영화, 1993년부터는 드라마까지 풀리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 주조연으로 독고영재를 적극 추천한 최민수의 영향(당시 부친 최무룡을 뛰어넘을 대배우감으로 주목받고 있었고, 독고영재와 함께 주연을 2작품이나 했다)이 컸다고 한다. 아무튼 조형기 본인이 감옥가기 직전에 있던 일을 방송에서 말한 것도 대단하다[7] 사실, 최민수와 같이 출연한 작품은 영화를 중심으로 꽤 많다. 엄마의 바다 이전에는 남부군, 결혼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으며, 엄마의 바다 이후에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테러리스트, 남자 이야기에 같이 출연했다.[8] 지금은 훌륭한 연기자지만, 당시엔 첫 출연하는 드라마여서 그런지 연기가 차마 좋다고는 말 못할 수준이었다. 일명 국어책 읽기의 진수.[9] 독고영재 본인은 처음엔 ‘영화배우가 TV에 나가면 욕먹는다’고 거절했지만, 드라마 국장이 ‘우리도 영화배우를 출연시켜 덕 본 적이 없다’고 말해 오기가 생겨서 출연했다고 회자했다.[10] 심지어 부인 육영수 역할이 독고영재 청년기에는 근처에도 못 가던 천하의 대스타 고두심이었으니, 독고영재에겐 가히 인생역전. 사실 두 배우는 소위 동년배로 나이가 비슷하다 못해 고두심이 1살 많지만, 실제 박정희는 육영수보다 8살이나 많아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였고, 동년배 부부가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 독고영재는 50대 후반~60대 초반 역할을 위해 실제 나이보다 많이 나이들어 보이게 분장을 하고, 고두심은 당시의 50대 초반 육영수보다는 어렸지만 50대 느낌을 살리지 않고 동년배 독고영재보다 어려 보이도록 실제 나이에 맞게 밝은 톤의 화장을 했다.[11] 본인이 교통사고로 중환자가 되고 장애를 얻은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퇴원하기도 전에 이미 병을 앓고 있던 부친까지 사망했던 그때만큼 선거 이후의 정신충격이 생각보다 더 커서, 한동안 우울증이 심했다고 한다. 아예 섬에 들어가서 3개월을 살면서 낚시를 하고 살았는데, 낚시하다가도 너무 괴로워서 바다에 뛰어들어 빠져죽고 싶다는 충동도 꽤 느껴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성공한 배우가 되고도 중증 우울증을 두번(교통사고 후 부친 사망, 선거 낙선)이나 앓았다.[12] 보통 이진수, 이창환, 독고영재를 박정희 전문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13] 12년 당시만 해도 국내 유저수 극히 적고 젊은층에서도 잘 이용하지 않던 SNS였다. 그래도 한국 청년층은 0809시즌부터 트위터를 쓰던 시기여서 12년도는 중장년층도 트위터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들어보기는 했던 시기이다.[14] 최민수와 같이 영화 주연을 했을때는 동갑 친구로도 나왔다. 최민수보다 10살이나 형이라 최민수는 어릴때부터 독고영재를 형도 아니고 영재 형님이라고만 부른 사이였는데, 동갑 역할을 했을 정도니.[15] 당시 눈빛이 너무 사나워서 임예진 본인 표현으로는 겁이 나서 눈을 피했다고 한다.[16] 당시 독고영재는 부모님에게 사업이 잘 된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물론 금방 들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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