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프 룬드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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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프 룬드그렌
Dolph Lundgren


파일:Dolph Lundgren by Manfred Baumann.jpg

본명
한스 돌프 룬드그렌
Hans Dolph Lundgren
출생
1957년 11월 3일[1] (66세)
스웨덴 스톡홀름 스퐁가
국적
[[스웨덴|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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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93.7cm[2]
직업
배우, 영화 감독
배우자
페리 몸 (1991년–1992년)
아네테 크비베르크 (1994년–2011년)
엠마 크로크덜 (2020년–)
자녀
이다 룬드그렌 (1996년생)
그레타 룬드그렌 (2001년생)
데뷔
1985년 영화 <007 뷰 투 어 킬>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초기 이력
3. 배우 경력
4. 개인사
5. 출연작
5.1. 영화
6. 여담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2.bp.blogspot.com/dolph.jpg

영화 《마스터 돌프》에서 히맨 역을 맡았던 리즈 시절

스웨덴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한때 유명했던 액션 영화 전문 배우.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B급 액션영화계의 BIG 3이었다.

제2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꿈꾸는 남자였으나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실제로도 유치원에 간 사나이 시리즈에서 주연을 1편은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2편은 돌프 룬드그랜이 각각 담당했다. 다만 2편은 1편이 나오고 무려 25년이나 지난 뒤인 2016년에 극장 개봉없이 DVD 시장으로 직행한 저예산 영화였기에 대중적 인지도는 없다.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를 정도 하지만 슈워제네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인지도는 올렸다.


2. 초기 이력[편집]


본명은 한스 룬드그렌. 어렸을 때 그다지 좋지 못한 환경[3]에서 자라났으며, 이런 나쁜 환경을 잊기 위해 유도와 극진공수도를 배운 무골이다. 1980년과 1981년에 각각 전 유럽 챔피언에 올랐고 1982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챔피언이었다. 1979년에는 스웨덴의 극진공수도 대표로 세계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으며, 이런 경력은 실제로 무도가로서도 수준급의 실력을 가졌음을 입증한다. 현재는 극진공수 3단으로, 그 밖에도 킥복싱과 아마추어 복싱 커리어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갔는데, 무술 뿐만 아니라 공부도 꽤 열심히 했는지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고(IQ가 160이라고 한다) 워싱턴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여 1975년부터 1976년까지 1년간 화학공학을 공부하였다. 하지만 군복무 문제로 중도에 스웨덴으로 돌아와 해병대 특수부대에 입대해서 1년간 복무했다. 복무 후엔 고국에 돌아온 김에 스웨덴 최고 명문인 스웨덴 왕립 공대로 편입하여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에는 호주로 건너가서 시드니 대학교에서 화학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장학금을 받고 MIT 박사과정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그레이스 존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만 두게 됐다. 시드니에서 알바로 바운서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호주를 방문한 흑인 가수이자 배우인 그레이스 존스의 눈에 띈 것이었다. 룬드그렌은 존스의 보디가드로 고용되었다가 사귀었고 그레이스 존스와의 인연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어쨌든 마초-근육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엘리트 공대에서 석사까지 받은 문무를 겸비엄친아이다.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이 힘센 마초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 덕분에 익스펜더블 2에서는 저렇게 생겼어도 엘리트 출신에 화학공학 전공이라는 설정을 받는다. 물론 폭탄은 제조 실패로 불발나서 망신을 당한다 심지어는 외국어 실력도 뛰어나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4]까지 한다.[5]


3. 배우 경력[편집]


영화 커리어는 자신을 보디가드로 고용했던 그레이스 존스가 1985년 007 영화 <뷰 투어 킬>에 본드걸로 출연했을 때, 극중 고골 장군을 경호하는 KGB 경호원역으로 엑스트라 출연한 것으로 시작했다.[6] 본격적인 데뷔는 <록키 4>의 러시아 아마추어 권투 챔피언 이반 드라고 역으로 출연한 것이었다. 이때 자그마치 5000 대 1의 경쟁을 뚫었다고 한다. 드라고 역은 강철 같은 근육에 특별한 대사도 (필요)없이 중후한 액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드라고 역할로 인해 '소련제 냉혈 살인기계' 이미지가 너무 박혀서 비슷비슷한 역할만 오퍼가 들어와 한동안 고생했다. 가령 1988년에 개봉한 <레드 스콜피온>[7]에선 소련군 최정예 스페츠나츠 대원인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라첸코 중위 역을 맡았다.[8]마블 코믹스퍼니셔(국내개봉명 응징자)에서 냉혈 살인기계 타입의 안티히어로를 연기했다.

그러다 브랜든 리와 공동주연한 마크 L.레스터 감독의 <리틀 도쿄>(1992)로 인지도를 높였으며[9][10] 후속타로 장 클로드 반담과 함께 한 <유니버설 솔져>를 통해 액션 배우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해서, 인체개조를 통하여 슈퍼 솔져가 된 미치광이 싸이코패스 살인기계 앤드류 스코트 역으로 출연했다. 이후에 터미네이터 2 조감독이던 빅 암스트롱이 감독한 <조슈아 트리>라든지 여러 액션물에서도 다 냉혹한 인물로 나와버리고 만다. 비교적 연기력과 운동실력이 둘 다 있는 배우였으나, 결국 이렇게 비슷비슷한 영화에만 출연하는 것에 머물렀다.

물론 돌프 룬드그렌이 늘 안티 히어로 배역들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 '우주의 왕자 히맨'으로 알려진 'He-Man and the Masters of the Universe'의 실사판 영화인 Masters of the Universe[11]에서 전형적인 히어로 타입의 주연을 맡았다.



지금 보면 특수효과가 유치해보일지도 모르지만 1980년대 기준으로는 꽤 그럴듯한 수준이었으며, 특히 돌프 룬드그렌의 "히맨" 싱크로율은 상당한 수준이다. 영화 내용은 원작이 원작인만큼 저연령층 대상으로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평이나 흥행은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Nostalgia Critic이 리뷰했을 정도.[12]

제 2의 아놀드를 꿈꾸었으나 아놀드만큼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배역 스펙트럼이 아놀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놀드의 연기력도 사실 처음에는 룬드그렌보다 나을게 없었으나, 아놀드는 액션 전문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13] 연기력에 대한 의문을 받으면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코미디 가족 영화에 출연했다. 그래서 어느정도 액션전문 이미지를 지우면서 1990년대 초반에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게다가 아놀드는 미국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결혼도 미국 명문가[14]와 하는 등 여러모로 노력했다. 또한 아놀드는 본인이 연기력이 딸리는 것을 알고[15] 큰 연기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부각될 수 있는 캐릭터를 잘 골랐으며[16], 이와 반대로 본인의 상남자스러운 외모와 상반되게 찌질하거나 익살스러워서[17] 웃기는 캐릭터들도 연기해서 그 격차로 인한 코미디(쉽게 말해 갭모에)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아놀드하면 생각나는 캐릭터와 명대사는 한 두개가 아니며, 흥행작 뿐만 아니라 망한 영화에서도 명대사나 명장면 몇개는 남는다.[18]

반대로 룬드그렌은 본인의 이미지와 딱 맞는 이반 드라고로 첫 인상을 확실하게 남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후 커리어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들이나 명대사를 남기지 못했다. 위에 언급된 히맨이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이미지 구축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영화 및 캐릭터가 너무 유치했고 이에 반해 연기하는 본인은 너무 진지해 웃음 포인트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즉, 아놀드와 달리 매력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실패한게 가장 크다. 그래서 룬드그렌은 계속 비슷한 이미지를 요구하는 액션물에 출연했고, 30대까지는 그래도 메이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으나 40대 이후로는 B급 액션스타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연기력으로 까이는 일은 생각보다 별로 없는데, TV 시리즈 출연작을 보면 정극연기도 상당히 잘하는편이다. 2018년에는 아쿠아맨크리드 2 같은 메이저 영화에도 출연하여 연기경력 30여년만에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다시봤다는 평가를 받았고, 저음의 근사한 목소리로 인하여 성우로도 캐스팅을 많이 받고있다.

2021년에는 캐슬 폴스: 머니 게임으로 주인공 에릭슨 역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도 자기가 직적 연출했다.


4. 개인사[편집]


상술했듯이 배우시절 이전엔 자메이카의 여가수이자 모델, 배우인 그레이스 존스와 사귀는 사이였다. 젊은 시절 엄청난 근육질의 피지컬에 수려한 외모로 여성팬들의 여심도 울릴 정도였으나 정작 연애는 잼병인 무골이라 그레이스 존스에게 진심을 다해 구애했을때 그레이스 존스가 박장대소를 했다고 한다.[19] 그레이스 존스는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던 룬드그렌이 일이 잘 안풀려서 배우를 그만두고 프로복서가 되고자 했을 때 극구 반대하고 그가 배우가 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후 그레이스 존스가 모국인 자메이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위해 헤어졌다. 둘은 지금도 친구처럼 사이좋게 우정을 간직하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후 1991년엔 일반인인 미국인 페리 몸(Peri Momm)과 결혼했다가 1992년에 이혼했다. 1994년엔 스웨덴인 아네트 크비베르크와 결혼해서 10년 넘게 부부 관계를 유지하던 도중 2009년에 집에 복면 쓴 강도들이 침입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네트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2011년에 이혼했다. 아네트 사이에서 딸 둘을 봤는데, 이다(Ida)는 1996년생으로 미인인데다 아버지를 닮아서 키가 180cm나 되는 장신이며 아버지에게 단련받은 무술 솜씨를 자랑하는 격투가이기도 하다. 현재 이다 룬드그렌은 모델과 배우를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둘째딸인 그레타(greta)는 2001년 생으로 언니와는 달리 체격이 왜소하다. 아마도 어머니인 아네트를 닮아서 그런듯. 두 딸 모두 아버지의 성인 룬드그렌을 사용하고 있다. 2011년의 이혼 후로 한동안 싱글로 지내다 2020년엔 연하의(딸과 동갑인 39살 연하!) 트레이너인 엠마 크로크덜과 결혼했다.

2015년부터 폐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2023년 5월에 갑작스럽게 밝힌 바 있다.영어 기사.


5. 출연작[편집]



5.1. 영화[편집]




6. 여담[편집]


  • 실베스터 스탤론을 평소에 보스라고 부를 만큼 그를 친형처럼 따른다. 실제로 둘 다 사는 집도 가까워서 스탤론이 SNS로 '뭐하냐? 맥주나 한 잔하자.'라고 부르면 '예 형님(Yeah Boss)'이라고 답장보낸 뒤 10분 안에 나타난다고. 그럴만도 한 것이 본인의 연기인생의 활로를 터준 것이 록키 4를 기획하고 감독한 스탤론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익스펜더블 시리즈에 3편 내내 함께 동료 관계로 출연한 것도 이 인연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록키 4 촬영 당시 스탤론과 대결씬을 찍다가 그를 병원에 실려가게 만들었다. 아무리 스탤론이 그간 록키를 찍어오며 복싱을 단련해왔긴 하지만 돌프는 이미 아마추어 복싱 커리어도 있고 유럽가라데 챔피언 출신의 핵주먹이었다. 게다가 키차이와 몸무게 차이가 상당해서 그의 부상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지 못하자 스탤론이 호되게 야단을 치며 제대로 하라며 지시를 내리다가 그의 주먹이 하필 심장에 꽂히며 나흘간 병상에 입원해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글러브를 끼고 때린 것인데도 대형 사고가 터진 것. 덤으로 아폴로 크리드 역의 칼 웨더스를 촬영 중 너무 심하게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칼 웨더스 역시 기분이 상해 얼마간 촬영장을 비운 적도 있었다고.[21]

  • 상당한 복싱 실력을 자랑한다. 젊었을적에 아마추어 경력도 있었고 많은 트레이너들과 프로모터들로 부터 프로 전향을 권유 받았다. 실제로 그레이스 존스와 사귀던 시절에 영화 오디션에서 여러차례 낙방을 하자,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진지하게 프로 데뷔를 준비하려 했을때 그녀가 극구 반대하며 배우 활동을 할 수 있게 지원하였다.

  • 전문적인 운동선수답게 트레이닝과 영양에도 매우 지식이 높아 록키 4에서 스탤론이 온갖 스테로이드를 꽂아가며 몸을 만들 때, 그는 전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110kg 가까이 근육질의 벌크업을 했다.[22] 거기다가 보충제 사업과 트레이닝 비디오 사업으로도 대박을 쳤다. 이 돈으로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해 큰 돈을 벌어 사실상 지금도 배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을 정도. 현재는 본인 명의의 B급 액션 전문영화 프로덕션의 주주이다.

  • 이반 드라고는 가공의 인물임에도 워낙 임팩트가 커서 알렉산더 볼코프를 비롯한 러시아 격투가들이 링네임으로도 종종 사용할 정도. 아직도 일부 팬들은 그의 본명보다 이반 드라고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장난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I must break you'라고 노려보며 싸인을 해주거나 사진을 찍어준다고.

  • 장 클로드 반담과도 매우 친하다. 그런데 과거에 반담이 유럽 가라데 리그와 킥복싱 대회에 출전한 경력을 기자들이 찾아내지 못해 2년 연속 유럽 가라데 챔피언인 룬드그렌에게 반담의 가라데 시합에 대해 들어본적 있냐 물은 적이 있었다. 이때 룬드그렌이 유럽 가라데 시합을 많이 다녀봤음에도 반담의 시합경력은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해버렸다.[23] 그래서 삐진 반담이 유니버설솔저 시리즈에서 두 번이나 잔인하게 죽였나보다.

  • 과거 유명했던 액션배우인 로렌 아베든이 헐리우드 전 액션배우들이 실제로 싸운다면 돌프 룬드그렌이 최강일 거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럴만도 한게 90년대에 당시 UFC헤비급 챔프였던 올렉 탁타로프와도 실전 복싱시합을 벌여 판정까지 갈 정도였다.

  • 키의 논란이 좀 있는 편이다. 셀럽 헤이트에서는 193.7cm라고는 알려져 있지만 실제 키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추정된다. 이반 드라고로 촬영할 시기엔 196cm 정도 였다고 본인 스스로 말한적도 있고, 스웨덴 tv4와의 인터뷰에서는 193cm라고도 말한 적이 있다. 본인 스스로가 자신을 거인취급 하는걸 좋아하지 않아 전성기때는 키에 대해서 정확히 언급하질 않지만 실제 신장 173cm 정도의 스탤론과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나는 걸로 보아 대부분의 팬들은 6피트 6인치(198cm), 또는 6피트 7인치(201cm)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것도 있고, 액션 촬영하다 어깨 및 경추, 엉치뼈를 크게 다쳐 여러 차례 수술을 받다보니 현재는 190cm 근처 정도로 많이 줄었다.[24] 크리드 2에서 아들 빅토르 드라고역의 플로리안 문테아누가 193cm인데 플로리안 문테아누보다 조금 작게 나왔다.

  • 영화 다크 앤젤(I Come in Peace,1990)에서 함께 출연했던 마티아스 휴즈(1959년생으로 독일 출신 미국 귀화)와 사이가 매우 나빴다. 마티아스 휴즈가 괜한 자격지심을 갖고[25] 돌프에게 사소한 이유로 시비를 걸어서 다툼이 끊이지 않자 돌프가 안면몰수하고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더니 촬영을 중단시키고 스태프들을 물렸다. 그리곤 '덤벼. 이 스테로이드 중독자 새끼야. 오늘 널 박살내서 버릇을 고쳐주마.'라며 결투를 신청했다. 마티아스 휴즈는 키가 195에 120킬로에 육박하는 근육질의 거구였으나 돌프의 기세에 겁을 먹고는 '이봐. 그럴 것까진 없다구. 진정해.'라며 꼬리를 내렸다. 마티아스 휴즈도 킥복서 출신에 태권도 공인 2단의 무술실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전유럽 2년 연속 가라데 챔피언인 철권을 가진 돌프 룬드그렌에겐 역부족이었던 모양. 크레이그 벡슬리가 감독한 이 영화는 500~700만 달러 정도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4350만 달러 흥행을 거둬들였다. 벡슬리는 다음 영화로 스톤콜드(1991)를 감독했으나 이건 쫄딱 망해버렸다. 마티아스 휴즈는 2020년대에도 60대 나이로 조연배우로 꾸준히 현역이지만 커리어는 B급 배우 그대로다. 디워에서 단역인 바운티 헌터로 분장하고 나왔을 정도다.

  • 2013년 네이버 웹툰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여러 웹툰작가들이 "터치!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재했는데, 가스파드가 그린 "루돌프 룬드그렌" 편은 돌프 룬드그렌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 <북두의 권>에서 원두황권을 구사하는 격투가 파르코의 모델이 되었다.[26]

  • 록키 4 촬영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람보 2의 소련군 유신 상사역을 제안 받았으나 각본을 본 뒤 거절했다고 한다. 이유는 같은 이미지로 소모될까봐였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88년작 레드 스콜피온에서 이반 드라고와 판박이인 니콜라이 라첸코 중위역을 맡게 되었고 그뒤로도 계속 비슷한 이미지의 냉혈하고 과묵한 역을 위주로 맡게되며 상술했듯 B급 액션배우로 전락해버렸다.

  • 인텔리 화학전공자 답게 화학식을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지적인 부분이 있다. 이 덕분에 영화 익스펜더블 2에서 화학을 전공한 수재라는 설정이 조금 나오기도 하는데 그래도 영화 내에서는 바보같은 면이 많은 캐릭터라 돌팔이처럼 나와서 폐광산에 매몰되었을 때 화학 지식으로 폭탄을 제조하여 탈출하려는 데에 실패하고 놀림만 당한다. 그러한 특성에 맞는 독특한 취미가 있는데 이 화학식을 이용해 독한 술을 제조 할 줄 안다.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폭탄주를 제조하여 필름 끊기게 한 적도 있다.

  • 아놀드 슈워제네거와도 우정이 두텁다. 가라데 선수를 하던 시절에도 보디빌더와 배우로서 성공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놀드를 동경해왔으며 1984년 코난 2 디스트로이어에 출연한 그레이스 존스 덕분에 그를 직접 만나면서 친분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때 친해진 아놀드는 당시 록키 4의 이반 드라고 역을 준비하던 돌프의 트레이닝 지도를 맡아주었다.

[1] 근데 본인은 59년생이라 주장한다.[2] 키의 논란이 좀 있는 편. 아래 여담에 후술.[3] 아버지에게 잦은 학대에 가까운 훈육을 당하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유능한 엔지니어 겸 경제학자였지만 알콜중독자였다.[4] 록키 4 출연당시 짧은 몇마디 대사를 위해 배웠는데 취미가 생겨 꾸준히 배웠다고 한다. 발음은 뛰어나진 않지만 현지인과도 의사소통은 무난히 할 수준까지 된다.[5] 2012년에 사망한 여배우 실비아 크리스털도 비슷한 경우이다. 모국어인 네덜란드어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5개 국어에 능통했음에도 1981년에 개봉한 <개인교수>가 대박난 뒤 에로틱 영화와 졸작들 위주로 나와서 백치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6] 앞 문단에도 적혀있듯이 당시 메이 데이 역의 그레이스 존스와는 실제 연인사이였다.[7] 해외에서 흥행 실패작이지만 한국에선 당시 서울관객 20만이 넘는 당시 기준으로 꽤 흥행작이라 돌프 룬드그렌 인지도가 올라갔다. 이 영화 감독인 조셉 지토는 13일의 금요일: 더 파이널 챕터, 척 노리스 주연의 람보 2 짝퉁 영화 부르다크(Missing in Action)로 흥행에 성공했으나 척 노리스와 다시 맡은 액션영화 매트 헌터(Invasion U.S.A. 한국 개봉 및 비디오 제목. 1994년 6월 18일 토요명화 더빙 방영 제목은 USA 침입자)가 흥행에 실패했고 다음에 감독한 이 레드 스콜피온도 흥행에 실패하여 12년이나 영화감독을 쉬어야 했다. 그러나, 2000년 복귀작인 디 에프 원도 저예산 싸구려 액션영화였고 이후 액션 영화 하나 더 감독하고 은퇴했다.[8]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티브를 따온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몽가니카'로 쳐들어가서 저항군 지도자 순다타를 암살하려던 임무를 맡지만 실패한다. 그후 조국에게 버림받아 고문을 받고 황야에 버려져 죽을 뻔하다가 코이산족 원주민과의 교류로 깨달음을 얻고 원주민의 편에 서서 조국인 소련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인다.[9] 이 작품에선 미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자라 일본 문화와 야쿠자들의 습성을 잘 아는 강력계 형사 케너역을 맡았다. 반면 브랜든 리는 미국문화에는 익숙하지만 모국에 대해선 케너보다도 아는게 없는 일본계 혼혈 자니 무라타역을 맡아서 대비를 이뤘다.[10] 여담으로 본작의 최종보스 역의 배우로 모탈컴벳 실사판 영화에서 쌩쑹 역으로 유명한 캐리 히로유키 타가와가 출연했다.[11] 당시 한국극장 개봉명은 '마스터 돌프'였다.[12] 다만 이 리뷰는 원작을 잘 모르고 리뷰한 감이 많아 리뷰 자체의 평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13] 그래서 코만도의 후속작인 코만도 2의 캐스팅을 거절했고 이로인해 코만도는 후속작이 나오지 못했다.[14] 케네디 조카인 마리아 슈라이버[15] 배우 활동을 하면서 커리어 초반보단 나아졌긴 했으나 어색한 표정연기와 도무지 개선이 안되는 대사전달력, 딱딱한 움직임은 2000년대에 주지사로 배우를 그만둘 때까지 극복 못했다.[16] 터미네이터 시리즈, 코만도, 야만용사 코난 등[17] 혹은 본인은 진지하지만 웃긴 상황에 빠지는[18] 가령 "솔드 아웃"에서 "푸 대 쿠키 따운!!" 하나는 유명하다.[19] 돌프는 어린시절부터 무술만 주구장창 해와서 이때 시작한 연애가 첫 연애였다. 게다가 그레이스 존스와도 10살 가까이 차이났으니...[20] 조셉 지토 감독의 전쟁영화로 1995년에 속편이 만들어졌으나 기존 제작진들은 그대로 두되 감독과 배우가 마이클 케네디와 매트 맥콤으로 변경되었다.[21] 훗날 말하길 기분도 나빴지만, 사실 제대로 맞으면 사고날 것 같아 겁이났다고 밝혔다.[22] 정작 영화에선 록키가 온갖 재래식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드는 반면, 드라고는 소련의 최첨단 스포츠 트레이닝과 스테로이드까지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현실과는 정반대였던 셈.[23] 반담은 가라데 경력이 거짓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실제 44승 4패의 기록이 존재한다. 여기에 18승1패의 킥복싱 경기기록도 있다. 이 기록이 뒤늦게 발견된 것은 유명한 협회같은 기관에서 주관한 시합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상대했던 선수들도 대부분 전문적인 선수들이 아닌 대부분 승패기록이 전무한 이름없는 초짜들이다.[24] 키가 큰 사람일수록 척추 수술로 인해 신장이 줄어드는 폭도 크다.[25] 당시 1990년에 돌프는 B급 액션배우임에도 반담과 함께 차세대 액션배우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 반면에 마티아스 휴즈는 그 당시에도 비디오 시장 전용 액션영화에만 전문적으로 출연하는 배우였다. 게다가 스태프들은 마티아스 휴즈를 싸구려 배우로 취급하고 함부로 대하기까지 했다.[26] 정확하겐 그가 맡았던 이반 드라고를 모티브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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